아침과 밤엔 서늘한 공기

뜨거운 낮이 가고

시원한 밤이 오면

조용히 노래하는 풀벌레

빨갛게

노랗게 익는 열매

그리고

새파란 하늘

 

가을은

소리없이 스며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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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자기 찾아온 헤어짐에

마지막 인사도 못했습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늘 잘 지내세요

 

 

 

2

 

어떤 만남이든

마지막은 찾아옵니다

 

한참 지나고 나서

아,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하는 날도 있겠지요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인사해야겠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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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 문학동네 시인선 110
한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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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는 시인이 많다고 합니다. 별처럼 많은 시인이라 말해도 괜찮을까요. 아니 시인이 별보다 적겠습니다. 시나 시집을 만나지 못해도 우연히 시인 이름을 듣기도 하는데 이번에 본 시집을 쓴 시인 한영옥은 처음 알았습니다. 1973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고 시인이 되었군요. 1973년이라니 꽤 오래전이네요. 그래서 제가 잘 몰랐을지도. 문학동네 시집 뒤에는 시인이 언제 태어났는지가 적혀있기도 한데, 지금 생각하니 처음에 1973년을 시인이 태어난 해로 생각했군요. 지금 한영옥 시인이 1973년에 시인이 되었다는 걸 알고 시와 시인이 조금 이어졌습니다. 제가 글을 보고 그 글 쓴 사람 나이를 잘 알아보는 건 아니지만, 시를 보면서 1973년생 시인이 이런 시를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처음에 제대로 봤다면 시를 더 잘 봤을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은 바라도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저는 슬픔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 이건 어려운 일이겠네요.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기도 한데. 시인은 슬픔이 올 테면 와라 하더군요. 슬픔이 온다고 말하고 온다면 잘 대비하고 견딜 수 있을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다 중요하겠지요. 슬픔을 아는 사람이 슬픈 사람 마음을 알잖아요. 슬픈 사람 마음을 다 알지 못하겠지만. 남한테는 별거 아닌 것도 슬프게 여기는 건 어떨까요. 어쩐지 제가 그런 듯합니다. 어쩌면 그건 슬픔이 아닌 다른 감정일지도 모를 텐데 그걸 잘 몰라서 뭐든 ‘슬프다’ 여기는 건지도.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한 허수경 시인 첫번째 시집이 생각나는군요. 이 말을 생각하니 슬픔을 안 좋게만 여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자신을 자라게 해주는 것이니. 그래서 한영옥은 슬픔한테 올 테면 와라 했을까요.

 

 

 

비겁하게 달라붙는 하루살이 같은 잡생각들

때려잡겠다고 파리채 잡고 이러저리 뛴다

동지도 지나고 12월이 다 가도록 함초롬 피어

애련을 돋우는 분홍, 보라 과꽃을 쳐다보며

애련에나 깊이 물들어보려 하는데 어쩌자고

이깟 것들이나 달라붙어 치근덕거리는 것인지

아예 애련에 물들기는 틀렸다는 쓸쓸함으로

오래전 접어준 책갈피나 무심히 펼쳐 보는데

레비나스, 타인을 존중하라고, 이 말 저 말로

어깨 두드려준 그에 대하여 “극도의 조심성과

신중함, 그리고 겸허한 태도를 유지한 사람”

이라고 평전은 전해주고 있었다, 그렇지, 이런

사람이어야지, 한순간 마음먹어 든든해지는데

유지해야지, 유지해야지 애를 써대는 중인데

이깟 것들 아직 휘몰아치는 냉랭한 11월이여

애련한 과꽃 송이 다 스러지도록 눈이나 모셔라

이깟 것들 아주 기어들어가도록 펑펑 모시거라.

 

-<이깟 것들>, 19쪽

 

 

 

 가끔 아니 자주 쓸데없는 생각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제가 하루 동안 가장 많이 하는 게 쓸데없는 생각이군요. 책을 볼 때는 이야기에 빠져들기는 해도, 틈이 생기면 또 해요. 그런 생각 안 하면 좋을 텐데, 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많이도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이깟 것들’이라 말할 수 없어요.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질지. 어쩐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시에서 말하는 건 사람 때문에 하는 생각일까요. 이 시집에 실린 시에는 사람 관계를 말하는 시가 조금 눈에 띄기도 합니다. 저만 그렇게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닌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고 시인은 잠시 눈물 흘리기도 해요.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런 마음 들기도 하겠지요.

 

 

 

어제의 괴로움 짓눌러주는

오늘의 괴로움이 고마워

채 물 마르지 않은 수저를

또 들어올린다

 

밥 많이 먹으며

오늘의 괴로움도 대충

짓눌러버릴 수 있으니

배고픔이 여간 고맙지 않아

 

내일의 괴로움이

못다 쓸려 내려간

오늘치 져다 나를 것이니

내일이 어서 왔으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자고 일어나는 일이

여간 고맙지 않아

 

봄 여름 가을 없이

둘레둘레 피어주는 꽃도

여간 고맙지 않았으나.

 

-<여간 고맙지 않아>, 51쪽

 

 

 

 고맙다는 말이 있어서 긍정스런 시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여간 고맙지 않았으나.’로 끝나는군요. 고맙기는 하지만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요. 어제 괴로움을 오늘 괴로움이 눌러준다니, 그건 늘 괴로운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니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괴로움이 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겠지요. 날이 갈수록 괴로움이 덜하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그게 반대가 되지 않을까요. 날이 갈수록 더 괴로운. 제가 생각한 건 몸의 괴로움이군요. 몸이 괴로운 때가 온다면 둘레에 핀 꽃이나 나무를 보고 그걸 달래야겠습니다.

 

 여기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워도, 그냥 어떤 느낌이 들기도 하는 시가 많습니다. 그저 느끼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 말 여러 번 했네요. 옮기려다 옮기지 않은 시 하나에는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모아두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 나오기도 해요. 그렇게 하면 걱정거리가 조금 덜할 듯하네요. 살살 달래는 건가. 그럴지도.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 자신없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 몰라도 가끔 시 만나는 거 좋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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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는 어제까지만 해도 잘 움직였는데, 한번 멈추고 더는 움직이지 않네 마치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이처럼 시계는 움직이지 않네

 

 다시 시계를 달래 보았지 약을 갈고 시간을 맞추었지만 시계는 조금 움직이다 멈추었네 이젠 움직이기보다 쉬고 싶은 건가

 

 약을 갈고

 고장난 곳을 고치면

 다시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약을 갈아도

 고쳐도

 움직이지 않는 것도 있다

 

 목숨이 다해서

 멈춘 시계는

 쉬게 해주자

 억지로 움직이게 해봤자

 다시 멈출 거다

 

 끝난 사이도

 되돌릴 수 없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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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은 마음이 아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8
오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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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보고 느낌을 쓰는 건 어렵다. 그래도 쓰려고 한다. 쓰다보면 시집이랑 아무 상관없기도 하지만. 몇해 전부터 시집을 한달에 한권 보려 했는데 한동안 그걸 지키지 못했다. 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쓸 일이 걱정스러워서 못 봤다. 이건 시집만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책이든 보기 전에 쓸 걸 생각한다. 보고 싶은 책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난 책 보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다. 책을 보고 써도 잘 못 쓰지만, 그냥 마음 가는대로 쓰면 좋을 텐데 그것도 쉽지 않다.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고 시집도 많다. 한국에 시인이 많다고도 하는데. 난 그거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은은 이름을 알고 예전에 시집 《유에서 유》를 만났다. 이번 시집 그때하고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오은 시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구나. 그냥 느낌이 그랬다. 어떤 글이든 자꾸 쓰다보면 달라지기도 하겠지. 난 별로 달라지지 않고 나아지지 않지만.

 

 내가 더 쓰고 싶은 건 이야기다. 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어서, 시 비슷한 걸 더 쓴다. 난 시라고 쓰지만 시로 보이지 않을지도. 많은 사람이 다 아는 걸 쓸 때도 많다. 나도 그걸 알고 쓴다. 그런 거 써 놓고, ‘오늘도 썼다’ 한다. 이런 말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짧은 것도 떠올리는 데 시간 많이 걸린다. 생각하는 시간도 글을 쓰는 시간에 들어가겠지. 내가 쓰는 건 쉬워서 바로 알 수 있다. 쉬워도 잘 쓰면 좋은 글인데, 내가 잘 못 써서 그렇게 괜찮게 보이지 않는 거겠지. 그런 것도 쓰다보면 나아질까, 모르겠다. 내가 쓰는 것과 오은이 쓰는 건 많이 다르다. 나랑 비슷하게 쓰는 사람 하나도 없구나. 난 정말 유치하다. 시인과 나를 견주다니. 난 아무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런 말로 흘렀는지. 난 그냥 나대로 쓸까 한다. 아무도 묻지 않은 말을 했구나.

 

 

 

왼손이 말을 걸어왔다

마음이 아파

가슴이 찢어져

 

오른손은 단박에 왼손을 움켜쥐었다

가능했다

 

한동안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어느 날,

왼손이 걸어왔다

왼발도 아니면서

 

오른손은 머리가 아팠다

왼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잡은 손에는

땀이 맺힐 대로 맺혀 있었다

 

오른손은 단숨에 왼손을 뿌리쳤다

능가했다

 

왼손은 마음이 아파

가슴이 찢어져

잠시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오른손은 당분간 땅만을 이해하기로 한다

 

-<패러다임>, 44~45쪽

 

 

 

 이 시집 제목인 ‘왼손은 마음이 아파’ 하는 말이 나오는 시다. 있는 그대로 오른손 왼손을 말하는 걸까. 오른손이 왼손을 이해하지 못해서 왼손은 마음이 아픈 건지. 이 말은 자신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 왼손은 손이 아닌 다른 걸 나타낼까. 세상에 얼마 안 되는 사람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왼손잡이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 아니 지금은 혼자 사는 사람 많던가. 많은 사람이 하는 걸 잘 못하는 사람. 그건 나구나. 정말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시집 제목 괜찮은 듯하다. 오른손만이 옳은 건 아니다. 둘 다 괜찮다. 세상은 오른손잡이를 더 생각하지만. 왼손잡이도 조금은 생각하겠지.

 

 

 

나무가 책상이 되는 일

잘리고 구멍이 뚫리고 못이 박히고

낯선 부위와 마주하는 일

모서리를 갖는 일

 

나무가 침대가 되는 일

나를 지우면서 너를 드러내는 일

나를 비우면서 너를 채우는 일

부피를 갖는 일

 

나무가 합판이 되는 일

나무가 종이가 되는 일

점점 얇아지는 일

 

나무가 연필이 되는 일

더 날카로워지는 일

 

종이가 된 나무가

연필이 된 나무와 만나는 일

밤새 사각거리는 일

 

종이가 된 나무와

연필이 된 나무가

책상이 된 나무와 만나는 일

한 몸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음 날이 되는 일

 

나무가 문이 되는 일

그림자가 드나들 수 있게

기꺼이 열리는 일

내일을 보고 싶지 않아

굳게 닫히는 일

빗소리를 그리워하는 일

 

나무가 계단이 되는 일

흙에 덮이는 일

비에 젖는 일

사이를 만들며

발판이 되는 일

 

나무가 우산이 되는 일

펼 때부터 접힐 때까지

흔들리는 일

 

-<나무의 일>, 94~96쪽

 

 

 

 시 한편만 소개하면 아쉬울 듯해서 한편 더 옮겨봤다. 그리 짧지 않은 시다. ‘나무의 일’이어서. 나무는 길에서 보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쓰는 물건에도 참 많다. 나무 하면 길에서 산에서 보는 나무가 더 떠오른다. 나뭇잎이 아주 많이 달린. 소나무도 있는데. 언젠가 걷다가 소나무 냄새 맡았다. 나무를 더 많이 심었으면 한다. 지구를 위해. 아니 그건 지구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나무가 많으면 도움이 된다. 나무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편하게 쉬게도 한다. 나무로 만든 가구에는 이불이나 옷을 넣는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상상하기도 했구나. 나도 상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러 시를 보고 그걸 다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그런 거 못한다. 가끔 시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시를 다 알지 못한다 해도 만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시를 만나면 조금 덜 유치한 시를 쓸 수 있을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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