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99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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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전에 심보선 첫번째 시집을 보고 두번째는 건너뛰고 세번째 시집을 보았다. 두번째 시집이 나오고 꽤 오랜만에 세번째 시집을 낸 게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아직 못 봐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 시집은 첫번째 시집에 있던 슬픔을 덜 느꼈다. 두번째에도 슬픔이 담겼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슬픔이 아주 없지 않다. 내가 크게 느끼지 못했다. 슬픔에도 이런저런 게 있는데 그 감정을 내가 잘 모르는 걸지도. 처음 말하는 건 아니지만, 난 조금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있는 듯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결혼하고 헤어지는 것도 큰 슬픔일 텐데, 난 잘 모르는 일이다. 아이가 없다는 건 심보선 시인 이야기겠지. 헤어진 아내를 가르친 선생님을 만나는 이야기도 있다. 그것도 어떤 슬픈 마음에서 쓴 걸 거다. 헤어진 사람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마음 편하지 않을 것 같다.

 

 난 심보선 시인을 잘 모른다. 심보선 시인만 모르는 게 아니고 시인, 소설가 다 모르는구나. 책을 보고 그걸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책을 봐도 그 사람을 다 알기 어렵다. 그저 조금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작가를 잘 아는 듯하다. 어디선가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쓴 글을 본 건지 책을 보고 읽어 낸 건지. 그런 거 몰라도 큰일은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그저 시와 소설을 봐달라고 할 거다. 소설은 소설가가 조금 담기지만 시는 더 많이 담기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이것도 잘 몰랐는데. 어제는 몰랐지만 오늘은 알게 된 것인가. 하지만 어제 몰랐던 걸 오늘 알게 되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오늘 모르면 내일은 알 수 있을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알려고 해야 알 수 있을 거다. 모르는 건 모르는대로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나도 모르겠다. 시집 제목이 ‘오늘은 잘 모르겠어’여서 이런 말을 했구나.

 

 

 

나는 오늘 내게 영감을 주곤 했던 노을빛이

누군가의 자동차와

누군가의 그림자와

누군가의 지붕에 깃드는 것을

무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노트에 묻은 마지막 지문은 수년 전의 것.

지금 어딘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은

내가 모르는 노을의 비밀을 알아채고

자신의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 사람이 부럽습니다.

오늘 밤 그 사람은 시인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는 쓰지 않고 다만

시 쓰는 생각에 젖어 있을 뿐.

그 생각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나는 오늘 내 목소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어떤 그늘에서도

어떤 침묵의 순간에도

어떤 꿈의 영상 속에서도

나는 오늘 외로운 천사의

흐느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목소리가 죽은 원천을 바라봅니다.

산산이 부서진 말 씨앗들.

물방울이기도 했고

불꽃이기도 했던 자그마한 장소.

망상에 빼앗긴 소망의 메마른 우물.

 

나는 기억들을 더듬어봅니다.

사람들과 하는 입맞춤과 악수와 포옹.

주먹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주먹을 펼치면 사라지는 새.

모든 얼굴들에 숨은

레몬 씹는 아이의 싱그러운 찡그림.

아아, 그 모든 생명력들을 떠올려봅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시인이 아니랍니다.

아주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한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말한다 해도

“아주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에서 말문이 닫혀버립니다.

 

시인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왼쪽에는 모르는 이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자리.

집중력이 생기는 자리.

고독이 생기는 자리.

 

시인의 자아란 무엇일까요?

뜨겁고 달콤한 영혼의 입자들이 뭉쳤다 부서지는

창문이 너무 많은 어두운 방.

창문이 하나도 없는 빛나는 방……

 

내가 시인이었을 때 나는

“이제 고통은 그만! 하지만 행복이여, 내게 다가오지 마라!”

외치면서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가 시인이었을 때 나는

눈앞의 사물을, 그것이 머나먼 목적지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켰습니다.

그때 어떤 깨달음처럼 나는 더 이상

내가 시인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평소처럼 노모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시인이기를 멈췄습니다.

 

오늘 밤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도 시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는 쓰지 않고

시 쓰는 생각도 않고

내일 일은 얼마나 고될까?

언제쯤 행복은 나에게 도달할까?

그저 그런 빤한 염려에 젖어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오늘 밤 이 세상에 한 사람은 반드시 시인입니다.

오늘 밤 누군가가 시를 쓰고 있다면

그것은 충분합니다.

 

그러니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내가 시인이건 아니건

내가 월급쟁이건 아니건

내가 장남이건 아니건

도대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늘 밤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잠들지 않고

밤새 시를 쓰고 있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밤 단 한 명이라도 시인이라면!

 

그 생각만으로 절로 웃음 지으니까요.

그 생각만으로 단잠에 빠지니까요.

그 생각만으로 내일 아침

영영 깨어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이제 시인이 아니랍니다>, 99~104쪽

 

 

 

 시가 참 길기도 하다. 조금 짧은 시도 있지만 이 시를 옮기고 싶었다. 첫번째나 두번째 시집도 그렇게 얇지 않은데, 오랜만에 낸 시집이어선지 이건 더 두껍다. 짧은 시는 얼마 없고 거의 다 길다. 죽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거나 자신은 시인이다 말하고 바로 다음에는 이제는 시인이 아니다 말한다. 자신이 아니어도 시인이 있다면 괜찮은 걸까. 그래도 심보선은 시를 썼다. 앞으로도 쓰지 않을까. 지금도 쓰고 있다고 믿고 싶다.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보고 가끔 자기 이야기도 하는 시. 심보선은 사회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를 고모라고 한다. 이건 조금 재미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다른 책에서는 이름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고 적었던데, 다른 나라 말이니 심보르스카라고 써도 아주 틀린 건 아니겠다. 심보선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쓴 시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을 2016년 5월 28일에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 죽은 열아홉살 소년을 생각하고 고쳐썼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사회학을 공부해설까. 심보선은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일하다 죽은 사람 이야기라고 할까. 사회를 잘 들여다 보려 한 거겠지. 마지막 5장에는 시가 세편인데 두편은 길다. 5장 두번째 시 <브라운이 브라운에게>는 시보다 소설 같다. 소설도 편지 형식이 있지 않은가. 포춘쿠키에서 안 좋은 말을 본 덴 브라운(그렇다면 밤색)은 포춘쿠키를 만드는 회사에 포춘쿠키에서 행운의 말이 아닌 안 좋은 말이 나온 걸 말한다. 포춘쿠키 안에 쓰는 글은 브라운 지가 썼는데 브라운 지는 브라운한테 난 날마다날마다 행복을 떠벌리느라 불행해졌소 / 아니 애초에 불행했기에 날마다날마다 행복을 떠벌린 것인지도 (262쪽) 한다. 난 브라운이 포춘쿠키에서 본 “희망은 그대 영혼의 가장 비극의 부분이다. (232쪽)고 한 말 아주 안 좋은 말은 아닌 듯하다. 희망은 힘들고 괴로울 때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시간을 내서 아직 못 본 심보선 두번째 시집을 봐야겠다. 거기에는 어떤 슬픔이 담겼을지. 시집 제목만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 시집 제목은 《눈앞에 없는 사람》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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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공책을

한쪽 한쪽 채우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지

어쩐지 무언가 한 것 같거든

좀 더 좋은 글로 채우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야

 

빈 곳을

글로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면

언젠가 글이 나아질 날도 올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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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2nd(メジャ-セカンド) 14 (少年サンデ-コミックス (14)) (コミック)
미츠다 타쿠야 / 小學館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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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세컨드 14

미츠다 타쿠야

 

 

 

 

 

 

 이 책을 벌써 10권 넘게 보다니. 처음 알았을 때 13권까지 나왔구나. 나온 거 빨리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게을러서. 이 책은 <원피스>보다 보는 데 시간 덜 걸린다. 집중해서 보다보면 거의 끝이 다가온다. 언제나 만화는 아쉽게 끝난다. 그렇게 해야 다음 권도 보고 싶다고 여기겠지. 오래 기다려야 하면 좀 답답할까. 아니 꼭 그렇지는 않구나. 책을 끝까지 봤을 때는 아쉬워도 다른 책을 보다보면 그 생각을 덜한다. 이 말 처음 한 게 아니구나. 중학교 야구 경기는 어느 정도나 보여줄지. 후린중학교가 지역대회를 이기고 전국대회에 나갈지, 결승에서 지고 여름대회에 나갈지. 후린중학교가 세이와중학교를 이기면 준결승이고 준결승을 이기면 바로 결승이란다. 경기 빨리 하고 하루에 두번 하기도 하는구나. 준결승 결승만 하루에 다 하는가 보다.

 

 후린은 세이와를 맞이해 경기 괜찮게 했다. 아니 그렇게 쉽지는 않았던가. 쉽게 이겨도 재미없을지도. 야구를 아주 잘 하는 학교가 없지 않겠지만. 지난번 7회초에서 세이와가 1점 넣어서 3점이 됐다. 그렇게 1점 차이가 났는데, 이번에 또 1점 넣고 4점이 됐다. 2점 차이 뒤집을 수 있겠지. 투수인 무츠코가 지쳐서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다이고는 이번 경기에서 1학년 니시나를 투수로 내 보내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투수를 니시나로 바꿨다. 니시나는 야구 특기생으로 후린중학교에 들어왔다. 다이고보다 키가 크다. 초등학생은 변화구를 배우지 않고 던지지 못한다. 그건 몸이 다 자라지 않아서가 아닐까. 중학교 때부터는 변화구 배우고 던지는 듯하다. 지난번에 우라베가 던진 커브를 후린 아이들이 처음에는 잘 못 쳤다. 그러고 보니 니시나는 몸만들기를 하게 했구나. 이것도 어쩌면 니시나 몸을 생각한 건 아닐까 싶다. 중학생이 됐다 해도 얼마전까지는 초등학생이었으니. 니시나는 처음에는 빠른 공 던졌는데 바로 데드볼을 던져서 세이와는 노아웃 만루가 됐다.

 

 다시 위기가 다가왔다. 다이고는 타임을 부르고 니시나한테 뭔가 말했다. 그랬더니 스트라이크가 됐다. 니시나는 공 던지는 자세를 세트에서 와인드업으로 바꿨다. 세트는 동작이 작고 와인드업은 큰 게 아닌가 싶다. 이거 보니 예전에 히카루가 세트를 이론만 알던 게 생각나는구나. 히카루는 다른 지역에서 야구하겠지. 7회초에 2점만 내주고 끝났다. 7회말은 후린중학교가 공격했다. 맨 먼저 첫타자가 1루에 나가고 아니타 차례가 왔다. 아니타가 손목을 다친 걸 알아서 앤디는 우라베한테 아니타가 치기 어려운 곳으로 공을 던지게 했다. <크게 휘두르며>에 나오는 타지마는 스텝을 밟거나 방망이를 잡은 손가락을 조금 빼서 공을 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여기에서 보다니. 아니타는 뒤로 조금 물러나서 공을 쳤다. 그렇게 해서 노아웃 2, 3루가 됐다. 하지만 다음 두 사람은 아웃이었다.

 

 힘든 상대여선지 마지막은 길게 나오는구나. 니시나가 포볼로 누에 나가서 만루가 됐다. 다음 타자는 엄청 부담스럽겠다. 만루는 기회면서 위기기도 하니. 실제 단바는 부담스럽게 여겼다. 그건 예전에 단바가 잘못해서 팀이 진 적이 있어서였다. 어쨌든 단바는 공을 쳤다. 아웃이 될 것처럼 보였는데 운은 후린중학교로 돌아왔다. 1점 들어오고 다이고 차례가 왔다. 우라베는 7회말에 감독이 다른 투수 준비를 시켜서 거기에 마음을 썼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다이고가 공을 쳤다. 두 사람 들어오고 후린중학교가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 다이고는 아이들한테 결승전에서 만나는 에이호중학교 경기를 보자고 한다. 이 지역에서 야구를 가장 잘 하는 학교인가 보다. 2학년 두 사람 사가라와 사와는 그냥 돌아가고 일곱 사람만 경기를 봤다. 에이호중학교는 5회전 콜드로 이겼다. 후린중학교는 준결승 이기고 결승에 나갈까.

 

 에이호 경기를 보면서 다이고는 다음날 준결승은 무츠코와 1학년 치사토 두 사람이 공을 던졌으면 한다고 한다. 무츠코는 쉬지 않고 던져서. 다이고랑 치사토가 연습하는 모습을 무츠코는 아쉬운 얼굴로 봤다. 힘들어도 또 던지고 싶었을까. 그런 마음 투수한테는 좋은 거구나. 그날 밤 비가 내렸다. 아침에도 내려서 무츠코는 경기 연기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손목 다친 아니타도 연기 되기를 바랐는데. 다이고와 아이들은 준결승 상대 야나기가와를 앞에서 싸운 상대보다 쉽게 여겼는데 비 때문에 실수하고 야나기가와가 첫회에서 먼저 1점을 내고 서로 점수를 내지 못한 채 6회말을 맞았다. 이번에도 순식간에 지나간 회가 있구나.

 

 본래 수비를 잘 하던 두 사람 사가라와 사와는 비 때문에 실수했을까. 아니타는 두 사람한테 이번 경기 이기려는 마음이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말을 했다. 여자여서 남자와 경기하는 건 이번까지가 좋겠다고. 사가라와 사와는 에이호와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해 보지도 않고 그러다니. 나도 아니타처럼 두 사람 사가라와 사와가 경기 적당히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사가라 다음에 타석에 선 사와가 홈런 치고 동점을 만들었다. 두 사람 마음은 정말 어떤 걸까. 이번 경기 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저 아주 잘 하는 상대와 싸우고 싶지 않았던 걸 거다.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다. 후린이 남은 한회 잘 막고 점수 내고 이겼으면 좋겠다. 아니타는 다이고를 본 첫인상이 바뀌었다. 사람을 겉만 보고 생각하다니. 다이고는 아니타가 생각하는 것보다 야구에 열정이 있었다. 다이고는 무츠코가 투수로서 가진 좋은 점이 크다는 걸 이번에 더 느꼈다. 결승전 상대 에이호가 아닌 다른 학교일지도 모르겠다. 야구를 아주 잘 하는 학교라고 해서 꼭 이긴다고 할 수 없다. 사가라와 사와는 그걸 반길까. 결승전은 이기고 싶은 마음으로 경기 하기를. 이런 말을 하다니. 두 사람이 일부러 지려고 한건 아닐 텐데. 준결승전은 빨리 지나가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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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문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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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만났습니다. 몇해 전에 우연히 이 책 《비탄의 문》이 일본에서 나온 거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도 나왔네요. 책을 보면서 제목 ‘비탄의 문’이 가리키는 건 뭘까 했어요. 바탄의 문은 모든 이야기가 태어나고 돌아오는 곳 이름없는 땅으로 들어가는 문이더군요. 말이 태어나는 곳도 있는데, 이런 건 설명하기 어렵군요. 그냥 그런 게 있구나 했습니다. 이름 없는 땅은 《영웅의 서》에 나온 적 있을 것 같아요. 그 책은 못 봤지만, 거기에 나온 것 같은 아이가 여기에도 잠깐 나왔어요. 이 소설은 현실과 판타지가 섞였어요. 자꾸 보다 보니 판타지에 가까웠는데, 마지막에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미시마 고타로가 이름 없는 땅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어쩌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현실에 제대로 발을 딛고 살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인터넷에는 아주 많은 말이 떠다닙니다. 좋은 말도 있겠지만 안 좋은 말도 많겠지요. 저는 안 좋은 건 별로 못 봤지만. 제가 보는 곳이 얼마 안 돼서 그렇겠습니다. 한국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이야기를 하고 정리하는 곳 있을까요. 열아홉살로 대학교 1학년인 미시마 고타로는 인터넷 사회 경비회사인 쿠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동아리 선배 마키가 고타로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잘 맞는다고 하고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일 해 보지 않겠느냐고 해요. 실제로도 인터넷 사회 경비회사 같은 곳 있겠지요.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 안도 사회인데 그걸 잊고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거기에서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고타로가 일하는 곳에서는 범죄가 일어날 것 같은 사이트나 블로그를 감시해요. 마약, 자살, 학교 폭력, 살인…….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닐 듯합니다. 온갖 말을 보다보면 거기에 물들지도 모르잖아요. 고타로 선배인 마키는 고타로한테 이 일에 너무 빠지지 마라 합니다. 이쪽이 어둠을 오래 지켜보면 어둠도 이쪽을 본다고 하잖아요.

 

 여러 달에 걸쳐 몸 어딘가를 잘라내고 시체를 버린 사건이 일어나요. 그 일이 여러 번 일어나자 세상에서는 연쇄살인으로 보고 인터넷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요. 쿠마에서는 그 사건과 상관있는 걸 찾아봐요. 그러다 고타로와 함께 일하던 모리나가가 노숙자가 사라진 일을 알아보다 사라져요. 고타로는 모리나가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려고 모리나가가 다닌 곳을 더듬어 보다 한 건물에 이릅니다. 그 건물 가까운 데 부서진 모리나가 휴대전화기가 있었어요. 고타로는 모리나가가 밤에 그 건물에 왔다는 걸 알고 고타로도 밤에 건물에 들어가요. 거기에는 고타로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지금은 경찰 일을 그만둔 쓰즈키로 옥상에 있는 가고일 조각상이 움직인다는 말을 듣고 알아보다 밤에 건물에 가 보기로 했어요. 두 사람이 건물에 갔을 때 옥상에는 낮에 있던 괴물 조각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정말 나타나요. 전사 가라가. 가라는 말의 정령이 태어나는 곳에서 왔다고 해요. 가라는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서 힘을 길렀어요. 죄를 저지르고 이름 없는 땅에 간 아들을 구하려고.

 

 평범한 사람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은 마주치는 게 좋을지 안 좋을지. 사는 곳이 다르니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곳 사람은 다른 세계 사람이 가진 힘에 사로잡힐지도 모르니까요. 실제 고타로는 쿠마 사장이 누군가한테 죽임 당하자 가라한테 힘을 빌려요. 쿠마 사장이 죽임 당한 일은 연쇄절단마가 저지른 다섯번째 살인이라고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연쇄살인과 상관없었어요. 쿠마 사장을 시샘하고 미워한 사람이 저지른 일로 그 사람은 자신의 커다란 바람에 먹혔어요. 고타로는 가라한테 빌린 왼쪽눈으로 말을 봐요. 그 사람이 한 말 형태랄까. 안 좋은 생각이나 말을 한 사람 뒤에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어요. 고타로는 쿠마 사장을 죽인 여자를 경찰이 잡게 하지 않고 가라한테 맡깁니다. 가라는 사람의 바람을 모아서 힘을 길렀어요. 하지만 고타로가 사람을 죽인 사람을 심판하거나 벌을 주면 안 되지요. 고타로는 조금씩 괴물에 가까워져요. 쓰즈키는 고타로한테 그만 본래 생활로 돌아오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일어난 살인사건도 연쇄살인이 아니었어요. 그건 경찰이 빨리 범인을 잡지 않아 일어났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두번째 사건을 보고 같은 범인이다 말한 것 때문인지. 다 가까운 사람한테 죽임 당한 거였어요. 실제로도 가까운 사람한테 죽임 당한 사람 많겠지요. 연쇄살인도 있겠지만.

 

 말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말도 여러 번 하더군요. 자신이 한 말에 묻히고 바람에 지배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릇된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건 쉽습니다. 사람은 다 자신 안에 있는 빛과 어둠의 균형을 잘 지키려고 합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군요. 그건 쉽게 깨지기도 합니다. 고타로도 사람이 아닌 괴물에 가까워졌어요. 사람을 죽인 사람을 보고 나쁜 사람이니 자신이 벌을 줘도 괜찮다 생각한 듯해요. 그건 힘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도 같습니다. 힘을 가져도 마음 균형을 지키려고 애써야 하는데. 어쨌든 고타로는 현실로 돌아와요. 어떤 일은 가라가 보여준 환상이기도 했어요. 고타로가 가라한테 빌린 왼쪽눈으로 나쁜 것만 본 건 아니예요. 아이를 생각하는 따스한 엄마 마음도 보았어요. 고타로는 세상에 나쁜 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고 해야겠네요.

 

 좋은 말을 하면 기분 좋고 안 좋은 말을 하면 기분 별로지요. 좋은 말을 생각하고 하는 게 더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도록 애써요.

 

 

 

희선

 

 

 

 

☆―

 

 “늙은이, 너는 갈망을 잃고 편해지지 않았는가. 왜 다시 괴로움을 자청하는 거지.”

 

 “그게 사람이니까!”

 

 진심으로 격분하는 쓰즈키 모습은 고타로도 처음 보았다.

 

 “어떤 성가신 감정이든, 꺼림칙한 기억이든, 속으로 삼키고 쌓아서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게 사람이야.”

 

 콧김이 거칠었다. 계단에서 숨차할 때처럼 씩씩거렸다.

 

 “무엇보다 나는 ‘편해지기를’ 바란 적 없어. ‘편하게 해달라’고 네게 부탁한 적도 없고. 네가 멋대로 그런 짓을 하는 바람에 나는 그야말로 무사태평한 쭉정이 꼴이 됐다고.”  (《비탄의 문 2》에서, 106~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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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우울하려고

 

 

 

 

 언제나 밝고 좋은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쉽게도 전 그렇게 못합니다. 누군가 그것도 버릇이라고 한 것 같은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전 기분이 괜찮을 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합니다. 걱정을 사서 하는군요. 사람 아니 뇌라는 건 안 좋은 때를 더 생각한답니다. 그렇다고 늘 그런 기분에 빠져 있는 건 좋지 않겠습니다. 이래서 친구가 별로 없군요. 갑자기 이런 말을.

 

 덜 우울하려고 조금이라도 애쓰는 게 낫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기도 할 테지만. 제가 하는 건 책 읽기지요. 책을 읽어도 별로 도움이 안 될 때도 있겠지만, 내용과 상관없이 글을 보면 안 좋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도 해요. 글이 걱정이라는 걸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것일지도. 책을 더 잘 봐야겠습니다.

 

 가끔 저랑 잘 맞지 않는 책을 만나기도 해요. 그런 건 조금 싫지만 거기에서도 무언가 얻을 수 있을 텐데. 저랑 잘 맞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는 잘 맞기도 하겠지요. 어쩐지 저는 그런 거 많은 것 같아요. 그럴 때 ‘난 왜 이러지’ 하기도. 사람 사귀는 것보다 잘 맞지 않는 책 만나는 게 조금 편하겠지요.

 

 한가지밖에 생각하지 못하다니.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몸을 움직이라고도 하는군요. 그것도 괜찮지요. 햇볕을 쬐면 세로토닌이 나온다잖아요. 걷기 가끔 합니다. 우울할 때보다 볼 일이 있으면.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을 텐데, 제가 게으르군요. 우울해서 게으른 건지, 게을러서 우울한 건지.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걸 글로 다 나타내지 못하지만 글쓰기도 괜찮습니다. 이 말도 처음이 아니군요. 이번에 한 말 다. 쓸 게 떠오르지 않고 더 우울할 때 이런 말을 하는군요. 한번 말하고 나면 한동안 괜찮아야 할 텐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괜찮으면 괜찮은대로 살까 합니다.

 

 

 

 

 

 

 

 

 

                   

 

 

 

 

 

놓은지도 모르고

 

 

 

 

비가 조금 와서 가게에 들어가면서

우산을 접고 한손에 들었어

 

물건을 사고

집에 오려니

손에 우산이 없었어

 

어디선가

우산을 놓았나 봐

찾으러 가 봤지만

어디에도 없었어

 

놓지 않아야 했는데

왜 놓았을까

놓은 것도 모르고

 

다시 만날 수 없겠지

 

놓은지도 모르고 놓은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집에 오고 한시간쯤 뒤에 우산이 고객센터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 앞으로는 좀더 조심해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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