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나 홀로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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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겠지. 다음으로 무서운 건 뭘까. 어둠. 밤에는 바깥에 돌아다니지 마라 하고 해가 지면 산을 넘어가지 마라 한다. 어둠은 어둠에 녹아들기 쉽다. 낮이라고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귀신이 돌아다니는 것도 어두울 때다. 무서운 짐승도 밤에 먹이를 잡아먹는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있어서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했겠지. 그 많던 호랑이는 이제 없지만.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적이 있었을지 몰라도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호랑이를 잡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사람이 살 곳이 늘어서 호랑이가 나타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산짐승은 조용히 산에 살고 싶었을 텐데. 한국에서 사라진 게 호랑이만은 아니구나. 호랑이가 아주 사라진 건 일제강점기 때다. 일본은 한국말과 문화재뿐 아니라 동물까지 없애려 했다.

 

 지금까지 난 공포소설을 별로 만나지 않았다. 책을 보면 거기에서 뭔가 뜻을 찾아야 해서. 이건 책을 읽고 쓴 다음부터 생긴 버릇은 아닐지. 무서운 이야기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지도. 세상에는 뜻깊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기도 하다. 공포소설이라 해도 뭔가를 담을 수도 있겠지.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거 까닭을 모르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난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것도 어느 순간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 원한이 깊으면 죽어도 죽지 못하겠지. 그런 건 옛날 이야기일까. 억울하게 죽은 여자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것. 두번째 이야기 <검은 여자>는 그야말로 귀신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얻으려고 남자를 병실에 가둔다. 처음에 좋아한 사람도 아닌데 그 사람 이름을 부르고. 여자한테 잡혀간 남자는 달아나려 하지만 끝내 달아나지 못한다. 어둠속에 검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긴 여자가 있으면 조심하길.

 

 여자 귀신만 무서운 건 아니다. 진짜 자신을 숨긴 사람도 있다. <히치하이커(들)>에서는 차를 얻어탄 사람 분위기가 안 좋아 보였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더 위험한 게 아닐까 했다.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마. <취객들>에서는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자는 사람이겠지 한 사람이 움직였을 때 중요한 걸 알게 된다. 편의점에서 밤에 일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죽이는 사람. 사람이 무섭구나. <Hard Night>에서 형사는 자신이 한 마약거래를 들키지 않으려고 폭력배 사무실에서 장부를 빼내오려 했다. 형사는 사람을 죽이고 약에 취해 좀비처럼 된 사람도 죽인다. 형사 아들은 아팠다. 형사가 돈을 마련하려 한 건 아이 병원비 때문이었을지도. 형사는 다른 경찰이 왔을 때 힘들게 다른 건물로 갔는데 장부를 놓고 왔다. 형사는 다시 돌아갔을까. <구멍>은 평소에는 얌전한테 술을 마시면 힘을 가진 듯한 남자가 나온다. 남자는 장애인 여자아이한테 나쁜 짓을 했다. 남자는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나쁜 짓을 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풀려났다. 이번에는 한쪽 팔이 구멍에 끼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있다 죽을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고 남자가 한 짓 용서할 수 있을까.

 

 어둠이 무서운 이야기 <크고 검은 존재>. 마지막에 날이 밝아오자 크고 검은 건 물러났다. 희수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마지막 선물>은 따스한 이야기다. 조금 무서우면서도 따스하다고 해야겠다. 여기에도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오다니. 그 여자는 다리가 없었다. 태풍이 몰아친 날 ‘나’ 는 개울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살았다. ‘나’는 이제 아내한테 마지막 선물을 주려 한다. 그건 자신이 없어도 앞으로도 살라는 말이다. 모두 다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구나. 하나라도 따스한 이야기가 있어서 괜찮았다.

 

 

 

희선

 

 

 

 

☆―

 

 모든 죽은 자들은 사랑하지만 지상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 딱 한번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게 죽음의 법도다. 죽은 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 나는 열두 살 여름에 엄마한테서 그 선물을 받았다.  (<마지막 선물>에서,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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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20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는 느낌을 갖곤 해요.
마치 어떤 천사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도와 줄 때 꼭 아버지가 보낸 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요. 확신할 수 없어서 누구에게 말은 안 하지만... ㅋ
이것에 대해 언제 기회되면 글을 써 보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요. ㅋ

희선 2020-03-23 01:21   좋아요 0 | URL
세상을 떠난 누군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여기는 거 좋은 듯해요 페크 님은 아버님이 도와주셨다고 느끼셨군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맞을 거예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힘에 도움을 받았다고 느낄 때도 있으니... 옛날에는 조상이 돌봐준다는 말 많이 했잖아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페크 님은 페크 님 아버님을 떠올리시겠습니다


희선
 

 

 

 

너와 내 마음이

선명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빛바랬어

 

다시 돌릴 수 없겠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잘못된 것도 없고

누구 잘못도 아닌,

그저 그렇게 될 거였겠지

 

난 잠시

슬퍼할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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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 책에는 하늘만 담겼다는 말을 듣고, 전 언제나 병실에서 지내는 친구한테 그 책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병실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었지만 낮에는 커튼을 닫아야 했어요. 친구는 햇볕을 쬐면 안 됐어요.

 

 책방에도 도서관에도 파란색 책은 없었어요. 파란색 책이 보여서 봤지만 그건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었어요. 친구는 제가 어떤 책을 건네든 밝게 웃었어요. 친구는 책을 좋아했어요.

 

 친구한테 가져다 줄 책을 도서관에서 찾다가 책장 끝에 눈이 갔어요. 거기에는 제목도 쓰여있지 않은 선명한 파란색 책이 있었어요. 저는 혹시나 하고 그 책을 펴 보았어요. 책 속은 파란하늘 구름 가득한 하늘 해질 무렵 하늘 할 것 없이 이런저런 하늘이 담겨 있었어요. 저는 그 책이 제가 찾던 책이라는 걸 바로 알았어요.

 

 책을 빌리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사서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그건 도서관에 등록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제가 사서 선생님한테 병원에 있는 친구 이야기를 하니 사서 선생님은 책을 빌려주었어요.

 

 도서관을 나와 저는 바로 친구한테 갔어요. 친구는 제가 준 책을 보고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어요.

 

 이튿날 친구는 저를 보고 말했어요.

 

 “희진아, 이 책 무척 좋아. 내가 이 책을 펼쳤더니 진짜 하늘에 있는 것 같았어. 마지막은 하늘이 아니고 바다였어. 멋진 하늘 멋진 바다 보여줘서 고마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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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123
정끝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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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이름부터 시네요. 정끝별. 이름은 알았지만 시집은 이번이 두번째예요. 몇해 전에 본 시집에는 어떤 시가 담겼는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일자리 찾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이야기가 담긴 시를 소개했는데. 아버지 이야기도 있었네요. 이번 시집을 보다가 정끝별이 말을 가지고 놀았던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말을 가지고 놀지만 가볍지 않은 듯합니다. ‘애너그램을 위한 변주’를 제목 밑에 쓴 시가 여러 편인데 그 말이 없는 시에서도 말이 여러가지로 바뀝니다. 앞말에서 뒷말로 이어간다고 할까. 대칭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게 재미있네요. 이런 거 처음은 아닐 듯합니다. ‘살자살자살자, 여기를 이겨! (<깁스한 시급>─애너그램을 위한 변주>, 61쪽)’ 이 말은 힘을 주려고 한 말이겠지요. 힘들어도 죽고 싶은 마음을 이기기를.

 

 

 

육 남매 말썽 피울 적이면 엄마는 말했다

 

열 살까지는 부모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어선 다 니들 책임이라고

 

엄마는 책임을 다해 살았다

 

나도 그때의 엄마가 되어 딸에게 말한다

 

열 살까지는 내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라고

 

스무 살 스무 살까지만 하며 엄마처럼 살았다

 

보청기 잡음에 전화로도 기차 화통이신

여든다섯 엄마는 책임을 초과해 여태껏

쉰셋 늙은 딸 아침을 알람중이시다 그만

일어나라 밥 먹었냐 따순 밥 먹고 나간 자식들

안 비뚤어진다 파김치 시겠다 가져가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두 딸이 스무 살 스무 살이 되면

희망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조차도

 

-<삼대2>, 62쪽~63쪽

 

 

 

 제목이 <삼대2>라는 건 첫번째도 있다는 말이군요. 어머니, 딸, 손자 이렇게 삼대겠지요. 부모는 자식이 몇 살이어도 걱정한다잖아요. 어머니는 딸이 어릴 때는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다’ 하고는 쉰셋 딸을 아침에 깨우는군요. 김치까지 가져가라 하고. 딸이 알아서 할 텐데. 딸은 ‘난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그러겠지요. 부모와 자식 사이는 끊기 어렵고 걱정 안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엄마는 엄마고 아이는 아이죠. 옛날에는 엄마와 아이 사이가 무척 가깝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도 그런 사람 없지 않겠습니다. 그런 걸 부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누구하고든 적당하게 거리를 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 거리를 많이 두었지만. 그런 제 마음 차가운 걸까요. 마음속에 있는 걸 잘 말하지 못합니다. 이건 거리하고는 상관없는 거군요.

 

 

 

경비업체 직원이 죽었다 새벽 귀갓길이었다

 

잠시 귀국해 밤새 놀다 취한 유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강남대로변에서 일곱 청년에게 맞고 또 맞았으나

새벽기도 가는 행인 십수 명이 지나갔고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수십 대가 지나갔으나

때리다 지친 일곱이 다 달아난 후에야 중환자실로 옮겨져

스무날 만에 숨진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생모는 동생을 낳다가 죽었다

생부는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입양되고 그는 조부모가 거두었으나

조부모마저 이혼하면서 그도 보육원에 갔다

동생을 입양한 부부가 보육원에 봉사왔다 그를 만났으나

세 살 동생과 다섯 살 형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죽고 난 뒤 그가 살던 단칸방 서랍에는 유서인 듯

입대 통지서와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이 있었다

군복무 중인 동생이 유해를 거둬 생모 산소에 뿌렸다

 

집 가는 길이 가장 어둡고 쓸쓸해 눈 감고 걸었던

밤새 어둠을 바라보느라 핏발 선 그의 두 눈이

새벽 취객들 활보를 바로 보지 못해

대형 교회 십자가 불빛 아래서 맞고 또 맞는 동안

십수 명이 지나가고 수십 대가 지나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던 건 누구 눈이었을까

 

-<공범>, 94쪽~95쪽

 

 

 

 어쩌면 이 시는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무언가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 많겠지요. 저라고 누가 맞는 걸 보고 막을 수 있을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한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을 그저 보기만 해도 괴롭히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하지요. 잠시 귀국한 유학생과 보육원에 살았다는 이십대 사람은 대비되는군요. 술을 먹고 남을 때리다니. 그렇게 할 거면 술을 마시지 않아야지요. 슬픈 이야깁니다. 그냥 지나간 차 그냥 지나간 사람은 다 공범입니다. 남일을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만 있지 않을 거예요. 누군가를 도와주지는 못한다 해도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세상을 나타내는 시도 있어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자신. 지금 건망증이 있는 건지 그런 걸 말하는 시 <생각서치>도 있습니다. 저는 마트에서 물건 많이 못 사고 기억도 잘하는 편이어서 아직 공감이 가지는 않아요. 이런 말을 하다니. 언젠가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올지. 저는 단순하게 살아서 기억해야 할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잘못하는 일은 아주아주 가끔입니다. 잘 잊어버리지만 기억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건 조금 쓸데없는 거. 다른 사람이 읽은 책 같은 거. 요새는 잘 모르겠어요. 예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듯도 합니다. 글을 볼 때는 집중해야 할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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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3-17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 님,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 댓글 달아주셨는데 저는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참, 평소에 느끼는 거지만 희선 님은 시인이신가봐요?^^

희선 2020-03-18 02:22   좋아요 0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지나갈 때는 그렇게 빠르지 않은데, 지나고 나면 시간이 빨리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달도 반이 넘게 갔네요 다른 때하고는 다른 봄이기도 합니다 세계 어디나 다르지 않겠습니다 시를 잘 보고 싶기도 하고 글 잘 쓰고 싶기도 한데, 여전히 다 못합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라로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이팝꽃

 

 

 

 

하얗게 눈 쌓인 듯

이팝꽃이 피었네

 

이젠 보릿고개가 없어서

이팝꽃 보고

쌀밥 먹고 싶다 하지 않네

 

꽃을

꽃으로 즐길 수 있는

오늘날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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