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 - 꿈꿀수록 쓰라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건 어느 쪽을 골라야 하는 건 아니다.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아닌 아이가 한 일이니. 아이가 어느 쪽일지 생각한다고 해야겠구나. 가해자든 피해자든 좋지 않은 듯하다. 큰일이 아니면 피해자인 게 그나마 낫겠지만 목숨이 달렸다면 어떨까. 아니 목숨이 달렸다 해도 엄마 아빠 마음이 다 똑같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믿으면 피해자로 죽었을 테고, 아이가 살아 있기를 바라면 사람을 죽인 사람이 된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아주 안 좋다. 처음부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아이, 더욱이 남자아이는 사춘기 때 많이 거친 듯하다. 그때를 잘 보내면 좋을 테지만 그게 쉽지 않을지도. 자신만 가만히 있는다고 괜찮은 일은 아닌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할까. 모르겠다.

 

 별 문제없어 보이는 가정에 어느 날 큰일이 닥친다. 그건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이시카와 다다시가 살인사건과 상관있다는 거였다. 다다시는 집에 없었다. 아빠인 가즈토와 엄마인 기요미는 다다시가 그저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얼마전에 다다시는 얼굴에 멍이 들어서 집에 오고 공작용 칼을 사기도 했다. 기요미가 다다시한테 왜 얼굴에 멍이 들었는지 물어도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공작용 칼은 가즈토가 빼앗았다. 한동안 별일 없었는데 다다시는 쉬는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누군가한테 맞고 죽고, 시체는 차 트렁크에 있었다. 차를 버리고 달아난 사람은 두 사람으로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죽은 구리하시 요시히코는 다다시 친구였다.

 

 책을 읽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다시가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다다시 부모를 잠깐 떠올리니 몸이 덜덜 떨릴 듯하다. 자기 식구가 어떤 범죄와 상관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것 같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가장 가까이 산다 해도. 부모가 가장 모르는 것도 아이 마음이 아닐까. 남의 마음도 알기 어렵지만. 다다시가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나는 다다시가 어느 쪽일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빠인 가즈토는 다다시를 믿고 피해자이기를 바랐고, 엄마인 기요미는 다다시가 어쨌든 살아 있기를 바랐다. 피해자면 죽고 가해자면 산다니. 한 아이가 더 죽었다는 말이 나온다. 가즈토는 순수하게 다다시를 믿은 건 아니다. 다다시가 다른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는 앞으로 일하기 힘들어서였다. 실제 밝혀진 게 없을 때도 가즈토는 다른 사람한테 안 좋은 말을 들었다. 그렇다고 가즈토가 다다시가 죽기를 바란 건 아닐 거다. 엄마는 아이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살아 있기를 바랄까.

 

 아는 사람 식구나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전과 다르지 않게 지낼 수 있을까. 다른 식구한테 잘못은 없지만 예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다시를 믿기도 믿지 않기도 어려운 일이다. 믿으면 죽고 믿지 않으면 나중이 걱정이니. 언론은 빨리도 다다시를 알아내고 집에 찾아왔다. 가즈토 집앞에는 텔레비전 방송 관계자와 기자가 나타나서 누군가는 다다시가 구리하시를 죽였다고 보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안 좋은 말이 떠돌았다. 다다시가 범인으로 밝혀지면 가즈토 집안은 그곳을 떠나야겠구나. 이름도 바꾸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 가즈토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기요미는 다다시가 살아 있기를 바라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각오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어느 쪽이든 끝은 좋지 않다. 아예 아무 상관없으면 좋을 텐데. 다다시는 그저 다른 곳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거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바란 건 그거였구나. 부모는 아이가 그저 아프지 않고 자라면 좋을 것 같은데 그 아이 마음이 어떨지도 마음 써야겠다. 부모 쉽지 않겠구나. 아이가 길을 벗어난 게 꼭 부모 탓만은 아니겠지만. 부모와 아이가 이야기를 자주 하면 어느 정도 서로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는 부모가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고 큰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겠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어른 힘을 빌리기도 해야 하는데.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멀고 먼 곳으로 떠나도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와요

 

책을 펼치면

언제 어디서든

모르는 곳으로 떠나요

 

돌아오고 싶을 땐

책을 덮으면 돼요

 

즐거움이나

위로는

잠시일지라도

그만둘 수 없어요

 

또 떠날 시간이에요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신이 사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많은 사람이 생각하게 된 건 소설 만화 영화 같은 것 때문일 거다. 사람은 지금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 걸 처음 생각한 사람은 누굴까. 모르겠다. 누가 가장 처음 생각했는지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구나.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을 거다.

 

 다른 세계는 현실과 아주 다를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판타지에서는 중세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게 많은 걸 보면. 옛날 같으면 판타지고 앞날이나 우주가 나오면 SF라 하는구나. 판타지는 마법 SF는 과학인가. 다르게 말한다 해도 두 가지가 동떨어진 건 아니다. 둘 다 같은 건 상상이다.

 

 상상. 상상은 자유다. 자유로운 상상.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이런 건 왜 썼지. 나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다른 세계로 가는 이야기 보면 재미있기도 한데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얼마전에 본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 그랬다.

 

 

 

 

 

 어느 날 나츠키 스바루는 다른 세계로 간다. 다른 세계에 갔을 때 스바루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서 만난 여자아이를 도우려 한다. 그러다 죽으면 다시 시작한다. 스바루는 그걸 바로 깨닫지 못했지만. 몇 번 되풀이하고 알게 된다. 다시 시작한다 해도 이야기가 똑같지는 않다. 스바루뿐 아니라 스바루가 생각하는 사람이 다 살아야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간다. 게임도 아니고 죽음을 되풀이해야 한다니. 다른 사람이 죽고 스바루가 죽은 다음 다시 시작한다는 건 스바루만 기억한다. 스바루는 다른 사람이 죽는 걸 몇 번이나 경험한다. 자신이 죽는 것도 괴롭겠지만 다른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걸 얼마나 힘들까. 스바루 힘들어 보였다. 죽는 것보다 다른 사람 기억이 사라져서 힘들었을지도.

 

 스바루가 다른 사람한테 여러 번 그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가 스바루 심장을 꽉 쥐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말하려 했더니 그때는 상대가 죽었다. 스바루는 무언가한테 저주받은 걸까, 아니면 그 세계에 사는 여자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게 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구나. 내가 그 만화영화를 다 본다 해도 모를 것 같다.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테니.

 

 얼마전에 보다 만 만화영화는 라이트 노벨이 원작이다. 그걸 본 건 스바루를 맡은 성우가 <닥터 스톤>에서 센쿠 목소리를 한 사람이어서였는데, 목소리는 비슷해도 사람은 아주 달랐다. 당연한 건가. 스바루와 센쿠 다른 사람이니. 남은 것도 곧 보겠지만 두 번은 못 보겠다.

 

 난 더는 못 봐도 누군가는 그 소설을 좋아하고 끝까지 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스바루는 몇 번이나 죽을지. 스바루만 죽는 건 아니구나. 많은 사람이 죽고 스바루는 그 사람들이 죽지 않는 길을 찾으려 하겠다. 아니 아주 다른 이야기로 바뀌기도 할까.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밤이 깊어도

세상은 모두 잠들지 않는다

 

먹고 살려고 깨어 있는 사람

자고 싶어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

밤이 좋아 안 자는 사람

 

당신은?

 

깊고 깊은 밤은

새벽에 가깝기에

조금만 기다리면

아침이 온다

 

깊은 밤엔

네가 더 그립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 연담L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지금 경찰은 언제까지 일을 할까. 예순이 정년인 것 같다. 공무원 정년을 예순다섯으로 한다는 말이 보이기도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말을 했느냐면 이 소설에 나오는 이친전이 경찰로 정년을 한해 앞두고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가 생기고 반년 뒤 유급휴가를 받아서다. 경찰은 누구보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해야 할 텐데. 친전은 식구 얼굴뿐 아니라 가끔 자기 얼굴도 낯설게 느꼈다. 한해 전에 그렇게 됐으니 그때 뭔가 큰일이 일어나서인 것 같다. 아쉽게도 그 이야기는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친전은 자신이 믿었던 후배 정의정한테 배신당했다고 여겼는데 정의정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친전이 정의정한테 배신당했다고 생각해선지 정의정 얼굴만은 기억했다. 그건 신기하구나.

 

 잠시 여기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말해볼까 한다. 난 이런 거 정리하는 게 조금 어렵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은 이어져 있기도 하다. 친전은 손자인 나무가 우비 입은 할아버지를 잡아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얼마 뒤 친구가 불러서 간 곳에서 우비를 입은 할아버지가 책에 깔려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얼핏 보면 사고 같지만 그건 사고가 아니었다. 친전이 그곳에 가서 그게 살인사건이라는 걸 깨닫는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경찰이기도 하니 경찰로 일한 경험 때문에 다른 사람은 그냥 넘긴 걸 친전은 알아봤겠지. 친전은 추리소설도 아주 좋아한다. 책을 읽기도 하고 많이 모으기도 했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죽은 사람은 김성국으로 재일교포에 일본 야쿠자였다가 그만뒀다. 책에 맞은 얼굴이 뭉개져서 누군지는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된다. 김성국 얼굴을 때린 책을 보니 모두 뒤쪽이 찢겨 있었다. ‘반전이 없다’는 건 바로 이걸 가리킨다. 그 책은 다 추리소설이다.

 

 살인사건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김성국과 상관있는 출판사 사장과 헌책방 사장은 김성국과 똑같이 책에 맞아 죽었다. 스무해 전에 세 사람은 같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그때 서적 도매상이 망해서 출판사도 다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런데 세 사람이 일했던 리문 출판사 사장 이문석이 2억엔을 가지고 야반도주했다고 한다. 리문 출판사와 상관있는 사람은 세 사람만이 아니기는 하다. 김성국이 스무해 전에 일어난 일을 소설로 쓰고 그걸 책으로 내려 했다. 그때 김성국을 죽였을지도 모를 사람으로 이문석 이름이 나왔다. 정말 이문석은 김성국이나 다른 사람을 죽였을까. 이 말은 그게 아니다 말하는 것과 같겠구나. 자세한 말을 하면 안 되겠다. 자세하게 하려 해도 잘 안 된다. 어쩐지 글로도 버벅대는 듯하다. 자주 이러던가.

 

 누가 왜 사람을 추리소설책으로 때려 죽였는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건을 풀어 나가는 모습 보는 것도 재미있다. 지금 친전은 쉬지만, 사고로 보인 일을 맨 먼저 살인사건이라는 걸 알아채서 사건을 조사하기도 한다. 그것도 김나영과 함께. 김나영은 조영주가 쓴 《붉은 소파》에도 나온 형사다. 여기 나온 김나영 보면서 예전에도 김나영이 이랬던가 했다.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지만, 예전에 난 누가 범인일까를 더 생각했을 것 같다. 나영은 친전과 함께 다니면서 친전이 정말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지 몇 번이나 시험해 본다. 짧은 가발을 쓰고. 그런데 하루는 친전이 여러 사람 아내, 딸, 손주 얼굴을 다 구별했다. 헌책방을 돌아본 날이다. 친전이 좋아하는 책을 많이 봐서 다른 사람 얼굴도 알아보게 됐을까. 그런 일은 겨우 하루였다. 친전은 다시 경찰로 돌아갈지.

 

 친전이 사람 얼굴은 알아보지 못해도 책은 잘 알아봤다. 추리소설을 잘 아는 친전이 있어서 범인을 알 게 된 거겠지.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책 제목인 ‘반전이 없다’와는 달리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제목 반전이 없다는 책이 뜯긴 걸 뜻하지만). 스무해 전 일어난 일뿐 아니라 다른 일도 그렇다. 사람은 돈 앞에서는 잔인해질까. 앞에서 나온 말은 뒤에서 맞아 떨어진다. 추리소설은 앞에 나온 말을 잘 기억해두기도 해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친전이 말했을 때 맞아 그랬지 했을 뿐이다. 친전은 경찰 일 다하고 탐정이 되어도 괜찮겠다. 아직 한국은 탐정이 일이 아니던가. 탐정을 일로 인정하겠다는 말 나온 지 몇해 지난 것 같은데. ‘한국탐정협회’는 있다. 탐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

 

 

    

 

 

 

 어쩐지 책 잘 읽고 잘 써야지 하면 더 안 된다. 여기에는 작가와 아주 비슷한 사람이 나온다. 여기 나오는 사람 모두에 작가 자신을 투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작가 모습과 비슷한 사람은 친전 아내 침례가 하는 카페에 오는 바리스타다. 그 사람은 다른 카페에서 일하고 침례가 하는 카페에 와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침례 일을 도왔다. 그리고 초이세.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초이세는 일본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를 한국 작가처럼 쓴 거다. 이 책 시작하기 전에는 그장소(조송희) 님 이름이 나온다. 어느새 한해가 넘게 지났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