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6월 29일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개>, 38쪽

 

 

 

시간은 잘 흘러갑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말을 하고 우리말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70년이 되었더군요. 70년 전에 모두 우리말을 쓰지 않은 건 아닐 테지요. 아니 그때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말로 말하고 글쓰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우리말을 하면 괴롭힘 당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네요. 학교에서. 일제가 우리 민족을 없애기 위해 가장 많이 마음 쓴 건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는 선생님이 말하면 멋모르고 따르잖아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도 좋아야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더 좋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선생님부터겠네요. 제가 어릴 때도 유치원 있었을 테지만, 저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풀검) 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는 건 좀 안 좋겠네요. 이런 말로 흐르다니.

 

시인 윤동주는 스물아홉(만 스물여덟)에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에도 말했는데 그때가 1945년 2월 16일이에요. 여섯달 뒤에 우리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1945년 2월에는 그런 생각 못했겠지만요. 윤동주 시집은 예전에 하나 사뒀더군요. 좀 작게 나온 시집인데 이 책에 실린 것보다 시가 조금 많더군요. <사랑스런 추억>은 없나 했는데 다시 보니 있었습니다. 그 시집 가끔 펴보기도 했는데, 자주가 아니고 가끔입니다. 하나하나 잘 봤다기보다, 넘기면서 대충 봤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봤습니다. 시가 어떻다 말하는 건 어렵겠네요. 시를 보려고 가끔 시집 사는데, 그것을 보고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못 봤습니다(처음 하는 말이 아니군요). 얼마전에 시를 보고 뭔가 생각나는 걸 쓰면 어떨까 했어요. 그것도 쉽지 않네요.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다보면 전에 봤을 때와 다른 것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쓰기 전에는 바로 두번만 보는군요. 쓰고 나면 편하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롭게 보이는 시가 있으면 좋겠네요.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은 어린다.  (73쪽)

 

 

 

앞에 시는 아는 거예요. 윤동주는 ‘순이’라는 이름을 시에 썼습니다. 순이는 누굴까요(순이가 아닌 순일까요). 윤동주 시에는 쓸쓸함 슬픔 따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것도 있을 텐데. 거지 아이를 보고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투르게네프의 언덕>이 있는가 하면, 전봇대에 돌을 세개 맞추고는 문제 다섯개에서 세개 맞고 육십점 맞겠지 하고, 시험 공부하지 않고 공 차러 가는 <만돌이>도 있어요. <만돌이>는 재미있기도 하지요. 맨 앞에 쓴 <개>는 그 모습을 그려보면 그렇겠구나 하겠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윤동주 시 하면,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짐하는 <서시>와 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별 헤는 밤>이 떠오릅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생각을 깊이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다들 그랬겠네요. 아니 그때뿐 아니라 시나 소설을 쓰는 이십대는 저보다 어른 같아요, 여전히. 글이 사람을 성숙하게도 하겠지요. 저도 그래야 할 텐데요.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다른 책)

 

 

 

 

 

 

 

눈이

새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하오.  (40쪽)

 

 

 

제목은 같지만 다른 시예요. 예전에 산 시집에는 앞에 것이 여기에는 뒤에 것이 실렸습니다. 앞에 것도 괜찮지요. 눈을 지붕이랑 길이랑 밭을 따듯하게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말하는 것이. 북극에 사는 사람은 얼음으로 집 짓잖아요. 눈 위보다 눈 밑이 따듯하겠지요. 사람이 눈 밑에 오래 있다보면 숨막혀 죽겠지만. 숨구멍이 있으면 죽지 않겠네요. 별말을 다했습니다. 윤동주 시는 힘든 세상에도 아름다운 게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듯합니다(자신없는 말).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보여주는 시도 있어야 하지만, 힘들고 아파도 살아갈 희망을 말해주는 시도 있어야 하겠지요.

 

 

 

 

 

 

 

난 외롭지 않아요

 

 

 

어느 가을날 나는 책방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깊은 가을이 아니어서 나뭇잎들은 여전히 풀색을 띄우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작은 강아지를 만났다. 강아지는 줄에 묶여 있었다. 그 줄은 누군가 옆에 세워둔 자전거 바퀴에 엉켜 있었다. 엉킨 줄 때문에 강아지가 잘 움직이지 못하는 듯해서 내가 엉킨 줄을 풀어주었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여 그만두었다. 강아지를 남겨두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강아지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줄에 묶여 있고, 밥그릇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나는 앉아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여웠다.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어 한번 더 보고 일어섰다.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강아지는 여전히 밥그릇을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이 무척 외로워 보였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그 모습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혼자서 즐거운 듯 장난치던 작은 강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때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난 그렇게 외롭지 않아요. 묶여 있지만 내 옆에는 은행나무, 자전거, 그리고 내 밥그릇이 있으니까요. 저녁 땐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요. 거기엔 작은 아이도 있어요.’

 

내 마음,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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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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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전쟁에 휩싸이고 조금은 평화스럽게 살게 되고 70년쯤 지났나보다. 우리나라는 그것보다 덜 되었다고 해야겠다. 1950년에 또 전쟁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온 세계 사람이 힘들었고 그 안에서 유대인은 더 힘들었던 게 제2차 세계전쟁일 거다. 이렇게 말해도 나는 전쟁을 실제 겪지 않아서 그때 어땠는지 모른다. 그런 책 많이 찾아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 이야기가 나오는 건 왤까.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그것을 잊으면 안 되기는 하겠지. 아직 다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겠다. 그때를 산 사람도 많고 죽은 사람도 많을 거다. 한 사람의 삶은 역사와 함께 흐른다. 역사가 말하는 큰 줄기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줄기를 보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닐까. 나같은 사람은 역사에 묻히겠지만. 소설은 역사의 큰 줄기보다 한 사람의 작은 줄기를 보여준다. 그게 소설일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진짜 일어난 일일 수도 있겠다. 쉰들러 리스트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한 사람이 아주 많은 사람을 구한 일도 있겠지만 단 한 사람을 구한 일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을 보니 그런 일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은 1944년과 1934년에서 1944년이 될 때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1944년이 지금이라고 해야 할까. 그 뒤 1945년 1975년 2014년이 있기는 하다. 이것은 1944년이 지나고 더한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기적도 일어나지만 쓸쓸하기도 하다. 이런 말을 먼저 해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자이 마리로르 르블랑은 박물관에서 자물쇠 장인으로 일하는 아버지하고만 프랑스에서 산다. 남자아이 베르너 페닝은 아버지가 탄광에서 죽고 여동생 유타와 고아원 같은 데서 산다. 마리로르는 프랑스 베르너는 독일에서 산다. 서로 모르고 다른 곳에서 살아도 두 사람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언젠가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1944년 8월 8일에는 두 사람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마리로르는 누군가를 피해 작은할아버지 집 다락방에 베르너는 무너진 호텔 밑에 갇혔다. 베르너는 어떻게 그곳에서 나올 수 있을지, 그것은 2권까지 보아야 알 수 있다. 베르너는 어떻게 마리로르를 알까. 그건 라디오 때문이다.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나자 마리로르 아버지는 마리로르와 작은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박물관장이 맡긴 보석을 가지고. 그게 진짠지 가짠지는 모른다. 앞에서 보석 이야기 나왔을 때 그런 게 있는가보다 했는데. 그 전설을 믿고 보석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보석은 불꽃 바다라는 것으로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죽지 않지만 둘레에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 보석을 찾는 사람은 암에 걸려서 괴로운 사람이다. 그게 있으면 자기 병이 나으리라고 믿었다. 마리로르는 1944년 8월 8일에 그 사람을 피해서 작은할아버지 집 다락방에 올라간 거다. 마리로르 아버지는 작은할아버지 집과 둘레를 모형으로 만들기 위해 측정을 한 것뿐인데 끌려가고 만다. 몇번 편지가 오지만 그 뒤 소식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때 실제 그런 사람 많았을 것 같다.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서 죽은 사람. 마리로르 아버지는 돌아오기 위해 애썼을 것 같은데. 마리로르가 집에 혼자 있어서 작은할아버지와 거기에서 일하는 아줌마는 어떻게 됐나 했다. 그런 걸 먼저 보여주고 나중에 왜 그렇게 됐는지 나오다니. 글은 시간대로 쓰고 편집할 때 섞었을까.

 

베르너 페닝은 어렸을 때 라디오를 주워서 그것을 고치고 프랑스 방송을 듣는다. 단파 라디오여서 다른 나라 방송이 잡힌 거다. 이거 보니 나도 그런 라디오 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베르너는 혼자 《역학의 원리》라는 책으로 전기 공부를 했다. 새벽에 듣는 프랑스 방송 때문이었을지도. 베르너는 라디오 수리공으로 알려지고 그 재능을 눈여겨 본 군인 때문에 학교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그곳은 군사학교인 듯하다. 남자아이들만 있는 학교에서는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일어난다고 하는데, 전쟁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남자아이들은 잔인하고 하라고 하면 했다. 베르너와 친한 친구 프레데리크는 달랐다. 프레데리크는 아이들 표적이 되고 머리를 다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새를 좋아하는 프레데리크는 이제 없다. 베르너는 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했다. 얼마 뒤 학교에서는 베르너를 전쟁터로 보낸다. 베르너는 누군가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을 잡아내고 그 사람들을 찾아냈다. 그런 게 전쟁에서 중요한 일을 했을까. 시간이 흐르고 베르너는 프랑스 생말로에서 어렸을 때 동생과 함께 들은 라디오 방송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그리 길지 않은 방송이다. 베르너는 그 방송을 내보내는 집도 알고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도 본다. 방송을 내보내는 곳을 알아내는 공식이 있는가보다. 베르너는 다른 사람한테 그 집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호텔이 무너지고 그 안에 갇혔을 때 베르너는 라디오에서 <해저 2만 리>를 읽는 여자아이 목소리를 듣는다. 여자아이는 구해달라는 말도 한다.

 

감동스러운 건 서로 몰랐던 둘이 만나고 한 사람을 구하는 거다. 거기에는 라디오가 있었다. 누가 그것을 들을지 알 수 없을 텐데. 작은할아버지가 내보낸 사람들 소식도 누군가 들었겠지. 이 소설은 다른 소설과 좀 다르게 보인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좀 다르다는 말밖에 못하겠다. 이런 것도 한번쯤 보면 괜찮겠지. 자주 보는 건 좀 어려울지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습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그것보다 다른 것을 더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누군가를 돕는 일. 모르겠다.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갈 수 있을지.

 

 

 

*더하는 말

 

이 소설을 아주 좋게 본 사람도 있는가 하면, 별로다 하는 사람도 있다. 난 아주 좋다보다 괜찮네 정도라고 해야겠다(처음에 중간쯤 된다고 했다 바꿨다. 중간보다 조금 위일지도). 이야기보다 다른 것도 잘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전히 그게 어렵다. 쓰는 것도 줄거리 정리가 되었으니까. 이렇게라도 기억하고 싶어서(저렇게라도 써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한 사람을 구한 일은 멋지게 보인다. 베르너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돕지 못한 친구 프레데리크 때문은 아닐까 싶다. 베르너 동생 유타는 어린데도 생각을 깊게 했다. 어리다 해도 제대로 생각할 수 있고, 그때 그런 아이 있었겠지. 감동받은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그다지 많이 못 봤을 뿐, 세계전쟁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을 거다. 작가는 그런 것과 다르게 써야 한다 생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난 이 책을 보면서 영상으로 만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보석을 찾는 남자를 피해 다락방으로 올라간 마리로르가 어떻게 될지 보는 건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끝까지 봐야 한다 할지도. 앞에서 그 일을 말하다니, 중요한 건데. 그걸 알고 본다 해도 감동 받을 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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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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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0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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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내가 쓴 것을 읽어보니 제목으로 쓴 말이 있다. 그때 그런 마음으로 썼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왜 저렇게 썼을까 싶다. 다른 생각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때 기분이 아주아주 안 좋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기 기분을 이런 데 풀면 안 되는데. 늘 쓰지 않아야지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 건 일기장에나 써야 하는데, 날마다는 아니지만 이게 일기처럼 되었기 때문일지도. 밑에는 지금과 맞지 않는 것도 썼다. 그것도 피하고 싶었던 건데, 본래는 이걸 십일월에 올리려고 했다. 그걸 쓰면서도 그 생각을 하고 괜찮겠지 했다. 지금은 십이월이다. 올해 마지막 달이다. 올해도 여러 쪽 책을 보려고 했지만, 계획하고 책을 보기보다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 여전히 그러고 있다니, 여전히 쓰는 것도 비슷하고. 얼마전에는 쓰는 걸 바꾸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별로 애쓰지 않아서일지도. 어떻게 하는 게 애쓰는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책을 읽고 알아야 할지, 좀더 시간을 들여서 생각을 해야 할지. 책을 보면 빨리 쓰고 다른 책 보고 싶어서. 잘 못 써도 그렇게 빨리 못 쓴다. ‘쓰기 싫다’는 마음과 늘 싸우지만, 결국 쓰고 나서 ‘이렇게 쓸 거였는데 왜 그랬을까’ 한다. 책 읽고 안 써도 상관없는데, 언제쯤 책을 읽으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떠오를까. 앞으로도 조금이라도 떠오르는 걸 쓸 수밖에 없겠다. 그전에 책을 즐겁게 봐야 할 텐데. 어떤 책 보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기대한다. 기대를 자주 배신당해서, 아니 내가 책을 제대로 못 읽어서 그렇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겸손하지 않아설까, 경험이 별로 없어설까, 아는 게 없어설까. 경험이나 아는 것은 그다지 상관없을 것 같다.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으니까. 보르헤스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고, 책에 마음을 맞추려 한다고 했다. 책에 마음 맞추기, 그 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잊었구나. 책에 마음을 맞추는 건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 마음을 맞추는 건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니시우라 애쓰고 있지만

 

  크게 휘두르며 25

  히구치 아사

  講談社  2015년 08월 21일

 

 

 

 

 

 

 

 

 

 

 

 

 

 

 

 

책을 봤는데 시작할 말은 떠오르지 않고 잠깐, 아니 좀 오래 헤맸다. 그래도 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 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좋겠구나 하는 게 생각났다. 나는 자주 아픈 일 없다, 아직은. 다시 생각하니 꽤 오랫동안 조금 안 좋은 곳이 있기는 하다. 잠 잘못 자서 안 좋아진 것 같은 어깨가 여전하다. 나는 그렇게 힘든 일 안 해서 어깨 아플 일 없다. 컴퓨터 쓰다보면 아프기도 하지만, 그렇게 아픈 것(이건 어깨 근육이 뭉치는 건가)하고 조금 다르고 한쪽이 편하지 않다. 팔이 올라가지 않는 일은 없다. 좀 나을 때도 있었다. 나아지다가 다시 안 좋아지기도 했다. 잠자리가 편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 만화 본 지도 몇해 됐는데. 그게 부럽다는 거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생각하니. 나이를 먹고 건강이 나쁜 건 자신이 관리를 잘 못해서기도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건강은 건강할 때 잘 지켜야 한다. 평소에 마음을 쓰면 나이를 먹어도 아주 안 좋아지지 않겠지. 나이를 먹으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지만.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할 말 없는가보다.

 

자신이 아파도 기분 안 좋지만 가까운 사람이 아픈 것도 기분 좋은 일 아니다. 자기 건강은 스스로 잘 지키면 좋을 텐데. 나는 이런 생각밖에 못하는구나. 좋은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그것보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가고 나아지면 좋을 텐데(이것을 여기에 쓸 때쯤에는 시간이 흘러서 지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꼭 그럴 거다. 왜 이런 말 썼을까 하겠지). 운동은 오래 연습하면 더 잘하겠지. 지금 야구하기 좋을 때다(책 보고 썼을 때는 좋을 때였는데, 이것을 생각 못하고 쓰다니). 그러고 보니 가을 현대회 하는 거구나. 니시우라 아이들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고 1학년이 새로 들어오면 투수 늘어날까. 니시우라 투수로 경기에 나가는 건 미하시지만 두 사람 더 연습은 해두었다. 다른 둘은 경기에 나갈 만큼 되지 않는 듯하다. 미하시가 무너지면 니시우라는 그걸로 끝이다 했다. 그런 거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미하시는 공 던지지 않는 것보다 던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투수는 그래야 하는 거겠지. 야구는 투수만 잘하면 안 되는구나. 이 만화에서는 그런 걸 잘 보여준다.

 

니시우라는 사이타마 현에서 야구 잘하는 학교 센다와 경기를 시작했다. 2회말까지 니시우라가 3점을 넣었는데, 센다는 3회초에 3점을 넣어서 동점이 되었다. 지난번에 3회말 하다가 끝났다. 투아웃이었는지, 하나이가 루에 나가고 타지마가 칠 차례가 왔다. 지금까지 타지마는 다쳤을 때 빼고 거의 4번 타자였다. 센다와 경기하는 지금은 하나이가 4번 타자다. 감독은 여러가지 생각하고 하나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도 공 치는 차례 많이 바꾸었다. 그렇다 해도 4번 타자는 특별하겠지. 하나이는 잘 했다. 타지마는 타자 자리에 서면 공 치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하나이를 마음 썼다. 잘해도 그렇게 헤매기도 하는구나. 모모 감독은 그런 모습 보고 잘됐다 생각하기도. 경쟁할 상대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은 거겠지. 어떤 것을 아주 잘하는 사람은 자기 상대가 될 사람이 없다 여기고 그것을 그렇게 즐기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얕잡아 보기도 했다. 니시우라는 4회말에 사카에구치가 루에 나가고 미즈타니가 번트를 해내고 아베가 뜻밖의 공을 쳐서 사카에구치가 홈에 들어왔다. 니시우라는 1점 올라가서 4점이 되었다. 그 뒤로도 점수 더 넣었다면 좋았을 텐데. 5회말에 점수 낼 기회가 있었는데, 타지마 때 트리플 아웃이 되었다(이때 감독이 주자한테 히트 앤드 런 사인을 보냈다. 히트 앤드 런은 상대 투수가 공을 던지면 주자가 바로 다음 루로 달리는 거다. 타지마는 공을 굴리지 못하고 띄웠다). 센다가 안 좋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다가 니시우라가 트리플 아웃을 당하다니.

 

센다를 상대로 니시우라가 잘 했는데, 미하시한테 조금 문제가 생겼다. 공을 던져서 아웃시키기는 했지만, 아베는 미하시가 던지는 공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4회초 끝날 때는 가볍게 넘어지기도. 예전에 아베가 다치고 다른 아이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미하시가 어떨까 하고는 포수자리에 앉아서 공 받아보면 알 텐데 했다. 투수와 포수는 공을 던지고 받는 걸로 서로를 아는구나. 미하시가 왜 이상해졌느냐 하면 공 던지는 자세를 바꾸려했기 때문이다. 아베는 미하시한테 혼자 연습하지 마라 했는데, 미하시가 그 말을 지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금씩 책 보고 고치거나 다른 사람 따라해도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꽤 다른 듯한가보다. 미하시는 시간을 들여서 연습하면 익숙해지리라 여겼는데 시간이 모자랐을까. 미하시 하면 9분할 제구력인데 제구력이 떨어졌다. 6회초에서 센다한테 1점을 내주었다. 6회초부터 센다가 달라지기도 했다. 니시우라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잠깐 공 던지기 연습한다고 잘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미하시 혼자가 아니고 아베와 함께 하는 거니까 괜찮겠지. 지금 위기를 잘 넘기면 좋을 텐데. 다쳐서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니 다행이다 여겨야 한다.

 

타지마가 하나이를 마음 써서 집중 못하게 됐다고 했는데, 오키도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연습했는데 공 못 치다니 하고, 똑같이 연습하면 안 되는구나 했다. 그러면 연습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잘 하고 싶어도 경기할 때는 긴장하기도 하겠지. 타지마는 경기하기 전날 밤 신발 끈 구명을 세면 괜찮다고 했다. 경기 때는 그것을 안 해봤는데 이번에 했다(긴장한 거겠지). 다음에는 타지마가 공 잘 치기를 바란다. 타지마 앞인 하나이도, 하나이와 타지마가 잘 하면 다른 아이들로 이어서 루에 나가겠지. 26권 언제 나올까. 다음권에서 경기 끝날지도 모르겠다. 니시우라가 이기는 거 보고 싶은데. 동점이니 먼저 점수 더 내주지 않고 6회초 끝내야겠다. 센다가 야구 잘한다 해도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6권은 이달에 나온다.)

 

 

 

 

 

라디오를 끌까 하다가 그대로 뒀더니 노래가 나왔다. 아는 노랜데 노래하는 사람은 이적이잖아 하고, 언제 저런 노래 했지 했다. 노래가 끝난 뒤 본래 들국화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걸 알았다. 라디오 방송에서 한번, 아니 여러번 들어본 적 있을 거다. 그때는 지나가면서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다니. 노래를 이적이 했기 때문일지도. 그날 여러 사람 노래를 들었다. 찾아본 건 이것 뿐이다. 이 노래 여러 번 듣다보니,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뜻이 있죠’ 하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노래는 뜻이 아닌 의미라고 한다. 이 음악을 찾은 곳에서 1988년 대학가요제 때 무한궤도가 하는 <그대에게> 영상도 보았다. 그렇게 오래전 것이 있다니. 그거 듣고 늘 듣던 음과 다른 곳이 있다는 거 알았다. 본래는 그랬는데 나중에 녹음할 때 바꿨나보다.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그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다니. 대학가요제에 나왔을 때 노래한 건 한번, 아니 두번뿐이니까. 자주 보는 건 아닌데, 그곳은 노래 영상을 보다보면 줄줄이 이어서 나온다. 인터넷이라는 곳이 본래 그렇지만. 다른 노래도 보여서 조금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노래를 듣고 위로받은 적은 없다. 어느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위로받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경험은 없다 해도 노래 좋아했다. 지금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많이 듣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걸 듣는다. 내가 무언가를 걱정할 때 이적이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를 들었다면 위로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어쩌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노래, 음악은 꼭 그럴 때만 듣는 건 아니기도 하다. 좋아서 들으면 되는 거다. 얼마전에 일본 드라마 <오모테산도 고등학교 합창부>를 보았는데 재미있었다. 한편 한편에 노래와 함께 그 노래에 얽힌 이야기가 나왔다. 합창이라 하지만 남녀 중창에 가깝다(사람이 적어도 다함께 하는 거니 합창이라 해야 할지도. 잘 모르면서 이런 말을). 그렇게 노래하는 거 좋아하고 노래하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은 여러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서는 음악, 노래로 사람이 이어졌다고 말한다. 책 이야기가 나오는 곳에서는 책으로 이어지고, 이것 말고 더 있을 텐데. 드라마 <오모테산도 고등학교 합창부>에서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목소리로도 이것저것 알 수 있겠지. 지금까지 그런 거 생각하고 들은 적 없는데, 갑자기 이적 목소리는 올곧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내 느낌일 뿐이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다른 사람 목소리도 그렇다고 말할 것 같다. 딱 맞게 떠오르는 말이 없다니. 나는 그런 걸 잘 나타내지 못하겠다. 아는 말이 적어서 그런가보다. 드라마 마지막은 뮤지컬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냥 듣지만, 누군가는 어느 날 이 노래를 듣고 위로받으면 좋겠다.

 

 

 

희선

 

 

 

 

 

걱정말아요 그대 -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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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8 0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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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9 0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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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선   마음산책  2015년 10월 20일

 

 

 

책 제목을 봤을 때 이 책은 무슨 책일까 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긴지 무라카미 하루키와 관계있는 산문인지, 소설인지. 이 책에서 가장 처음 본 건 맨 앞이 아닌 마지막에 나온 참고자료예요. 거기에는 일본말로 된 책과 영어로 된 책이 있어서 임경선은 일본말뿐 아니라 영어도 잘하는가 보다 하고 부러워했지요. 아직 읽지 않았는데, 지난해에 임경선 소설 《기억해줘》가 나왔을 때 제가 아는 그 사람인가 했습니다. 몇해 전에 임경선은 캣우먼이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연애상담을 했습니다. 그때 뭐하는 사람인지 확실히 몰랐고 연애하고 연이 없어서 방송도 거의 안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어서 이름은 기억했네요.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연애이야기 하던 사람이 소설을 써서 조금 놀랐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다면 본래부터 글을 썼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말했을 텐데 제가 듣고 잊어버린 건지도(제목에 캣우먼이 들어간 책이 있고 그동안 책 많이 냈네요). 이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데 말했군요. 이름 알고 있었다는 거 말하고 싶어서였어요.

 

여기에는 거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임경선은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아서 일본말을 먼저 배웠더군요. 부모님이 무슨 일을 했는지, 일본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여기저기 자주 옮겨다녀도 힘들 텐데, 다른 나라를 옮겨다니는 건 더 힘들었겠습니다. 그때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그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과 여러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본말과 영어를 잘 알잖아요. 어릴 때는 부모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지요. 부모와 떨어져서 한곳에서 살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상처가 됐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힘들다 해도 어릴 때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게 낫겠지요. 임경선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노르웨이 숲》을 만났답니다. 그때는 다시 일본에서 살아서 그랬겠네요. 이런 말 또 하는데 저는 어릴 때 책 거의 안 봤습니다. 책이 없기도 했고 둘레에 책을 즐겨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학교다닐 때 좋아한 건 노랫말 적기였네요. 저는 고등학교 나온 다음에야 책을 봤는데 잘 못 봤습니다. 몇해 전까지도, 지금도 ‘문장이 아름답다’ 이 말 잘 모릅니다(여러 번 말하는군요). 시간이 흘렀으니 아주 조금 알아도 좋을 텐데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언제쯤 알 수 있을지.

 

이것도 처음 하는 말 아닌데, 저는 아주 좋아하는 책도 작가도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좋아한다는 건, 그 작가를 아주 좋아해서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읽어본 책도 다시 읽는 것을 말합니다. 그냥 괜찮다 생각하고 보는 작가는 많습니다(좋게 생각하는 작가가 많다 해야겠네요. 이 말이 더 좋겠지요. 이것도 좋아하는 것에 들어가겠습니다). 하루키도 그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그래도 하루키는 하나 특별한 게 있습니다. 일본 작가 가운데서 가장 처음 안 사람이라는 거예요. 예전에 저는 하루키와 다른 일본 작가가 비슷하다고 여긴 듯합니다. 하루키가 처음 소설을 썼을 때는 하루키와 비슷한 작가는 일본에 별로 없었겠네요. 지금은 하루키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작가가 되었네요.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하잖아요. 하루키는 미국에서 지낼 때 자기 소설을 내 줄 곳을 스스로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하루키 자기 소설에 자신 있었군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중학생 때부터 영어 소설을 읽고 고등학생이 되고는 영어를 일본말로 옮겼습니다. 하루키는 번역하는 소설가지요.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는 것은 취미라고 했네요. 그게 소설 쓰는 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하는 거겠지요. 하루키는 1984년에 딱 한번 만난 레이먼드 카버 소설을 모두 일본말로 옮겼습니다. 레이먼드 카버가 건강했다면 일본에도 갔을 텐데요. 레이먼드 카버를 일본에 알린 건 하루키예요. 그 일은 자기 소설이 잘된 것만큼 기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루키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건 알았는데 부모가 모두 선생님이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읽은 적 있는데 잊어버린 건지도. 아니 하루키는 부모님 이야기 한 적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루키는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쩌다 가끔 역사책을 보는데. 한 나라가 지나온 이야기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재미있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겠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재미없어서. 역사를 좋아하고 잘 알아서 하루키는 대학에서 아내 무라카미(다카하시) 요코를 만났습니다. 하루키 아내 이야기도 거의 몰랐습니다. 하루키가 《먼 북소리》에서 말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길지 않았네요. 하루키와 요코는 대학생 때 결혼했군요. 결혼하면 남자는 가장이라는 마음이 커서 부담이 될까요. 하루키는 학교를 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세해가 지난 뒤 재즈 카페를 열었습니다. 하루키가 음악 좋아하는 건 많은 사람이 알겠네요. 카페 이름은 ‘피터 캣’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문단 사람을 보기도 하고, 하루키 책 그림을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도 만났습니다. 예전에 《잡문집》에서 그 이야기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몰랐는데 안자이 미즈마루는 2014년 3월에 일하다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더군요. 하루키 마음이 참 아팠을 듯합니다. 오래 사귄 친구가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재즈 카페를 하던 때 하루키는 야구장에 자주 갔습니다. 1978년 4월에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소설을 한번 써 보자 생각했습니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고 많이 고치는군요. 고치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 이상해 보이는 말만 고치거든요. 일하면서 밤마다 쓴 소설이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고 하루키는 소설가가 됐습니다. 《노르웨이 숲》은 하루키가 작가가 되고 십년째에 나온 거더군요. 그게 일본에서 잘 팔려서 좋기도 했지만 안 좋은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좋은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안 좋은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돈은 생겼지만 친구를 잃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 돈 때문에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었네요. 《먼 북소리》에는 마흔이 되기 전에 일본이 아닌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고 썼는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군요. 지금 생각났는데 다른 나라에 가서 산 건 《노르웨이 숲》을 쓰기 전이군요. 그 책이 나온 다음에 다시 간 거겠네요. 그때는 미국이었나. 이름이 잘 알려지는 거 그리 좋은 일은 아니겠지요. 소설가는 소설만 보아야 할 텐데. 그때 하루키 아내 요코가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것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해야겠군요. 하루키가 다시 일본 사람을 생각한 건 고베 큰지진과 사린가스 사건 때문입니다. 사린가스 사건 피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언더그라운드》로 내고, 옴 진리교 신자를 만난 이야기는 《약속된 곳(장소)에서》로 냈군요. 그게 소설로 이어지기도 했네요. 소설이 사람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바뀌게 하면 그것만으로 좋은 거겠지요. 하루키가 그것을 바라고 쓰는 건 아니고 큰 아픔을 지나는 사람 이야기를 쓴다고 하네요. 힘든 일은 사람을 한층 자라게 하지요. 자라지 않는다 해도 아주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겠지요.

 

운동 이야기 하니까 저는 걷기라도 꾸준히 할까 했습니다. 달리기는 힘드니까요. 어디든 걸어다니는데 날마다가 아니고 한주에 두세번이에요. 두세번은 많은 거군요. 거의 한두번입니다. 좀더 걸어야겠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못하고. 저는 밤에 밖에 돌아다니는 건 싫어하지만, 밤에 깨어있는 건 좋아합니다. 하루키처럼 아침형 사람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다 자기한테 맞게 좋아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저는 게으르군요. 게을러서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그러고 보니 하루키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달리기를 한 건 소설가가 되고 난 뒤군요. 이 책에는 하루키가 쓴 책에서 본 것도 있고 처음 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경선이 하루키를 아주 좋아해서 이만큼 쓴 거겠지요. 좋아하고 힘도 얻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거 부럽습니다. 임경선이 좋아한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한번 보고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하루키 소설 몇 편 봤는데 이것은 아직 못 봤습니다. 할 수 있다면 일본말로 보고 싶습니다. 하루키가 영어를 일본말로 옮겼다고 하니, 저는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겨보고 싶더군요. 전에 조금씩 해야겠다 했는데 거의 안 했습니다. 하다보면 막혀서, 끈기가 없네요.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제가 느낀 건 그 일 전문으로 하는 사람 대단하다는 겁니다. 하루키는 취미로 생각한다지만 잘 아니까 하는 거겠지요. 하루키는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면서 작가가 그것을 쉽게 썼는지 힘들게 썼는지 안다고 하더군요. 저도 작가 마음 알고 싶네요. 그것도 많이 해봐야 알겠습니다.

 

하루키는 성실하게 글을 씁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람마다 자신한테 맞는 게 있는 거죠. 하지만 저도 조금 성실해지도록 해야겠네요. 약속한 일은 아니지만, 저와 한 약속 잘 지켜야겠습니다. 이게 더 편하죠. ‘삶은 지는 경기’ 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잖아요. 자기 자신으로 잘 버티고 사는 게 좋겠지요. 자신이 어떻든 좋아하면 좋을 텐데, 저는 그게 어렵네요.

 

 

 

희선

 

 

 

 

☆―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을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야깃거리는 내 안 깊은 곳에 있기에 그곳까지 우물을 파고들어가듯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곳은 매우 어두운 곳이지요. 하지만 제가 좀 더 깊게 파고들어갈수록, 그리고 더 오랜 시간 그 깊은 곳에 머물수록 제 소설은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작품을 쓸 때마다 한층 더 깊은 곳에 들어가려고 애씁니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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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역사가 조금 나오기도 한다. 덧붙이는 말(주)이 꽤 긴 것도 있다. 본문보다 그게 더 길 때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오게 된 흑인 이야기(이것만 말하다니). 그렇다고 아주 자세한 건 아니다. 거기에 관심 있다면 여기에서 소개하는 책을 봐도 괜찮겠다. 나는 그냥 넘어갔지만. 한번 보면 괜찮겠다 생각한 게 있었는데.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 두번째는 넓지 않다. 우리나라 대중음악만 다루고 거기에 담긴 여성을 말하니까. 여성이라고 했지만 여성만 말하는 건 아니다. 이 말 밑에도 쓴 것 같다.

 

 

 

 

 

음악으로 말하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돌베개  2015년 06월 29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게 음악이 아닐까 싶다. 노랫말이 있는 건 어렵다 해도 그 안에 담긴 느낌은 조금 알 수 있겠지. 그렇기는 해도 나도 우리나라 노래를 더 많이 듣기는 했다. 내가 아는 다른 나라 음악 얼마 없다. 라디오 방송(음악캠프)은 오래 들었는데, 음악은 외워도 제목은 잘 외우지 않았다(지금도). 라디오 듣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관심 갖고 CD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CD 산 지도 오래되었다. 한동안은 일본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넓게 들은 건 아니고 듣는 것만 들었다. 아직도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말로 하는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전에 한번인가 들은 적 있는데. 왜 이 말로 흘렀을까. 다른 책에서 일본 문화 개방이 나온 걸 봐서 그럴지도. 그거 보고 그런 일도 있었지 했다. 이 책 마지막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나온 노래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 이야기를 한다. 이것도 조금 영향이 있는 거겠지. 지금은 텔레비전 안 봐서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모른다. 어느 때부턴가 아이돌 음악만 나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전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오래 가는구나.

 

이 책을 쓴 강헌은 대중음악 평론가다. 그런 말 본 것 같기도 한데. 책은 이게 처음이라고 한다. 잡지 같은 데도 글쓰지 않았을까. 그런 건 썼을 것 같은데. 책 제목을 보고 음악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나도 책 제목 처음 봤을 때 무슨 책일까 했다. 음악과 함께 역사를 말한다. 긴 역사는 아니고 어떤 음악이 나온 배경이라고 할까. 그것을 참 자세하게 썼다(이건 주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이런 건 볼 때는 재미있는데 정리하는 건 어렵다. 여러 번 보고 익숙해지면 모를까. 내가 책 한권을 여러 번 본 적 있던가, 없다. 미국 재즈에서 로큰롤, 우리나라 통기타 음악과 밴드 음악, 클래식에서 이름을 남긴 모차르트 베토벤,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의 음모. 트럼펫을 연주하고 노래를 해서 많은 사람이 좋아한 루이 암스트롱,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 나온 노래가 루이 암스트롱 노래던가. 재즈는 규칙이 없는 음악이다. 재즈가 미국에서 널리 퍼진 건 30년 동안이고 그 뒤에는 예술로 흘러갔다. 미국에 중산층이 나타나고 아이들 세상은 지옥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공부해야 한다고 했겠지. 이때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와서 어른 세계를 무너뜨렸다. 그 뒤에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나왔다. 비틀스는 처음에 어른 마음에 들게 하려고 옷을 얌전하게 입었다. 롤링 스톤스는 비틀스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불량스럽게 나왔다. 비틀스가 언제까지고 모범생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본성을 드러냈다. 매니저가 죽고는 비틀스는 흩어졌다. 매니저가 약물에 중독되지 않고 살았다면 비틀스 음악은 더 나왔을까.

 

맨 처음에 말하는 건 흑인이 하는 음악을 백인이 좋아하고 나중에는 백인이 하는 건데. 이런 말을 안 하다니. 미국에서 저항 음악이 로큰롤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통기타 음악이었다. 로큰롤은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게 됐다는 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번안곡을 많이 했다. 1969년에 한대수가 나타나고 그 뒤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곡을 썼다. 김민기가 만든 <아침이슬>을 양희은이 불렀다. 김민기는 다른 생각없이 만들었는데 <아침이슬>은 운동권 노래가 되었다. 지금도 어떤 노래든 다 방송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검열이 더 심했다. 이건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져온 거였다. 그럴 수가. 박정희는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노랫말도 써서 그것을 퍼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게 보이지만 그게 우리나라 사람한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가 친일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건 이승만과 박정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신중현이다. 신중현은 미8군 부대에서 음악을 했다. 록밴드를 했는데 그게 잘 안 되고 다른 사람한테 준 음악이 잘 되었다. 밴드로 한 음악 가운데 잘된 거 있다. <미인>이다. 강헌은 이 <미인>을 우리나라 사람이 왜 좋아하는지 재미있게 분석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야기도 재미있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샘한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니. 음악 만들고 지금도 이름이 알려져 있어서 나름대로 잘 살지 않았을까 했는데,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모차르트가 더 힘들었다. 모차르트보다 열네해 늦게 태어난 베토벤은 좀 나았다. 베토벤은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 힘들었다. 베토벤 성격이 별로 안 좋았다니.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맞아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귀족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반감을 가졌다. 베토벤은 귀족만 듣는 음악이 아닌 곡을 썼다. 이렇게밖에 못 쓰다니. 나도 조선이 근대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일본 때문에 그게 잘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명성황후는 일본한테 죽임 당했다고만 생각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청나라를 부른 게 조선정부라고만 알았는데 그게 명성황후였다는 말이 나온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와서 일본에서 군대를 조선에 보냈다. 힘을 가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익보다 먼저 백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잠깐 들었다. 그런데 그게 누군가 꾸민 일이라니.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죽기로 했다는 말을 보고, 아내가 있다고 다른 여자와 죽는 사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는 그런 게 퍼지기도 했다지만. 정말 축음기를 팔기 위해 그 일을 꾸몄을까. 그때 축음기는 일본 정부가 만들었다고 한다. <목포의 눈물>에 담긴 건, 일본 지배를 받고 서른해가 지나서 나온 노래로 우리나라 사람한테 엔카를 익숙하게 만든 거다. 트로트가 엔카에서 온 게 아니다 말하기도 한다는 말을 보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니까. 일제강점기 때 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거 많을 것 같다.

 

 

 

*더하는 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글을 다른 데서 조금 봤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듯한 느낌이다. 청나라 군대는 일본 군대와 싸운 건가. 일본과 청이 조선을 두고 싸운 것이 청일전쟁이구나. 일본과 조선 관군은 농민과 싸우고. 동학농민혁명은 기억하지만 자세한 건 모른다. 농민만이 아니고 다른 계층 사람도 함께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기도 하다(동학을 한 사람은 농민이 아니었을지도). 농민한테 관심을 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농민은 이 땅을 살아가는 백성인데.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바뀌고

 

 

  이영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4년 12월 31일

 

 

 

 

 

 

 

 

 

 

 

 

 

대중음악은 언제부터 생겼다고 해야 할까. 서양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건 높은 사람뿐이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그랬지만 그 음악을 하는 사람은 낮잡아 보았다. 그래도 서양은 잘 하면 잘되기도 했다고 한다. 대중음악은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때 생겨났다고 해야겠지. 그렇다고 서민이 음악을 아주 몰랐던 건 아닐 거다. 그건 지역마다 달랐겠지(이때 생각한 건 민요, 풍물놀이가 있다는 건 나중에 생각났다). 음악은 널리 퍼지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조금씩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이야기도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 조금씩 바뀌는데(지금은 정보 전달이 쉬워서 다르겠다). 이 책 제목에 ‘대중가요’라는 말이 있는 걸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책보다 먼저 본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때문에 ‘가요’라는 말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먼저 본 게 나았는지 낫지 않았는지. 거기에서 가요 대신 어떤 말을 쓰면 괜찮은지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대중음악이었는지, 유행가였는지. 가요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이 ‘국민가요’라는 말을 쓰고 여기에서 국민만 빼고 가요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 하니 국민학교가 생각난다. 일본은 소학교라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민학교라고 하다니. 우리도 소학교라고 한 때가 있었을지도. 국민학교는 이제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것들을 그대로 쓰는 거 많겠지. 가요는 바뀌기 어려울지도.

 

축음기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을 때 기생 두 사람이 <희망가>를 노래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첫번째라 할 수 있는 건 윤심덕의 <사의 찬미>다. 대중음악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여성인데. 일본 엔카가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가 되고 그 첫번째가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음반극이라는 것도 나왔는데 거기에 나온 여성은 기생일 때가 많았다. 음반극이라는 말을 보니, 이제 우리나라에는 나오지 않지만 일본에는 그것과 비슷한 게 아직도 나온다는 게 생각났다. 오디오북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본에서는 만화나 소설을 성우가 연기한 CD를 내기도 한다. 그것은 음반극이 그렇게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일본에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 있어서 만드는 건지도. 우리나라에도 성우가 연기한 CD 나올까(우리나라 연기자 백 사람이 우리 단편소설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건 CD로 나왔을까. 책을 그냥 읽는 게 아니고 연기한다). 내가 잘 모르는 것뿐일지도. 그때 기생인 사람이 많아서 기생이 나온 건 아니고 신파성을 나타내기에 기생을 쓰는 게 쉬웠기 때문이다. 서양문물은 일본을 지나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게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보고 느꼈다. 영어도 일본말식으로 알았다. 그때 우라나라 사람이 공부하러 간 곳이 일본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겠다.

 

대중음악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만 말하지 않고 그때 사회가 어땠는지도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기생이 된 사람이 많았던가보다. 일본도 가난이나 빚 때문에 딸을 기생(게이샤)으로 팔 때 많았는데. 그런 일이 일본이나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일어나도 가난해도 여성은 살기 어렵구나. 시간이 흐르고 공부를 한 신여성이 나타나 여성은 경리, 마네킹 걸, 전화교환수를 하게 되었다. 교사, 간호사도 있었겠지만 노래에는 나오지 않았구나. 그전까지 여성은 떠나가는 남성을 보고 울기만 하고 자기 마음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여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다는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그것을 제대로 정리도 하지 못했는데 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일제강점기 때 노래를 조금 바꿔서 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과 6·25를 헷갈려하는 사람도 있단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남편이 죽은 여자가 많았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아이를 키우고 살기 위해 양공주가 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가정의 경영자로서 현모양처를 바랐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1960년대까지 남성이 바라는 여성이 노래에 담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것도 있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바라는지 그것을 잘 잡아내서 썼겠지. 1970년대에는 순수한 여성을 바랐다. 백치미라고 할까. 그런데 청바지와 긴 생머리거나 짧은 머리를 한 여성도 나타났다. 이 여성은 남성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첫세대였다. 1970년대에는 어머니한테 느끼는 죄책감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 뒤에도 어머니한테 잘못했다고 한 노래 있는 것 같은데. 1970년대에는 많은 사람이 서울로 갔다. 거기에는 여성도 많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서울에 가면 모두 부자가 된다 생각했을지도. 이건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공장에서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했다. 우리나라가 좀 잘사는 사라에 들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은 일 많이 한다. 일이 좋아서 많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1970년대 대중음악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겠지. 민중음악이라고 할까 그런 게 생겨난 건 1970년대일까. 1980년대는 남자가 여린 감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90~2000년대에는 또 바뀐다. 그때는 음반이 잘되게 하려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잡아내서 노래를 만들었다. 음악을 만든 건 남성이고 노래하는 건 여성이었다. 그전에 아주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1990년대에는 음악을 만드는 여성이 나타났다. 여자가 노래한다고 여자 마음이고 남자가 노래한다고 남자 마음일까. 엄마 인상도 많이 바뀌었다. 말 잘 듣는 아이보다 반항하는 아이가 나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엄마 관심은 그 아이한테만 쏠릴 거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구나.

 

많은 사람이 듣는 음악에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니 재미있다. 여성뿐 아니라 다른 주제로도 볼 수 있을 거다. 일제강점기를 지날 때는 돈 이야기가 나오고, 1970년대에는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꿈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중음악도 산업화 때문에 많이 바뀌었겠지. 많은 사람이 아는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데서 자기만의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도 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거 찾아서 듣는 거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더하는 말

 

다른 말보다 늘 더하다니, 하지 않아도 될 말일지도 모를 텐데. 이 책 제목 보고는 한번 보면 괜찮겠다 생각하고 봤다. 이 책도 《전복과 반전의 순간》처럼 볼 때는 재미있었다. 연대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그걸 잘 기억하지 못해서 별로 못 썼다. 보기를 하나라도 써야 했는데. 노래도 시대와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따라 바뀌겠지. 한동안 남성이 바라는 여성을 노래에 많이 담았다. 지금은 음악이나 노랫말을 쓰는 여성이 늘어나서 좀 달라졌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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