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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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새로 나오는 책을 다 만나지 못하지만 우연히 어떤 책이 나오는지 보기도 한다. 제목을 보고 마음에 들면 어떤 책일까 조금 관심을 갖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이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몇해 전부터 시를 봐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선지, 많은 사람이 나처럼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선지 시를 말하는 책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얼마 전에도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을 보았다. 그 책과 이 책 좀 다르다. 이 책 제목이 《시의 힘》이어서 그 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이 글을 쓴 서경식이 재일교포라는 것만 알고 다른 건 몰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미술 이야기도 써서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하리라 생각했는지도. 책은 못 봤지만 다른 책 제목은 결코 부드럽지 않은데 왜 그랬을까. 내가 시를 그런 것만 보려 해선지도 모르겠다. 변명한다면 지금은 모두와 함께 싸워야 할 커다란 무엇이 없어서다. 아니 있는데 내가 잘 못 보는 거겠지. 나는 단순하게 살지만 그게 내 삶이다. 지금은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전쟁을 겪고 군사독재정치를 겪었다. 그때를 살고 글을 쓴 사람은 글로 저항하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그런 시인 소설가 많이 배운 것도 같은데. 이상화, 한용운, 윤동주. 이밖에도 더 있겠지. 한용운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이지만 딸이 있었는데 그때 힘들었다고. 이런 이야기는 라디오 방송에서 주워들었다. 일본은 조선 사람이 창씨개명 안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용운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조국이라고 배운 게 떠오른다. 지금은 이 시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 시도 마찬가지겠다. 일본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 시비가 있다는데,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이라 옮겼다 한다. 그랬다니. 비슷한 말이다 여길 수 있지만 뜻을 생각하면 차이가 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은 목숨 있는 건 언젠가 죽기에 불쌍하다는 뜻 아닐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이라 하면 애틋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며칠전에 본 책에서도 윤동주 시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에서도 하다니. 윤동주와 고종사촌 송몽규 두 사람이 함께였지만, 시를 남긴 윤동주가 더 잘 알려졌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는 송몽규 그림자 같다고 한다. 어떤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건 쓸데없다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없어 안타까웠을 테니까.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사람도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 시를 읽은 걸로 안다. 일본에서 자기 나라를 비난하는 글 쓰기 쉽지 않을 텐데. 그때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 않았겠지. 루쉰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의학공부를 하러 갔구나. 몰랐던 거다. 일본말로도 글 잘 쓴다고 말해서, 일본에 공부하러 간 걸 몰랐을 때는 일본말 어떻게 공부했을까 했다. 루쉰 이름은 알지만 잘 모른다.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 루쉰은 글로 사람들을 일깨우려 애썼다고 한 말만 보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게 길어지자 많은 작가가 일본에 좋게 글을 썼다. 그런 일이 그때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로 민주주의를 외친 김지하도 달라졌다. 이렇게 말하지만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른다. 그런 말을 조금 들었을 뿐이다. 내가 시를 보기 시작했을 때 신동엽, 김수영, 신경림, 김지하, 박노해, 최영미, 정희성 시를 보았다. 정희성과 김수영 시집은 못 봤구나. 김수영은 학교 다닐 때 배워서일지도. 김남주도 있는데, 서경식은 김남주는 모르는가보다. 나도 예전에나 사회참여시를 보았지 지금은 잘 안 본다. 최영미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그때 무슨 뜻인지 알고 봤을까. 그때 내가 어떻게 봤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은 알았다고 믿고 싶다. 최영미가 왜 《청동정원》을 썼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소설 읽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생각하는 건 내 생각일 뿐일지도.

 

글을 쓰는 사람은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 틀리지 않지만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할까. 그것을 더 많이 생각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쓰면 안 될까. 이런 말이나 하다니. 내가 글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런 말 때문에 나는 안 되겠구나 한다. 그것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고. 아주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닌데.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 아예 모르는 게 더 큰 죄일지도. 개인이 없이 나라가 있을까. 갑자기 다른 말로 넘어갔다. 서경식은 제국주의가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다. 그건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거 있다. ‘나라를 위해’ 이런 거. 그렇게 된 건 일본한테 지배받은 영향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일본이었고 지금은 한국이 된 거다. 나는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쉽기도 하고 마음 편하기도 하다(어디는 어딜까, 사람은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나는 그런 게 없다는 거다. 한쪽만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어중간해서 더 안 좋아 보일지도). 서경식은 일본에서 조선사람으로 살기 힘들었겠다. 우리나라에 오면 일본 사람이라 본 사람도 있겠지.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안다. 그런 곳에 있기에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기도 하겠지(나는 그렇게 못하지만). 서경식이 교포기 때문에 한국에 좋게 말하는 게 아니고, 객관성을 가지고 일본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나 후쿠시마 사고. 여러가지 생각하면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내가 일본사람이면 어땠을지. 일본 정부 잘못을 비판했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서경식은 개인에서, 나라 그리고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자기 나라 이익만 생각하면 안 된다. 지구에서 사는 사람이라 하는 게 좋겠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 일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전쟁 이야기나 유대인 학살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건 그래서겠지. 그것 말고 우리가 모르는 일도 많을 거다. 글을 쓸 수 없어서 알리지 못한 일도 많겠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시뿐 아니라 글에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남을 속이는 글은 안 되겠지. 서경식하고 처지가 다른 우리는 무엇을 써야 할지. 아픈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척하지 않기,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십년도 더 전에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을 보았는데 서준식이 서경식 형이라는 거 이제야 알았다.

 

 

 

희선

 

 

 

 

☆―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 내가 쓰는 것을 ‘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이런 책을 내려는 까닭은 본문에서 루쉰이 한 말을 빌렸듯, “걸어가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동안은 걷는 수밖에.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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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휴머니스트  2015년 06월 15일

 

 

 

 

 

 

 

 

 

 

 

 

 

학교를 모두 마친 사람이 문학과 멀어지는 건 더는 시험을 안 봐도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먹고 살아야 해서 거기에 마음을 쓸 수 없기도 하겠다. 난 소설이든 시든 고등학교 마치고 더 많이 보았다. 그 전에는 아예 책을 몰랐다. 왜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학교 다닐 때 국어, 문학 시간을 아주 좋아하지 않았다. 주제, 상징, 시점……, 생각나는 게 이것뿐인데 그런 거 공부하는 거 별로였다. 그냥 재미있게 봤다면 좋았을 텐데, 왜 학교에서는 그런 식으로 가르칠까. 답은 정해져 있기도 하다니. 이것 때문에 지금도 책을 보면서 맞는 답을 찾으려는 건지도. 소설이나 시 봤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한 작가 시나 소설은 거의 안 본 것 같다. 학교에서 국어나 문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정해놓은 답이 아니고 자유롭게 생각하게 하면 좋을 텐데. 가르치는 것도 시험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시험이 달라져야겠다.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 식이니. 공부는 대학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가는 거다는 생각이 크다. 그게 사람한테 중요하지만 다는 아닌데.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문화생활을 하겠다. 문화생활에는 영화나 공연뿐 아니고 책도 들어갈까. 요즘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먹고 사는 건 많이 나아진 거겠지. 그래도 여전히 성공이나 행복을 돈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사는 거다 여긴다. 성공도 행복도 사람마다 다른 건데(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성공과는 멀게 산다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한곳만 보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서울로 가는 것처럼. 사람이 많으면 한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건 아주 적다. 아주 작은 거라도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도 있겠지.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생각 안 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몰랐던가보다. 지금도 잘하는 건 없고 좋아하는 것만 있다. 좋아하는 걸 잘하면 좋을 텐데, 좋아하는 걸 하다 잘하는 사람도 많다. 좀 이상한 데로 흘렀다. 공부는 학교 다닐 때만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살아있는 한 해야 하는 거다. 나는 달리 하는 공부는 없지만 책을 보는 걸 공부라 여긴다. 책을 보면 여러가지 배울 수 있다.

 

이 책 보고 공부를 생각한 건 아닌데 학교에서 시를 어떻게 공부했는지 생각하다보니 저런 말이 나왔다. 여러 번 한 말일지도 모르겠는데 책을 보기만 할 때는 소설이든 시든 아무렇지 않게 보았다. 시를 먼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좋아해서. 소설을 보다보니 시는 많이 못 보게 되고, 책을 보고 쓰면서는 시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못 보았다. 시를 보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어쩌면 시를 보고 무언가 쓰는 사람이 부러웠기 때문일지도. 이제는 시를 보고 다 알기 어려워도 그냥 보기로 했다. 보다보면 마음에 남는 시를 만날 테니까. 소설은 재미있는 게 좋은데, 이상하게 시는 조금 슬프거나 쓸쓸한 게 좋다. 소설도 그런 거 싫어하지 않는구나. 예전에 그런 시 많이 봤다. 내 마음이 슬픔이나 쓸쓸함을 더 많이 느꼈던 걸까. 그렇게 안 좋은 어린시절을 보낸 건 아닌데. 삶에는 기쁨뿐 아니라 슬픔도 있기 때문이겠지.

 

여기에서는 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와 영화 노래 소설 사진 그림도 말한다. 강의할 때 사진이나 그림 보여줬을까. 몇번 ‘그게 아닌데, 난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이게 책과 마주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책을 보면서 생각하는 게 책과 마주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좀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데 스치고 지나갈 때가 훨씬 많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하는 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난 이 말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그대로지만 사람 마음이 바뀌는 거다. 무엇인가를 좋아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설레고 기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마음이 줄어든다. 다른 데 마음이 간 것이겠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서로만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거 바라는 사람 많을지 모르고 그런 모습 보는 거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에서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도 남은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을 잊지 않는 것도. 김춘수가 그런 시를 썼다. 자기 아내만 그린 화가도 있다. 유재하는 음반 하나밖에 남기지 못했는데, 그 안에 담긴 음악 모두 한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 난 그런 걸 하고 싶은 건지, 누가 그런 걸 해주기를 바라는 건지. 누가 해주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더 좋은데…….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강우>, 김춘수 (71쪽)

 

 

 

사람은 어떤 때 시를 많이 쓰고 볼까. 시는 언제 보아도 괜찮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시인도 그럴 때 시를 쓴다. 유치환 이야기 언젠가 들었는데 자세한 건 몰랐다. 시인이어서 좋게 꾸민 것도 있으리라고 본다. 유치환 아내는 그런 남편 보는 거 괴로웠겠다. 아내가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시를 쓰고 편지를 스무해 동안 날마다 쓰다니, 이건 대단하다. 유치환을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해서 괴로웠겠다. 박목월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잠시 살다 헤어졌다. 김연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생각난다(그건 다른 사람 이야기지만). 내가 이런 말한 건 그런 마음을 시로 나타내서다. 글은 자기 이야기여도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게 써야 한다. 그런 게 쓰고 싶어서. 시도 시인이나 시를 쓴 배경을 알고 보면 더 많은 걸 느끼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시 자체만 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시를 쓴 사람은 그렇게 하기를 더 바라지 않을까. 시를 보다보면 시인한테 관심이 가고 더 알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이라고 할까, 시와 소설은 그것 자체를 먼저 보아야 한다. 배경은 그다음이다. 이런 생각이어서 내가 작가를 잘 모르는구나. 조금만 알면 어떤가.

 

시, 바로 알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안 보는 것보다 보는 게 좋겠지. 소설과는 다른 맛이 있으니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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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오랜만에 시가 보고 싶어서 고른 게 이 시집이다. 다 제목 《다정한 호칭》 때문이다. 이 시집을 받았을 때 ‘시집이 예전보다 커졌다’고 쓰려 했다. 시집 보기도 전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제목만 보고 고른 시집인데, 알기 쉬운 시나 마음에 드는 시 못 찾았다. 시 한편은 아니어도 마음에 드는 구절은 조금 있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못 썼다. 오랜만에 본 시집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지금 시인은 모두 이렇게 시를 쓰는가 하고 다른 시인 시 못 봤다. 내가 알기 쉬운 시를 봤다면 그 뒤에도 시 만났을지도 모르는데 아쉽다. 나는 잘 모른다 해도 이 시집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몇해 전에 이것을 보고 바로 여러 시를 못 봤지만, 시간이 흐르고 잘 몰라도 보자고 마음먹고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떤 시인은 시를 느끼라고 말하니까. 나와 잘 맞는 게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것도 있는 거겠지. 이 시집 다시 보면 괜찮을까 하고 펼쳤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밝은 것 같기도 하고 어두운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말은 어떤 것을 보든 할 수 있겠다. 자연을 바라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전에 다른 시집을 보고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할까 하는 말을 잠깐 했는데, 이 시집 제목은 <심야발 안부>에 나오는 한구절이다. 시집 제목이 시 제목일 때도 있고 시에 나오는 구절일 때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아닌 시집 제목도 있을 텐데. 다정한 호칭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몇해 전에도 그랬는데). 너, 그대, 당신……. 이름도 호칭에 들어간다. 난 이름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름은 자신이 붙이기보다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거지만. 자기 이름은 자신보다 남이 많이 부르는 것이구나. 다른 사람, 친구가 내 이름 부르는 건 듣기 좋은데 나는 말로 잘 못한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쓰는 건 하지만. 말 자체를 거의 안 하는데 언제 친구 이름을 부를까. ‘~야 놀자, ~야 학교 가자.’ 처음 시인 이름 보고 남자 시인인가 했다. 은규가 아닌 은교였다면 여자겠지 했을지도. 몇해 전에는 남자가 하는 말로 보고(좀 이상한 느낌이 든 것 같기는 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여자가 하는 말로 보았다. 나처럼 이은규 시인을 남자라 생각한 사람 없을까. 시인은 남자여도 여성스러운 말을 쓰기도 한다(어떤 글이든 그런 면이 있던가). 시를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시를 보면 여러 사람이 떠오른다. 내가 시를 보고 알아본 사람은 기형도 이상 고흐 윤동주 김수영 체 게바라다. 철도원 아버지를 둔 시인은 누굴까(전에도 이 말 한 것 같다, 한번 한 말 또 하다니). 앞에 말한 사람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는 게 별로 없다. 이은규는 저런 사람 시와 글 그림을 좋아하고 본 걸까. 그런 것을 시에 녹여내다니. 봄이 느껴지는 시도 여러 편이다. 나무 바람 구름 꽃 나비. 이런 시도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 잘됐다 생각해야겠다. 행과 행 사이를 잘 보아야 할 텐데. 잘 보아야 하지만 잘 듣기도 해야 한다.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게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시간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되지 않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놓치다, 봄날>에서, 62~63쪽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뻗을수록 잡히지 않는 게 많다. 그럴 때는 잡으려 하기보다 그냥 놓아두는 게 나을지도.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자크 프레베르)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 시는 새를 바로 그리기보다 그리려는 새가 그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그 새가 오면 그곳에서 편안하게 있게 한다. 이건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을 바로 하는 것보다 시로 쓰는 것도 좋구나. 바로 알기 어렵고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숨 막히는 뒤태

 

 

 

당신을 뒤로 하고 길을 건널 때

 

왜 가시 돋친 말은 등 뒤에 와 박히는 걸까

 

언젠가 등 뒤 점을 바라볼 수 없는 데에서

 

인간의 고독이 시작된다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가시 돋친 마음이 와 빅히는 뒤태

 

오늘 새로운 흑점 하나 생겼다, 숨 막히는  (77쪽)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예전에도 이번에도 이 시간 마음에 들어왔다. 만화에서는 어떤 말이 심장에 꽂히는 것처럼 그릴 때가 있다. 이 시는 앞이 아닌 뒤다. 앞에서 꽂히는 건 재미있게 보이지만 등 뒤에서 꽂히는 건 어쩐지 슬프게 보인다. 뒤에서 그 사람 모르게 말하는 건가. 몰래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보다 앞에서 말하는 게 훨씬 낫겠다. 앞에서는 가시 돋친 말 못할 테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언젠가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볼 때가 있을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잘 보거나 느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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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6-1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은규 시인이 여자분인걸 알고 살짝 당황 ...ㅎㅎㅎ저는 [별이름 작명소]가 넘 좋더라고요...희선님은 요즘 시보단 운율이나 그런걸 봐도 옛 시들이 더 이해편할실지도..모르겠어요. 주제와 얘기가 확실한 ..면에서요!^^

희선 2016-06-12 01:44   좋아요 1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책이나 글도 연이 닿아야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은 연이 닿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시를 많이 아시니 저런 말을 하셨겠네요


희선

[그장소] 2016-06-12 09:41   좋아요 0 | URL
음 ..그렇네요 ..인연이 닿아서 만났다는것이 중요한듯~^^ 이해는 더 나중에 찾아 오기도 하니까 ...천천히 자주 봄..더 예뻐질 거예요~^^
꽃처럼~!!
 
나쁜 놈들 - 상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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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뛰는 사람은 자기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는 거 모를까요. 처음에는 모를 수도 있겠군요. 잘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림자가 보여야 위를 올려다 보겠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만 생각할지도. 자만에 빠지면 안 될 텐데요. 이건 나쁜 사람이든 보통 사람이든 마찬가지네요. 이렇게 말하니 나쁘려면 철저하게 나빠야 한다는 말 같군요. 그런 사람 좋아하지 않지만 어설픈 것보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쁘다는 건 어떤 걸까요. 남을 속이고 남을 아프게 하는 거, 남의 돈을 억지로 빼앗는 것도. 나쁜 것보다 나쁜 짓이군요. 나쁜 짓을 하는 건 언제일까요. 돈이 갖고 싶을 때,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다니. 돈과 상관있는 때가 많기는 하죠. 돈은 많은데 사람이 없는 사람은 돈으로 사람을 사려 하겠네요. 그건 진정으로 사람과 사귀는 게 아니겠습니다. 이건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쁘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목처럼 모두 나쁩니다.

 

처음에 모두 나쁘다고 말하다니. 이런 말하면 모두를 의심하겠군요. 저는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마지막에 어떤 말 때문에 확인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 마음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지, 상대가 자신을 얕보는 데 화가 나서였는지, 아니면 여자 때문인지. 옮긴이 말을 보니 이 책은 나쁜 여자 시리즈 세번째라고 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나쁜 여자 시리즈라는 말을 한 건 아니겠지요. 앞에 두권은 《짐승 길》 《검은 가죽 수첩》입니다. 《짐승 길》에 나온 여자는 마지막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검은 가죽 수첩》은 어떻게 됐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이건 몇해 전에 드라마로 봤습니다. 여기(《나쁜놈들》)에도 나쁜 여자 나옵니다. 나쁜 여자는 왜 남편을 잘못 만나는 건지. 돈은 있지만 남편이 시원찮아서 나쁜 여자가 된 건지도. 모두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요. 남편이 멀쩡하게 있는데도 다른 남자를 만나는. 돈을 남자한테 주기도 합니다. 남자 도야 신이치는 병원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여러 여자를 만나고 돈을 뜯어냅니다. 남편이 있는 사람을 만난 건 돈을 뜯어낸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한 건 아닐까요. 여자한테 죄책감을 갖게 하려는 뜻도 있겠지요. 도야 신이치가 혼자냐 하면 아니예요. 함께 살지 않지만 호적에는 아내가 있습니다.

 

도야는 아버지가 죽고 병원을 물려받고 병원장이 됐습니다. 의사지만 환자는 안 봅니다. 그런 병원 잘 될까요. 병원장이면 병원장답게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자리는 그저 여자를 만날 때 도움이 되어서 지키는 겁니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 그런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 텐데, 도야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아버지 때와 다르게 의사로 돈 벌기 쉽지 않아서였을지도. 잘생긴 얼굴과 그런 걸 여자들이 추켜올리고, 힘들게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여자한테서 받은 돈으로 편하게 놀고 싶어서. 이런 사람 ‘기생오라비’라고 하는군요. 한사람은 돈, 한사람은 돈과 스릴 때문에 만났는데 도야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스물일곱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옷 가게를 했습니다. 디자이너고 얼굴도 애쁘고 교양도 있고 돈도 많았습니다. 도야는 여자가 교양 있고 예뻐도 돈이 없으면 만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이 보는 건 돈일지도. 모든 걸 갖춘 여자가 나타나니 놓치고 싶지 않겠지요. 여자가 자신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자신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사람은 아주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돈은 다 자기 돈이라 여기고 여자 남편만 없으면 훨씬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도야는 덫에 걸린 게 아닐지. 다른 여자한테서 받은 돈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할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 게 잘 되겠습니까. 도야는 자신이 똑똑하다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본래 나쁜 사람이니 동정하면 안 되지만, 아주아주 조금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야가 남편 있고 돈 많은 여자와 만난 다음에 그렇게 되리라는 걸 어떤 사람은 알았을까요. 지켜보니 그렇게 돼서 다른 일을 꾸민 걸까요. 두번째일 것 같네요. 아니 아주 조금 그렇게 되면 괜찮겠다 생각했을지도. 여자한테서 돈 뜯는 거 나쁘지만, 그것보다 더 안 좋은 일에 손을 담그면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니 겁이 없어진 건지, 도야는 같은 일을 한번 더 합니다. 다른 사람 돈은 다른 사람 거죠. 이런 생각하면 갖고 싶다 생각 안 할 텐데. 돈이든 목숨이든 남의 것은 빼앗지 않아야 합니다.

 

어쩐지 도야만 나쁘다는 식으로 썼네요. 앞에서는 모두 나쁘다 했는데. 남편 있는 여자는 도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다른 나쁜 남자를 만났을까요. 그건 알 수 없겠네요.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는 두 사람도 있어요. 두 사람은 앞으로 잘살지, 언젠가 나쁜 일이 생길지. 남한테 나쁜 짓하고 잘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도 도야 때문에 그런 일을 꾸미고 한 건지도.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떤 일을 하기에 도야가 딱 맞아서 가까워진 것일 수도 있다는.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짐작일 뿐입니다.

 

 

 

희선

 

 

 

 

☆―

 

“의사라는 직업은 좋네요. 아무도 의심하지 않잖아요. 저희 식구들도 얼마전에 감기에 걸려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요, 먹는 약이든 주사든 아무 의심도 없이 치료 받았습니다. 그건 환자가 의사를 신처럼 절대로 믿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의사가 쓴 사망진단서라면 틀림없이 어떠한 부정도 없다고 믿는 겁니다.”  (하권,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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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2 16: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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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4 0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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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허수경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잘 몰라도 시를 보았다. 시에서 멀어지고 다시 몇해 전부터 ‘올해는 시를 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쉽게 못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몇해가 지난 뒤에야 시를 가끔 보게 되었다. 여전히 시 잘 모른다. 얼마전에 박준 시집 보고 기형도 시가 떠오른다고 썼다. 그 말 쓰고 다음에는 기형도 시집을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허수경은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썼다. 박준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시를 썼다. 우연히 그 시 봤을 때는 양귀자 소설집 《슬픔도 힘이 된다》가 떠올랐다. 허수경이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써서 허수경 첫번째 시집 제목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가 생각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책을 볼 수도 있는 거겠지. 늘 그러는 건 아니다. 거의 그때그때 보고 싶은 것을 본다. 허수경 시집 이야기를 누군가 한 걸 보고 여러가지가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허수경 시집은 두권밖에 없다. 난 허수경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건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지난해 《마왕 신해철》에서 허수경 글 보았다. 두 사람은 라디오 방송 때문에 만났다. 마왕이 처음에 낸 책에 작가 누나 이야기가 조금 나오는데, 그 작가 누나가 허수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라디오 방송 작가가 있다는 거 알았지만, 시인이 하는지 몰랐다. 시 쓰고 라디오 방송 작가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병률뿐이다. 더 있을지도 모를 텐데. 허수경 첫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1988년 11월에 나왔다. 한달 뒤 대학가요제에서는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는다. 1988년이 거의 끝날 때 무한궤도는 알았지만 허수경은 몰랐다. 허수경 언제 알았는지 모르지만, 허수경이 독일에서 산다는 건 알았다. 그건 언제 어떤 글을 보고 안 건지. 우연히 안 걸 잊지 않았던가보다. 허수경 시집은 두번째 나온 《혼자 가는 먼 집》을 먼저 본 것 같다. 그걸 보고 첫번째 시집 알고 사 봤을지도. 제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집 제목은 시 모두를 보고 지을 때가 많을까, 괜찮은 구절을 제목으로 쓸 때가 많을까. 시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쓸 때도 있다. 이 시집 제목은 <탈상>이라는 시에 든 구절이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낀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喜怒哀樂) 그 안에서 슬픔은 사람한테 힘이 될까. 슬픔에 빠진 사람한테 그런 말하면, 그 말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사람은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어하지 누가 슬픔이 찾아오길 바라겠는가. 슬픔이 찾아오면 그때가 지나야 비로소 슬픔도 힘 거름 자랑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슬픔이 찾아왔을 때 그게 잘 지나가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나갈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여러 일을 겪고 단단해진다. 난 아직도 단단하지 못하지만. 단단한 게 하나만 고집하는 건 아니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만 슬픈 일을 겪고 자라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게 그렇지 않을까. 자신한테만 슬프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느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내

배냇기억처럼  (67쪽)

 

 

 

 

근대사

 

 

 

입술만큼 여린 게 없다

우리가 그대들 가슴을 짓이겨 놓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멀리 새벽은 우리가 아프게 한

그대들 가슴에 걸려 있고

우리는 새벽달 되어 그 가슴에

떠다닌다.

 

용서해다오.

안 된다.  (70쪽)

 

 

 

 

아버지, 저를 신고하지 마세요

흔하디 흔한 집에서조차

우리가 분단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3>에서, 127쪽

 

 

 

이 시집이 나온 1988년 우리나라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그리 밝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 밝지 않다.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늘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경제가 아닌 다른 데 마음을 쓰면 더 나을 것 같지만. 힘들어도 사람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을 거다. 별로 밝지 않은 1988년을 추억하는 것은 어린시절 맛본 따스함 때문일 듯하다. 이 시집에는 1980년대 이야기도 있지만, 그때보다 지난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1988년에 그때를 생각한 건 힘들 때와 1988년이 다르지 않아서였을까. 그것보다 역사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잊어가는 이야기를.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이라고 잊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잊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시가 어떤지 잘 말하지 못한다 해도 시 볼까 한다. 슬픔을 거름 삼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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