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의 로맨티시즘

임화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7월 29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을 내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여러 번 들어서 익숙한 이름도 많다. 임화는 많이 들어본 이름은 아니다. 임화를 언제 알았느냐 하면 이 시집이 나온 지난해(2015)다. 이 시집을 보다보니 그전에도 지나가면서 본 적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카프라는 걸 들었으니까. 그때 배웠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한반도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때 사람 이념도 둘로 나뉘었다. 그때 갑자기 둘로 나뉜 건 아니겠지만,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이념의 차이를 더 깊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를 몰아내려 하고 북한에서는 미국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숙청을 했다. 그 안에 임화도 들어갔다. 임화가 1947년에 북한에 갔다는 말을 먼저 해야 했는데. 임화는 조선 레닌이라 하는 박헌영을 따라 북한으로 갔다. 글을 쓰다 북한으로 간 사람은 많지만, 내가 아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를 쓴 백석, 단편소설 동화 《문장강화》로 잘 알려진 이태준, 소설 《고향》을 쓴 이기영, 정말 얼마 안 되는구나. 이밖에 더 있을 텐데 생각나지 않는다.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아서 그렇구나.

 

세계에서 한나라가 둘로 나뉜 곳은 한반도밖에 없다고 한다. 언젠가 통일할까. 아니 조금씩 해나가야 할 텐데 싶다. 윗사람은 조금 알겠지만 일반 사람은 북한이나 한국 사정을 잘 모른다. 들리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뿐이다. 북한 사람은 한국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북한으로 넘어 간 작가 글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작가는 다 남쪽 사람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북한으로 넘어 간 사람 이름을 들었을 거다. 기억에 남은 사람이 이태준이나 이기영이 아닐지. 백석은 좀더 뒤에 알았다. 한국 작가 소설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북한으로 간 작가 글을 생각하다니. 새천년이 다가오고 작가는 북한에 가거나 북한에서 오기도 했다. 그런 만남 몇번 없었겠다. 남과 북이 통일하는 것도 괜찮지만, 두 나라로 사이 좋은 이웃 나라가 되는 것도 좋을 텐데 싶다. 거기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다른 길을 걸었으니. 한국 사람끼리도 생각이 달라서 싸우는데, 북한과 한나라가 되면 얼마나 더 심하게 싸울지. 그 싸움으로 피해를 입는 건 백성이다.

 

한때는 북한으로 넘어 간 작가 글을 보면 큰일났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더 많은 작가가 알려지면 좋겠다. 임화는 만 열여덟에 시를 발표하고 글을 썼다. 본래 이름은 임인식이고 시뿐 아니라 평론도 썼다. 여기에 평론이 한편 실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임화 시를 보고 쓴 건가 했다. 읽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제야 그 글도 임화가 썼다는 걸 깨달았다. 임화는 영화배우에 출판인 혁명가기도 했다. 여러 가지를 했다니. 시는 연극 대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첫 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 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니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를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피배에 울었다.

─그 중엔 희망과 결의와 자랑을 욕되게도 내어 판 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 기억코 싶지는 않다.  (<현해탄>에서, 91~92쪽)

 

 

 

 

사랑하는 내 아이야

 

너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너 어느 곳에 있느냐>에서, 145쪽)

 

 

 

조선시대가 끝나갈 때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사람은 많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만 하러 간 건 아니구나. 돈 벌러 간 사람도 많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현해탄이라 했다. 지금은 거의 듣지 못하는 말이다. 배보다 비행기로 가서일까. 임화는 연기 공부를 하려고 일본에 갔다 왔다. 영화도 찍었는데 그건 지금 남아 있을까. 북한에 가서 죽임 당한 사람은 아주 많겠지. 큰 뜻을 가지고 남한이 아닌 북한으로 간 사람도 많았을 텐데. 미국 스파이로 몰리기도 하다니. 남한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빨갱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었다. 임화는 미국 스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딸을 그리는 시를 썼을 때도 비판을 들었다고 한다. 자기 감정을 나타내지 못하다니. 임화는 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북한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 저세상에서나마 임화 영혼이 자유롭기를 바라고 그리던 딸도 만났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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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8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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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0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둘기피리 꽃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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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하면 생각나는 건 바라는 일이야. 다 그럴지 모르겠지만 요정을 도와주면 바라는 일 세 가지를 들어준다고도 하잖아. 좋게 말하면 요정, 무섭게 말하면 도깨비. 한국에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 이야기에서도 바라는 일 세 가지를 들어준다고 한 것 같아. 사람은 그 세 가지에 만족할까. 세 가지라고 끝이 있어서 더 깊게 생각하고 말할지도 모르겠어. 어떤 이야기에서는 세번째 바람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를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말하기도 하지. 두 번째까지는 잘못 생각해도 마지막 세번째에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갑자기 일어나는 좋은 일은 그렇게 좋지 않기도 해. 복권 당첨된 사람이 그렇게 오래 잘살지 못한다고도 하잖아. 많은 돈이 생기면 감각이 없어져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돈을 마구 쓸까. 난 그러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군. 난 아예 복권을 안 사지. 복권 살 돈도 아깝다 여기고, 쉽게 얻은 건 쉽게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쩌다 이런 이야기로 흐른 거지. 이 책은 세 가지 바람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초능력은 진짜 있을까. 손 안 대고 물건을 옮기거나 물건에 남아있는 기억을 읽거나 다른 사람 마음을 읽는 건 만화에서 더 많이 봤어. 이밖에도 여러 가지 힘이 있을 텐데 난 잘 모르겠어. 불이나 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을까. 이건 손 안 대고 뭔가를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가. 불을 내거나 물을 생기게 하는. 앞날을 아는 것도 있군. 많은 사람은 이걸 바랄까. 아니 어느 하나만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어떤 힘이든 있다면 그걸 쓰고 싶어할지도. 쓰고 싶어하는 건 그 힘을 가진 사람보다 그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지. 세계전쟁 때 소련인가 미국에선가는 초능력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힘을 가진 사람보다 그걸 쓸 만한 소질을 가진 사람을 모아서 실험한 걸까. 그런 힘 가진 사람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예전에는 그런 힘이 무엇과 상관있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뇌와 상관있다는 거 조금 알아. 좀더 일찍 다른 데도 관심을 가졌다면 좋았을 텐데. 과학 말이야. 지금도 잘 모르고 관심 많은 것도 아니야. 과학을 잘 안다고 초능력을 아는 건 아니겠지만. 난 어떤 일을 설명(이론)을 보고 알기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야. 세상에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 더 나아가 우주를 알려고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잘 말할 수 없는 말을 또 꺼냈군. 내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건 과학만은 아니지만.

 

어쩌면 가장 처음 말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를 텐데 이제야 말해. 뭐냐면 만약 자신한테 어떤 힘이 있다면 어떨지야. 사람은 다 평범하기를 바라는데 어떤 힘이 나타나는 건 정말 다른 걸까. 사람은 누구나 힘을 갖고 세상에 나오지만 시간이 흐르고 약해지는 것일 수도 있잖아. 본래 힘을 갖고 나는 사람도 있지만, 살면서 힘을 가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건 경험으로 얻은 지혜겠지. 난 그것도 힘이라고 생각해. 이건 재능과도 같군.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을 들여서 익히는 사람도 있지. 재능을 타고난다고 해도 애쓰지 않으면 더 나아지지 않을 거야. 만화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괴로워해.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 여기고 혼자다 생각하니까. 무엇보다 외로움이 가장 큰 듯해.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힘을 가진 사람을 괴물로 보기도 하지.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사람은 자신과 다르거나 잘 모르면 무서워해. 무서워하기보다 좀더 가깝게 지내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이렇게 말했지만,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지. 그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겠지만 쉽게 말 걸지 못할 것 같아. 난 먼저 다른 사람한테 말 못해. 인터넷은 말이 아니고 글로 쓰는 거여서 좀 낫지만(그렇다고 아주 다르지는 않아).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닐지라도 우리 둘레에는 뭔가 좀 다른 사람이 있기도 하잖아. 그런 사람도 마음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을 거야.

 

이 책 제목인 비둘기피리꽃(구적초)은 정말 있을까. 이게 없는 건 아닌데 이름은 다를지도 모르겠어. 그게 무엇인지 나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노래하는 꽃이라고 하니까. 여기에는 힘을 가진 세 사람이 나와.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고 서로 다른 세 가지 이야기야. 첫번째 <스러질 때까지>는 어릴 때 차 사고로 부모를 잃고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기억이 없는 아소 도모코가 함께 살던 할머니가 죽고 기억과 힘을 되찾는 이야기야. 도모코는 부모가 자신의 힘을 싫어했다는 생각을 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그런 부모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사고가 갑자기 일어나서 그걸 이상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어. 도모코가 여덟살 때 엄마 아빠와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일어났어. 그때 엄마 아빠는 죽고 도모코만 살았어. 엄마 아빠는 죽고 자신만 살아서 죄책감을 갖고 있었을까. 그래서 도모코는 엄마 아빠가 자신과 죽으려 했다고 생각했겠지. 그 생각은 잘못된 거였어. 도모코 엄마 아빠는 그저 도모코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어. 도모코가 잠을 자고 안 좋은 꿈을 꾸면 머리가 아팠거든. 꿈 이야기를 하면 덜 아팠어. 도모코한테는 앞날을 아는 힘이 있었어. 아니 그 말을 할 때는 그게 어떤 일인지 몰라. 그 일이 일어난 다음에야 알았어. 자신이 제어하기 어려워 보이는 힘이야. 잠들었던 그 힘이 기억과 함께 깨어났어. 도모코가 한번 죽으려 했지만, 엄마 아빠 마음을 알고 그 힘과 살기로 해.

 

두번째 <번제>는 나중에 《크로스파이어》라는 장편이 되지. 그 책 읽었는데 다 생각나지 않아.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한테 희망을 갖고 글을 쓰는데 이건 좀 다르기도 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자기 식구를 죽인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 생각은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얼마 없지. 아오키 준코는 불을 내. 이건 염화 능력(파이로키네시스)이군. 준코는 자신은 장전된 총이라는 생각으로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살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보고 그 힘을 쓰려 해. 미야베 미유키가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아오키 준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사람도 나오니까. 그렇다 해도 아오키 준코를 막지 못했군. 장편에는 여자 형사가 나왔던 것 같아. 아오키 준코 마음을 조금 알아주는.

 

남과 다른 힘이 있으면 남한테 도움을 주고 싶겠지. 마지막 <비둘기피리꽃>은 거기에 딱 맞아. 혼다 다카코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경찰이 되어 일했는데, 그 힘이 사라지는 걸 느껴. 다카코는 사람이나 물건에서 마음을 읽어. 그런 힘이 사라지기도 하다니. 다카코는 자신한테 그 힘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해. 꼭 그럴까. 그 힘이 없다 해도 다카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 다카코도 그걸 깨달아. 다카코 힘이 사라져도 죽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카코 힘이 사라지면서 몸이 안 좋아져서 이런 생각을 했어. 지금 잠시 나타나는 거고 보통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지. 힘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카코가 앞으로도 잘 살기를 바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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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진짜 우체통인지 다 아시겠죠. 지난 칠월 말엔가 팔월 초엔가 우체국에 가다가 봤습니다. 그곳을 우체통길이라고 하더군요. 언젠가 사진으로 담아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여러 번에 걸쳐서 했습니다. 저것도 겨우 한 거예요. 아무도 제가 뭐 하는지 관심없겠지만 사람이 다니는 데서 사진 찍는 거 잘 못해요. 요즘은 그런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닌데. 휴대전화기에는 거의 카메라가 달려 있잖아요. 작은 디지털 카메라보다 그게 더 잘 찍히는 것도 같습니다. 저렇게 그림 그린 우체통 다 담은 건 아니고 마음에 드는 것만 담았습니다. 더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우체국에서 가까운 가게 앞에만 있는 것 같아요. 쵸파가 있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제가 자주 본 건 어린왕자, 토토로, 피카츄, 고양이예요. 고양이는 손을 든 마네키네코를 따라한 것 같습니다. 마네키네코는 삼색털고양이가 모델이라는 거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둘 다 제가 모르는 만화에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쵸파를 보니 반갑더군요. 도라에몽도, 도라에몽은 만화 거의 못 봤지만, 도라에몽이 로봇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고양이인가 했거든요. 피카츄나 케로로도 있다는 것만 압니다. 둘리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없어서 아쉽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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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6-10-12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알겠는데 밑에서 3번째 있는 친구는 누구인지 모르겠네요. 근데 이거 다 다니시면서 찍으신 거예요? 와우. 우리 동네 우체통들이 이랬으면 좋겠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역시 피카츄가 가장 좋군요.

희선 2016-10-13 02:24   좋아요 0 | URL
제가 사는 지역에서 쓰지 않는 우체통을 모아다 저렇게 한 건지 다른 곳에서도 가져다 한 건지... 우체통을 아주 없애거나 다른 걸로 쓰지 않고 그냥 놔두었던가봐요 그게 없었다면 저걸 할 수 없었겠죠 피카츄도 좀 나중에 봤어요 눈에 띄는 색인데 저걸 나중에 보다니... 차가 있어서 바로 못 본 건지도 모르겠네요 저 때도 차가 있지만... 밑에서 세번째는 제가 반갑다고 말한 쵸파예요(도라에몽 밑에 거 맞죠 이름 다 말하면 토니토니 쵸파예요) 원피스에 나오고 순록인데, 쵸파를 처음 본 사람은 거의 너구리로 보기도 해요 쵸파는 사람사람 열매를 먹고 사람처럼 말하게 됐어요 하나 더 말한다면 의사예요


희선
 

 

 

 

언제나 철을 느끼고 사는 건 아니다. 그저 오면 오는구나, 하고 가면 가는구나 한다. 여름이나 겨울은 덜하지만 봄이나 가을은 올 때가 좋은 것 같다. 따스한 햇살, 서늘한 바람이 좋으니까. 뜨겁고 차가운 것도 나름대로 괜찮지만 오래 이어지면 지내기 힘들다. 더울 때는 덜 자서 좀 낫지만, 추우면 일어나기 싫다. 싫기보다 힘들다고 해야겠다. 움직이면 괜찮은데 그렇게 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추울 때도 빨리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춥다고 말할 때는 아니구나. 시간이 가고 철이 바뀌어도 하는 건 그리 다르지 않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즐겁게 하면 좋을 텐데, 늘 즐거운 것은 아니어서. 뚜렷한 목표도 없이 해서 그런가. 꼭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지금 찾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자꾸 하다보면 뭔가 생기거나 알 수 있을지도. 이런 막연한 마음으로 하다니. 어쩌면 찾다가 끝날지도.

 

 

 

 

 

 

 

피해자 식구 못지않게 괴로운 가해자 식구

 

  봄날의 바다

  김재희

  다산책방  2016년 05월 13일

 

 

 

 

 

 

 

 

 

 

 

 

 

 

 

10년 전 그 사건 이후로 희영은 삶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가족사진에서처럼 웃은 적도 드물었다. 밤마다 동생 사건과 관련된 문건들을 찾아내서 지워나가면서 가해자 식구로 겪는 괴로움을 곱씹으며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31쪽)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 그 사람 식구가 있다. 피해자 식구는 피해자 식구대로 가해자 식구는 가해자 식구대로 힘들 거다. 피해자 식구는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있지만 가해자 식구는 좀 어렵겠다. 한사람이 저지른 일 때문에 다른 식구도 가해자로 보기도 한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가해자 식구 정보가 인터넷에 퍼지는가보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아내고 쓰는 건지, 그런 거 하는 사람 대단하구나. 그건 또 다른 가해자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런 사람을 법으로 어떻게 했다는 말은 못 들은 듯하다. 누가 그런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겠지. 누군가 신고를 하면 할지도. 컴퓨터 인터넷을 쓰지만 그런 걸 찾아본 적은 없다. 내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아서겠지. 살면서 어떤 일 피해자나 가해자 식구는 되고 싶지 않다. 이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려나. 살다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겠지.

 

아무 일 없이 보내는 열해와 어떤 일이 일어난 뒤 보내는 열해는 아주 다를 거다. 어떤 일이 생기면 더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희영은 힘든 열해를 보냈다. 열해 전 동생 준수가 은행원 김수향을 죽였다는 걸로 잡히고, 준수는 재판을 받기 전에 희영한테 자신이 한 게 아니다는 말을 하고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사건은 준수가 죽어서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것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일까. 준수가 범인이라는 게 확정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은 준수가 은행원 여자를 죽였다 여겼다. 희영과 희영 엄마는 살인자의 식구로 살았다. 엄마는 준수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말하고 준수한테 죄가 없음을 밝히려 했다. 희영은 그 일을 돕지 않았다. 피해자 식구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겠지. 누군가는 그만 잊자 할지도 모르고 그럴 수 없다 하고 매여 살기도 할 거다.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겠지. 가해자 식구는 어떨까. 준수가 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열해 전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준수 마음이 알고 싶은데, 희영이 기억하는 준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 사업이 잘 되지 않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엄마는 희영과 준수를 데리고 제주도에 가서 살았다. 아버지가 있었을 때도 엄마는 일을 하러 다녀서 희영이 준수를 돌봐야 했다. 동생을 잘 챙기는 누나도 있지만 그걸 싫어하는 누나도 있겠지. 자신도 어린데 어린 동생 보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제주도로 가서는 좀 달라졌지만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희영은 제주도에서 단짝 친구를 만났다. 준수는 여전히 누군가와 잘 사귀지 못하고 혼자 지냈다. 엄마가 일을 나간다고 해도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아이한테 조금 마음을 썼다면 나았을까. 엄마는 준수가 사달라는 건 다 사주었다. 희영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것 때문에 희영도 준수한테 마음을 덜 썼을지도.

 

예전에는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어 놀았다. 지금은 그런 아이가 적다. 아이가 하나나 둘인 사람이 많을 거다. 이건 사회에서 마음 써야 하는 걸까, 부모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런 책을 보고 부모가 아이를 잘 기르면 범죄자가 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그러면 안 될 듯 싶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많을까, 얼마 없겠지. 부모와 아이 사이가 좋으면 아이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지 모를 텐데. 부모가 아이를 다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해도 마음 깊은 곳을 알기 어렵다.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기도 해야 하지만, 잘못한 일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자기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는 일 믿고 싶지 않겠지만. 엄마는 준수가 한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기 전에 희영한테 준수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한다. 희영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받아들이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살았다. 열해가 흐른 뒤에야 그 일과 마주한다.

 

 

“누나, 마음 진정해요. 하지만 진실을 자꾸 외면하면, 언젠가 그게 부풀고 커져서 엄청난 크기로 굴러 떨어져 내린대요.”  (194쪽)

 

 

한 가지는 확실했다. 희영도 준수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그 누명을 벗겨보고자 했다는 것.

 

식구의 마지막 명예와 이름을 어떻게든 깨끗하게 지켜주고자 그가 가고 나서도 이렇게 하였다는 것. 어쩌면 희영과 김순자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같은 결과로 끝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 힘든 여정을 걸어왔던 게 아닐까.

 

그리고 가장 크게 싸고돌던 불안감과 두려움은 진짜로 준수가 김수향을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에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그래서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밀쳐놓았던 것이 아닐까.  (313쪽)

 

 

희영이 준수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도 희영은 살인자 식구였다. 대중매체에서는 가해자 식구나 피해자 식구를 시청률을 올리려고 이용하지 않나 싶다. 그런 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좀더 생각했으면 한다. 언젠가 피해자 식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보았는데, 가해자 식구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가해자 식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죄를 지은 식구 때문에 나머지 식구도 죄인처럼 살아야 하다니. 피해자와 피해자 식구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겠지. 그렇게 죄를 갚고 살려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는 거다. 죽은 사람은 한사람일지라도 그 사람과 관계있는 사람 마음도 죽이는 거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나쁜 짓하기 어려울 텐데. 남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면 자신이나 식구는 피눈물을 흘린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삶은 실체 있는 한바탕 꿈

 

 

 

 

당신 이마에 이 키스를!

이제 당신과 헤어지면서

이것만은 인정하리다,

삶은 꿈이라는

당신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면 환상으로든 아니든

밤새 그랬든 하루 만에 그랬든

희망이 줄어든 것은 없지 않은가요?

우리가 보는 것 믿는 것은 모두

꿈속의 꿈일 뿐이니까요.

 

파도에 시달리는 바닷가

거친 소리에 에워싸여 서서

금빛 모래를 한줌 쥐어 보지만

잡히는 것은 얼마나 적은지! 그나마도

내가 슬피 우는 사이 바닷물에 씻기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구나,

내가 슬피 우는 사이에!

오 하느님! 좀 더 꼭 쥐어도

그것을 잡을 수는 없는 건가요?

오 하느님! 이 무정한 파도에서

모래 한 알도 건질 수 없는 건가요?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은 모두

꿈속의 꿈일 뿐인가요?

 

-<꿈속의 꿈>, 에드거 앨런 포

 

 

 

꿈속의 꿈 하면 생각나는 건 장자의 호접몽이야. 어느 날 장자가 나비와 노는 꿈을 꾸고는, 삶을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했어. 동양에서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더군. 에드거 앨런 포도 시에 그런 것을 썼어. 가상현실이라는 말을 보니 저런 게 생각났는데 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어. 가상현실은 진짜가 아니니까. 사는 게 꿈과 같다 해도 여기에는 실체가 있지. 가상현실은 상상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아. 상상한 것을 이야기로 쓰기도 하니까.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써서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과 쉽게 이야기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과는 제대로 말하지 않아. 인터넷 속 세상도 가상현실이겠지.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현실과 다르지 않다 여기면 좀 낫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만나던 사람이 실제 만나기도 해. 그렇게 만나고 그 자리에서 서로 자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안 될 텐데. 아니 말로 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할지도. 이건 그 자리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거니 좀 낫겠지.

 

 

                      

 

 

 

과학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영화는 조금 보았어. 이것도 오래전 일이야. 영화 원작이 소설일 때가 많으니 영화를 보는 게 과학소설을 조금 엿보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 이런 말을 하는 건 SF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기계 같은 것을 지금 쓰기도 하기 때문이야. 사람이 할 일을 기계가 하게 된 게 제4차 산업혁명인가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무엇인가 일어나는구나. 빨리 바뀌고 사라지는 것도 많고. 가장 걱정스러운 건 사람이 할 일이 얼마 없게 되는 거야. 회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마음 써야 하는 사람한테 일을 시키기보다 프로그램만 되어 있으면 몇 사람치 일을 하는 기계를 쓰려 해. 지금은 사람이 기계한테 밀려나는 시대야. 나이 많은 사람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기도 해. 젊은이도 마찬가진가. 오십대는 조금 다르다고 하더군. 그동안 쌓은 경험을 살리는 일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모두가 즐겁게 살기는 어려워. 같은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찾으면 괜찮겠지.

 

온라인 책방 때문에 많은 책방이 문을 닫았는데, 언젠가부터 동네책방이 생겼어. 동네책방은 별로 크지 않아. 그런 곳에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책방에 사람이 별로 없으면 난 쉽게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 이번에 두 곳을 소개했어. 음악책을 전문으로 파는 ‘초원서점’과 그림책을 전문으로 파는 ‘작은 정원’이야. 얼마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동네책방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한곳은 시집을 전문으로 팔고 한곳은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팔았어. 시집 파는 곳은 주인이 시집을 추천하고 시를 옳겨 써 보는 공간도 있대. 동네책방에서는 책만 파는 게 아니고 모임도 가져. 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가기 싫지만,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일본말로 쓰인 책을 전문으로 파는 책방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난 멀어서 못 갈 것 같지만. 거기에서 사도 값이 싸지 않을 것 같기도 해. 동네책방이니 책값을 다 받지 않을까. 동네책방을 살리는 것이니 그건 그대로 받아들여겠군. 요새 동네책방이 생기는 곳은 서울과 경기 쪽이야. 서울에 더 많겠지. 다른 지방에도 동네책방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닐 텐데. 이게 바로 남과 다른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이것이 잠시 퍼지다 사라지면 안 될 텐데. 아니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건 사라지고 남을 건 남을 거야.

 

이번에 반가운 사람이 나왔어. 내 쪽에서만 알지만. EBS 라디오 방송 <북카페>에 인터넷 책방 알라딘 인문 MD 박태근이 나와서 이런저런 책 소개를 해. 라디오 방송에서만 만나던 사람을 책에서 만나서 반가웠어. 가진 책이 이만권이라니. 어마어마하군. 책에 묻혀 살지도 모르겠어. 다른 것보다 책이 많다는 것만 기억하다니. 일하는 곳도 책에 둘러 싸여 있어.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는 제대로 만나보고 싶어. 예전에 한번 보기는 했는데. 지금 사람은 자신이 나이를 먹었을 때 돈없고 힘없는 것을 걱정하겠지. 그런 때라 해도 자신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사는 게 덜 쓸쓸하겠지. 그게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건 책이야. 책은 자신이 찾을 때 언제나 거기 있잖아. 땡스북을 돕는 여러 사람이 책 열권을 먼저 읽었어. 열권 안에 만나보고 싶은 것도 있어. 잊어버리지 않고 기회를 봐서 만나면 좋을 텐데 어떻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어(전에도 이 말 했군). 한권이라면 기억했다가 만나볼 수도 있을 텐데. 책연이 있기를 바라야겠어.

 

책을 읽는 사람이 적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한국에 한해 동안 나오는 책이 4만종이래. 엄청난 숫자야. 그 안에는 좋은 책도 있고 별로인 책도 있을 거야. 좋은 책을 자주 만나면 좋을 텐데. 별로인 책에서도 배울 게 있겠지.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아. 아주 남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힘을 얻기에 책만큼 좋은 건 없어. 이렇게 말하지만 여전히 흔들리기도 해. 이건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책에 쓰여 있다고 해서 다 옳은 건 아니야. 그걸 제대로 보려면 이런저런 책을 만나고 스스로 생각해야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면 더 좋은 삶이 될 거야. 언젠가 좋은 꿈꾸고 간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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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소원을 빌어요
이누이 루카 지음, 홍성민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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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숲이 있다면 어떨까요. 제가 사는 곳에 그런 곳이 있다면 가서 걸을지도 모르겠지만 집에서 멀면 잘 모르고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만 갑니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갔다가 오는 데 한시간에서 한시간반쯤 걸려야 한다는 거예요. 꼭 가야 할 일이 아니면 그이상 걸리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두시간 걷는 거 힘들지 않겠지만 저는 한시간쯤이 적당하더군요. 더 걸으면 운동이 될지도 모를 텐데. 앞으로 좀더 걸어볼까요. 지난해에도 이런 생각하고 좀더 걸으려고 했는데 그게 오래 가지 않았네요. 길 옆에 나무보다 차가 다니니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네요. 숲이라고 할 수 없지만 도서관이나 높은 아파트 옆에는 작은 공원(놀이터)이 있기는 해요. 그런 곳도 자주 가면 좋을지 모를 텐데 거의 지나칩니다.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 좋기는 합니다. 여기에 거기에 딱 맞는 숲이 나오더군요. 일본 홋카이도에 진짜 그런 곳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이야기 속에라도 있어서 좋네요.

 

이 책을 보면 누구든 여기 나온 숲이 진짜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거예요. 그곳은 달리 이름이 없고 그냥 숲이에요. 도시와 이어져 있으면서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숲에 바로 들어갈 수 없어서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숲 둘레는 담으로 싸여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철문이 있어요. 그런 곳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지요. 좋은 곳은 사람이 많이 가지 않는 게 더 좋겠네요. 텔레비전 방송이나 책에서 좋다고 하면 다들 그곳에 가잖아요. 그런 곳에 가면 그곳 풍경보다 사람만 잔뜩 보고 오겠습니다. 좋은 곳은 널리 알리는 게 좋을지 자신만 아는 게 좋을지. 두 가지 마음이 다 들듯합니다. 남한테 가르쳐주고 싶기도 하고 혼자 알고 싶기도 하겠지요. 어떤 곳을 혼자 아는 사람이 아주 많아지면 그곳이 널리 알려질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혼자 가는 곳 없습니다. 어디든 혼자 다니지만, 그곳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기분이 안 좋을 때 가는 곳이어야 해요. 다시 생각하니 저한테 그런 곳은 책 속으로 책숲이군요. 늘 같은 곳은 아니지만. 여기 나오는 숲도 그런 곳에서 한 곳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숲은 도시 속에 있습니다. 이곳에 가는 사람은 사는 게 힘든 사람입니다. 숲이 그런 사람을 부르는 걸까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와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 자신은 머리가 좋은데 그걸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실망한 사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어릴 때는 공부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 한사람 때문에 자신이 잘 못사는 거다 여기는 사람, 나이를 먹고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 자신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그 숲에 간다니 참 신기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 거예요. 그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없겠지요. 그럴 때 자연을 만나면 혼자 조용히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혼자 생각하고 다시 일어난 건 아니지만. 이 숲에는 숲지기가 있어요. 어쩐지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목소리는 좀 높은 듯한데, 그런 목소리 어떨지. 만화 <원피스>에 나온 도플라밍고 패밀리 최고간부 피카하고는 다를 듯합니다(아무도 피카를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피카는 소프라노에 가깝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 목소리 들었을 때는 좀 웃겼는데 여러 번 들으니 익숙해지더군요. 숲지기는 이십대 중반으로 목소리는 테너에 가까운 높이라는군요.

 

숲에 간 사람은 숲지기를 만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숲지기를 만나서 좀 나았을지도. 이십대 중반인데 어쩐지 그보다 더 오래 산 것처럼 말하는 건 왜인지. 실제 그런 사람 없는 건 아니겠지요. 숲지기와 숲은 비슷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받아들이는 것이. 사는 게 힘든 사람이 숲에 간다고 했잖아요. 그 안에는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한테도 숲지기는 마음이 곱다 해요. 어쩌면 마음이 비뚤어진 건 한때일지도 모르겠네요. 숲지기는 그걸 아는 거겠지요.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런 걸 다 아는지. 숲지기 이야기도 나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걸 보고 앞에서 본 이야기와 비슷하네 했어요.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나오는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여기 나온 사람은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사람처럼 보이고 누군가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사람한테는 누군가한테 도움을 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 말은 다른 데서 보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여기 나온 사람을 하나로 뭉뚱그려 말하기는 좀 어려워요. 저마다 다르니까요.

 

이런 숲 보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가까운 곳에 있으면 가 보고 싶네요. 지금은 별 걱정 없지만. 없다 생각하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어떤 생각을 하고 기분이 가라앉기도 합니다. 그건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데 마음을 써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생각났습니다. 여기 나오는 몇 사람은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지’ 한다는 겁니다. 자신만 안 좋은 일을 겪는 건 아닐 텐데, 기분이 안 좋으면 둘레가 안 보이기도 하지요. 무엇이든 그때가 지나면 좀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숲에 간 사람은 마음의 여유도 찾는군요. 그건 조용한 숲 때문일지 그곳에 간 사람을 언제나 반갑게 맞는 숲지기 때문일지. 둘 다겠네요. 이 책 때문에 숲이 늘어나면 좋을 텐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오히려 줄어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숲지기님에게

 

여전히 그 숲은 잘 있어요. 숲지기님이 많은 걸 하는 건 아니겠지만, 숲을 돌보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아쉽겠네요.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오기를 바라지는 않겠지요. 웃음을 잃은 사람이 숲을 찾아가 웃음을 되찾으면 숲지기님은 기뻐하겠군요. 지금까지 그런 사람 얼마나 있었을지. 숲지기님이 바라는 건 숲을 찾아오는 사람이 웃는 거잖아요. 작은 바람이고 숲지기님보다 그곳을 찾는 사람한테 좋은 거네요. 아니 다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면 숲지기님도 좋겠습니다. 숲지기님은 어떤 사람한테든 희망을 주더군요. 그 나이에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예전 숲지기님이 그런 것도 가르쳐줬어요.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숲지기님 같은 아이가 숲에 찾아오면 늘 병든 장미를 돌보게 할 것 같네요. 장미가 병드는 건 안됐지만. 장미 돌보기는 어렵군요. 어린왕자가 돌보던 장미가 떠오릅니다. 장미는 왜 그렇게 까다로울까 했는데 실제 그렇군요. 언제까지고 숲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 다치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희선

 

 

 

 

☆―

 

“뭔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멋진 일이에요. 이 숲은 거울 같아요. 숲의 나무와 풀, 꽃과 새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솔길을 사랑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50쪽)

 

 

“아무도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무얼 하든 지금이 삶에서 가장 젊을 때기에, 자신을 자라게 할 기회를 두고 어려운지 어떤지 생각하는 건 시간을 버리는 일이다고.”  (239쪽)

 

 

 

 

 

 

 

소나무의 꿈

 

 

 

 

공원에 사는 소나무한테는 꿈이 있어요. 그건 이번 가을에는 빨갛거나 노랗게 물이 드는 거예요.

 

지난 가을에 사람들이 공원에 와서는 단풍나무, 은행나무 옆에서만 사진을 찍었어요. 소나무는 사람들이 자신 옆에서도 사진을 찍었으면 했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어요.

 

공원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뿐이어서 단풍나무나 은행나무는 소나무가 어떤지 잘 몰랐어요.

 

소나무는 단풍나무, 은행나무한테 어떻게 하면 가을에 그렇게 예쁘게 물이 들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하지만 시원하게 대답하는 나무는 없었어요.

 

‘우린 가을이 되면 본능으로 그렇게 바뀌어. 너한테 방법을 가르쳐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 말에 소나무는 슬퍼하지 않았어요. 꿈을 갖고 있으면 이룰 수 있다고 믿었어요.

 

 

 

여름날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자 소나무 잎이 누렇게 됐어요. 소나무 자신은 물이 들었다고 좋아했는데 가을이 아닌 여름에 물든 것이 이상했어요.

 

그날 소나무을 찾아온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소나무 둘레를 돌아 보고는 무언가를 찾아냈어요. 나뭇가지 깊숙이 이름표가 걸려 있었어요. 소나무도 몰랐던 거였어요. 거기엔 ‘솔이 나무’ 라고 씌어 있었어요.

 

“반가워, 소나무야. 나는 솔이야.”

 

소나무는 자신을 아는 아이가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많이 컸구나.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아빠가 널 심었어. 근데 네 잎이 왜 이렇게 누렇게 됐어? 내가 소나무 널 좋아하는 건 언제나 바뀌지 않는 색 때문이야. 저기 멀리 보이는 산처럼.”

 

솔이는 어딘가로 뛰어갔어요. 잠시 뒤 솔이는 물이 든 병을 갖고 왔어요.

 

”비가 와야 할 텐데, 목마르지? 먼저 이거라도 마셔.”

 

솔이가 부어준 물은 아주 적었지만 소나무는 시원했어요. 곧 소나무는 솔이가 말한 먼 산을 바라보았어요. 소나무는 그제야 알았어요. 자신은 단풍드는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 밤에는 온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비가 왔어요. 소나무는 잎과 뿌리로 빗물을 흠뻑 마셨어요. 다음날 누렇던 소나무 잎은 푸른 빛을 되찾았어요.

 

소나무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어요. 그건, 늘 푸름을 지키는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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