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사계절 1318 문고 104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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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라 정치 사회 이런 것들이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겠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애쓴 사람 때문에 지금은 한국이 자유롭다. 여러 가지 안 좋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주의라고 해서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어떤 것에든 좋은 점 나쁜 점이 다 들어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흠이 있을 거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이 겪고 싶지 않은 때는 일제강점기가 아닌가 싶다. 조선말로 말하거나 조선말로 글을 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때는 한국사람이 모두 크고 작게 일제강점기에 영향을 받았다. 가장 힘든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나 독립운동하는 사람 식구였겠지. 이런 말을 한 건 여기 나오는 시대가 일제강점기여서다. 이 책을 보고 한국에도 일본에서 작위를 받은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벼슬을 돈으로 얻은 사람이 많았다. 여기 나오는 윤형만 아버지 윤병오도 그랬다. 윤병오는 정부 사람과 친해지고 한국과 일본이 합병하는 데 공을 세우고 일본에서 자작 작위를 받았다.

 

잘사는 사람은 늘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여전히 못사는 건 지금도 다르지 않은 듯한데. 예전에는 아이가 많은 집은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기도 했다. 이건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이나 미국도 비슷했다. 입 하나를 줄이고 남은 아이라도 잘 먹이려고 그런 것이겠지만, 아들을 낳으려고 아이를 많이 낳기도 했을 거다. 수남은 여덟번째 아이다. 아들을 낳으려고 일곱번째 딸한테 수남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아이는 일찍 죽었다. 부모는 여덟번째로 태어난 아이를 다시 수남이라 했다. 수남이라는 이름은 부모가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은 게 아니구나. 조선시대 아니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도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아들을 낳으려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 수남은 가난한 집 여덟번째 딸이다. 또 한 사람 채령은 자작 딸이다. 딸이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버지가 자작이어서 모자란 것 없이 자랐다. 수남은 일곱살 때 채령이 여덟번째로 태어난 날 선물이 되었다. 채령 아버지 형만은 딸한테 하인을 선물하려 했다. 본래 데려오려는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자 그곳에 있던 수남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했다. 수남 부모는 수남을 보내고 논 서 마지기를 받았다. 수남이 간다 해도 부모가 못 가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간이 흐른 다음 수남은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하고 한번 더 말한다. 수남이 가려 한 곳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몰랐겠지, 보내는 사람은 알았겠지만. 벌써 이런 말을 하다니. 수남이 간다고 해서 간 남의 집이지만, 수남은 자신이 팔려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래도 수남은 자기 처지를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고 한글을 배우고 일본말도 배웠다. 채령이 일본에 공부하러 갈 때 수남이 함께 간다. 수남은 새로운 세상에 간다는 기대를 품었다. 채령은 공부하려고 일본에 간 게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연애하려고 일본에 갔다. 사람은 자기 처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고 부모 것이 다 제 것이다 생각하기도 한다. 채령이 그렇게 된 건 아버지 형만이 무엇이든 들어줬기 때문이기는 하다. 채령이 일본에서 독립운동하는 사람과 사귈 때 수남은 영국 사람 집에서 잠깐 일하고 영어를 배웠다. 채령이 사귀는 사람이 일본 경찰한테 잡혀가고 채령도 끌려갈 뻔했는데, 수남이 채령 대신 황군여자위문대에 간다. 수남과 채령은 많이 닮았다. 둘이 닮지 않았다 해도 채령 아버지 형만은 수남을 그곳에 채령 대신 보냈겠지. 수남은 채령이 되어 황군여자위문대에 가고 채령도 신분을 속이고 일본 사람 테라오 준페이와 미국으로 간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수남은 자작 딸 채령이라는 자리를 좋아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다시 수남으로 살거나 아니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도 괜찮았을 때도 그랬다. 그건 강휘 때문일까. 강휘는 채령 오빠로 자작인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상처로 남아서겠지. 강휘는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겠다 했는데, 강휘가 독립운동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휘 이야기는 한참 나오지 않다가 수남이 일본군 위안부로 간 곳에서 달아난 다음에 나온다. 수남은 그곳에서 달아났다. 다른 아이들은 그곳에 남겨두고. 수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일본말이나 영어를 해서였다. 공부는 어느 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구나. 수남이 혼자 달아났을 때 아쉬웠다. 다른 여자아이와 달아나는 건 더 힘들었겠지만. 내가 그런 처지에 놓였다 해도 수남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수남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도련님 강휘를 만나려고 하얼빈으로 간다. 수남은 시골에서 경성 일본 중국에도 가다니. 러시아에도 잠깐 가고 다음에는 미국으로 간다.

 

언제나 자기 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채령은 미국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준페이는 채령을 좋아했지만 좋아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채령은 자기 아버지가 준페이한테 돈을 줘서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생각했다. 채령이 미국에서 힘들게 살았다 해도 수남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남이 마음껏 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 말이다. 채령 이름으로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마쳤다. 수남은 자신이 수남이 아닌 채령으로 산다면 채령한데 큰 일이 일어난다 여겼다.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수남이 강휘를 좋아하지 않고 그대로 미국에서 살거나 한국에 돌아가도 자작 집에 가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텐데. 보는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수남이 강휘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지 못할 일을 당하고 말았으니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겠지. 수남은 늘 스스로 결정했다. 본래 그렇게 될 일이었다 해도. 아니 두번째는 달랐구나. 나중에는 안 좋게 되었지만 수남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어떤 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마음도. 수남은 새로운 세상에 기대를 품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도 잘 지냈다.

 

여자는 어느 때든 살기 어렵다. 일제강점기나 전쟁이 일어난 때는 더했겠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친일한 사람이 모두 처벌받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때는 미국에 붙었다. 채령도 독립운동한 오빠 강휘와 수남이 가지고 온 대학 졸업장으로 집안을 되살렸다. 친일한 아버지 일을 사실과 다르게 말했다. 그런 일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증명서라는 거 다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그런 것을 돈으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시대 탓으로 돌려도 괜찮을까. 세상에는 아주 착한 사람도 아주 못된 사람도 없다고 하지만.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좋겠다. 수남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독립운동하는 데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도우려 했다. 예전에 그런 식으로 독립운동 도운 사람 많았을 것 같다.

 

힘든 시대를 산 사람 이야기여서 마음 아프기도 했다. 어쩐지 안됐다 하면 안 될 것 같다. 수남이나 채령과 강휘 그리고 준페이는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았다. 좀더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테지만, 그걸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 생각하고 살면 조금이라도 나은 길로 가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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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링크로스 84번지   84, Charing cross road (2002)

  헬렌 한프   이민아 옮김

  궁리출판  2004년 01월 20일

 

 

 

 

 

 

 

 

 

 

 

 

 

 

 

 

이 책은 그다지 두껍지 않고 제목은 런던에 있는 헌책방 주소다. 내가 이 책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면 지금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 편지를 모아서 묶은 책은 많다. 편지 또한 문학이니 그런 거겠지. 나도 편지 멋지게 쓰고 싶은데 거의 재미없는 말을 쓴다. 멋지게보다 조금 재미있게 쓰려 하면 나을까. 헬렌 한프는 뉴욕에서 글을 쓰고 살았다. 헬렌은 미국에 살았고 헬렌이 책을 산 책방은 영국에 있다. 미국과 영국 우편물이 가고 오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미국에도 잘 찾아보면 괜찮은 헌책방이 있었을 텐데, 헬렌은 토요문학평론지라는 데 실린 마크스 책방 광고를 보고 책을 찾아달라는 편지를 쓴다. 나라면 무엇인가를 찾으면 딱 한번쯤밖에 사지 않을 텐데, 헬렌은 마크스 책방 사람과 스무해 동안 편지를 나눴다. 1949년에서 1969년까지. 아주 가깝지도 않지만 아주 멀지도 않은 친구 같았다. 이런 우정도 있구나 싶다. 지금은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터넷 책방에서 책을 사고 없는 책은 고객센터에 물어보거나 인터넷 안에서 찾으면 된다. 어떤 책을 열심히 찾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영국은 배급을 받았나보다. 헬렌은 그런 영국 사정을 알고는 마크스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게 음식을 보냈다. 그때는 달걀을 가루로도 만들었다. 음식을 보내도 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상하지 않는 것을 보냈겠지. 대표로 편지를 받고 쓰는 사람은 프랭크 도엘이었는데 다른 사람도 헬렌한테 편지를 썼다. 한 사람은 남편이 군인으로 남편과 살게 되고는 연락이 끊겼다. 한해 뒤에 영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생각은 해도 살다보니 연락하지 못한 거겠지.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이 아닌 남아프리카에 갔다. 그렇게 연락이 끊기고 프랭크 도엘과 가까운 곳에 살던 할머니는 식구와 살게 되어 그곳을 떠났다. 프랭크 아내가 그 할머니가 수놓은 식탁보를 사서 헬렌한테 보내고 헬렌은 할머니한테 선물을 보냈다. 영국과 미국 멀기는 해도 책방 사람은 헬렌이 영국에 한번 오기를 바랐다. 헬렌이 영국에 가려고 돈을 모았지만 늘 다른 일이 생겨서 그 돈을 써야 했다. 헬렌 친구가 마크스 책방에 가니 책방 사람은 무척 반갑게 맞았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과 여러 사람이 마음을 나누었다.

 

책을 사는 사람과 책을 파는 사람이 실제 만나는 것도 아니고 편지로 마음을 나누다니 멋지다. 책방 주인과 손님이 친하게 되는 일은 아주 없지 않겠지. 지금은 그런 사람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책이 헬렌과 여러 사람을 이어주었다. 헬렌이 마크스 책방에 편지를 쓰지 않았거나, 마크스 책방 사람이 헬렌이 보낸 편지를 받고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었겠지. 이 책도 나오지 않았겠다. 1969년 1월에 헬렌은 프랭크 도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는다. 프랭크는 맹장염이 복막염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술이 잘 되지 않았나보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일은 전화로 알려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헬렌 전화번호를 몰랐을지도. 헬렌은 그 소식 들었을 때 쓸쓸했을 것 같다. 만나지 않고도 오랫동안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그러는 동안은 즐거워도 어느 한쪽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은 마음 아프겠다. 프랭크나 다른 사람이 헬렌과 더 친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거리를 지키느라 그러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편지를 받은 헬렌은 편지를 출판사에 가져갔다. 그동안 헬렌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는데 《채링크로스 84번지》로 이름이 널리 퍼졌다. 그 뒤로 프랭크 아내나 딸과는 연락하지 않았을까. 그런 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중간에서 이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렇게 되기는 한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고 드라마랑 연극으로도 만들었다. 책이 아닌 다른 것은 어떤 식으로 나타냈을지 보고 싶기도 하다. 책과 편지 잘 어울린다. 나도 편지에 이런저런 책 이야기 하고 싶지만 책을 읽고 써서. 책을 읽고 쓰는 걸 편지라 생각하고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 예전에도 그런 생각했는데. 책도 편지라 생각하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책 좋아하겠다. 이런 인연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지도. 책이야기 하지 않아도 친구나 식구한테 편지 쓰는 것도 좋겠지.

 

 

 

 

 

 

 

편지

 

 

 

네 마음과 내 마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한테는 짐이 되기도 한다

 

짐이라 해도

나 대신 너한테 보낸 내 마음이

덜 쓸쓸하기를

 

내 욕심,

네 마음보다 내 마음을 더 생각하다니

미, 안, 해,

내 마음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 마, 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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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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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바로 못 보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게 소설인지 진짜인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이지만 416 세월호참사는 실제 있었던 일이군요. 어느새 두해가 넘게 흘렀습니다. 저도 그때 잠깐 라디오 방송에서 모두를 구조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한 걸까요. 그리고 왜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건지. 그 말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거겠지요. 위험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사람들을 바로 밖으로 나오게 해야지, 타이타닉호가 가라앉은 옛날도 아닌데. 과학이 발달해도 사고는 일어나는군요. 아니 세월호참사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옛날에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 때문에 사고가 자주 일어났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건물을 적당히 짓고 배도 그런 게 있었겠지요. 무슨 사고가 일어나겠어, 하는 마음도 문젭니다. 안전점검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도 잘 해야지요. 많은 사람 목숨을 책임져야 하니. 책임지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군요.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쉽습니다. 구조라도 빨리 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바다는 땅하고 다르다 해도.

 

처음에 나경수는 ‘잠수사는 입이 없어야 합니다’고 해요. 이건 진짜겠지요.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니. 이 책을 보고 2014년에 잠수사는 생각도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난 유월에 잠수사 김관홍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책을 보고서야 조금 알게 됐습니다. 바닷속에 들어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배 안에서 시신을 모시고 나오는 일은 쉽지 않을 거예요. 얼마 안 되는 사람이 하루에 여러 번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더군요. 손발이 맞아야 일이 잘 되겠지만, 좀더 많은 잠수사가 돌아가면서 일을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었습니다. 몇 사람한테 오랫동안 일을 시키는 곳도 있군요. 잠수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 잠수병에 걸렸습니다. 잠수병뿐 아니라 마음도 다쳤습니다. 산업잠수부는 시신을 모시고 나오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 일은 꾸민 이야기가 아닐 것 같습니다. 소설로 보아야 하는데도 실제 일어난 일로 보았습니다. 이건 소설이기만 한 건 아니군요. 수학여행 가던 많은 아이가 죽고 그 아이들 죽은 모습이라도 만나려고 많은 부모가 기다렸습니다. 나경수가 맹골수도 바닷속에서 윤종후와 강나래, 공영지와 함께 나온 일은 진짜 같았습니다. 윤종후 친구 조현, 강나래 언니, 공영지 동생은 많은 사람 모습이겠지요.

 

이 소설은 잠수사 나경수가 2014년 4월 21일에서 7월 6일까지 맹골수도에서 함께 일하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 받는 류창대 잠수사를 위해 쓴 탄원서예요. 나경수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잠수사 약속을 깬 거예요. 끝까지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는가 하면 깨어야 하는 것도 있지요. 그때 잠수사 한분이 목숨을 잃었다는 말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조심해서 했을 텐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겠지요. 정말 돈 이야기도 나왔는지. 그런 말은 누가 퍼트린 걸까요. 사람이 먹고살려고 일할 때도 있지만, 재난이 일어난 곳에서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움직이지 않나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잠깐 생각났습니다. 거기도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갔더군요. 잠수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왜 그렇게 다 비슷한지. 아니 나라에서 바로 대책을 마련하는 곳도 있겠지요. 이 책을 보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나라를 너무 믿지 말자는. 나라가 있기에 한국사람으로 살지만, 나라가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다 마음을 쓰지 않잖아요. 신도 그렇지요. 기대 많이 하지 않고 살면 실망도 덜하지 않을지. 나라에서 뭔가 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합치면 더 좋을 듯합니다. 재난이나 큰 사고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하니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나라 힘을 빌려야겠군요.

 

이런저런 일처럼 세월호참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보상금을 얼마나 받네 하는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건 세금으로 주는 것도 아니더군요. 2014년 4월 16일에 식구를 잃은 사람 시간은 멈춰있을 거예요. 그 분들 아픔을 헤아렸으면 합니다. 맹골수도에서 실종자 찾기와 시신을 모시고 나온 잠수사도. 잠수사도 그 일을 하고 몸뿐 아니라 마음도 다쳤습니다. 마음은 쉽게 낫지 않기도 합니다. 세월호참사로 삶이 아주 바뀐 분도 있겠지요. 제대로 조사를 했으면 합니다. 그런 것을 안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지 않겠지만,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면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 애쓰겠지요. 알아도 사람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이런 생각하니 조금 우울하네요. 그렇다 해도 사람에 희망을 갖고 싶습니다.

 

 

 

희선

 

 

 

 

☆―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아서 304명이 죽은 거예요. (……) 장관은 장관답지 못했고 해경은 해경답지 못했고 기자는 기자답지 못했어요. (……) 전쟁으로 치자면 잠수사들이 있는 곳이 최전선이고 나머진 모두 후방이라고.”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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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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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이 대상을 받은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작품집》을 읽고 바로 김금희 소설을 만났습니다. 한국소설 읽는 건 힘들어요. 뭐가 힘드냐고 묻는다면 뚜렷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아니 예전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읽기만 하고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 말았으니까요. 지금은 잘 몰라도 쓰려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난 왜 한국소설을 잘 읽지 못할까 합니다. 여러 사람 것보다 한 사람이 쓴 것을 죽 보는 게 좀 낫구나 했는데.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와 <조중균의 세계>를 다시 보니 김금희가 쓴 글이구나 하는 걸 조금 느꼈는데. 이상한 일입니다. 양희 말투가 떠올라요. “그렇죠, 오늘도.” 앞에는 다른 말이지만. 책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상상하겠지요. 자신한테 익숙한 곳을 떠올리고 거기에서 이야기가 펼쳐지잖아요. 서울 종로나 맥도날드 아는 사람은 그곳을 떠올렸을 것 같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맥도날드에는 한번도 가 보지 않았으니까요. 햄버거를 한번도 안 먹어봤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런 곳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저는 어디든 잘 가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먹으러 가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상상할 수 없다는 건 아니예요.

 

처음에 나오는 양희는 조중균이나 세실리아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번에 생각한 건 필용이 열여섯해 전에 양희를 좋아하기로 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예요. 필용은 가난한 양희를 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어요. 양희는 자신이 가려는 길을 갔어요. 필용은 그것을 멋지다 했습니다. 필용은 그러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뭐가 많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좌천당한 곳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않을까 싶어요. 아쉬워도 옛날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 <조중균의 세계>에 나오는 조중균은 여전히 바틀비를 떠오르게 합니다. 바틀비를 만난 적은 없지만. 조중균이 일터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그 돈을 돌려받으려 한 일, 대충해도 될 교정을 꼼꼼하게 하려한 일. 조중균은 대학에 다닐 때 이름만 적으라는 시험에 이름을 적지 않고 시를 적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점수받고 싶지 않아서. 어쩐지 바틀비와는 달라 보이는군요. 그런데 바틀비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모두가 그냥 하는 일을 조중균은 하지 않으려 해서겠지요. 그렇게 해서 결국 일자리를 잃고 맙니다.

 

대학 때 요트 동아리였던 사람들이 연말에 모여서 한 사람 이야기를 해요. 그건 <세실리아>예요. 거의 잊다시피 하고 사학년 때는 한 친구와 사귀어서 따돌렸으면서. 세실리아가 막냇동생처럼 엉긴다고 해서 엉겅퀸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해요. 정은은 세실리아를 찾아봐요. 인터넷에서 찾으니 설치미술가로 바로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인터넷 안에서도 찾기 힘든데, 세실리아는 무언가 되었군요. 그런 세실리아는 양희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한테 관심을 바라고 가까이 붙는 거. 다시 생각하니 양희는 그러지 않았군요. 마음은 있어도 남이 자신을 싫어하리라 생각하고 거의 그러지 않지요. 세실리아가 혼자고 쓸쓸해 보여도 자기 갈 길을 잘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월>은 잘 모르겠습니다. 빚 때문에 여름을 이모가 있는 서해 한 섬에서 한식구가 지내는데.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요. 이모는 그 섬에서 나오지 않고, 섬 사람은 간호사인 이모를 선생님이라 해요. 주사는 무얼까 싶습니다. 안 좋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픔을 잊으려고 이모한테 주사를 놔달라는 사람이 있거든요. 여자아이가 선글라스를 쓰는 건 울어서 토끼처럼 빨개지는 눈을 숨기려는 거였다니.

 

다음 이야기 <고기>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한 긴장감을 줍니다. 남편이 잡은 건 무엇일지. 여자한테 상한 고기를 판 건 실수다 말하고 없던 일로 해달라고 마트 남자가 사정하지만 여자는 듣지 않습니다. 남자는 일을 그만두고 여자를 찾아옵니다. 주머니에 오른손을 넣고. 여자는 남자한테 남편이 가지고 온 자루를 풀어봐달라고 해요. 남자가 그것을 보고는 그냥 고기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거기에서 끝납니다. 남자는 왜 여자를 하루 내내 기다리고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는지. 거기에 칼이 들어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여자는 마트에서 고기 유통기한을 속였다고 본사에 알렸습니다. 남자는 그곳에서 일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이도 있으니 좀 봐달라 했지요. 실제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통기한 표시를 다시 하라고 한 사람이 정말 있었는지 일하는 사람 실수였는지. 남자가 그 일을 한 건 아니예요. 남자는 정육팀장으로 책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를 기다리는 일>과 <고기>에는 비슷한 아버지가 나오는군요. 엄마와 딸을 때리는. 그것을 보면서 김금희는 이런 것을 왜 썼을까 했습니다. 경험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군가한테 들은 이야기인지. 개는 이름이 개예요. 여기에도 수수께끼 같은 일이 있군요. 개가 죽었다는 건 알겠지만 아버지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어요. 짐작은 갑니다. 그렇다 해도 그게 아니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쩐지 소설이 우울합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노래 제목, 아니 시 제목이던가요. 시를 노래로 만들었던 것 같은데. <보통의 시절>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허탈한 웃음이 나는 이야기예요. 원수라고 생각한 사람이 이제와서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다 했거든요. 그런 일 실제 있을 것 같아요. 김대춘은 왜 자신이 목욕탕에 불을 지르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예전에 그 말을 했다 해도 제대로 듣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노숙자였으니까요. 마지막은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는 뭐라 말하면 좋을까요. 사람이 고양이처럼 사는 것 같기도 했어요, 모과장이. 모과장은 혼자 아니 고양이와 사는 사람으로 고양이 때문에 살았어요. 모과장은 고양이가 혼자 산다는 것을 생각하고 일터에서 혼자 행동했는데, 도시 고양이가 집을 나간 뒤에는 모여서 산다는 말을 듣고 조금 달라져요. 앞으로는 모과장도 다른 사람과 함께 회사에 시위할지도. 함께 해서 괜찮은 것도 있지만, 함께 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지요. 생각없이 끌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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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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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내가 만난 책에는 소설이 가장 많을 거야. 또 이런 말로 시작하다니. ‘제7회 젊은작가상 작품집’을 읽어서야. 지난해에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아. 소설을 많이 만났지만 모르는 게 많다고. 한해가 지나고도 비슷하다니. 어쩐지 시간이 더 흘러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하네. 자신이 경험을 다하지 못해도 책을 보고 경험하기도 하지. 책을 보면 자신을 그 안에 나오는 사람에 대입해서 읽기도 하고, 그게 아주 안 되는 것도 있어. 그럴 때는 그냥 바라보는 게 낫겠지. 바라보기만 하면 조금 먼 듯한 느낌이 들지만, 어쩌겠어 대입이 되지 않는 걸. 여기 실린 소설 일곱편은 젊은작가상을 받은 거야. 대상 하나에 그냥 상 여섯, 대상 다음은 우수상이라 해야 할까. 젊은작가를 알리려고 이런 상을 만들었겠지. 젊은 평론가도 알리려는 것 같아. 내가 이름 기억하는 평론가는 많지 않아. 소설가보다 평론가 이름이 더 알려지지 않았지. 아는 사람은 많이 알지도 모르겠군. 한국소설을 보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지도. 평론가가 한국소설만 읽고 평론을 쓰는 건 아니겠지만.

 

앞에서 내가 가장 많이 본 게 소설이라고 했잖아. 한동안 한국소설은 읽지 않았어(이 말도 처음이 아니군). 한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는 것도 괜찮고, 여러 사람이 쓴 단편소설을 읽는 것도 괜찮지. 상 받은 소설이니 잘 읽어봐야겠다 했는데, 대상 받은 김금희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부터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심사를 본 작가와 평론가는 좋다고 말하던데. 필용이 퀸 노래를 듣고 몇번 운 게 생각나는군. 노래 제목을 한국말로 써서 그게 어떤 노래인가 싶고. <보헤미안 랩소디>는 알지만. 영어를 한국말로 쓰는 거 좋아하지만 노래 제목은 영어 표기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싶어. 퀸을 알아도 노래는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렇게 썼다 해도 잘 몰랐을 것 같기는 해. 소설 제목 알았을 때 생각한 이야기와 많이 달랐다고 해야겠어. 아니 내가 모르는 거고 그런 연애도 있는 거겠지. 필용이 사는 게 힘들구나 생각해야 할지. 아니 그건 필용이 잘못해서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으로 옮기게 된 거야. 그 일 때문에 필용이 맥도날드에 가고 열여섯해 전에 만난 양희와 다시 만나. 둘이 함께 만난 건 아니고 필용이 양희를 알아본 거야. 필용은 양희를 좋아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양희가 필용한테 좋아한다(사랑한다 했는데) 했을 때 필용은 자기 마음은 말하지 않고 양희 마음이 그대론지만 확인하려 했어. 좋아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양희는 필용한테 그저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모든 게 드러나는 한낮이어서 필용은 양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지도.

 

다음 이야기도 연애라 해야겠군. 기준영 소설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는 오십대 초반 남자가 스물다섯살 대학생을 좋아해서 겪는 초조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자기 나이 때문에 확실한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건지, 잠깐 만나려 했는데 자꾸 그 애한테 빠져드는 자신한테 당황한 건지. 알 수 없는 마음이야. 정용준 소설 <선릉 산책>은 ‘나’가 발달장애인을 하루 동안 돌보는 이야기야. 처음에는 아홉시간이었는데, 세시간을 더하게 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시간이 늘어나자 아주 달라져. 그 정도도 못할 게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처음부터 몇시간 남았다 시간을 쟀다는 게 떠올랐어. 정용준이 말하고 싶은 건 앞이 아니고 뒤일지도 모르겠어. 서로 이해한 것 같은 부분이 아니고, 시간이 늘어나 화가 난 부분. 가끔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게 자신들한테 축복이다 말하는 사람을 보기도 하는데, 늘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좋을 때는 아주 잠깐이고 힘든 시간이 이어지겠지.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군.

 

장강명이 여러 소설을 썼다는 건 알았지만,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야. <알바생 자르기>는 요즘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겠지. 회사는 돈을 적게 주고 사람을 쓰려 하잖아. 네시간 일하고 여기 나온 것만큼 받는다면 괜찮은 일자린데. 지금은 학교 다닐 때 빚을 진다고 하더군. 대학등록금이 비싸서 그렇겠지. 사회구조가 사람을 안 좋게 만든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맡은 일 성실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내가 별로 억척스럽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김솔 소설 <유럽식 독서법>은 잘 모르겠어. 환상 같은 이야기야. 앞에 나온 이야기가 뒤에 다시 나오고. 이것도 잘 보면 좋다고 말하는데 내가 이런 소설을 재미있게 보는 때가 올지. 거미와 다리를 다친 미얀마 여자아이. 최정화 소설 <인터뷰>, 오한기 소설 <새해>. 제목만 말하고 말다니. <인터뷰>에 나온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한 건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서였을까. <새해>는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조금 우스워 보이기도 해. 소설을 쓰려는 ‘나’의 친구 한상경이. 어쩌면 둘은 하나일지도.

 

이것도 소설을 보고 쓴 거냐, 할지도 모르겠어. 내가 먼저 이런 말을 하다니. 가끔 소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잘 모르겠어. 잘 알기 어렵다고 아주 안 보는 것보다는 보는 게 나을지(한국 단편소설). 소설 속에 더 들어가서 보면 나을까. 그건 꽤 힘들 것 같아. 감정을 많이 써야 할 테니.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해도 잘 듣기라도 하면 아주 조금 알지도 모르지. 앞으로는 더 잘 들어볼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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