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창비시선 406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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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시를 보기 시작했을 때 정호승 시인 이름을 알았을 것 같은데 시집은 한권도 만나지 못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만난 책을 다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름을 알고 시인이라는 걸 아는 걸 보면 시집 한권쯤 만났을 것 같은데. 어른을 위한 동화나 산문을 만난 기억은 있는데, 시집을 만난 기억은 없다니 이상합니다. 예전에 제가 만난 시집에 그림이 있어서 그것을 시집이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시를 모아둔 시집은 만나지 못했을지 몰라도 시는 여러 편 만났어요. 다른 책에 실린 건지 정호승이 쓴 책에 실린 건지. <슬픔이 기쁨에게> <수선화에게>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새벽편지> <우리가 어느 별에서>……. 더 봤을 텐데 생각나지 않습니다. 정호승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저도 아는 걸 거예요. 안다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눈부처라는 말이 담긴 시도 있군요. 시 제목이 ‘눈부처’였던가요. 정호승은 사랑을 많이 노래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중요한 것일지 몰라도 저는 어색합니다. 아니 예전에는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니 지금처럼 된 거겠지요.

 

 오랫동안 어떤 것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하기보다 하다보니 시간이 흐를 때가 많겠지요. 아니 꼭 그렇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멋지게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사람은 많아도 늘 시인이거나 소설가인 사람은 적을 거예요. 시인은 늘 시를 쓰는 사람이고 소설가는 늘 소설을 쓰는 사람이죠. 정호승은 시인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마흔해가 넘었어요. 시에서 멀어지거나 시를 쓰지 않아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정호승은 다시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지 않고 살 수 없어서 그랬겠지요. 시인은 시를 쓰고 자기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도 위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이 경험한 일을 시로 써도 그것은 시인만 겪는 일이 아니지요. 시뿐 아니라 소설도 그렇군요. 정호승 하면 ‘수선화’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수선화가 여러 번 나와요. 정호승은 수선화를 많이 좋아하는가 봅니다. 봄이 오면 어떤 꽃보다 수선화를 보고 이번에는 어떤 시를 쓸까 생각할지도.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굴비에게>, 29쪽

 

 

 

 제목은 ‘굴비에게’인데 비굴해지지 마라 말하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정호승은 굴비한테만 돈이나 힘에 굽실거리지 마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모두한테 하는 말이겠지요. 정호승 시에는 ‘~에게’라는 제목이 많습니다. 여기에도 그런 시가 여러 편 실렸어요. ‘벌레 자작나무 거울 내 작은 어깨 구경꾼 여행자 벗’에게. 시인은 나이 드신 부모님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시인만 나이 드신 부모님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군요). 정호승도 부모님을 그리는 시를 썼어요. 그런 시가 이 시집에만 실린 건 아니겠지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려놓기’ 같은, 용서와 사랑도. 종교스런 시도 담겼습니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에서, 45쪽)

 

 

 

 몇달 전에 시집 제목을 보고 왜 희망을 거절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집 제목과 같은 시를 보고 중간에 빠진 말을 알았습니다. 정호승은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라는 거겠지요. 어둠이 있는 건 빛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궂은 날을 모르면 맑은 날이 눈부시다는 거 모를 거예요. 절망을 알아야 희망도 알겠습니다. 살아갈 일이 막막하고 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겠지요. 그런 일은 삶에 몇번이고 찾아옵니다. 그때를 잘 견디고 버티면 희미할지라도 작은 빛이 보일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 자주 우울함에 빠져도 다시 괜찮아집니다. 늘 가라앉기만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시를 만나도 기분이 괜찮아집니다. 시를 자주 만나고 싶기도 한데, 가끔이라도 만나려고 애써야겠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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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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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오쿠이즈미 히카루)를 보고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한번 만나볼까 했다. 생각만 하고 바로 책을 만나지 못했는데, 마침 그때 소세키가 마지막에 쓰고 끝맺지 못한 《명암》이 나왔다. 그전과 그 뒤에 다른 책을 몇권 샀지만 그건 아직 못 보았다. 마지막에 쓴 것보다 먼저 쓴 것을 보는 게 더 나았을까. 《풀베개》는 보통소설과 달라 보였는데 《명암》도 좀 그렇다. 소세키 소설은 줄거리보다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는데, 난 여전히 그것을 잘 즐기지 못한다. 이야기가 시작하고 펼쳐지고 어떤 식으로든 끝나야 하는데. 끝이 나도 ‘이게 뭐야’ 할 때도 있다. 《풀베개》가 그랬던가. 작가 이름도 알고 책도 여러 권 봤지만 잘 모르겠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 봐도 모르겠다. 책을 아예 읽지 않고 글을 보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내가 책을 보고 그 책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그런 글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책을 보면서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생각하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한번 더 볼까 했는데 이건 그러지 않았다. 첫째는 책이 두꺼워서고, 둘째는 다시 여러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기운이 감도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서다. 소세키 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소설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쓴 소설은 담백했다. 담백은 “①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 ②맛이나 빛이 산뜻함. (내 국어사전)”이다. 먹을거리에서 담백한 맛은 간이 세지 않고 심심한 맛일 것 같은데. 글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상할까. 소세키는 서른여덟에서 세상을 떠난 마흔아홉까지 소설을 썼다. 난 글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게 쓰는데, 소세키는 좀 달라졌겠지. 다른 소설에서는 한사람 마음밖에 모르지만 여기에서는 여러 사람 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쓰다 요시오는 소세키 소설에 나오는 여러 사람을 섞어놓은 것 같단다. 다른 소설을 봤다면 그런가 했을 텐데. 소세키는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쓰지 않았는데 이 소설 《명암》에는 썼다. 아니 소세키가 여자 마음을 알고 썼다기보다 소세키 자신이 생각하는 걸 쓴 것 같았다. 인물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기보다 작가가 제어한다고 할까. 그런 게 어떤 건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좀 들었다.

 

 줄거리를 아주 정리 못할 건 없다. 쓰다 요시오와 오노부는 결혼하고 반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지냈다. 쓰다가 치질 수술(이건 소세키 경험이다)을 받으러 병원에 가고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쓰다와 오노부가 여러 사람을 함께 또 따로따로 만난다. 쓰다 친구 고바야시는 오노부한테 쓰다 이야기를 흘린다. 쓰다 동생 오히데는 쓰다가 오노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 말은 오노부가 병원에 가서 병실 밖에서 우연히 들었다. 고바야시는 그렇다 해도 동생 오히데는 왜 그랬을까. 오히데는 오노부와 쓰다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시샘한 건지도. 오히데는 얼굴이 예뻐서 지금 남편과 결혼했다. 오히데 남편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듯했다. 이렇게 쓰다보니 오히데 마음을 조금 알게 되었다. 고바야시는 남한테 미움받는 걸로 자기 자신을 알렸다. 일부러 미움받으려 안 좋은 말을 하다니. 좋아하는 것과 미워하는 건 아주 다르지 않구나. 고바야시는 미움받기보다 사랑받고 싶은 건지도.

 

 오노부는 쓰다를 보고 자신이 먼저 결혼하고 싶다 생각하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오노부는 쓰다가 자신을 좋아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힘들게 여겼다. 오노부가 쓰다를 처음 봤을 때는 다 좋게 보았는데, 함께 살면서 안 좋은 점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오노부는 자존심 때문에 고모네 식구한테 말하지 않았다. 오노부 자신은 행복하다고 한다. 오노부는 고바야시나 오히데한테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듣고 쓰다한테 그것을 제대로 묻지 않는다. 그런 거 보니 좀 답답했다. 이건 쓰다도 마찬가지였다. 쓰다는 오노부와 결혼하기 전에 사귄 기요코를 잊지 못했다. 쓰다가 기요코를 만나 다시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쓰다는 기요코가 왜 갑자기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했는지 알고 싶었다.

 

 해설을 쓴 강상중은 오노부를 밝음(明)이라 하고 기요코를 어둠(暗)이라 했다. 아내가 아닌 아내가 될 뻔한 사람을 만나면 불륜이 되겠지. 소세키 소설에는 불륜이 나오기도 하는데, 소세키는 이 소설을 어떻게 끝내고 싶었을까. 쓰다는 오노부 몰래 기요코를 만나러 온천여관에 간다. 이만큼 이야기하는 것도 꽤 길었는데, 남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였을지. 질질 끌지 않고 끝냈을 것 같기도 한데, 제대로 말하지 않는 쓰다를 보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이 소설 읽기도 힘든데 쓰기는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소설 써서 소세키가 일찍 죽은 건 아닐지. 별 생각을 다했다. 쓰다와 오노부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할 때 상대를 떠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현실에도 그런 사람 있을까. 있으면 엄청 피곤할 것 같다. 소세키가 그런 경험을 해서 소설에 쓴 것인지, 실험한다 생각하고 그렇게 쓴 것인지. 상대 마음을 떠 보는 것은 지금도 많이 나온다. 소세키는 일백년 전에 지금 나오는 소설과 다르지 않은 소설을 썼다고 봐야겠구나. 이런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소세키 소설 만나볼 만하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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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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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 발달하고 기계가 사람 일을 대신하게 됐지만 아직 사람과 비슷한 로봇은 말들지 못했다. 지금은 만들지 못했지만 언젠가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다. 겉모습은 사람과 비슷해 보여도 만져보면 좀 다를까. 아니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과 비슷하면 로봇의 권리도 인정해줘야 할 테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먼저 하다니. 프로그램된 감정이라 해도 정말 그것뿐일지 의심하지 않을까. 의심하지 않고 로봇을 그저 물건으로만 보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 만화에는 사람과 거의 똑같은 로봇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이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마란 법은 없다. 시호는 그러지 않았지만. 은결이 명정이 아닌 시호와 함께 살았다면 그런 일도 있었을지도. 소설은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은결은 명정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고 반년 뒤에 온 것으로 로봇이다. 명정 아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만든 샘플로 ROBO-a13186이다. 명정은 둘째 아이가 생기면 붙이려한 이름을 로봇한테 붙였다. 그 이름이 은결이다.

 

 세탁소로 가는 길은 복잡하다. 그건 그곳에 사는 사람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명정은 혼자 세탁소를 했는데 은결이 오고는 함께 일했다. 일찍 다른 나라에 떠나보낸 아들이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명정은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명정은 은결이 사람이 아니다 자주 생각한다. 은결은 세탁소에서 일을 하고 그곳에 오는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배운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사람과 거의 비슷한 로봇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신기하게 보기는 했다. 은결이 세탁소에서 일한다는 걸 알고 여러 사람이 오는데 거기에는 시호와 준교도 있었다. 시호와 준교가 은결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시호와 준교는 자랐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은결은 시호한테 어떤 감정을 느꼈는데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어쩌면 그건 더 빨리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호가 그걸 느끼고 자신은 꿈을 꿀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은결한테 말했을 거다. 사람과 로봇이면 사람이 더 좋아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런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짧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긴 시간 동안 명정은 은결과 함께 살았다. 명정은 은결이 있어서 덜 쓸쓸하지 않았을까 싶다. 명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앞으로 은결은 어떻게 살까 했다. 은결을 준교가 다니는 대학에 기증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은결이 사람 같아서 내 마음이 아팠나 보다. 명정이 없어도 은결 혼자 살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른 사람이 그걸 그대로 보고 있지 않았겠지. 은결이 거의 죽으려고 한 건 명정이 죽은 게 슬퍼서였는지 앞으로 살 일이 슬퍼서였는지. 은결로 살 수 없을지도 몰라서였을지도. 말로 하지 않았지만 은결도 슬픔을 느꼈으리라고 본다. 어딘가 고장났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로봇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고 로봇도 기계여서 언젠가는 멈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보다 오래 살지만 언젠가는 멈추겠지. 멈추는 것과 죽음은 다르다. 기계는 고장난 걸 고치면 다시 움직인다. 기억을 지우고 프로그램을 다시 깔면 그건 다른 거다. 앞에 것은 죽은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람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싶다. 목숨 있는 건 마음이나 감정이 있다. 기계는 어떨까. 은결은 사람 마음이나 감정을 알려고 했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로봇이라면 그렇게 되기 쉽겠다. 언젠가 과학이 앞으로 나아간다 해도 사람 같은 로봇은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이 기계몸을 가지고 오래 살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까. 그건 그것대로 별로다. 마지막 부분 보니 조금 다르지만 영화 <가위손>이 생각났다. 거기에서는 할머니가 손녀한테 가위손 이야기를 해주던가. 여기에서는 은결이 시호와 준교 손녀한테 말한다. 은결이 시호와 준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는 생각을 하니 안쓰럽다. 은결은 사람이 아닌데, 난 은결을 보통 사람보다 오래 사는 사람처럼 생각했다. 언젠가 은결이 멈추면 그대로 보내주면 좋겠다. 더 쓸쓸하지 않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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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나는 연필이다 : 영원을 꿈꾸는 연필의 재발견

  박지현

  퓨처미디어 2017년 03월 13일

 

 

 

 

 

 

 

 

 

 

 

 

 

 

 

 글자를 공부할 때 연필을 써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처음부터 연필이 아닌 다른 걸로 글씨 쓰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연필이 세상에 나오고는 거의 쓰지 않았을까. 나도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과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연필을 썼다. 볼펜이 아닌 연필로 글씨를 쓰게 하는 건 글씨를 잘 쓰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연필을 잘못 쥔 아이를 혼냈던 것 같다. 젓가락도 그렇고 연필도 잘 쥐어야 한다니. 글씨 쓸 때는 바르게 쥐어야 해도 그림은 좀 다르겠지. 난 연필 하면 떠오르는 일은 없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하나 생각났다. 난 각진(육각형) 연필보다 동그란 연필을 썼다. 내가 산 건지 누가 사준 건지 잘 모르겠는데, 각진 연필이 쓰고 싶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동그란 연필은 내가 산 게 아닌 것 같다. 연필을 깎으면 나무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그것도 별로 못 맡은 것 같다. 내가 쓴 연필은 삼나무로 만든 게 아니었나 보다. 나무냄새가 나는 것도 써 봤는데 내가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난 초등학교에 다닐 때 사프펜슬을 쓴 것 같다. 연필도 쓰고 그것도 썼겠지. 중학교에 들어가고는 연필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나한테 연필이 있다. 얼마전까지는 연필보다 샤프펜슬로 거의 썼는데 가끔 연필로도 쓴다. 그 연필도 나무냄새는 나지 않는다. 내가 샤프펜슬이나 연필로 쓰는 건 편지다. 펜으로 편지지에 쓰기 전에 쓰는 걸 말한다. 그렇게 해도 편지지에 쓸 때 틀리게 쓰거나 한줄 빼놓고 쓸 때가 있다. 그때는 앞뒤 말이 어떻게 하면 이어질까 잠시 생각한다.

 

 컴퓨터, 휴대전화기 때문에 손으로 글씨 쓰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아직 펜뿐 아니라 연필이 나온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을 글로도 쓴 거다. 박지현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2001년에 우연히 헨리 페트리카가 쓴 《연필》을 보고 연필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때 생각하고 바로 만들지 못하고 열세해 만에 꿈을 이뤘다. 연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이 꿈을 이룬 이야기기도 하다. 《연필》을 쓴 헨리 페트리카도 대단한 듯하다. 그때는 연필이 어떤지 쓴 사람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연필은 정말 많은 사람과 함께 할까. 어릴 때만 쓰고 자라고는 거의 쓰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그림 그리거나 건축하는 사람은 여전히 연필을 쓰겠지만. 난 그림을 그리지 않는데도 연필이 있구나. 사실 내가 가진 연필은 누가 주거나 길에서 주운 거다. 주운 게 많은 건 아니고 두세개쯤 된다. 다 쓰지도 않은 연필이 길에 떨어져있어서 주웠다. 잘 쓰지도 않으면서 그걸 줍다니 그런 나도 좀 웃긴다. 지금 쓰는 샤프펜슬도 예전에 책방에서 책 사고 받은 거다. 학교 다닐 때 쓰던 건 오래돼서. 그것도 버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몽당연필도 있다. 어렸을 때 몽당연필은 볼펜 깍지에 끼어서 썼다. 쓰지 않아도 버리지 못하다니. 그건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몇해 전에는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 책은 말만 듣고 아직 만나지 못했다. 박지현이 만난 사람에는 그 책을 쓴 데이비드 리스도 있다. 연필은 누구나 깎을 수 있는데, 연필 깎기 전문가라니 재미있기도 하다. 그걸 심각하게 여기기보다 재미있게 생각하는 게 낫겠지. 데이비드 리스는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한다. 연필을 깎기 전에는 체조를 하고 깎은 나무도 비닐봉투에 넣어서 다시 보낸다. 그런 것도 재미있게 보였다. 난 어렸을 때 내가 연필을 깎았다. 아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나 1학년 때는 엄마가 깍아줬던 것 같다. 언제부터 내가 연필을 깎았을까. 그런 것이 생각나면 좋을 텐데. 연필심으로 조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달튼 게티는 목수로 연필심 조각은 그냥 하는 거다. 조각한 것을 팔지 않고 전시하고 싶다 하면 빌려주고 기증한다고 한다. 연필심으로 조각을 한다니.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돌려서 여는 알루미늄 병뚜껑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도 그거 할까. 작은 것이나 버리는 것도 잘 보면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 작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아내면 더 멋지다.

 

 요새 연필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보이기도 하던데, 이 책이 알맞은 때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황성진은 <맑은 연필>이라는 잡지를 만드는데 글을 연필로 쓰고 책도 손수 묶었다. 그건 많이 만들지 못하겠다. 그것을 보고 그런 식으로 편지나 글을 써서 친구한테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연필로 편지 쓰지 않는 건 번지기도 해서다. 번지지 않는 연필심도 있을 텐데. 잉크로 쓴 글보다 연필로 쓴 글이 더 오래간다는 말도 있다. 흑연은 16세기에 양치기가 발견했다. 영국 브로우델 광산은 연필 고향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아버지는 연필 공장을 했고 소로도 그 일을 도왔다. 소로가 만든 연필 질이 좋았다고 한다. 그때는 흑연이 사각형이었다. 연필은 참 단순하지만 그것으로 만들어진 건 아주 많을 거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니. 연필 껍질로 그림을 나타낸 사람도 있다. 스페인에서 영국 런던으로 간 일러스트레이터 마르타 알테스다. 그건 손으로 연필을 깎은 게 아니고 연필깎이로 깎은 거다. 그것 또한 새로운 것을 찾아낸 것과 같다.

 

 그림 잘 못 그리지만 이 책을 보니 연필로 그림 그려보고 싶기도 했다. 연습하면 그림 조금이라도 잘 그릴까. 예전에는 만화영화 그림(동화 : 움직이는 그림)을 연필로 그렸는데 지금은 거의 컴퓨터로 한다. 연필로 그리는 곳이 한국에 있다니. 연필은 빨리보다 천천히 하게 만든다. 연필로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박지현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이 책을 쓴 것도 그래서겠다. 흔하고 작은 사물을 깊이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면 무언가 깨달을지도. 내가 그것을 다 안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생각해야겠다. 흔하고 작은 것에도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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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7-09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연필 깎기의 정석> 다시 읽고 있는데 연필 얘기 잔뜩 하시니 반갑네요^^ 사기 그러시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시죠? 상당히 재밌는 책입니다. 데이비스 리스가 만화 그리던 사람이라 그런지 글 위트도 상당합니다^^ 단지 손과 칼로만 깎는 게 아니고 연필깎이도 사용합니다.
연필이 대다수 육각형인 이유는 둥근 축보다 육각형일 때 목재가 덜 들고 떨어질 확률이 낮은 실용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구가 많아지면서 연필도 실용성보다 디자인을 더 따지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제 경험상 연필로 쓴 글은 오래 되면 뭉개지고 흐릿해져서 20년 정도 지나면 알아보기가 어려워요. 펜보다 더 오래가는 건 특이한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엽서나 편지 보낼 때 상대가 알아보기 쉽게 저는 붓펜이나 컬러펜을 씁니다 :)

또 제 경험상 모든 연필은 깎으면 바로 나무향이 나던데요. 깎은지 좀 지나면 향이 금방 사라져서 기억을 못 하시는 듯^^; 좋은 향나무로 만든 연필은 확실히 향이 더 오래가고 진하죠.
연필이 좋긴 한데 장시간 쓰면 손가락이 못 생겨지고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혀 오래 쓰기 참 그래요ㅜㅜ 전 작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긴 하지만. 그래서 악수하는 거 꺼려합니다.ㅎ;

그림그리기 쉽게 하고 싶으시면 최근 나온 정은혜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한 번 살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접근하기 쉬운 그림을 보여 주더군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2556653

희선 2017-07-12 01:35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쓴 사람이 만난 데이비드 리스도 재미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리스가 쓴 책에서는 즐거움을 더 많이 줄 것 같군요 연필도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제가 아는 건 하나뿐입니다 많이 쓰는 HB, 하나 더 있군요 4B 연필... 둥근 것보다 육각형일 때 나무가 덜 드는군요 육각형은 깎아내는 걸까요 둥근 것도 바로 그렇게 만들 수 없을 것 같은데... 공장에서 기계가 잘 만들어내겠죠 옛날에는 사람 손이 가는 것도 있었을지... 연필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렇게 했겠군요

연필로 써도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니... 어디에서 연필로 쓴 게 오래 갔다는 말을 들은 건지... 라디오 방송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등학생 때 쓴 공책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게 하나도 없네요 갑자기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저도 편지 엽서는 거의 펜으로 써요

어쩌면 나무냄새 맡아본 적 있을 텐데 지금 쓰는 건 잘 안 나요 그런 글 보고 그건 삼나무가 아닌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좋은 향나무로 만들면 비쌀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러고 보니 요즘 연필 얼마나 하는지 잘 모르는군요

손가락에 굳은살 박히게 하는 건 연필만이 아니죠 어떤 것으로든 글씨 오래 쓰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한동안 글씨를 잘 쓰지 않았을 때는 굳은살이 조금 없어지기도 했는데 다시 자주 쓰니 굳은살이 박혔어요 저는 그걸 보면 뭔가 많이 쓴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기도 합니다 좀 이상한... 무엇으로 쓰든 다르지 않겠지만, 볼펜으로 종이에 쓰면 좀더 애쓴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건 그저 기분일 뿐이겠지요 어느 때는 괜찮기도 하고 어느 때는 영 아니기도 합니다

책소개 고맙습니다


희선
 
프리즘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누군가한테 사람이 죽임 당하면 형사나 탐정이 범인을 찾는 모습이 나올 때가 많은데, 여기서는 형사나 탐정이 아니고 죽임 당한 사람 둘레 사람이 범인을 찾으려 해. 그래선지 누가 범인인지 확실하게 나오지 않아. 그저 가설만 남았을 뿐이야. 그 가설을 믿을지 말지는 책을 읽는 사람 몫일지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이 소설만은 아닌가봐. 난 본 적 없지만. 미스터리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 지금까지 내가 만난 건 아주 조금이야. 다른 걸 볼 수 있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찾아본 적도 없어. 어쩐지 난 하나도 제대로 파고들지 못하는 것 같아.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 소설만은 여전히 보는 걸 보면. 소설을 안 보게 됐다는 사람도 있잖아. 난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이 어떤지 알고 싶어. 어쩌면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알고 싶은 건지도.

 

 사람이 죽임 당하는 것을 보면 난 죽더라도 자연스럽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죽은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잖아. 죽은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그 사람이 남긴 거나 그 사람을 아는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어. 죽은 사람을 아는 사람이 거짓을 말하지 않겠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야. 사람은 상대와 만날 때보다 헤어졌을 때 자신이 그 사람을 몰랐다는 걸 알게 돼. 이건 이성뿐 아니라 친구 식구도 마찬가지야. 그러고 보니 예전에 죽은 사람이 어땠는지 알아보는 이야기를 본 것도 같아. 그 이야기가 어땠는지 잊어버렸지만. 거기에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더 생각하자고 말했을지도. 이 소설 《프리즘》에서 죽임 당한 사람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야. 야마우라 미쓰코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5학년 2반 아이 네 사람이 누가 미쓰코를 죽였는지 생각해. 두번째는 미쓰코와 함께 일한 학교 선생님 사쿠라이가. 다음에는 미쓰코가 사귄 예전 남자 친구가, 마지막은 미쓰코와 사귄 학생 아버지가 알아봐.

 

 앞에서 말했듯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아.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 건 앞에 사람이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이 다음에 이야기를 끌고 가. 상대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기만의 답을 내기도 해. 그런 모습은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자신)을 더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잖아. 그것도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 때문에 하는 걸 거야. 죽은 사람을 보내주려는 의식이지. 그렇다 해도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억울하게 죽은 사람 식구가 그렇겠지. 이것을 보니 누군가한테 좋은 사람이 누군가한테는 짜증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 그건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달라서일 거야. 아이는 어른이 자신들과 비슷하게 어린이 같으면 좋아해도, 같은 어른은 그 모습이 좋지는 않을 거야.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자신은 별로 순수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미쓰코는 정말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몰랐을까. 아예 생각을 하지 않은 건지. 나쁜 뜻 없이 하는 행동일지라도 상대는 그것을 안 좋게 여길 수도 있는데 미쓰코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았어.

 

 아무도 모르면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미쓰코와 만난 학생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학생한테 약을 먹이고 나쁜 짓을 하려 한 남자 선생님도 그랬어. 나쁜 짓한 걸 아무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건 맞지 않는 말이야. 그 일을 한 자신이 알잖아.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마지막에 미쓰코와 사귄 학생 아버지가 생각한 일 맞을지도 모르겠어. 여러 사람 말을 듣고 다른 생각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런 게 떠오르지 않아. 아니 하나 있기는 한데 실제 일어나기 힘들 것 같기도 해. 어쩌면 미쓰코는 사고로 죽고 그 사고를 이용한 건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편하고 싶은 건지도. 사람 마음속 어둠은 가늠할 수 없을 거야. 어떤 일을 겪어도 그것을 털어내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 마음이 단단한 사람도 있고 아주 무른 사람도 있어. 모두한테 같은 걸 바라면 안 되겠지.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아 아쉬워. 이런 이야기도 있을 테지만. 소설에서는 그렇다 해도 소설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혔기를 바라. 사람이 죽은 건 보통 일이 아니잖아. 모든 사람한테 자신을 맞추지는 못해도 해를 입히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렇게 해도 자기 마음이 상대한테 잘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상대 마음을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지 않는 건 아주 다를 거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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