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2041
로버트 스원.길 리빌 지음, 안진환 옮김, W재단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해 전에 북극 얼음이 녹아서 북극곰이 살 곳이 많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게 언젠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은 어떨까. 북극 얼음이 자꾸 녹으면 북극곰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북극 땅을 세계 곳곳에서 개발하기도 했나 보다. 그런 곳까지 하다니. 그런 것도 몰랐다. 여러 나라가 땅을 나눈 것 같기도 하다. 그럴 수가. 그곳에 사람 살지 않던가. 이제는 사람도 살기 어려운 곳이 됐을 것 같다. 먹을 게 없어서. 그곳 사람은 거의 동물을 잡아서 먹지 않을까. 북극곰도 먹을 게 없고 사람도 먹을 게 없을 것 같다. 아니 사람은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 먹겠다. 북극에도 자본주의가 들어갔을까. 이런 걸 생각하다니. 아주 추운 북극에 사는 사람은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곳을 지키고 사는 사람도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그곳에 사는 사람만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세계 사람이 해야 한다. 남극을 지키는 것도.

 

 북극이나 남극에 갈 일은 없지만 그곳이 사라지면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 거다. 남극 오존층에 구멍이 난 걸 안 건 1980년대다. 지금 생각하면 예전이지만 1980년대에 안 건 아쉬운 일이다. 더 빨리 알았다면 오존층 구멍을 막으려고 더 일찍 애썼을 테니 말이다. 세계가 힘을 합쳐 남극 오존층 구멍을 작게 했다. 그걸 한 것처럼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거다. 중국은 걱정이다. 한국에 미세먼지가 많아진 건 중국 탓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세먼지뿐 아니라 바다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지금 생각하니 중국에 공장을 짓는 게 다 중국사람이라 할 수 없겠다. 중국에 지은 한국 공장도 많을 거다. 사람은 어떤 게 돈이 된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간다. 그런 게 먼저 없어져야 할 텐데 쉬운 일은 아닐까. 고래가 아주 많을 때 고래를 잡고 그밖에 물고기도 잡았다. 물고기를 얼릴 수 있게 되고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았다. 냉장고에 쓰이는 프레온가스는 오존층에 아주 안 좋은 거였다. 처음에는 몰랐겠지. 사람이 편하게 살려고 만드는 건 지구에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지구온난화가 빨라진 건 석탄을 때고 석유를 찾고 플라스틱을 만든 뒤가 아닐까.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부터.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다행이지,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 지구는 어떻게 됐을까 싶다. 아무리 지구에 있는 석탄이나 석유라 해도 그건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그것도 몰랐겠지.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사람이 많이 잡아서 줄어들고 사라졌다. 지구에 가장 위험한 적은 사람(인류)이구나. 예전에는 모르고 지구에 좋지 않은 걸 썼겠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사라지는 땅도 있고 기후 난민이 생기기도 했다.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도 북극 남극 얼음이 녹으면 물에 잠기는 곳 있겠지. 우리가 사는 곳에서 환경을 생각하고 움직이면 북극이나 남극에도 영향이 간다.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게 먼저 영향을 미쳤구나.

 

 이 책을 쓴 로버트 스원은 어릴 때 로버트 스콧이 남극을 탐험한 영화를 보고 자신도 탐험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남극점에 가려는 모습을 보고는 다른 걸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전일까, 조금 미친 짓을 하려는구나 하는 거. 그래도 로버트 스원이 남극점에 가려고 했을 때는 아문센이나 섀클턴 그리고 로버트 스콧이 남극점에 갔다 오려고 한 때보다 나았다. 오래전에는 거기 갔다가 돌아와야 했지만, 로버트 스원은 돌아오지 않고 남극점에 가기만 했다. 로버트 스콧이 남극점으로 간 길을 따라 걸었다. 가는 것만이라 해도 남극에서 무거운 썰매를 끌고 걷는 건 쉽지 않았다. 로버트 스원은 남극점에 갈 때는 환경을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남극을 지켜야겠다 생각했다. 2041년에는 남극 보호 규정이 바뀐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남극을 개발할 수 없었는데, 죽 그대로 두면 좋겠다. 남극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다. 평화로운 땅이지만 그곳 날씨는 평화롭지 않다. 그건 남극이 가진 멋이다.

 

 로버트 스원이 남극점에 간 뒤에 민간인이 남극에 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로버트 스원은 남극점뿐 아니라 북극점에도 갔다. 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많은 사람이 알았을까. 남극에 사람이 많이 가도 괜찮을까 했는데, 남극을 보고 거기를 그대로 두어야 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거기에 가는 사람이 많아도 괜찮겠지. 쓰레기는 가지고 돌아오길. 앞으로는 환경에 좋은 에너지를 쓰고 어떤 거든 한번만 쓰지 않고 다시 쓰고 살려 써야 한다. 남극을 지키려면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남극을 그대로 두면 다른 곳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잠에서 깨면 기분이 무척 안 좋습니다. 예전에 날마다 아무거나 떠오르는대로 써 보라는 글을 보고 저도 해 보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일어나면 기분이 아주 안 좋아서. 언젠가 만화에서 그런 사람 보고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저도 비슷하군요. 저는 무서운 모습을 누군가한테 보이지 않지만. 만화여서 그런 식으로 나타낸 거군요. 저는 일어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야 괜찮습니다.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때보다 잠에서 덜 깼을 때 쓰는 글이 더 솔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걸요. 아니 생각나지 않는다기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운동 하잖아요. 저는 글을 쓸 때도 준비운동 같은 거 해야 하는가 봐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쓸 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말이 떠오르거나 쓸 게 떠오른 적도 있지만 이젠 정말…….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걷기 좋아합니다. 옛날 사람은 걷고 글을 썼다고도 하지요. 그런 걷기는 얼마나 해야 할지. 이런 말 예전에도 했군요. 가끔 저도 뭔가 생각나지 않을까 하고 걸은 적 있습니다. 그때 떠오른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니 하나 있는데 그건 아껴뒀습니다. 아껴뒀다기보다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는 건지도. 언젠가 쓸 겁니다. 천천히. 제 마음속에 좀 더 두었다가. 그걸 늘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쓸 게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해서. 그걸 쓰면 다른 게 떠오를지 알 수 없어요. 써야 다른 것도 생각날 텐데.

 

 앞에서 걷기 말하다가 떠오른 게 하나 있어요. 걸어도 그냥 걷지 않고 이것저것 살펴보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걷기만 해도 마음에는 좋겠지만. 둘레를 봐도 쓸거리 찾기는 힘들겠군요.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도 이런 쓸데없는 걸 썼네요. 늘 번뜩이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가끔입니다. 가끔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러면 좀 더 괜찮은 글을 쓰지 않을지.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난 왜 글을 쓰려는 걸까 했는데, 여전히 답은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건지, 누군가 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지. 지금은 둘 다 일지도. 이런 거 말고 다른 건 어떤 게 있을까요.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 그게 뭔지 알고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건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일지도.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먼길을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먼길을 떠난 사람이

돌아갈 곳을 생각하는 마음

 

아무리 작은 불빛이라도

믿음 바람 사랑이 있다면

꺼지지 않으리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꿈을 꾸는 건 좋다. 하지만 늘 좋은 꿈만 꾸지 않는다. 가끔 안 좋은 꿈도 꾼다. 꿈도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죽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주 아주 좋은 꿈을 꾸면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기도 할까.

 

 책에는 좋은 꿈을 꾸고 깨어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 그런 일을 겪어서 그렇게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하고 쓴 걸까. 꿈은 깨면 쉽게 잊지만 책은 한번 보면 조금 기억한다. 꿈과 책 비슷하면서도 다르구나. 두 가지에서 어느 쪽 세상이 더 좋을까. 어느 쪽이 더 좋다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책을 보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게 안 좋은 걸까. 어떻게 할 수 없다면 잠시 책속으로 피했다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도 괜찮겠지. 무언가를 피하려고 책을 보는 건 아닐 거다. 공부하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소설이 재미있기만 할까. 소설에도 여러 가지 배울 게 많다. 다 읽고 ‘소설이니까’ 할 때도 있지만. 어쩐지 제목하고는 다른 말을 한 것 같다.

 

 책속 꿈속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했는데 둘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꿈을 꾸는 건 무의식과 상관있겠지만 자신이 만난 책도 영향을 미칠 거다. 예전에는 책을 보고 잠깐 자면 꿈속에서 책 읽은 걸 쓰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요새는 별로 꾸지 않는다. 여전히 생각하는데 예전보다 덜 걱정하는 걸까.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 써야 하지 몰라서 천천히 일어난다. 잠깐 자는 게 아니어서 그런 거겠구나. 선잠 잘 때 꿈을 더 잘 꾼다. 잘못하면 가위 눌리고. 자는 자세 때문에 가위 눌리기도 한단다.

 

 사람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기도 하는데, 그게 꿈속이나 책속일 때도 있겠지. 그걸 잘 살리면 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겠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1부 율의 이야기를 보고 뭐지, 했다. 처음 이야기를 보고 그렇게 어리둥절하다니 말이다. 율과 징은 친구고 율과 징의 부모도 친구 사이로 친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느 날 율의 아버지는 책이 무섭다면서 집에 있는 책을 모조리 태우고 어딘가에 갔다 돌아온 율의 엄마는 두해 뒤에 암으로 죽고, 세해 뒤에는 징의 아버지가 암으로 죽는다. 율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만두를 먹다 급체로 죽고, 징 어머니는 징 아버지가 죽은 뒤부터 기억이 오락가락했다. 율 엄마와 아버지가 자주 싸운 적도 있었다. 율과 징 이야기 같기도 하면서 율과 징 부모 이야기 같기도 하다. 두사람 부모는 왜 그렇게 된 걸까 했다.

 

 다음 2부는 철수가 하는 이야기다. 뜬금없이 철수라니 했다. 읽다보니 율이 한 ‘율수선’이 나와서 철수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율인가 했는데 그건 율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철수와 율은 아무 상관없지 않았다. 여기에는 소설 제목과 같은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이 나온다. 글과 연극도 여러 사람을 잇는 것이구나. 책속에 나오는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도 알쏭달쏭하다. 어떤 두사람이 서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나오고, 율과 징 부모는 서로의 아이 태명과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걸 먼저 해서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에도 그런 게 있을까. 탁오수 친구 진정수는 딸한테 엄마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내가 딸을 낳다가 죽어서 딸한테 다른 이름을 지어주면 죽일 것 같아서였다. 이름 이야기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잘 모르겠다. ‘율수선’에서 일하는 사람 이름은 영희다. 영희가 진정수 딸이다.

 

 3부는 마르크스가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이야긴데 정말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건 80년대에 진짜가 되어버린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장난으로 한 이야기가 진짜가 되던 때도 있었다. 율과 징 부모한테 있었던 일이 그랬다. 80년대에는 나라에서 읽지 못하게 한 책도 있었다. 그런 걸 읽으면 잡혀갔다. 읽지 못하게 하면 더 읽고 싶은 게 사람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말한 독서모임은 그런 뜻으로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책이든 읽고 세상을 잘 보려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그런 사람 많았을 거다. 지금이라고 없지 않겠다. 예전에는 읽고 말하는 자유가 덜했고 지금은 조금 낫다. 그런 시절에 거기에 맞서 싸운 사람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세상이 왔겠다. 지금도 여전히 말을 제대로 못할 때 있겠지만.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는 건 재미있다. 실제로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이어도 깊이 알아보면 상관있는 사람일 거다. 이 소설에서 중심에 있는 건 연극일까,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일까. 희곡이겠다. 나중에는 영희가 이 제목으로 소설을 쓴다. 그리고 이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이건 영희가 쓴 소설과 같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갑자기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건 그걸 사랑해서다는 말이 생각난다. 뜬금없는 말을.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에 나오는 유령 넷은 율과 징의 부모 넷일지도 모르겠다. 알제리라는 술집에 갇힌 네 유령은 80년대에 겪은 일에 갇힌 율과 징의 부모 같다.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율과 징이 부모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부모가 겪은 것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주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나을 것 같다. 역사도 비슷하겠다. 알려고 해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어떤 책이든 읽어도 괜찮은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다. 이런 때는 어떤 게 괜찮은지 잘 알아봐야 할 텐데 그건 아직 힘들다. 어쩌면 그건 언제까지고 해야 하는 건지도.

 

 

 

희선

 

 

 

 

☆―

 

 “모든 이야기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네. 같은 곳에서 같은 걸 보고 들어도 한사람 한사람한테 들어보면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하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일도 어떤 땐 사실이 아닐 때도 있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 채 겪었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거짓이 사실이 되는 경우도 있지. 누군가 그걸 사실로 믿을 때. 속았을 수도 있고 그냥 믿었을 수도 있고 속아준 것일 수도 있고 속고 싶었을 수도 있고. 한마디로 경우의 수가 아주 많아. 애초에 자네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거야. 그렇다면 애초에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니 판단을 안 할 건가?”  (163~164쪽)

 

 

 “자네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다는 거, 알아내겠다는 거. 그게 바로 진실이네.”  (16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