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왤까. 이런 걸 처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걸 좋아해서다. 어쩐지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마음속으로는 좋아하기만 해도 괜찮다 하지만). 책을 읽고 거기에서 배우고 나 나름대로 생각하기. 그렇게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혼자 지내는 거 괜찮다. 늘 혼자 지내서 누군가와 뭔가 해야 한다면 싫을 것 같다. 이젠 그럴 일도 없지만. 무언가를 아주 잘하지 못하기에 그냥 하기만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 부럽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힘들다고 하지만, 일도 즐겁게 하면 되지 않을까. 아주 적은 사람만이 그럴 수 있을지.

 

 어떤 일이든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건 책을 읽고 쓰는 걸로는 안 되는 걸까. 명상이나 수행을 해야 할지. 가끔 쓸데없는 데 마음 쓰는 나 때문에 괴롭다. 괜찮을 때도 있지만 그런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괜찮을 때 난 다른 건 안 하고 그냥 혼자 논다. 그렇게 혼자 놀다 보면 혼자가 되겠지. 이건 인터넷 안에서구나. 누군가와 말하는 것과 혼자 놀기 균형을 잘 맞추면 나을 텐데 그게 어렵다.

 

 언젠가 내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죽을 때나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고 써야겠다. 그걸 한다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아주 조금은 나아지려고 하겠지.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안 될 것 같다. 그냥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니 예전에 이것과 비슷한 거 쓴 것 같다. 한번 쓴다고 괜찮아지지 않는 듯하다. 책에서 찾으려는 말을 내가 써놓고는 잊어버리기도 했으니. 그건 여러 책을 보고 내가 조금 느끼고 썼겠지.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겠다. 비슷한 거 생각하고 쓴다 해도 아주 똑같지 않을 거다.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이것저것 찾을 수 있겠지.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좋은 쪽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책 읽고 생각하고 쓰기는 늘 해야 하는 거구나. 이건 내가 그런 거다. 누구나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굳이 책 읽고 생각하고 쓰기가 아니어도 다른 걸로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을 거다. 자기한테 맞는 걸 찾으면 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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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하얀 것이 떨어졌다. 처음엔 이불이 바람에 날린 건가 했다. 그게 바닥에 닿을 때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얀 천은 금세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보고 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하늘에서 아니 높은 아파트에서 떨어진 건 사람이었다.

 

 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전화 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아파트 401동 앞인데요, 사람이 떨어져서 피를 많이 흘렸어요.”

 

 아파트 사람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왔지만 멀리서만 지켜 보았다. 나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내가 선 곳에서 봐도 그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얼마 뒤 응급차와 경찰차가 왔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아파트에서 떨어진 사람을 응급차에 싣고 떠났다. 그 사람은 죽었을 거다. 의사인 듯한 사람이 말하는 게 보였다. 응급차는 떠났지만 경찰차는 아직 가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핏자국이 있는 곳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 모습이 나타났다. 그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영혼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보았다. 난 바로 눈을 돌렸지만 눈치챘을 거다.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살짝 웃고는 바로 내 쪽으로 왔다.

 

 “이봐요, 내가 보이지요.”

 

 “…….”

 

 “나 좀 도와줘요.”

 

 “…….”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예요.”

 

 “……네?”

 

 난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여자,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은 여자였다. 여자는 기쁜 듯 이어서 말했다.

 

 “나 보이는 거 맞네. 나도 내가 죽은 다음에 이렇게 될지 몰랐어요. 내 억울한 마음을 하늘이 알고 잠시 여기 머물게 해줬겠지요.”

 

 “…….”

 

 “이봐요. 이런 일 처음 아니지요. 날 죽인 사람 찾아줘요.”

 

 “……아, 제가 어떻게…….”

 

 겨우 한마디 내뱉었지만 난 내가 여자를 죽인 사람을 찾으리라는 걸 알았다. 여자와 눈이 마주쳐버렸으니 말이다.

 

 

 

(이걸로 끝이다. 여자를 죽인 사람을 찾는 것도 쓰면 더 재미있겠지만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생각나면 뭔가 더 쓸 수도 있겠지만, 못할 듯하다. 이걸로 끝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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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난 이상한 곳으로 간다. 마치 낮꿈 같기도 하다. 그건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언제부터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나도 모른다. 어쩌면 갓난 아기였을 때부턴지도.

 

 내가 아기였을 때 일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워서 천장을 보던 건 희미하게 생각난다. 천장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곳은 천장이 아닌 하늘이거나 내가 늘 보던 천장과 달랐다. 갑자기 내 둘레가 바뀌면 난 울었던 것 같다. 울면 천장은 본래대로 돌아오고 엄마 얼굴이 보였다.

 

 조금 전에도 난 아주 잠깐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게 다른 곳에 간다 해도 큰일은 없다. 그곳은 다른 세계일까. 지금까지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생물 자체가 없는 것인지.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숲에 가면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새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물은 있는 곳인 듯하다.

 

 내가 잠깐 길에 서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았다. 아주 잠시라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면 이상하겠지. 조금 전에 갔던 곳은 언젠가 가 본 곳 같았다. 생각났다. 그곳은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 공원이다.

 

 다른 곳에 가는 건 하루에 한번 정도만 일어나는데 난 다시 다른 곳에 있었다. 둘레를 둘러보니 아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내 앞에 높은 계단이 있고 계단에서 무언가 빠르게 내려왔다. 그건 유모차였다. 난 계단을 뛰어올라가 유모차 앞을 막았다. 곧 누군가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난 그 사람을 보고 조금 놀랐다. 지금보다 많이 젊은 엄마였다.

 

 “아, 고맙습니다. 갑자기 유모차가 저절로 움직였어요.”

 

 난 유모차 안을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아기인 내가 누워 있었다. 아기인 난 별로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기가 순하네요. 울지도 않다니.”

 

 엄마는 다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유모차를 밀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나도 다시 돌아왔다.

 

 내가 나를 구한 뒤부터는 갑자기 다른 곳에 가지 않게 됐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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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지를 쓰는 건

 

편지쓰기를 좋아해서고

가끔 말이 하고 싶어서고

너랑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야

 

편지도 세상 이치처럼

주고받아야 서로한테 좋을까

더 쓰거나

더 받으면

안 될까

 

마음은 무거운 것이라 해도

편지는 가볍게 생각해

 

난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내 편지를 받는

네가 거기 있어서

더 기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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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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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게 괴로울 때가 있다. 그런 책을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언제 난 이 일본군 ‘위안부’ 일을 알았던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알았던 것 같다. 그걸 보면서 난 내가 그때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때 태어났다면 나도 끌려갔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드라마에는 어떤 식으로 조선 여아아이들을 끌고 갔는지는 잘 나오지 않은 듯하다. 여자아이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끌고 간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숨거나 바라지 않는 결혼을 한 사람도 많을 거다. 잘 피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숨었다 들키면 더 안 좋았겠지. 예전에는 일본군 ‘위안부’라기보다 ‘정신대’라고 알았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조선 여자아이들을 끌고 간 곳은 위안소도 있고 공장도 있었다. 피해를 입은 건 조선 여자아이만이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구나.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한테 진심으로 사과할 날은 올지. 꼭 와야 한다.

 

 일본이 조선 여자아이를 일본군 ‘위안부’로 삼아야겠다 생각한 것도 나쁘지만, 같은 조선 사람으로 자기 딸 같은 여자아이를 끌고 가거나 속인 건 더 나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런 사람은 일본에 붙어서 편하게 산 사람이었겠지. 물결 위에 편지를 쓰는 금자도 공 씨한테 속았다. 공 씨는 열세살인 금자한테 비단 짜는 공장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곳에 가서 돈을 벌고 집에도 보내주면 좋지 않느냐고. 금자는 그 말을 들은 밤에 어머니한테 비단 짜는 공장에 가고 싶다고 한다. 어머니는 조금 내키지 않았지만 보낸다. 어머니가 끝까지 보낼 수 없다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머니가 알고 그곳에 보낸 건 아니지만, 금자는 위안소에서 그때 일을 떠올리고 어머니가 왜 자신을 보냈을까 한다. 그래도 어머니를 아주 많이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곳(위안소)에 온 걸까 할 뿐이다.

 

 금자는 어머니 이름도 모르고 집주소도 모르고 글도 모른다. 그래도 물결 위에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끝순은 못으로 흙에 편지를 썼다. 소설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 있었을 것 같다. 금자가 있는 곳은 ‘낙원위안소’다. 지옥 같은 곳 이름이 낙원이라니. 그런 이름은 그곳 주인인 할아버지가 지었을까. 금자가 처음 간 곳은 ‘세계위안소’였다. 그곳 주인은 자신을 오카상, 어머니라 했다. 진짜 어머니라면 자기 딸한테 일본 군인을 받는 일을 시키지 않을 텐데. 돈 때문에 딸을 판 부모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금자가 낙원위안소에서 만난 여아자이들은 다 속고 그곳에 왔다. 군복 만드는 공장, 고무 만드는 공장, 식모 살러 간다고. 가난하지 않았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지 않았을까. 그렇구나, 가난하지 않은 집안 아이들은 일본군 ‘위안부’는 되지 않았겠다. 여자아이를 속인 사람 딸도. 지금 세상이라고 그런 일이 없는 건 아니구나. 자기 딸은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 딸은 그저 자기 욕망을 채우는 걸로 여기기도 한다. 아이한테 부끄러운 부모가 된다는 건 생각도 못하다니.

 

 일본군 ‘위안부’에는 아이를 갖는 사람도 있었다. 죽은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고, 아이를 가지면 억지로 떼기도 했다. 주인은 여자아이한테 다시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시키기도 했다. 제대로 된 의사한테 수술받지도 못했을 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잔인하다. 금자도 아이를 가졌다. 금자는 남한테 그 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결 위에 편지를 썼다. 어머니가 그걸 받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해도 금자는 어머니가 그 편지를 받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겠지. 금자는 누군가한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실제로는 남한테 위안소 일을 말하기 어려울 거다. 용기를 갖고 말한 분이 있어서 그때 일을 우리가 아는구나. 그때도 힘들었겠지만 그 말을 할 때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그 분들은 잘못한 게 없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고도 편하게 살지 못했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분도 많다.

 

 아기는 하늘이 주는 축복일까. 위안소에서 아이를 갖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여자는 사람도 아니었다. 금자는 아이가 죽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총알이 날아다니는 곳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 했다. 사람은 본래 그렇구나. 무척 힘들어서 죽고 싶다가도 정말 그런 일이 닥치면 살고 싶어한다. 금자는 아이를 낳았을 것 같다. 그 뒤에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지만. 악순 언니처럼 아이를 버렸을지도. 악순 언니는 아이를 버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바라지 않는 아이였다 해도 어머니 마음이 있었겠지. 아이를 빼앗긴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예전에 일어난 일이라 해도 지금과 상관없지 않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하잖는가. 잊으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거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는 나라가 마음을 합쳐서 일본한테 사과를 받으면 좋을 텐데 싶다. 시간은 흘러가고 피해자 분들은 이제 몇분 남지 않았다. 사과를 받는다고 괴로움이나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아무 말도 못 듣는 것보다는 조금 낫겠지. 시간이 흐른다고 안 좋은 일을 다 흘려보내면 안 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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