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서장
너한테 들은 이야기
삼월 비 내리는 날 페리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렸다.
커다란 배가 바닷물을 밀어내는 무거운 진동이 엉덩이에서 온몸으로 퍼진다.
내 표는 배 가장 밑에 가까운 2등실. 도쿄까지는 열시간 이상 걸리고 밤에 도착할 거다. 이 페리를 타고 도쿄에 가는 건 내 삶에서 두번째다. 난 일어서서 갑판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 녀석 전과가 있는 가봐.”나 “지금도 경찰에 쫓기는가 봐” 같은 내 소문이 학교에서 나게 된 건, 두해반 전 도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소문 날 일 자체는 아무것도 없었지만(실제로는 소문 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난 그 여름에 도쿄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조금 말한 건 있지만, 진짜 중요한 일은 부모한테도 친구한테도 경찰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여름 일을 모두 품고 한번 더 도쿄에 간다.
열여덟살이 된 지금 이번에야 말로 그 도시에 살려고.
한번 더 그 애를 만나려고.
그걸 생각하면 늘 가슴속에 열이 나고 볼이 점점 화끈거린다. 빨리 바닷바람을 맞고 싶어서 난 계단을 빨리 올랐다.
갑판에 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비와 함께 한꺼번에 얼굴을 때렸다. 거기에는 봄기운이 듬뿍 담겨 있다. 드디어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 실감이 늦게 온 통지처럼 이제야 가슴에 전해진다. 난 갑판 난간에 무릎을 대고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고 소용돌이 치는 하늘을 보았다. 눈앞에서는 저 멀리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빗방울이 날렸다.
그러자 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또 다.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가만히 있는 내 얼굴을 비가 때리고 이어서 빗소리가 끝없이 울린다. 두해 반 동안 비는 늘 거기 있다. 아무리 숨을 죽여도 사라지지 심장소리처럼. 아무리 세게 감아도 아주 어두워지지 않는 눈꺼풀처럼. 아무리 진정시켜도 언제나 소리 내지 않을 수 없는 마음처럼.
천천히 숨을 뱉으면서 난 눈을 떴다.
비.
숨쉬듯 물결치는 검은 바다에 비가 끝없이 빨려들어간다. 마치 하늘과 바다가 짜고 장난으로 바닷물 높이를 올리는 듯하다. 난 무섭다. 몸 깊은 곳에서 떨림이 솟아오른다. 조각조각 나고 흩어질 것 같다. 난 난간을 꽉 잡았다. 코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애를 떠올렸다. 그 애의 큰 눈이나 감정이 자주 바뀌는 얼굴, 차례차례 바뀌는 목소리 높이나 두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을. 그리고 괜찮다 한다. 그 애가 있다. 도쿄에 그 애가 산다. 그 애가 있는 한 난 이 세상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러니 울지마, 호다카.”
하고, 그날 밤 그 애는 말했다. 쫓기듯 들어간 이케부쿠로 호텔.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가 먼 북소리 같았다. 같은 샴푸 냄새와 뭐든 허락한 듯한 다정한 그 애 목소리와 어둠에 창백하게 빛나는 그 애 살결. 그런 건 무척 선명해서 난 문득 지금도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진짜 우리는 지금도 그 호텔에 있고 난 우연히 기시감처럼 앞날 자신이 페리를 탄 걸 상상만 하는 건 아닐까. 어제 졸업식도 이 페리도 모두 착각이고 난 지금도 그 호텔 침대 위에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비는 그치고, 그 애도 내 옆에 있고 세상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여전한 일상이 다시 시작하는 건 아닐까.
뱃고동이 날카롭게 울렸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난 난간 철 감촉을 느끼고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섬 그림자를 보았다. 그렇지 않다, 지금은 그 밤이 아니다. 그건 훨씬 예전 일이다. 페리에 흔들리는 내가 지금 진짜 나다. 제대로 생각하자. 처음부터 떠올려보자. 비를 노려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애와 다시 만나기 전에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이해해야 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해도 끝까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고른 게 뭔지. 그리고 난 그 애한테 무슨 말을 전해야 하는지.
모든 건, 맞아 아마 그 날이다.
그 애가 처음 그걸 본 날. 그 애가 이야기해준 그 날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 * *
그 애 어머니는 벌써 몇달이나 깨어나지 않았다 한다.
작은 병실을 채운 건 바이털 모니터의 규칙있게 들리는 소리, 호흡기가 슉 하고 움직이는 소리와 집요하게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그리고 오래 사람이 머문 병실 특유의 세상과 떨어진 조용한 분위기.
그 애는 침대 옆 둥근의자에 앉아 이제 뼈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가 한 산소 마스크가 규칙 있게 하얗게 흐려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줄곧 내려온 속눈썹을 바라봤다. 불안에 짓눌릴 듯하면서 그 애는 그저 그저 기도했다. 엄마가 눈을 뜨기를. 위험할 때 영웅처럼 바람이 힘있게 불어 우울이나 걱정 비구름과 어두워서 무거운 것을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세식구가 한번 더 파란하늘 아래를 웃으면서 걸을 수 있기를.
둥실 하고 그 애 머리카락이 움직였다. 똑하고 귓가에서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얼굴을 들었다. 닫았을 창문 커튼이 조금 흔들렸다. 창문 너머 하늘이 그 애 눈을 끌어당겼다. 어느새 해가 비쳤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지만 구름에 작은 틈이 생기고 거기서 뻗은 가는 빛이 땅 한곳을 비췄다. 그 애는 집중해서 봤다. 보이는 끝까지 빈틈없는 건물. 그 가운데서 한 건물 옥상만이 빛을 받는 연기자처럼 외따로 빛났다.
누군가가 부른 듯, 정신을 차리자 그 애는 병실에서 달려 나갔다.
그곳은 아무도 없는 빌딩이었다. 둘레 건물은 번쩍번쩍 새 것인데 그 잡거 빌딩만은 시간에 뒤처진 듯 밤색으로 낡았다. <당구장>이나 <보석점>이나 <장어>나 <마작> 같은 녹슬고 빛바랜 간판이 몇 개인가 건물 둘레에 붙어 있었다. 비닐 우산 너머로 올려다보니 햇볕은 분명 여기 옥상을 비췄다. 빌딩 옆을 살펴보다 작은 주차장이 되고 무척 녹슨 비상 계단이 옥상까지 이어졌다.
……마치 빛의 물웅덩이 같았다.
계단을 다 올라간 그 애는 한순간 눈 앞 풍경에 홀렸다.
난간에 둘러싸인 그 옥상은 25미터 수영장 딱 반쯤 넓이로 타일은 낡아서 금이 가고 한쪽은 잡초에 덮였다. 거기에서 가장 안에 수풀에 싸인 듯 작은 기둥문이 조용히 서 있었다. 구름 사이에서 내려오는 빛은 그 기둥문을 바로 비췄다. 빨간 기둥문이 햇볕을 받는 가운데서 빗방울과 함께 반짝반짝 빛났다. 비에 흐릿한 세상에서 거기만이 선명했다.
천천히 그 애는 기둥문으로 걸었다. 비를 듬뿍 맞은 잡초를 밟을 때마다 찰박찰박하는 부드러운 소리와 기분 좋은 탄력이 있었다. 비 커튼 맞은편에는 늘 있는 높은 빌딩이 뿌옇게 서 있다. 어딘가에 둥지가 있는지 작은 새 지저귐이 둘레에 가득했다. 거기에 희미하게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리는 듯한 야마노테선 먼 소리가 들렸다.
우산을 땅에 놓았다. 차가운 비가 그 애 매끄러운 볼을 타고 내렸다. 기둥문 안에는 작은 돌로 된 사당이 있고 그 둘레에는 보라색 작은 꽃이 가득했다. 거기에 묻힌 듯 누군가 두고 간 오봉장식 정령말이 두개 있었다. 댓개비(대오리)를 꽂은 오이와 가지 말이다. 그 애는 저도 모르게 손을 모았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빌었다. 비가 그치기를. 천천히 눈을 감고 빌면서 기둥문을 지났다. 어머니가 눈을 뜨고 맑은 날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기둥문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빗소리가 뚝 그쳤다.
눈을 뜨자 거기는 파란하늘 한가운데였다.
그 애는 센 바람에 날리면서 하늘 아주 높은 곳에 떠 있었다. 아니 바람을 가르고 떨어졌다. 들어 본 적 없는 낮고 깊은 바람 소리가 둘레에 회오리쳤다. 숨은 쉴 때마다 하얗게 얼고 짙은 감색 안에서 반짝반짝 깜박였다. 그런데 무섭지 않았다. 눈 뜨고 꿈을 꾸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발밑을 내려다 보자 커다란 콜리플라워 같은 적란운이 몇개나 떠 있었다. 하나하나가 분명 몇킬로미터 크기인 그건 웅장하고 아름다운 하늘 숲 같았다.
그 애는 문득 구름 색이 바뀌는 걸 알았다. 구름 가장 위 대기 경계에 평평한 너른 들 같은 곳에 드문드문 풀이 생겼다. 그 애는 눈을 크게 떴다.
그건 풀밭 같았다. 땅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구름 가장 위에 술렁이며 풀이 자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잘 보니 그 둘레에 작은 뭔가가 무리지어 있었다.
“……물고기.”
기하학 같은 소용돌이를 그리고 천천히 구불거리는 그 무리는 마치 물고기 떼처럼 보였다. 그 애는 떨어지면서 가만히 그걸 바라봤다. 구름 위 들판을 아주 많은 물고기가 헤엄쳤다.
갑자기 손끝에 뭔가 닿았다. 놀라서 손을 보았다. 물고기다. 투명한 몸을 가진 작은 물고기여서 무거운 바람처럼 손가락이나 머리카락을 빠져 나간다. 긴 지느러미를 나부끼는 것 해파리처럼 둥근 것 송사리처럼 가는 것. 여러 가지 모양 물고기들은 햇볕이 투명한 몸을 지나 프리즘처럼 빛났다. 정신을 차리니 그 애는 하늘 물고기에 둘러싸였다.
하늘 파랑과 구름 하양 술렁이는 풀과 일곱빛깔로 반짝이는 물고기들. 그 애가 있는 건 들은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하늘 세상이었다. 곧 그 애 발 밑을 덮은 구름이 풀리듯 사라지고 눈 밑에는 끝없이 이어진 도쿄 거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빌딩 하나하나 차 한대한대 유리창 한장한장이 햇살을 받고 보란듯이 빛났다. 비에 씻겨 새로 태어난 듯한 거리에 그 애는 바람을 타고 천천히 떨어졌다. 이어서 신기하게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온몸에 가득찼다. 그 애는 자신이 이 세상 한부분이라는 걸 말보다 먼저 느낌으로 그냥 알았다. 자신은 바람이고 물이고 파랑이고 하양이고 마음이고 바람이다. 신기한 행복과 애절함이 온몬으로 퍼졌다. 그리고 천천히 깊은 이불에 잠기듯 정신을 잃었다.
* * *
“그 풍경. 그때 내가 본 건 모두 꿈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그 애는 나한테 말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그걸 알고 우리는 그 뒤 함께 같은 풍경을 본다. 아무도 모르는 하늘 세상을.
그 애와 보낸 그 해 여름.
도쿄 하늘 위에서 우리는 세상 모습을 바꾸고 말았다.
6쪽~15쪽
책을 볼 때는 영화 <날씨의 아이> 찾아보지 않았는데, 책을 다 보고 쓴 다음에는 예고편만 봤다. 볼 게 그것밖에 없기는 했다. 예고편만 봤지만 영상은 참 괜찮았다. 몇해 전에 일본말로 쓰인 소설을 보고 앞부분만 한국말로 옮기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두번쯤 했던가. 그 뒤에 귀찮아서, 보다 잘 못해서 그만뒀다. 아니 누군가한테 보여주는 건. 나중에 나만 보기로 하고 조금씩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쓰지 않는 말이 있는데 다른 나라 책에는 그 말 자주 나온다. 일본소설뿐 아니라 한국소설도 마찬가지다. 난 왜 그 말을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어색해서. 예전에 어떤 책에서 그 말은 한국말에는 없다는 걸 봤다. 다른 나라 문화가 들어오면서 그 말을 쓰게 된 거겠지. 그건 대명사구나. 내가 그 말 대신 쓴 건 ‘그 애’다. 다른 때는 이름을 쓰는데 앞부분에는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름 알지만. 나중에 나오니 안 쓰는 게 낫겠지. 소설에서는 여성 남성 대명사를 나눠서 쓸 때가 많지만, 기사에서는 여성 남성 대명사를 나누지 않는다.
다음 이야기를 보면 ‘그 애’라 할 수 없겠다. 그때는 뭐라 해야 하나. 이름을 모를 때는 ‘그 사람’이라 하면 어떨까 싶다. 이것뿐 아니라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 없이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구나. 어떻게 하면 잘 하려나. 한국말로 쓰면 어떻게 쓸까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건 오래 생각하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 조금 기분 좋다. 그런 일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구나.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