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서장

 

 너한테 들은 이야기

 

 

 

 삼월 비 내리는 날 페리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렸다.

 

 커다란 배가 바닷물을 밀어내는 무거운 진동이 엉덩이에서 온몸으로 퍼진다.

 

 내 표는 배 가장 밑에 가까운 2등실. 도쿄까지는 열시간 이상 걸리고 밤에 도착할 거다. 이 페리를 타고 도쿄에 가는 건 내 삶에서 두번째다. 난 일어서서 갑판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 녀석 전과가 있는 가봐.”나 “지금도 경찰에 쫓기는가 봐” 같은 내 소문이 학교에서 나게 된 건, 두해반 전 도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소문 날 일 자체는 아무것도 없었지만(실제로는 소문 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난 그 여름에 도쿄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조금 말한 건 있지만, 진짜 중요한 일은 부모한테도 친구한테도 경찰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여름 일을 모두 품고 한번 더 도쿄에 간다.

 

 열여덟살이 된 지금 이번에야 말로 그 도시에 살려고.

 

 한번 더 그 애를 만나려고.

 

 그걸 생각하면 늘 가슴속에 열이 나고 볼이 점점 화끈거린다. 빨리 바닷바람을 맞고 싶어서 난 계단을 빨리 올랐다.

 

 갑판에 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비와 함께 한꺼번에 얼굴을 때렸다. 거기에는 봄기운이 듬뿍 담겨 있다. 드디어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 실감이 늦게 온 통지처럼 이제야 가슴에 전해진다. 난 갑판 난간에 무릎을 대고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고 소용돌이 치는 하늘을 보았다. 눈앞에서는 저 멀리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빗방울이 날렸다.

 

 그러자 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또 다.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가만히 있는 내 얼굴을 비가 때리고 이어서 빗소리가 끝없이 울린다. 두해 반 동안 비는 늘 거기 있다. 아무리 숨을 죽여도 사라지지 심장소리처럼. 아무리 세게 감아도 아주 어두워지지 않는 눈꺼풀처럼. 아무리 진정시켜도 언제나 소리 내지 않을 수 없는 마음처럼.

 

 천천히 숨을 뱉으면서 난 눈을 떴다.

 

 비.

 

 숨쉬듯 물결치는 검은 바다에 비가 끝없이 빨려들어간다. 마치 하늘과 바다가 짜고 장난으로 바닷물 높이를 올리는 듯하다. 난 무섭다. 몸 깊은 곳에서 떨림이 솟아오른다. 조각조각 나고 흩어질 것 같다. 난 난간을 꽉 잡았다. 코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애를 떠올렸다. 그 애의 큰 눈이나 감정이 자주 바뀌는 얼굴, 차례차례 바뀌는 목소리 높이나 두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을. 그리고 괜찮다 한다. 그 애가 있다. 도쿄에 그 애가 산다. 그 애가 있는 한 난 이 세상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러니 울지마, 호다카.”

 

 

 

 하고, 그날 밤 그 애는 말했다. 쫓기듯 들어간 이케부쿠로 호텔.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가 먼 북소리 같았다. 같은 샴푸 냄새와 뭐든 허락한 듯한 다정한 그 애 목소리와 어둠에 창백하게 빛나는 그 애 살결. 그런 건 무척 선명해서 난 문득 지금도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진짜 우리는 지금도 그 호텔에 있고 난 우연히 기시감처럼 앞날 자신이 페리를 탄 걸 상상만 하는 건 아닐까. 어제 졸업식도 이 페리도 모두 착각이고 난 지금도 그 호텔 침대 위에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비는 그치고, 그 애도 내 옆에 있고 세상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여전한 일상이 다시 시작하는 건 아닐까.

 

 

 

 뱃고동이 날카롭게 울렸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난 난간 철 감촉을 느끼고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섬 그림자를 보았다. 그렇지 않다, 지금은 그 밤이 아니다. 그건 훨씬 예전 일이다. 페리에 흔들리는 내가 지금 진짜 나다. 제대로 생각하자. 처음부터 떠올려보자. 비를 노려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애와 다시 만나기 전에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이해해야 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해도 끝까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고른 게 뭔지. 그리고 난 그 애한테 무슨 말을 전해야 하는지.

 

 모든 건, 맞아 아마 그 날이다.

 

 그 애가 처음 그걸 본 날. 그 애가 이야기해준 그 날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   *   *

 

 

 

 그 애 어머니는 벌써 몇달이나 깨어나지 않았다 한다.

 

 작은 병실을 채운 건 바이털 모니터의 규칙있게 들리는 소리, 호흡기가 슉 하고 움직이는 소리와 집요하게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그리고 오래 사람이 머문 병실 특유의 세상과 떨어진 조용한 분위기.

 

 그 애는 침대 옆 둥근의자에 앉아 이제 뼈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가 한 산소 마스크가 규칙 있게 하얗게 흐려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줄곧 내려온 속눈썹을 바라봤다. 불안에 짓눌릴 듯하면서 그 애는 그저 그저 기도했다. 엄마가 눈을 뜨기를. 위험할 때 영웅처럼 바람이 힘있게 불어 우울이나 걱정 비구름과 어두워서 무거운 것을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세식구가 한번 더 파란하늘 아래를 웃으면서 걸을 수 있기를.

 

 둥실 하고 그 애 머리카락이 움직였다. 똑하고 귓가에서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얼굴을 들었다. 닫았을 창문 커튼이 조금 흔들렸다. 창문 너머 하늘이 그 애 눈을 끌어당겼다. 어느새 해가 비쳤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지만 구름에 작은 틈이 생기고 거기서 뻗은 가는 빛이 땅 한곳을 비췄다. 그 애는 집중해서 봤다. 보이는 끝까지 빈틈없는 건물. 그 가운데서 한 건물 옥상만이 빛을 받는 연기자처럼 외따로 빛났다.

 

 누군가가 부른 듯, 정신을 차리자 그 애는 병실에서 달려 나갔다.

 

 

 

 그곳은 아무도 없는 빌딩이었다. 둘레 건물은 번쩍번쩍 새 것인데 그 잡거 빌딩만은 시간에 뒤처진 듯 밤색으로 낡았다. <당구장>이나 <보석점>이나 <장어>나 <마작> 같은 녹슬고 빛바랜 간판이 몇 개인가 건물 둘레에 붙어 있었다. 비닐 우산 너머로 올려다보니 햇볕은 분명 여기 옥상을 비췄다. 빌딩 옆을 살펴보다 작은 주차장이 되고 무척 녹슨 비상 계단이 옥상까지 이어졌다.

 

 

 

 ……마치 빛의 물웅덩이 같았다.

 

 계단을 다 올라간 그 애는 한순간 눈 앞 풍경에 홀렸다.

 

 난간에 둘러싸인 그 옥상은 25미터 수영장 딱 반쯤 넓이로 타일은 낡아서 금이 가고 한쪽은 잡초에 덮였다. 거기에서 가장 안에 수풀에 싸인 듯 작은 기둥문이 조용히 서 있었다. 구름 사이에서 내려오는 빛은 그 기둥문을 바로 비췄다. 빨간 기둥문이 햇볕을 받는 가운데서 빗방울과 함께 반짝반짝 빛났다. 비에 흐릿한 세상에서 거기만이 선명했다.

 

 천천히 그 애는 기둥문으로 걸었다. 비를 듬뿍 맞은 잡초를 밟을 때마다 찰박찰박하는 부드러운 소리와 기분 좋은 탄력이 있었다. 비 커튼 맞은편에는 늘 있는 높은 빌딩이 뿌옇게 서 있다. 어딘가에 둥지가 있는지 작은 새 지저귐이 둘레에 가득했다. 거기에 희미하게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리는 듯한 야마노테선 먼 소리가 들렸다.

 

 우산을 땅에 놓았다. 차가운 비가 그 애 매끄러운 볼을 타고 내렸다. 기둥문 안에는 작은 돌로 된 사당이 있고 그 둘레에는 보라색 작은 꽃이 가득했다. 거기에 묻힌 듯 누군가 두고 간 오봉장식 정령말이 두개 있었다. 댓개비(대오리)를 꽂은 오이와 가지 말이다. 그 애는 저도 모르게 손을 모았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빌었다. 비가 그치기를. 천천히 눈을 감고 빌면서 기둥문을 지났다. 어머니가 눈을 뜨고 맑은 날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기둥문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빗소리가 뚝 그쳤다.

 

 눈을 뜨자 거기는 파란하늘 한가운데였다.

 

 그 애는 센 바람에 날리면서 하늘 아주 높은 곳에 떠 있었다. 아니 바람을 가르고 떨어졌다. 들어 본 적 없는 낮고 깊은 바람 소리가 둘레에 회오리쳤다. 숨은 쉴 때마다 하얗게 얼고 짙은 감색 안에서 반짝반짝 깜박였다. 그런데 무섭지 않았다. 눈 뜨고 꿈을 꾸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발밑을 내려다 보자 커다란 콜리플라워 같은 적란운이 몇개나 떠 있었다. 하나하나가 분명 몇킬로미터 크기인 그건 웅장하고 아름다운 하늘 숲 같았다.

 

 그 애는 문득 구름 색이 바뀌는 걸 알았다. 구름 가장 위 대기 경계에 평평한 너른 들 같은 곳에 드문드문 풀이 생겼다. 그 애는 눈을 크게 떴다.

 

 그건 풀밭 같았다. 땅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구름 가장 위에 술렁이며 풀이 자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잘 보니 그 둘레에 작은 뭔가가 무리지어 있었다.

 

 “……물고기.”

 

 기하학 같은 소용돌이를 그리고 천천히 구불거리는 그 무리는 마치 물고기 떼처럼 보였다. 그 애는 떨어지면서 가만히 그걸 바라봤다. 구름 위 들판을 아주 많은 물고기가 헤엄쳤다.

 

 갑자기 손끝에 뭔가 닿았다. 놀라서 손을 보았다. 물고기다. 투명한 몸을 가진 작은 물고기여서 무거운 바람처럼 손가락이나 머리카락을 빠져 나간다. 긴 지느러미를 나부끼는 것 해파리처럼 둥근 것 송사리처럼 가는 것. 여러 가지 모양 물고기들은 햇볕이 투명한 몸을 지나 프리즘처럼 빛났다. 정신을 차리니 그 애는 하늘 물고기에 둘러싸였다.

 

 하늘 파랑과 구름 하양 술렁이는 풀과 일곱빛깔로 반짝이는 물고기들. 그 애가 있는 건 들은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하늘 세상이었다. 곧 그 애 발 밑을 덮은 구름이 풀리듯 사라지고 눈 밑에는 끝없이 이어진 도쿄 거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빌딩 하나하나 차 한대한대 유리창 한장한장이 햇살을 받고 보란듯이 빛났다. 비에 씻겨 새로 태어난 듯한 거리에 그 애는 바람을 타고 천천히 떨어졌다. 이어서 신기하게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온몸에 가득찼다. 그 애는 자신이 이 세상 한부분이라는 걸 말보다 먼저 느낌으로  그냥 알았다. 자신은 바람이고 물이고 파랑이고 하양이고 마음이고 바람이다. 신기한 행복과 애절함이 온몬으로 퍼졌다. 그리고 천천히 깊은 이불에 잠기듯 정신을 잃었다.

 

 

 

     *   *   *

 

 

 

 “그 풍경. 그때 내가 본 건 모두 꿈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그 애는 나한테 말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그걸 알고 우리는 그 뒤 함께 같은 풍경을 본다. 아무도 모르는 하늘 세상을.

 

 그 애와 보낸 그 해 여름.

 

 도쿄 하늘 위에서 우리는 세상 모습을 바꾸고 말았다.

 

 

6쪽~15쪽

 

 

 

 

 

 책을 볼 때는 영화 <날씨의 아이> 찾아보지 않았는데, 책을 다 보고 쓴 다음에는 예고편만 봤다. 볼 게 그것밖에 없기는 했다. 예고편만 봤지만 영상은 참 괜찮았다. 몇해 전에 일본말로 쓰인 소설을 보고 앞부분만 한국말로 옮기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두번쯤 했던가. 그 뒤에 귀찮아서, 보다 잘 못해서 그만뒀다. 아니 누군가한테 보여주는 건. 나중에 나만 보기로 하고 조금씩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쓰지 않는 말이 있는데 다른 나라 책에는 그 말 자주 나온다. 일본소설뿐 아니라 한국소설도 마찬가지다. 난 왜 그 말을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어색해서. 예전에 어떤 책에서 그 말은 한국말에는 없다는 걸 봤다. 다른 나라 문화가 들어오면서 그 말을 쓰게 된 거겠지. 그건 대명사구나. 내가 그 말 대신 쓴 건 ‘그 애’다. 다른 때는 이름을 쓰는데 앞부분에는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름 알지만. 나중에 나오니 안 쓰는 게 낫겠지. 소설에서는 여성 남성 대명사를 나눠서 쓸 때가 많지만, 기사에서는 여성 남성 대명사를 나누지 않는다.

 

 다음 이야기를 보면 ‘그 애’라 할 수 없겠다. 그때는 뭐라 해야 하나. 이름을 모를 때는 ‘그 사람’이라 하면 어떨까 싶다. 이것뿐 아니라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 없이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구나. 어떻게 하면 잘 하려나. 한국말로 쓰면 어떻게 쓸까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건 오래 생각하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 조금 기분 좋다. 그런 일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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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 天氣の子 (角川文庫)
신카이 마코토 지음 / KADOKAWA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한국에서는 올해 시월(20191030 바로 오늘)에 영화가 하는데, 이 책은 신카이 마코토가 만든 영화 <날씨의 아이 天気の子>를 소설로 쓴 거다.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니고 영화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면서 소설을 썼다. 《네 이름은》도 그랬다.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도 신카이 마코토가 소설을 썼구나. 신카이 마코토가 만든 영화 다 보지는 않았다. 이 말 전에도 했던가. 《네 이름은》은 소설만 보았다. 앞에서 말한 ‘초속 5센티미터’는 책은 안 보았다. 이 책 보면서 영화 이야기 찾아보고 싶은 걸 참았다. 소설 다 보고 찾아보려고. 찾아본다고 알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겠지만. 책을 보면서 영상으로 나타내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든 건 조금 있다. 하늘 위 세상, 구름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나 용.

 

 신카이 마코토가 만든 영화 배경이 다 여름은 아닐 텐데, 신카이 마코토 하면 여름이 생각난다. 파란하늘 흰구름 세찬 비. <언어의 정원>이나 <네 이름은>에는 여름이 나왔다. 가장 처음 만든 <별의 목소리>에서도 여름 하늘 본 듯하다. 맞다, 여름방학이 되고 여자아이가 머나 먼 우주로 떠났다. 신카이 마코토는 여름을 좋아하는가 보다. 이번에도 여름이다. 아쉽게도 파란하늘 흰구름은 자주 볼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도 가끔 나타난다. 소설속에서는 언제부턴가 여름이 오면 비가 자주 왔나 보다. 이건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앞날일 수도 있고 평행우주일 수도 있다. 소설(영화)속 세상이 우리 세상과 비슷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또 다른 세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늘 그렇게 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을 보면서 떠올리는 건 내가 아는 것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여기는 조금 다르구나 하고.

 

 섬에 살던 열여섯살짜리 고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 모리시마 호다카는 여름에 섬을 나온다. 섬을 나오는 건 집을 나오는 것과 같다. 호다카가 배를 타고 가는 곳은 도쿄다. 호다카가 가고 싶은 곳은 빛기둥속이다. 호다카는 아버지한테 맞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는데 흐린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왔다. 호다카는 그 안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놓친 걸지도 모르겠지만 호다카가 왜 집을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 나이에는 그런 충동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섬에 살고 학교생활 안 좋았던 것 같다. 호다카는 도쿄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일자리는 쉽게 구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돈은 자꾸 줄어들었다. 호다카는 돈을 아끼려고 만화 카페가 아닌 밖에서 잘 만한 곳을 찾아다닌다. 비가 와서 잘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햄버거 가게에 들어간다. 거기에서도 돈을 아끼려고 비싸지 않은 걸 먹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여자아이가 호다카한테 햄버거를 준다. 호다카가 그 가게에 간 건 그날 처음이 아니다. 남자아이는 만났다, 여자아이를.

 

 누군가를 만난다고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호다카는 도쿄에서 어떻게든 지내려고 배에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찾아간다. 배에서 봤을 때는 위험한 사람 같기도 했는데 잡지에서 의뢰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스가 케이이치는. 거기에서 일하는 나츠미도 만난다. 스가는 어른이고 나츠미는 어른이 되어가는 사람이라 해야 할까. 호다카는 스가와 나츠미한테 혼나면서 일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호다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린이로 여기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스가와 나츠미는 호다카가 집을 나온 걸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스가가 알아보는 일은 도시전설 같은 거다. 그걸 믿고 하는 건 아닌 것도 같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건 나츠미다. 나츠미는 누구의 말이든 믿고 맞장구쳤다. 말하는 사람은 즐거워서 술술 말했다. 거기에는 날씨를 맑게 하는 여자를 만났다는 소문도 있다. 호다카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던 여자아이를 다시 만난다. 여자아이는 아마노 히나로 비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넓게는 아니고 한정된 곳만.

 

 난 외계인이 나타나거나 어떤 힘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큰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히나는 부모없이 어린 동생하고 살았다. 히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히나는 햄버거 가게 일을 그만뒀다. 햄버거 가게 일을 그만둬서 다른 일을 하려 했다. 호다카는 히나가 비를 멎게 하는 걸로 돈을 벌 생각을 한다. 맑은 날씨로 만들어준다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 일을 한다. 도쿄는 거의 날마다 비가 내린다. 히나 동생 나기도 함께 다닌다. 히나 동생 나기는 열살인데 귀여우면서도 재미있다. 나기는 호다카가 스가를 찾아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봤는데, 나기는 버스에서 여자아이 둘을 만났다. 둘을 한꺼번에 만난 건 아니고 한 아이가 내린 곳에서 다른 여자아이가 탔는데 그 여자아이도 나기를 알았다. 그렇게 버스에서 본 아이를 다시 만나다니. 첫번째 일을 할 때 호다카는 히나가 정말 비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잘됐다. 히나와 호다카 그리고 나기를 만난 사람은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그건 오래 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 뉴스에 얼굴이 나가서. 난 그런 건 오래 할 게 못된다고 생각했다. 히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

 

 세상이 이상해졌다. 비가 그치지 않고 자꾸 내렸다. 경찰이 호다카를 찾으려 하고 히나와 나기도 헤어져야 할지 몰랐다. 아이들 셋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건 꽤 현실스럽구나. 그렇다고 거기에 마음이 꺾일 아이들이 아니다. 셋은 함께 달아난다. 그 정도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슬픈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즐거운 밤을 보내고 히나가 사라졌다. 많은 사람은 한사람이 희생하고 괜찮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겠지. 한사람은 자신이 아니기를 바라고. 사람은 제멋대로구나. 자신이 아니면 누군가 희생해도 괜찮다니. 아무도 히나한테 희생하라 하지 않았지만 말없이 바란 걸지도. 한사람과 여러 사람에서 여러 사람을 구하려고 한사람만 희생해야 할까. 한사람과 여러 사람 모두 구할 방법을 찾는 게 더 낫겠다.

 

 꿈 같은 이야기지만 괜찮다. 끊임없이 비가 오는 건 우울할 것 같지만. 비가 오고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호다카는 열여덟살이 됐고 다시 섬을 나온다. 이번에는 잘 살아가겠지. 살다보면 다시 맑은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희선

 

 

 

 

☆―

 

 どんなに雨に濡れても、僕たちは生きている。どんなに雨に世界が変わっても、僕たちは生きていく。

 

 「僕たちは、大丈夫だ」

 

 

 아무리 비에 젖어도 우리는 살아 있다. 아무리 비로 세상이 바뀌어도 우리는 살아갈 거다.

 

 “우리는 괜찮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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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담은 그릇은 쉽게도 깨끗하게 할 수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때가 낀 마음은 어떻게 씻어내야 할까

마음을 수세미로 박박 닦을 수도 없고

흐르는 물에 씻을 수도 없고

빗자루로 쓸어낼 수도 없구나

 

여러 갈래로 뻗은 마음도 가지를 쳐야 할 텐데

하나씩 잘라내면 얼마나 좋을까

깨끗하게 못해도 버릴 건 버려야겠지

버리지 못해 괴로우면

마음먹고 버리자

 

한번 버린 걸 다시 주울 때도 있겠지

그때는 다시 해 보는 것도 괜찮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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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18 소설 보다
박민정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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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이 책 ‘소설 보다’는 처음 만났다. 소설은 네편 실렸다. 네편이어서 빨리 보고 써야지 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한국 단편소설이어서. 예전에는 단편소설 보고 아무것도 안 쓰고(다른 책 보고도 거의 안 썼구나), 몇해 전부터 단편 보고도 쓰려 했다. 쓰니까 그 소설을 생각해서 괜찮기도 했는데 여전히 힘들다. 난 언제쯤 단편소설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만난 것 가운데 괜찮았던 게 하나도 없지 않았지만 다 알아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 사람 소설이 실린 건 《젊은작가상 작품집》만 봤다. 그래도 그걸 보고 여러 소설가 이름을 알고 몇사람 소설집도 만났다. 그렇게 아는 것도 괜찮다. 네사람 박민정 백수린 서이제 정용준 소설에서 서이제 소설은 처음 만났다. 나머지 세사람 소설도 많이 보지는 않았구나.

 

 박민정 소설 <나의 사촌 리사>를 보니 예전에 《젊은작가상 작품집》에서 본 <세실, 주희>가 생각났다. 비슷한 이야기도 아닌데 그러다니. 일본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리사는 한국 사람 엄마와 일본 사람 아빠가 부모지만. 그러고 보니 세실이나 리사는 일본스럽지 않은 이름이구나. 실제 일본에는 영어식 이름 쓰는 사람 많은 듯하다. 영어 같은 이름이어도 한자로 쓸 수 있는 것도 있다. 리사는 어렸을 때는 아이돌이었다. 지현은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리사를 소설로 썼다. 그리고 또 리사를 소설로 쓰려 했다. 하지만 소설은 쓰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를 보니 이 소설은 박민정이 ‘왜 쓰는가’ 하는 대답이라고도 한다. 소설가인 지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잘 봤다면 좋았을까. 리사는 예전에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산다. 그렇게 사는 게 안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리사와 함께 메가미를 한 하루미는 아이돌을 그만두고도 연예계에 남으려 했는데 안 좋은 일을 당한다. 그런 일 소설에만 나오는 건 아닐 거다. 한국에도 아이돌을 내세워 돈을 벌려는 사람 있겠다. 언젠가 노예 계약이라느니 하는 말 본 적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다른 나라에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곳에서 지내는 게 좀 낫겠지. 백수린 소설 <시간의 궤적>은 ‘나’와 언니가 프랑스에서 만나고 친하게 지내다 멀어지는 이야기다. ‘나’는 프랑스로 공부를 하러 갔고 언니는 대기업 주재원이었다. ‘나’는 프랑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수 없어 결혼한다. ‘나’가 결혼하도록 마음먹게 언니가 말했다. 어쩌면 언니는 ‘나’한테 결혼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자기 멋대로 받아들이기도 하니. 왜 여자는 결혼하면 친구 사이가 오래 가지 않는지. 서로가 다르게 생각해설까. 꼭 그런 건 아닐 거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잘 지내면 좋을 텐데. ‘나’가 결혼하고 언니가 결혼하지 않아서 두사람 사이가 멀어진 건 아니겠구나. ‘나’는 앞으로도 프랑스에 살아야 하고 언니는 한국으로 떠나야 해서 그렇게 된 걸지도. 멀리 살아도 친구로 지낼 수 있을 텐데. 결혼하고 남편하고 사이가 삐걱거리면 둘레에서는 아이가 생기면 괜찮을 거다 하는데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이가 생기고 조금 안정 됐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 프랑스말로 자신한테 안 좋은 말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언니 사이는 아주 끝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서이제라는 소설가는 처음 알았다. <미신(迷信)>은 자주 보는 소설과 좀 다르다. 이 소설은 열해전 ‘선생님이 죽고, 그 애가 사라졌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87쪽)’생각하는 듯하다. ‘나’한테 이 군은 자신 때문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일까. 한사람은 사라지고 한사람은 죽는 일을 겪으면 그 일을 오랫동안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해가 지고, 해가 뜬다. 또 아침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창 밖을 본다. 어떻게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 모르면서, 살고 있다. 모르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고, 눈은 내리고 있는데, 정말로 시간은 흐르고 있는 걸까. 그날 이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미신>에서, 109쪽)

 

 

 마지막은 정용준 소설 <사라지는 것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아이가 죽는다면 남은 사람은 힘들겠지. 식구는 서로 자기 탓을 하거나 상대를 탓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돌볼 때는 아이한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하다. 집에서도 부모가 잠깐 눈을 떼면 먹지 않아야 하는 걸 먹거나 다치기도 하는데 바깥에는 위험한 게 많으니 더 그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성수 엄마도 손녀 돌보기 힘들었을 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돌볼 때는 별일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누구 잘못이다 말하기 어려울 거다. 하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아이를 잃으면 남은 식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을 탓하지 않고 서로를 탓하지도 않고 살기를 바란다. 쉽지 않겠지만. 성수 엄마가 앞으로는 힘 빼고 살았으면 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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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 아우름 9
장석주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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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제목 멋지군요. 자신이 읽은 책이 곧 자신의 우주라니. 책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읽지 않아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래도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게 조금 낫습니다. 책을 보면 자신이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곳이나 실제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어요. 그런 재미가 있기에 책을 보는 거겠지요. 한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건 아주 적습니다. 자신이 몸소 겪는 게 더 좋겠지만, 책은 간접으로 그 일을 겪게 합니다. 그걸 보고 실제 어딘가에 가는 사람도 있겠네요. 멋진 소설 배경이 된 곳이나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살았던 곳 말이에요. 그런 곳을 다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게으르고 힘든 거 싫어서 어딘가에 가지 않고 책으로만 떠납니다. 거의 소설입니다. 그렇다 해도 여러 나라 소설이 아니고 일본소설을 많이 봤군요. 이건 2010년쯤부터 그랬네요. 일본 미스터리. 미스터리, 스릴러는 여러 나라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서양은 저랑 좀 안 맞아요. 저와는 반대로 일본 미스터리가 맞지 않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는 책을 거의 안 봤어요. 둘레에 책을 보는 사람도 책도 없었어요. 장석주도 저와 비슷했는데 저와 달랐던 게 있었습니다. 장석주는 책이 많은 친구네 집에 가서 책을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거의 도서관에 갔다고 해요. 저는 책 많은 친구도 없었고 도서관도 몰랐습니다. 그럴 수가. 책이 없다 해도 관심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별로 관심 갖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책을 꾸준히 본 건 고등학교를 마치고부터예요. 그때 저는 시와 소설을 봤는데, 장석주는 스무살 무렵에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봤답니다. 시 소설도 봤겠지요. 저는 몇해 전까지 장석주를 시인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동안 시뿐 아니라 여러 글을 썼더군요. 아, 소설이나 소설 작법 책도 있었어요. 소설은 못 봤지만 소설 작법은 예전에 봤어요. 그 정도만 알았습니다. 몇해 전에야 책을 많이 읽고 책을 많이 쓴다는 걸 알았습니다. 읽는 만큼 그렇게 쓰는 걸까요.

 

 무언가를 쓰려면 그 바탕이 되는 게 있어야겠지요. 저는 아무래도 바탕이 되는 게 적은가 봐요. 그러니 별로 못 쓰겠지요. 책도 참 천천히 봅니다. 이 책을 보고 하나 알았습니다. 그건 저도 책 볼 때 왼쪽뿐 아니라 오른쪽 뇌도 쓴다는 걸. 하지만 그렇게 힘 쓰는 건 아닐지도. 왼쪽 뇌 책 읽기는 내용과 논리를 따라가는 거고, 오른쪽 뇌 책 읽기는 정보를 그림으로 바꾸는 거랍니다. 이런 책 읽기는 누구나 하겠군요. 책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리는 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책 읽은 느낌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건 그래서겠지요. 사람은 늘 왼쪽 뇌뿐 아니라 오른쪽 뇌도 쓸 거예요. 그저 왼쪽과 오른쪽 뇌를 똑같이 쓰지 못하고 한쪽을 더 씁니다. 지금은 일부러라도 오른쪽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잖아요. 오른쪽 뇌는 창의력이나 예술과 상관있습니다. 왼쪽 오른쪽 뇌 모두 쓰게 하는 데 책 읽기만큼 좋은 것도 없군요. 책 읽기 말고도 악기 연주나 음악 듣기도 괜찮겠지요. 그림 보기 그림 그리기도, 왼손 오른손 다 쓰기도.

 

 한해 동안 제가 읽는 책은 얼마 안 됩니다. 장석주는 가진 책이 3만권쯤 되고 한해에 천권 정도 산답니다. 책 쓰고 그 돈으로 거의 책을 사는가 봅니다. 그 책 다 보다니. 어쩌면 천천히 다 보는 건 얼마 안 되고 자신이 봐야 하는 부분만 보는 책이 더 많을지도. 그렇게 해서 책을 쓰는 거겠지요. 그래도 대단합니다. 언젠가 그 말 봤어요. 장석주 자신이 가진 책으로 제주도에 ‘여행자의 도서관’ 짓겠다고 한 말. 이 책이 나온 건 2015년인데 그 일은 지금 어느 정도나 나아갔을지. 장석주는 책이 3만권 있는 것도 모자란다고 하더군요. 8만권에서 10만권 정도는 있어야 자료를 바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글 쓸 때 자료 찾는다고 하잖아요. 전 여전히 그거 못합니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저는 책을 읽고 머릿속에 있는 걸로 씁니다. 그러려면 책을 더 많이 보고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제 것이 되지 않고 잊어버리는 게 더 많은 듯합니다. 책을 읽고 잊는다 해도 조금은 남고 쌓이겠지요.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고 책도 여러 분야를 봐야 하는데 제가 자주 보는 건 소설(가끔 시)이에요. 소설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어떤 책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책을 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지. 그렇게 하려면 과학 철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 책도 보면 좋겠지요. 저는 그런 책 별로 못 봤습니다. 장석주가 노자 장자를 봤다고 해서 조금 반가웠어요. 얼마전에 《장자인문학》(안희진)이라는 책을 봐서. 겨우 한권 봤으면서 그랬습니다. 책을 읽으면 사람이 달라지기도 한다는데, 그 말 보고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봐도 저는 여전히 마음 좁고 자유롭지 못해요. 이건 제 잘못이겠습니다. 책을 읽기만 하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 게 아주 없지 않지만 아직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싫은 건 싫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 조금 살기 힘들겠지요. 고집부리지 않고 넓은 마음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남한테 피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이리저리 휩쓸리기보다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게 더 좋겠습니다.

 

 시를 보라고도 했습니다. 시집 한달에 한권은 봐야지 한 적도 있는데 요새는 어쩌다 한번 만납니다. 그래도 예전에 시를 조금이라도 봐서 지금도 시를 괜찮게 여기는군요. 앞으로도 시 가끔 만나야겠습니다. 제가 쓰는 건 좀 유치하고 시 같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시나 이야기 쓰려 해도 책 봐야죠. 다른 책에서 영감을 얻는 사람도 있는데 전 그런 일도 거의 없어요. 책을 잘 보면 그런 일도 있을지. 무엇보다 책 읽기를 재미있게 여겨야 합니다. 이건 무엇이든 그렇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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