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19
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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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은 일찍 사두었는데 바로 만나지 못하고 이제야 봤습니다. 박준 첫번째 시집은 2012년에 나왔는데 두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군요. 그동안 박준이 시를 안 쓴 건 아니겠지만, 첫번째 시집은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알았는데 두번째 시집은 나오는 거 바로 알았습니다. 저는 시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알았지만, 나오기 전부터 나온다는 걸 안 사람도 있었겠습니다. 박준 시집이 나오길 기다린 사람이 그랬겠습니다. 저는 나오면 볼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온도가 그리 높지 않은 마음이군요. 많은 것에 그런 반응입니다. 어쩌다 한번 조금 들뜨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 덜 기대하기. 이런 말하는 것 자체가 아직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제가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괜찮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한번 한 말인데 제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시도 가끔 봤어요. 알고 본 건 아니고 그냥, 잘 몰라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쉽게도 시를 만나지 않은 시간도 있었어요. 그런 시간 없이 줄곧 봤다면 나았을지. 그건 모르겠군요. 예전보다 지금 제가 책을, 시를 잘 읽는다고 말하기 어려우니(이 말도 여러 번 했군요). 전 시는 언제 누가 보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나이 성별을 떠나서. 제가 살았을 때 어느 정도나 시를 만나고 책을 볼 수 있을지. 여전히 많이 보고 싶은 마음과 천천히 깊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잘 모르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잊는다 해도 책 보는 게 낫겠지요. 그 안에 시가 있다면 더 괜찮을 듯합니다.

 

 한국말로 시를 쓴 지 일백년쯤이 되었군요. 이런 건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는 늘 있었다 생각한 건 아닌지. 조선시대에는 한시를 썼겠습니다. 한글은 진작부터 있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선시대에도 한글로 쓴 시 있지 않았을까요. 황진이 생각나는군요. 조선시대에 한글로 쓴 소설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지금도 시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70, 80년대에 더 많이 좋아했다는 말도 있지만, 70, 80년대는 시대가 그랬으니. 일제강점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할 때 시인은 한글로 시를 썼습니다. 그때 시는 공부 시간에 배워서 어렵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제 상징 은유, 이밖에 어떤 말이 있던가요. 다 잊어버렸네요. 학교 다닐 때라고 그런 걸 잘 알았던 건 아니군요. 시 이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시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이 이론대로 시를 쓰지도 않겠지요. 그저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보여주고 싶은 걸 쓸 거예요.

 

 

 

올해 두 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단비>, 36쪽~37쪽

 

 

 

 앞에 옮겨 쓴 시에서 단비는 개겠지요. 개라고 자식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람과 살아서 개는 일찍부터 새끼와 떨어지는군요. 어미와 떨어진 새끼는 다른 집에 가서 밤새워 울 듯합니다. 그래도 동물은 어릴 때 어미와 떨어져도 씩씩하게 삽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도 언제까지나 자식을 걱정하지요. 그런 마음 애틋하게 보면 좀 낫겠습니다.

 

 

 

그곳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48쪽~49쪽

 

 

 

 이 시집 제목이 담긴 시예요. 누군가한테는 아픈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년 다른 해와 다르지 않게 함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고 장마를 맞겠지 했는데 그러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과 갑작스러운 일. 2019년이 저만 슬픈 해는 아니었겠군요. 해마다 다른 곳에서 아프고 슬픈 일을 만나는 사람 많을 듯합니다. 그저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슬픈데. 더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거 더 슬픕니다. 별 말 하지 않는다 해도. 나이를 먹는 건 슬픔을 안고 그것과 함께 사는 거군요. 어릴 때는 막연히 생각했던 건데. 박준은 저보다 더 일찍 그런 일을 겪었군요. 이 시집에도 그런 마음을 나타낸 시가 보입니다. 그것이 맞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흐르는 건 막을 수 없겠습니다. 거기에 휩쓸려 다 흘려보내지 않아야 할 텐데.

 

 

 

게들은 내장부터 차가워진다

 

마을에서는 잡은 게를 바로 먹지 않고

맑은 물에 가둬 먹이를 주어가며

닷새며 열흘을 더 길러 살을 불린다

 

아이는 심부름길에 몰래

게를 꺼내 강물에 풀어준다

 

찬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는 한밤에도

 

낮에 마주친 게들이 떠올라

한두 마리 더 집어들고 강으로 간다

 

-<천변 아이>, 73쪽

 

 

 

 배가 고파도 아이는 게를 불쌍하게 여겼군요. 어릴 때는 그러지요. 그런 마음이 자라서도 사라지지 않으면 좋을 텐데. 모든 먹을거리한테 고맙다고 해야겠습니다. 식물, 동물 다. 욕심내지 않고 딱 자신한테 있어야 하는 만큼만.

 

 저도 몰랐는데 박준을 문학계 아이돌이라고도 하더군요. 재미있는 말입니다. 시인에도 그런 사람 있어도 괜찮겠지요. 예전에도 그런 시인 소설가가 없지 않았겠습니다. 여기에는 한철만 담기지 않았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말합니다. 지금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건 신형철이 쓴 해설을 보고 그렇구나 했습니다. 지나간 날이라 해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 찾아오기도 한다는. 예전에는 몰랐던 걸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닫기도 하잖아요. 지금 일은 언젠가 나중에 다가오기도 하겠습니다. 기억과도 같군요. 어떤 시간은 그곳에 남아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흐르는 건 멈출 수 없다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겠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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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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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8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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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세상에 오고

세상을 살다

세상을 떠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삶도 흘러간다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삶은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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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태동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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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전에 《라플라스의 마녀》를 만났는데, 이건 그것보다 앞에 이야기다. 《매스커레이드 호텔》도 나중에 앞에 이야기를 쓰더니 이것도 그랬다. 앞으로 우하라 마도카가 나오는 이야기 또 나올까. 그건 기다려봐야 알겠구나. 이번에 나온 마도카를 보니 조금 부러웠다. 무엇이 부러웠느냐면 마도카는 별거 아닌 일에 마음 안 쓸 것처럼 보였다. 난 지금도 별거 아닌 일 크게 생각하고 걱정해도 좋아지지 않을 일을 걱정한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누구나 앞으로 일어날 일은 잘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몰라도 어떤 일을 되풀이해서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안다. 그렇다고 많이 달라지지는 않던가. 날마다 먼지를 털지 않으면 쌓이고, 이건 아주 기초구나. 자기 전에 이를 닦지 않으면 이가 썩기도 하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건강이 안 좋아진다. 몸에 안 좋은 것뿐 아니라 괜찮은 것도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 이런 건 살면서 얻는 지혤까. 물리와는 상관없을지.

 

 마도카가 어떤 아이인지 여기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뇌신경외과 의사고 엄마는 토네이도 때문에 죽었다는 것밖에. 다른 사람은 신비한 아이로 본다. 《라플라스의 마녀》에는 자세하게 나왔을 텐데 잊어버렸다. 그저 뇌가 다른 사람과 다르고 그것 때문에 어떤 걸 보기만 해도 안다는 것만 생각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듯하다. 그 계산을 아주 빠르게 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도 알 수 있다. 마도카가 그렇다고 봐야겠구나. 이런 사람이 마도카 하나뿐일까. 마지막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하나 나온다. 마도카가 찾는 사람이 그 사람일지도. 그러고 보니 《라플라스의 마녀》에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알아맞혔던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게 아는 사람 있을까. 사람 행동은 심리학으로 다가가서 볼 수도 있겠다. 어딘가에서는 바람을 잘 읽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그건 자연을 몸으로 느끼는 거겠지. 그것도 깊이 보면 뇌와 상관있겠다.

 

 이번 이야기 어쩐지 따듯한 느낌이 든다. 운동하는 사람과 앞이 보이지 않는 피아니스트면서 작곡가 마음을 낫게 하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운동 이야기도 썼다. 과학과 운동은 가깝다. 운동하는 사람한테 침을 놔주는 구도 나유타가 나오는 건 뜻밖일까(옮긴 사람이 그런 말을 해서). 운동을 하고 나면 마사지 받고 근육을 풀어줄 것 같기는 하다. 나유타는 운동 하고 아픈 사람한테 침을 놔주었다. 몸도 안 좋고 나이도 먹은 스키 점프 선수는 한번만 뛰고 그만두려 했다. 첫날 두번째 기록이 안 좋아서 둘째날에는 아예 안 뛰려 했다. 마도카는 자신이 신호를 보내면 뛰라고 한다. 첫번째 기록은 아주 좋았다. 두번째는 다른 사람과 거의 같은 조건이어서 마도카는 스키 점프 선수 아내한테 신호를 보내라 한다. 바람을 잘 읽고 좋은 때 뛰어야만 기록이 잘 나올까. 실력도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닐까. 스키 점프 선수는 실력과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마지막에 뛰었다.

 

 야구 선수도 나온다. 너클볼을 못 받게 된 포수. 마도카와 투수 그리고 나유타는 포수가 공을 받을 수 있게 돕는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고 잘 되는 건 아닐 거다. 경기에서 실수하고 자신을 잃었던 포수는 다시 자신을 갖는다. 세번째에서는 나유타가 다닌 학교 선생님 마음을 풀어준다. 부모는 자식이 위험에 놓였을 때 구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겠지. 죄책감을 느껴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사람이 바로 그러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지 않고 지금과 앞으로를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 피아니스트면서 작곡가인 아사히나 잇세이한테 소중한 사람인 오무라 이사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했다. 아사히나는 자신 때문에 오무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아닐까 한다. 나유타와 마도카는 오무라 이사무가 어쩌다가 죽었는지 밝혀낸다. 오무라는 아사히나한테 영감을 줄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러 산에 갔다가 갑자기 분 바람 때문에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나유타는 그저 마도카를 지켜보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인가 했는데 나유타한테도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었다. 나유타는 마도카를 만나고 그걸 풀게 된 걸까.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됐다고 해야겠다.

 

 마지막 이야기는 ‘라플라스의 마녀’에 나오는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들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마도카는 잊지 않았구나. 황화수소 가스 때문에 죽은 식구 이야기는 안타깝다. 눈이 많이 쌓이지 않거나 여관 사람이 더 조심하라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라플라스의 마녀는 황화수소 가스로 죽은 사람 이야기로 시작한다. 황화수소가 고여서 위험한 곳도 있지만 그게 더 많이 나오는 때를 안다면 어떨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그걸 좋은 일에 쓰고 둘레 사람도 그 사람을 안 좋은 일에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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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나 이틀은 쉬어도 될 듯해

사흘은 좀 길지

하루 이틀 사흘 쓰지 않으면

나흘째에 쓰기 어려워

 

생각나지 않아도

쓸 게 없어도

생각하

쓰기

 

그때 마음이 아니면 어때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

유치한 거라도 쓰면 좀 낫잖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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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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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무척 게으르다. 이 말부터 시작하다니. 무언가를 좋아하려면 부지런해야 하지 않을까. 게으른 내가 그나마 하는 건 읽고 쓰기다. 책을 읽었을 때부터 쓰기도 했다면 읽기를 조금 더 잘 했을까.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안 쓴 건 아니다(이 말 몇번째일지). 그때 난 일기와 편지를 썼다. 책을 보다가 나도 재미있는 이야기 쓰고 싶다 생각했다. 어쩌다 한번 짧게라도 이야기를 쓰는 건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해선가. 난 어떤 생각을 하고 그걸 잘 알려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 만화를 보면 무언가를 잘하려고 하루 내내 그것만 하다가 어느 날 잘하기도 하던데, 현실은 만화와는 조금 다른 듯하다. 하나만 파고드는 게 안 좋다는 건 아니다. 만화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거다.

 

 만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가 아닐까.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 일을 기억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구나. 어릴 때 난 친척집 가는 게 무척 싫었다. 왜 싫었느냐 하면 자주 만나지 않아서였다. 학교도 새학년으로 올라가면 아주 싫었다. 그래도 학교 쉬지 않고 갔다. 학교 다닐 때는 가끔 친구를 밖에서 만나기도 했다. 친구하고 만나기로 하면 그때부터 무척 걱정했다. 친구를 만나면 대체 무슨 말을 하지 같은. 아무 말 안 해도 괜찮다고 여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말 안 해도 편한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고 아직 만나지 못한 건가. 사람을 만나봐야 그런 사람을 만나겠지. 이젠 그런 바람 없다. 말하지 않아도 편한 사람은 나 자신이구나. 이젠 억지로 친척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이건 오래됐구나. 가까운 데 사는 친구도 없다. 가까운 데 친구가 있어서 만난다는 사람 조금 부럽지만,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닌 걸 어쩌나.

 

 읽은 책보다 내 이야기를 하다니.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았구나. 그것도 다른 것을. 하나 더 말해볼까. 지금까지 난 해 본게 별로 없다. 이건 게으른 것과 낯가림이 심한 것 때문이구나. 글을 쓰려면 여러 경험을 해 봐야 한다잖은가. 예전에 나도 그런 말을 봤지만, 왜 꼭 그래야 하는데 했다. 난 청개구린가 보다. 책이라도 잘 많이 읽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많이 못 봤다. 내가 살았을 때 만권 채울 수 있을지. 이건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구나. 책 만권 보기. 나한테는 오래 걸리는 목표가 하나 있구나. 책 만권 읽기는 시간을 들이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 난 이런 걸 좋아한다. 그렇게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언젠가 이루는 것. 책 만권 보기도 나와 다르게 빨리 이루려는 사람이 있겠지. 난 이걸 생각했다가 잊어버렸다 다시 떠올린다. 책 만권을 읽는다 해도 난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더 든다. 아니 조금은 달라질까. 그러면 좋을 텐데. 내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어떤 깨달음을 얻고 싶은 걸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읽고 싶은 거다.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게 왜 좋은지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여기에서 말한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악셀 하케)를 말하는 글 작가 블로그에서 몇번 봤다. 나도 이 책을 읽어서 같은 책 보기도 했구나 했다. 사실 예전에 책을 봤지만 거기에서 말하는 게 뭔지 몰랐다. 그저 있을 때 잘해야 하지 않을까 정도만 생각했다. 이번에 그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어떤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박완서가 썼다는 글에 나온 죽음이라는 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그 말을 봤지만 그때는 몰랐다.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가 대체 무슨 이야긴지. 제목에 ‘사라진’이 나오는데, 그걸 죽음과 잇지 못하다니. 이제야 할 수 있게 됐구나.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 다 생각나지는 않고 데쳄버가 조금씩 줄어들다 아주 사라지는 것만 생각난다. 데쳄버가 사라지는 건 그저 보이지 않는다기보다 죽음을 나타내는 건가 보다. 그건 데쳄버한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자신 없는 말을). 데쳄버는 독일말로 12월일 거다. 12월은 한해 마지막 달이다.

 

 죽음. 사실 난 죽음을 그렇게 가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설에서 누가 죽으면 슬프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었다. 2019년에 죽음은 나와 가까이 있었다. 아니 그건 2017년부터였구나. 그때 아닌 척했지만 죽음을 생각한 건 그래서였다. 내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 마음도 잘 모르다니. 슬프다, 마음 아프다, 덧없다. 책을 보고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 죽음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죽는 게 무섭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한다면 무섭겠지만. 그게 아니고 다른 거로 죽는다면 그냥 받아들일 듯하다. 난 내가 죽을 날을 조금 알지 갑자기 죽을지. 자신은 남고 다른 사람이 죽는 건 좀 힘들 것 같다. 힘들다. 나도 데쳄버처럼 줄어들다 아주 사라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사라지고 내가 있었다는 흔적도 사라지면 좋겠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걸 잘 알고 잘하려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건 누가 하지 마라 해도 하겠지만. 사실 난 하기 싫은 건 거의 안 하고 산다. 어떤 건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 아주 잠깐 하고 만다. 하기 싫은 정리, 버리기, 청소(다 같은 말이구나)는 어떻게 하면 할까. 내 바람은 물건이 얼마 없는 방에서 지내긴데. 그건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하려나. 이 말하려고 한 게 아닌데. 누구나 좋아하는 걸로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또 어떤가 싶다.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난 꿈이 크지 않구나. 좋아하는 걸 하다가 잘된 사람을 보고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 하는 꿈을 꾸기에는 내가 긍정스럽지 않다. 난 없는대로 없는 것 안에서 하려는 사람이다. 절실함이 모자란 것일지도. 그래도 언젠가 괜찮은 글 쓰고 싶다. 그러려면 책 읽고 써야겠구나.

 

 이 책을 읽고 싶게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어쩐지 작가한테 미안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써야 했는데. 재미없는 내 말만 하다니. 이 책을 보면 ‘나랑 비슷하다’거나 ‘나하고는 좀 다르네’ 생각할 거다. 이건 어떤 책에서든 느낄까. 책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괜찮지 않나. 내가 책을 보고 쓰는 건 나를 알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좋아하려고인가. 아직도 난 나를 좋아하지 못한다. 가끔 내가 나를 괜찮다 생각하다가도 바로 별로야 한다. 다음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괜찮은 주문 같은 말을 생각하면 좋을 텐데. 좋아하는 게 아주 많아도 좋아 같은 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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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새해를 앞두고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2020년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원하시는 것을 이루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0-01-01 00:57   좋아요 1 | URL
몇 분 사이로 해가 바뀌었습니다 아직 해는 못 보지만... 새해 첫날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요 지난해와 다르지 않을 듯하지만... 이번 해도 다른 해와 비슷하게 지낼 듯합니다 다른 것보다 좀 더 마음이 자라기를 바라야겠습니다

서니데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짓기도 하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1-03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게으르고 느린 편입니다. 그래서 좋은 점은 꼼꼼하다는 거죠. 느린 대신 꼼꼼하죠.
이것도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은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내거든요.
저의 장점이라면 꾸준함, 일 것 같아요.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지 않는 끈기, 지구력은 있어요.
희선 님이 책 만 권 읽기, 를 말하시니 님도 꾸준함이라는 강점이 있을 듯합니다.
저어겐 만 권은 너무 많고 3분의 1로 줄여 꾸준한 독서를 할까 합니다.
꾸준함을 무기 삼아 사는 걸로...

마음을 듬뿍 담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희선 2020-01-04 01:29   좋아요 1 | URL
천천히 하는 게 많다 해도 속도를 내야 하는 건 하기도 하죠 저는 그런 게 그렇게 많지 않지만... 저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책읽고 쓰기는 그게 되기는 했네요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면 좋을 듯해요 그게 자신이 좋아하는 거면 더 좋겠지요 좋아하는 건 그렇게 되기는 하는데, 좋아해도 하기 싫을 때 있어요 그럴 때는 잠깐 쉬면 다시 하겠지요

만권, 다 볼지... 몇해 전에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걸 꼭 해야지 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언젠가 이룬다면 좋을 듯합니다 만권은 덜 생각하고 천천히라도 죽 책을 읽을까 합니다

몇 권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기는 하죠 페크 님은 책을 깊이 있게 꾸준히 보시겠군요 그러면서 글도 쓰시고...

페크 님 고맙습니다 새해가 오고 사흘이 갔습니다 아직 2020년이 익숙하지 않네요 설이 가고 이월쯤이 가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