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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일 확률 ㅣ 문학동네 시인선 121
박세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가끔 시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워서 다른 때보다 시를 더 만났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은 여전히 많군요. 그저 제가 못 알아듣는 거겠지요. 박상수 시인이 쓴 해설 제목은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 전문가>예요. 시인은 시인이 쓴 시를 알아보는군요. 시를 쓴다 해도 저는 쉽게 쓰고, 깊이 있게 쓰지 못합니다. 그게 시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박세미가 쓴 시를 보니 이런 시는 못 쓰겠구나 했습니다. 박세미뿐 아니라 어떤 시인이 쓴 시든 저는 못 쓰겠군요. 저는 그냥 저대로 쓸까 합니다. 앞으로도 시 같지도 않은 걸 쓰겠다니. 이야기 쓰고 싶다는 말 했으면서. 시 형식으로 이야기 쓰고 싶기도 해요. 그런 시 아주 없지 않지요. 이런 말을 하니 조금 창피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건 그냥입니다.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게 낫습니다. 잘 쓰지 못해도. 시를 만나는 것도 다르지 않군요. 잘 알아듣지 못해도 제가 쓰지 못하는 걸 만나면 좋아요. 이렇게 생각하고 쓸 수도 있구나 합니다.
저는 박세미 시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해도 다른 사람은 알기도 하겠지요. 아픈 마음을 자주 말하는 걸까요. 해설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죽으려고 하거나 사람이 아닌 작은 피규어가 된다면 다른 데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해요. 혼자여도 무언가(누군가일지도)를 기다리기도 해요.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슬프겠지만, 기다리는 게 있다는 건 희망이 조금 있는 거겠지요. 잘 몰랐는데 시가 어두웠군요. 저는 어둠은 별로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어둠보다 잿빛,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희미함. 이건 시를 본 제 마음일 듯하네요. 잘 모른다면서 이런 걸 쓰다니. 시집을 만났다는 증거를 남기려구요. 아무것도 안 쓰고 다른 책으로 넘어갈까 하는 생각 잠깐 했어요.
카스텔라가 무너진다
넌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가장 가벼운 말이었어
아무도 카스텔라 무게를 나누어 들지 않는다
갑자기 집안이 조용해진 적이 있지
드디어 누구 하나 죽은 것일까
기둥이 있다는 건 공간을 나누겠다는 것
이건 달콤한 개념이지
공간을 나눈다는 건 목적을 가지겠다는 것
그러나 나는 목적도 없이
방안에 다락방을, 다락방 안에 텐트를,
맨 마지막엔 인디언 텐트를 지을 거야
선풍기 바람에 방문이 서서히 닫히는 걸 본 적 있지
가볍고도 간결한 덩어리
카스텔라가 있었다
소리도 없이
-<무게는 소리도 없이>, 81쪽
뭔가 알아서 앞에 시를 옮긴 건 아니예요. 가벼운 말이다 하지만 ‘넌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하는 말은 무거운 말입니다. 그 무게에 마음은 짓눌리고 무너지는 걸지도.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마음, 밖에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닫아버리는 마음이군요. 멋대로 자기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겠습니다. 가볍게 한 말에도 상처받는 사람 있지요.
내게 가장 재수없는 일은
당신이 내 이름을 자꾸 부르는 것일까
당신이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는 것일까 (<뜻밖의 먼>에서, 103쪽)
이 부분은 시에서 마지막 연으로 앞에서 말한 것과 상관없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내게 가장 재수없는 일은 당신이 내 이름을 자꾸 부르는 건지, 한번도 부르지 않는 건지’ 그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겠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자꾸 부르면 짜증날 테고,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한번도 부르지 않으면 슬프겠지요. 그런 것과 상관없는 시일지도 모르겠네요. 제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그러는군요.
제가 만난 시집이 한권 늘었습니다. 시집에 담긴 시를 알든 모르든 그저 제가 만난 시집이 늘어난 게 기쁩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시인 시를 만나는 게 더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어떤 시든 만나는 데 뜻을 둬도 괜찮겠지요. 앞으로도 피하지 않고 시(시집)를 만나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시인 많습니다. 몰랐던 시인을 알게 되는 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