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 마음이

선명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빛바랬어

 

다시 돌릴 수 없겠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잘못된 것도 없고

누구 잘못도 아닌,

그저 그렇게 될 거였겠지

 

난 잠시

슬퍼할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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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 책에는 하늘만 담겼다는 말을 듣고, 전 언제나 병실에서 지내는 친구한테 그 책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병실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었지만 낮에는 커튼을 닫아야 했어요. 친구는 햇볕을 쬐면 안 됐어요.

 

 책방에도 도서관에도 파란색 책은 없었어요. 파란색 책이 보여서 봤지만 그건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었어요. 친구는 제가 어떤 책을 건네든 밝게 웃었어요. 친구는 책을 좋아했어요.

 

 친구한테 가져다 줄 책을 도서관에서 찾다가 책장 끝에 눈이 갔어요. 거기에는 제목도 쓰여있지 않은 선명한 파란색 책이 있었어요. 저는 혹시나 하고 그 책을 펴 보았어요. 책 속은 파란하늘 구름 가득한 하늘 해질 무렵 하늘 할 것 없이 이런저런 하늘이 담겨 있었어요. 저는 그 책이 제가 찾던 책이라는 걸 바로 알았어요.

 

 책을 빌리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사서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그건 도서관에 등록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제가 사서 선생님한테 병원에 있는 친구 이야기를 하니 사서 선생님은 책을 빌려주었어요.

 

 도서관을 나와 저는 바로 친구한테 갔어요. 친구는 제가 준 책을 보고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어요.

 

 이튿날 친구는 저를 보고 말했어요.

 

 “희진아, 이 책 무척 좋아. 내가 이 책을 펼쳤더니 진짜 하늘에 있는 것 같았어. 마지막은 하늘이 아니고 바다였어. 멋진 하늘 멋진 바다 보여줘서 고마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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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123
정끝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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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이름부터 시네요. 정끝별. 이름은 알았지만 시집은 이번이 두번째예요. 몇해 전에 본 시집에는 어떤 시가 담겼는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일자리 찾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이야기가 담긴 시를 소개했는데. 아버지 이야기도 있었네요. 이번 시집을 보다가 정끝별이 말을 가지고 놀았던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말을 가지고 놀지만 가볍지 않은 듯합니다. ‘애너그램을 위한 변주’를 제목 밑에 쓴 시가 여러 편인데 그 말이 없는 시에서도 말이 여러가지로 바뀝니다. 앞말에서 뒷말로 이어간다고 할까. 대칭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게 재미있네요. 이런 거 처음은 아닐 듯합니다. ‘살자살자살자, 여기를 이겨! (<깁스한 시급>─애너그램을 위한 변주>, 61쪽)’ 이 말은 힘을 주려고 한 말이겠지요. 힘들어도 죽고 싶은 마음을 이기기를.

 

 

 

육 남매 말썽 피울 적이면 엄마는 말했다

 

열 살까지는 부모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어선 다 니들 책임이라고

 

엄마는 책임을 다해 살았다

 

나도 그때의 엄마가 되어 딸에게 말한다

 

열 살까지는 내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라고

 

스무 살 스무 살까지만 하며 엄마처럼 살았다

 

보청기 잡음에 전화로도 기차 화통이신

여든다섯 엄마는 책임을 초과해 여태껏

쉰셋 늙은 딸 아침을 알람중이시다 그만

일어나라 밥 먹었냐 따순 밥 먹고 나간 자식들

안 비뚤어진다 파김치 시겠다 가져가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두 딸이 스무 살 스무 살이 되면

희망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조차도

 

-<삼대2>, 62쪽~63쪽

 

 

 

 제목이 <삼대2>라는 건 첫번째도 있다는 말이군요. 어머니, 딸, 손자 이렇게 삼대겠지요. 부모는 자식이 몇 살이어도 걱정한다잖아요. 어머니는 딸이 어릴 때는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다’ 하고는 쉰셋 딸을 아침에 깨우는군요. 김치까지 가져가라 하고. 딸이 알아서 할 텐데. 딸은 ‘난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그러겠지요. 부모와 자식 사이는 끊기 어렵고 걱정 안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엄마는 엄마고 아이는 아이죠. 옛날에는 엄마와 아이 사이가 무척 가깝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도 그런 사람 없지 않겠습니다. 그런 걸 부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누구하고든 적당하게 거리를 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 거리를 많이 두었지만. 그런 제 마음 차가운 걸까요. 마음속에 있는 걸 잘 말하지 못합니다. 이건 거리하고는 상관없는 거군요.

 

 

 

경비업체 직원이 죽었다 새벽 귀갓길이었다

 

잠시 귀국해 밤새 놀다 취한 유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강남대로변에서 일곱 청년에게 맞고 또 맞았으나

새벽기도 가는 행인 십수 명이 지나갔고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수십 대가 지나갔으나

때리다 지친 일곱이 다 달아난 후에야 중환자실로 옮겨져

스무날 만에 숨진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생모는 동생을 낳다가 죽었다

생부는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입양되고 그는 조부모가 거두었으나

조부모마저 이혼하면서 그도 보육원에 갔다

동생을 입양한 부부가 보육원에 봉사왔다 그를 만났으나

세 살 동생과 다섯 살 형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죽고 난 뒤 그가 살던 단칸방 서랍에는 유서인 듯

입대 통지서와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이 있었다

군복무 중인 동생이 유해를 거둬 생모 산소에 뿌렸다

 

집 가는 길이 가장 어둡고 쓸쓸해 눈 감고 걸었던

밤새 어둠을 바라보느라 핏발 선 그의 두 눈이

새벽 취객들 활보를 바로 보지 못해

대형 교회 십자가 불빛 아래서 맞고 또 맞는 동안

십수 명이 지나가고 수십 대가 지나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던 건 누구 눈이었을까

 

-<공범>, 94쪽~95쪽

 

 

 

 어쩌면 이 시는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무언가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 많겠지요. 저라고 누가 맞는 걸 보고 막을 수 있을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한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을 그저 보기만 해도 괴롭히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하지요. 잠시 귀국한 유학생과 보육원에 살았다는 이십대 사람은 대비되는군요. 술을 먹고 남을 때리다니. 그렇게 할 거면 술을 마시지 않아야지요. 슬픈 이야깁니다. 그냥 지나간 차 그냥 지나간 사람은 다 공범입니다. 남일을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만 있지 않을 거예요. 누군가를 도와주지는 못한다 해도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세상을 나타내는 시도 있어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자신. 지금 건망증이 있는 건지 그런 걸 말하는 시 <생각서치>도 있습니다. 저는 마트에서 물건 많이 못 사고 기억도 잘하는 편이어서 아직 공감이 가지는 않아요. 이런 말을 하다니. 언젠가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올지. 저는 단순하게 살아서 기억해야 할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잘못하는 일은 아주아주 가끔입니다. 잘 잊어버리지만 기억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건 조금 쓸데없는 거. 다른 사람이 읽은 책 같은 거. 요새는 잘 모르겠어요. 예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듯도 합니다. 글을 볼 때는 집중해야 할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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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3-17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 님,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 댓글 달아주셨는데 저는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참, 평소에 느끼는 거지만 희선 님은 시인이신가봐요?^^

희선 2020-03-18 02:22   좋아요 0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지나갈 때는 그렇게 빠르지 않은데, 지나고 나면 시간이 빨리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달도 반이 넘게 갔네요 다른 때하고는 다른 봄이기도 합니다 세계 어디나 다르지 않겠습니다 시를 잘 보고 싶기도 하고 글 잘 쓰고 싶기도 한데, 여전히 다 못합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라로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이팝꽃

 

 

 

 

하얗게 눈 쌓인 듯

이팝꽃이 피었네

 

이젠 보릿고개가 없어서

이팝꽃 보고

쌀밥 먹고 싶다 하지 않네

 

꽃을

꽃으로 즐길 수 있는

오늘날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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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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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사귀는 건 어떤 걸까.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 부모, 친구, 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섭섭하고 잘못 알기도 하겠다. 부모는 자식이 어떻기를 바라고 그런 걸 저도 모르게 강요한다. 자식은 난 어때야 해 하면서 힘쓰고, 그렇게 오래 살 수도 있겠지만 힘들 거다. 자식이. 부모가 나빠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부모도 자식도 서로 자기 이상을 밀어붙이지 않는 게 좋겠다. 자기 부모가 그러는 것도 힘들 텐데 시부모가 그런다면 어떨까. 그러면 더 숨막히겠지. 시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며느리한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들이 아닌 딸이 죽었다면 어떨까. 사위한테 기대려 하지 않겠지. 이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듯하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결혼하면 남편 집안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죽어서도 남편 집 사람이어야 하다니. 죽으면 부모뿐 아니라 남편도 다 없어질 텐데. 그나마 한국은 여성이 결혼해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 말 언젠가도 했구나. 일본은 여성이 결혼하면 성이 바뀌고 헤어지면 본래 성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좀 귀찮지 않을까. 어쩌다 일본은 그렇게 됐을까. 중국은 여성이 결혼해도 성 안 바뀌겠지. 한국이나 일본 다 가부장제기는 해도 한국은 여성이 조금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도 여성 집안을 따르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어느 날 가요코는 결혼하고 열다섯해를 함께 산 남편이 시내 호텔에서 뇌졸중으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남편은 가요코한테 도쿄로 출장간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시내 호텔에 있었다. 이런 말이 나오고 가요코 남편 통장에서 사오리라는 여자한테 달마다 돈을 보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남편이 아주 나쁘구나 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구나. 가요코한테 동정이 가기는 했다. 그런데 가요코가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 하는 걸 보니 그리 좋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마음이 약해졌는지 가요코한테 의지하려 했다. 시아버지는 치매 손위 시누이는 은둔형 외톨이였다. 가요코가 부담스럽기는 했겠다. 남편도 없는데 남편 부모나 시누이까지 보살피려면.

 

 나가사키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카세라는 집안은 그 지역에서 잘 알려졌나 보다. 가요코는 거의 감시 당했다. 별거 아닌 일도 시어머니가 알았다. 그런 데서 살면 숨막힐 듯하다. 난 밖에 나가도 아는 사람 거의 못 만나는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는 하구나. 가요코가 사는 곳은 그렇게 좁은 곳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남편이 죽고 시부모는 불단을 가요코 집에 놓는다. 시어머니는 불단에 향을 올린다면서 가요코가 없을 때 모르는 사람과 집에 들어왔다. 식구라 해도 자신이 없을 때 집에 들어오면 안 좋을 거다. 함께 살지 않으면 부모나 자식 집이라 해도 남의 집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요코는 자신한테 기대려는 시어머니가 부담스러워서 인척관계종료서라는 걸 알고 구청에 가서 낸다. 서류로는 그렇게 된다 해도 사람 인연은 바로 끊을 수 없을지도. 가요코는 남편과 살면서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좋았던 때도 조금 있었다. 가요코는 남편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 말하지 않은 사람도 문제지만. 서로 말한다고 해서 상대를 다 알지 못할 거다. 말 안 하면 더 모르겠지. 가요코가 며느리를 그만두기로 했지만 시어머니와 아주 모르는 사이로 지내지는 않겠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그게 나을 듯싶다. 시간이 흐르면 시어머니도 마음을 추스르고 집에만 있던 시누이도 조금 달라지겠지. 부모 자식이 다 서로한테 의지하지 않으려는 게 나을 듯싶다.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기댄 모습이라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더 기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담도 감당할 수 있어야겠지. 난 딱히 남한테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런 모습이 보일 때도 있을까. 하나 둘 나를 떠나는 듯해서. 글만으로는 남의 마음 더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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