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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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어떤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돌아가고 싶은 때 없다. 그런 때도 없다니. 어쩐지 슬프구나. 그렇다고 지금 삶이 아주 좋다는 건 아니다.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내가 이 세상에 아예 오지 않은 때로 가고 싶다. 그게 가장 낫겠다. 이것도 돌아가고 싶은 때라 해야 할까. 내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없어진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정말 내가 없었던 때로 가면 난 그걸 아예 모르겠다. 지금 난 진짜 나일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다니. 난 이런 바람도 있다. 내가 죽으면 나를 알았던 사람 기억에서 아주 사라지는 거다.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살면서 나를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좀 우습구나.

 

 나 자신이 아주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좀 이상하구나. 그건 왜일까. 내가 나를 부정하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자신이 없다 여겼는데. 지금은 그런 걸 자존감이 낮다고 말한다. 내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못하다니.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난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기를 바라는 걸까. 이것도 조금 슬프구나. 평생 이럴 것 같다. 이런 생각보다 앞으로는 나를 좋아해야겠다 생각하는 게 나을까. 좋게 생각해야 좋을 텐데. 난 모든 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언제부터 그런 사람이 됐을까. 어렸을 때는 좀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다 생각나지 않지만 난 어렸을 때도 남과 사귀기 무척 어려웠다. 어떻게든 친구가 있기는 했는데 내가 먼저 말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자주 보다보니 말했다. 안 좋은 성격이 여러 가지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하야사카 루미코는 의사다. 루미코가 일하는 병원에는 거의 말기암 환자가 오는 듯하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고 보람을 느끼기도 할 텐데, 말기암 환자만 상대하면 우울하지 않을까. 그런 말은 없구나. 루미코는 둔감하고 사람 마음을 잘 몰라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도 한다. 일부러 루미코가 다른 사람 마음을 안 좋게 하려는 건 아니다. 말기암 환자나 식구는 다른 사람 성격에 마음 쓸 여유는 없겠다. 의사도 사람인데, 그런 생각하지 않고 아픈 사람한테 마음 써주기를 바라겠지. 그러고 보니 나도 아픈 사람 마음을 생각하는 의사가 많기를 바랐구나. 그런 걸 바라지 않아야겠다. 어느 날 루미코는 꽃밭에서 청진기를 줍는다. 주인이 없어서 루미코가 그걸 쓴다. 그걸 환자 가슴에 대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픈 사람이 생각하는 게 들렸다.

 

 다른 사람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청진기라니. 보통 사람이 아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마음이구나. 아니 그 청진기는 누구의 마음이든 알게 해줄까. 루미코는 아픈 사람 마음만 들었다. 청진기는 아픈 사람 마음뿐 아니라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도 보이게 했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때로 돌아가게 해줬다. 그 삶은 가지 못해서 아쉬워한 삶이다. 엄마가 배우면서 자신한테는 배우가 되지 못하게 한 걸 줄곧 원망한 지도리 사토코, 언제나 일만 하느라 식구들과 함께 지내지 못한 걸 아쉽게 여기는 휴가 게이치, 딸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한 걸 미안하게 생각하는 유키무라 지토세, 중학생 때 자신이 용기를 내지 못해 친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야에가시 고지. 네 사람은 루미코가 담당한 사람이다.

 

 지금과 다른 삶을 경험하면 어떨까. 아쉬움 없을까. 네 사람은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경험한다. 그 삶은 실제와 다르게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살든 사람은 아쉬움을 가질 거다.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사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한사람은 말기암이었는데 죽지 않는다. 그러면 식구가 좋아해야 하는데 아내와 장모는 반기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산 사람 마음을 아는 게 좋을지 모르고 죽는 게 나을지. 루미코가 아픈 사람한테 청진기를 대고 그 사람이 돌아가고 싶은 때로 돌아가 다시 산 게 잘 안 되기도 한 건 그 사람 마음에 그런 바람이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사람은 다할 수 없다. 두 가지에서 하나를 고르면 하나는 가질 수 없다. 자신이 결정한 걸 믿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 휴가 게이치는 좀 다르구나. 건강할 때 식구들과 시간을 보냈다면 더 나았을 거다.

 

 

 

희선

 

 

 

 

☆―

 

 “선생님,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세요. 누군가 죽게 되고,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 정도가 딱 좋지 않나 싶어요.”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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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3-23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 하루를 소중히에 큰 한표 던집니다 :-)

희선 2020-03-24 00:53   좋아요 0 | URL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도 살아야 할 텐데, 그걸 알아도 하루 하루를 그냥 보낼 때가 더 많네요 날마다는 그러지 못해서 며칠이라도...


희선

초딩 2020-03-24 01:09   좋아요 1 | URL
과거의 어떤 하루를 생각하다 보면
그 하루를 생각하는 지금의 하루도
미래의 어느 하루의 회상이 되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이 생생함이 회상의 대상이 된다는게 믿을 수 없고요. 그 생생함을 꼭 붙잡아두고 싶은데 그 노력마저도 추억이 되어버리고요.

자꾸 반복되고 반복되는 생각에
영원회귀의 부조리 늪에 빠지는 것 같아

지금을 사는데만 한정해봅니다.

희선 2020-03-24 01:43   좋아요 1 | URL
살면서 별거 아닌 날도 나중에 떠올릴까 하는데 그런 일이 아주 없지 않기도 하더군요 지금은 늘 지나가는군요 사람은 정말 지금을 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거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시간은 붙잡지 못하니... 그래도 어떤 순간은 그곳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떠올리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 일이 많지 않지만...

지난 일을 자꾸 아쉬워하지 않고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사람은 지금보다 지난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더 생각하는군요 지금도 바로 지나가겠지만, 그래도 지금 할 걸 하면 좋겠네요


희선
 

 

 

 

목이 쉬도록 노래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네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했더니

하나 둘 조금씩 귀 기울였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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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와도

세상은 어둡지 않아

내 마음에 내린 어둠은

세상을 밝히는 빛도

어쩌지 못한다

 

내 마음을 밝혀줄 빛은

어디에……

 

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저 건?

 

내 마음에 내린 어둠을

밝히는 빛은

줄곧 내 마음속에 있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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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무엇에서든

슬픔을 느낀다

 

파랗고 맑은 하늘을 봐도 슬프고

쓸쓸하게 내리는 비도 슬프고

예쁜 꽃도 슬프게 보인다

그리고

바람은 슬픔을 실어온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함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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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20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보든 자기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죠.
쓸쓸하게 뒹구는 낙엽도
제가 기분이 좋을 땐 활기 있어 보이더군요.

희선 2020-03-23 01:23   좋아요 0 | URL
자기 마음에 따라 웃기는 게 나와도 자신이 슬프면 하나도 웃기지 않겠지요 기분이 좋으면 뭘 봐도 좋을 테고...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겠습니다


희선
 
한밤중에 나 홀로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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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겠지. 다음으로 무서운 건 뭘까. 어둠. 밤에는 바깥에 돌아다니지 마라 하고 해가 지면 산을 넘어가지 마라 한다. 어둠은 어둠에 녹아들기 쉽다. 낮이라고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귀신이 돌아다니는 것도 어두울 때다. 무서운 짐승도 밤에 먹이를 잡아먹는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있어서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했겠지. 그 많던 호랑이는 이제 없지만.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적이 있었을지 몰라도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호랑이를 잡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사람이 살 곳이 늘어서 호랑이가 나타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산짐승은 조용히 산에 살고 싶었을 텐데. 한국에서 사라진 게 호랑이만은 아니구나. 호랑이가 아주 사라진 건 일제강점기 때다. 일본은 한국말과 문화재뿐 아니라 동물까지 없애려 했다.

 

 지금까지 난 공포소설을 별로 만나지 않았다. 책을 보면 거기에서 뭔가 뜻을 찾아야 해서. 이건 책을 읽고 쓴 다음부터 생긴 버릇은 아닐지. 무서운 이야기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지도. 세상에는 뜻깊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기도 하다. 공포소설이라 해도 뭔가를 담을 수도 있겠지.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거 까닭을 모르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난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것도 어느 순간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 원한이 깊으면 죽어도 죽지 못하겠지. 그런 건 옛날 이야기일까. 억울하게 죽은 여자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것. 두번째 이야기 <검은 여자>는 그야말로 귀신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얻으려고 남자를 병실에 가둔다. 처음에 좋아한 사람도 아닌데 그 사람 이름을 부르고. 여자한테 잡혀간 남자는 달아나려 하지만 끝내 달아나지 못한다. 어둠속에 검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긴 여자가 있으면 조심하길.

 

 여자 귀신만 무서운 건 아니다. 진짜 자신을 숨긴 사람도 있다. <히치하이커(들)>에서는 차를 얻어탄 사람 분위기가 안 좋아 보였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더 위험한 게 아닐까 했다.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마. <취객들>에서는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자는 사람이겠지 한 사람이 움직였을 때 중요한 걸 알게 된다. 편의점에서 밤에 일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죽이는 사람. 사람이 무섭구나. <Hard Night>에서 형사는 자신이 한 마약거래를 들키지 않으려고 폭력배 사무실에서 장부를 빼내오려 했다. 형사는 사람을 죽이고 약에 취해 좀비처럼 된 사람도 죽인다. 형사 아들은 아팠다. 형사가 돈을 마련하려 한 건 아이 병원비 때문이었을지도. 형사는 다른 경찰이 왔을 때 힘들게 다른 건물로 갔는데 장부를 놓고 왔다. 형사는 다시 돌아갔을까. <구멍>은 평소에는 얌전한테 술을 마시면 힘을 가진 듯한 남자가 나온다. 남자는 장애인 여자아이한테 나쁜 짓을 했다. 남자는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나쁜 짓을 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풀려났다. 이번에는 한쪽 팔이 구멍에 끼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있다 죽을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고 남자가 한 짓 용서할 수 있을까.

 

 어둠이 무서운 이야기 <크고 검은 존재>. 마지막에 날이 밝아오자 크고 검은 건 물러났다. 희수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마지막 선물>은 따스한 이야기다. 조금 무서우면서도 따스하다고 해야겠다. 여기에도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오다니. 그 여자는 다리가 없었다. 태풍이 몰아친 날 ‘나’ 는 개울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살았다. ‘나’는 이제 아내한테 마지막 선물을 주려 한다. 그건 자신이 없어도 앞으로도 살라는 말이다. 모두 다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구나. 하나라도 따스한 이야기가 있어서 괜찮았다.

 

 

 

희선

 

 

 

 

☆―

 

 모든 죽은 자들은 사랑하지만 지상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 딱 한번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게 죽음의 법도다. 죽은 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 나는 열두 살 여름에 엄마한테서 그 선물을 받았다.  (<마지막 선물>에서,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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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20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는 느낌을 갖곤 해요.
마치 어떤 천사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도와 줄 때 꼭 아버지가 보낸 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요. 확신할 수 없어서 누구에게 말은 안 하지만... ㅋ
이것에 대해 언제 기회되면 글을 써 보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요. ㅋ

희선 2020-03-23 01:21   좋아요 0 | URL
세상을 떠난 누군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여기는 거 좋은 듯해요 페크 님은 아버님이 도와주셨다고 느끼셨군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맞을 거예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힘에 도움을 받았다고 느낄 때도 있으니... 옛날에는 조상이 돌봐준다는 말 많이 했잖아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페크 님은 페크 님 아버님을 떠올리시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