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혁명가의 삶 1920~2010

  허영철 원작    박건웅 그림

  보리  2015년 02월 02일

 

 

 

 

 

 

 

 

 

 

 

 

 

 

우리나라는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고 제대로 살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닐 거다.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날 때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돕기로 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는 한 나라가 아닌 둘로 나뉘고 만 걸까. 해방이 되고 통일된 나라를 만들려고 한 사람도 많았을 텐데, 다른 나라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사람들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지금까지 이어질 거다 생각했을까. 아마 생각하지 못했겠지. 바로 통일이 되고 뿔뿔이 흩어진 식구와 만날 수 있으리라고 여겼겠지. 하지만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70년이 지나도록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북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식구가 사는 사람들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을 거다. 그 자손은 있겠지만 첫세대만큼 식구와 고향 그리워할까. 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노래 많이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부르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는 이 노래 가르칠까. 이 통일도 반공처럼 세뇌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남과 북이라고 해야 할까)가 통일을 하면 좀더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다. 천천히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어가면 좋을 텐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는 말을 했다는 이승복 어린이. 이 일 정말 있었던 일일까. 내가 어렸을 때도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 표어를 썼다. 이런 거 언제까지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낮은 학년 때까지만 한 것일지도. 그때는 북한이나 공산당을 아주 나쁘다 생각했다. 북한에서 그것도 일요일 새벽에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배웠다. 우리 쪽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북한에서는 다르게 말할 거다. 남한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미국이 우리 통일을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왜 방해했을까.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가 될 것을 걱정한 걸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해방이 되고 친일파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도 미국 때문이 아닐까. 친일파가 미국에 붙은 것도 있지만, 미국이 친일파를 이용해 우리나라를 지배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독립운동도 사회주의자와 농민만이 끝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많은 지식인이 친일을 했다. 절망스럽다고 마음을 바꾸다니. 그럴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겠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쳐들어 온 일을 무척 슬프게 생각하는데, 남쪽에서는 그런 일 없었을까. 내가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죽임 당한 사람 무척 많다(제주, 광주). 여러 사람이 있으면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는 그것을 죄로 여기다니. 그래도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여러가지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예전에는 조금 다르면 모두 빨갱이로 몰았다. 이런 말하는 사람 아직도 있겠다. 사상이 다른 사람만 힘들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사람 식구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은 다 힘들었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허영철은 비전향 장기수였다. 1920년에 태어나 일본 탄광에서 일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만난 책이 다른 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에서 잠시 만난 사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한국으로 돌아오고 공산당에 들어가고 고향 부안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하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 활동을 하고 북에서 당 간부학교 교육을 받았다. 장풍군에 잠시 있다가 1954년 공작원으로 남쪽에 오고 한해 만에 잡혔다. 허영철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죄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그 뒤 전향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하지 않았다. 허영철은 남쪽이 아닌 북쪽에 있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다. 당이 남쪽으로 가라고 했으니 그 말 어길 수 없었겠지. 허영철도 남쪽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일이 오랫동안 되지 않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허영철은 서른아홉에 감옥에 들어가고 일흔둘에 그곳에서 나왔다. 그 뒤에는 보안 관찰법 대상으로 감시를 받았다. 그러고는 남이 좋은지 북이 좋은지 묻다니. 허영철이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기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허영철 식구는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허영철한테는 한해도 함께 살지 않은 아내와 얼굴도 잘 모르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그저 호적에 아내와 딸 아들이라고 적혀 있을 뿐일 텐데. 그게 아주 모른 척할 수 있는 게 아니기는 하구나. 허영철은 나름대로 자기 신념을 위해 살았을 테지만, 그것 때문에 나머지 식구는 살기 힘들었다. 그건 나라에서 그렇게 만든 거기는 하다.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민주주의가 없는 건 아니고, 민주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독재가 없는 건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서로 이야기해서 더 좋은 걸 찾아야 한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하나를 정하지 못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하나만 좋을까. 여러가지 생각과 답이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러고 있는지. 예전처럼 덮어놓고 공산당은 나쁘다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6·25 때 한국 군인이나 미군 잘못한 일 없을까, 없지 않을 거다. 잘못한 일도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가 여러가지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이건 나라보다 개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이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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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조심, 우울할 때 보면 더 우울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가끔 생각하게 되었는데 죽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누구나 다 비슷한 건 아닐 테지만, 나이를 먹으면 여기저기 아프고 시간이 더 흐르면 혼자 살아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책을 보고 알았다. 날마다 적당히 운동하면 나이를 먹어도 혼자 살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에서 말한 사람들은 어딘가 아프기도 했다. 아니 다 그런 건 아니구나. 나이를 먹으면 움직이는 데 힘이 들고 자주 넘어지고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해도 누구나 그런 때를 맞이하겠지. 그렇게 될 때까지 살기보다 혼자 움직이고 제대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죽음을 맞으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건 아니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갈 때는 아니다고 생각한다. 사람 일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때 사고로 죽는다거나 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 평소에 이런 생각 거의 안 한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괜찮고 사고도 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지. 누구한테나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심하는 것밖에 없다.

 

지금은 과학 의학이 발달해서 사람이 오래 산다. 암은 빨리 찾아내면 다 낫기도 한다지만, 암으로 죽는 사람 여전히 많다.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좀 걱정스럽다. 언젠가 혼자 살 텐데 아프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면 좋을 텐데(이건 어려운 바람일까).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건강을 생각하고 가벼운 운동을 해야 할지도. 여기에 이런 건 없다. 다 우울해 보이는 일 뿐이다. 여든이 넘어서도 혼자 잘 살던 할머니가 차 사고를 내고 자꾸 넘어지게 되어 자식은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냈다. 요양원은 안전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자고 일어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요양원에 갇혀 산다고 느꼈다. 나만 규칙 규정 싫어하는가 했는데 많은 사람이 자기 생활이 없는 요양원 싫어했다. 요양원 들어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내고 편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니.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다. 돈도 없고 힘 없어도 혼자 살도록 해야겠다. 요양원은 노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고 자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서양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이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사람이 적다. 같이 살면 요양원에 가느냐 마느냐 생각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을 만들어서 나이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자기 생활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는데 사람이 늘고 돈이 오고 가니 성질이 바뀌었다고 한다. 보통 요양원과 비슷해졌다고. 자신이 나중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면 그저 관리하기 쉬운 시설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 텐데. 사람은 혼자 지낼 수 있는 집 같은 곳이 좋다.

 

한 의사는 요양원 분위기가 축 처진 것을 느끼고 요양원에 식물, 동물, 어린이를 들였다. 언젠가 요양원에서 사는 고양이 이야기를 보았다. 요양원 사람들은 고양이 때문에 그곳에서 사는 걸 좀 좋게 여기기도 했다. 요양원 노인과 어린이를 만나게 하고 식물, 동물을 키우게 하니 요양원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말하지 않던 사람이 말을 하기도 했다고. 책임질 일이 있을 때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우리나라에도 요양원 있겠지. 어쩐지 이 말은 우리나라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우리나라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사람 많지 않다고 했는데. 어떤 곳은 나이든 사람이 많이 살게 되면서, 그곳에서 끝까지 살 수 있게 의료 도움을 주었다. 몸이 아프다 해도 자기 집에서 살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거의 집에서 죽음을 맞았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도 죽기 전에 의료비로 쓰는 돈이 많다고 한 말 본 적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아내가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자신이 돌보았다. 아내는 병원보다 집에서 지내는 걸 더 편하게 여기고, 다리뼈가 부러졌을 때도 병원이 아닌 집에서 지냈다. 한 사람이라도 건강하게 움직여서 그럴 수 있었구나. 혼자 사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다.

 

며칠 전에 본 《오베라는 남자》에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을 시에서 요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곳은 복지제도 때문에 그런 일을 하려고 했을까. 아내 몸이 안 좋아서 알츠하이머병인 남편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 생각하고 그런 거다. 아내는 잠깐 동안 도우미가 와주기를 바란 건데.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을 잊었다 생각하고 자기들 편할 대로 해도 괜찮을까. 아픈 사람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더 관심을 가지고 말을 들어야 할 텐데. 이건 어느 병이나 마찬가지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바로 수술해야 하는 걸까. 지금은 거의 수술하라고 할 것 같다. 위험이 있을 때는 제대로 말해줄까. 이 책을 쓴 사람 아버지도 일흔이 넘어 척추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 찾아간 의사는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사지 마비가 올 거다 하고, 다른 의사는 조금 지켜본 다음에 수술하자고 했다. 그 의사는 작가 아버지가 물어보는 것에 잘 대답했다. 작가 아버지도 의사로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수술해도 마비가 올 수 있었다. 암이어도 바로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가보다. 종양이 천천히 자라는 거였다. 수술할 때는 좋은 의사를 만나서 자기 뜻대로 살았는데, 나중에 화학 치료할 때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때는 호스피스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호스피스가 꼭 죽음을 맞게 하는 건 아니었다. 죽기 전까지 편안하게 사는 걸 도와주는 게 호스피스다. 암 수술을 하고 한해쯤 아이들을 가르치다 다시 암이 나타나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사람은 호스피스 케어를 이용했다. 그렇게 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잠깐 할 수 있었다. 오래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무런 힘 없이 약에 취해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고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 볼 때 우울했는데 우울한 내용이어서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알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죽겠지 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다 죽을지 생각해보는 거 괜찮겠지. 어떤 사람은 치료가 잘 되지 않는데도 나을 수 있다고 믿고 힘든 치료를 되풀이했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남겨두고 죽는 건 아쉽겠지만, 치료보다 식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었다.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집착하면 더 손에 잡히지 않고 놓으면 손에 들어오는. 이 말 알아도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지도. 의사도 환자한테 죽음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어야 한다. 사람은 다 나면 죽음으로 나아간다. 자신한테 소중한 게 무엇이고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빨리 아는 게 좋겠다.

 

 

 

희선

 

 

 

 

☆―

 

우리는 지금도 저물어 가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곁에 있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그리고 그저 수수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159쪽)

 

 

“지금 우리는 환자들이 삶을 어떻게 끝내고 싶어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내 친구 의사가 말했다. “문제는 그게 무척 늦었다는 거예요.”  (239쪽)

 

 

신기하게도 어떤 질병들은 호스피스 케어가 살아있는 기간을 늘리는 듯했다. 췌장암 환자는 평균 삼주를 더 살았고, 폐암 환자는 여섯주, 울혈심부전 환자는 여섯달을 더 살았다. 이 결과는 거의 선禪 메시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더 오래 살려 애쓰지 않아야만 더 오래 산다는.  (273쪽)

 

 

우리 최고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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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19-10-03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씩 내려놓으면 가벼워 먼길을 갈 수 있다.

희선 2019-10-04 01: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가벼워지면 좋을 텐데...


희선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
캐롤 스클레니카 지음, 고영범 옮김 / 강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 두꺼운 책을 언제 다 볼까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다 보았습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제가 게으름을 피워서 그렇습니다. 집중해서 잘 봤다면 하루쯤 줄였을지도 모를 텐데, 책을 보고 어떤 말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잘 못 봤습니다. 잘 못 봤다는 말을 이렇게 했네요. 누군가 만들어 낸 사람 삶을 보는 것과 실제 있었던 사람 이야기를 보는 건 조금 다르기도 하네요. 누가 자기 삶이 책으로 나오리라는 걸 알고 살까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아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조금 생각할까요. 스스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쓰는 사람도 있군요. 자기 삶 모두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쓰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이 책이 그런 건 아닌데 이런 말을 했네요. 자신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과 남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는 차이가 있겠지요.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거 보통 사람한테도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어렵고 힘들다 해도. 저는 별일 없어서 되돌아봐도 아쉬움만 남을 듯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좀 우울하네요. 아직 남은 삶을 아쉬움 없이 지내면 될 테지만 그것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레이먼드 카버를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나지 않네요. 언젠가 김연수가 《대성당》을 우리말로 옮겼다는 말을 보고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 책을 본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안 것 같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 《잡문집》에서도 봤네요. 이 책을 보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와 하루키 다른 것 같기도 한데 생각나다니. 하루키가 카버를 찾아간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건 《잡문집》에도 나왔군요. 카버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 것도 이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앞부분에 실린 사진 밑에 테스 갤러거와 카버는 1988년 6월 7일에 결혼하고 그해 8월 2일에 카버가 숨을 거뒀다는 말을 보고는 (두번째지만)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다니 했습니다. 그 말만 보고는 좀 안타까웠는데 카버의 삶을 따라가보니 그때 카버한테는 결혼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어쩌면 테스 갤러거한테 그랬을지도).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함께 살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카버가 바라는 집도 얻었더군요. 짧은 시간일지라도 다른 때보다 좋은 때가 있었다는 거 괜찮은 삶 아닐까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일이 잘 안 풀려서 고생한 사람도 많잖아요. 죽은 다음에 이름 알려지는 사람도 있네요.

 

이런 책, 한 사람 삶이 담긴 책에서는 마지막에 그 사람 죽음을 만납니다. 책 한권을 보는 건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지만. 이야기 하나가 끝났다고 해서 그게 아주 끝난 건 아니기도 하지요. 그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기도 하잖아요. 제가 늘 그런 걸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앞에서 카버가 죽었다는 말을 벌써 해서일지도. 카버가 쓴 소설 한권 봤는지 두권 봤는지 잘 모르겠네요. 확실하게 봤다고 기억하는 건 《대성당》입니다. 그저 보기만 했습니다. 카버가 쓴 소설을 좀 본 다음에 이 책을 봤다면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봤다 해도 잘 몰랐을 것 같습니다. 카버는 자기 삶을 소설로 많이 썼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아주 똑같게 쓴 건 아니겠지요. 아들과 사이가 좋아졌는데 소설은 반대로 쓰기도 했다네요. 그저 소설로 받아들이면 괜찮을 테지만, 자기 이야기 같은 게 사실과 다르게 쓰인 걸 보면 기분 안 좋을 것 같습니다. 카버는 진짜 있었던 일일지라도 그것과 다르게 써서 다른 걸 나타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소설은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카버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카버가 열일곱일 때 열다섯이 다된(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지만) 메리앤을 만나고 두해 뒤에 결혼했습니다. 카버뿐 아니라 메리앤도 이른 결혼이군요. 어려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메리앤은 카버가 대단한 작가가 되리라는 걸 믿고 돈을 벌고 자기 공부를 뒤로 미뤘습니다. 책을 보면서 카버가 사람들과 잘 지낸 건지 잘 지내지 못한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친구와는 잘 지냈습니다. 카버는 딱부러지는 성격은 아닌 듯합니다. 작가 가운데는 그런 사람 별로 없기는 하네요. 어렸을 때부터 술을 마시고 학생을 가르치게 됐을 때는 더 많이 마셨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이 된 미국 작가 많군요. 이름 아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도 있잖아요. 그래도 카버는 술을 끊었습니다. 아니 알코올 의존증이었지만 알코올에 기대지 않은 시간이 십년이 되었군요. 이건 고칠 수 없는 건가봐요. 술을 먹지 않다가 한번이라도 마시면 다시 돌아가겠지요. 카버가 술 마시는 건 참았지만 담배는 엄청 피웠습니다. 테스 갤러거 아버지가 암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담배를 끊어야겠다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은 유전되는 것이기도 한가봐요. 카버 아버지에서 카버로 카버에서 딸 크리스틴한테 이어졌거든요.

 

술을 마시지 않는 카버는 테스 갤러거와 만났습니다. 메리앤은 카버를 위해 애썼는데 결국 헤어졌네요. 그래도 친구로 지냈습니다. 메리앤과 살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카버는 그 환경을 힘들어한 듯합니다.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고 싶어했으니까요. 마음 한쪽에서는 좋은 아버지도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카버가 자유롭게 글을 쓰고 돈 걱정하지 않은 건 다섯해쯤 되는군요. 더 늘이면 십년. 메리앤은 카버한테 영감을 주고 테스 갤러거는 같은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었네요. 두 사람 말고 더 있을지도. 이런 말을 하다니. 카버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어머니, 메리앤 그리고 딸과 아들한테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아들은 스스로 잘 지냈군요). 카버는 그렇게 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언제까지 돌보아야 할까 하기도 했네요. 많이 도와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웠던 건지도. 카버가 장편소설 쓰려고 했는데 그건 끝내 쓰지 못했군요. 카버가 암으로 그렇게 죽지 않고 더 살았다면 장편소설 썼을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네요. 카버와 친한 사람은 카버가 암을 이겨내리라고 여겼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카버가 죽은 뒤 유산 때문에 좀 시끄럽기도 했나봅니다. 그런 이야기도 쓰다니. 그런 이야기 보니 어쩐지 슬펐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할 테지만.

 

편집하는 사람은 작가 글을 마음대로 잘라도 될까 싶기도 합니다. 카버 소설을 많이 편집한 사람은 고든 리시인데, 카버가 쓴 것을 많이 잘랐다고 하네요. 고든 리시가 편집자 가운데서는 뛰어나나다는 말도 있지만(다른 사람 글은 그렇게 했으면서 자신이 쓴 건 다른 편집자한테 맡기지 않았다고 하네요). 카버는 리시와 좋은 사이를 이어가기 위해 별 말 안 했더군요. 시간이 지나고서는 자신이 쓴 것을 그대로 발표하고 싶어했습니다. 편집이 중요하다 해도 작가 마음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지. 앞으로 카버 소설 볼 수 있을지. 카버가 시도 많이 썼군요. 이렇게나마 카버를 만나서 좋았습니다.

 

 

 

희선

 

 

 

 

☆―

 

글을 쓰려면 “먼저 살아 남아야 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낸 다음, 날마다 열심히 써야 한다.”  (699쪽)

 

 

 

카버는 자신의 삶에서 바랐던 것을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었다. 카버는 실제로 아들과 형제로, 친구, 아버지, 남편으로 두번, 그리고 작가로 사랑받았다.  (8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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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5-12-1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카버는 작품 한편도 못 읽어봤는데, 저는 작가에게 익숙해질즈음 단편을 읽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러면 약간 알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거든요. 카버는 너무나 미국적인 작가라 저는 부러 멀리하고 가까이하지 못한 면이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어 작가를 아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희선님은 카버를 좋아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면을? :)

희선 2015-12-19 01:46   좋아요 0 | URL
예전에 우연히 카버 책을 보기는 했는데... 카버 좋아하는 사람 많은 듯하더군요 어떤 점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듯합니다 몇달 전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한번 봤습니다 여기에서 책 이야기도 하더군요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야기가 자주 나와요 이 책으로 카버가 잘 알려졌더군요 카버가 쓴 건 다 단편이네요 이걸 먼저 보고 소설 보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언제 소설을 만날지...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 이야기를 해설까요 그런 사람 이야기를 한다고 한 듯하네요


희선
 

 

 

 

  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6월 29일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개>, 38쪽

 

 

 

시간은 잘 흘러갑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말을 하고 우리말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70년이 되었더군요. 70년 전에 모두 우리말을 쓰지 않은 건 아닐 테지요. 아니 그때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말로 말하고 글쓰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우리말을 하면 괴롭힘 당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네요. 학교에서. 일제가 우리 민족을 없애기 위해 가장 많이 마음 쓴 건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는 선생님이 말하면 멋모르고 따르잖아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도 좋아야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더 좋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선생님부터겠네요. 제가 어릴 때도 유치원 있었을 테지만, 저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풀검) 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는 건 좀 안 좋겠네요. 이런 말로 흐르다니.

 

시인 윤동주는 스물아홉(만 스물여덟)에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에도 말했는데 그때가 1945년 2월 16일이에요. 여섯달 뒤에 우리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1945년 2월에는 그런 생각 못했겠지만요. 윤동주 시집은 예전에 하나 사뒀더군요. 좀 작게 나온 시집인데 이 책에 실린 것보다 시가 조금 많더군요. <사랑스런 추억>은 없나 했는데 다시 보니 있었습니다. 그 시집 가끔 펴보기도 했는데, 자주가 아니고 가끔입니다. 하나하나 잘 봤다기보다, 넘기면서 대충 봤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봤습니다. 시가 어떻다 말하는 건 어렵겠네요. 시를 보려고 가끔 시집 사는데, 그것을 보고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못 봤습니다(처음 하는 말이 아니군요). 얼마전에 시를 보고 뭔가 생각나는 걸 쓰면 어떨까 했어요. 그것도 쉽지 않네요.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다보면 전에 봤을 때와 다른 것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쓰기 전에는 바로 두번만 보는군요. 쓰고 나면 편하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롭게 보이는 시가 있으면 좋겠네요.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은 어린다.  (73쪽)

 

 

 

앞에 시는 아는 거예요. 윤동주는 ‘순이’라는 이름을 시에 썼습니다. 순이는 누굴까요(순이가 아닌 순일까요). 윤동주 시에는 쓸쓸함 슬픔 따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것도 있을 텐데. 거지 아이를 보고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투르게네프의 언덕>이 있는가 하면, 전봇대에 돌을 세개 맞추고는 문제 다섯개에서 세개 맞고 육십점 맞겠지 하고, 시험 공부하지 않고 공 차러 가는 <만돌이>도 있어요. <만돌이>는 재미있기도 하지요. 맨 앞에 쓴 <개>는 그 모습을 그려보면 그렇겠구나 하겠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윤동주 시 하면,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짐하는 <서시>와 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별 헤는 밤>이 떠오릅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생각을 깊이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다들 그랬겠네요. 아니 그때뿐 아니라 시나 소설을 쓰는 이십대는 저보다 어른 같아요, 여전히. 글이 사람을 성숙하게도 하겠지요. 저도 그래야 할 텐데요.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다른 책)

 

 

 

 

 

 

 

눈이

새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하오.  (40쪽)

 

 

 

제목은 같지만 다른 시예요. 예전에 산 시집에는 앞에 것이 여기에는 뒤에 것이 실렸습니다. 앞에 것도 괜찮지요. 눈을 지붕이랑 길이랑 밭을 따듯하게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말하는 것이. 북극에 사는 사람은 얼음으로 집 짓잖아요. 눈 위보다 눈 밑이 따듯하겠지요. 사람이 눈 밑에 오래 있다보면 숨막혀 죽겠지만. 숨구멍이 있으면 죽지 않겠네요. 별말을 다했습니다. 윤동주 시는 힘든 세상에도 아름다운 게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듯합니다(자신없는 말).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보여주는 시도 있어야 하지만, 힘들고 아파도 살아갈 희망을 말해주는 시도 있어야 하겠지요.

 

 

 

 

 

 

 

난 외롭지 않아요

 

 

 

어느 가을날 나는 책방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깊은 가을이 아니어서 나뭇잎들은 여전히 풀색을 띄우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작은 강아지를 만났다. 강아지는 줄에 묶여 있었다. 그 줄은 누군가 옆에 세워둔 자전거 바퀴에 엉켜 있었다. 엉킨 줄 때문에 강아지가 잘 움직이지 못하는 듯해서 내가 엉킨 줄을 풀어주었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여 그만두었다. 강아지를 남겨두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강아지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줄에 묶여 있고, 밥그릇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나는 앉아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여웠다.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어 한번 더 보고 일어섰다.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강아지는 여전히 밥그릇을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이 무척 외로워 보였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그 모습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혼자서 즐거운 듯 장난치던 작은 강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때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난 그렇게 외롭지 않아요. 묶여 있지만 내 옆에는 은행나무, 자전거, 그리고 내 밥그릇이 있으니까요. 저녁 땐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요. 거기엔 작은 아이도 있어요.’

 

내 마음,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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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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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전쟁에 휩싸이고 조금은 평화스럽게 살게 되고 70년쯤 지났나보다. 우리나라는 그것보다 덜 되었다고 해야겠다. 1950년에 또 전쟁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온 세계 사람이 힘들었고 그 안에서 유대인은 더 힘들었던 게 제2차 세계전쟁일 거다. 이렇게 말해도 나는 전쟁을 실제 겪지 않아서 그때 어땠는지 모른다. 그런 책 많이 찾아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 이야기가 나오는 건 왤까.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그것을 잊으면 안 되기는 하겠지. 아직 다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겠다. 그때를 산 사람도 많고 죽은 사람도 많을 거다. 한 사람의 삶은 역사와 함께 흐른다. 역사가 말하는 큰 줄기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줄기를 보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닐까. 나같은 사람은 역사에 묻히겠지만. 소설은 역사의 큰 줄기보다 한 사람의 작은 줄기를 보여준다. 그게 소설일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진짜 일어난 일일 수도 있겠다. 쉰들러 리스트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한 사람이 아주 많은 사람을 구한 일도 있겠지만 단 한 사람을 구한 일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을 보니 그런 일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은 1944년과 1934년에서 1944년이 될 때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1944년이 지금이라고 해야 할까. 그 뒤 1945년 1975년 2014년이 있기는 하다. 이것은 1944년이 지나고 더한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기적도 일어나지만 쓸쓸하기도 하다. 이런 말을 먼저 해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자이 마리로르 르블랑은 박물관에서 자물쇠 장인으로 일하는 아버지하고만 프랑스에서 산다. 남자아이 베르너 페닝은 아버지가 탄광에서 죽고 여동생 유타와 고아원 같은 데서 산다. 마리로르는 프랑스 베르너는 독일에서 산다. 서로 모르고 다른 곳에서 살아도 두 사람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언젠가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1944년 8월 8일에는 두 사람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마리로르는 누군가를 피해 작은할아버지 집 다락방에 베르너는 무너진 호텔 밑에 갇혔다. 베르너는 어떻게 그곳에서 나올 수 있을지, 그것은 2권까지 보아야 알 수 있다. 베르너는 어떻게 마리로르를 알까. 그건 라디오 때문이다.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나자 마리로르 아버지는 마리로르와 작은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박물관장이 맡긴 보석을 가지고. 그게 진짠지 가짠지는 모른다. 앞에서 보석 이야기 나왔을 때 그런 게 있는가보다 했는데. 그 전설을 믿고 보석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보석은 불꽃 바다라는 것으로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죽지 않지만 둘레에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 보석을 찾는 사람은 암에 걸려서 괴로운 사람이다. 그게 있으면 자기 병이 나으리라고 믿었다. 마리로르는 1944년 8월 8일에 그 사람을 피해서 작은할아버지 집 다락방에 올라간 거다. 마리로르 아버지는 작은할아버지 집과 둘레를 모형으로 만들기 위해 측정을 한 것뿐인데 끌려가고 만다. 몇번 편지가 오지만 그 뒤 소식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때 실제 그런 사람 많았을 것 같다.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서 죽은 사람. 마리로르 아버지는 돌아오기 위해 애썼을 것 같은데. 마리로르가 집에 혼자 있어서 작은할아버지와 거기에서 일하는 아줌마는 어떻게 됐나 했다. 그런 걸 먼저 보여주고 나중에 왜 그렇게 됐는지 나오다니. 글은 시간대로 쓰고 편집할 때 섞었을까.

 

베르너 페닝은 어렸을 때 라디오를 주워서 그것을 고치고 프랑스 방송을 듣는다. 단파 라디오여서 다른 나라 방송이 잡힌 거다. 이거 보니 나도 그런 라디오 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베르너는 혼자 《역학의 원리》라는 책으로 전기 공부를 했다. 새벽에 듣는 프랑스 방송 때문이었을지도. 베르너는 라디오 수리공으로 알려지고 그 재능을 눈여겨 본 군인 때문에 학교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그곳은 군사학교인 듯하다. 남자아이들만 있는 학교에서는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일어난다고 하는데, 전쟁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남자아이들은 잔인하고 하라고 하면 했다. 베르너와 친한 친구 프레데리크는 달랐다. 프레데리크는 아이들 표적이 되고 머리를 다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새를 좋아하는 프레데리크는 이제 없다. 베르너는 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했다. 얼마 뒤 학교에서는 베르너를 전쟁터로 보낸다. 베르너는 누군가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을 잡아내고 그 사람들을 찾아냈다. 그런 게 전쟁에서 중요한 일을 했을까. 시간이 흐르고 베르너는 프랑스 생말로에서 어렸을 때 동생과 함께 들은 라디오 방송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그리 길지 않은 방송이다. 베르너는 그 방송을 내보내는 집도 알고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도 본다. 방송을 내보내는 곳을 알아내는 공식이 있는가보다. 베르너는 다른 사람한테 그 집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호텔이 무너지고 그 안에 갇혔을 때 베르너는 라디오에서 <해저 2만 리>를 읽는 여자아이 목소리를 듣는다. 여자아이는 구해달라는 말도 한다.

 

감동스러운 건 서로 몰랐던 둘이 만나고 한 사람을 구하는 거다. 거기에는 라디오가 있었다. 누가 그것을 들을지 알 수 없을 텐데. 작은할아버지가 내보낸 사람들 소식도 누군가 들었겠지. 이 소설은 다른 소설과 좀 다르게 보인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좀 다르다는 말밖에 못하겠다. 이런 것도 한번쯤 보면 괜찮겠지. 자주 보는 건 좀 어려울지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습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그것보다 다른 것을 더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누군가를 돕는 일. 모르겠다.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갈 수 있을지.

 

 

 

*더하는 말

 

이 소설을 아주 좋게 본 사람도 있는가 하면, 별로다 하는 사람도 있다. 난 아주 좋다보다 괜찮네 정도라고 해야겠다(처음에 중간쯤 된다고 했다 바꿨다. 중간보다 조금 위일지도). 이야기보다 다른 것도 잘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전히 그게 어렵다. 쓰는 것도 줄거리 정리가 되었으니까. 이렇게라도 기억하고 싶어서(저렇게라도 써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한 사람을 구한 일은 멋지게 보인다. 베르너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돕지 못한 친구 프레데리크 때문은 아닐까 싶다. 베르너 동생 유타는 어린데도 생각을 깊게 했다. 어리다 해도 제대로 생각할 수 있고, 그때 그런 아이 있었겠지. 감동받은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그다지 많이 못 봤을 뿐, 세계전쟁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을 거다. 작가는 그런 것과 다르게 써야 한다 생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난 이 책을 보면서 영상으로 만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보석을 찾는 남자를 피해 다락방으로 올라간 마리로르가 어떻게 될지 보는 건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끝까지 봐야 한다 할지도. 앞에서 그 일을 말하다니, 중요한 건데. 그걸 알고 본다 해도 감동 받을 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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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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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0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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