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오랜만에 시가 보고 싶어서 고른 게 이 시집이다. 다 제목 《다정한 호칭》 때문이다. 이 시집을 받았을 때 ‘시집이 예전보다 커졌다’고 쓰려 했다. 시집 보기도 전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제목만 보고 고른 시집인데, 알기 쉬운 시나 마음에 드는 시 못 찾았다. 시 한편은 아니어도 마음에 드는 구절은 조금 있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못 썼다. 오랜만에 본 시집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지금 시인은 모두 이렇게 시를 쓰는가 하고 다른 시인 시 못 봤다. 내가 알기 쉬운 시를 봤다면 그 뒤에도 시 만났을지도 모르는데 아쉽다. 나는 잘 모른다 해도 이 시집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몇해 전에 이것을 보고 바로 여러 시를 못 봤지만, 시간이 흐르고 잘 몰라도 보자고 마음먹고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떤 시인은 시를 느끼라고 말하니까. 나와 잘 맞는 게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것도 있는 거겠지. 이 시집 다시 보면 괜찮을까 하고 펼쳤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밝은 것 같기도 하고 어두운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말은 어떤 것을 보든 할 수 있겠다. 자연을 바라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전에 다른 시집을 보고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할까 하는 말을 잠깐 했는데, 이 시집 제목은 <심야발 안부>에 나오는 한구절이다. 시집 제목이 시 제목일 때도 있고 시에 나오는 구절일 때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아닌 시집 제목도 있을 텐데. 다정한 호칭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몇해 전에도 그랬는데). 너, 그대, 당신……. 이름도 호칭에 들어간다. 난 이름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름은 자신이 붙이기보다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거지만. 자기 이름은 자신보다 남이 많이 부르는 것이구나. 다른 사람, 친구가 내 이름 부르는 건 듣기 좋은데 나는 말로 잘 못한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쓰는 건 하지만. 말 자체를 거의 안 하는데 언제 친구 이름을 부를까. ‘~야 놀자, ~야 학교 가자.’ 처음 시인 이름 보고 남자 시인인가 했다. 은규가 아닌 은교였다면 여자겠지 했을지도. 몇해 전에는 남자가 하는 말로 보고(좀 이상한 느낌이 든 것 같기는 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여자가 하는 말로 보았다. 나처럼 이은규 시인을 남자라 생각한 사람 없을까. 시인은 남자여도 여성스러운 말을 쓰기도 한다(어떤 글이든 그런 면이 있던가). 시를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시를 보면 여러 사람이 떠오른다. 내가 시를 보고 알아본 사람은 기형도 이상 고흐 윤동주 김수영 체 게바라다. 철도원 아버지를 둔 시인은 누굴까(전에도 이 말 한 것 같다, 한번 한 말 또 하다니). 앞에 말한 사람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는 게 별로 없다. 이은규는 저런 사람 시와 글 그림을 좋아하고 본 걸까. 그런 것을 시에 녹여내다니. 봄이 느껴지는 시도 여러 편이다. 나무 바람 구름 꽃 나비. 이런 시도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 잘됐다 생각해야겠다. 행과 행 사이를 잘 보아야 할 텐데. 잘 보아야 하지만 잘 듣기도 해야 한다.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게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시간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되지 않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놓치다, 봄날>에서, 62~63쪽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뻗을수록 잡히지 않는 게 많다. 그럴 때는 잡으려 하기보다 그냥 놓아두는 게 나을지도.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자크 프레베르)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 시는 새를 바로 그리기보다 그리려는 새가 그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그 새가 오면 그곳에서 편안하게 있게 한다. 이건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을 바로 하는 것보다 시로 쓰는 것도 좋구나. 바로 알기 어렵고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숨 막히는 뒤태

 

 

 

당신을 뒤로 하고 길을 건널 때

 

왜 가시 돋친 말은 등 뒤에 와 박히는 걸까

 

언젠가 등 뒤 점을 바라볼 수 없는 데에서

 

인간의 고독이 시작된다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가시 돋친 마음이 와 빅히는 뒤태

 

오늘 새로운 흑점 하나 생겼다, 숨 막히는  (77쪽)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예전에도 이번에도 이 시간 마음에 들어왔다. 만화에서는 어떤 말이 심장에 꽂히는 것처럼 그릴 때가 있다. 이 시는 앞이 아닌 뒤다. 앞에서 꽂히는 건 재미있게 보이지만 등 뒤에서 꽂히는 건 어쩐지 슬프게 보인다. 뒤에서 그 사람 모르게 말하는 건가. 몰래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보다 앞에서 말하는 게 훨씬 낫겠다. 앞에서는 가시 돋친 말 못할 테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언젠가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볼 때가 있을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잘 보거나 느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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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6-1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은규 시인이 여자분인걸 알고 살짝 당황 ...ㅎㅎㅎ저는 [별이름 작명소]가 넘 좋더라고요...희선님은 요즘 시보단 운율이나 그런걸 봐도 옛 시들이 더 이해편할실지도..모르겠어요. 주제와 얘기가 확실한 ..면에서요!^^

희선 2016-06-12 01:44   좋아요 1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책이나 글도 연이 닿아야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은 연이 닿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시를 많이 아시니 저런 말을 하셨겠네요


희선

[그장소] 2016-06-12 09:41   좋아요 0 | URL
음 ..그렇네요 ..인연이 닿아서 만났다는것이 중요한듯~^^ 이해는 더 나중에 찾아 오기도 하니까 ...천천히 자주 봄..더 예뻐질 거예요~^^
꽃처럼~!!
 
나쁜 놈들 - 상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보면서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뛰는 사람은 자기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는 거 모를까요. 처음에는 모를 수도 있겠군요. 잘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림자가 보여야 위를 올려다 보겠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만 생각할지도. 자만에 빠지면 안 될 텐데요. 이건 나쁜 사람이든 보통 사람이든 마찬가지네요. 이렇게 말하니 나쁘려면 철저하게 나빠야 한다는 말 같군요. 그런 사람 좋아하지 않지만 어설픈 것보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쁘다는 건 어떤 걸까요. 남을 속이고 남을 아프게 하는 거, 남의 돈을 억지로 빼앗는 것도. 나쁜 것보다 나쁜 짓이군요. 나쁜 짓을 하는 건 언제일까요. 돈이 갖고 싶을 때,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다니. 돈과 상관있는 때가 많기는 하죠. 돈은 많은데 사람이 없는 사람은 돈으로 사람을 사려 하겠네요. 그건 진정으로 사람과 사귀는 게 아니겠습니다. 이건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쁘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목처럼 모두 나쁩니다.

 

처음에 모두 나쁘다고 말하다니. 이런 말하면 모두를 의심하겠군요. 저는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마지막에 어떤 말 때문에 확인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 마음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지, 상대가 자신을 얕보는 데 화가 나서였는지, 아니면 여자 때문인지. 옮긴이 말을 보니 이 책은 나쁜 여자 시리즈 세번째라고 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나쁜 여자 시리즈라는 말을 한 건 아니겠지요. 앞에 두권은 《짐승 길》 《검은 가죽 수첩》입니다. 《짐승 길》에 나온 여자는 마지막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검은 가죽 수첩》은 어떻게 됐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이건 몇해 전에 드라마로 봤습니다. 여기(《나쁜놈들》)에도 나쁜 여자 나옵니다. 나쁜 여자는 왜 남편을 잘못 만나는 건지. 돈은 있지만 남편이 시원찮아서 나쁜 여자가 된 건지도. 모두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요. 남편이 멀쩡하게 있는데도 다른 남자를 만나는. 돈을 남자한테 주기도 합니다. 남자 도야 신이치는 병원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여러 여자를 만나고 돈을 뜯어냅니다. 남편이 있는 사람을 만난 건 돈을 뜯어낸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한 건 아닐까요. 여자한테 죄책감을 갖게 하려는 뜻도 있겠지요. 도야 신이치가 혼자냐 하면 아니예요. 함께 살지 않지만 호적에는 아내가 있습니다.

 

도야는 아버지가 죽고 병원을 물려받고 병원장이 됐습니다. 의사지만 환자는 안 봅니다. 그런 병원 잘 될까요. 병원장이면 병원장답게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자리는 그저 여자를 만날 때 도움이 되어서 지키는 겁니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 그런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 텐데, 도야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아버지 때와 다르게 의사로 돈 벌기 쉽지 않아서였을지도. 잘생긴 얼굴과 그런 걸 여자들이 추켜올리고, 힘들게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여자한테서 받은 돈으로 편하게 놀고 싶어서. 이런 사람 ‘기생오라비’라고 하는군요. 한사람은 돈, 한사람은 돈과 스릴 때문에 만났는데 도야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스물일곱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옷 가게를 했습니다. 디자이너고 얼굴도 애쁘고 교양도 있고 돈도 많았습니다. 도야는 여자가 교양 있고 예뻐도 돈이 없으면 만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이 보는 건 돈일지도. 모든 걸 갖춘 여자가 나타나니 놓치고 싶지 않겠지요. 여자가 자신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자신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사람은 아주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돈은 다 자기 돈이라 여기고 여자 남편만 없으면 훨씬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도야는 덫에 걸린 게 아닐지. 다른 여자한테서 받은 돈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할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 게 잘 되겠습니까. 도야는 자신이 똑똑하다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본래 나쁜 사람이니 동정하면 안 되지만, 아주아주 조금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야가 남편 있고 돈 많은 여자와 만난 다음에 그렇게 되리라는 걸 어떤 사람은 알았을까요. 지켜보니 그렇게 돼서 다른 일을 꾸민 걸까요. 두번째일 것 같네요. 아니 아주 조금 그렇게 되면 괜찮겠다 생각했을지도. 여자한테서 돈 뜯는 거 나쁘지만, 그것보다 더 안 좋은 일에 손을 담그면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니 겁이 없어진 건지, 도야는 같은 일을 한번 더 합니다. 다른 사람 돈은 다른 사람 거죠. 이런 생각하면 갖고 싶다 생각 안 할 텐데. 돈이든 목숨이든 남의 것은 빼앗지 않아야 합니다.

 

어쩐지 도야만 나쁘다는 식으로 썼네요. 앞에서는 모두 나쁘다 했는데. 남편 있는 여자는 도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다른 나쁜 남자를 만났을까요. 그건 알 수 없겠네요.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는 두 사람도 있어요. 두 사람은 앞으로 잘살지, 언젠가 나쁜 일이 생길지. 남한테 나쁜 짓하고 잘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도 도야 때문에 그런 일을 꾸미고 한 건지도.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떤 일을 하기에 도야가 딱 맞아서 가까워진 것일 수도 있다는.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짐작일 뿐입니다.

 

 

 

희선

 

 

 

 

☆―

 

“의사라는 직업은 좋네요. 아무도 의심하지 않잖아요. 저희 식구들도 얼마전에 감기에 걸려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요, 먹는 약이든 주사든 아무 의심도 없이 치료 받았습니다. 그건 환자가 의사를 신처럼 절대로 믿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의사가 쓴 사망진단서라면 틀림없이 어떠한 부정도 없다고 믿는 겁니다.”  (하권,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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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2 16: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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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4 0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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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허수경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잘 몰라도 시를 보았다. 시에서 멀어지고 다시 몇해 전부터 ‘올해는 시를 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쉽게 못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몇해가 지난 뒤에야 시를 가끔 보게 되었다. 여전히 시 잘 모른다. 얼마전에 박준 시집 보고 기형도 시가 떠오른다고 썼다. 그 말 쓰고 다음에는 기형도 시집을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허수경은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썼다. 박준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시를 썼다. 우연히 그 시 봤을 때는 양귀자 소설집 《슬픔도 힘이 된다》가 떠올랐다. 허수경이 박준 시집 끝에 글을 써서 허수경 첫번째 시집 제목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가 생각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책을 볼 수도 있는 거겠지. 늘 그러는 건 아니다. 거의 그때그때 보고 싶은 것을 본다. 허수경 시집 이야기를 누군가 한 걸 보고 여러가지가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허수경 시집은 두권밖에 없다. 난 허수경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건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지난해 《마왕 신해철》에서 허수경 글 보았다. 두 사람은 라디오 방송 때문에 만났다. 마왕이 처음에 낸 책에 작가 누나 이야기가 조금 나오는데, 그 작가 누나가 허수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라디오 방송 작가가 있다는 거 알았지만, 시인이 하는지 몰랐다. 시 쓰고 라디오 방송 작가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병률뿐이다. 더 있을지도 모를 텐데. 허수경 첫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1988년 11월에 나왔다. 한달 뒤 대학가요제에서는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는다. 1988년이 거의 끝날 때 무한궤도는 알았지만 허수경은 몰랐다. 허수경 언제 알았는지 모르지만, 허수경이 독일에서 산다는 건 알았다. 그건 언제 어떤 글을 보고 안 건지. 우연히 안 걸 잊지 않았던가보다. 허수경 시집은 두번째 나온 《혼자 가는 먼 집》을 먼저 본 것 같다. 그걸 보고 첫번째 시집 알고 사 봤을지도. 제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집 제목은 시 모두를 보고 지을 때가 많을까, 괜찮은 구절을 제목으로 쓸 때가 많을까. 시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쓸 때도 있다. 이 시집 제목은 <탈상>이라는 시에 든 구절이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낀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喜怒哀樂) 그 안에서 슬픔은 사람한테 힘이 될까. 슬픔에 빠진 사람한테 그런 말하면, 그 말 받아들이지 못할 거다. 사람은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어하지 누가 슬픔이 찾아오길 바라겠는가. 슬픔이 찾아오면 그때가 지나야 비로소 슬픔도 힘 거름 자랑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슬픔이 찾아왔을 때 그게 잘 지나가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나갈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여러 일을 겪고 단단해진다. 난 아직도 단단하지 못하지만. 단단한 게 하나만 고집하는 건 아니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만 슬픈 일을 겪고 자라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게 그렇지 않을까. 자신한테만 슬프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느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내

배냇기억처럼  (67쪽)

 

 

 

 

근대사

 

 

 

입술만큼 여린 게 없다

우리가 그대들 가슴을 짓이겨 놓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멀리 새벽은 우리가 아프게 한

그대들 가슴에 걸려 있고

우리는 새벽달 되어 그 가슴에

떠다닌다.

 

용서해다오.

안 된다.  (70쪽)

 

 

 

 

아버지, 저를 신고하지 마세요

흔하디 흔한 집에서조차

우리가 분단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3>에서, 127쪽

 

 

 

이 시집이 나온 1988년 우리나라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그리 밝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 밝지 않다.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늘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경제가 아닌 다른 데 마음을 쓰면 더 나을 것 같지만. 힘들어도 사람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을 거다. 별로 밝지 않은 1988년을 추억하는 것은 어린시절 맛본 따스함 때문일 듯하다. 이 시집에는 1980년대 이야기도 있지만, 그때보다 지난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1988년에 그때를 생각한 건 힘들 때와 1988년이 다르지 않아서였을까. 그것보다 역사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잊어가는 이야기를.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이라고 잊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잊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시가 어떤지 잘 말하지 못한다 해도 시 볼까 한다. 슬픔을 거름 삼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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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죽어서도 편하지 않구나

 

  무덤 수난사 :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유명한 위인들

  Rest in Pieces (2013)

  베스 러브조이   장호연 옮김

  뮤진트리  2015년 09월 10일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죽음이 끝이 아닌 사람도 있다니, 이건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니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죽은 사람 시신 손이 잘린 이야기 본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이다. 손이 잘린 사람은 한 사람 더 있다. 쿠바에서 혁명을 이룬 체 게바라다. 체 게바라는 다른 곳에서 혁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그곳에서 잡히고 죽임 당했다. 시신을 돌려주지 않고 손만 잘라서 여러 사람과 함께 묻었다. 나중에 시신이 쿠바로 돌아갔다고 한다. 죽고 나서 자신의 나라나 자신의 바람대로 된 사람도 있지만 바람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많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살아서도 이런저런 일에 시달리고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구나. 재미있게 볼 수도 있지만, 죽은 다음에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죽은 사람은 그걸 모르겠지만, 산 사람이 죽은 사람까지 이용하려 하는 게 느껴진다. 모두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거의 돈을 노리고 무덤을 파고 그곳에서 뼈를 가져가거나 팔았다. 오래전에는 보물과 함께 시신을 묻기도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종교에서는 죽은 사람도 성물로 여기기도 했다. 성인이라고 여긴 사람을 교회에 묻고 시신을 미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텔레비전 방송에서 본 것 같다. 어떤 사람 시신에서 나오는 피나 액체가 병든 사람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 진짜 그런 일 일어났을까. 그 사람 시신은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으로 나뉘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그런 일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니. 어떤 사람은 18세기 말 런던에서 해부학교수한테 팔렸다. 그때 런던에서는 해부할 시체가 많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은 무덤을 파서 시체를 팔았다. 나라에서 해부하는 걸 허용하지 않고 죄인을 해부하라고 해서 그러기는 했다. 그때 제대로 잠들지 못한 사람 많겠다. 제레미 벤담은 18세기에 공리주의를 말한 사람으로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는 법을 합법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 일은 제레미 벤담이 죽은 다음에 이루어졌다. 제레미 벤담도 자신의 시체를 공개해부 요청했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그때 의학은 더 발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무덤을 파는 사람은 줄어들었을까. 그건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에도 무덤에서 시체를 훔쳐간 사람 있지 않았을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죽으면 유골을 숭배하지 않도록 화장하기를 바랐다.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가 해부를 한 다음 아인슈타인 뇌를 가지고 갔다. 그런 일을 하다니. 생각하면 좀 끔찍하다. 아인슈타인 잘 모르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뇌를 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뇌과학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아서 바로 알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 뇌는 아주 많은 조각으로 나뉘었다. 시간이 흘러서 조금 알아낸 게 있기는 하지만, 다는 아닐 거다. 어떤 사람 뇌가 어땠는지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나도 다른 사람은 어떨까 하는 거 조금 알고 싶어하기도 한다. 뇌가 어떤가 하는 것보다 글을 어떻게 쓰고 어떤 책을 보나 정도. 관심이 거기에 쏠려서 그런가보다. 죽었는데 아직 살았다는 소문이 퍼진 사람도 여럿 있다. 아돌프 히틀러에 엘비스 프레슬리.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스탈린이 처음에는 그것을 숨겼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팬들이 살아있다는 말을 많이 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죽으면 그걸 믿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죽은 사람이 우상이 되는 것인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 인체 조직이 병든 사람 거라는. 그런 일에 처음 쓰인 사람은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다. 방송 진행인이고 언론인인 앨리스터 쿡으로 이 사람은 영국에는 미국을 알리고 미국에는 영국을 알렸다고 한다. 암으로 죽었는데 어떤 게 인체 조직 이식에 쓰였다고 한다. 그 일을 알고 미국에서는 더 철저하게 조사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일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장기뿐 아니라 인체 조직도 이식할 수 있으니까. 죽는 사람이 그것을 기증한다면 모를까 기증한다고도 하지 않았는데 조직을 훔쳐가는 건 사람으로 할 일이 아니다. 병에 걸린 사람 것은 더하다. 그게 다른 사람 몸에 이식되면 그 사람은 병에 걸릴 테니까. 누군가를 도우려고 하는 것이 안 좋은 일로 보이면 안 될 텐데, 좋은 일에는 꼭 어둠이 따르기도 한다. 그런 게 없어져야 할 텐데 말이다.

 

맨 앞에서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을 말했는데, 영부인 에바 페론은 삼십대에 자궁암으로 죽었다. 에바 페론 시신은 방부처리하고 썩지 않게 했다. 그런 것을 하다니. 이렇게 시신이 썩지 않게 하고 사람들한테 보이려고 한 사람이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어머니와 여동생 곁에 묻히고 싶어했는데 미라로 만들었다. 스탈린이 시신 숭배를 이용해서 공산주의를 선전하려고 했다. 몰랐는데 김일성, 김정일도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나오지 않았지만 북한이 나오다니. 베토벤은 죽기 전에 아주 많이 아팠다. 귀가 먼 이야기는 알았는데 다른 건 몰랐다. 모차르트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일찍 죽었다. 베토벤은 자신이 죽은 다음 해부해서 병명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를 바랐다. 그때 병명은 알 수 없었고 뼈만 조금 사라졌다. 모차르트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병명 알 수 있을까. 골상학 때문에 도둑맞은 뼈도 많다고 한다. 두개골을 장식한 때도 있다. 누군가는 심장을. 이건 아주 가까운 사람일 때 그렇게 했겠다. 어딘가에서도 무덤에서 뼈를 가지고 오는 게 나왔는데 그건 옛날이 아니다. 뭐였는지 잊어버렸는데 이런 말을 했다.

 

이름을 아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죽으면 누구나 편하게 잠들기를 바라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냉동인간이 되어 나중에 살아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한번 죽은 사람을 냉동했다 해동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싶지만. 삶은 한번밖에 없다. 한번밖에 없는 삶이기에 더 소중한 게 아닌가 싶다. 살았을 때나 몸이 중요하지 죽으면 그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은 사람은 마음속에 묻는 게 좋다고 본다. 어쩐지 지금도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 시신은 이런저런 일을 겪을 것 같다. 그런 일은 이제 없으면 좋겠다.

 

 

 

 

☆―

 

결국 우리 몸은 먼지로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 정신, 작품, 추억은 그보다 생명력이 길 수 있다. 이름이 알려졌든 알려지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아마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운 점일 거다.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받아들이면서 아울러 자기가 죽고 나서도 오래 살아남을 뭔가를 만들고자 애쓴다.  (345쪽)

 

 

 

 

 

 

 

나는 하나가 아니다

 

  나란 무엇인가   私とは何か (2012)

  히라노 게이치로   이영미 옮김

  21세기북스  2015년 01월 06일

 

 

 

 

 

 

 

 

 

 

 

 

 

사람은 태어나면 부모와 가장 먼저 만나고, 부모에서 형제자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만나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 안에는 대하기 편한 사람도 있지만 대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건 대체 왤까.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편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어서겠지. 어떤 사람은 누구하고나 잘 지내기도 한다. 그건 처세술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한테 맞게 자신을 바로 바꾸는 걸까. 그렇게 바꾸는 건 자신이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닐 거다. 가끔 책을 보면 일부러 자신을 바꾸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사람이 아주 많은 건 아니겠지. 사람한테는 여러 면이 있고 여러 가면을 쓴다는 말도 한다. 가면을 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못마땅하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을 책에서 보고 별로다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거의 책에서 만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한사람을 개인(individual)으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있다는 뜻으로 분인(分人 dividual)이라 했다. 분인, 처음 봤을 때는 뭐지 했다. 지금도 익숙하지 않지만 책을 죽 보고 그렇구나 했다. 이 말이 널리 쓰일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나 생각할 거리는 있다. ‘진정한 나’는 하나가 아니다는 거다. 사람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친한 친구와 만나면 편하게 말하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덜 가깝겠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또 조금 달라지고. 한사람을 여러 사람이 다르게 말하는 것을 소설에서 본 적 있다.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닐까. 그건 다 그 사람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나를 분인의 집합체라 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하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남은 더 알기 어렵겠다. 그 사람한테 다른 면이 있다고 해서 놀라지 않는 게 좋을지도. 시간이 흘러서 새로운 면을 알게 되면 기쁠 것 같다. 전보다 가까워진 것 같아서. ‘나’보다 ‘남’을 생각하다니.

 

자신은 남을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어진다. 사람은 혼자 자신이 되는 건 아니다. 여러 분인으로 살고 싶어한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아주 많은 분인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하고 사귀기 어렵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것을 분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라 한다. 분인 만들기는 어렵다. 사람은 서로 배려하고 사귀는데 어떤 때는 그게 어렵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맞춰주기를 바란 건 아닌지, 하는. 나는 전화하고 만나는 거 싫어한다. 전화가 아닌 걸로 연락하기를 바란다. 나는 안 좋아해도 상대는 전화가 빠르고 편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좀 다른 걸까. 나는 아는 사람하고 만나는 건 괜찮은데 모르는 사람이 거기에 끼면 아주 싫다. 그건 왜 그럴까. 한사람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하고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분인 만들기가 싫어서일지도. 나는 친구가 많은 것보다 적은 게 좋다(이러다보니 별로 없고 지금은 더 없다).

 

분인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만들어지는 거다. 천천히 만들어질 때가 많고 무엇인가 공통된 것이 있으면 바로 만들어지기도 한단다. 누군가하고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까워진 느낌이 들지 않고, 누군가하고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도 가까워지기도 한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도 더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하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 말은 없다. 조금 아쉬운 일이다. 그런 말이 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를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만나면 자신도 좋을 때가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면 자신까지 싫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 전체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고 좋을 때와 싫을 때 나타나는 분인 때문이라 한다. 이 말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분인을 좋아하는 거다. 이건 좋아하는 사람일 때 그 사람을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한테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걸 느끼면 그런 자신을 좋아하겠다.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누구든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겠다. 자신을 좋아하려면 그런 분인을 크게 하면 된다고 한다.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그때 생기는 분인을 아주 싫어해서 자신을 낮잡아 보는데, 그것은 자신이 가진 분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 마음 많이 쓰지 마라 한다. 이 말 좋기는 한데 그렇게 하기 어렵다. 긍정스러운 분인이 나타나게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좋은 분인이나 나쁜 분인을 만들 수 있다. 할 수 있으면 좋은 분인만 만들고 싶은데, 그건 어렵겠지. 히라노 게이치로는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뿐 아니라 아주 많은 분인까지 죽이는 거다 했다. 그 사람과 관계를 맺은 사람 분인은 그 사람이 죽어서 더는 달라질 수 없다. 사람이 죽으면 슬픈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 해도 그 사람 때문에 생긴 분인이 남아 있어서 위로도 된다. 자신이 죽었을 때도 다른 사람 안에 자신을 만났을 때 생긴 분인이 남는다. 이런 말 아주 모르던 건 아니기는 하다. 누가 죽어서 슬픈 게 그 사람을 더는 만나지 못하고 말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긴 분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니, 이것도 맞는 듯하다.

 

진정한 자신 하나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여러 가지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그것은 남도 마찬가지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 어떨까

모두가 날 좋아한다고

몸에 좋은 생각을 하면 어떨까

보기보다 난 괜찮다고

 

 

<몸에 좋은 생각>에서, 우쿨렐레 피크닉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 나하고는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했다. 안 좋은 일도 좋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오래 우울함에 빠지는 것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더 낫겠지.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즐거운 거다.

 

 

 

웃는 연습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얼굴 찡그리기보다

살짝 웃기

자주 웃지 않아 어려울까

언제든 웃을 수 있게

웃는 연습을 하자

 

감정은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거기로 아주 쉽게 퍼져가지

많이 퍼뜨려서 좋은 것에

웃음만한 건 없지

언제든 웃을 수 있게

웃는 연습을 하자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좋지

 

 

 

봄이다, 바람은 차가워도. 사람은 삼월이 오고 봄이라 해도 바람이 차가우면 춥다 생각하지만 나무는 바람이 차가워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그걸 보면 자연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봄이 와서 좋다는 생각을 덜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책을 봐야겠다. 생각하려면 좋은 생각을 하는 게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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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魚姬: 探偵グリムの手稿 (德間文庫) (文庫)
北山 猛邦 / 德間書店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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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 탐정 그림의 수기

기타야마 다케쿠니

 

 

 

일을 해결해야 하는 이레에서 며칠 남지 않았을 때 이야기 속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한스와 루트비히는 우산도 쓰지 않고 다녔다. 책을 읽을 때 추워서였는지 몰라도 비 맞고 다니는 한스와 루트비히를 보니 나도 비 맞는 것 같았다. 눈은 괜찮아도 비 맞고 다니는 건 아주 싫다. 한스는 비 내리는 밤에 밖에 나갔다 와서 젖은 걸 닦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들어가서 잤다. 그러면 감기 걸리지 않을까. 한스 대신 내가 가벼운 감기에 걸렸나보다. 잠시 열 나고 머리가 지끈지끈 했다. 조금 추워서 그랬나보다. 책 볼 때 방 안 공기가 무척 차가워서 손 내놓을 수 없었다. 겉옷 소매를 내려서 손을 덮고 책을 잡았다. 장갑을 끼는 게 나았을지도. 이걸 쓰는 지금은 책 볼 때보다 덜 추워서 손 많이 시리지 않다. 책 볼 때는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쓸 때는 조금 움직여서 괜찮은 건지도.

 

나는 어렸을 때 동화 거의 못 봤다. 잘 알려진 동화는 책뿐 아니라 여러가지로 만든다. 안데르센 동화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 안에서 인어공주는 만화영화로도 많이 만들었다. 그것을 다 본 건 아니지만. 인어공주는 몇해 전에 책으로 봤다. 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인어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이 되었지만 그 마음은 전해지지 않고 인어는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건 기억한다. 이 책 보고 나니 안데르센이 쓴 <인어공주> 보고 싶기도 하다. 언젠가 그 책 다시 봐야지 생각했는데. 인어공주는 슬픈 이야기다. 슬픈 이야기를 누군가는 행복하게 바꾸기도 했다. 한때는 그렇게 원작과 다르게 해도 괜찮을까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이야기라는 건 달라질 수 있으니까. 어렸을 때 알았던 동화가 실제는 다르게 쓰였다는 것을 깨달은 건 언젠지. 이야기는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러가지로 생각하면 상상력도 커지지 않을까. 하지만 난 그런 생각 못했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주 새로운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나 대단한 작가가 쓴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한테 영향을 주겠지.

 

언제부터 동화를 새로 쓰게 됐을까. 동화에서 다른 걸 보고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사람 대단하다 여기고 부럽다. 동화를 미스터리로도 쓰다니. 그런 책 많이 못 봤지만 일본드라마 <앨리스의 가시>는 보았다. 제목에 앨리스가 들어간 책도 많고, 백설공주나 빨간모자도 미스터리로 다시 썼다. 오래전 그림형제가 모은 독일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미스터리하고도 이어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분홍신>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것 말고도 더 있겠지. 기타야마 다케쿠니는 처음 만난 작가로 이 책은 한국말로도 나왔다. 비슷한 때 우연히 문고로 나온다는 걸 알고 이렇게 보았다. 맨 처음에 아무 말 없이 한스와 루트비히라는 이름을 썼다. 한스는 동화 <인어공주>를 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고 루트비히는 그림형제에서 다섯째 루트비히 에밀 그림이다. 그림형제는 정말 다섯이었을까. 그림형제는 몇이었나 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 책 제목 다음에는 ‘탐정 그림의 수기’라는 말도 있다. 오래전에 작가였던 사람을 탐정으로 나오게 하는 소설도 많다. 그것도 많이 못 봤다. 작가는 자신이 탐정으로 나오는 소설 좋아할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많으니 어떤 마음일지 잘 모르겠다. 아니 나는 좋을 것 같다. 늘 다른 사람 이야기만 썼으니까. 자신이 소설 속 사람이 되는 것도 기뻐하겠다. 여기에서는 이제 열한 살인 한스(안데르센)와 그림형제 막내 루트비히를 만나게 했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한스가 커서 쓰는 인어공주는 이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본래 다른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인어공주가 거품이 되고 사라진 뒤부터 시작한다. 왕자는 폭풍이 일어나고 배가 부서졌을 때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인어공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 왕자 앞에 말은 못하지만 아름다운 인어공주가 나타난다. 왕자는 인어공주한테 마음이 끌렸지만 마음을 알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지금 이거 생각하니 왕자 바보구나 싶다. 말 안 한다고 모를 수 있나 싶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도 하지만. 이건 그 인어공주가 아니니 그건 다음에 보고 생각해야겠다. 왕자가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한 건 정치 때문이기도 했다. 그 공주가 왕자를 구해준 사람이라 여긴 왕자는 그것을 운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왕자는 결혼한 뒤 사라진 시녀, 그러니까 인어공주를 찾았다. 그때서야 왕자는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결혼하고 이틀 뒤에도 왕자는 사라진 시녀(인어공주)를 찾으러 다니다가 아무도 모르게 별궁으로 돌아오고,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다. 사람들은 사라진 시녀, 인어공주가 왕자를 죽였다 여겼다. 이건 인어공주가 사는 바닷속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인어공주는 여섯자매에서 막내였다. 넷째언니 셀레나는 사람이 되어 왕자를 죽인 게 누군지 밝혀내려고 땅으로 왔다.

 

한스와 루트비히가 만나고 함께 바닷가에 가고 그곳에서 셀레나를 만난다. 한스는 셀레나 말을 모두 믿었다. 한스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상의 세계를 더 좋아했다. 얼마전에 아버지가 죽고 슬픔이 가득할 때 루트비히와 셀레나를 만났다. 여기 나오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스 이야기는 진짜일 거다. 루트비히는 스물다섯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그림을 그렸다(예술 공부를 하기 위해 다녔다). 셀레나 말을 다 믿지 않았지만 한스와 함께 셀레나를 돕기로 한다. 셀레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마녀한테서 사람이 되는 약을 받는 대신 심장을 맡겨두었다. 심장은 이레 안에 다시 찾아야 하고, 왕자를 죽인 범인을 찾지 못하면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고 했다. 세사람이 별궁에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말을 들어봐도 그 안에서 왕자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대체 누가 죽인 거지 했다. 누군가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같으면 과학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를 알 텐데, 이야기는 19세기여서 그건 좀 어려웠다. 아니 왕자가 죽은 모습을 봤다면 루트비히가 좀더 빨리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루트비히는 탐정이라 할 만하다. 그림을 그려서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거였을지도.

 

왕자를 죽인 사람을 찾는 이야기 사이마다 다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그 이야기는 왜 왕자가 죽임 당했는지 알게 한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다 알기 어렵다. 남은 이야기까지 봐야 그렇구나 할 거다. 누가 왕자를 죽였는지 루트비히가 말한다. 거기에는 어떤 트릭이 쓰였다. 그걸 봤을 때 왜 처음에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했다. 이런 건 보다보면 느낌이 오기도 하는데, 다른 이야기 때문에 그 생각을 못했나보다. 그것도 다른 인어공주 이야기다. 사람을 좋아해서 무슨 일이든 해버린. 책을 다 봤을 때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은 그 인어공주도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마음을 상대한테 전하지도 못하고 그 사람을 위해 이것저것 했으니 말이다. 한 사람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한테 상처주는 건 좋지 않은 일인데, 그 인어공주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인어든 사람이든 마음이 아주 다르지 않게 보인다. 이걸 끝까지 보면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는 다른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생각해도 괜찮다.

 

루트비히와 셀레나를 만난 한스는 마음이 한층 자란다. 상상의 세계만 보려 했는데 평범한 현실도 보려 한다. 그래도 상상의 세계를 버리지 않겠지. 루트비히뿐 아니라 셀레나도 재미있다. 만화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모습이다. 셀레나도 한스를 만나고 사람을 조금 알게 되었다. 둘, 셋은 서로한테 좋은 영향을 주었구나. 탐정 그림(루트비히)은 다른 이야기에서도 만나고 싶은데 작가가 쓸지 모르겠다. 이거 하나로 끝날지도.

 

 

 

희선

 

 

 

 

☆―

 

“바다가 거칠어지면 사람이 사는 땅도 멀쩡하지 않겠죠? 셀레나 씨도 말했어요. 당신 나라 일이나 이쪽 나라 일이나, 그런 거 전 잘 몰라요.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저는 셀레나 씨를 돕고 싶어요. 힘들어하는 사람 하나 돕지 못한다면…… 저는 살 자격이 없어요. 살아도 되는 곳은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인어공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셀레나를 돕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건 당신이 말한 자격과 바꿔 말해도 괜찮겠지요. 사람이든 아니든 똑같아요.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303~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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