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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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몇해 동안 내가 본 만화영화에 어떤 운동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테니스 축구 야구 수영 사이클 유도 미식축구 경기 카루타 그리고 권투. 기억을 더듬어 본 건 권투 만화가 있었나 해서다. 아니 사실은 권투도 봤다는 거 생각났다. 내가 본 건 만화책이 아닌 만화영화 그러니까 영상이다. 야구는 만화책도 하나 보지만. 어떤 건 재미있어서 여러 번 보기도 하고, 어떤 건 한번만 봐서 제목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운동 만화는 거의 소년만화다. 이건 일본에서 말하는 거기는 하다. 난 순정만화보다는 소년만화가 더 좋다. 이상하게 순정만화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라는 거 보기가 힘들다. 그걸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삼각 사각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게 싫다. 여자든 남자든 왜 그렇게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지. 본래 사람 마음이 그럴지 몰라도. 운동이 나오는 만화는 그게 거의 없다(아다치 미츠루가 그리는 야구 만화는 순정만화에 가까운가). 그게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그게 중심이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넣는다. 운동하는 사람도 사람이니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귀다 헤어지기도 하겠지만, 운동하는 것을 더 그리겠지. 운동 만화라면.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이런 거 말하는 거 좀 창피하다. 나만 그런 것 같아서. 많은 사람은 운동경기를 하는 거여도 누구와 누가 좋아하는 모습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게 보고 싶으면 만화가 아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괜찮겠구나. 영화나 드라마는 원작에 없는 것을 만들어 넣기도 한다. 예전에 우연히 권투 만화영화를 봤다. 일본에는 없는 만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못 봤을 뿐 더 많은 운동 만화가 있을 거다. 인파이터, 아웃파이터 잘 모르지만 내가 본 만화영화에 나온 하지메는 인파이터였던 것 같다. 생각나는 건 이 정도뿐이다. 권투하는 사람이 여럿 나오기도 했는데. 권투를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는 사람도 있었다. 만화에서는 거의 꿈을 이야기한다. 졌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도 잘 나타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이기는 것만이 다는 아닐 텐데. 한국 사람이 권투 보기를 즐긴 적도 있는데 요즘은 별로 안 보는 것 같다. 지금도 권투하는 사람 있을까.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진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뭐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 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게 낫겠다.

 

 장태주는 어린 엄마한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학교에서는 보육원 아이들과 집안 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을 한반에 두었다. 정말 그런 학교 있을까. 에전에는 있었다 해도 지금은 없기를 바란다. 부모도 친척도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는 게 아이 잘못은 아닌데. 엄마나 아빠 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안 좋게 본다. 엄마 아빠가 다 있어야 정상일까. 부모와 살아서 더 힘든 아이도 세상에는 많다. 지금이니 이렇게 생각하지 어릴 때는 달랐을지도. 태주는 초등학생 때는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기도 하는 힘없는 아이였는데, 같은 반 아이가 태주가 돌보던 새 알리를 죽여서 그 아이를 때렸다. 주먹을 쓰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선도연합회 아이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때 태주는 돈 있는 사람 힘을 느꼈다. 자신의 억울함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태주는 기대를 버렸다. 기대는 본래 하지 않았던가.

 

 소년원에서 태주는 잘 지냈다. 늘 감시 받는 건 마음을 날카롭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태주는 담임을 만나고 권투를 하게 된다. 담임과 누나 그리고 할아버지와 한동안 식구처럼 지낸다. 태주는 잠시동안 되풀이되는 일상의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그것을 지루하게 여길지 몰라도 그것을 몰랐던 사람은 그것도 좋게 여기겠지. 언제나 좋은 때는 짧다. 태주가 권투 선수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담임과 누나와 할아버지는 전과 똑같이 살았다. 태주가 돈을 많이 벌거나 권투 선수로 잘되는 것보다 자신은 자신 그대로면 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늦고 말았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태주한테 큰 시련을 주다니. 태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태주한테 즐거운 때가 있었다는 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때조차 없는 사람도 있을 거다. 부모 없고 돈이 없으면 불행할까. 앞에서 태주는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불길한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다. 하는 것마다 안 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것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지만. 가끔 나도 운이 별로 없다 생각하면서 저런 말을 했다. 운을 바라지 않으면 낫겠지. 그러면 신기하게도 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부모 없이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른다. 그래도 난 그게 아주 안 좋다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와 같은 사랑을 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좋겠지만 누구나 그런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겠지. 세상에는 공평하지 않은 게 많다. 그런 것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은 자신대로 하면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아니 누가 그걸 모른다 해도 자신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사는 게 좋다. 태주는 인정받으려 했다가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다. 담임은 남의 질서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건 태주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래야겠다. 지금은 사람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게 많다.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잘 생각하고 정해야 한다. 나 한 사람 좋은 일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하기보다 나 한 사람이라도 하자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희선

 

 

 

 

☆―

 

 “때론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살면 그게 가장 편한 것 같지만, 또 막상 자기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살면 명확히 제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휩쓸리게 돼. 문제는 그들이 세운 질서가 네가 바라는 질서와 다를 수도 있다는 거야. 너한테 무조건 불리하고, 너한테 무조건 억울한. 이해가 돼?”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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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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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들어갔다. 여덟해 뒤, 제1차 세계전쟁이 한창일 때 스토너는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강사가 되고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8쪽)

 

 

 앞에 쓴 것은 소설 맨 앞부분으로 이 소설을 짧게 정리한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 삶은 참 짧은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짧은 말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겠지요. 저 말로 알 수 있는 건 윌리엄 스토너란 사람이 살았다는 것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기억되거나 잊히겠지요. 잊히는 사람이 더 많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고 살다 죽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다 죽는지 잘 모릅니다. 가까운 사람 삶이라고 다 알까요. 저는 잘 모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그저 살아갈 뿐이지요. 소설을 보고 누군가의 삶을 알기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점을 찾아내기도 하겠지요. 모든 소설이 그런 건 아니고 유난히 삶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떤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엄청난 일을 겪고도 살아가요. 어떻게 그렇게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까 싶습니다. 운이 엄청 없어서 그런 건지 시대가 어지러워선지. 둘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이 모두 거기에 휩쓸리는 건 아닐 거예요. 깊이 휩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덜 휩쓸리는 사람이 있겠지요.

 

 이 소설을 볼 때 잠깐 다른 소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대 때문에 여러 일을 겪은 사람 이야기였어요. 많은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도 있지만 한사람 삶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도 있어요. 한사람을 깊이 다룬다고 해도 그 사람 둘레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군요. 그 사람한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지요. 한사람은 아주 많은 사람과 이어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생각하고 살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이 자기 가까이에 있는 사람밖에 모르고 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왜 이런 말을 늘어놓은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 소설에 나오는 윌리엄 스토너는 많은 일을 겪지는 않아요. 제1차 세계전쟁과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나기는 해도. 전쟁에 나간 미국 사람은 많았지만, 미국이 싸움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지만, 그건 스토너가 사는 때는 아니예요. 그렇다고 스토너가 전쟁을 아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군요. 잠시 전쟁에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 하나는 전쟁에 나가 죽고 맙니다. 죽었지만 스토너는 그 친구를 생각해요. 그 친구가 죽지 않았다면 스토너가 다르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그 친구는 스토너와 마음이 좀 맞았는데.

 

 앞에서 이야기를 불쑥 꺼내고 말았네요. 스토너 부모는 농부였어요. 아버지는 스토너가 농업대학에서 공부를 한 다음에 농사 짓기를 바랐는데, 스토너는 문학을 좋아하게 되고 그쪽 공부를 합니다. 이런 건 오래전 한국을 생각나게 했어요. 한국 부모는 자식이 공부하고 농사 짓기보다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랐군요. 스토너는 대학에서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고 자신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데 맞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 스토너 삶에 들어온 건 이디스예요. 스토너는 왜 이디스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확실하게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이디스를 좋아하면 되겠지 생각한 건지, 이디스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느낀 건지. 그것보다 이디스가 확실하게 자기 마음을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스토너가 이디스한테 결혼하자고 했을 때 이디스가 좀 이상했는데, 스토너는 그런 모습을 모르는 척한 것 같기도 합니다. 스토너는 흘러가는대로 산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이디스하고 일이 그랬습니다. 결혼은 아무것도 모를 때 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결혼하고 별로 좋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스토너가 살았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스토너도 시대에 영향을 받았군요. 아니 스토너는 이디스를 좋아했습니다. 좋아했지만 그게 오래 가지 않았어요. 겉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어한 걸 좋아한다고 느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토너는 결혼하고 한달도 안돼 그 결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아요. 그러면 헤어지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스토너는 참고 삽니다. 스토너한테는 일이 있었습니다. 몇해 뒤 딸이 태어나고 스토너는 딸한테 마음을 쏟아요. 스토너는 딸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디스가 딸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 했어요. 이디스는 참 제멋대로였어요. 그런 이디스도 안됐다고 생각해야겠지만. 이디스는 스토너 서재를 빼앗았습니다. 스토너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혼자였어요. 어떤 학생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영문학과 학과장(로맥스)하고는 사이가 영영 틀어집니다. 스토너는 로맥스가 미주리 대학에 왔을 때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는데, 로맥스는 왜 스토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토너는 마흔셋에 진짜 사랑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불륜이지만, 스토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 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디스하고 헤어지고 캐서린하고 떠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스토너는 그러지 않아요. 스토너와 캐서린이 자신 그대로기를 바랐습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는 것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떤 게 더 낫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스토너 삶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디스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딸 그레이스와도 멀어졌지만, 좋은 때도 있었어요. 그레이스가 이디스 때문에 힘들 때 스토너가 좀 도와줬다면 좋았겠지만, 스토너는 그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겠지요. 스토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했습니다. 짧았지만 사랑도 했네요. 그 정도면 잘 산 거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에서 교수가 되고 좋은 자리에 앉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좋은 건 아니죠. 이 소설을 쓴 존 윌리엄스도 스토너처럼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삶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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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박주영

  다산책방  2016년 10월 04일

 

 

 

 

 

 

 

 

 

 

 

 

 

 

 지금 스파이가 있는 곳 있을까. 간첩, 공작원.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랬을까, 그렇게 된 걸까. 이런 물음이라니. 이 세상에 나면서부터 간첩인 사람은 없겠군. 세상이, 세상을 지배하려는 누군가 그런 사람을 만들겠지. 간첩은 자신의 생각으로 움직이기보다 위에서 시키는 일을 따르기만 해야 해. 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많겠지. 간첩에는 나라나 자신이 우러러 보는 사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 사람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는 거여서 나을까. 자신이 믿는 것 때문에 일하는 거니까. 간첩이라고 해서 다 누가 시키는 일을 그대로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누군가는 간첩이 되어 세상을 바꾸려고도 하겠군. 말을 잘 듣는 척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야. 그런 사람이 없다 생각하면 좀 아쉬울 것 같아.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간첩 이야기를 조금 한 것은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 거의 간첩(스파이)이기 때문이야. 누군가는 자신이 간첩인지도 모르고 살고, 누군가는 자신이 간첩인 걸 알고 좀더 위로 올라가려고 해. 어쩐지 간첩과는 좀 달라 보이는 사람도 있어. 그건 소설가 Z야. 다들 이름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알파벳으로만 말해. 이것도 무슨 뜻이 있는 것일 텐데. 그건 여기 나오는 몇사람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살아설지도 모르겠어. 간첩이 나오지만 소설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아. 감시하고 감시받는 모습. 자본주의를 밀어부치려는 사회.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일을 하지. 일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제대로 생각하지 않아. 돈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여기는 사람도 많아.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라는 말도 해.

 

 계급이라는 게 지금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오래전에는 그게 더했어. 계급에서 위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위에 있고 밑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밑이었어. 지금도 다르지 않아. 잘사는 사람은 늘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늘 못살아. 위에 있는 사람은 밑으로 내려오고 싶지 않을 거야. 밑에 있는 사람은 위로 가고 싶을까. 가고 싶어서 열심히 살기도 하겠지.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일은 일어난다 해도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건 무척 어려울 거야.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가 아주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척 힘들어. 이건 올라가려고 해 보기도 전부터 벌써 졌다 생각하는 걸까.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에 못한다 말하면 꼴불견이다 해. 이룰 수 없다 해도 해 봐라 하는 건 경쟁을 부추기는 일이 아닐까. 그것을 하는 사람이 즐겁다면 좀 낫겠지만, 즐겁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잘살려고 해. 그런 사람이 세상에 아주 많으면 어떻게 될까. 무언가를 갖는 사람도 있지만 줄 끝에 있어서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우리는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을 보고 가야 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지금은 세상에 책이 아주 많아. 옛날에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책을 보고 정보나 지식을 얻었어.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람은 밑에 사람이 책을 읽지 않기를 바랐어. 이제는 책이 많고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해. 이것도 음모일까. 책을 읽지 못하게 하려는. 시간이 없다 해도 책 읽을 시간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시간이 조금 있어도 그때 책을 보기보다 틀면 바로 나오는 영상을 보겠군. 영상을 보는 게 나쁜 건 아니야. 그것을 보기만 하면 안 되겠지. 생각을 하고 보아야 해. 책도 읽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한번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잊어버려. 책 읽은 느낌을 쓰거나 그 책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하면 좀 낫겠지. 잘 쓰지 못해도 내가 책을 읽고 쓰는 건 그래설까. 아니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저 쓰다보니 버릇이 들었을 뿐이야. 이런 버릇이 아주 좋은 건 아닐지 몰라도 아주 나쁜 건 아니겠지. 책을 읽고 이렇게 쓰는 것도 세상에 아주 조금 도움이 되겠지. 이 소설을 보니 사사키 아타루가 책을 읽는 건 혁명이다 한 말이 생각났어. 어딘가에 《패자의 서》가 정말 있을지도. 점과 점이 이어지고 선이 되고 면을 만들어. 이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야. 《패자의 서》는 한사람이 쓰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이 쓰는 거야. 세상을 이루는 한사람 한사람 같군.

 

 제목에서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인지 보는 눈인지 했어. 소설 마지막에서 조용하게 내린 눈이 세상을 바꾸었다 말해.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조용하게 바뀌는 것일지도. 먼저 바뀔 수 있다고 믿어야 하고,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있어야겠군. 그건 소설이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소설을 보면 세상을 조금 엿볼 수 있겠어.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닐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도 소설을 읽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문제없지만 읽어보는 게 좀더 낫다고 생각해. 사람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아주 적고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잖아. 책을 만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 기를 수 있을 거야.

 

 

 

희선

 

 

 

 

☆―

 

 혁명은 사람들 기억과 핏속, 심장에 있다. 모든 사람 피를 세탁할 수도 모든 사람 기억을 지울 수도 모든 사람 심장을 바꿀 수도 없다. 피는 흐르고 기억은 숨고 심장은 뛴다. 어디선가 여전히.  (190쪽)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바뀌지 않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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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불의 연회 : 연회의 준비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 전에 제목 도불의 연회에서 작게 쓰인 ‘연회준비’를 보았다. 준비라니, 이걸로 끝이 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하권까지 보니 끝나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 ‘연회 시작에서 끝까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그건 언제쯤 볼지). 도불은 뭔가 했다. 불교하고 상관있는 건가 했는데, 일본말로 누리보토케였다. 요괴 이름 같은 건가 하고, 여기에 누리보토케가 뭔지 나올까 했다. 누리보토케가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누리보토케’란 말이 한번 나왔다. 이것은 다음 이야기에서 알 수 있을까. 제목으로 쓴 거니 깊은 뜻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누리보토케는 이름만 전해지는 요괴에서 하나다. 이것만이라도 알면 괜찮을까. 그런 게 하권에 나왔다. 와이라와 오토로시다. 상, 하권은 모두 6장으로 나뉘고 한장마다 요괴 이름이 제목이다. 그 요괴와 장마다 펼쳐지는 이야기가 상관있다. 상관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책을 보면 알 수 있기도 하다. 난 교코쿠도, 고서점을 하는 추젠지 아키히코처럼 말을 잘하지 못한다. 이런 말로 달아나는구나.

 

 교고쿠도 시리즈는 몇해에 걸쳐서 다 보았다. 보기는 했지만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예전에 일어난 일이 조금씩 나오기도 해서. 책을 빨리 보는 사람은 먼저 나온 것을 한번 죽 읽어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볼지도 모르겠다. 난 책을 빨리 못 본다. 앞에 이야기 몰라도 크게 문제는 없다. 책은 몇해 동안 나왔지만 책속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은 걸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얼마전에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일지도. 교고쿠도 추젠지 아키히코한테는 여러 친구가 있다. 친구는 소설가, 탐정, 형사, 중국 요괴를 연구하는 다타라다. 중국 요괴를 연구하는 다타라 이름은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한데. 예전에도 나왔는데 내가 잊어버린 걸까. 세키구치, 에노키즈, 기바 세 사람에 다타라까지 다 나온다. 예전에는 다 나온 것 같지 않은데. 이것은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 조금씩 나왔을 거다. 제1장에서 제6장까지 이야기는 따로따로면서 이어졌다. 어느 한 곳이라고 할까. 최면술로 해를 입는 사람도 여럿 나온다. 이야기가 복잡해서 이것을 어떻게 풀어써야 할지. 아니 그렇게 복잡한 건 아닌가. 소설가 세키구치는 시즈오카 현 산촌에 있던 헤비토 마을이 1938년에 사라지게 된 일을 알아보고 글로 써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앞으로 밝혀질 일은 헤비토 마을 사람이 모두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헤비토 마을에는 쉰한사람이 살았는데 그 마을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전부터 그 마을에 살았다고 했다. 아주 바뀌어버린 것 같은 이야기는 제3장 효스베에도 나온다. 제2장 우완에는 까닭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 이야기로 그 사람이 어렸을 때 살던 마을 사람이 모두 사라졌다. 옆집에 살던 사람 주소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곳에 찾아가 봤지만 그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여기에서 <길의 가르침 수신회>라는 수상한 단체 이름이 나오고 다음 이야기에도 그게 나온다. 신흥종교 단체 <성선도>에 하권에는 <한류 기도회>에 오래 살려는 모임인 <장수연앵모임>이 나온다. 저마다 다른 이름이지만 한곳에서 나와 뿌리가 갈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요괴 효스베 이야기를 하면서 했는데, 그 이야기가 여러 단체 이야기 같기도 하다. 영매사로 나온 가센코 오토메는 나쁜 사람인가 했는데 그 사람도 최면술에 걸린 거였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여러 단체 사람이 노리는 건 뭘까. 쉽게 생각할 수 있겠다. 바로 돈이다. 재미있는 건 앞에서 나쁘다 생각한 사람이 뒤에서는 피해자였고, 앞에서 괜찮게 여긴 사람은 남을 속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식으로 뒤집히다니. 뒤집히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여러 단체에서 최면을 건 사람은 다 돈이 있었다. 영매사, 점쟁이라고도 하는데 가센코를 찾아오는 사람에는 정치가도 있었다. 여러 곳이 헤비토 마을과 상관있을까. 아주 없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헤비토 마을에는 사에키 집안이 있었는데 그 마을 지주 같은 거였다. 1938년에는 그런 관계는 사라졌다. 사에키 집안에는 비밀이 있었다. 사람을 닮은 생물 군호님이라는 것을 대대로 지켰다. 그것은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눗펫포 같았다. 군호님은 사에키 집안뿐 아니라 마을 사람이 다함께 지켰다. 세키구치는 그것 때문에 마을 사람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닐까 생각한다. 세키구치도 그 마을에 가고 덫에 걸린다. 세키구치는 오리사쿠 아카네를 죽였다는 일로 잡혔는데 거짓말 같다. 후최면에 걸리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까. 알 수 없구나. 오리사쿠 아카네를 죽인 사람은 따로 있고 세키구치는 자신이 여자를 죽였다는 최면에 걸린 건 아닐지. 오리사쿠 아카네는 이것보다 앞에 이야기 《무당거미의 이치》에서 혼자 살아 남았는데 여기에서 죽다니. 아카네가 헤비토 마을 일을 알려고 해서가 아닐까 싶다. 아카네와 세키구치가 같은 때 가까운 곳에 있었을지도.

 

 아직 끝이 나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 교고쿠도는 세상에는 이상한 일은 없다 말한다. 요괴나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내고 안개 같은 것을 걷어낸다. 나쁜 짓은 결국 사람이 한다. 여러 단체와 많은 사람이 얽힌 이번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지. 신흥종교나 인격을 바꾸는 강습회 같은 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게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최면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런 말도 나온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그게 진짜 자신의 뜻인지. 자신은 진짜 자신인지 하는 것도. 철학 같구나. 정신을 바짝 차린다 해도, 누군가 마음먹고 속이면 사람은 거의 속지 않을까. 최면에 잘 걸리거나 잘 속는 사람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잘 알아본다. 좀 무섭구나. 맨 앞에 나온 눗펫포, 그러니까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생물(약)도 상관있을 것 같다. 지금 가장 걱정스러워 보이는 사람은 세키구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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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정지용 시집 (미니북) - 1935년 시문학사 초판본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정지용 지음 / 더스토리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몇해 전(2014)부터 일제시대에 시를 쓴 시인 시집 초판본이 나왔다. 다른 출판사에서 처음 나온 건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이다. 사두기만 하고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건 처음 나왔을 때 글자 그대로여서 바로 못 본 것 같다. 김소월 이름은 알아도 김소월이 어떤지 잘 몰랐다. 그 뒤에 김소월을 알았느냐 하면 아니다. 내가 안 건 김소월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뿐이다. 이런 말은 김소월 시집을 본 다음에 썼다면 좋았을 텐데. 초판본 김소월 시집 다음에 윤동주, 백석, 한용운 시집이 나오는 걸 보고 정지용 시집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에 나온 초판본을 지금 볼 수 있게 해준 곳은 다른 곳이지만, 그곳 말고 여러 곳에서 초판본을 냈다. 이것도 초판본이기는 하지만 한글은 지금 말로 고친 것 같다. 여기에서는 시집을 두가지로 냈다. 하나는 보통 크기, 하나는 좀 작은 것으로. 내가 본 것은 작고 귀엽다. 글자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읽기에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래도 한번에 죽 보기보다 조금씩 보는 게 나을 듯하다.

 

 

 

유리창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방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창1>, 21쪽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잘 모르겠는데, 학교 다닐 때 일제강점기 시인이나 소설가를 좀 알았다. 알았다기보다 국어시간에 배웠다고 해야겠다. 그 안에 정지용 시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시는 <유리창1>이다. 그 시를 선생님이 가르쳐준 건지 책에 있었는지.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고 다른 데서 듣거나 본 걸 학교에서 배웠다고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건 내가 학교 다닐 때 시와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설지도. 공부라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국어 영어 수학에서 국어 점수가 그나마 나았던 것 같기도 한데. 국어 좋아하지 않았지만 싫어하지 않았나 보다. 그때도 시를 좋아했다면 좋았을 텐데. 또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니. 고등학교 다닐 때 책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그런 내가 문예부였다. 글 쓰는 게 좋아서 거기에 들어간 건 아니고 거기가 남아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예부였다 해도 글 쓴 기억은 거의 없다. 그때 뭐 하고 시간을 보낸 거지. 내가 문예부였던 적 한번 더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그때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들어갔겠지. 두번이나 문예부였다니.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를 쓰고 시집도 냈다. 선생님은 프랑스말을 가르쳤는데. 예전에 내가 시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시와 아주 먼 것도 아니었구나. 좀 우습다. 책(시 소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서야 봤다. 중, 고등학생 때 책은 잘 몰라서 읽지 않았지만 일기나 편지는 썼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호수1>, 77쪽

 

 

 

 앞에서 김소월 잘 모른다고 했는데, 정지용도 잘 모른다. <유리창1>에는 아이를 잃은 슬픔이 담겼다. 다른 시에도 그런 걸 조금 담았다. 김소월은 이름만 알고 시 조금만 알았는데, 정지용은 예전에 시집을 한권 보았다. 거기에서 기억하는 시는 <향수>와 <호수1>이다. <향수>는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알겠다. <향수>를 보면 정겨운 시골 모습이 떠오르고, 그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구나. 한때 정지용 시도 볼 수 없었겠지. 정지용은 일제강점기에 시 쓰는 사람으로 여러가지 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북으로 가고 거기에서 죽었다. 정지용 시는 윤동주도 좋아했다. 정지용은 윤동주 3주기 유고시집에 서문을 썼다. 그 일을 윤동주는 저세상에서 기뻐했을까.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 첫 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해바라기 씨>, 102~103쪽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할아버지>, 116쪽

 

 

 

별똥 떨어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

 

-<별똥>, 120쪽

 

 

 

 정지용은 동시도 썼다. 정지용 시를 본 뒤 윤동주는 시를 조금 다르게 썼다 한다. 여기에도 동시가 실렸다. <호수1>도 동시처럼 보이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잘 담겼다. 시를 쓰려면 어린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한다. 무엇에든 관심을 갖고 새롭게 보는 게 어린이 마음인가. 난 어린이였을 때 그러지 않은 것 같은데, 더 어릴 때는 달랐을까. 어렸을 때 난 글짓기 대회에 나가 본 적은 없지만, 글짓기 시간에 쓴 글 칭찬받은 적은 있다. 겨우 한번이었던 것 같다. 난 그걸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난 무엇을 좋아했을까.

 

 시집 이야기보다 재미없고 생각도 잘 나지 않는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이 시집을 봤기에 그때 일을 떠올린 거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일제감정기에 한글로 글 쓰기 어려웠을 텐데, 한글로 시나 소설 쓴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사람에서 한사람이 정지용이다. 정지용이 한자말을 아주 쓰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글을 잘 살려썼다. 그런 부분을 눈여겨 보면 괜찮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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