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던 게 뭐였을까

 

 

 

악녀에 대하여   悪女について (1978)

아리요시 사와코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7년 02월 15일

 

 

 

 한사람이 죽고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말하면 많이 다를까. 꼭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 따라 대하는 게 조금 달라도 본성이라고 하는 건 다르지 않을 거다. 아니 좀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한테 고약하게 굴었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한테는 다정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숨긴 부분이니 아름다운 이야기로 여기겠다. 그 반대도 있겠구나.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하고 뒤에서는 아주 나쁜 짓을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선지 겉으로 좋게 보여도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이라는 건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겠지만 자신을 실제와는 다르게 보이려는 사람도 있다. 그게 누군가한테 해를 끼치는 게 아니고 그저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라면 괜찮겠구나.

 

 여러 사업으로 잘된 여자 도미노코지 기미코는 자신의 빌딩 7층에서 떨어져서 죽었다. 기미코가 스스로 죽은 건지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기미코가 죽고 기미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던가 보다. 그게 잡지에 실리고 기미코는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 소설은 어떤 소설가가 기미코를 아는 스물일곱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스물일곱 사람이 적은 것 같지만 많은 거다. 나를 생각하면 그렇다. 이런 소설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죽지 않고 남한테 나쁜 짓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도미노코지 기미코하고는 좀 다르지만. 여러 사람 말을 들어도 기미코를 다 알기는 어렵다. 기미코는 여러 사람한테 다르게 말했다. 여러 사람도 기미코를 조금씩 다르게 말했다. 여러 사람이 한사람을 조금 다르게 말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겠구나. 기미코가 여러 사람한테 다른 말을 한 건 거짓말이라 보면 된다. 기미코가 한 말에 진심은 어느 정도나 있었을까.

 

 그때 일본사회는 귀족이 사라졌지만 귀족이나 왕족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기미코는 자신도 귀족이 되고 싶었던 걸까. 친아버지 친어머니를 자기 친부모가 아니다 말하다니. 어렸을 때, 초등학생 때부터 기미코는 거짓말을 했다. 어릴 때 자기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다 생각하는 건 그럴 수 있다손치더라도 언제까지고 그러다니. 그 말 보고 나도 정말 기미코가 업둥인가 했다. 기미코 부모는 채소 가게를 했고 가까운 곳에 귀족 집안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차에 치여 죽고 기미코와 기미코 어머니는 그 집에 살면서 집안 일을 했다. 그 집에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기미코를 그 집 아들이 건드렸다는 식으로 말하고 돈을 받고 집을 나왔다. 기미코는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한 건지, 돈 때문에 다가간 건지. 나중에 다시 만나고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만난 걸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을지도. 귀족 집안이라는 것도 생각했겠지.

 

 첫번째 남편은 기미코가 몰래 혼인 신고를 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 아이를 그 사람 아이라 했다. 그것도 둘이나. 그 사람한테서는 위자료를 엄청 받아냈다. 기미코는 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집안과 돈을 다 봤던가. 두번째로 결혼했을 때도 다 계획한 것 같다. 두번째 남편은 기미코가 착하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다니. 자신이 속은 것을 몰라서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아들 둘도 말이 엇갈린다. 첫째는 어머니 기미코를 싫어했는데 둘째는 좋아했다. 첫째는 기미코가 자신과 동생을 차별한다고 여겼는데, 둘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별은 자신이 느껴야 하는 것인데. 첫째는 기미코를 안 좋게 여겨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기미코가 안 좋은 일을 하기도 했다. 첫째 여자친구 집에 가서 안 좋은 말을 하고 여자친구가 아이를 가졌을 때는 아이를 떼라고 말했다. 기미코는 왜 그랬을까, 첫째한테 바라는 거라도 있었을까. 이건 기미코가 말해야 알 수 있는 거구나.

 

 여성이 일을 잘하지 않을 때 기미코는 이런저런 일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 그런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미코가 바란 게 무얼까 싶기도 하다. 돈을 많이 버는 거였는지, 귀족이 되는 거였는지. 기미코는 정말 잠을 잘 못 잤을까. 어쩐지 난 그것도 거짓 같다. 동정심을 이끌어내려는. 병원 사람에는 안 좋은 일 당한 사람이 없으니 아주 거짓은 아니었을지도. 기미코는 머리도 좋고 감도 좋았다. 그것을 나쁜 일에 써 먹은 게 아쉽다. 기미코가 정직하게 일을 했다 해도 잘됐을 거다. 돈 같은 물질은 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쓸데없다. 소설에서 돈을 많이 벌려고 남을 속이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하면 뭐가 좋을까 한다. 텅 빈 마음을 그렇게라도 채우려는 건지도. 기미코도 그랬을까. 기미코 마음은 알 수 없겠다. 기미코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게 좋은 걸까. 세상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만 있지 않다.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다 알고 제대로 보아야 한다. 자신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려고 남한테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겠지. 기미코한테는 죄책감이 없었을까. 자꾸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구나. 기미코 자신한테 모자란 게 있어서 자꾸 채워넣으려한 게 아닐까 싶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그것을 놓으면 편할 거다. 꽉 찬 것보다 비어 있는 것도 괜찮다. 내가 그것을 느낀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무엇을 하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좋겠다.

 

 

 

 

 

 

 

 

 

 

 

 

 

 

 

짧은 꿈, 긴 삶

 

  싫은 여자   嫌な女 (2010)

  가쓰라 노조미   김효진 옮김

  북펌  2017년 03월 28일

 

 

 

 

 

 

 

 

 

 

 

 

 

 

 

 사람은 자신한테 힘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때 잠깐 하는 말일지라도. 남이 듣기에 좋은 말 하는 것도 어쩌면 재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 그것도 남자한테 사기치고 사는 고타니 나쓰코를 먼 친척이라는 것 때문에 돕는 변호사 이시다 데쓰코도 나쓰코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 마음 여전히 난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할까 한다. 데쓰코는 나쓰코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걸 해서 나쓰코를 조금 좋게 본 걸까. 아, 생각났다. 나쓰코는 사기치는 남자 돈을 빼앗는 것만 하지 않고 한때나마 남자를 꿈꾸게 했다. 그건 가깝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기 식구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말 마음을 터놓아야 하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인데. 이렇게 말해도 나도 그러지 못하는구나. 난 딱히 할 말 없고 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다. 말하지 않는 게 버릇이 되었다.

 

 앞에서 1978년 4월 7일이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다 읽어보고 왜 그때부터 시작했는지 알았다. 나쓰코와 데쓰코가 20대에서 70대가 될 때까지 나온다. 마지막에 데쓰코는 일흔한살이었는데 계산하면 지금보다 몇해 뒤다. 1970년대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여성이 변호사를 하기에 좋지는 않았다. 데쓰코는 변호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먼 친척 고타니 나쓰코한테서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게 시작으로 그 뒤 띄엄띄엄 나쓰코는 데쓰코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처음에 데쓰코는 나쓰코를 잘 몰랐다. 열일곱해 전 할머니 집에서 만나고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남자는 나쓰코를 좋게 말했지만 여자는 그렇게 좋게 말하지 않았다. 나쓰코가 일부러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대했다기보다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한테 이로움을 줄 사람을 본능으로 안다고 할까. 똑똑한 어린이는 그런 걸 바로 알아보던가. 난 똑똑한 어린이가 아니었구나.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니 나도 눈치가 빠르지만 나쓰코처럼 남의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는다.

 

 책을 보다보니 나쓰코한테 빠져드는 사람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서 달아나려는 사람이었다. 그건 마음의 빈틈이 되기도 한다. 자기 식구와 잘 지내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좋아할까. 나쓰코가 마음먹고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 이것만은 인정하겠다(일부러 다른 사람 기분을 좋게 한 건 아니다는 거다). 그건 잠시일 뿐이다. 그 사람한테 볼 일이 없으면 나쓰코는 바로 떠나겠지. 처음 결혼하려다 그만둔 사람은 맨션을 가로채려다 잘 되지 않아서 나쓰코가 고소당했다. 남자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니고 나쓰코와 다시 시작하는 거였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쓰코는 한사람과 평범하게 살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나쓰코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때는 미용사와 함께 짜고 일부러 차 사고를 내는 보험사기를 쳤다. 돈은 한번에 엄청나게 벌기 어렵다.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하루하루 일하고 버는 게 가장 좋다. 그런 돈은 더 소중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함께 고생한 아내를 다시 생각하는 사람, 식구를 위해 돈을 버는 거다 하고 일만 했다는 걸 알게 되는 사람, 아주 잘산 건 아니지만 자신한테도 즐거운 일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 사람, 나쓰코는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기 당했다 해도 중요한 걸 알게 돼서 다행일까. 그런 건 나쓰코 때문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나쓰코가 정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남한테 힘을 주려 했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데쓰코도 나쓰코 때문에 알게 되는 게 있다. 나쓰코 일 때문에 병원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유언장 일을 맡는다. 데쓰코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삶에 헛헛함을 느끼는 게 자신만이 아니다는 걸 깨닫는다. 혼자만 쓸쓸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면 위로가 될까. 사람이 죽을 때는 다 혼자다. 그 사람 삶을 남이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은 괜찮다. 데쓰코가 변호사라는 일을 말하는 것도 괜찮게 들린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려 하기보다 그 일을 최선을 다해 한다는 말. 이건 변호사 일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좋겠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사람도 있다(나도 다르지 않구나). 나쓰코는 일흔이 되어서도 사기를 쳤다. 전에는 남자한테 속기도 했는데. 나쓰코가 속았을 때 데쓰코는 남자한테 나쓰코를 이용하지 마라 한다. 데쓰코와 나쓰코뿐 아니라 여러 사람 삶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혼자라는 것도 잘 견디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잠깐 꾸는 꿈은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삶은 꿈보다 길다. 나도 그렇게 잘 사는 건 아니구나. 나쓰코 같은 사람은 여자만 있을까. 난 그런 남자도 있을 것 같다.

 

 

 

희선

 

 

 

 

☆―

 

 “사람은 누구나 혼자예요. 크건 작건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 외로움까지도 잘 다스리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외로움을 채울 순 없어요. 그보다 외로움을 즐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외로움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거든요.”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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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알고 있다 -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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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언제부터 생각했을까.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전에는 그런 게 없었을까. 있었지만 글이 남아있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인류가 오래전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 건 책 때문이다. 아니 꼭 책만 있는 건 아니다. 벽에 그린 그림도 남아있다. 그래도 좀더 쉽게 알 수 있는 건 글로 남긴 거겠지. 그때 문자와 지금 문자는 많이 다르겠지만. 철학에는 자연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게 지금은 과학과 의학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과학은 이 세상을 알려는 것이다. 사람은 말을 하니 말을 나누고 알겠지만 식물이나 동물은 그게 어렵겠지. 식물이나 동물은 사람한테 별로 관심없는 것 같기도 한데 사람은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 아니 식물은 사람한테 관심없기보다 사람을 어떻게 이용할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뿐 아니라 곤충이나 동물도 이용하는구나. 그건 식물이 생각하는 걸까. 식물한테도 감정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나무는 서로 돕고 산다. 동물도 다르지 않겠지. 그러면 물고기는 어떨까. 물고기도 아픔이나 즐거움을 느끼고 다른 개체를 알아본다고 한다.

 

 돌고래(고래였던가)와 사람이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영화로 본 적 있는데, 난 그것을 영화니까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돌고래는 머리가 좋고 초음파로 서로 이야기한다고 한다. 돌고래만 그렇게 할까. 어떤 물고기든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 물속에서 내는 소리여서 사람은 듣기 어렵다. 물고기도 배우고 익힌다. 새나 동물은 새끼한테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는데, 물고기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한테 가르친다기보다 다른 물고기를 보고 배운다. 어떤 물고기는 새를 잡아먹었다. 새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건 알지만 물고기가 새를 잡아먹는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건 물고기가 사는 환경이 달라지고 물속에 먹을 게 없어서 그렇게 바뀐 거였다.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건 지금도 일어나는구나. 물고기한테도.

 

 지금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 전에 영장류에서 한쪽은 인류로 한쪽은 그대로 진화했다고 여겼다. 영장류 이전에는 무엇이었을까.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바다에 생명체가 생기고 아가미와 허파로 숨쉬는 것으로 나뉘었겠지. 인류 조상도 아주아주 오래전에는 물속에 살았겠다. 그런데 사람이 물고기를 아는 건 얼마 안 된다고 한다. 사람과 물고기가 사는 곳이 아주 달라서.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은 바다 깊이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물고기 연구만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많이 잡을까도 생각했다. 사람이 물고기를 먹은 건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아무리 지구에서 삼분의 이가 바다라 해도 물고기를 많이 잡으면 사라질 거다. 사람 때문에 사라지는 건 물고기만 아니구나. 동물, 식물도 지구에서 많이 사라졌다. 지구에 해를 가장 많이 끼치는 건 사람이구나. 사람은 사람끼리 차별하기도 한다. 말하지 못하는 동, 식물을 지능이 낮다 여기기도 한다. 우주나 지구를 알려고 하는 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동, 식물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될 텐데.

 

 사람이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기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도 그리 좋지 않았다. 사람이 기르는 물고기가 사는 환경이 나빴고 먹이는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였다. 소, 닭, 돼지를 사람이 많이 먹게 되고 그것을 기르고 잡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는데 물고기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니. 양식장에서 자라는 물고기는 지능도 떨어진단다. 이 말을 봤을 때 사람도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면 뇌가 발달하지 않고 사회성이 떨어진다. 물고기만의 문화도 있는데 사람이 많이 자란 물고기를 잡아서 그게 사라진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먹을만큼만 물고기를 잡았을 텐데, 지금은 아주 많이 잡는다. 상어는 지느러미와 꼬리만 자르고 몸통은 바다에 버린단다. 이 말은 언젠가 다른 데서 본 적 있다. 지느러미와 꼬리가 없으면 상어는 물속에 가라앉고 죽는다. 사람은 참 잔인하다. 다른 먹을거리가 많으니 이제는 상어 지느러미나 꼬리로 만드는 수프 먹지 않으면 안 될까.

 

 지구에 사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은 지구에 사는 생물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물고기는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못하는데 그건 물속에 살아서 그렇다. 그것을 물고기가 가진 특성, 개성으로 여기면 좋겠다.

 

 

 

희선

 

 

 

 

☆―

 

 “생선시장에 쏟아져 나온 물고기를 숲에서 나온 동물이라고 생각해보라. 이들은 바다에 사는 독수리, 올빼미, 사자, 호랑이, 눈표범, 코뿔소나 마찬가지다.”  (310~311쪽)

 

 

 온라인 도서검색 사이트 인젠타 커넥트에서 ‘물고기 복지’를 무심코 찾아봤더니, 물고기 복지를 다룬 책이 모두 71권인데, 그 가운데 69권은 2002년 뒤 나온 것이고, 1997년 이전에는 단 한권도 없었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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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8-10 0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조에 갖힌 돌고래는 초음파가 벽에 부딪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충격이 심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하죠.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도 여러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동물원 폐지 운동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아이들이 세계의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교육의 기회박탈이라고 거론하기도 하는데, 모든 생물이 그 습성에 맞게 잘 살 수 있는 자유가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선 2017-08-11 03:12   좋아요 1 | URL
어렸을 때, 생각나지 않지만 동물원에 가 봤던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동물원 동물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먹이를 잘 준다고 해도 자연에서 사는 것하고는 아주 다르겠지요 그걸 없애자고 하는 사람도 있군요 동물을 가까이에서 못 봐도 알게 되는 것 같은데... 책, 사진으로 보고, 영상으로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하고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수족관 물고기도 그곳을 좋아할까 싶습니다 동물을 돌보는 사람이 더 마음을 쓰면 좋겠네요


희선
 
교단 X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박현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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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아니 무척 이상한 이야기를 만났어. 《교단 X》라는 제목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신흥종교야. 교단 X는 일본 공안이 쫓는 수상한 종교단체로 뚜렷한 이름은 없었어. 공안이 교단 X라 이름 붙인 거야. 이 교단 X를 말하기 전에 먼저 나오는 곳도 작은 종교 집단이야. 그곳 교주는 마쓰오 쇼타로로 마쓰오는 자신을 아마추어 사색가라 말해. 실제 처음에는 그랬는데 둘레 사람이 마쓰오가 명상하는 모습을 보고는 교주처럼 떠받들었어. 마쓰오를 찾아온 사람에는 아픈 사람이 많았는데 운 좋게 낫는 사람도 있었지만 낫지 않는 사람도 있었어. 기독교라 할까, 예수도 아픈 사람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마쓰오는 교단 X 교주 사와타리와 아는 사이였어. 아는 사이였지만 둘은 달랐어. 어떻게 다르다고 해야 할까. 마쓰오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했지만 사와타리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했다고 하면 될지. 신흥종교 교주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지 않을까 싶어. 자기 말만 듣게 하는 거지. 그것은 세뇌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이야기는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고바야시가 나라자키 도루가 알아봐달라는 여자 다치바나 료코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 료코는 작은 종교 단체와 상관있고 교단 X와도 상관있었어. 나라자키가 료코를 찾으려는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아. 이 책을 보면서 끝까지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긴지 알 수 있을까 했어. 교단 X에서 일어나는 일로 보이기도 하고 테러도 상관있고 전쟁, 기아, 개인, 우주……, 이 세계를 말하는 건가. 종교 단체 이야기가 어떤 것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모두 하나에서 나왔다는 것일까. 종교가 본래 하나에서 여러 가지로 나뉘었다고 하잖아. 이건 인류도 그래. 인류는 아프리카에 나타나고 세계로 퍼져나갔지. 이 이야기 전에 우주가 생겨난 건 우연인가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인가 하는 말도 해. 난 그것을 보고 우연히 일어난 일이다 생각했어. 우연히 일어난 일을 그렇게 될 일이었다 말하기도 하지. 이건 닭이 먼전가 달걀이 먼전가 같군. 사람 삶은 정해져 있을까.

 

 종교에 빠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는 게 무척 힘든 사람일 때가 많겠지. 돈을 바라고 그런 사람을 자기네 종교에 빠뜨리는 사람도 있어. 교단 X는 사와타리가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려 만든 것 같기도 해. 사와타리는 자신이 나쁜 짓을 하면 어떤 벌을 받을까 하는 생각도 하더라구.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일부러 나쁜 짓을 저지르는. <십이국기>에도 그런 사람이 나왔는데. 사와타리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만들고 본능에 따라 살라고 해. 그게 본능에 따르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성에서 자유로워져라 하더라구. 어쩌면 쾌락을 바라는 건 잘못이 아니다 말하는 건지도. 읽기 힘든 부분이었어. 그 이야기를 꼭 해야 했을까 싶었어. 신흥종교 단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해. 사와타리가 교주가 된 건 돈 때문은 아니었는데. 사와타리를 교주로 받드는 사람들은 거의 세상한테 상처받았어. 그런 사람들 사와타리가 아닌 마쓰오를 만났다면 더 나았을 텐데.

 

 세상에는 먹을거리가 남아서 버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많은 곳도 있어. 어떤 사람은 세상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기도 했는데. 그 생각은 좋은 거지만 테러를 일으켜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되겠지. 일본에서는 예전에 사린가스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일으킨 사람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 그건 폭력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도 할 수 있을 텐데. 마쓰오는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나갔다 살아 돌아왔어. 마쓰오는 전체주의를 안 좋게 보았어. 나라나 어떤 사람 하나만 따르는 건 위험하지. 마쓰오는 작고 보잘것없다 해도 자기 삶을 살라 하고,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세상에 왔다고 말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마쓰오가 한 말이 아닐까 싶어. 일본이 안 좋은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 아니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는 건 일본만이 아니야. 그건 어느 나라에서든 일어날 수 있어. 나라가 중요하지만 그 나라에 사는 한사람 한사람은 더 중요해.

 

 개인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서 자신만 생각하라는 건 아닐 거야.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남도 소중하게 여겨야 해. 마쓰오는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지 마라고 해. 그 사람 이야기를 멋대로 끝내면 안 된다면서. 맞는 말이야. 세상에 온 사람은 여기에서 삶을 즐기다 가야지. 그렇다고 늘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야. 힘든 일 슬픈 일이 자신을 찾아오면 그게 잘 지나가게 하면 좀 낫겠지. 작가는 남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해.

 

 

 

희선

 

 

 

 

☆―

 

 “이제야 마쓰오 씨가 했던 말을 이해할 것 같아. 삶은 견주는 게 아니다고. 하나의 길, 한사람 길을 누군가와 견주지 않고 사는 거야. 남의 삶을 참고로 하는 건 괜찮아. 영향받는 것도 괜찮아. 하지만 지나치게 견주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눈앞에 놓인 자신의 삶을 걷는 거야. 남과 견주는 건 쓸데없어. 삶의 가치는 모두 똑같아. 어떤 삶이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해. 삶은 저마다 독립된 거야. 산다는 건 자신의 시간을 끝까지 살아가는 거야. 어떤 삶이든 설령 만족스럽지 못해도 마지막까지 살았다면 멋진 사람이야. 평온한 삶보다는 힘들어도 바꾸려고 열심히 살았다면 그게 더 멋있는 거잖아.”  (5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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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7-26 0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린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의 교주 마쓰모토 지즈오는 아주 악질적인 인간였어요. 사린 이전에도 여러 화학 살상 무기를 개발해 살포하며 히틀러급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던 망상에 빠진 인간였어요. 옴진리교가 더 퍼져 나갔으면 더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겁니다. 이런 인물들 때문에 일본은 사형제도를 유지한다는.

희선 2017-07-31 00:37   좋아요 0 | URL
저는 아사하라 쇼코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본래 이름이 따로 있었군요 세꼐를 지배하려고 했다니, 그런 사람이 또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갑자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생각나는군요 더 옛날 사람이지만... 일본은 그대로도 괜찮을 텐데, 섬이어서 섬이 아닌 더 넓은 땅을 바라는 건지도... 섬이기에 좋은 점도 있을 텐데, 그런 걸 더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희선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창비시선 406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평점 :
예약주문


 

 

 제가 시를 보기 시작했을 때 정호승 시인 이름을 알았을 것 같은데 시집은 한권도 만나지 못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만난 책을 다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름을 알고 시인이라는 걸 아는 걸 보면 시집 한권쯤 만났을 것 같은데. 어른을 위한 동화나 산문을 만난 기억은 있는데, 시집을 만난 기억은 없다니 이상합니다. 예전에 제가 만난 시집에 그림이 있어서 그것을 시집이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시를 모아둔 시집은 만나지 못했을지 몰라도 시는 여러 편 만났어요. 다른 책에 실린 건지 정호승이 쓴 책에 실린 건지. <슬픔이 기쁨에게> <수선화에게>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새벽편지> <우리가 어느 별에서>……. 더 봤을 텐데 생각나지 않습니다. 정호승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저도 아는 걸 거예요. 안다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눈부처라는 말이 담긴 시도 있군요. 시 제목이 ‘눈부처’였던가요. 정호승은 사랑을 많이 노래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중요한 것일지 몰라도 저는 어색합니다. 아니 예전에는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니 지금처럼 된 거겠지요.

 

 오랫동안 어떤 것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하기보다 하다보니 시간이 흐를 때가 많겠지요. 아니 꼭 그렇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멋지게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사람은 많아도 늘 시인이거나 소설가인 사람은 적을 거예요. 시인은 늘 시를 쓰는 사람이고 소설가는 늘 소설을 쓰는 사람이죠. 정호승은 시인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마흔해가 넘었어요. 시에서 멀어지거나 시를 쓰지 않아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정호승은 다시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지 않고 살 수 없어서 그랬겠지요. 시인은 시를 쓰고 자기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도 위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이 경험한 일을 시로 써도 그것은 시인만 겪는 일이 아니지요. 시뿐 아니라 소설도 그렇군요. 정호승 하면 ‘수선화’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수선화가 여러 번 나와요. 정호승은 수선화를 많이 좋아하는가 봅니다. 봄이 오면 어떤 꽃보다 수선화를 보고 이번에는 어떤 시를 쓸까 생각할지도.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굴비에게>, 29쪽

 

 

 

 제목은 ‘굴비에게’인데 비굴해지지 마라 말하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정호승은 굴비한테만 돈이나 힘에 굽실거리지 마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모두한테 하는 말이겠지요. 정호승 시에는 ‘~에게’라는 제목이 많습니다. 여기에도 그런 시가 여러 편 실렸어요. ‘벌레 자작나무 거울 내 작은 어깨 구경꾼 여행자 벗’에게. 시인은 나이 드신 부모님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시인만 나이 드신 부모님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군요). 정호승도 부모님을 그리는 시를 썼어요. 그런 시가 이 시집에만 실린 건 아니겠지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려놓기’ 같은, 용서와 사랑도. 종교스런 시도 담겼습니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에서, 45쪽)

 

 

 

 몇달 전에 시집 제목을 보고 왜 희망을 거절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집 제목과 같은 시를 보고 중간에 빠진 말을 알았습니다. 정호승은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라는 거겠지요. 어둠이 있는 건 빛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궂은 날을 모르면 맑은 날이 눈부시다는 거 모를 거예요. 절망을 알아야 희망도 알겠습니다. 살아갈 일이 막막하고 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겠지요. 그런 일은 삶에 몇번이고 찾아옵니다. 그때를 잘 견디고 버티면 희미할지라도 작은 빛이 보일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 자주 우울함에 빠져도 다시 괜찮아집니다. 늘 가라앉기만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시를 만나도 기분이 괜찮아집니다. 시를 자주 만나고 싶기도 한데, 가끔이라도 만나려고 애써야겠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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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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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오쿠이즈미 히카루)를 보고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한번 만나볼까 했다. 생각만 하고 바로 책을 만나지 못했는데, 마침 그때 소세키가 마지막에 쓰고 끝맺지 못한 《명암》이 나왔다. 그전과 그 뒤에 다른 책을 몇권 샀지만 그건 아직 못 보았다. 마지막에 쓴 것보다 먼저 쓴 것을 보는 게 더 나았을까. 《풀베개》는 보통소설과 달라 보였는데 《명암》도 좀 그렇다. 소세키 소설은 줄거리보다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는데, 난 여전히 그것을 잘 즐기지 못한다. 이야기가 시작하고 펼쳐지고 어떤 식으로든 끝나야 하는데. 끝이 나도 ‘이게 뭐야’ 할 때도 있다. 《풀베개》가 그랬던가. 작가 이름도 알고 책도 여러 권 봤지만 잘 모르겠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 봐도 모르겠다. 책을 아예 읽지 않고 글을 보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내가 책을 보고 그 책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그런 글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책을 보면서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생각하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한번 더 볼까 했는데 이건 그러지 않았다. 첫째는 책이 두꺼워서고, 둘째는 다시 여러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기운이 감도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서다. 소세키 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소설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쓴 소설은 담백했다. 담백은 “①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 ②맛이나 빛이 산뜻함. (내 국어사전)”이다. 먹을거리에서 담백한 맛은 간이 세지 않고 심심한 맛일 것 같은데. 글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상할까. 소세키는 서른여덟에서 세상을 떠난 마흔아홉까지 소설을 썼다. 난 글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게 쓰는데, 소세키는 좀 달라졌겠지. 다른 소설에서는 한사람 마음밖에 모르지만 여기에서는 여러 사람 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쓰다 요시오는 소세키 소설에 나오는 여러 사람을 섞어놓은 것 같단다. 다른 소설을 봤다면 그런가 했을 텐데. 소세키는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쓰지 않았는데 이 소설 《명암》에는 썼다. 아니 소세키가 여자 마음을 알고 썼다기보다 소세키 자신이 생각하는 걸 쓴 것 같았다. 인물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기보다 작가가 제어한다고 할까. 그런 게 어떤 건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좀 들었다.

 

 줄거리를 아주 정리 못할 건 없다. 쓰다 요시오와 오노부는 결혼하고 반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지냈다. 쓰다가 치질 수술(이건 소세키 경험이다)을 받으러 병원에 가고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쓰다와 오노부가 여러 사람을 함께 또 따로따로 만난다. 쓰다 친구 고바야시는 오노부한테 쓰다 이야기를 흘린다. 쓰다 동생 오히데는 쓰다가 오노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 말은 오노부가 병원에 가서 병실 밖에서 우연히 들었다. 고바야시는 그렇다 해도 동생 오히데는 왜 그랬을까. 오히데는 오노부와 쓰다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시샘한 건지도. 오히데는 얼굴이 예뻐서 지금 남편과 결혼했다. 오히데 남편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듯했다. 이렇게 쓰다보니 오히데 마음을 조금 알게 되었다. 고바야시는 남한테 미움받는 걸로 자기 자신을 알렸다. 일부러 미움받으려 안 좋은 말을 하다니. 좋아하는 것과 미워하는 건 아주 다르지 않구나. 고바야시는 미움받기보다 사랑받고 싶은 건지도.

 

 오노부는 쓰다를 보고 자신이 먼저 결혼하고 싶다 생각하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오노부는 쓰다가 자신을 좋아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힘들게 여겼다. 오노부가 쓰다를 처음 봤을 때는 다 좋게 보았는데, 함께 살면서 안 좋은 점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오노부는 자존심 때문에 고모네 식구한테 말하지 않았다. 오노부 자신은 행복하다고 한다. 오노부는 고바야시나 오히데한테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듣고 쓰다한테 그것을 제대로 묻지 않는다. 그런 거 보니 좀 답답했다. 이건 쓰다도 마찬가지였다. 쓰다는 오노부와 결혼하기 전에 사귄 기요코를 잊지 못했다. 쓰다가 기요코를 만나 다시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쓰다는 기요코가 왜 갑자기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했는지 알고 싶었다.

 

 해설을 쓴 강상중은 오노부를 밝음(明)이라 하고 기요코를 어둠(暗)이라 했다. 아내가 아닌 아내가 될 뻔한 사람을 만나면 불륜이 되겠지. 소세키 소설에는 불륜이 나오기도 하는데, 소세키는 이 소설을 어떻게 끝내고 싶었을까. 쓰다는 오노부 몰래 기요코를 만나러 온천여관에 간다. 이만큼 이야기하는 것도 꽤 길었는데, 남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였을지. 질질 끌지 않고 끝냈을 것 같기도 한데, 제대로 말하지 않는 쓰다를 보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이 소설 읽기도 힘든데 쓰기는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소설 써서 소세키가 일찍 죽은 건 아닐지. 별 생각을 다했다. 쓰다와 오노부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할 때 상대를 떠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현실에도 그런 사람 있을까. 있으면 엄청 피곤할 것 같다. 소세키가 그런 경험을 해서 소설에 쓴 것인지, 실험한다 생각하고 그렇게 쓴 것인지. 상대 마음을 떠 보는 것은 지금도 많이 나온다. 소세키는 일백년 전에 지금 나오는 소설과 다르지 않은 소설을 썼다고 봐야겠구나. 이런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소세키 소설 만나볼 만하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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