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을 아는 소설가지만 지금까지 책은 한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 소설집이 벌써 아홉번째 책이더군요. 꾸준히 책을 썼군요. 이것보다 먼저 다른 걸 만날 수도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습니다. 얼마전에는 단편소설에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 이야기를 쓸까 했는데, 여기 실린 소설 속 사람은 또 다릅니다. 소설 쓴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다 해도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어떤 소설이든 개인을 그린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누구 삶에든 힘든 점뿐 아니라 좋은 점도 있겠지요. 소설은 그런 걸 보게 해줍니다. 자기 삶과 다르다 해도 소설을 보고 자신을 생각하기도 하지요. 겉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도 잘 보면 평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 실린 소설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저와 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군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단편 여덟편에서 책 제목과 같은 단편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는 나머지와 좀 다르게 보입니다. 얼마 뒤에 결혼할 두 사람이 어딘가에 갇혀있다 풀려나는 건데 어쩐지 무섭더군요. 그런 소설이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건 미야베 미유키 소설 《레벨 7》입니다. 그 소설에서 갇히는 두 사람은 잘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은데. 아니 기억이 없어서 모르는 사이로 생각한 것일지도. 거기에서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편이어서겠지요. 이 소설 제목에 어울리는 건 <연금 생활자와 그의 아들> 같기도 해요. 여기 나오는 아들 ‘나’는 연극하는 사람으로 ‘햄릿’ 연극을 해요. 자신은 광대가 아니고 햄릿 왕자를 맡았다고 말합니다. 햄릿은 왕이 아니고 왕자군요. 이 소설은 소설에서 본 이야기 같기도 하고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기다립니다. 그건 말하지 않는 게 낫겠지요. 오현종이 이런 이야기 처음 쓴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 자신의 분신을 쓰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소설가라고 해서 그게 소설가 자신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은 소설가 이야긴가 보다 하겠지요. 그런 소설이 여기에는 세편 나옵니다. <부산에서>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호적을 읽다>예요. 한편 더 <약의 역사>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입니다. 여기 나오는 ‘나’는 영문학과지만. 영문학과라 해도 소설은 쓸 수 있겠습니다. 아직도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군요. 그래도 큰 상을 받고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 강사 같은 일은 하지 않고 소설만 써도 괜찮겠습니다. <부산에서>는 소설가면서 시간 강사로 지내는 사람 이야기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안 좋게 보이지 않아요.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여러가지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보다는 낫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는 신문에서 신춘문예 당선자는 아니고, 예심에 붙은 사람 이름을 보고 ‘나’는 예전에 사귄 남자친구 이름을 보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나’가 좋아했는데 ‘나’가 소설가가 됐습니다. 이 소설은 지금보다 오래전 일을 떠올립니다. 예전 남자친구와 왜 헤어졌는지 다시 생각하는 건지도. <호적을 읽다>는 호적과 반대인 소설이 생각나게 했어요. 호적에는 그 사람 이야기는 없고, 그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결혼하고 자식은 얼마나 있고 언제 죽었나 하는 게 몇줄로만 적혀 있지요. 소설가인 ‘나’는 미국 비자를 신청하려고 호적등본을 떼고 거기에 쓰인 것을 봅니다. ‘나’는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고모를 생각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의 삶이군요.

 

 앞에서 이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이 다른 소설과 다르다고 했는데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에>도 좀 다릅니다. SF 같아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자신을 괴물로 만든 아버지를 죽이려고 아직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때로 돌아갑니다. 이런 이야기 떠오르는 거 있지요, <터미네이터>. 다행이라 할까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도 다른 세상이 생겼어요. 그건 평행우주예요. 현실은 바꾸지 못하는데. 아니 여기서도 바뀌는 건 아니고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거군요. 평행우주는 어떤 결정을 하면 하나 생겨나는 거기도 하죠. 소설에는 나아지는 세상이 나타나도 우리 삶은 한번이고 지금 여기가 다예요. 안 좋은 쪽으로 흐르지 않게 해야겠지요. 그런 생각해도 잘 안 되기도 할 테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조금이라도 말을 나누면 서로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어느 사이든 그렇겠군요. <난장이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는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나게 했는데 그 소설이 조금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 ‘나’는 경비원 김씨가 죽은 일에 아주 잘못이 없을까요. ‘나’가 한 말이 다 나온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될까요.

 

 이 책에 담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조금 평범하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주 평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평범한 사람 이야기도 소설로 쓰면 다르게 보일지도. <약의 역사>에서 ‘나’와 섭은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나’가 아플 때면 섭이 약을 만들어주곤 했어요. 섭이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나’는 기분이 안 좋겠습니다. 그 일로 아픈 마음은 어떤 약으로도 낫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

 

 긴 삶에서 몇만 가지 느낌을 겪어낸다 해도, 끝내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해도, 훗날 내가 죽은 뒤 남는 기록은 단 몇 줄일 뿐이다고 호적은 알려주었다. 만남과 헤어짐, 두려움과 외로움은 공식 문서로 기록되지 않는다. 문득 증조모의 생애처럼 내 삶도 건조하고 짧은 기록으로 요약된다는 사실이 깊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삶도, 아주 멀리 있는 그의 삶도 결국에는 몇 줄로 남은 채 바스러질 시간이란 사실 또한. 할머니가 들려준 그 많은 이야기 속 이름들 역시 언젠가는 제적이란 두 글자와 함께 모두 검은 잉크 속으로 스며들어버릴 것이었다.  (<호적을 읽다>에서, 2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책읽기를 좋아한다. 내가 책읽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소설을 즐겨 읽고 가끔 시를 보았다. 누군가 나한테 지금까지 만난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하기 어렵다. 하루쯤 생각하면 재미있게 본 걸 쓸 수 있을지도. 아니 하루는 짧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은 한번 보고 좋으면 여러 번 봤을지도. 내가 책읽기를 즐겁게 여기기는 해도 여러 번 본 책은 없다. 많은 사람이 《어린왕자》(생텍쥐페리)를 여러 번 보고,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고도 하던데, 난 여러 번 보고 싶은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면 괜찮을까.

 

 오래했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책을 읽기만 했다. 인터넷을 하면서 책을 보고 감상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줄거리도 짧게 썼는데 자꾸 쓰다보니 길게 쓰게 됐다. 지금은 좀 길게 쓰는 건 어쩌다 한번이고 비슷한 길이로 쓴다. 하지만 예전보다 글이 늘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책을 읽기만 해도 괜찮겠지만, 느낌을 쓰면 읽은 책을 좀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좀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쓰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언제부턴가 조금 의문이 생겼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을까 하는.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이 별로여서 그렇게 생각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면 그때는 마음이 괜찮은데 시간이 흐르면 그걸 잊고 만다. 다시 생각하니 본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이기에. 득도한 얼마 안 되는 사람은 사람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겠지만, 보통 사람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는 어둠과 싸워야 할 거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그 싸움에 지지 않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읽기 글쓰기가 사는 데 도움은 되지 않아도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주겠지. 누군가한테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편지쓰기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잠깐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편지를 한번도 써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처음에는 누구한테 편지를 쓸지 생각합니다. 떠올랐습니까.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고르고 자신이 쓰기에 좋은 펜이나 연필로 거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쓰세요. 편지지를 준비할 때 봉투도 준비해두면 좋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 혹시 틀린 글자는 없는지 한번 죽 읽어보고 편지지를 봉투에 넣을 수 있게 접으세요. 봉투 속에 편지를 넣은 다음에는 편지봉투가 열리지 않게 풀칠해서 잘 붙이세요. 저는 편지쓰기 전에 하는 건데, 그건 봉투에 우표 붙이고 주소 쓰기예요. 우표는 봉투 오른쪽 위에 붙이고, 왼쪽 위에 보내는 사람 오른쪽 밑에 받는 사람 주소 이름을 쓰세요(우편번호도 빼먹지 마세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반대로 써서 자신이 편지를 받는 사람도 있던데, 잘못 쓰지 않게 조심하세요. 주소 쓰기까지 다 하면 이제 편지를 가까운 우체통에 넣으세요. 편지는 사나흘 길게는 닷새뒤쯤 상대한테 갈 거예요.

 

 어때요, 그렇게 어렵지 않지요. 편지지에 하고 싶은 말 적을 때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때 편지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올 거예요. 편지 쓸 때는 자신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을 하면 상대가 좋아할까, 이런 생각. 편지라고 늘 좋은 말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못했던 말을 천천히 생각하고 적는 사람도 있겠지요. 어쩐지 그건 마지막 편지일 것 같습니다. 헤어질 때는 편지보다 만나서 말로 할 때가 더 많겠군요. 그때는 편지 같은 거 남겨두고 싶지 않겠습니다. 잠깐 쓸데없는 말을.

 

 먼 곳에 살아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한테도 편지쓰면 괜찮겠지요. 가까이 있다 해도 바로 건네지 않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으면 색다를 겁니다.

 

 자, 지금 써 보세요.

 

 

 

희선

 

 

 

 

 

 

 

 

 

 

이 많은 우체통에서 진짜는 어느 것일까, 답은 왼쪽 맨 끝이다

(사진을 바로 앞에서 찍고 싶었지만 거기에 택배 배달차가 서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다른 우체통에 편지 넣으면 가지 않겠지, 편지 넣는 곳 막아뒀을 것 같다

예전에 우체통(우편함)에 있는 새를 비둘기라고 했는데 제비란다

제비가 흥부한테 박씨를 물어다 준 걸 생각하고 반가운 소식을 나타내려 했나보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언가 쓸 때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기도 하다. 난 혼자여서 아이한테 편지 써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못할 거다. 내가 편지를 쓰는 사람은 친구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마음속으로는 친구라 생각한다. 난 사람을 정말 못 사귄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내가 먼저 말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물어보는 것에는 대답하기도 하지만. 글이라는 게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때는 그때대로 혼자 지냈을까.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에 자기 아이한테 편지를 쓴 엄마가 나왔다. 아이한테 편지를 쓰고 그게 책으로 나와서였다. 그 작가 이름은 김정은이고 책은 《엄마의 글쓰기》다. 큰딸이 초등학교 6학년 열세살이었는데 말을 잘했다. 엄마 김정은은 일하느라 아이들과 따로 살다 몸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과 살게 됐는데, 아이들이 엄마를 서먹서먹하게 여겼다. 마침 집 앞에 도서관이 생겨서 김정은은 아이들과 함께 가서 아이들이 골라오는 책을 읽어주었다. 그걸 네다섯해쯤 했다고 한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요즘은 사춘기가 빨라졌겠지. 어느 날 첫째가 엉뚱한 말을 해서 김정은은 자신이 어렸을 때를 생각하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뒤로도 김정은은 아이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지를 썼다. 편지를 써주는 엄마 좋을까. 난 좋을 것 같다. 처음에 그런 거 받으면 어색하겠지만. 말로 못하는 걸 글로 쓰면 차분하게 쓸 거다. 말은 한번 하고 나면 주워담기 힘들다. 말도 천천히 생각하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가 그렇던가, 이건 좋은 뜻이 아니다. 난 말을 잘하지 않아서 못하기도 하지만 하기 싫기도 하다. 글로 쓰는 말도 힘들고 말하는 건 더 힘들다.

 

 날마다 얼굴 보는 사람한테 편지쓰기는 좀 어려울까. 그래도 아이한테 쓰는 건 좀 다를 것 같다. 휴대전화기로 쉽게 보내는 문자메시지가 아닌 종이에 손으로 편지를 쓰면 쓰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좋을 거다. 부모가 쓴 편지를 받는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 같다.

 

 

 

희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galmA 2017-09-22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 받을 땐 눈물나요. 맞춤법 틀린 것, 필체 그런 게 다 감동적이죠. 상황까지 엮이면 더.

희선 2017-09-23 01:07   좋아요 0 | URL
AgalmA 님은 어머님한테서 편지를 받은 적 있군요 처음에는 편지가 온 것만으로도 감동스럽고 눈물 나겠습니다 어쩐지 그럴 것 같네요 별 말 아니어도 눈물 나겠죠


희선
 
연대기, 괴물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해 전에, 오랜만에 한국 단편소설을 봤을 때는 단편소설이 예전보다 짧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철우 단편소설은 긴 편이네요. 임철우는 예전부터 알았는데 소설은 그다지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난 것에서 가장 처음 생각나는 건 《봄날》입니다. 그리고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를 보고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썼지요. 그 소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어렸을 때 드라마 본 것도 같아요. 생각나는 건 역에 사람이 모여있는 것뿐이지만. 눈 오는 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소설로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단편소설로는 거의 만들지 않지요. 영화로 만들까요. 제가 한국소설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때를 말하는 소설보다 더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걸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랬는지. 아니 어쩌면 그때 소설가가 예전 이야기를 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예전에 단편소설 많이 못 보고 잘 못 봤어요. 지금도 잘 보는 건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은 거의 어둡습니다. 슬픔과는 다른 것도 같아요. 언젠가 어떤 소설집을 보니 소설마다 나오는 사람이 다른데도 그 사람들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게 대체 뭐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은희경 책 《중국식 룰렛》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조해진 소설 《빛의 호위》도 비슷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이면서 비슷한 건 소설마다가 그 사람의 평행우주여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쓰지는 않았나 봐요. 지금 생각하니 평행우주에 사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같은 사람이군요. 다른 사람일지라도 비슷한 점이 있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기 담긴 소설을 보고도 다른 사람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연작소설은 아니지만 이어져 있는 소설 같아요. 예전에 박완서 님 소설을 보고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거야말로 연작소설인데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아는 게 별로 없군요. 이런 말로 잘 못 써도 이해해달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에 나온 소설집인데 여기에는 지금보다 예전 이야기가 더 많아요.

 

 네번째 소설 <간이역>을 보니 어렸을 때 본 흑백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여자가 아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고 자기 아이는 낳지 않는 게 나왔어요. <간이역>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더군요. 그 사람은 췌장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지금 아내보다 예전에 차 사고로 죽은 아내를 생각하고 시를 썼어요. 남편은 세상을 떠날 아내보다 두번이나 아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자신을 더 불쌍하게 여겼군요. 나중에는 지금 아내보다 예전 아내를 생각한 걸 미안하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에 시인이 나오는 거 한편 더 있어요. <남생이>예요. 여기에서 남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여자를 보고 어릴 적에 만난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남자가 어릴 적에 만난 미화와 여자가 같은 사람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미화 아버지와 오빠는 한센병에 걸렸다가 나았지만 한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 일을 누군가한테 들키면 미화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어요. 남자가 어렸을 때 그걸 알고는 바로 다른 친구한테 말해서 미화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이를 먹은 남자가 그 일을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군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습니다. 소설에서는 죽음을 우울하게 그릴 때가 많더군요. 그건 결국 산 사람이 생각하는 죽음이잖아요. <흔적>과 <세상의 모든 저녁>은 그런 이야기예요. 두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다르지만 아픈 데는 같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흔적>에 나오는 사람은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병든 개도 떠나 보내고 자신이 살았던 흔적을 모두 없애려 합니다. <세상의 모든 저녁>에 나오는 사람은 쪽방에 혼자 살았어요. 오래전에 옹기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을 쓰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걸 그만뒀습니다. 그때 결혼한 사람과는 헤어지고 혼자 살다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도 없었어요. 혼자 살던 사람이 죽고 그것을 시간이 흐르고 알았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리기도 합니다. 사라진 일을 말하는 소설 하나 더 있어요. <물 위의 생>은 아우라지 뗏사공 이야기예요.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왜 그렇게 삶이 평탄하지 않은지. 소설에는 잘되는 사람보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역사에 휩쓸리는 사람 이야기를 더 쓰는군요. 임철우는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을 《봄날》로 썼습니다.

 

 죽음이 나오는 소설이 앞에서 말한 두 편만은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에는 다 죽음이 나옵니다. <연대기, 괴물>은 송달규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기사로 시작합니다. 아니 처음에는 이름이 없군요. 송달규라는 이름도 자기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한사람 삶을 말한다기보다 보도연맹 사건, 베트남 전쟁, 5 · 18 그리고 세월호에 이르는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역사는 실체없는 괴물이 만들어낸 일일지. 그 괴물은 사람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이야기집 - 단추눈 아짐>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단추눈 아짐 이야기면서 부용도 해송리 이야기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단추눈 아짐처럼 산 사람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차면 적당한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헤어지고 아이가 있는 사람과 다시 사는 일. 조금 쓸쓸해 보이지만 단추눈 아짐 삶이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말해도 덜 안타깝게 덜 쓸쓸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설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