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컴퓨터를 그렇게 빨리 쓰지 않았다. 인터넷이 생기고서야 조금 쓰게 됐다. 그래도 그게 벌써 열해가 넘었다(정확하지 않게 말하다니). 내가 쓰는 컴퓨터는 언제나 새 것이 아닌 헌 거다. 그게 안 좋은 건 아니다. 형편이 그러니 어쩔 수 없고 컴퓨터를 쓸 수 있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컴퓨터를 처음 썼을 때 나온 모니터는 뒤가 튀어나와서 크고 무거웠다. 그때 그것을 보고 저것도 언젠가 얇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그런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얇은 게 나왔다. 하지만 난 그거 쓰고 싶지 않았다. 우체국에서 그런 걸 잠깐 써 봤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니터는 처음에 15인치를 쓰다가 그게 고장나고 못 쓰게 되고는 17인치 중고모니터를 샀다. 그걸로 바꿨을 때는 글자가 조금 크게 보인 것 말고는 안 좋은 점 없었다. 그걸 오래 쓸 수 있기를 바랐다.

 

 며칠 전에 컴퓨터 모니터가 켜지지 않았다. 몇달 전부터 조금 이상한 점이 나타나기는 했다. 모니터가 잘 켜지지 않거나 가끔 모니터가 어두웠다. 그건 모니터에 불이 덜 들어온 느낌이다. 어두운 건 컴퓨터를 껐다 켜면 괜찮았다. 컴퓨터 모니터가 아주 켜지지 않은 하루 전날에는 모니터가 켜질 때까지 10분이나 걸렸다. 그렇게 켜진 모니터 끄지 않고 둘걸 하는 생각을 다음날 밤에 했다. 내가 컴퓨터를 켜는 때가 거의 밤이어서 이상이 생긴 건 밤에 안다. 모니터는 전날 조짐이 보였구나.

 

 지금까지 쓰던 모니터는 이제 나오지 않는 거다. 그래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중고가 남아있을까. 내가 그런 걸 찾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어서 그냥 컴퓨터 가게 사람이 보여준 걸 샀다. 이번에도 중고로. 많은 사람이 컴퓨터 모니터 얇은 거 쓸 때 난 쓰지 않고 늦게야 쓰게 됐다. 그것도 4 : 3이다. 가벼워서 들고 오는 건 힘들지 않았지만, 써 보니 마음에 안 든다. 난 17인치가 있었으면 했는데, 먼저 쓴 것보다 2인치 크고 모니터가 좀 밝다. 예전 것은 색이 진했다. 지금 건 글자를 가까이에서 보면 모눈종이에 쓴 것처럼 보인다. 무척 가까이에서 봐서 그런 거겠지만. 이걸 어쩌나 싶다. 이것도 쓰다보면 익숙해질까.

 

 어쩐지 지금은 컴퓨터 모니터가 글쓰기보다 영상 보기에 좋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크기도 그렇고. 글 쓰는 데는 모니터 큰 게 더 안 좋지 않나 싶다. 얇아도 예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모니터가 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건 비싸겠지. 노트북컴퓨터는 좀 괜찮을까.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지만 쓰기에 편해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

 

 사라지는 건 크고 무거운 컴퓨터 모니터만이 아니다. 처음 나오고 오래 나오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대로인 것보다 없어지는 게 더 많다. 사람이 찾지 않으면 그렇게 되겠다. 바뀌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문젤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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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사이에 제가 사는 곳에 도서관이 여러 곳 생겼지만, 다른 곳은 좀 멀어서 가기 어려워요. 만약 빌릴 수 있는 책이 세권보다 많다면 조금 멀어도 다른 곳에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 두 곳에서 책을 빌려도 모두 세권밖에 빌릴 수 없어요. 한곳에서 두권 빌리면 다른 곳에서는 한권 빌려야 하는 거죠. 이제 도서관이 여러 곳 생겼으니 한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이 다섯권쯤 되면 좋을 텐데요. 지난해 팔월부턴가는 달마다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두배로 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날이 ‘문화의 날’ 이라더군요. 책을 많이 빌려도 빌리는 기간은 똑같아요. 제가 책을 많이 빌리면 기간 안에 다 못 읽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이 적당합니다. 그러면서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25분쯤 걸리고 좀 빨리 걸으면 20분 걸려요. 20분으로 줄이려면 다른 거 안 보고 도서관에 가는 것 하나만 해야 합니다. 제가 가면서 이것저것 많이 보지는 않아요. 길을 건너거나 신호등 앞에 서면 나무를 보거나 하늘이나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조금 쓸데없는 생각도 해요. 가끔 맞은편에 선 사람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이 저한테 말을 하기도 하더군요. 왜 그러는지. 지금까지 한 두세번이었습니다. 요새는 사람 안 보고 먼 곳을 봐요. 제가 좀 멍하게 있으면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집에서 나갈 때 준비하는 건 별로 없어요. 다 읽은 책을 가방에 넣고 나가요. 밖에 나가면 여름에는 덥지만 다른 때는 조금 추워요. 처음 느낌은 그런데 걸으면 춥지 않아요. 움직여서 그렇겠습니다. 도서관까지 횡단보도는 네개고 거기에서 두곳에 신호등이 있어요.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가게 우체국 은행 아파트가 늘어섰어요. 이런 건 별나지 않군요. 초등학교도 있네요. 점심시간이 가까울 때 가면 음식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제가 냄새만 맡고 ‘오늘 점심은 뭐구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학생수는 줄어든다는데 제가 사는 곳 둘레에는 초등학교가 여러 곳 있어요. 지금 세어보니 네곳입니다. 아파트가 많아서 그럴까요.

 

 제가 도서관에 걸어가는 길은 늘 똑같아요.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을 텐데 늘 같은 길로만 다닙니다. 자주 봐서 같아 보여도 늘 같지는 않겠지요. 제가 사는 아파트는 아니지만 도서관에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 옆을 지날 때가 좋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있어서 꽃을 볼 수 있거든요. 얼마전에 알았는데 어떤 길은 찻길을 조금 넓히고 거기 있던 나무를 없앴더군요. 나무가 더 있어야 하는데 없애다니.

 

 별거 없는 이야기네요. 무언가 하나 인상깊은 것을 말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그래도 도서관 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해서 좋고 나무나 꽃을 만나서 좋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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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 때 네다섯해쯤 살던 곳은 시골로 집 둘레는 논이 펼쳐졌다. 동네가 그리 크지 않고 그곳과 다른 곳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았다. 큰 마을이 아니어도 거기 사는 사람을 다 알고 지내지는 못했다. 어려서 그랬겠지. 다행하게도 가까운 곳에 친구가 둘이나 있었다. 나중에는 우리 셋보다 한살 어린 아이가 살게 되고 함께 놀았다.

 

 친구 둘은 나이가 같았는데 하나는 한 학년 위였다. 초등학교 1, 2학년까지는 그냥 친구로 지냈는데 3학년인가 4학년 때부턴가는 자신이 한 학년 위니 언니라고 하라는 거다. 그걸 그 친구가 생각한 건지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다른 친구는 먼저 언니라고 했다. 난 왜 그래야 하지 했는데, 얼마 뒤 나도 언니라고 한 것 같다. 그 친구 둘이 가끔 나를 따돌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친구는 그 일 기억할까.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친구와 제대로 말 못한 것 같다. 그때는 내가 편지를 쓰지 않아서 주소를 물어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구나. 중학생 때 편지로라도 연락했다면 좋았을 텐데. 고등학생이 되고 한 학년 위인 친구가 나한테 편지를 썼다. 재미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 한 학년 위였다.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가 달랐다. 고등학생 때는 두 친구와 편지를 나누었다.

 

 고등학생 때 난 좀 웃겼다. 어렸을 때는 나이 같은데 왜 언니라고 해야 해, 했으면서 고등학생 때는 언니라고 했다. 편지로. 어쩌면 같은 학교 선배여서 그랬던 건지도. 같은 학교여도 학년이 달라서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이런저런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고등학교 마치고는 다시 친구라고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 만났을 때부터 친구라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좀더 편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둘 다 연락이 끊겼다. 한 친구는 몇해 전까지 편지를 나누었는데, 답장이 없어서 나도 쓰지 않게 되었다. 친구가 나한테 편지 쓰지 않아도 나는 가끔 편지 쓸걸 그랬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해도 친구가 잘 지냈으면 한다. 어릴 적 친구 둘뿐 아니라 지금까지 알고 지낸 사람 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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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무섭다고 하면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바람이 세게 부는 밤 창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무섭다고 여기는 사람은 있을 것 같다. 그런 건 방에 불을 켜면 괜찮다. 빛이 그림자를 몰아낸다. 어떻게 해도 멈추지 않는 것도 있다. 그건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난 거기에서 빠져나와서다.

 

 몇해전 여름에 난 산에 올랐다. 잠깐 걷다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걷다 보니 산속에 작은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아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아이는 걷지 못하고 할머니가 돌봤다. 아프면 병원이 가까운 곳에 사는 게 나을 텐데. 할머니는 아이한테는 산속이 좋다고 말했다.

 

 잠시 쉬고 떠나려고 하니 아이가 나를 붙잡았다.

 

 “언니, 하룻밤 자고 가.”

 

 나는 망설였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하고 할머니한테 물어봤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아이와 잠깐 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누웠지만 잠은 들지 않고 난 오래 뒤척였다. 그런 것을 알았는지 아이가 나한테 말했다.

 

 “언니, 자?”

 

 “아직.”

 

 “언니, 곧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거야. 그거 별거 아니니까 무서워하지마.”

 

 “무슨 소린데?”

 

 “나무가 집으로 다가오는 소리야.”

 

 “나무가 움직인다고?”

 

 그 말을 듣고 난 누워있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집 가까이에 나무가 많았다. 그 나무가 더 다가오면 집이나 집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언니, 걱정하지마. 나무는 그저 다가오는 것뿐이야.”

 

 아이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그게 집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내가 밖으로 나가자 나무가 집을 에워쌌다. 난 무척 놀라서 그곳에서 달아났다.

 

 이튿날 낮에 집이 있던 곳에 가 보니 집은 사라지고 나무만 있었다.

 

 나무가 그날만 다가온 건 아닐 거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무는 밤마다 집으로 다가왔다. 아이와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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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본 우리 나무 이야기
나영학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나무도 많다. 나무를 보러 산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다니 다행이 아닌가 싶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니 나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거겠다. 둘레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 종류는 아주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무에 따라 사는 곳이 다르기도 하니 높은 곳이나 추운 곳에 사는 건 보기 어렵겠구나. 지역에 따라서도 볼 수 있는 나무가 좀 다르겠다. 예전에 내가 잘 다니던 길에는 양버즘나무가 있었다. 전깃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가지를 잘라서 볼품없게 만들기도 했다. 몇해 전에 양버즘나무를 없애고 거기에 동백나무를 심었다. 내가 사는 곳을 대표하는 나무가 동백이라 해도 그렇지. 나무가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고 양버즘나무가 왜 없어졌는지 알았다. 그 말 때문에 없앤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 양버즘나무가 안 좋다는 말이 나왔나보다. 식물에는 다 독이 조금은 있을 거다. 그게 자신을 지키는 것일 테니까. 그런 게 사람한테 나쁜 것일지. 나무가 내 보내는 피톤치드도 곤충을 쫓아내려는 거다. 피톤치드는 사람한테는 좋다.

 

 여기에는 많은 나무가 실렸다. 볼 때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실제 나무를 보고 글을 보면 훨씬 잘 기억할지도 모를 텐데. 한번 쭉 훑어 본 것만으로도 괜찮다. 진짜 숲에 간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볼 때는 숲에 간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좋다고 하면 그게 없어질 때까지 쓰고, 한번 안 좋다는 말이 나오면 그걸 없애려고 한다. 좋아도 안 좋아도 사라진다니. 어떤 말에 휩쓸리지 않아야 할 텐데. 그 말이 틀린 건 아닐지 몰라도, 무슨 일이든 더 자세히 알아봐서 나쁠 건 없겠지. 지구온난화 때문에 제주 한라산에 있는 구상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말은 예전에도 봤구나. 구상나무뿐 아니라 소나무도 없어질 수 있다니.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나무에 소나무는 앞에 있을 것 같은데. 난 지금까지 바늘같은 잎뿐 아니라 다른 것도 소나무라 생각했다. 그건 측백나무였다. 학교에서 먹을 갈 때 그 잎을 넣기도 했는데. 솔잎은 송편을 찔 때 쓴다. 옛날 사람은 어떻게 솔잎을 깔고 송편을 찔 생각을 했을까. 그게 아주 좋은 거기도 하다. 이제는 솔잎 마음대로 못 뜯던가. 어떤 나무로는 약을 만들기도 한다. 본래 식물이 약 재료기도 하구나.

 

 난 아주 좋아하는 나무는 없다. 그냥 나무가 괜찮다. 좋아하는 게 하나 있고 그것을 만났을 때 아주 반가워하면 좋을 텐데 아쉽구나. 봄이면 매화 벚꽃이 피어 좋고……. 그 다음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다니. 5~6월에 피는 꽃은 거의 하얀색이다. 무슨 까닭이 있는 걸까. 여름에도 피는 꽃 있을 텐데. 여름에는 더워서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구나. 나무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기는 하다. 사람이 아주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는 건 나무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무를 더 많이 심으면 좋을 텐데. 이런 말했지만 난 나무 심어본 적 없다. 씨앗은 심어봤지만. 내 나무가 있으면 그걸 좋아할 텐데. 나무 심는 날이 있을 때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아니 나무 심는 날은 아직 그대로고 그날 쉬지 않을 뿐이구나. 나무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옛날에는 산에 나무가 없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구나. 그래도 잘못 심은 것도 있다고 한다. 나무를 심기 전에 잘 알아보아야 하는데.

 

 우리 둘레에는 나무로 된 게 참 많다. 책도 나무로 만든 거구나. 도서관은 나무가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나무는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 오래 산 나무는 이런저런 것을 봤겠다. 사람이 나무의 기억을 볼 수 있다면 어떨지. 그런 건 꼭 보아야 아는 건 아니구나. 사람한테는 상상력이 있다. 그 상상력으로 앞으로 나무가 살 것을 생각하면 좋겠다. 사람과 식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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