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서늘하기보다 차가운 바람이 분다고 해야겠지요. 가을이 깊어가고 시월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마지막 날이네요). 십일월도 가을인데 이상하게 십일월부터 겨울이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첫눈이 십일월에 와설지도. 아니 십일월은 쓸쓸한 달입니다. 한해 마지막 달 십이월보다. 어쩌면 지금 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가면 나아질지,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십일월에 은행잎이 많이 떨어진 길을 걸었는데 그때 기분 별로였습니다. 그런 것을 좋게 여길 수도 있어야 할 텐데,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건 끝이 아니고 다음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나무는 겨울이라고 해서 쉬지 않습니다. 나무가 잠시라도 쉴 때 있을까요. 우리 몸속 세포나 미생물도 쉬지 않고 움직이죠. 그게 살아있기에 우리가 있는 겁니다. 쓸쓸함에 빠지지 않아야 할 텐데.

 

 이번 악스트는 다른 때보다 두꺼워요. 무엇 때문인가 보니 장편소설이 다섯편이나 실렸더군요. 연재소설도 재미있게 보면 좋을 텐데 앞에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을때가 많고 집중도 잘 안 됩니다. 집중 못하는 건 제 탓일지도. 날마다 읽는 건 어떨까요. 저는 읽어본 적 없지만 예전에는 신문에 장편소설이 실리기도 했지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했던 건 그때는 문예지가 많지 않아서였을지도. 이제는 사라지는 문예지도 있지만, 예전보다 문예지가 많고 인터넷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연재하는 건 바로 반응을 알 수 있겠군요. 그게 소설가한테 힘이 될지. 힘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연재소설을 찾아서 읽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한번도 안 본 건 아니예요.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인터넷 연재여도 날마다 하지 않고 한주에 두번 정도군요. 인터넷에 연재한 게 책으로 나오면 작가는 기쁘겠습니다. 악스트에 실린 장편소설 이야기하다 다른 길로 빠졌군요. 이 정도만 말해야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미움이나 복수도 있을 테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하는 것도 넣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 있잖아요. 누군가한테 시달리는 사람도 그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겠지요. 피하면 되지만 피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장애물을 없애려고 사람을 죽였다 하면 그 사람을 미쳤다 할지도 모르겠네요. 장애물이라 해서 그렇군요. 오래전에 왕은 별거 아닌 걸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꾸 자기 앞에 나타나고 자신을 힘들게 하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그 사람을 죽이거나 자신을 죽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흐르지 않으면 좋을 텐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는 겁니다. 그것도 자신이 편하고 싶어서겠지요. 살아서 편해지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죽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걸 할 수 있는 곳에 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밑을 보면 떨어지고 싶잖아요. 저는 그렇던데. 어쩌면 그건 중력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중력이 죽음을 부추기는 건지. 거기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높은 곳에는 가지 않아야 합니다. 다리 위도 마찬가집니다. 높은 곳에 가더라도 밑을 오래 보지 않으면 괜찮겠네요.

 

 앞에서 좀 어두운 말을 했습니다. 악스트 열쇠말이 ‘사람을 해치고 죽이기(살해)’여서. 이것은 추리소설에만 나오는 게 아니기도 하군요. 사람을 해치고 죽이기에는 몸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음을 죽일 수도 있더군요. 그건 하려고 해서 한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지도. 폭력은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말로 하는 폭력도 있지요. 그걸 하는 사람은 당하는 사람이 어떤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폭력은 이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신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은 대단합니다. 저는 그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그걸 끊으려 애쓰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네요.

 

 황정은 소설 중편 <웃는 남자>는 단편 <웃는 남자>와 또 다른 단편 다음이더군요. 하나가 더 있었다니. 저는 단편 <웃는 남자>밖에 못 읽어봤어요. 나중에 세편을 함께 묶은 책을 내도 괜찮겠네요. 황정은은 자신이 첫째여서 동생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소설가여서 그런 걸 깨달은 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 읽어도 조금 알겠군요. 첫째는 동생한테 시키는 거 잘하지 않나요. 둘째는 자기 물건에 조금 집착하고. 부모가 아이를 똑같이 대하려 해도 잘 안 될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섭섭하게 생각해도 자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해야겠지요. 세상에 나이를 먹고 철드는 사람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다들 어른인 척하는 거겠지요. 이렇게 생각해도 저한테 어른은 늘 어른입니다.

 

 책이 두껍다 해도 읽다보면 끝납니다. 삶도 그렇군요. 살다보면 끝나겠지요.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려 다음을 준비하는 것처럼 사람 삶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거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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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타기는 한번 배우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자전거 타기는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거예요. 사람한테는 그런 거 많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닦기, 이런 건 어릴 때 배우고 익혀서 몸이 기억하잖아요. 날마다 되풀이하는 건 거의 그렇겠군요. 신기하게도 자전거는 오래 타지 않아도 탈 수 있어요.

 

 제가 두발 자전거를 혼자 탄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예요. 집에 그렇게 크지 않은 자전거가 있어서 혼자 연습했습니다. 자전거는 뒤에서 누가 잡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저는 혼자 탔군요. 처음에는 넘어지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에 자전거를 타 본 것 같기도 한데 누가 저를 태우고 자전거를 움직인 것 같아요. 희미한 기억이군요.

 

 달리기는 조금 하면 숨이 많이 찹니다. 저는 달리기보다 걷기가 좋아요. 달리지 않고도 달리는 느낌을 느끼고 싶을 때는 자전거를 타면 됩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사람이 걷는 길을 자전거가 빨리 달리면 무서워요. 자전거길과 사람이 걷는 길이 같다니. 그렇다고 찻길에서 타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좁고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에서는 자전거 천천히 몰면 좋겠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이라 했는데 그런 건 말하지 못했네요. 사실 그건 설명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자전거에 타고 중심을 잘 잡고 발로 페달을 돌리면 앞으로 나가요. 자전거는 페달로 빠르기를 조절합니다. 페달을 천천히 조금 돌리면 천천히 달리고 빨리 많이 돌리면 빨리 달려요. 페달을 빨리 돌리고 발을 쉬어도 관성으로 앞으로 가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물리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자전거 타고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기분도 좋습니다. 자전거 타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중심잡기예요. 이걸 할 수 있으려면 몇번 넘어져봐야 합니다. 넘어지면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하면 좋습니다.

 

 앞에서 자전거 타기는 한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자전거 타기는 하루면 익힐 수 있습니다(운동신경이 안 좋은 사람은 좀 어려울까요). 일상생활에서 하는 건 빼고, 한번 배우면 잊지 않고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는 거 얼마 없잖아요. 자전거는 무엇보다 환경에 좋습니다. 다른 연료가 쓰이지 않고 발로 페달을 돌리면 바퀴가 굴러갑니다. 날씨 좋고 쉬는 날 자전거 한번 타 보면 어떨까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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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난 아무소리도 내지 못했다. 언젠가 많은 사람이 나를 옮겨서 이곳에 두었다. 여기 오기 전에 난 멋진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내 둘레에 서서 노래했다. 노래하는 사람들 얼굴은 즐거워 보였는데 왜 나를 이렇게 어두운 곳에 두고 갔을까.

 

 혹시 그 일 때문일까.

 

 난 스스로 건반을 움직일 수 있다. 새로운 집으로 옮기고는 그것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아기한테 한번 보여줬다. 내가 건반은 움직여도 건반 뚜껑은 열 수 없다. 건반 뚜껑을 연 건 그 집 아기였다. 아기는 무슨 힘으로 뚜껑을 열었을까. 아기는 침대에서 나를 보고는 입으로 뭐라고 웅얼웅얼했다. 아기가 그렇게 하자 건반 뚜껑이 열렸다. 그때 내가 건반을 움직여서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아기가 자기 힘으로 건반을 눌러 소리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아기보다 내가 먼저 건반을 움직여 소리를 내자 아기가 손뼉을 치고 웃었다.

 

 이곳으로 나를 옮긴 그날은 많은 사람이 집에 찾아와 아기한테 축하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날은 아기가 태어나고 한해가 되는 날이었던가 보다. 사람은 한해에 한번씩 자신이 태어난 날을 축하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 엄마와 아빠가 축하하는 걸 봤다.

 

 아기 엄마가 건반 뚜껑을 열고 생일 축하 노래를 쳤다. 거기 모여 있던 사람은 아기를 둘러싸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아기 엄마가 아기를 안으려고 나를 떠나자, 나도 아기를 축하하려고 건반을 움직였다. 그건 내가 부르는 노래다. 내 노래가 끝난 순간 모두의 눈이 나를 보았다. 곧 누군가 소리쳤다.

 

 “피아노가 저절로 소리를 내다니. 귀신들렸다는 소문 정말인가봐.”

 

 그 말을 듣고 난 내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소리를 내면 귀신 들렸다고 하고는 나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사실 이렇게 어두운 곳에 있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난 그집 아기하고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창이는 잘 지낼까.

 

 창이 집을 떠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 바깥에서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나고는 창고문이 열렸다. 귀신들린 다른 물건이라도 두러 온 건가 했다. 이곳은 스스로 조금 움직일 수 있는 악기나 물건이 많았다. 곧 몇사람 발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그 피아노가 갖고 싶다고 했어요.”

 

 “네. 자신은 귀신들린 피아노가 좋다고.”

 

 가끔 내 소문을 듣고 나를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호기심으로 그런 거였다. 그런 사람 집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것보다 그런 사람은 건반 뚜껑도 열지 않고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 내지 않는다고 나를 떠나 보냈다. 이번에도 그런 사람이가 보다.

 

 여러 사람이 힘을 써서 나를 어떤 집으로 옮겼다. 사람이 내 자리를 잡아주자 바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야, 오랜만이야. 나야, 창이.”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처음 온 곳이 아닌 것 같았다. 난 창이 집으로 돌아왔다. 창이는 아기였을 때 일을 잊지 않았나보다. 건반 뚜껑이 열렸다면 대답 대신 노래라도 했을 텐데. 앞으로는 창이 손가락이 건반을 눌러 내가 노래하게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언젠가 창이가 바란다면 내 노래를 들려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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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 글쓰기를 하고 삼십육일이 지나고 삼십칠일째다. 이것을 하고는 책을 별로 못 읽게 되었다.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인데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까 할 것 같다. 쓸거리를 바로 떠올렸을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그날 생각하고 쓴 건 좀 걸렸다(거의 그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어떡하지’ 하는데, 쓰고 나서는 ‘썼다’ 했다. 그리고 바로 ‘내일은 뭐 쓰지’를 되풀이했다. 이 말은 전에도 했구나.

 

 지금이 오십일째쯤 됐다면 ‘벌써 반이다’ 했을까. 아니 그때는 ‘아직 반이나 남았잖아’ 했을 거다. 해야 할 것은 ‘아직 반이나 남았다’ 보다 ‘겨우 반밖에 남지 않았다’ 하는 게 나을지도. 아쉽게도 난 그렇게 긍정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반을 하고 반이 남아도 끝날 때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할 거다. 다 하고 난 다음에는 앞으로도 쓸 수 있을까 하겠지.

 

 날마다는 아니지만 며칠에 한번 짧은 이야기 써서 좋았다. 그런 거 쓸 때가 재미있기는 하다. 조금 마음대로 써도 되니까. 잘 안 풀려서 쓰고 나서 줄을 긋기도 하지만. 별일 없는 평범한 건 내 이야기처럼 되고. 내가 쓰는 글에 내 이야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다는 아니다. 큰일 일어나지 않고 별 거 없는 이야기도 괜찮지 않나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막상 그런 걸 읽고는 이건 뭐라고 써야 하지 하기도 한다. 내가 쓴 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닐지도. 시간이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소설이 있지 않은가. 쓰기 쉬워 보여도 그런 게 더 쓰기 어려울까.

 

 내가 한번 써 봐야지 하는 것에는 죽은 사람(귀신)이 나온다. 지금까지 두편 썼다(백일 글쓰기). 다른 것도 하나 생각한 거 있는데 그건 아직 못 썼다. 어쩌면 못 쓸지도. 그걸 먼저 썼다면 다른 걸 못 썼을 것 같다. 어딘가로 가고 사라지는 것도 있다. 내가 내 글로 나를 알려고 하다니, 나도 그런 거 왜 쓰는지 잘 모른다. 큰 뜻 없고 그냥 생각나서 썼다. 아, 내가 평범한 이야기를 쓰려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와 균형을 맞추려는 것일지도.

 

 요새 그렇게 좋지는 않다. 책 보고 글쓰기 앞으로도 할 수 있을지. 또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했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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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유경은 웃음지었다. 노랫말처럼 지금 유경은 그야말로 가을 우체국 앞에 서 있다.

 

 며칠전 유경은 어릴 적 친구 미경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유경은 여덟살 때 미경이 사는 동네로 이사했다. 그곳은 시골로 유경이 살게 된 곳은 방 한칸짜리 사글세 집이었다. 거기에는 세들어 사는 사람이 여러 집이었다. 유경이 집에서 나가자 마당 한쪽에서 미경이 다른 친구와 놀고 있었다. 미경이 유경을 보고 말했다.

 

 “야, 너 우리하고 같이 놀래.”

 

 “응.”

 

 둘은 가까운 곳에 살고 나이도 같아서 바로 친구가 되었다. 학교는 같았지만 반은 달랐다. 그래도 학교에는 같이 다녔다. 학교 갈 준비를 먼저 끝낸 사람이 친구 이름을 불렀다. “미경아, 학교 가자.” 또는 “유경아, 학교 가자.”고.

 

 어떤 시간을 지낼 때는 그 시간이 잘 가지 않지만 지나고 나면 한순간이다. 유경과 미경이 함께 보낸 어린 시절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유경은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그때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유경 아버지가 일자리를 옮겨서 유경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미경아, 잘 지내.”

 

 “유경아, 잘 가.”

 

 두 사람은 어려서였는지 헤어지고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경은 중학생이 되고는 반 친구와 편지를 나누면서 미경을 생각했다. 미경과도 편지를 썼다면 좋았을 텐데. 유경은 유경대로 미경은 미경대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마쳤다.

 

 유경이 고등학생이 되고 봄과 여름을 지내고 가을을 맞고 한달쯤이 지난 어느 날 유경한테 편지가 왔다. 유경은 그 편지를 보고 놀라고 반가웠다. 유경한테 편지를 보낸 사람은 미경이었다.

 

 

 

 유경에게

 

 너한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다니 신기하다. 유경이 너 나 생각 나. 너네 집하고 가까운 데 살았잖아. 몇해 뒤에 우리집도 시내로 나왔어. 같은 시내에 살면서 한번도 마주치지 못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제라도 너한테 편지 쓰게 돼서 기쁘다.

 

 너네 집 주소 어떻게 알았냐고. 너네 언니하고 우리 언니 같은 고등학교 다녔더라. 예전에도 너네 언니하고 우리 언니 별로 친하지 않았잖아. 친했다면 우리가 좀더 빨리 연락했을 텐데. 얼마전에 우연히 언니 졸업앨범 보다가 너네 언니 보고 주소 찾아봤어.

 

 유경아 우리 언제 한번 만나자. 편지 기다릴게. 늘 잘 지내

 

 

 

 미경이가

 

 

 

 아직 미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경이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다. 유경은 미경을 만나기 전 설렘을 즐겼다. 우체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유경을 보고 웃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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