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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운동화
김숨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무슨 말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처음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숨 소설은 이번이 세번째예요.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먼저 봐서 다행입니다. 제가 만약 김숨 소설에서 이것을 가장 처음 봤다면 다른 두권은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 좀 어려웠습니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이야기지만 그것만 말하지 않더군요. 이런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운동화 꼭 복원해야 해, 그 운동화로 뭐 하려고, 하는 생각입니다. L의 운동화는 그때(1980년대)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신었습니다. L의 운동화는 많은 운동화에서 하나지만 L이 신었기에 뜻이 있겠지요. 한켤레도 아니고 한짝이지만. 신발 한짝은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두짝이 한결레여서 그렇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신발 한짝 잃어버린 적 있어요. 남은 한짝은 어떻게 됐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무서운 어른이 나타나서 저는 밭인가 논인가에서 달아났어요. 그렇게 하다 신발 한짝이 벗겨졌는데 다시 신지 못하고 그대로 뛰었습니다. 큰 잘못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른이 크게 소리쳐서 그게 무서웠나 봅니다.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지요. 꿈도 꿨습니다. 신발을 잃어버린 건 아니고 어딘가에서 나가려고 신발을 찾아도 보이지 않더군요. 사람이 많은 곳에 있기 싫어서 그런 건지 신발을 잃어버린 건 아니니 안 좋은 꿈은 아니겠지요. 그 꿈꾸고 안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그 꿈을 꿨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신발하고 상관있는 꿈을 꾼 적 있다니 조금 신기하네요. 그런 말을 여기에서 채 관장이 L 운동화를 복원하는 ‘나’한테 물어봅니다. 채 관장은 죽은 새를 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걸 까맣게 잊었다가 시간이 흐른 다음에 그 외투를 다시 입을 때 떠올리고 외투 주머니를 보니 죽은 새는 없었다더군요. 이건 알 것 같아요. 아무리 기억력 좋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한 일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채 관장도 자신이 한 일 잊어버린 거겠지요.
아주 엄청난 일이라 해도 시간이 흐르고, 살다보면 희미해집니다. L(이한열)이나 한국에 있었던 일도 그렇겠지요. L이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죽은 일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더군요. 저도 예전에 그 사진 봤습니다. 우연히 그런 사진을 보다니. 그뿐이었습니다. 다른 걸 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는 6월 항쟁뿐 아니라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그리고 4.3 사건, 5.1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도 잠깐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질 일. 피해자는 아직도 그때에 머물러 있을 텐데요. 시간이 흘러도 제대로 정리해야 할 텐데. 흐지부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독일은 1940년에 나치 친위대에 지원하고 1942년부터 1944년까지 폴란드 아우슈비츠 경비원으로 일한 오스카 그로닝을 93세에 법정에 세웁니다(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나오는군요). 시간이 흘러도 죄, 잘못은 사라지지 않지요.
여기에서 역사만 이야기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개인을 말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물건이라 해도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쓰면 그건 아주 다른 게 됩니다. 같은 물건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닳는 모습이 다르기도 하지요. L의 운동화를 복원하려는 ‘나’는 예전에 동양화 복원을 하다 일을 그만두고 다시 나타난 이소연을 보고 그동안 이소연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건 ‘나’만 그런 건 아니예요. L의 운동화를 복원한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서른해 가까이 L을 잊고 살았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와 이소연이 친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은 생각해도 괜찮았겠지요. 이걸 보고 저는 잊고 사는 사람 없을까 생각해 봤는데, 워낙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상대가 저를 잊고 살 것 같고, 다들 저보다는 잘 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소연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는 좀 괜찮아졌지만 이소연은 여전히 손이 마비됩니다. 자폐증 발달장애 2급 아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소연은 아들한테 신발을 짝짝이로 신기고 걷게 한 날 일을 오래 잊지 못했습니다. 이소연이 아들과 함께 살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지금까지 저는 잘 몰랐습니다. 조선시대 그림이나 그때 것이 옛날 그대로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르면 이상이 생길 텐데. 그런 것을 복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옛날 미술품을 복원하고 보관한 거였습니다.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또 해야겠지요. 복원은 지금보다 100년, 200년 뒤를 생각하고 한답니다. 복원하는 것에는 역사에 남는 것도 있지만, 개인한테 중요한 것도 있더군요. 한 나라 역사뿐 아닐 개인의 역사도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다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 같습니다.
희선
☆―
오래오래 살겠다고 다짐하는 한 어머니를 보았다. 죽은 자식을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자신이 죽으면, 죽은 자식을 기억해 줄 이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죽은 자식이 무척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104쪽)
“나는 역사를 기억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은 뚜렷한 매개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데, L의 운동화 같은 물건이 그 매개물이 아닌가 싶어요.” (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