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잘 때 꾸는 꿈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 두 가지가 떠오른다. 누구나 그럴까.

 

 지난 밤에 꾼 꿈은 어떤 거였더라,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아서 잊었겠지. 아니 꼭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꿈이 좋고 나쁜 것과 상관없이 기억에 남는 게 있고 남지 않는 게 있을 뿐일 거다.

 

 가끔 일어나자마자 그날 꿈은 잊지 않아야겠다 생각한다. 생각만 하지 않고 바로 짧게라도 적어둬야 잊지 않는다. 난 꿈을 꾸고 그걸 써야지 한 적은 없다. 작가 가운데는 꿈을 쓰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게 꿈에 자주 나타나서 그렇겠지. 어쩌면 하나를 자꾸 생각해서 꿈을 꾸는지도. 나도 꿈꾸고 싶다.

 

 이루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꼭 대단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어릴 때 난 무엇을 하고 싶다 보다 뭐가 되고 싶다 생각한 것 같다. 꿈은 뭐가 되는 게 아니고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런 말 책이나 누군가 쓴 글에서 봤을지도. 되기보다 하기가 더 즐거울 것 같다. ‘오늘을 즐겁게 살기’는 어떨까. 이런 생각해도 그렇게 못할 때가 많은 듯하다. 즐겁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야겠다. 꿈은 뚜렷해야 한다고도 했는데 그 말이 맞다.

 

 멀리 보고 천천히 해야 하는 것도 있고 지금 바로 해야 하는 것도 있겠다. 그런 걸 잘 생각하고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그런 거 잘 못한다. 그날 그날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밖에는 못하겠다. 그거라도 하면 즐겁겠지. 이렇게 쓰는 것도. 자꾸 써도 여전히 쓸거리는 떠오르지 않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뭐든 쓰는 게 낫다.

 

 내 꿈은 언제나 책 읽고 쓰기다. 우울하고 쓸쓸해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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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무척 추운데 책을 보다보면 책 속 사람은 여름을 사는 거야. 그 반대일 때도 있어. 여름에 겨울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는 거지. 겨울에 여름을 사는 사람을 보면 안 추울까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여름에는 겨울 이야기를 보고 시원하겠다 해. 그건 내 처지에서 본 거여서 그렇군. 책 속 사람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울 텐데.

 

 철이 실제와 달라서 다른 느낌을 느끼는 건 영상을 볼 때 더해. 실제로 영상이 한 건 제철일 텐데, 난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볼 때가 많아. 그래서 철이 맞지 않기도 해. 영화도 봄여름가을겨울에 맞춰서 공개하겠지. 철에 딱 맞게 보는 게 좋기는 할 거야. 제철 과일과 채소가 몸에 좋잖아. 그것과는 좀 다르겠지만. 지금은 과일과 채소를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군. 그래도 그때그때 나오는 걸 먹는 게 몸에 좋을 거야. 내가 그런 걸 잘 챙겨먹는 건 아니지만.

 

 과일이나 채소는 제철에 나오는 걸 먹는 게 좋지만 책이나 만화 영화 드라마는 꼭 제철이 아니어도 괜찮겠지. 여름에는 덜한데 겨울에 여름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면서 책 속도 겨울이라 여길 때도 있어. 나중에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걸 깨닫고 책 속은 여름이었지 해. 그게 그렇게 안 좋은 건 아니겠지.

 

 봄과 가을 이야기는 언제 봐도 좋을까. 기분이 우울할 때는 밝은 봄이 좋을 것 같아. 봄이라고 날씨가 늘 좋은 건 아니지만. 아주 더운 여름에는 더위를 가시게 하려고 일부러 겨울이 배경인 영상을 보기도 하겠지. 책도 괜찮아. 여름에 오싹오싹 하면서 볼 만한 책으로 《스노우맨》(요 네스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군. 무서운 이야기도 괜찮겠어. 미쓰다 신조가 쓴 걸로.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도 있을까. 더위를 가시게 하는 건 있는데, 추위를 덜하게 하려면 무엇을 읽고 봐야 할까. 그때는 따스한 이야기를 봐야겠어.

 

 앞에서 더위나 추위를 잊는 거 말했는데, 그런 거 잊지 않고 그때를 사는 것도 괜찮아. 책이나 영상은 어느 때 보든 재미있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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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도쿠가와 가문은 어떻게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는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오래전에는 어디든 싸움이 끊이지 않았어. 다들 넓은 땅을 가지려고 했으니 그랬겠지. 한국도 고려 조선이 되기 전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세 나라였어. 세 나라라 했지만 가야도 있고 다른 나라도 더 있었을지도. 가야는 신라가 되지. 가야 왕 후손이 김유신 집안이야. 어쨌든 같은 땅인데도 나라가 다르던 때도 있었어. 지금은 그게 ‘도’로 나뉜 건가. 한 나라 사람이면서도 사는 지역에 따라 성격이나 말이 다르기도 해. 사람 사는 곳은 거의 그렇군. 작은 마을에서도 친한 사람끼리 모이기도 하잖아. 모임에 들어간 사람과 들어가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는군.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으면서도 혼자이고 싶기도 해. 예전에는 들어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혼자가 나은 것 같아. 아니, 나도 어딘가에 들어갔겠지. 나 혼자 사는 건 아닐 거야. 이건 지금 할 말이 아니군.

 

 일본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던 센고쿠시대(전국시대)에는 무장이 식물을 길렀다고 해. 전쟁을 할 때 그런 건 아니고 전쟁을 하지 않을 때 그랬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게 많았어. 센고쿠시대에는 무사가 농사를 짓고 전쟁이 일어나면 싸움터에 나갔는데, 오다 노부나가는 농사 짓는 사람과 싸울 사람을 나누었대. 이때 싸움터에 나가는 사람은 집안을 잇지 않아도 되는 둘째였어. 일본은 첫째가 집안을 잇고 그 밑에 사람은 할 게 없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에도시대뿐 아니라 센고쿠시대에도 마찬가지였겠지. 예전에 땅을 가지고 싸운 건 먹을거리 때문이었어. 땅이 많아야 벼를 심을 수 있잖아. 쌀을 화폐로 쓰기도 했대. 에도시대에 와서는 쌀이 많아서 화폐 가치가 떨어졌어.

 

 이웃 나라 일본 이야긴데 한국이 생각나기도 했어. 비슷한 게 많아서 말이야. 한국도 쌀을 주식으로 하고 거름으로는 사람 배설물(똥, 오줌)을 많이 썼잖아. 그런데도 한국에는 보릿고개가 있었군. 먹을 게 없는 사람은 나무 껍질이나 풀도 먹었지. 이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 듯해. 여기에서는 일본만 그랬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한국 이야기는 한번 나왔나. 일본에서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는 도자기 장인을 일본으로 끌고 갔잖아. 그때 이야기는 센고쿠시대 무장이 차를 좋아했다는 말로 나오기도 해. 무장이 차를 좋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센고쿠시대 무장은 차 모임을 열고 그때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이 가진 다기를 자랑하기도 했어. 일본 다도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센노 리큐야. 리큐는 수수한 ‘와비차’를 좋아했어. 리쿠와 반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금칠을 한 다도실을 만들었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중에 리큐한테 할복하라고 했다지.

 

 싸움을 할 때는 먹을 게 중요하지. 그래서 일본에는 ‘배가 고프면 싸울 수 없다’는 말이 있어(한국은 금강산도 식후경이군). 누군가는 활로 쓸 대나무를 말린 고사리로 묶었어. 가토 기요마사는 구마모토 성에 구황식물을 숨겨둬서 싸움에 이겼다고 해. 예전에는 세끼가 아닌 두끼를 먹었는데 지금 먹는 양보다 많았어.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야. 센고쿠시대에는 현미밥과 된장을 먹어서 건강했는데, 에도시대에는 흰쌀밥을 먹어서 각기병(에도병)이 생기기도 했어. 닌자는 약초를 잘 알고 화약도 만들었어. 에도시대에는 무사가 할 일이 없어서 식물을 길렀어. 몇해 전에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노란 나팔꽃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이야기가 여기에 있어서 조금 반가웠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건강 때문에 약초를 기르는 약초원을 만들고 오래 살았대.

 

 제목에는 ‘에도시대’라는 말이 나오는데 에도시대보다 센고쿠시대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네. 아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도를 에도로 옮기고 에도를 많이 바꿨어. 땅에서 자라는 식물 때문에 그곳 이름을 정하기도 했더군. 그리고 땅이름이 그곳에 사는 사람 성이 되기도 했어. 무사가 꽃이나 나무를 좋아했다는 말을 보니 조선시대에 전남 강진으로 귀양 간 정약용이 생각났어. 조선시대 선비가 귀양 간 곳에서는 글을 많이 썼지만, 정약용은 밭도 가꿨어. 식물을 기르는 건 마음에도 좋잖아. 싸움을 하던 무장이 꽃이나 나무를 좋아한 것도 싸움에서 받은 정신의 괴로움을 잊으려 한 거겠지. 요새는 반려 식물도 있더군. 복잡한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식물을 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싶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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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우연히 알게 되고 본 일본 드라마 <처음 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はじめまして、 愛しています>와 예전에 우연히 제목을 보고 본 드라마 <아침이 온다 朝が来る>는 입양을 이야기 한다. 두 드라마에서 입양을 다루지만 조금 다르다. 드라마 같은 걸 보고 입양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많지는 않더라도 아주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입양을 말하는 드라마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제목이 뭐였는지 잊어버렸다(<내일, 엄마가 없어 明日、ママがいない>였던 것 같다). 제목은 잊어버렸지만(나중에 생각났구나)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거기에서는 어른, 그러니까 부모가 될 사람이 아이를 고르지 않고 아이가 부모를 골랐다. 아이는 부모 후보와 어느 정도 살아보고 그 집 아이가 될지 되지 않을지 정했다. 그건 아이를 보내는 사람이 생각한 거다. 그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아이를 더 생각하는 거니 말이다.

 

 

 

 

 

 드라마에서 아이 새 부모를 찾아주려는 사람은 부모보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앞에서 말한 두 드라마에서는 아이를 기르려면 잠시 동안 배워야 했다. <아침이 온다>에서는 청소년이 낳은 아이를, 아이를 낳지 못한 부부가 입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아이를 낳은 엄마가 찾아와 잠시 아이를 기른 부모를 걱정시키지만 이야기는 좋게 끝난다. 드라마여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원작은 츠지무라 미즈키가 쓴 소설 <아침이 온다>로 한국에 책 나왔다.

 

 중학생 때 아이를 낳은 엄마는 자기 엄마한테 사랑받지 못했다. 아이도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 보내고 고등학생이 되고는 엄마와 언니와 사이가 안 좋아 집을 나온다. 그 뒤에 잘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다른 힘든 일이 있었다. 그것을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알게 되고 도와주려 한다. 지금 함께 사는 아이를 낳은 엄마니 그런 생각을 한 거겠지.

 

 

 

 

 

 다른 드라마 <처음 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에서는 친엄마한테 학대 받은 아이를 입양하려고 한다. 이것을 보고 부모한테 학대 받고 새 부모와 살게 되면 아이는 그 부모를 시험하거나 아기로 돌아간다는 걸 알았다. 그 기간은 아이마다 다르다는데 실제 그런 일 겪고 견디는 사람도 있겠지. 부모한테 학대 받은 아이를 기르는 건 더 힘들 것 같다. 아동상담소에서도 부모 심사를 까다롭게 했다. 그건 그렇게 해야겠다.

 

 자기 아이 기르기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를 기르는 건 더 힘들겠다. 낳은 정 기른 정이라고 하는데 난 낳은 정만큼 기른 정도 크다고 생각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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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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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소설이든 사람을 말할 텐데 마땅한 제목은 떠오르지 않고, 책 제목과 해설 제목에 ‘사람’이 있어서 나도 ‘사람’을 넣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아직도 단편소설 보는 건 쉽지 않다. 하나만 깊이 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다 어중간하게 보는구나. 맨 앞에 실린 소설 <호수─다른 사람>은 여러 번 보았다. 여러 번 봤다고 새로 알게 된 게 있느냐 하면 그런 건 없다. 이번에도 이한이 여자친구 민영을 때린 것 같고 진영은 그런 이한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진영이 생각하는 걸로 느꼈다. 누군가한테 맞는 여자와 진영(민영)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었다. 민영은 확실하지 않지만 진영은 사귄 남자 친구한테 맞았다. 그걸 보고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설에서는 이한이 진영이나 여자를 때린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말했다. 그렇게 볼 수 있을지도.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때리는 사람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기도 한다. 예전에 봤을 때도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도 모르겠다. 남자아이가 진영과 우는 민영한테, “야. 너도 세컨드지? (29, 41쪽)” 하는 말이다.

 

 장난이다, 실수였다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은 그렇다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싫다면 그건 폭력 아닐까.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도 장난이다 하는 사람 있다. <호수─다른 사람>에서 민영은 이한이 실수로 자기 팔을 세게 잡았다는 듯 말했다. <괜찮은 사람>에서 남자는 갑자기 불이 나가 실수로 여자를 밀었다고 말한다. 이것도 첫번째 소설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돌아오는 봄에 결혼하기로 한 두 사람은 남자가 샀다는 집을 보러 가는 길이다. 여자는 남자 때문에 다치고 몸이 편하지 않은데도 함께 차를 탔다. 다른 사람은 이한과 이 남자를 괜찮은 사람이다 말한다. 여자와 민영은 어떻게 생각할까. 남이 괜찮다 한다고 자신도 괜찮다 여길까. 작가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기를 바라고 쓴 건지 모르겠지만, 두 소설을 보다보면 이한과 남자가 괜찮은 사람 같지 않다. 어쩌면 그건 그 사람한테 있는 한부분일지도. 그것만 보고 괜찮지 않은 사람이다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 걸까.

 

 사람이 들어가는 소설은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과 <눈사람>이 있다. 두 소설은 조금 다르지만.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은 아이가 들어가기 힘든 니꼴라 유치원에 다니고 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다. 그렇기는 한데 소문 때문에 의심하기도 한다. ‘나’는 자신이 공부를 못해서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가르쳤다. 어쩐지 ‘나’는 자기 아들이 귀한 사람 대접 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니꼴라 유치원을 다닌 아들을 낳고 기른 ‘나’ 자신이 귀한 사람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아이로 자기 꿈을 이루려는 사람도 많겠지. <눈사람>은 지금 어른이 된 기채가 형과 살던 열한살 때 일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여기에 나오는 벌레는 정말 벌레일까. 열한살 아이가 본 환상일까. 은영이라는 여자아이는 기채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형은 어릴 때 엄마 때문에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자랐다. 엄마가 떠나고 둘만 남았을 때는 즐겁게 살고 형은 꿈도 있었다. 하지만 형은 형이 일하던 편의점 사장 때문에 빚을 지고 사람이 바뀌었다. 형도 동생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벌레가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벌레들>이다. 예연과 희진 그리고 수지 세 사람은 균형을 맞추고 살았는데 균형이 깨진다. 셋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다.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 <당신을 닮은 노래>에서 딸은 스물아홉 암환자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은 딸이 자신을 닮았다는 건데, 이 말이 저주처럼 되기도 했다. 딸은 난소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엄마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엄마 때문은 아닐 거다.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지. 그런 유전자가 있다 해도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방>은 지금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재인과 수연은 무언가 터진(핵폭탄 같은 느낌이 든다) 도시에 가서 돈을 벌기로 한다. 다른 곳에서는 함께 살수 없었지만 도시에서는 같은 방에서 살 수 있었다. 도시에서 돈을 벌어 좋은 방을 얻어 살기를 꿈꾼다. 수연 몸이 이상해지고 돌처럼 굳고, 재인은 그런 수연 옆에 머문다. 바깥은 전염병이 퍼지고, 아무도 도시에서 나갈 수 없었다.

 

 여기 실린 소설에서는 희망을 보기 어렵다. 읽는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소설도 있지만 어둠에 빠뜨리는 소설도 있다. 이건 내 느낌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신기한 게 있다.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건 신분이 다른 인도 사람이 나오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마지막 것은 좋아한 사람과 멀어진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외국인 노동자도 잠깐 생각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남자 여자(굴 말리크와 타니 칸)가 나왔지만, 사람은 다 누군가한테 인정받고 싶어한다. 자신을 잃으면 좋아하는 사람도 친구도 멀어지겠지.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건 괜찮지만 그것 때문에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된다. 아쉽게도 사람은 소중한 걸 잃고 나서야 그걸 깨닫는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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