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정은석 옮김 / 더숲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 사람 소로는 지금보다 더 옛날에 숲으로 갔다. 소로는 그때 도시도 복잡하다 느꼈을까. 지금 도시는 그때보다 더 사람이 많고 복잡할 거다. 도시에 사는 사람도 숲에 간다, 빌딩숲. 숲이라는 말이 들어가도 나무와 새 여러 동물이 사는 숲보다 안 좋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걸으면 좋을 거다. 어디를 걸어도 괜찮지만 숲을 걸으면 훨씬 좋다. 이렇게 말해도 난 산(숲)에 거의 가지 않는다. 몇해 전에는 다른 곳에 가는 길에 갔는데. 가끔 나무가 많은 곳에라도 가 볼까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길가에도 나무가 있으니까. 피톤치드가 나오는 숲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몰라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 숲에 가는 건 좋아도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아니 아주 외진 곳이 아니라면 괜찮겠다. 본래 사람은 만나지 않으니 말이다. 우편배달이 잘 되는 곳이라면 좀 낫겠다. 다른 건 못해도 편지를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며칠전에 조용한 섬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섬은 우편배달이 잘되지 않아 안 되겠다 생각했다. 어딘가에 갈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냥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요즘이 아니고 예전이다. 1990년대. 그때와 지금 아주 많이 다를 거다. 베른트 하인리히가 그때 살던 숲은 지금 어떨까. 숲이 아직 있을까. 그때 농장이었던 곳이 숲이 되었다니 지금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도 산이 아닌 평평한 숲이 있을 텐데 그런 곳은 못 가 봤다. 사람이 숲에 가면 사람은 좋아도 거기 사는 동, 식물은 그걸 어떻게 생각할까. 옛날보다 사람이 늘어난 뒤에는 숲이 많이 사라지고 동, 식물이 살 곳도 줄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자기 좋자고 숲에 가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동, 식물은 사람이 있든 없든 알아서 살겠구나. 만약에 사람도 숲에 산다면 그 숲에 사는 동, 식물과 함께 살아야 한다. 서로한테 해를 끼치지 않고. 숲에 가기로 한 사람이 이것저것 많이 가지고 가지 않겠구나. 숲에서 얻을 수 있는 거로 먹고 살겠지. 베른트 하인리히도 많은 것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갈 때는 큰까마귀 새끼와 함께 갔다. 큰까마귀 이름은 잭이었는데, 잭은 나중에 떠난다. 잭이 떠나서 아쉽기도 했다. 숲에 가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큰까마귀가 나오는 동화 본 것 같은데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숲에 가서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행동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많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긴 게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대학에서 스물다섯해 넘게 학생을 가르쳤다. 어느 날 베른트 하인리히는 모든 걸 두고 메인 주 메인 숲으로 간다. 혼자여서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식구가 아주 없지 않았다. 딸과 아들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고 한식구가 다 숲에 간 적 있을까. 아무리 오래전에 인류가 자연에서 살았다 해도 지금 사람은 그때처럼 살 수 없다. 동물이나 나쁜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먹을거리도 있어야 한다. 베른트 하인리히가 자급자족한 건 아니다. 오두막이 있는 숲에서 차를 타고 나가면 사람이 사는 곳이 나왔다. 메인 주는 베른트 하인리히가 미국에 오고 살기도 했다. 어릴 때 숲에 산 적이 있어서 다시 숲에 가고 싶었던 거겠지. 이 책을 보고 베른트 하인리히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 복잡한 도시를 떠나 나무가 많은 숲으로 갔으니 말이다.

 

 숲에는 동물과 식물이 많았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흑파리와 흰발생쥐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다. 흰발생쥐, 이름은 예쁜데. 겨울에 폭풍우가 몰려오고 베른트 하인리히는 오두막에만 있어야 했는데 그걸 기대했다. 폭풍우가 왔을 때 베른트 하인리히는 오두막 안에만 있지 않고 잠깐 바깥에도 나갔다. 눈이 많이 쌓인 숲에 홀로 있는 기분은 어떨까. 바깥이 추울 때는 따듯한 집 안에서 이불을 덮고 책을 보면 참 좋겠다. 베른트 하인리히가 숲에 간 건 여름이다. 여름에서 가을 겨울을 나고 봄을 맞았다. 가을에는 단풍이 무척 예뻤다. 단풍잎이 깔린 길을 걷는 기분도 무척 좋겠다. 봄이 오자 새들이 돌아왔다. 그런 모습 바라보는 것도 놀라웠겠다.

 

 멀리서 보면 조용할 것 같은 숲이지만 거기에는 많은 목숨이 산다. 그들 질서에 따라. 사람이 멋대로 그것을 깨뜨리면 안 되겠지. 숲에 가도 이것저것에 손대지 않고 조용히 쉬었다 오면 괜찮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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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츠리게 하는 눈보라

몸을 펴게 하는 꽃보라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 눈보라

다른 세상 같아 오래 머물고 싶게 하는 꽃보라

 

앞이 보이지 않게 하는 눈보라

앞을 보지 못해도 괜찮은 꽃보라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

어지럽게 흩날리는 꽃잎

눈보라

꽃보라

 

눈천지

꽃천지

눈천지

꽃천지

 

다르지만 닮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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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 여러 번 이어지면 조금 이상하겠다. 그게 정말 우연인지 우연처럼 꾸민 건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다. 그런 거 소설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현실에도 있을까. 아주 없지 않을지도. 아니 첫만남은 우연일 거다. 그 우연을 잡고 운명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스쳐지나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인연도 우연에서 생기는 거다. 그걸 오래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운명이라 하는데 친구는 운명이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 좀 무거울지도. 친구도 가벼운 사이는 아니다. 이건 처음부터 아는 건 아니겠다. 어릴 때는 누구하고나 쉽게 친구가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자라면서 친구가 가벼운 사이가 아니다고 깨닫는 걸지도.

 

 친구가 그렇게 가볍지 않은 사이라 해도 친구는 다른 사이보다 더 쉽게 멀어지기도 한다. 한때 아주 친하게 지냈다 해도. 친구는 식구나 좋아하는 사람과는 다른 관계일 수밖에 없다. 아는 사이도 아닌 사이보다는 덜 하겠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생각하는 건 식구, 친척, 좋아하는 사람 그다음이 친구가 아닐까 싶다.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조금 쓸데없는 생각이구나. 앞에서 말한 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그저 식구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친구는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겠다. 어떤 사이든 소중하게 여기고 이어가야겠지.

 

 이제 만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친구를 가끔 생각하듯 친구도 자신을 생각할 거다. 어딘가에 자신을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하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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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민들레는 많이 봤지만, 하얀 민들레는 말로만 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겨우 하나 봤다

우연히...

고양이는 어쩐지 나를 노려 보는 듯하다

벚꽃이 피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올해는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말을 들어서

벚꽃은 별로 못 봤다

며칠 전에 하늘을 보니 작은 구름이 있었다

저렇게 작은 구름도 있나 보다 하고는 걷다가 아까 본 구름 혹시 달이 아닐까 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달이 맞았다

달을 담은 첫번째 사진에서 오른쪽에 하얀 줄 같은 게 보이는데 그건 비행기다

무슨 비행긴지 잘 모르지만...

가끔 하늘을 보면 작은 비행기 같은 게 날면서 비행기 구름을 만들기도 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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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쿠라 일기」전 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3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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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에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내가 만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 실린 단편은 거의 마쓰모토 세이초가 작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쓴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난 소설과 조금 달라 보이는 건 아닐까 싶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 를 쓴 사람으로 잘 알려졌다. 그게 커서 그렇게 알려졌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작가가 되고 늘 공부하면서 글을 썼다. 픽션, 논픽션, 평전, 고대사, 현대사로 자신의 세계를 넓혔다. 여러 나라 말과 여러 학문을 한 움베르토 에코도 있구나. 그런 사람 더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이 얼마 없다. 보르헤스도 여러 나라 말을 알던가. 다치바나 다카시도 생각난다. 혼자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 대단하다. 난 하나 하기도 힘든데. 잘 하는 사람과 견주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거겠지. 평범한 사람도 한가지를 오래 하면 괜찮을 거다. 여기에 실린 소설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열심히 하지만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소설가는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쓰기도 할 거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쓴 게 아닐까. 아니 마쓰모토 세이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 이야기를 썼다. <어느 “고쿠라 일기” 전> <국화 베개> <깨진 비석> <돌 뼈>에 나오는 사람은 실제 있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깨진 비석>과 <돌 뼈>에 나오는 사람은 어쩐지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고고학을 하는 걸 보면. <피리 단지>에 나오는 사람도 비슷하다. <피리 단지>에서 향토사 연구를 하는 사람은 모델이 없었을까. 여러 사람을 알게 되고 이런 사람이 있어도 괜찮겠다 여긴 걸지도. 세상이 덧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자신은 평생을 바쳐 무언가를 연구해야겠다 한다. 그것을 찾고 스무해쯤 걸려 해내지만 그 뒤에 다시 부질없음을 느낀다. 그건 자기 힘보다 다른 사람 힘으로 인정받아서는 아닐까.

 

 이야기 시대는 예전이지만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다. 학연 지연 이런 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국화 베개>에서 하이쿠를 쓰는 누이는 자기 남편이 가난한 시골 학교 교사여서 하이쿠를 쓰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업신여긴다 생각한다. <깨진 비석>이나 <돌 뼈>에서는 학력이 낮아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은 고집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건 좀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 남한테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걸 즐겁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사람은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느 “고쿠라 일기” 전>에 나오는 사람은 몸이 좋지 않았다. 몸이 건강했다면 좀더 나았을 텐데. 건강했다면 모리 오가이가 고쿠라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보지 않았겠다. 어떤 때는 자기 몸이나 둘레 환경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내기도 한다.

 

 첫번째 소설 <아버지를 닮은 손가락>에서는 아버지의 출생의 비밀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건 뭘까, 내가 놓친 걸까. 아버지를 닮아 좋은 것이 있기도 하겠지만 여기에서는 그 반대다.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 손이 닮은 걸 싫어했다. <불의 기억>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없었던 사람이 어머니가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는 이야기다. 아니 그 사람은 자세한 건 몰랐던가. <빨간 제비>는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때가 배경이다. 그때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쓴 적도 있다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여자가 위안부가 될 빨간 제비를 뽑은 것만으로도 다르게 생각하다니.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약점>에서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 애인과 함께 간 온천 여관에서 옷을 도둑맞고 자신이 도와준 적 있는 시의원한테 도움을 받고 약점을 잡히는 이야기다. 약점 잡힐 만한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나을 텐데. 왜 결혼하고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까. <상실>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야 일본은 사촌이 결혼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코네 동반자살>은 따로따로 결혼한 사촌인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코네에 갔다 사고가 나고 선을 넘었다. 그 뒤에 두 사람은 함께 죽기로 했나보다.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고 그런 분위기가 감돈다. <청색 단층>에서는 세상에 잘 알려진 화가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하다, 그림 공부를 한 적 없는 사람이 자유롭게 그린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는 이야기다. 화가는 다른 사람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었지만,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림을 그만둔다. 누군가한테 그림을 배우지 않아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배우고는 자유로움이 사라졌다. 그걸 화상 주인이 가르쳐줬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림은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화상 주인은 그 사람 그림이 이름이 잘 알려진 화가한테는 어떤 자극을 줄지라도 그 이상은 아니다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고향에 가서 잘 살았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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