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 소년 - 네가 어디에 있든 아빠는 너와 가장 가까이 있을게 푸르메 책꽂이 7
이언 브라운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동화일 것 같은 제목인데 동화는 아니다. 여기에는 현실이 그것도 아픈 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늘 아프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보는 나는 쭉 슬픔을 느꼈다. 내가 슬퍼한다고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겠구나. 워커 아버지인 이언 브라운보다 내가 더 객관성을 잃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이런 일 나와는 거의 상관없기는 하다. 그래도 느낄 수는 있다. 진짜 부모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슬펐나 보다. 앞에서 나와 상관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도움을 준다거나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축복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한테 장애가 있다면 어떨까. 내가 왜 이런 아이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너무 차가운 마음인가. 장애아를 낳고 이런 생각을 한번도 안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부모가 더 많을 것이다. 워커를 낳은 부모 이언 브라운과 요한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이언보다는 요한나가 더 그랬다(본래 엄마가 더 그런 마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워커는 세상에 나온 지 일곱 달째에야 CFC 진단을 받았다. CFC는 희귀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심장-얼굴-피부증후군(cardiofaciocu-taneous syndrome, CFC)이다. 워커는 발달장애인데다 말도 못한다. CFC 환자는 세계에 그리 많지 않았다.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힘들지 않았을까. 이언과 요한나는 일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워커를 돌봤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워커를 돌봐서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워커는 말을 못해서 이언과 요한나는 워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워커는 자기 몸을 때렸다. 그런 것을 막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아프다가 나으면 좋지만, 워커는 낫지 않는다. 언제나 그대로다. 짐처럼 여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부모이기에 자식을 사랑하겠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이 힘들어 보여서 편하게 해주려고 죽이기도 했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언과 요한나는 워커를 다른 곳에 보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워커를 받아줄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곱 해가 걸렸다. 두 사람은 아이를 자신들이 키우지 못하고 다른 곳에 보내야 한다는 데 마음아파하기도 했다. 워커가 떠나고 난 빈 자리가 쓸쓸하지 않았을까. 그 부분을 보는 나도 쓸쓸했는데. 워커를 다른 곳(그룹홈)에 보내기로 한 일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부모가 끝까지 돌봐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모도 사람이기에 지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도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거리두기가 아닌가 싶다.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볼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실제 워커가 그룹홈에서 지내게 되면서 조금 달라지기도 했다. 가끔 집으로 돌아왔다. 그룹홈에서 워커를 돌보는 사람은 워커를 자기 아이처럼 여겼다. 그래도 조금 거리를 두었다. 진짜 부모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언은 다른 CFC 환자들을 찾아다녔다. 어떤 아이는 워커보다 나았다. 말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이언은 워커가 자기 마음을 알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혀를 차는 게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모두 믿지는 않았다. 말을 못한다고 해도 워커는 다른 사람 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언은 다른 사람처럼 워커를 천사라고 하지는 않았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아이가 천사라고. 그리고 그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살아왔다고도 했다. 이언은 워커 같은 사람한테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고 싶어했다. 이 세상에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정말 그럴까. 이 말은 장애와 상관없이 한 것이다. 워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하면 정상이 될까, 저것을 하면 정상이 될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부모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래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장애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지역사회가 장애아를 둔 부모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도 자신들만으로 할 수 없을 때는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친척이 쉽게 도와주지는 않겠지만, 일로 하는 사람은 도와줄 것이다. 그게 순수한 도움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도와달라고 못할 거다. 나는 하지도 못할 것을 말하다니.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리거나 죽이는 부모도 있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지적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갑자기 이언이 워커를 보며 생각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목숨은 소중하다고. 집안에 장애인이 있어서 잃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이언이 생각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중에 봤을 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게 뚜렷하게 썼다면 좋았을 텐데. 이언은 워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워커가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누군가한테 전할 수 없다 해도 말이다.

 

 

 

희선

 

 

 

 

☆―

 

나 자신의 목표는 소박하다. 때로 워커의 세상으로 발을 디뎌 보는 것. 지적장애인을 알기 위해 거기 가 보는 것(그들이 내 영역 속에서 사는 것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인 장애인들에 대한 내 두려움을 마주보는 것. 그들을 고치려거나 구제하려 들지 않고 내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그저 그들과 더 붙어 있는 것.  (371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3-10-0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는 정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에 공감합니다.

희선 2013-10-04 01:3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사회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희선

2013-10-03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4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 - 고대 희귀 필사본에서 근대 식물도감까지 식물 인문학의 모든 것
애너 파보르드 지음, 구계원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식물의 명명체계, 곧 분류학이 태어나게 된 역사를 다룬 책이다.  (701쪽)

 

 

사람은 생각하고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아주 옛날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는 것이라기보다 알려진 게 없었다고 해야겠다. 지금 우리는 아주 편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옛날 사람들이 탐구한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던 옛날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는 플라톤이 만든 아카데메이아가 있었다. 공부를 하는 곳이겠지. 내가 이런 말을 꺼내게 되다니. 지금까지 철학과 관계있는 책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말할 기회가 없었다. 식물 탐구인데 왜 철학이 나올까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식물을 연구하는 것은 과학에 들어갈까. 하지만 기원전 아테네에서는 식물 탐구를 철학에서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연구를 했고,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 연구를 했다. 이 책 속에는 이런 말이 많다. ‘가장 처음’이라는 말. 테오프라스토스는 가장 처음 자연계의 질서를 찾으려 애쓴 사람이다. 자연계에 어떤 형태의 질서가 있다고 여기고 식물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여기에는 철학자가 사물을 ‘그 본질’에 따라 나눔으로 자연계의 ‘완벽한 형태’에 대한 생각에 이를 수 있다는 플라톤의 사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조금 적어둔 것을 그대로 썼는데 제대로 알고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을 나누고 구별하려고 했다. 식물에도 마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람과 똑같지는 않다 해도 식물에도 감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식물한테 음악을 들려주거나 하면 잘 자란다. 좋은 말을 들려주는 식물과 나쁜 말을 들려주는 식물에 대한 것을 연구한 사람도 있지 않던가. 여기에는 아직 이런 이야기는 없다.

 

책 앞부분은 재미있다. 내가 이런 것도 재미있어한다는 것을 알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오는 사람이 늘어나자 집중력이 떨어졌다. 테오프라스토스가 식물 탐구를 하면서 《식물 연구》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테오프라스토스한테 도서관을 물려주었다. 하지만 테오프라스토스가 죽은 뒤 그 책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아테네에서 유럽 전역, 아랍 지역 그리고 신대륙에 이르기까지 간다. 처음에는 이런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다른 곳이네 하는 생각은 했는데. 식물 탐구를 하는 사람을 한 나라 한 지역에 한정하지 않았다. 동양이 없는 게 아쉽구나. 동양에서 새로운 식물이 많이 들어왔다는 말만 있다. 그리고 어쩐지 동양에서는 약초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려고 했을 것 같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약초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철학자였지만, 뒤에는 거의 의사가 식물을 알려고 했다. 앞에서 책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쪽으로 빠졌다. 옛날에는 책을 많이 없앴다. 한 나라에 쳐들어가면 가장 먼저 도서관에 있는 책을 태웠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테오프라스토스가 남긴 책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아주 사라지지 않기도 했다. 다른 나라 말로 옮긴 것이 있었다. 책이 많이 없어져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없으면 다시 만들려고 하니까.

 

나는 거의 처음 들어보는 이름 플리니우스는 이런저런 것을 보고 정리를 했다. 그런데 인쇄기가 발명되고 플리니우스 책은 널리 퍼졌다. 플리니우스는 식물을 실제로 보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이 플리니우스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식물을 본 사람도 있었다. 옛날에는 식물 이름이 제대로 없었다. 부분에 대한 이름도. 그것을 글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한 식물을 정해서 그것과 견주어서 썼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서는 그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은 사진기도 있으니 사람이 그리지 않아도 쉽게 보여줄 수 있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림을 자세하게 그리지 않았다. 추상으로 그리기도 했다(이것은 어떤 종교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정보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실제와 똑같이 그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화가가 그린 그림에 글을 쓰기도 했다. 그 그림이 중요하기는 했다. 글과 그림을 모두 한 사람이 했다면 훨씬 정확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내가 이름까지 외워서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름은 외우지 못했다. 이런 책은 한번이 아니고 여러번 보면 더 좋을 것 같기는 하다. 이 책 속에는 그림도 있다. 옛날에 식물을 어떻게 나타냈는지 조금 엿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도 있었다. 사람들이 식물을 두려워했다는. 어떤 식물을 얻으려면 의식을 해야 했다. 그것도 재미있게 보였다. 의식을 하게 한 것은 함부로 한 식물을 다 캐가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은 죽기 얼마 전까지 식물 그림을 모으고 식물에 대해 글을 썼는데 끝내 책은 내지 못했다. 시대와 운이 좋았던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옛 사람들이 오랫동안 식물을 탐구해서, 그것을 구별하고 나누고 또한 이름을 지었기에 지금 우리는 혼란스럽지 않다(앞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구나).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이 말을 하니 무엇이든 끈기를 갖고 해야 한다는 게 생각난다. 옛날에는 이름 모르는 꽃이나 나무라 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 그런데 내가 아는 식물 이름은 얼마나 될까. 내 둘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밖에는 없다. 좀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을 새로 알아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게을러서 알아보지 않는다. 옛날 사람보다 지금 사람이 더 탐구 정신이 없다(나만 그런 것일지도). 지구에 사는 것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있다. 사람은 이런 동 · 식물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뿐 아니라 동 · 식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테오프라스토스 이름 외우기 힘들다, 그리고 빨리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희선

 

 

 

 

☆―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에서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도 형이상학이나 천문학에 대한 지식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학생들한테 가장 처음 이해시킨 스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제자 가운데 테오프라스토스는 스승의 뜻을 가장 분명하게 이해했다.  (9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3-09-27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책을 사려고 두 달을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두 달 동안 돈을 모아서.. 이 책이랑 양자역학의 법칙, 이라는 책을 구입했었습니다. 마치 그 두 권이 크리스마스선물이라도 되는 양......

희선 2013-09-28 01:11   좋아요 0 | URL
두 달 기다렸다 사서 더 기뻤을 것 같군요 그때가 마침 크리스마스였다니 그것도 좋았겠습니다 자기가 주는 선물이라 할지라도... 이 책과 양자역학의 법칙에는 그런 추억이 있군요

저한테는 이런 게 되겠네요 '이 책 가연 님 때문에 알아서 본 거구나' 하는...^^

잘 못 써서 아쉽지만...


희선
 
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나라에든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 이름 노르웨이는 알았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요 네스뵈 소설은 두번째다. 처음으로 봤던 《스노우맨》하고는 조금 다른 듯도 하다. 해리 홀레가 나오는 것은 같지만. ‘스노우맨’에 나오는 해리 홀레보다 여기에 나온 해리 홀레가 조금 어리다. 덜 망가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비슷한 면도 있었다. 같은 사람이니 당연한 것인가.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앞에서 무엇인가를 말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스노우맨’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한 말인데 그게 중요한 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 계산을 잘해서 썼겠다’는. 아니, 꼭 그런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쓰다가 본래 생각과는 다르게 흐른 것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게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스노우맨’에서 헤어진 아내였던 사람은 여기 ‘레드브레스트’에서 만났다. 사람은 다르지만 비슷한 말을 얼마 전에도 쓴 것 같다.

 

제2차 세계전쟁은 온 세계 사람을 힘들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세계’라는 말이 있는데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올해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책도 봐서 조금 알게 되었다. 역사책은 아닐지라도 역사를 조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도 좋지 않을까. 관심을 더 가지고 역사책까지 보면 더 좋겠지만. 제2차 세계전쟁일 때 노르웨이 사람들은 소련보다는 독일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군에 자원 입대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 나라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그 사람들은 안 좋은 말을 듣고 벌까지 받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힘들 때 왕은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고. 전쟁이 일어나면 왕한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왕이 살아 있으면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으니 살아야 한다고.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다. 나라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왕한테 왕의 자격이 있을까. 왕이 다시 돌아와서는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을 모르는 척했다. 배신감이 들 법도하다. 안 좋은 것은 숨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도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와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아주 조금은 억지로가 아니고 스스로 전쟁에 나간 사람이 있을지도. 전쟁에 끌려간 사람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위안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기를 만드는 데 끌려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 끌려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전쟁이 끝나고 위안부로 끌려갔다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은 안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에 끌려간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던가.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잊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그때 살지 않았다 해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더 형편이 안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의 찌꺼기를 다 해결도 못했는데 또 전쟁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우습게도 그 전쟁은 일본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다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좋아하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자기 나라만 잘되기를 바라면 안 된다. 조금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이 책은 요 네스뵈 아버지 이야기이기도 하단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요 네스뵈는 했다. 아마 있었던 일을 덮어버릴 수 없고 잘못한 일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앞부분에서 해리 홀레는 잘못을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일을 다른 사람한테는 숨겼다. 해리 홀레는 그게 양심에 찔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앞으로 더 나빠지는 것인지도. 조직과 개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개인이 조직에 따르는 것 말이다. 아니, 해리 홀레는 덮어놓고 따르지는 않았던가. 아직은 조직에 거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였을까. 세상에는 모두 드러나는 일도 있지만,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일도 있다. 그게 어떤 일이냐에 따라서겠고, 검정과 하양으로 나눌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많은 거겠지. 정의는 사람 수에 따라 있다는 말도 있던데.

 

책 속에서는 시원한 결말이 나지 않았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마지막에 범인을 잡기는 했다).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노르웨이 사람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2차 세계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는 없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그때 일을 재료로 글을 쓰는 것은 그 일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없어질까.

 

 

 

희선

 

 

 

 

☆―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오. 옳고 그름의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오.”  (276쪽)

 

 

“이제와서 그 옛일을 들춰봐야 얻을 게 뭐가 있나? 피살자 친족들의 옛 상처를 쑤시는 것밖에 안 돼. 누군가 그 일을 캐고 다니다가 사건 모두를 알아낼 위험도 있고. 그 사건은 끝났네.”  (678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3-09-2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좋은 리뷰입니다.

희선 2013-09-25 00:40   좋아요 0 | URL
나중에 어떤 말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늘 그래요 본래 쓰려고 한 것을 쓰지 못할 때가 많다니까요 다른 곳으로 흘러가서... 그러고 보니 이것은 이것만 그런 게 아니군요 얼마 전에도 생각한 것을 반도 못 썼습니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손으로 쓰는 것은 다릅니다 손이 멋대로 쓰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것보다는 그때그때 생각이 바뀌는 것인지도... 생각이 달라진다기보다 다른 것이 떠오르는 거예요 가끔은 억지로 떠올리기도... 또 어떤 것은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쓸데없는 말을...^^


희선

2013-09-26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27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길을 걷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일본 소설이나 만화에서 동료애를 많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동료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일본에는 개인주의가 더 많지 않을까. 소설, 만화에 실제 있는 일을 쓰기도 하지만 바라는 일을 쓰기도 할 테니까. 일본 사람이 어떤지 잘 모르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경찰은 동료애가 있을까. 경찰이라고 해서 모두가 죄를 지은 사람을 잡는 일만 하지는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점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경찰 하면 나쁜 사람을 잡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책 《64》에는 형사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D현 경찰본부 경무부 비서과 조사관 ‘홍보담당관’으로 일하게 된 미카미 요시노부가 나온다. 미카미가 형사부에서 경무부로 옮긴 지 몇 달 지났다. 미카미는 한두 해가 지나면 다시 형사부에 돌아가겠지 했다. 중앙에서 일하던 사람이 지방에 가서 일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자신은 이곳에 오래 있지 않을 거다, 곧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거다. 그런데 그곳 사람과 일을 하면서 그곳을 좋아하게 되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거다. 미카미도 그랬다.

 

경찰 홍보담당관이 된 미카미는 본래 홍보실을 바꾸려 했다. 짧은 시간 있는다 해도 경찰 조직에 도움을 주려 했다. 경찰 조직은 바깥과 끊어져 있어서 홍보실을 바깥과 연결하는 창문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몇달 전에 미카미 딸 아유미가 집을 나갔다. 그 일 때문에 미카미는 조직에 복종하기로 한다. 딸을 찾는 데 전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미카미 딸 아유미에 대한 것을 보니, 얼마 전에 본 《신월담》(누쿠이 도쿠로)이 생각났다. 아버지를 닮은 딸, 아주 예쁜 어머니. 이것은 똑같았다.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어머니는 예뻐서 싫어한 것도. 그래도 고토 가즈코(사쿠라 레이카)가 조금 나았다. 학교는 끝까지 다니고 집을 나가지도 않았으니까. 딸을 가진 아버지와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의 나쁜 면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미카미는 가끔 다른 사람이 자기 얼굴을 보고 웃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것은 이 소설에서 작은 이야기이지만 《신월담》이 떠올라서 작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안에 이적저것 많이도 담겨있구나 했다. 아유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것으로 미카미와 아내 미나코는 마음을 조금 놓은 듯하다. 이것은 거의 끝에서.

 

14년 전, 쇼와 64년(1989년) 1월 5일에 일어난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은 D현경 관내에서 처음 일어난 강력 범죄사건이다. 범인은 잡지 못했다. 도쿄에서 경찰청장이 D현경에 시찰을 오는데 64의 유족을 만나겠다고 했다. 미카미는 쇼코의 아버지인 아미미야 요시오한테 허락을 받아야 했다. 64의 시효는 앞으로 한해 남짓 남았다(지금은 사람을 죽인 일에 시효가 없어졌다). 미카미도 64와 조금 관계가 있었다. 64를 핑계로 청장 아니 도쿄에서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다. 미카미는 그 일이 무엇인지 밝혀내려 한다. 그리고 64를 맡았던 형사들과 아마미야 사이에 있었던 일도. 그런데 형사부 사람이 미카미나 경무부 사람들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미카미를 형사부뿐 아니라 경무부에서도 안 좋게 생각했다. 같은 경찰인데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편을 가르다니. 형사부는 자신들이 더 잘났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 생각을 미카미도 했다. 하지만 홍보담당관이 되고는 달라졌다. 안이 아닌 바깥에 있어서 볼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소설은 D현경 안에서 다른 부서의 힘싸움, 그리고 도쿄와 D현경의 힘싸움을 보여준다. 중앙이 지방을 자기 손 안에 넣고 마음대로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사람은 경찰들이 하는 힘싸움을 봐도 별로 재미없다. 하지만 경찰 조직을 다른 조직으로 생각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경찰은 캐리어와 캐리어가 아닌 사람으로 나뉘기도 한다(이것은 우리나라와는 다를 것이다). 도쿄에 캐리어가 더 많을까.

 

경찰들끼리 하는 힘싸움도 있지만, 경찰과 기자(언론)의 일도 볼 수 있다. 홍보실과 기자인가. 경찰과 언론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기도 했다. 홍보실에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기자들한테 알려주었다.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기자들은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내도 되는 것인가. 그러면서 경찰 쪽이 바라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카미는 아유미 때문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꿨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미카미는 형사부도 경무부도 아닌 홍보담당관이 맡은 일을 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기다.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조직이 개인보다 아주 크다 해도 결국 조직을 만드는 것은 개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개인이 조직에 싸움을 거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것이 나오는 것인가 했는데. 아니, 크지는 않더라도 이것도 싸움인가. 누구나 다 미카미처럼 용기를 낼 수는 없겠지. 미카미는 자기 조직이 실수를 숨기고 그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한 사람을 잘라낸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리고 혼자 책임을 모두 짊어진 듯한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이 소설이 아니 작가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말은 꽤 뒤에 나온다. 어떤 사건에는 피해자가 있다. 기자들은 경찰한테 어떤 교통사고를 일으킨 주부의 진짜 이름을 밝히라고 했다. 경찰은 주부가 배 속에 아이를 갖고 있어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진짜 까닭은 주부가 경찰과 관계있는 사람 딸이어서였다. 미카미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주부 이름을 기자들한테 말해준 다음에는 피해자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피해자 식구 아마미야가 있다. 경찰은 온 힘을 다해 사건을 해결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딸을 잃은 아마미야 마음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아마미야의 시간은 14년 전에 멈추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썼지만 나도 아마미야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쨌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한테 더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언론은 재미가 아닌 진심으로 피해자 식구가 느끼는 아픔을 알고서 사람들한테 전달해야 한다. 사실 64를 따라한 유괴사건이 일어났을 때 잠깐 어떤 생각을 했는데 그게 맞았다(이런 것을 말하다니). 나는 그저 짐작한 것이지만,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미카미의 생각을 보여준다. 작가가 독자한테 ‘한번 추리해봐’ 한 것인지도.

 

개인은 중요하다. 개인이 없으면 조직도 나라도 없다.

 

 

 

희선

 

 

 

 

☆―

 

“윗사람이 누구든 형사는 자기 일을 하지. 아닌가?”

 

“엄한 아버지든, 형편없는 사람이든 아버지는 아버지야. 피 한 방울 안 섞인데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캐리어와는 견줄 수 없지.”  (424쪽)

 

 

“조직이란 개인이 모인 곳이야. 개인의 생각이 조직의 생각이 될 수도 있지 않나?”  (444쪽)

 

 

익명 발표의 어두운 한 면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익명이라는 천이 뒤덮은 것은 기쿠니시 하나코의 이름이 아니라 메이카와 료지라는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였다.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해도, 평생 단 한번 신문에 이름이 실릴 기회를, 그 기사를 본 누군가 그의 죽음을 애도할 기회를, 익명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빼앗긴 것이다.  (461~46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09-17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8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남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는 줄 알지만 실은 무엇 하나 모르는 건 아닐까. 당신 이웃이 니토와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정체를 알아 낼 방법은 없다. 알았을 때는 벌써 일이 터져 버린 뒤다.  (12쪽)

 

 

얼마 전에 일본드라마 <히토리 시즈카>를 보았다. 얼마 뒤에는 혼다 테쓰야의 책 《히토리 시즈카》가 우리나라에 나왔다. 책보다 드라마를 먼저 봤다(책은 아직도 못 읽었다). 이 드라마 조금 어둡다. 드라마 본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많이 잊어버렸다. 시즈카가 처음 나왔을 때 고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중3 아니면 고1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첫화에서 시즈카는 총에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손가락으로 총알을 더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사람은 그냥 놔두어도 죽었을지 모르지만, 시즈카가 죽음을 앞당겼다. 왜 시즈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람을 죽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게 하기도 했다. 거의 끝날 때쯤 시즈카의 어린시절이 나왔다. 시즈카는 어렸을 때 엄마가 사귀는 남자한테 학대를 당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어린시절에 학대당한 일 때문에 시즈카는 자라서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고. 시즈카가 죽게 한 사람은 거의 나쁜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드라마에서 시즈카는 차에 치이려는 아이를 구하고 죽는다. 그 아이는 시즈카가 돌봐주었던 여자아이의 아이였다. 아마 시즈카는 그 여자아이가 자기 동생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추리 · 범죄소설에 나오는 범인은 거의 어릴 때 무슨 일을 겪은 사람일 때가 많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보면서 범인은 왜 사람을 죽이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늘 사람을 죽이게 된 까닭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 동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책 《미소 짓는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 엘리트 은행원인 니토 도시미는 집에 책 놓을 곳이 없어서 자기 아내와 딸을 죽였다. 사람들은 동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보니 집에 방은 세 개로 하나는 부부가 잠자는 곳(아이도 같은 방을 쓴 것 같다), 하나는 니토의 서재, 나머지 하나는 아내 쇼코의 방이었다. 나는 집 안에 책이 꽉 차 있는 것인가 했다. 그저 서재에만 차 있었던 거였다. 니토는 아내와 딸이 없으면 다른 방에 책을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인가보다. 이럴 때 보통 사람은 아내와 이야기를 해볼 텐데, 아니면 다른 곳을 마련하든지 책을 줄이든지 할 텐데. 니토는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을 떠올리고 실제로 했다. 이런 말하면 내 정신을 의심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니토가 책 놓을 곳이 없어서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말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니토한테 아내와 딸은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 같은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치워야 하는데 헤어지는 것은 귀찮고, 차라리 죽이는 게 낫겠다 생각한 것은 아닐까. 사람을 죽이는 게 더 힘든 일인지도.

 

소설가는 니토 도시미한테 관심을 가지고 니토 도시미에 대해 알아본다. 소설가는 니토가 어렸을 때 겪은 일 때문에 아내와 딸을 죽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회사 사람들은 니토가 사람을 죽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전에 사라진 은행원 뼈가 타나났다. 그 사람은 니토와 같은 곳에서 일했고 니토보다 먼저 승진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니토가 대학생일 때는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 그 친구한테는 그때 널리 퍼져있던 게임기가 있었다. 니토가 어렸을 때 살던 이웃집에는 개가 있었는데 니토는 개를 싫어했다. 개가 니토를 싫어한 것은 아닐까. 예전에 읽은 《악의 교전》(기시 유스케)에 나온 하스미 세이지도 개가 아주 싫어했다. 하스미는 사람 감정을 모르고 사람을 많이 죽였다. 어쩌면 개는 위험한 냄새를 잘 맡는지도 모르겠다. 니토가 살던 이웃집 남자가 사고로 죽자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 정말 니토 때문일까.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니토는 어린시절에 큰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소설가는 한번 그럴듯한 이야기를 듣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읽는 우리도 소설가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했던가. 이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 마음도 잘 모르면서 범인 마음을 모르면 불안해하나. 이런 말이 있어서. 사실 나는 별로 생각 안 해 본 것 같다. 아마 사건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나는 소설에서만 그런 것을 보니까. 아주 많이 본 것도 아니구나. 보통 사람도 어느 한순간 잘못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게 생각난다. 《이방인》(알베르 카뮈).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했던가. 책 읽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비슷하다고 할 수 없겠구나. 니토 도시미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사람의 진짜 마음속은 알 수 없다. 니토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 같다. 그저 누가 없으면 좀 나을 텐데 하고 생각한 듯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인가. 목숨의 무게를 모르는 것인가. 그리고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다고 해서 불안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많으니까. 꼭 까닭과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니토 도시미가 더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앞에서 한 말을 뒤집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봤다고 해서 둘레에 있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려나.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 고.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든다. 니토도 ‘악의 교전’의 하스미처럼 사람 감정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시오패스인가. 언제가 소시오패스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마음놓고 싶어하는 것인가. 자꾸 니토는 그럴 거야, 하고 생각하다니.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희선

 

 

 

 

☆―

 

“우선 감정 기복이 적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통상의 뜻의 희로애락이 니토 씨 마음에는 생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죠. 그래서 마치 벽을 보고 떠드는 듯한 허무함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75쪽)

 

 

“(……)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까닭으로 남을 죽이는 인간에게 한 해를 기다리는 것보다 살인이 손쉬운 방법이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니토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다 보니 이해가 갔는데, 세상에는 살인이라는 금기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빠져 있는 인간도 있다. 그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사태를 해결하는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죄악감이라는 억제 장치가 없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쉽게 결단을 내리는 법이다.”          (154쪽)

 

 

“책을 둘 곳을 마련하려고 그랬다니까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드렸잖습니까. 믿든 안 믿든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 기분을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자신의 문제라고요.”  (169쪽)

 

 

“이해가 가지 않으면 불안하죠. 책을 둘 공간이 필요해서 아내와 딸을 죽였다던가, 한 해 뒤 승진을 기다리지 못해 사람을 죽였다는 건 도대체 영문을 모를 이야기예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 해도 이해하기 쉬운 트라우마가 있으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선생님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아아, 그랬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책을 덮지 않을까요?”  (325쪽)

 

 

“마지막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이 나는 건 픽션뿐이에요.” 가스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 마음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살인귀는 물론 가까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실은 모른다고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남편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부모는요? 자식은요? 애인이나 친구의 생각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초능력자죠.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왜 살인범의 심리만은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걸까요?”  (326쪽)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니토뿐만이 아니라고 쇼코는 지적했다. 우리는 남을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있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그 눈속임을 해아래 드러내는 니토한테 우리는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 모두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고 싶기 때문이었다.  (3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