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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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수학 잘 모른다. 수학은 어떤 식으로 나뉘는지 잘 모르지만 과학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는 거 안다.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알기 위한 것일까, 우주도 알려고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리 법칙으로 알 수 있을까. 날씨가 어떨지는 조금 알지만 지진이 일어나는 건 잘 모르는 듯하다. 지진이 일어날 때 감지는 해도 그걸 막지는 못한다. 자연재해는 다 그렇구나. 무엇인가 일어난다는 걸 알면 피할 수도 있을 텐데 아직은 어렵겠지. 언젠가는 그것도 알 수 있을까. 물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경험으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조금 알기도 한다. 그것은 경험이 쌓여서 아는 거겠지. 그런 것을 아주 많이 모아두면 그 안에서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 그건 사람보다는 기계가 더 잘할 것 같다. 그걸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엄청 대단하다 느끼겠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도 알 수 있다고 하니. 언젠가 그런 거 본 적 있다. 그건 운동 신경이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상대가 그 사람을 공격할 때 그게 어디에서 올지 알고 피했다. 그런 모습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았구나. 관찰을 잘하면 보통 사람도 그건 알지도 모르겠다. 남이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고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별로다.

 

사람 마음을 알려고 하는 건 심리학일까, 거기에서 정신분석도 들어가겠지. 여기에 하나 더 들어가겠다. 바로 뇌과학이다. 예전에는 심리학이 과학과 관계있다는 생각 못했다. 마음은 과학으로 알기 어렵다 생각했으니까. 마음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싶다. 뇌와 상관있겠지. 사람 자체가 아주 정밀한 기계라는 말도 있다. 그런 말이 있는 것이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계산에서 벗어난 행동도 한다. 왜 이런 말을 한 건지, 이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갈 건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가 되고 서른해를 맞아 쓴 거다. 어느새 서른해라니, 책은 여든번째라고 한다. 서른해 동안 여든권 쓴 거면 아주 많은 거겠지. 몇해 전에 스물다섯해였는데, 작가가 된 서른해 기념으로 쓴 것도 이거 하나가 아니다. 이번 거 보면서 누굴 중심으로 읽어야 하나 했다. 책을 볼 때면 어떤 한 사람을 중심으로 보기도 하는데, 한 사람 마음에 자기 마음을 맞춰서 읽는 건가. 처음에 나온 우하라 마도카는 엄마와 토네이도를 만나고 마도카는 살았지만 엄마는 죽었다. 시간이 흐른 뒤 나온 마도카는 그때와 달랐다. 그런 마도카를 경호하는 다케오 도오루. 다케오 도오루는 경찰을 그만두고 경호회사에서 일했는데 그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런 다케오가 마도카를 경호한다. 마도카한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도카 둘레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는 걸 깨닫는다. 온천지에서 황화수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 그 일을 수사하는 형사 나카오카. 지구화학 환경분석가로 황화수소 사고가 일어난 까닭을 알아 보려다 여러 가지를 알게 되는 교수 아오에 슈스케. 황화수소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영화감독 아마카즈 사이세이. 마도카 아버지 뇌신경외과의사 우하라 젠타로. 이밖에도 여러 사람이 나온다.

 

나중에 말할 거면서, ‘당신은 알 거 없다. 당신과는 상관없다.’ 말하는 걸 볼 때는 기분 조금 안 좋았다. 내가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서였을까. 비밀실험 같은 건 아무리 식구라 해도 말하지 않겠지. 그게 많은 사람한테 알려지면 안 좋을 테니까. 일부러 한 건 아니지만, 뇌수술을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서 연구하게 된 거였다. 마도카가 가진 게 초능력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황화수소 사고, 뇌수술 상관없어 보이는구나. 앞에서 황화수소 때문에 아마카스 사이세이가 아내와 딸을 잃었다고 했는데, 아들은 죽지 않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 아들이 뇌수술을 받는다. 그 일은 온천지에서 황화수소 사고로 죽는 사람과 상관있다. 상관이 있으니 누가 나오고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겠지. 이런 책을 볼 때는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아니 이건 이런 책만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소설이든 쓸데없는 일은 없을지도. 우리가 살아가는 건 어떨까. 이건 잘 모르겠다. 늘 긴장하고 살고 싶지 않아서. 순간순간이 소중하지만 늘 놓치지 않을 수 없다. 흐르는 대로 둘 수밖에. 책도 그런 식으로 볼 때가 많다(장편소설은 그렇게 봐도 괜찮겠지).

 

이걸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나온 소설이 생각났다. 누쿠이 도쿠로 소설 《미소 짓는 사람》이다. 그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여기 나온 것으로 그게 설명이 될지 그건 잘 모르겠다. 세상에는 이것저것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뭐든 잘한다고 함께 사는 사람까지 그러기를 바라면 안 된다. 사람은 물건이나 작품이 아니다. 살면서 그것을 깨닫는 사람도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유전자 때문에 아주 없는 사람도 있을까. 그게 없는 사람이라 해도 자라는 환경이 괜찮다면 이상해지지 않을지도 모를 텐데. 자기 식구가 자신처럼 완벽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하면 세상 사람이 다 그래야 한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모든 것에서 뛰어난 사람만 있어야 한다 생각한 사람 없었을까. 히틀러가 생각난다. 만화영화에서도 가끔 그런 사람 봤다. 사람은 다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다. 모든 것에서 뛰어난 사람이 뭐든 잘할까, 그건 아니다. 세상은 평범한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

 

 

 

희선

 

 

 

 

☆―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은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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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나 시인이 있고 시를 쓸 텐데 잘 아는 시인이나 시가 별로 없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폴란드 사람으로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도 여러 나라 말을 배우겠지. 예전에는 영어로 번역한 것을 한국말로 옮겼다. 더 전에는 일본말로 옮긴 것을 다시 한국말로 옮겼을 거다. 다른 나라 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한번 다른 사람 손을 거친 것을 한국말로 옮기는 건 더 안 좋을 듯하다. 세계화라고 해서 모두가 영어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어가 아닌 말도 알고 그걸 한국에 알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렇게 말하지만 영어 잘 모르는 거 조금 아쉽다. 아쉽다고만 생각하고 이걸 부끄럽게 여기면 안 되겠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폴란드 시인인데 영어를 말했구나. 교통이 발달하고 사람이 여러 나라에 다닐 수 있고 다른 나라 문화와 예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말은 그 나라 문화를 아는 데 중요한 일을 한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말을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폴란드말 하나도 모르지만 그 말을 공부한 사람이 그 나라 책을 한국말로 옮기면 볼 수 있다. 세계화는 하나가 아니고 고유성을 잃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폴란드말 공부한 사람이 그 나라 사람이 쓴 글을 한국말로 옮기는 것처럼. 영어만 공부할 게 아니고 여러 나라 말을 공부하면 재미있을 듯하다. 이런 생각도 든다. 영어를 잘 알면 여러 나라 말을 조금 쉽게 배울 수 있겠다는.

 

앞에서 왜 저런 말을 늘어놓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폴란드말 공부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처음 이 이름을 보면 외우기 어렵다. 언젠가 시집 제목 《끝과 시작》을 보았는데, 그때는 이름 기억하지 못했다. 이번에 시집 《충분하다》를 보고서야 외웠다. 지금은 기억해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릴지도. 이름을 자주 보다 기억할 때도 있지만, 손으로 써 보고 잊지 않을 때도 있다. 손으로 써 보고 외우면 더 오래 갈지도. 이런 말하니 <손>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누구한테나 손이 있으면 어떤 글이든 쓸 수 있다는 말 같은. 히틀러한테도 손이 있었다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거나 다치면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손이 아니더라도 글 쓸 수 있기는 하다. 그래도 이렇게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손이 있어서 다행이다. 손은 아주 많은 일을 한다. 뇌와 이어지고 그 신호에 따라 움직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는 것도 손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경험하고 생각해야 한다.

 

노벨문학상 받은 사람 글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아주 달라지지 않았지만, 꼭 어려운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생각하게 되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 처음 만났는데 아주 어렵게 보이지 않는다. 어렵지 않지만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도 시를 쓸 수 있구나 했다. 이런저런 시를 많이 보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된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십대 때 영화보기와 그림 그리기와 노랫말 쓰기를 즐겼다고 한다. 시집은 열두권 내고 2012년 2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두번째 시집과 유고 시집을 합쳐서 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여선지 죽음을 말하는 시가 보인다. 아니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죽음을 끝이 아닌 삶의 한부분이라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아직은 어렵다.

 

 

 

나는 지도가 좋다, 거짓을 말하니까.

잔인한 진실과 마주할 기회를 허용치 않으니까.

관대하고, 너그러우니까.

그리고 탁자 위에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내 눈앞에 펼쳐 보이니까.  (<지도>에서, 93쪽)

 

 

 

이 시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마지막으로 쓴 거다. 죽음이 다가오기 전까지 시를 쓰다니. 이 시는 끝냈지만 다 끝내지 못한 것도 있다. 남겨둔 게 있다 해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그걸로 됐다고 여겼겠지. 어쩌면 ‘충분하다’는 유고 시집 전까지 쓴 것을 말한 걸지도. 유고 시집에 담긴 시는 덤인 것 같다. 난 나한테 죽음이 다가올 때 충분하다 생각할 수 있을지. 지금을 살아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잠깐만 한다. 그 마음이 오래 이어지도록 해야 할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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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나팔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저렇게 보이는 꽃은 없었다. 나팔꽃은 메꽃과다. 저것도 메꽃일이지도. 다음은 산딸나무꽃이다. 걸어다니면서 본 꽃으로 무슨 꽃일까 했다. 유월이 오자 라디오 방송에서 내가 본 것 같은 꽃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들었을 때 신기했다. 산딸나무꽃은 하늘을 보고 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하늘말나리와 하늘매발톱꽃이 생각났다. 하늘이 들어가는 꽃 더 있을까.

 

꽃잎이 네장인 산딸나무꽃은 나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우리동네 음악대장을 볼 수 없다. 텔레비전은 아예 안 보는데, <복면가왕> 하나는 챙겨본다. 지난해에 잠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하기 전에 재방송 하는 걸 보다가 본래 하는 시간에 보았다. 지금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못 본다. 지난해에도 몇주밖에 못 봤다. 아침에 하고 컴퓨터를 여러 번 켜는 것이 싫어서(텔레비전이 아닌 컴퓨터를 켠다니). 거기에 역사 이야기도 가끔 나와서 새로운 걸 알게 되기도 하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올해 1월 마지막 날 처음 나왔다. 두 사람이 노래할 때는 몰랐고, 두번째 <민물장어의 꿈> 할 때도 몰랐다. 그때 제대로 듣지 못하기도 했다. 저 노래를 하는데 그랬다니. 세번째 노래 <Lazenca, Save Us> 때 국카스텐 하현우구나 했다. 하현우 이름을 바로 떠올린 건 아니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린데, 누구지 하다가 국카스텐이구나 했다. 국카스텐은 <나는 가수다>를 보고 알았다. 목소리 자주 들은 것도 아닌데 기억하고 있었다니.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기는 하다. <민물장어의 꿈>도 그렇지만 <Lazenca, Save Us>를 해서 더 좋았다. 나중에 다른 노래 한번 더했다. 마왕 신해철 음악. 마왕이 하현우 노래를 들었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복면가왕에 나온 노래 영상을 벅스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거기에 가입도 했다. 가입하고 바로 안 보고 며칠 전에야 봤다. 거기에서 보면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좀 쓸데없는 말을 집어넣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랫말 나오는 건 괜찮지만. 벅스에서 보여주는 건 다른 카메라가 찍은 걸까, 아니 편집을 다르게 한 걸지도 모르겠다(텔레비전 방송과 같은 것도 있고 조금 다른 것도 있는 듯하다).

(http://music.bugs.co.kr/special/masksing?wl_ref=M_left_02_12)

 

음악대장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 하현우보다 음악대장 모습이 더 익숙하다. 그것만 생각하면 안 되겠지.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추억이 되겠구나. 벌써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언제나 지나간다. 이런 걸 자주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한번, 지나간 다음에 생각하는 듯하다. 추억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기보다 하루하루 되풀이하는 것이 쌓여서 되는 거겠지. 앞으로 국카스텐 음악으로 잘되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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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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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은 오래되면 여기저기 낡고 고장난다. 한사람이 평생 한집에서 살면 여러 곳을 고쳐야겠지. 그런 걸 부지런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파트는 자기 멋대로 구조를 바꾸면 안 된다. 그런 걸 제대로 알아보고 하는 사람 얼마나 될까 싶다. 잘 알아보지 않고 마음대로 바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걸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연립주택이다.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았다. 다른 사람은 이사왔다가 가기도 하는데 우리집은 그대로다. 이사올 때면 늘 공사를 한다. 그럴 때는 좀 시끄럽다. 고칠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오래되어서 하는 거겠지. 한번은 3층에서 공사를 잘못했는지 화장실로 물이 떨어졌다. 그게 꽤 오래 갔다. 2층은 화장실과 보일러실 벽을 허물었는지 세탁기를 쓰다 보일러실로 물을 넘기면 물이 우리집으로 내려왔다. 세탁기 쓸 때는 물이 잘 빠지게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제대로 안 보고 쓰다니. 자기 집은 괜찮으니 별로 마음 안 썼겠지. 우리집이 오래돼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 예전에도 한번 쓴 것 같은데. 밤에 창문을 보면 하얀 선이 지나갔다. 그건 나만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 뒤에 커튼을 달아서 안 보게 되었던가. 그걸 오래 본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지나지 않고 집에 도둑이 들었다. 우리집에 가져갈 게 뭐가 있다고. 그때는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무척 걱정했다. 우리집은 1층인데도 방범창살도 달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한번은 누군가 바깥에서 바깥쪽 창문을 열었다. 그때 내가 그 방에 있어서 누구냐고 하니 바로 달아났다. 그건 대체 누구였을까. 집에만 있다보면 밖에 나갔을 때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잘 나가지 못한다. 요새는 그런 걱정 덜하던가. 아니 아주 안 하는 건 아니다. 바깥에 나갔다 오면 문이 열려 있을 때도 가끔 있었다. 그건 누군가 집에서 나간 다음 문 잠 그는 걸 잊은 거였다. 그런 날이면 엄마 아빠한테 문 좀 잘 잠그고 다니라고 말했다. 오래 전에  밤이면 창문을 지나가는 하얀 선은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때 그것을 꽤 무섭게 여겼다. 지금은 덜한데 예전에는 가위에 많이 눌리기도 했다. 둘은 별 상관없는 일인데.

 

예전에 있었던 일을 빼고는 살면서 이상한 일을 겪거나 이상한 걸 본 적은 없다. 그런 걸 경험하는 사람 있을까. 나한테 아무짓도 하지 않는 움직이는 하얀 선을 보고 무서워했으면서 이상한 일 겪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걸 자신은 보고 싶은 마음 없을까. 미쓰다 신조가 말하는 무서운 이야기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건 해결 방법이 거의 없다. 《노조키메》를 봤을 때 남한테 나쁜 짓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생각했을 뿐이다. 어두운 작은 틈에서 무엇인가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무서울 거다. 그 이야기에 나온 것은 억울한 일을 당했던 것 같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오래된 집과 둘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집이라고 해야겠다. 그 집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아주 많겠지. 그런 사람이 모두 그 집에 들러붙는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말하니 귀신들린 집 같구나. 꼭 그런 건 아니다.

 

닫아도 자꾸 문이 열리는 집, 천장에서 사람 발소리가 들리는 집, 비가 내리면 방울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상복 입은 여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나타나는 노인, 우물에서 무언가 나오는 집, 어린이가 나오는 차고가 있는 집. 문이 열리고 무언가 소리가 들려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아무 일 없어도 사람은 그런 걸 보면 무서워한다. 다른 건 별일 없지만 비가 내리는 날 방울을 울리고 나타나는 상복 입은 여자는 좀 다르다. 그 여자가 나타나면 그 집 사람이 죽었다. 그 여자가 나타나서 사람이 죽은 건지, 죽음을 알려주려고 여자가 나타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문을 내면 안 되는 곳에 만들어서 마가 낀 건지도. 영선 가루카야 수리점 목수 오바나는 여자가 다른 길로 나갈 수 있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닫아도 문을 여는 무언가한테는 그 방에 창을 내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천장을 돌아다니는 무언가한테는 쉴 수 있는 곳을, 사람을 피해 숨어 있는 노인한테는 숨을 곳을 마련해주었다. 우물은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빗물을 받아 쓸 수 있게 했다. 차고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은 아이한테는 스스로 그곳에서 나올 수 있게 했다.

 

오바나는 자신은 목수일 뿐이다 한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집을 고치는 일이 많은가보다. 오바나는 그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아보는 걸까. 그 집에 가서 들을 때가 많았구나. 그 이야기도 잘 듣는다. 그 집에 나오는 것을 못 보아도 그것 마음도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집에서 사는 사람도 생각하겠지만. 오바나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것도 생각하는 거겠지. 거의 모두 오래된 집이나 건물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부수고 새로 짓는다. 그렇게 하는 게 쉽고 마음 편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자신만 생각하는 것 같다. 조금만 고치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것도 편하게 살 수 있다. 이건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떠오르는 건 사람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희선

 

 

 

 

☆―

 

“저는 목수입니다. 흠집을 모두 없애는 거면 집을 헐고 다시 짓는 일이 될 테니 공무소에 부탁해야겠죠.”

 

문제가 되는 흠집은 문제가 되지 않게 고친다, 남겨둬도 좋은 흠집은 더 커지지 않게 손을 본다, 그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다 했다.  (47쪽)

 

 

“바다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빠져 죽는 일도 있고 배가 가라앉는 일도 있고. 바다 밑에는 셀 수 없는 죽음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것이 밀물에 실려 들어오는 것이죠.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우물로 들어올 수 없지만, 형체가 없다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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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인간   読む人間  (2011)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년 07월 23일

 

 

 

 

 

 

 

 

 

 

 

 

 

이 책을 보기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하는 책을 두권 보았다. 어쩌면 그전에도 만났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시간이 흘러서 확실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보다 먼저 본 두권도 아주 잘 읽지 못해서 많이 잊어버렸다. 앞에 본 두권도 일본 사람이 쓴 거라니 그건 조금 재미있는 일이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나란 무엇인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자신의 문제를 소설을 써서 해결하려한 것은 다르지 않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고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깊게 파고들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힘思考術》에서 오사와 마사치는 자기 삶에서 생각할 주제를 찾으라고 했다. 그런 걸 빨리 찾은 사람은 소설가나 철학자가 되어 글을 쓸까. 누구나 십대 사춘기를 맞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난 별로 못하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무엇인가 생각했겠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거다. 좀 아쉬운 일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뭔가 생각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지금이라도 더 생각하면 뚜렷하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이 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작가라 해도 어릴 때부터 책을 잘 읽는 건 아니겠지만, 거의 어릴 때부터 책을 보았다고 말한다. 오에 겐자부로도 그렇다. 오에 겐자부로가 어렸을 때는 전쟁이 한창이었고 전쟁이 끝나고도 시코쿠 깊은 산골에서 살아서 책을 쉽게 볼 수 없었다. 아홉살인 오에 겐자부로한테 어머니가 《허클베리 핀》(마크 트웨인)을 주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권밖에 없다 해도 그것을 자꾸 읽기는 어려울 텐데, 오에 겐자부로는 그 책이 아주 재미있었나보다. 오에 겐자부로는 허클베리 핀이 한 말을 보고 평생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지 다짐한다. 그 말은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다. 어릴 때 그런 말에 끌리다니. 이 말만으로는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허클베리 핀을 도와준 짐은 노예였다. 짐이 어떻게 주인 집을 떠났는지 모르겠지만(예전에 한번 읽었지만 잊어버렸다), 허클베리 핀은 짐을 주인한테 돌려줄 테니 현상금을 달라는 편지를 썼다 찢는다. 그 뒤 허클베리 핀은 저런 말을 한다. 짐이 노예로 돌아가는 것보다 자신이 남의 재산을 훔친 죄로 지옥에 가는 게 낫겠다 생각한 거겠지.

 

아쉽게도 지금까지 오에 겐자부로 소설 제대로 못 보았다. 언젠가 보려고 했다가 못 보았다.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만엔원년의 풋볼》 《체인지링》은 조금 보다 만 것 같기도 하다. 이해 못하면서 끝까지 봤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제목 보고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하나 했는데 그건 맞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열여섯살에 도쿄대 프랑스 문학과에 가기로 정했다. 그것도 책을 만나고다.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때 《포 시집》도 만났다. 이런 것을 보고 열여섯에 나는 뭐 했지 했다. 아홉살에도 마찬가지다. 오에 겐자부로는 시를 보고 자신도 그런 문체로 소설을 써 보고 싶다 생각했다. 시를 봤으니 시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소설을 생각하다니. 포는 어려워서 자신한테 더 맞는 사람을 찾으려 하고 만났다. 《엘리엇》 《오든 시집》 윌리엄 블레이크. 이런 이야기 보고 나는 다른 사람이 쓴 걸 보고 그것처럼 쓰고 싶다 생각한 적 있었는지 생각했다. 아쉽게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생각한 건 있다. 쉬운 거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거. 오에 겐자부로가 아는 소설가 · 극작가 · 방송작가인 이노우에 히사시는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미있게’ 하는 말을 책상에 붙여두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게 이거구나 싶다. 내가 어려운 것을 잘 몰라서 어려운 것을 쉽게 쓰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다 조금 웃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오에 겐자부로가 《신곡》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읽고, 그것과 자기 삶을 소설로 쓴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가 나왔을 때, 책방에는 그 책보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 《노르웨이 숲》이 더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는 거다. 오에 겐자부로는 《신곡》을 몇해에 걸쳐서 보았는데 어떤 식으로 보았는지는 없다. 그게 어떤지만 말한다. 어떤 글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는데 그게 왜 아름다운지도 뚜렷하게 말하면 좋을 텐데. 난 그저 좋다는 말만 한다. ‘아름답다’는 말은 내가 몰라서 못 쓴다. 《신곡》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볼 수 있을까. 《신곡》만 본 게 아니고 단테나 《신곡》을 말하는 책도 함께 보아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건지도. 오에 겐자부로가 책 읽는 방법은 대단하다. 거기에 담긴 게 무엇인지 알 때까지 파는 거다. 그것도 일본말로 옮긴 것만이 아니고 본래말(프랑스말, 영어)로 쓰인 것도 본다. 그거 보고 잠깐 영어 공부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영어사전 헌 것 괜찮은 게 있을까 찾아보았다. 새거 사고 공부 거의 안 하면 그걸 산 뜻이 없을 것 같아서(일본말 사전도 사고 잘 안 펴본다). 난 하기 전부터 못할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일이든 그런 것 같기도. 이런 거 별로 안 좋을 텐데. 오에 겐자부로가 책을 읽은 뒤에는 마무리로 소설을 쓴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이 읽는 책에 있어서 다 잘 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 그 반대일 때가 더 많겠다. 책을 보고 자기 삶을 생각하거나 돌아보는 소설을 썼다.

 

앞에서 오에 겐자부로 소설을 제대로 못 보았다고 했는데, 오에 겐자부로 소설을 재미있게 본 사람은 이 책 반가울 것 같다. 소설 이야기가 있으니까. ‘수상한 이인조’라는 말을 보니, 헤르만 헤세가 생각났다. 오에 겐자부로가 쓰는 두 사람은 같아 보이면서도 다른 사람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소설에는 빛과 그림자 같은 두 사람이 나온다. 예전에 그 두 사람은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헤세가 쓴 두 사람은 그게 맞는 것 같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쓴 두 사람은 오에 겐자부로 자신과 오에 겐자부로가 만난 여러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고등학생 때 만난 친구가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오에는 그 친구를 만난 일을 기쁘게 생각했다.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게 자신이 막지 못해서 안타깝게 여겼을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는 평생에 걸쳐서 읽을 고전을 찾으라고 한다. 난 아직 그런 게 없다. 그런 게 생길지 그것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고전도 없는데, 평생에 걸쳐서 볼 고전을 찾을 수 있을까. 오에 겐자부로처럼 책 읽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에 겐자부로가 그렇게 한 건 그때 책이 별로 없어서였을지도. 지금도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보는 사람 있겠지만, 거의 한번만 볼 때가 많지 않을까. 많으면 두번. 책을 많이 보기보다 깊이 보아야 한다는데, 깊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많이 보고 싶기도 해서 책을 볼 때면 할 수 있는 한 집중해서 보려 한다. 생각은 그렇지만 집중 못할 때 많다.

 

사람은 살다보면 어떤 문제에 맞닥뜨린다.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시간을 보내다 잊는 사람도 있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소설을 쓰거나 글을 쓸지도. 작가가 아니어도 글은 쓸 수 있다. 책을 보고 생각하고 쓰는 거다. 그렇게 하면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래 깊이 파고 들어야 하는 건 뭘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찾지 못했다. 언젠가는 끝나는 삶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가 있는데, 아주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생각하고 싶다. 모두 그렇겠구나. 앞으로도 생각해봐야겠다. 책을 읽고 쓰는 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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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0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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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4 0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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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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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4 0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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