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큐 50 내 동생, 조반니
자코모 마차리올 지음, 임희연 옮김 / 걷는나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오른손잡이가 많고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더 많겠지. 그것보다 장애인을 정상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 같아. 대체 정상이 뭘까. 사람은 누구나 조금 이상한 점을 가지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 괜찮다고 그 사람 마음까지 괜찮은 건 아닐지도 몰라. 이것은 그렇기를 바라는 건가. 많은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좋은 사람을 더 좋아하고 믿기도 하잖아. 나라고 다르지 않아. 어딘가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피해 가기도 해. 몇해 동안 걸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요새는 보이지 않아. 어딘가에 갈 때 자주 다니는 길에서는 다운증후군인 사람을 보기도 했어. 다운증후군인 사람은 얼굴로 바로 알 수 있잖아. 염색체가 많아서 그렇다는 것만 알고 다른 건 잘 몰라. 이 책을 보니 지능이 좀 낮은 것 말고 몸도 약하더군. 몸이라도 건강하면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장애를 가졌다 해도 부모나 둘레 사람이 마음을 쓰면 잘 자라기도 해.

 

자코모 마차리올은 다섯살 때 엄마가 동생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는 무척 기뻐했어. 이탈리아는 아이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성별을 알 수 있고 가르쳐주는가봐(성별을 알 수 있었을 때여서 가르쳐준 거겠군). 자코모 엄마와 아빠는 자코모한테 남동생이 생길거다 말했거든. 자코모는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 있어서 남동생이 있었으면 했어. 동생이 생기는 일 기쁠까. 난 그걸 잘 몰라서. 엄마 아빠 누나 여동생이기는 해도 식구가 많아서 하나 더 늘어도 좋은가봐. 남동생과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어. 자코모는 동생 이름까지 지어. 조반니(Giovanni)는 자코모가 지었어. 자기 이름에 G가 들어가서 동생 이름에도 G를 넣으려 했어. 여러 이름을 말하다 나온 게 조반니야. 얼마 뒤 엄마 아빠는 동생이 특별하다고 말해. 자코모 엄마 아빠는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말은 들은 거겠지. 요즘은 그런 검사하잖아. 어떤 때는 장애가 있다 말했는데 실제 낳으니 아무렇지 않기도 해. 그런 일은 아주 가끔일지도. 자코모 동생 조반니는 다운증후군이야. 자코모는 조반니와 나무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함께 탈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어릴 때 그런 말 들어도 잘 모르겠지.

 

갓 태어난 조반니는 모습이 좀 달랐어. 자코모는 엄마가 보는 책을 우연히 보고 거기에서 조반니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 사진을 봐. 책은 다운증후군을 말하는 거였어. 자코모 엄마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자코모도 엄마가 보는 것을 보기도 했어.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서 이렇게 글을 쓴 걸까. 동생과 식구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어. 자코모 집에 아이가 자코모밖에 없고 조반니를 만났다면 어땠을지. 그때도 많이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엄마 아빠가 자코모한테 말을 잘했을 테니까. 자코모 엄마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고도 낳았잖아.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많이 망설였을지도 모르겠어. 아빠는 재미있고 엄마는 자상해. 세 아이를 믿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 키아라 자코모 앨리스를. 자코모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조반니와 잘 지냈어. 학교 친구가 조반니를 알아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어. 중학교에 들어가고는 조반니를 창피하게 여기고 아무한테도 동생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꼭 말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남동생이 아예 없다는 말을 하다니. 중학생 때는 그렇기는 하지. 다른 사람이 알면 창피할 것 같은 일. 그때뿐 아니라 늘 창피하게 여기는 것도 있지만. 장애를 가진 동생은 창피하게 여길 일은 아니지.

 

어느 날 자코모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가. 조반니는 아주 잊어버리고. 자코모가 지하실에서 친구와 악기를 연주할 때 그곳에 조반니가 나타나. 자코모는 깜짝 놀랐지만 두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함께 놀아. 자코모가 사귄 친구가 괜찮은 거군. 초등학생 때 친구 비토는 다른 사람이 조반니를 어떻게 생각하든 마음 쓰지 마라 했는데, 비토도 괜찮은 친구야. 누나와 동생 앨리스는 자코모보다 먼저 조반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 자코모는 좋아하는 여자아이한테 조반니가 동생이라 말해. 시간이 흐른 뒤에 말한 거지만. 이 책을 쓰기 전에 자코모는 조반니 동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어. 다운증후군이라 해서 못할 일은 없을 거야. 건강 때문에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아이가 하려고 하면 그냥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해 보기도 전에 못한다고 말하지 않아야지. 인터넷에서 다운증후군인 여자아이가 모델이 된 거 봤어. 그 아이는 엄마가 많이 도와줬어. 부모가 먼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이한테 사랑을 주면 괜찮겠지. 다운증후군 아이는 우리가 못 보는 걸 보기도 할 것 같아. 그런 것을 우리가 함께 볼 수 있을까.

 

장애를 아주 다른 걸로 보기보다 개성으로 여기면 더 좋을 것 같아. 장애를 가진 사람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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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나온 반달,

아니 눈썹달

 

20170202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김기택

  다산책방  2016년 09월 12일

 

 

 

 

 

 

 

 

 

 

 

 

 

봄엔 봄을,

여름엔 여름을,

가을엔 가을을,

겨울엔 겨울을,

제대로 느낀다면

삶이 더 넉넉해지겠지

 

 

 

잿빛 겨울이라 해도 하얀 눈이 오면 좋아. 나이를 먹고 일을 하면 눈이 오는 걸 싫어하기도 하더군. 걷는 사람보다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난 걸어다녀서 눈이 오면 눈 맞고 다니기도 했는데,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집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는 눈이 많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됐어. 비는 본래 좋아하지 않았지만 눈까지 싫어하면 안 될 텐데. 봄을 먼저 말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겨울을 먼저 말했네. 별것 없는 겨울이야기. 예전에는 십이월이 오고 성탄절이 오면 들뜨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설렘을 느끼지 않게 됐어. 어쩐지 조금 슬프군. 그래도 십이월이 오면 꼭 하는 게 있어. 친구한테 성탄절 잘 보내라는 말을 적은 엽서를 보내는 거야. 그걸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하면 좋겠어. 겨울이라 해도 늘 추운 건 아니야. 삼한사온은 사라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날씨가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해. 이걸 좀더 늦추도록 애써야 할 텐데.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지구 환경이 나빠지는 속도도 빨라진 것 같아. 언젠가는 한국이 사철이 뚜렷한 곳이 아닌 여름과 겨울만 있는 곳이라는 말이 책에 실릴지도 모르겠어. 아직 짧게라도 봄과 가을이 있지만.

 

사람이 지내기에 좋은 때가 봄과 가을이잖아. 그런 때가 사라지면 무척 아쉬울 거야. 사는 일에 바쁜 사람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할까. 그럴 것 같군. 학교 다니는 아이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올 테니까. 학교에서라도 가끔 창 밖을 바라보면 좀 나을까.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날씨가 좋은 날 창 밖을 보고는 나중에 학교를 마치면 봄에는 바깥에 다녀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때가 왔을 때는 게을러서 그러지 못했어. 날씨 좋은 날 밖에 나간다고 좋은 일은 없어서 그랬지. 해마다 똑같지는 않았어. 어느 때는 봄이 왔구나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니기도 하고 어느 때는 별 느낌없이 봄이구나 했어. 별로 바쁜 일이 없어도 모든 걸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해. 바쁜 사람만 봄에 꽃이 피고 지는 걸 모르고 지나가는 건 아니야.

 

잠시 시는 사람한테 어떤 일을 할까 생각해봤어. 난 왜 시를 볼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할까. 별난 일이 있었던 적은 없어. 그저 시를 보다보니 괜찮았던 것 같아. 알고 보기보다는 그냥 느낌이 좋았어. 그 느낌은 결국 자기 자신 것이겠지. 시인이 느끼고 쓴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 거야. 시는 꽉 찬 삶에 틈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나는 꽉 차게 살지 않지만. 시를 보고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는 여유 좋잖아. 난 가끔 기분이 가라앉고 안 좋기도 해. 가끔이 아니고 자주 그러던가. 김기택은 시 읽고 쓰기가 우는 방법에서 하나래. 어릴 때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었겠지. 나이를 먹고나면 편하게 울지 못하기도 해. 웃는 횟수도 많이 줄어들고. 우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사람은 웃기뿐 아니라 울기도 해야 해. 울어서 자기 안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바깥으로 내보내야지. 그걸 시 읽고 쓰기로 하면 멋지겠네. 더운 여름이라고 시를 보기 어려운 건 아니야. 여름은 여름만의 맛이 있지. 무더운 날 부는 시원한 바람 느껴본 적 있어. 그건 참 짧지만 기분은 아주 좋아. 시가 시원한 바람이 되기도 하겠어.

 

겨울에도 시리고 파란하늘을 볼 수 있지만, 파랗고 높은 하늘은 가을에 만날 수 있지. 가끔은 구름이 멋진 그림이 되기도 하고. 여름 하늘에서 만나는 뭉게구름도 좋아. 구름으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건 바람일까. 공기 안에 물기가 엉기어 물방울이 되거나 어는 게 구름이라지. 구름은 폭신폭신하고 따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갑겠어. 그걸 만질 수도 없고. 구름과 안개는 어쩐지 덧없군. 그런 게 아름다운 거겠지. 세상에는 그런 게 참 많아. 시인은 그런 것을 잘 보고 시로 적겠지. 김기택은 시가 나와서 받아적었다는 말을 하더군. 그런 경험 부러워. 난 아주 조금만 생각나거나 쓰고 싶기도 해.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도 않고, 생각나면 쓸 때도 있지만 잊어버릴 때도 많아. 그것을 잘 잡아두어야 할 텐데. 시를 자주 만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하루에 한편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아니 한주에 한편이 더 낫겠어. 시를 보고 거기에 나온 것을 상상해 보면 재미있겠어. 나도 잘 못하는 건데 이런 말을 했군. 시 한편을 오래 본 일은 한번도 없어.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들면 좋구나 하고, 잘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 앞으로는 시를 좀더 잘 만나려고 해야겠어. 시는 자신을 만나는 사람이 자기를 잘 알든 모르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아. 그저 한번이라도 자신을 바라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시랑 친구 되기

 

 

 

시랑 친구가 되고 싶으세요

그건 아주 쉬워요

책장에서 시집 한권을 꺼내 펼쳐보세요

시집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세요

시는 언제나 그곳에서 당신이 찾아오길 기다립니다

 

 

 

희선

 

 

 

 

☆―

 

좋은 시는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한껏 울게 해주면서도 하나도 울지 않고 평온하게 독백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 얼굴과 입은 울지 않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세차게 우는 형식이라고 할까.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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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24 0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예뻐요!^^ 낮달 ㅡ

희선 2017-02-27 02:15   좋아요 1 | URL
며칠 지나면 비슷한 달을 볼 수 있겠네요 밝을 때 보일지 그건 모르겠지만... 초저녁에 만나는 것도 괜찮죠


희선

[그장소] 2017-02-27 06:59   좋아요 2 | URL
음 .. 초저녁 달도 낮달도 다른 색으로 투명한 느낌이죠~^^ 아 ..달은 그대로인채 주변의 바탕 색이 그저 변화하는 걸까 요? ㅎㅎ 달 구경하러 밤 마실 또 해야겠어요.

AgalmA 2017-03-12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영감에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이론을 세우고, 누군가는 가사나 음악을 만들죠. 시인은 하늘이 만들어준다는 표현도 있듯이 시는 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은데, 다른 능력과 달리 언어적인 능력은 다들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언어를 쓰는데 시인은 어떻게?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시에 관심을 특히 많이 두시는 듯^^?

희선 2017-03-15 01:56   좋아요 1 | URL
어떤 생각을 하고 바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 부럽네요 그게 떠올랐을 때 놓치지 않아서 그렇겠습니다 늘 보는 거라 해도 잘 보면 다르게 보이기도 할 텐데... 저는 그런 일은 어쩌다 한번이네요 어떤 생각을 했다가 바로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릴 때는 누구나 시인이었을지도 모를 텐데, 시간이 흐르고 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러브 레플리카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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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윤이형 소설을 한권 만났습니다. 그것보다 이 책이 먼저 나온 거더군요. 먼저 본 책, 작가 이름을 보고 제가 아는 그 윤이형이 맞나 했습니다. 잘 아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번에 본 《졸업》과 이번에 만난 《러브 레플리카》를 쓴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가끔 이름이 같은 소설가도 있잖아요. 이름이 같아서 나중에 쓰는 사람이 이름을 바꿀 때도 있지만 그대로 쓰는 사람도 있지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을 했네요. 한국 단편소설을 조금이라도 보자 생각하니 가끔 보기도 하는군요. 여전히 읽기 전에 ‘이 책을 잘 볼 수 있을까’ 합니다. 이 소설집에서 좀 알아들은 건 네 편쯤입니다. 마지막 이야기 <엘로>는 앞부분은 알겠지만 뒤는. 처음에는 다섯해 동안 함께 산 고양이가 죽고, 그 뒤 마르한은 집을 떠나 길에서 만난 여자아이와 집으로 함께 돌아옵니다. 잘 사나 했는데 마르한은 자기 안에 다시 의심이 생겼다고 말해요. 이제 시작인데 마지막 <엘로>를 처음에 말했군요. 엘로는 사람 몸 안에 생기는 불운 덩어리면서 마르한과 만나고 아내가 된 여자아이 이름이기도 해요.

 

윤이형이 쓴 소설은 SF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실린 <엘로>는 마법이 있는 세계로 조금 다르군요. SF 같고 마법이 있는 곳이라 해도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로>에서 마르한은 마법사로 대단한 일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가진 아주 조금의 불운을 없애주었는데, 고양이 흰둥이가 죽고 자신이 흑마법을 쓰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하고 길을 떠나요. 마르한이 마법을 익힌 책을 쓴 사람을 만나려고. 마법은 힘을 들이지 않고 얻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여기에서 좋은 것을 바라면 여기 있던 안 좋은 게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아닐지. 좋은 마법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죠. 이건 만화영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본 것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나중에 나온 건 좀 달랐는데, 먼저 본 것에는 연금술을 쓰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해요. 마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누군가한테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라 해도.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지 몰라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로가 불운 덩어리라고 하지만, 꼭 없애야 하는 것일지. 그게 조금이라도 있는 게 괜찮은 것일지도.

 

SF 같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러브 레플리카>예요. 제목은 어쩐지 SF 같은데. 이름이 제목인 게 여러 편 있습니다. <대니> <루카> <핍> <엘로> 네 편입니다. 제가 가장 처음 본 윤이형 소설은 <루카>예요. 이건 동성애자가 나오지만 사랑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지지난해 했습니다. 여기에도 SF가 나와요. 루카가 쓴 시나리오에. 그렇다 해도 여전히 사랑이야기로 보입니다. 만나고 좋아하고 마음이 맞지 않아 헤어지는. 이번에는 루카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조금 헷갈렸습니다. 루카(본래 이름은 예성) 아버지는 루카가 게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루카가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지지난해에는 이 말을 놓친 것 같네요. 루카가 사귄 딸기가 “너는 그곳에서 평안하니. (<루카>에서, 150쪽)” 하고 묻는 말을 보면 죽은 것 같네요. 아버지가 생각한 일이 그대로 일어난 것일지도. 아버지는 루카가 세상에 없어서, 그제서야 루카가 어땠는지 알고 싶었던 거겠지요.

 

맨 앞에 실린 <대니>는 마음이 조금 아린 이야기예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니는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지만. 자기 이름을 알아주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만으로도 좋아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은 그것을 안 좋게 보겠지만. 언젠가 본 소설 《해롤드와 모드》(콜린 히긴스, 저는 ‘19 그리고 80’ 으로 만났습니다)가 생각났어요. <핍>은 처음에는 무슨 이야긴가 했습니다. 한참을 본 다음에 어른이 사라지고 아이들만 남은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야기 차례가 뒤섞이고 처음 일어난 일이 마지막에 나옵니다. 이 정도만 알아들었네요. 핍이 만나고 헤어진 얀도 있기는 한데. <쿤의 여행>은 독특합니다. 몇몇 사람은 자기 대신 자란 쿤한테 업혀 살고 어른이 되지 않았습니다. 쿤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은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어린이가 있기에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라 하는 것일지도.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지만 어른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요.

 

두번째에 실린 <굿바이>를 보니,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가 생각났어요. 사실은 <은하철도 999> 어떤 내용인지 거의 생각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 철이(데쓰로)가 메텔과 기차 999를 타고 우주 곳곳을 다닌다는 것만 생각나요. 제가 그 만화영화를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꽤 어릴 때였나봐요. 한번 찾아보니 철이(데쓰로)가 기계몸을 얻으려고 기차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에 가는 거더군요. 철이는 여러 별에서 기계몸을 가진 사람을 만나요. <굿바이>에는 기계몸으로 바꾼 사람이 화성에 가서 살다 실패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게 나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게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예요. 아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것도 나오는데, 다행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기계몸으로 바꾸고 화성으로 간 사람과 아기 마음은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목숨을 먹고 살지 않겠다는 게. 목숨 있는 것은 다른 것의 죽음을 먹고 살잖아요. 그렇게 돌고 도는 건데,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고맙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이 우주에 간다 해도 사람이 모두 즐겁게 사는 건 아니더군요. 돈이 없어 쪼들리는 사람은 여전히 있고, 아기 엄마가 그랬군요. 그래도 아기 엄마는 아기와 살아가리라고 봅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 생각하지만 잘 안 되고. 잘되는 것보다 잘되지 않는 것이 많군요. 아쉽지만 그게 삶이기도 합니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전 희망을 갖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주 작다 해도.

 

 

 

희선

 

 

 

 

☆―

 

우리는 다시 살고, 다시 죽고, 그러다 결국 없어지겠지만, 너를 만나서 나는 내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이렇게 이상한 곳에 있지만, 우리는 누군가 합성해놓은 남의 회한 같은 게 아니야. 누구의 소망도, 변명도 아니야. 나는 얀이야. 우리 부모님이 낳아주신, 너를 만나 같이 살았던, 얀.  (<핍>에서, 231쪽)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을 주고받는답니다. 행운만큼 불운도 주고 또 받을 수밖에 없어요. 마법이 아니라도 말이지요.”  (<엘로>에서,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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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23 0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 이 리뷰가 궁금해서 저쪽에서 클릭을 했는데 블로그 문을 닫았(?) 다고 메세지가 자꾸..그래서 쓰시는 중인가? 혼자 그랬네요 . 읽은 단편도 많은데 , 엘로 랑 핍 ㅡ 궁금했네요!^^ 나지막한 목소리~( 희선님 목소리가 실제 그럴까 ?) 잘 듣고 가요!^^

희선 2017-02-24 01:05   좋아요 1 | URL
핍은 별로 못 썼군요 이건 차례가 왔다 갔다 하더군요 뒤에서 앞으로 가지 않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해요 마지막은 앞이군요 읽고 시간이 좀 지나서 잘 생각나지 않는데, 어른이 사라진 곳에 남은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살면서 나이 많은 아이가 어른 노릇을 해요 아이들은 자신이 실제로 있는 게 아니다는 의심을 하는 것 같기도... 얀이 핍한테 남긴 말을 보면, 둘이 만난 일이 서로가 실제로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희선

[그장소] 2017-02-24 01:10   좋아요 1 | URL
아..친절한 희선님!^^
얀도 핍도 궁금 궁금!^^
아이들만 덩그러니...그런 세상 이라니!
 

 

 

    

 

 

 

이번 겨울은 덜 추운 것 같았는데, 눈이 오기도 하고 잠시 추위가 찾아오기도 했다. 덜 춥다 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덜 춥네 하고 옷을 가볍게 입고 다니면 감기 걸리기 쉽다. 감기는 면역력이 떨어지면 걸리지만, 사람 몸이 차가우면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추울 때 옷을 여러 겹 껴입으면 감기에 덜 걸리겠지. 초봄에 이제 좀 따듯하구나 하고 옷을 가볍게 입을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월초까지 추웠는데, 이렇게 말하니 옛날 사람 같구나. 사월초에 벚꽃이 핀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월이 오고 입춘이 지났다. 덜 추운 겨울이라 해도 지내기 어려운 사람도 많았을 거다. 난 손이 덜 시려서 좋았다. 책 읽고 쓰고 가끔 편지를 쓰지만. 손이 시리면 글씨 쓰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손이 아주 시리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볼펜을 쥐기에 힘들지 않았을 뿐이다. 봄은 아주 가까이에 다가왔다.

 

봄이 오고 햇살이 따스해지고 꽃이 피어도 여전히 마음은 겨울인 사람도 있겠다.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는 건 쉽지 않겠지. 그런 것을 해주는 것에 소설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구원은 신이 하는 게 아니기도 하다. 종교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신을 믿어설까, 종교로 자기 마음을 달래설까.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종교에서 말하는 건 자기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라일 것 같다. 남을 도우면 자기 마음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사랑과 용서도 말하겠다. 아니 사랑 하나를 크게 말할까, 사랑 안에 용서가 들어갈 것 같다. 소설을 말하다가 종교로 잠깐 빠졌다. 소설과 종교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종교를 잘 모르니 이 정도만 말할까 한다. 그렇다고 내가 소설을 많이 아는 건 아니다. 그저 나한테는 소설이 종교보다 더 가까울 뿐이다. 소설과 종교 이야기를 한 사람 있을까. 갑자기 그게 알고 싶기도 하다니. 잠깐 생각하니 종교와 소설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이 말은 앞에서도 했구나.

 

난 우울할 때 책을 본다. 예전에는 잠을 잤는데, 지금은 책을 본다(잠 잘 때도 있다). 우울할 때만 보는 건 아니고 늘 보고 우울할 때도 본다. 우울할 때 책을 보면 우울함이 좀 사라진다. 그때 보는 게 소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사람은 어느 때 소설을 볼까.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거여서, 난 정해놓고 보는 일은 없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때 소설을 더 만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잘못 고르면 소설에서 더 어두운 현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소설 때문에 가라앉은 마음이 더 가라앉을 수도 있겠지만, 마음 한쪽은 좀 나아지기도 할 거다. 우울하고 어두운 소설을 보면 자신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다 생각한다. 그것 또한 구원 아닐까.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그렇게 크지 않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얻기에 많은 사람이 소설을 만나겠지.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구원받기도 하겠다.

 

 

    

 

 

 

이번에 여러 사람이 ‘구원’이라는 주제로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문학은 거의 구원을 생각하고 쓰지 않을까 싶다.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 여러 권 있는데 그걸 만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책연이 닿으면 만나는 거고 닿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겠지. 살기도 힘든데 책을 어떻게 읽나 할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책을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책, 소설을 보면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하기도 한다. 남을 자신 안에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게 소설 같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기도 하지 않는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때지만. 어떤 때는 나쁜 사람 마음에 동화되기도 하는구나. 소설이기에 그럴 수 있겠지.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겠다. 난 가끔 소설 만나는 거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주 만나는구나.

 

전에 악스트에서 다른 나라 작가 만난 건 읽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읽었다. 다른 나라 작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돈 많이 들겠다 생각했는데, 그 나라에 가서 만나는 게 아닌가 보다. 다와다 요코와는 전자편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와다 요코가 글 쓴 시간이 짧지 않은데 난 잘 모르는 작가다. 일본말과 독일말로 글을 쓴다고 한다. 한국말과 일본말은 비슷한 게 많아서 일본말로 쓰인 책을 보는 느낌이 어떤지 말하기 어렵다. 좀더 만나면 나도 좀 다른 걸 느낄 수 있을까.

 

 

 

*더하는 말

 

소설뿐 아니라 책은 읽기만 하면 쉽게 잊어버린다. 언제부터 읽고 썼다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써도 잊어버리기는 마찬가지다. 쓰고 잊는 것과 쓰지 않고 잊는 건 좀 다르지 않을까. 꼭 책을 읽고 뭔가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쓰거나 누군가한테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책 읽고 쓰는 게 아니더라도 그냥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써도 괜찮다. 책(소설)을 읽는 것 못지않게 글쓰기도 자신한테 도움이 된다. 자기 구원이라 할까, 글을 쓰다보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이것도 큰 것보다 작은 것이겠다. 구원은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한번으로는 끝나지 않는. 이것은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자기 자신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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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오은 시를 읽는 걸 들었어. 누가 소개한 것 같은데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아. 그건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그러면서 글 쓰는 사람이었는지 노래하는 사람이었는지 하는 생각을 하고, 라디오 방송은 아침에 한 건지 낮에 한 건지 기억해내려 하다니. 그래도 떠오르지 않아. 그날은 스치듯 들어서 그럴 거야. 라디오 방송을 귀 기울여 들을 때도 있고, 그냥 틀어두기만 할 때도 있어. 소개한 사람은 잊었지만 ‘오은’이라는 시인 이름은 잊지 않았군. 이번에 내가 만난 건 그때 소개한 시집은 아닌 것 같아. 그때 들은 시가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말이 재미있었던 것 같거든. 그런 건 여기에서도 볼 수 있어. 오은은 작란(作亂) 동인이야. 이 말 뭔가 있을 것 같은 말처럼 보이지. 장난을 저렇게 쓴 게 아닐까 싶어. 이건 여긴 실린 시 <청문회>(40쪽)를 보고 알았어. 내가 좋아하는 해는 ‘좋아해’고 싫어하는 해는 ‘싫어해’야. 별로 재미없구나. 지금 생각난 건 이것뿐이어서. 하나 더 있어 띄어쓰기를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보기로 드는 말, ‘아버지가 방에 들어간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간다.’

 

말장난처럼 보이는 말이라 해도 허투루 볼 수 없어. 말을 갖고 놀면서 뼈 있는 말을 하니까. 다 그러면 무척 무거워지겠지. 그런 것도 있고 조금 가벼운 것도 있는 것 같아(확실하지 않은 말이군). 아니 마냥 가볍다고 말할 수 없기도 해. 이랬다 저랬다 하는군. 어떤 중요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바로 알아듣기 어려워. 이건 내 느낌일 뿐이군. 잘아는 사람은 바로 알아듣겠지. ‘네 개’와 ‘네 개’는 무슨 뜻일까. 글자는 같지만 다른 뜻을 나타내는 말도 있어. 어떤 건 하나만 쓰였는데 다른 뜻도 생각하게 해. 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군. “주머니에서 빛바랜 동전들이 쏟아졌다 / 다보탑이 무너졌다 / 벼 이삭이 흩어졌다 / 이순신 장군이 엎드렸다 / 학이 곤두질했다 (<아무개 알아?>에서, 27쪽)”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어. 다른 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순신과 학은 뭐지 한 거야. 앞에서 한 말을 잘 생각했다면 바로 알았을 텐데. 아는 것이라 해도 조금 다르게 쓰니 모르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군.

 

 

 

파란색과 친숙해져야 해

바퀴 달린 것을 좋아해야 해

씩씩하되 씩씩거리면 안 돼

친구를 먼저 때리면 안 돼

대신, 맞으면 두 배로 갚아줘야 해

 

인사를 잘해야 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받아쓰기는 백 점 맞아야 해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

밤에 혼자 있어도 울지 말아야 해

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해

대신, 집안 부끄러운 일은 쓰면 안 돼

거짓말을 하면 안 돼

 

꿈을 가져야 해

높고 멀되 아득하면 안 돼

죽을 때까지 내 비밀을 지켜줘야 해

대신, 네 비밀도 하나 말해줘야 해

 

한국 팀을 응원해야 해

영어는 잘해야 해

사사건건 따지려고 들면 안 돼

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도 돼

대신, 정말 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야 해

가족을 지켜야 해

 

학점을 잘 받아야 해

꿈을 잊으면 안 돼

대신, 현실과 타협하는 법도 배워야 해

돈 되는 것을 예의 주시해야 해

돈 떨어지는 것과 동떨어져야 해

 

내 둘레 사람들한테는 늘 친절해야 해

대신, 나만 사랑해야 해

나한테만 베풀어야 해

 

뭐든 잘해야 해

뭐든 잘하는 척을 해야 해

나를 과장해야 해

대신, 은은하게 드러내야 해

적당히 웃어넘기고 적당히 꾀어넘길 줄 알아야 해

눈치를 잘 살펴야 해

눈알을 잘 굴려야 해

 

다움은 닳는 법이 없었다

다음 날에는 다른 다움이 나타났다

꿈에서 멀어진 대신,

대신할 게 걷잡을 수 없어 늘어났다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비밀처럼

 

다움 안에는

내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다움>, 79~81쪽

 

 

 

시 한편 다 옮겼어. 이 시집을 보면서 시가 다 길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짧은 것도 조금 있어. 짧게 말하기 어려워서 길어진 거겠지. <다움>은 웃기면서도 슬픈 느낌이 드는 시야. 어른이 아이한테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잘살려면 착하기보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같잖아. 여기에는 이런 느낌이 드는 시도 있어. 요즘 사회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해.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떨어진다는 말도 해. 모두가 떨어지고 하나만 남아서 우리라고 할 수 없게 돼. 그래도 시인은 시인하고 시를 쓰겠다 말해. 시로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주려는 거겠지. 그것보다 말로 노는 게 먼저지만. 이 말은 시를 한층 밑으로 떨어뜨리는 걸까. 시가 재미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재미있는 것하고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시인은 시를 말로 노는 것이다 했어. 실제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니. 오은만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말로 노는 건 생각하는 건지, 저절로 나오는 건지. 난 말장난 생각해도 별로 떠오르지 않아. 평소에 그런 걸 거의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 앞으로는 가끔 생각해 볼까. 오은 시를 보고 익혀보는 것도 괜찮겠어. 무엇을 익힐 수 있을까. 이건 좀 썰렁하지. 멋진 말로 멋진 이야기 하는 시도 좋고 말장난 같지만 뜻이 있는 시도 좋다고 생각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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