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작아졌어요 한림 고학년문고 14
사비네 루드빅 지음, 이덕임 옮김, 김무연 그림 / 한림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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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사람들은 네 말을 믿지 않을지라도 나는 펠릭스 네 말을 믿어.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떼던 슈미트 선생님은 조금 귀엽기도 했어. 펠릭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니. 어른이 되면 어린이일 때보다 자기 마음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하지만 슈미트 선생님도 너와 함께 보낸 한 주를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을 거야. 지금까지는 꽤 까다로웠던 선생님이었는데 조금 부드러워졌잖아. 아마 자기 처지에서만 생각하지 않게 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이것은 펠릭스 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슈미트 선생님을 네가 아주 무서워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지. 사람은 쉽게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없는 것 같아. 아주 큰일을 겪지 않는 한은 말이야. 펠릭스 너와 슈미트 선생님이 겪은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어.

 

엄마 아빠가 헤어지고 너는 엄마와 함께 살면서 아빠 집에 가끔 가야 해서 조금 힘들었겠다. 그것보다 엄마와 아빠가 말을 나누지 않은 게 더 힘들었으려나. 학교를 옮긴 것도 힘들었지.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는 친구도 있었는데, 옮긴 학교에서는 엘리밖에 사귀지 못했잖아. 마리오는 너한테 심부름이나 시키고. 그리고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게 하나 더 있구나. 바로 수학 시간과 수학을 가르치는 슈미트 선생님 말이야. 방학하는 날 마지막 시간이 수학이었잖아. 조금만 지나면 공부 시간이 끝나는구나 했을 때, 슈미트 선생님은 수학 시험 점수가 적힌 공책을 나누어주었어. 너는 세 문제나 풀었는데 6점밖에 못 받았잖아. 전에 다닌 학교에서는 답이 틀려도 식을 쓰면 점수를 주었는데 말이야. 펠릭스 네가 슈미트 선생님한테 따졌더니 선생님은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하면서 너한테 칠판을 닦으라고 했어. 너는 화가 나서 슈미트 선생님을 ‘마녀 할망구’ 라고 했지. 운이 없게도 그 말을 슈미트 선생님이 듣고는 너를 혼냈지. 너무 무서워진 너는 눈을 감고 선생님이 작아지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선생님이 커지는 상상을 하고 눈을 떠보니 슈미트 선생님은 여전히 작은 모습이었어.

 

방학이었던 한 주는 펠릭스 네가 슈미트 선생님을 위해 애쓴 때이기도 해. 슈미트 선생님을 본래 크기로 돌리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봤잖아. 그러다 슈미트 선생님의 다른 면도 알게 되었지. 슈미트 선생님은 엄한 할아버지와 살았고 조금 쓸쓸한 분이라는 거. 사람은 누구나 쓸쓸하기는 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다니. 네가 싫어했던 슈미트 선생님과 가까이에서 지내다보니 선생님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구나. 슈미트 선생님이 차를 타고 종이 풍선을 탔을 때는 꽤 좋아하기도 했지. 인터넷에서 알아본 마법 푸는 주문은 별로 쓸모가 없었구나. 검은 고양이가 사람한테 초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방학하는 날 네가 만난 눈 색이 신기한 검은 고양이를 생각해냈지. 나는 처음에 그 고양이한테 뭔가 있을 줄 알았어. 네가 검은 고양이를 다시 만지면 슈미트 선생님을 본래 크기로 돌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바로 되지는 않았구나. 검은 고양이한테는 다른 목적이 있었잖아. 본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옛날에 아이를 생각하기보다 선생님인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검은 고양이 말이야. 어쩌면 슈미트 선생님은 그 일을 알고 나서 자신을 되돌아본 것일지도 모르겠어. 또한 아이에 대해 잘 몰랐던 슈미트 선생님은 너와 잠시 지내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을 거야. 네가 슈미트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시계탑에 올라갔던 일 때문에 이런저런 일이 잘되었구나. 아마 그것은 네가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싶어. 엄마 아빠는 서로 말하게 되었고, 친구들은 너를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잖아. 그리고 슈미트 선생님은 본래 크기로 돌아갔지. 펠릭스, 다시 슈미트 선생님을 만나게 돼서 기뻤지. 아마 슈미트 선생님도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다만 겉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무엇보다 너네 엄마 아빠가 자신들만이 아닌 네 마음을 생각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네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겠다. 사람이 작아지는 일을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어.

 

엄마 아빠가 따로따로 살아서 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함께 살면서 늘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그것은 너도 알겠구나. 헤어졌다고 해도 엄마 아빠는 그대로야. 그 점 펠릭스 네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슈미트 선생님도 조금은 좋게 생각하기 바란다. 슈미트 선생님도 예전과 조금 달라졌잖아. 아주 좋아할 수는 없더라도 싫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한테도 선생님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해. 나도 그래야 하는구나.

 

 

 

희선

 

 

 

 

☆―

 

슈미트 선생님은 달라졌다. 방학 전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아마도 교장 선생님을 부르거나 출석부에 우리 모두의 이름을 적거나 아니면 숙제를 두 배로 내줬을 것이다. 지금처럼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었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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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콩가
잉그리드 리 지음, 정회성 옮김, 김유진 그림 / 별천지(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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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길고양이가 집고양이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바깥에 여기저기 숨어 있는 위험 때문이 아닐까. 같은 고양이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길고양이가 늘어난다고 해도 사람이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을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읽은 책 속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자루에 담아서 물에 빠뜨려 죽였다. 그것은 옛날에 정말 있었던 일일 것이다. 그 책 속에서 먼 앞날에는 고양이가 아주 없어졌다. 고양이가 없어지게 한 것은 옛날에 있었던 일을 비꼰 것일까. 어쩐지 그런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도 한다. 고양이가 사라진 세상은 어떨까. 그렇게 좋지는 않을 것 같다. 고양이가 사라지면 쥐가 아주 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쥐를 잡는 고양이가 별로 없으려나. 길고양이들은 잡을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일은 사람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게 없어지는 것과 같을 것 같다. 고양이를 무섭게 나타낸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게 나타냈다. 그냥 고양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이다. 주인한테 버림받은 고양이 콩가는 빌리한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빌리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길고양이 때문에 애를 먹었다. 우연히 빌리는 다친 길고양이를 만나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엄마 아빠 몰래 자기 방에서 키웠다. 엄마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엄마가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 공부하자 아빠는 그런 엄마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빌리가 조금 쓸쓸해서 다친 길고양이를 키우기로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동물 보호소에서 안락사시킨다고 한 말을 듣기는 했지만. 콩가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인 거다. 그런데 콩가가 새끼를 배고 있었다. 빌리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빈 병을 모으거나 심부름을 해서 돈을 받았다. 그러면서 교회 뒷마당에 사는 길고양이한테 먹이를 주는 루크와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살로메를 만났다. 살로메는 애완동물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기도 했다. 빌리는 콩가가 새끼를 낳게 됐을 때는 콩가를 교회에 숨겨두었다. 그때 살로메와 루크가 콩가를 봐주기도 했다. 고양이와 평화롭게 사는 모습만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고양이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른만 그런 게 아니고 아이도 그랬다. 이 나라는 남자아이한테 공기총을 사줄 수도 있나보다. 빌리도 공기총을 아빠한테서 받았다.

 

시민 회의에서 길고양이가 너무 많다며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시 의회에서는 길고양이를 잡는 행사를 하기도 하고, 한 마리에 5달러를 준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길고양이를 잡는 일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길고양이를 잡는 날이 다가왔다. 빌리는 콩가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루크와 살로메와 일을 벌였다. 길고양이를 잡는 일을 반대하는 포스터를 여기저기에 붙였다. 그 뒤에 빌리, 루크, 살로메처럼 길고양이 잡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빌리 아빠도 길고양이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콩가 때문에 목숨을 구하고는 반대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 책 속에 나온 일이 실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너무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길고양이 문제는 루크가 생각한 고양이집을 짓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교회 종, 뜬금없이 교회 종이라니. 이 종이 시에 중요한 것이었다. 그 교회 종을 찾고 교회에 달았다. 사람들은 길고양이가 없어지면 마을이 깨끗해지고 다른 곳에서 사람이 찾아올거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좀 안 좋다고 덮어놓고 없애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나를 생각하고 이야기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구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동물을 장난감처럼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목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동물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키우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 동물뿐 아니라 아이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버림받는 고양이, 버림받는 아이가 생각나는구나.

 

 

 

희선

 

 

 

 

☆―

 

“저도 이 마을에 고양이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된 건 모두 우리 잘못이에요. 고양이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뿐이거든요. 그들이 새끼를 낳지 못하도록 우리가 무엇인가 해야 해요.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거지요. 길고양이에게 새끼를 배게 하는 것은 거의 모두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입니다. 녀석들이 밖에 나와 돌아다니다가 그런 짓을 저지르죠. 새끼들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으면 들고양이들이 집단으로 사는 곳은 저절로 사라질 겁니다.”

 

조시는 시장을 돌아보며 이어서 말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어요. 우리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까닭으로 덮어놓고 죽이는 것은 올바른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죠.”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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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지음 / 시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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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시집을 읽고 그것에 대해 써 본 적이 없어. 시집 한 권에 들어 있던 시도 다 좋았다고 말하기 어려워.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시는 있었어. 그렇다고 그 시에 대해 무엇인가 쓴 적이 있느냐고 한다면, 그런 적도 없어. 마음에 들고 좋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래도 무엇인가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말이야. 많이 써 본 것은 아니지만, 몇 해 전에 노래 제목으로 이야기를 써 본 적이 있다는 게 떠올랐어. 그래서 언젠가 시집을 읽는다면 시 제목으로 시를 쓴다거나 이야기를 써 보는 것은 어떨까 했어. 여러 번 읽다보면 무엇인가 하나라도 떠오르지 않을까 했던 거야. 솔직히 말할게. 내가 이 시집을 읽은 것은 겨우 두 번이야. 한 번 더 읽어보려다가 멈추고 이런 말을 쓰고 있어. 별로 애쓰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어. 더 읽어도 생각나는 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언젠가는 앞에 쓴 거 해 보고 싶어.

 

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니, 내가 시집을 빨리 읽어버려서인 것 같아. 시는 소설보다는 짧아서 빨리 읽어버리잖아. 하지만 시는 소설보다 더 천천히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어느 순간 시 한줄이 마음을 울릴 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시말이 있는 시를 좋아해. 어느 시인도 그런 말을 했어. 한줄이라도 마음에 와 닿는다면 좋은 시라고. 자신한테 좋은 시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 이 시집은 제목부터 마음에 와 닿아서 좋지.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는 말. 이 말 보고 고개 끄덕이지 않을 사람 없을 것 같아. 아니, 그것보다 마음 놓는 사람이 많으려나. 나는 어느 쪽일까. 나는 마음 놓은 쪽이야. 왜냐하면 나는 나만 늘 혼자고 쓸쓸한가보다 생각한 적 많거든. 나한테 친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다들 외로워하지 않고 잘 살아가더라구. 다행하게도 나도 예전만큼은 아니야. 혼자라는 것을 좋아하게 됐거든(본래 혼자서 뭐든 했구나).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쓰고 나서는 그런 마음이 적어졌어. 책을 읽고 쓰기까지 하니 쓸데없는 편지를 쓸 시간이 줄어든 거지. 그렇다고 내가 편지에 쓸쓸하다는 말을 적었던 것은 아니야.

 

시는 한편이 이야기 한편이라 할 수 있잖아. 많은 시를 한꺼번에 봐 버려서 쓸 게 떠오르지 않은 듯해. 한편이라도 잘 보면 좋을 텐데.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는 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시(이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인지도),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는 시,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리는 시, 혼자임을 즐기라는 시……. 내가 쓴 것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시인은 이런저런 감정을 노래하고 있어. 갑자기 시인이 말하는 가을은 삶에서 맞는 가을이라는 느낌이 들어. 그때쯤에는 많은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이를 많이 먹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 같기도 해. 이 시집이 보고 싶어질 정도의 말을 써야 했는데. 어때, 이 시집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 들었어.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좋을 텐데.

 

 

 

 

삶이 나를 불렀다

-푸른 바람이 불었지

 

 

 

푸른 바람이 불 때면 생각한다

정말 잘한 일인가, 하는

이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나는 오랫동안 이 세상에 나오려 하지 않았다

엄마 배 속은 아주 조용하고 편안했으니까

그곳에는 나를 해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기가,

그것도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가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열일곱 달이 지나고,

또 하루하루가 지나가자 숨 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더 버텨보려 했다

숨이 거의 끊어져갈 때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나를 이 세상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래, 그때도 푸른 바람이 불었다

 

 

*<삶이 나를 불렀다>(110쪽) 는 시 제목으로 쓰다

 

 

 

희선

 

 

 

 

☆―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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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보낸 아홉해

(달에서의 9년, 스위트피)

 

 

 

내가 달에서 아홉해를 살았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달에서 살았던 적이 있나 싶다. 하지만 나는 정말 달에서 아홉해를 살았다.

 

풀 한포기 없는 사막 같은 곳에서 어떻게 아홉해를 살 수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끔 꿈을 꾼다. 여전히 달에서 살고 있는, 그러면 무서운 꿈이라도 꾼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다. 무척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 좋았던 날이 있기는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어린왕자를 달에서 만난 날이다. 어린왕자를 쓴 사람은 내 이야기를 빼놓았다. 어쩌면 어린왕자가 말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어린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있기만 했다.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던 나였는데, 말하지 않아도 기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달에서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어쩌면 내가 계산한 시간이 아홉해가 아닐 수도 있다. 지구에 와서 스위트피 노래 <달에서 9년>을 듣고 나도 아홉해를 살았던 것이라고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스위트피도 달에서 살았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스위트피와도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달에서 살아본 사람은 말보다는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달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해주는 곳이다.

 

달에서 바라본 지구는 무척 아름답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은 조금 힘들다. 그렇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달에서 사는 것보다는 많은 일이 일어나는 지구에서 사는 것이 더 재미있다.

 

 

 

 

 

 

 

종이비행기(델리스파이스)

 

 

 

종이비행기, 제목은 정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종이비행기에 소원을 적어서 날리는 소년, 아니면 친구를 그리는 소녀…….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도 썼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비행기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눈을 감고 종이비행기한테 마음으로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나는 그저 종이비행기라는 글자한테 물어보았다는 것을.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잘 안 될 줄 알았는데 작은 종이비행기가 내 손에서 태어났다.

 

"종이비행기야 반갑다."

 

작은 종이비행기는 수줍은 듯 말했다.

 

"나도 반가워."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뭔데……?"

 

"나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쓰면 좋을까?"

 

종이비행기는 오래 생각했다. 뭔가 떠올랐는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종이비행기면 하늘을 날 수 있겠지? 나를 높은 곳에서 날려보내줘. 날아다니면서 본 거 너한테 말해줄게."

 

나는 놀랐다. 종이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떠 있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나한테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은 해줄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종이비행기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종이비행기를 날려주기 위해 산으로 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늘을 나는 것일 테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날게 해주고 싶었다.

 

"종이비행기야, 날아다니면서 본 거 나한테 꼭 말해줘."

 

"그래, 그리고 고마워. 내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도와줘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타고 날 수 있게 종이비행기를 살짝 놔주었다. 날다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꽤 오랫동안 하늘에 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반짝하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았다. 종이비행기는 산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날 수 있는 세계로 넘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종이비행기는 아직도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당신 앞에 하늘을 나는 종이비행기가 나타나면 어떤 모험을 했는지 물어봐주기 바란다.

 

 

 

 

 

 

 

달려라 자전거(델리스파이스)

 

-달리고 싶은 자전거

 

 

 

나한테는 꿈이 있어요. 그것은 힘차게 달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혼자 달릴 수는 없답니다. 누군가 페달을 밟아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자전거 가게에 있어요. 나를 타고 달려줄 아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 둘 다른 동무들은 아이들이 데리고 가서 힘차게 달리는데 나는 오랫동안 서 있었어요. 나한테는 바퀴가 좀 많답니다. 그렇다고 아주 어린 아이가 타는 자전거는 아니예요. 중심 잡기 힘든 아이가 탈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언젠가는 그런 아이가 내 앞에 나타날거라고 믿어요.

 

"준호야, 이제 자전거 타면서 다리 운동 열심히 해야 해."

 

"……."

 

목소리에 눈을 떠서 보니 엄마와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이 어두웠어요.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자전거를 사주면 무척 좋아하는데……. 아이가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을 곧 알아봤습니다. 더 어렸을 때는 걷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나를 좀더 편하게 탈 수 있게 조금 고쳐야 했어요. 나도 이제 달릴 수 있다 생각하니 무척 기뻤어요. 아이가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습니다.

 

 

 

 

준호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엄마가 유치원에 갔다 오면 나를 타라고 말했는데 안 타고 끌고만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을 엄마가 알았지만 준호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준호가 나를 한번도 타지 않은 것은 아니예요. 나를 데리고 온 첫날 타봤는데 다리에 힘이 없어서 페달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잘 했다고 말했어요. 자주 연습하면 다리에 힘이 들어갈거라고 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유치원에 갔다 온 준호는 나를 끌고 집 밖으로 나왔어요. 도시가 아닌 시골이어서 차들은 다니지 않았습니다. 나를 타고 달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끌어주는 것도 나름대로 좋았어요.

 

"준호 오빠, 뭐 해?"

 

예쁘게 생긴 작은 여자아이가 준호한테 말했어요. 준호 얼굴은 빨개졌어요.

 

"오빠, 나 뒤에 태워줘."

 

"…… 싫어!"

 

준호는 화난 사람처럼 크게 말했어요. 여자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여자아이를 본 준호도 어쩔 줄 몰라했어요. 그냥 모른 척하고 나를 끌고가다 뒤돌아서서 말했어요.

 

"은영아, 내가 자전거 타는 거 연습 많이 해서 나중에 태워줄게."

 

"……."

 

 

 

 

은영이와 길에서 마주친 뒤부터 준호는 나를 끌고 다니지 않았어요. 다리에 힘은 없었지만 페달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아직은 천천히 달리지만 언젠가는 바람을 가르며 달릴 거예요. 그때는 뒤에 은영이가 타고 있겠죠.

 

 

 

 

 

말 그대로 옛날에 쓴 이야기다

그냥, 오늘이기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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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0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3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해, 오브리 생각하는 책이 좋아 7
수잔 러플러 지음, 김옥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까지 저와 가까운 사람이 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일은 없습니다. 이 말 쓰다보니 떠올랐습니다. 아주 없지는 않았다는 게.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자주 만나지 않아서 가깝다고 할 수 없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얼마전에 잠깐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외사촌 동생 둘이 어렸을 때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아이들 누나며 언니인 사촌하고는 잠시 편지를 나눈 적도 있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그때 사촌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군요. 어려서 그랬을 테지만, 지금이라고 슬픈 일을 겪은 사람한테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그런 슬픔은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 어려울 겁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는 것도 안 될 것 같군요. 한동안은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주면 좋겠죠. 식구 가운데 누군가가 죽으면 남아 있는 식구들이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면 조금 괜찮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여기에 나온 오브리 엄마가 그랬습니다.

 

오브리 아빠와 동생은 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차 안에는 엄마도 오브리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오브리는 살았던 거죠. 그런데 엄마가 오브리를 혼자 놔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오브리가 집에 혼자 있을 때 느낀 슬픔, 무서움 때문에 앞부분을 볼 때는 아주 우울했습니다. 오브리 혼자 있는 집에 외할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브리는 외할머니 집에 가서 살게 됩니다. 그곳에서 오브리는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를 사귑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아팠습니다. 브리짓과 브리짓네 식구들은 오브리한테 잘해주었습니다. 오브리는 브리짓네 식구들을 보며 동생과 아빠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되기도 했죠. 할머니가 오브리한테 할머니도 슬프다고 말했어요. 오브리는 할머니가 어떤 마음인지는 잘 몰랐거든요. 할머니 말을 듣고 오브리는 엄마도 힘들었을거라 생각하게 됩니다. 오브리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자신만 없으면 다른 세 식구가 그곳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일어나버린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여겼거든요. 오브리는 엄마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오브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엄마는 상처에서 도망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할머니가 엄마를 찾아냈습니다. 엄마는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일도 하게 되자 다시 오브리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어른은 멋대로네요. 자기가 힘들 때는 제대로 안 봤으면서, 조금 나아지자 욕심을 내다니 말입니다. 오브리는 엄마와 함께 살기를 바라지만, 할머니 그리고 브리짓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브리는 잠시 더 할머니 집에서 살기로 합니다. 결국에는 엄마와 살겠죠. 오브리도 그랬던 적이 있지만, 엄마가 더 자기 아픔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오브리는 친구를 만나고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봅니다. 자기 안에 갇히지 않은 거죠. 상담 선생님이 말한대로 편지도 씁니다. 보내지는 못한다 해도 그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누군가한테 말로 할 수 없다면 편지를 써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픔은 마음 안에 가둬두면 곪아서 더 안 좋아집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참 아픈 말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런 일이’ 하며 잠시 우울해합니다. 안타까워하는 것은 잠시고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살아가게 되더군요. 하지만 식구들은 그렇게 못하겠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슬픔을 추억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슬픔과 바로 마주보려 한 오브리처럼.

 

 

 

희선

 

 

 

 

☆―

 

“너희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 나는 너무 아팠어. 온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느낌이 떠올라. 온몸이 무너지면 아침에 일어날 필요도 없을거라고 생각했어. 침대에서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집 안을 청소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러던 참에 나한테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어떤거요?”

 

“나한테 소중한 다른 많은 사람들,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물론 그 누구도 너희 외할아버지를 대신할 순 없어. 하지만 결국 나는 침대를 벗어났어. 너를 위해.”

 

“나요?”

 

“그래, 너, 우리 아가. 너를 비롯한 다른 많은 우리 아가들, 우리 아이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 너희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동시에 잃게 만들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침대를 벗어났어. 집을 청소했어. 크리스마스트리랑 선물을 사고, 칠면조를 굽기 시작했어.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너희 모두가 여기에 다시 찾아왔어. 더 이상 우리 집은 텅 빈 집이 아니었어. 그리고 내 삶도 텅 비지 않았어. 내 삶은 끝나지 않았어.”  (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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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0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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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3 0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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