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세번째가 나왔습니다(나오고 시간이 조금 흘렀군요). 이번과 다음은 교토라고 합니다. 교토는 일본 역사에서 일천년 동안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두권으로 나누고 여기에서는 교토의 사찰과 신사를 답사하고 다음에는 일본미의 알맹이를 보여주는 교토 명소를 간다고 합니다. 일본편 첫번째, 두번째는 보고 어떻게든 썼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했습니다. 앞에 나온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군요. 역사 때문일까요. 첫번째, 두번째에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이야기가 좀 많이 나왔습니다. 규슈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까지 나왔으니까요. 거기에서는 일본 속 한국문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이제 일본사람이 만든 일본문화라고 했지요.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어디에든 사람이 살고 있다 해도 수도와 지방은 조금 다르겠지요. 교토에는 5세기 후반에 신라에서 궁월군이 많은 사람과 건너가서 살았다고 합니다. 백제 사람이 많이 간 것은 6세기였군요. 비슷한 때 세 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거군요. 나라마다 자리를 잡은 곳이 달랐습니다. 신라계 하타씨는 가쓰라강가 습지, 고구려계 야사카씨는 히가시야마 산자락, 백제계 아야씨는 아스카 들판에. 본래 살던 나라와 비슷한 곳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헤이안시대에 들어가면서 나라 중심은 교토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언젠가 일본 역사를 조금 알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제가 일본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건 만화영화(애니메이션)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나온 게 실제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없겠지만, 헤이안시대, 센고쿠시대, 에도시대, 메이지, 다이쇼, 쇼와, 이런 말 들은 건 만화영화에서예요. 다이쇼와 쇼와는 조금 다를까요. 그런데 가마쿠라, 무로마치라는 말도 있더군요. 여기에도 헤이안시대 다음에 가마쿠라, 무로마치라고 나옵니다. 시대를 나누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건지. 쇼군이 어디에 정부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른가봅니다. 메이지는 잘 모르겠고 다이쇼, 쇼와, 헤이세이는 천황과 관계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이것은 시대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에도시대 말은 막부말기라고도 하죠. 일본만화에서 많이 다루는 때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었던 때와 막부말기인 듯합니다. 어쩌면 다른 때도 있을 텐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없군요. 세키가하라 싸움은 언제인지. 막부말기는 신선조, 무엇보다 이게 생각나는군요. 신선조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사카모토 료마도. 하지만 사카모토 료마를 죽인 건 본래는 동료였던 사람들입니다. 이때는 일본 역사에 이름이 남은 사람이 많이 있군요(어느 때든 사람은 많았군요). 저는 잘 모르지만. 일본에 사무라이라고 하는 무사가 오래전부터 있었나 했는데 무사시대가 된 것은 무로마치시대 때부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에도시대가 끝나갈 때는 무사가 할 일이 없어졌어요. 만화영화를 보고 대충 알게 된 일본 역사니 제대로 알고 싶기도 하겠지요. 오다 노부나가보다 앞에 사람들이 나온 것도 본 것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신라에서 교토 가쓰라강가 습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모두 하타씨라고 했어요. 하타라고 읽지만 중국 진(秦)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일본에서는 중국 진시황 후손으로 알고 있었답니다. 하타씨(진하승)는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신라에서 보내준 것)이 있는 광륭사를 처음으로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씨사(집안 절)였는데 쇼토쿠 태자가 자신한테 존귀한 불상이 있는데 그것을 누가 모실거냐고 하니 진하승(하타노 가와카쓰)이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하타씨는 토목 · 제방 · 양잠 · 베짜기 · 제철 · 제도 · 목공 기술로 일본이 국가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거기에서도 고대 교토의 가장 큰 공로자였습니다. 하타씨가 자리잡은 곳은 습지였는데 제방을 쌓아서 농지로 만들었습니다. 하타씨는 우즈마사 지역을 벗어나 교토 전역으로 널리 퍼져갔습니다. 우즈마사는 교토 서쪽입니다. 여기에는 누에 신사, 오사케 신사, 헤비즈카(뱀무덤)가 남아있습니다. 유홍준은 그동안 헤비즈카에 못 가 봤는데 이 책을 쓰려고 겨우 찾아갔답니다. 택시기사가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직업의 귀천 없이 자신이 할 일을 한다고. 일본사람이 개인주의라고 하는데 일할 때는 또 다른 듯합니다. 친해지면 우리나라 사람과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에는 마쓰리(잔치)가 많습니다. 교토에는 헤이안신궁 지다이마쓰리, 가모 신사 아오이 마쓰리, 그리고 야사카 신사 기온마쓰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나오지 않은 작은 마쓰리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사카, 기온이라는 말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겠군요(모르면서 들어봤다고 말하다니). 야사카는 고구려계 도래인입니다. ‘나츠메 우인장’에 나온 적 있는 야사카는 여기에서 말하는 야사카와 같을지. 세 마쓰리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기온마쓰리입니다. 한달 동안 하니까요. 본래는 어령회였다고 합니다. 어령은 원령을 제어한다는 뜻이랍니다. 마쓰리는 기원보다 원령한테 저주, 벌을 받지 않기 위한 일이군요. 하지만 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저는 일본사람과 우리나라 사람 다른 점 잘 모르겠어요. 이것은 일본소설과 드라마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일본 드라마를 보다보면 가끔 우리나라 연기자와 닮아보이는 사람도 있더군요. 누가 누구와 닮았는지 말하기 어렵지만(일본사람 이름 모르고, 우리나라 사람도 아는 사람 별로 없군요). 그렇게 가끔 우리나라 사람과 닮은 사람이 보이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 간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이제는 일본사람이죠. 우리나라와 일본 더 가깝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좀 어려울까요.
우리나라도 어느 지역이 나오는 소설이 있겠지요. 교토가 나오는 소설은 더 있을 테지만, 여기에서는 오사라기 지로의 《귀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말했습니다(제가 읽어본 소설에도 교토가 배경인 게 있을 텐데 바로 생각나지 않는군요). 교토에도 벚꽃과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더군요. 인화사 오층탑 맞은편 벚꽃은 4월 20일에 핀답니다. 벚꽃을 못 봤을 때 그곳에 가면 볼 수 있겠군요(교토에 사는 사람이라면). 일본이 일제시대 때 일은 아직도 모르는 척하는데 에조족(이누이족)한테 한 일은 1200년 만에 사과했다고 하더군요. 오래 걸렸군요. 에조 정벌을 하게 된 사람은 백제계 도래인 후손 사카노우에노였답니다. 그런 일을 하게 되다니 했습니다. 천황이 시키니 했을 테죠. 그래도 그때 에조족 두 족장 아테루이와 모레는 싸우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두 족장을 죽였습니다. 그 사과를 1200년이 지나서 한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군요. 하지만 너무 늦으면 안 될 텐데요. 교토에 가면 꼭 한번 가 봐야 하는 곳은 청수사(기요미즈데라)라고 합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멋지답니다. 이 청수사를 처음으로 세운 사람은 앞에서 말한 백제계 도래인 후손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예요. 청수사에는 청수무대라는 게 있어요. 그곳을 올려다보는 사진은 있는데 거기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은 없더군요. 내려다보는 것도 좋을 텐데요.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기분이 좀 이상해지지만, 물속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요.
다른 소설에서 비와호수 본 적 있어요(《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시바타 요시키)에 나옵니다. 세권은 교토가 배경이고 네권째에서는 도쿄로 이사합니다. 쇼타로와 함께 사는 사람이. 앞에서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 말했군요). 저는 그게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비와호수 바다 같더군요. 사진은 한장밖에 없지만. 최징이 지은 연력사에 가면서 담았더군요. 최징과 공해는 일본 불교의 두 산맥을 이룬 연력사와 동사를 지었습니다. 이때 일본 불교는 당나라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말은 왜 꺼냈을까요.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는데. 연력사는 히에이산에 있어요. 겨울에는 안 가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홍준은 겨울에 갔습니다. 원인 스님과 인연이 있는 장보고 기념탑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못 찾았습니다. 고산사는 우리나라 산사가 떠오르게 한답니다. 여기에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초상이 있어요. 그냥 생각나는 것만 조금 말했군요. 이렇게 말해도 책을 보는 것과는 다르고, 책을 보는 것과 실제 가 보는 것은 더 다르겠지요. 이 책을 보고 교토에 가면 훨씬 좋을 듯합니다. 어디에나 옛날 사람이 남긴 게 있겠지요(터만 남은 곳도 있지만). 교토에는 그게 더 많이 남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에서는 늘 역사를 빼놓지 않지만, 이번에는 교토 역사를 더 말해서인지 지금 교토에서 이런저런 시대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멋지지 않나요. 유물이 우리를 지난날로 데려다주는 것. 이런 경험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나라에서 유물을 보러가려면 조금 멀 것 같습니다(가 본 적 없지만 경주는 좀 다를지도). 교토는 사람과 가까운 곳에 유물이 있을 것 같아요. 옛날과 지금이 함께 있는 곳이죠.
이 말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우리 문화유산 잘 가꾸고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츠메 우인장 3권에서
토코 아주머니 심부름으로 그라탕 접시를 사러 벼룩시장에 간 나츠메는 나뭇가지만 있는 그림을 받아옵니다. 그 그림을 방에 걸어둔 며칠 동안 나츠메가 자고 일어나면 방에 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나츠메는 밤에 안 자고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요괴가 한 일이었습니다. 요괴 이름은 미야로 미야는 그림속에 있는 야사카를 위해 꽃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림속 나무 뒤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야와 야사카는 벚꽃이 피었을 때 만났습니다. 야사카는 몸이 별로 좋지 않아 늘 책만 보았습니다. 그런 야사카를 미야가 벚꽃 사이에서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벚꽃이 피어 있는 동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미야는 벚꽃속에 몸을 숨기고 야사카한테 말을 했습니다. 미야와 야사카는 벚꽃이 필 때만 만났습니다. 미야는 야사카가 자신이 요괴라는 것을 알면 싫어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어느 봄부터 야사카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야는 야사카를 찾아다니다 요괴가 그린 그림속에서 야사카를 찾아냈습니다. 미야는 그 그림을 들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야사카는 자신이 자유로워지면 여기저기 다니고 싶다고 했거든요(집안을 이어야 해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미야는 그 바람을 이루어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언젠가 야사카가 그림속에서 나와서 자신과 이야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미야가 그림을 가지고 다닌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에 요력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츠메 방에 걸어둔 그림은 떨어지지 않고 나중에는 나뭇가지가 그림 밖으로 뻗어나왔습니다. 그림이 나츠메 힘을 빨아들이는 듯 나츠메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미야가 그림을 태우려고 하자 나츠메는 그림을 떼어낼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시간이 가도 그림은 떨어지지 않고 나츠메 몸은 더 안 좋아져서 미야는 그림을 태우기로 마음먹습니다. 그전에 나뭇가지에 벚꽃을 그렸습니다. 나츠메와 야옹선생도 같이 거들었습니다. 정말 벚꽃이 활짝 핀 듯했습니다. 나츠메는 미야와 야사카가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은 벽에서 떨어졌습니다.

나츠메 우인장에 나온 이야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나츠메는 미야가 요괴라는 것을 야사카한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자기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나츠메도 함께 사는 아주머니와 아저씨한테 자신이 요괴를 볼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자신을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보다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예요. 언젠가 그 말을 할 날이 올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테지만, 사실은 이 책 본 다음에 <나츠메 우인장> 17권 봤습니다. 그 책 보고 쓴 것을 먼저 올리면서 앞뒤가 바뀌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가 다 기억할까 싶더군요. 다른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말을 쓴 저는 기억하죠. 그때 예전에 나온 것을 찾아봤다고 했는데, 바로 이거예요. 예전에 쓴 것을 그대로 쓸까 하다가 그것을 읽어보고 다시 정리했습니다.
희선
☆―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고, 어떤 사람은 애써서 안다.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다. (35쪽)
꽃은 화려해도 지고 마나니
우리 삶이 누구인들 영원하리.
덧없는 삶의 깊은 산을 오늘도 넘어가노니
헛된 꿈 꾸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으리라. -이로하 노래, 186쪽
일본에선 오래된 전문 상점을 노포(老舗)라고 쓰고 ‘시니세’라 읽는데, 그냥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서 4대, 5대를 이어가며 집안 전통을 이어가는 전문 상점을 말한다. 단팥죽 장사를 해도 남한테 꿀릴 것 없이 당당히 살아가는 일본사람 생활 자세는 부럽고 배울 만하다.
모두가 그 전문성을 높이 사고 장하게 생각해준다. 이거 해서 돈 벌면 때려치우고 딴것 하겠다는 자세나, 내 자식은 큰돈 되지 않는 이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다. 전문인의 자부심,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자세가 낳은 전통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정신 원동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2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