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소설은 우리한테 어떤 일을 할까. 가장 먼저 심심할 때 보면 덜 심심하다. ‘소설을 시간 때우기 위해 본다’고 하는 말 싫어하는데 이 말을 하다니. 심심할 때만 책을 보는 건 아니다. 우울할 때 책을 보면 우울함이 조금 사라진다. 이것은 소설이 재미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활자가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설은 생각하고 상상하게 한다. 아쉽게도 나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할 때가 많지만. 실제 없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실제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 《사신의 7일》에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신이 나온다. 책 제목에서는 ‘사신’이라 하지만, 책 속에는 사신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치바는 정보부에서 죽을 사람을 가르쳐주면 그 사람을 조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설의 고향’에서 저승 차사(사자)라고 했다. 검정 두루마기와 검정 입술이 생각난다. ‘전설의 고향’에서 본 저승 차사는 거의 남자였던 것 같다. 그런 것에 성이 나뉘었을 것 같지 않지만, 왜 남자만 그것을 했을까. 남자 모습이라고 해야겠다. 이 저승 차사와 치바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옷이 검다는 거다.

 

몇해 전에 《사신 치바》를 보았다. 시간이 흘러서 그 책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다. 생각나는 건 이름이 치바라는 것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 정도다. 치바만 별나게 음악을 좋아하는가 했는데, 앞으로 죽을 사람 조사를 하는 치바 동료도 다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음악을 듣기 어려운 때도 치바는 ‘음악 들을 수 없을까’ 하는 말을 해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어이없어하기도 한다. 마음속으로는 짜증낸다. 저 사람은 이런 때 잘도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은 치바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어딘가에서는 사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앞에 나타나서는 남은 시간을 잘 보내라고도 하는데 치바는 아니다. 치바는 이레 동안 사람을 조사하고 관찰해서 그 사람한테 죽음을 줄지 주지 않을지 결정한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딱 한번 ‘보류’였고, 거의 다 죽음을 맞게 했다. 결국 죽음을 줄 텐데 왜 이레 동안 조사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치바 동료는 조사 대상을 잠깐 만나고 모두 죽음을 준다. 치바는 그런 동료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 해도 치바는 성실하게 사람을 조사한다. 이것은 치바가 저도 모르게 곧 죽을 사람을 이레 동안만이라도 힘껏 살게 이끄는 일 같다.

 

이번에 치바가 만나는 사람은 한해 전에 하나뿐인 딸 나쓰미를 잃은 야마노베 료와 야마노베 마키다. 치바가 야마노베 집에 온 날 비가 내리고(이 말은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몰라서 여기에 넣었는데 뜬금없구나. 치바가 일을 할 때면 늘 비가 내린다고 한다), 야마노베 딸을 죽인 혼조 다카시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치바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 하고 야마노베와는 유치원 때 친구라고 했다. 야마노베가 그 말을 다 믿은 건 아닌 듯하다. 야마노베는 작가로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간 적이 있어서 사람들한테 이름이 잘 알려졌다. 집앞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거기에서 치바는 기자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야마노베는 치바를 집안에 들였다. 치바는 야마노베한테 복수할 거지 한다. 이런 말 들으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할 것 같은데 야마노베 부부는 침착했다. 치바가 진지하게 말해서,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치바는 에도시대에는 원수를 갚는 게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 자식과 배우자는 들어가지 않았다. 에도시대에 복잡한 절차를 밟아 원수를 찾아내 죽인 사람 많았을까. 그때는 그렇다 해도 지금은 살인을 살인으로 갚을 수 없다. 치바는 사람 일에 관심 없다. 복수를 돕지 않아도 야마노베 부부와 함께 움직인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도 슬픔이 클 텐데, 누군가한테 자식 목숨을 빼앗기면 그때는 슬픔보다 화가 더 클 듯하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야마노베 부부가 복수를 결심한 것은 나쓰미를 죽인 혼조 다카시가 보통 사람이 아닌 사이코패스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서는 스물다섯 가운데서 한사람은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다른 책에서는 소시오패스라고 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용서를 빌어도 그 말을 들을까 말까 할 텐데, 혼조 다카시는 야마노베 부부를 큰 슬픔에 빠뜨리고 절망하게 하려 했다. 야마노베 부부 두 사람만 혼조 다카시를 찾아갔다면 혼조 다카시가 친 덫에 그대로 걸려들었을 거다. 하지만 거기에는 치바가 있었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실제는 사람이 아닌 사신. 치바가 있어서 혼조 다카시 계획은 틀어지고 야마노베 부부는 세 사람을 구했다. 치바 식으로 말하면 그 사람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잘못된 표지판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정보부에서 사람을 빨리 죽게 해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균형을 잡으려고 사람 목숨을 돌려주는 일을 한다고.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실수하면 제대로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목숨을 빼앗았을 때는 사과하기 어렵겠다. 치바는 그 일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제도를 갑자기 하면 다른 문제가 일어난다고. 우리나라에서도 표지판 잘못된 거 알면 벌금 낸 사람한테 그 돈 돌려줄까. 그렇게 안 하고 아무도 모르게 고칠 것 같다. 다른 것은 잘못해도 바로잡을 수 있지만 사람 목숨과 관계있는 건 잘못하면 안 된다. 치바는 정보부에서 전화를 받고 지금 조사하는 사람 수명을 늘려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나라면 그렇게 해주고 싶을 텐데. 한해 전에 딸을 잃고 자신도 죽는다면 억울할 듯해서. 다시 생각하니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은 걸 모르겠다. 남은 사람이 이제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슬퍼하는 거지.

 

야마노베는 치바를 만나고 가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야마노베 아버지는 자신이 죽는 게 무섭고 아들이 죽는 게 무서워서 달아났다. 딸 죽음을 경험한 야마노베가 더 용기있는 걸까. 아니 그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랬겠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살게 한 건지도. 야마노베 자신이 죽을 것을 몰랐지만 저도 모르게 느낀 건 아닐까 싶다. 아버지를 자꾸 생각하는 걸 보면. 죽음은 누구한테나 찾아온다. 사람은 죽기에 열심히 살아간다. 야마노베 아버지도 언젠가 죽으니까 그날그날을 잡으려고 했는데 거기에 식구는 없었다. 자신이 나이 들어가면서, 아들이 나이 먹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을지도. 죽을 때가 되어서는 그런 이야기를 야마노베한테 한다. 야마노베는 아버지 때문에 죽는 게 무섭지 않다고 느낀다. 누구한테나 찾아오는 죽음, 이것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한테도 찾아온다. 치바는 혼자 다카시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했다.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큰일을 저지른 사람과 비슷할까.

 

이 책을 다 보고는 어떤 일을 당하면 그대로 갚아도 된다고 말하는 걸까 했다. 그런 말을 하려고 이 이야기를 쓴 건 아니겠지. 그대로 갚는다고 해도 죽은 딸이 돌아오고 기뻐하지 않으니까. 복수도 산 사람을 위한 것이구나.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하려고 하는지도. 이런 이야기를 보고 죄를 짓고 법망을 피해서 빠져나가는 사람을 잘 잡아달라, 일지도.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고 낯설지 않은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바로 치바. 치바가 사람 일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야마노베를 도와주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음악을 듣기 위해서다 말했지만. 치바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을 거다. 일천년 넘게 이 일을 하는 걸 보면. 야마노베는 지난 한해는 괴롭게 보냈지만 치바와 함께 한 한주는 어느 때보다 잘 보냈다. 즐거웠다고 했다. 치바가 사람한테 죽음을 주는 일을 하지만 마지막 이레는 잘 보내게 하는 듯하다. 이레 동안 하는 조사 치바는 앞으로도 성실하게 하겠지. 결과가 같아도 그것을 하는 시간을 잘 보낸다면 그걸로 괜찮겠다.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기다.

 

 

 

희선

 

 

 

 

☆―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다리 살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는데. 이제 눈도 같은 꼴이 날 거예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앞이 하나도 안 보이게 된다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아니, 그건 아니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바 씨가 대꾸했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굉장히 안정된 말투였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천지 차이야. 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해도 그건 죽는 것과는 거의 상관없어.”  (274쪽)

 

 

“평화롭게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게. 살아간다는 건 힘든 일이나 무서운 일이 이어지는 거니까. 죽는다는 건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거잖아.”

 

“가장 큰 거?”

 

“죽음이 가장 무엇운 일 아닐까. 게다가 무섭게도 그 가장 무서운 죽음은 누구한테든 반드시 찾아와.”

 

언젠가 우리는 죽는다. 그건 결코 피할 수 없는 ‘절대’ 법칙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아이든 반드시, 죽음을 맞이할 때가 온다. 어떻게 살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반드시 ‘가장 무서운 일’이 찾아온다.

 

“그래서 네 아버지, 그것 때문에 애썼어.”

 

“무엇 때문에?”

 

“언젠가 죽는 때가 찾아오지만, 그건 결코 무서운 게 아니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492~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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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소담출판사  2014년 07월 28일

 

 

 

 

 

 

 

 

 

 

 

   글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쓰다니. 그것보다 별로 생각나는 게 없어. 이번에 만난 책에 실린 글 제목은 ㄱ에서 ㅎ까지야. 차례가 사전과 같아. 나도 따라서 ㄱ에서 ㅎ까지에 맞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하다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뒀어. 대신 첫소리 ㄱ이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어쩌면 중간에 쓸데없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 이렇게라도 ㅎ까지 쓴다면 좋겠지만 끝까지 못 쓸지도 몰라.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황경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언제일까. 잘 생각나지 않아. 다른 데서 먼저 알고 페이퍼(PAPER)를 본 건지, 페이퍼를 보고 나서 안 건지. 황경신 하면 페이퍼와 뗄 수 없는 이름이기는 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페이퍼를 만든 김원 아저씨일지도 모르겠지만. 페이퍼는 잡지 이름이야. 몇해 전까지 보았는데 지금은 안 봐. 사도 다 볼 때가 별로 없어서 그만 보기로 했어(어쩐지 김원 아저씨한테 미안하군). 그때 ‘책을 다 못 보는 것은 책이 크기 때문이야’ 하는 핑계를 댔어, 나한테. 페이퍼에는 멋진 사진과 글이 실려있어. 그 책을 보고 나도 사진을 잘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물론 글도 잘 써 보고 싶었지. 지금은 사진 잘 안 보게 되었어. 맞다, 달마다 주제가 있었어. 책 속에는 그 주제에 맞는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이 있었어. 그것을 보면서 이런 것은 대체 어떻게 쓸까 했는데, 아직도 글 쓰는 건 어려워. 페이퍼 안에는 황경신 글도 있었어. 시간이 흐르면 그 글이 모여서 책이 되기도 했어. 황경신은 신화, 그림도 이야기했어.

 

 

 

                
                
                
                

                      지금이 11월이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네권 모두 2007년 페이퍼다

                    올해 페이퍼는 열아홉살을 맞이했다고 한다 다음해에는 스무살이다

 

 

 

 

 

   다락방이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그리고 인터넷 속 페이퍼에도. 다락방이 있는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아. 아니 내가 모르는 거고 큰 집에도 다락방 만들겠다. 내가 살았던 곳은 방 한 칸에 작은 다락이 있었어. 천장이 낮아서 일어설 수 없지만 앉으면 괜찮았어. 혼자 있기에 딱 좋은 곳이지. 난 그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편지를 썼어. 편지쓰기보다 숙제를 했던가. 책은 안 읽었어. 또 생각하니 아쉽다. 책 읽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일은 없었지만 다락방이 있던 곳에 살아본 것은 괜찮은 일 같아. 다락방은 집집마다 달랐을 것 같기도 해. 자신이 기억하는 다락방과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다락방 다를지도 모르겠어. 이것도 조금 재미있지.

 

 

 

 

 

   라디오는 내 친구

      (책도 내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지

      “고마워”

 

 

 

 

 

   마지막 남은 이야기에서 ‘밀리언 달러 초콜릿’을 말했는데, 나는 ‘초콜릿 우체국’을 생각하고 그것을 꺼내 보았어. 책 제목을 보고 이것은 그냥 ‘초콜릿 우체국’이네 했지. 곧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더 나중에 나온 책으로 봤다는 게 생각났어. ‘초콜릿 우체국’은 어느 날 초콜릿 우체국을 본 ‘나’가 그곳에 들어가서 지난날 자신이 지난날 그 사람한테 초콜릿을 보내는 이야기야. 본래는 초콜릿을 주지 않았는데. 주소 몰라도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군. 신기한 이야기지. 2월 14일이 지나자 초콜릿 우체국은 연기처럼 사라졌어. ‘나’는 집에서 지난날 그 사람한테서 받은 편지, 물건을 보다가 시집 속에서 ‘초콜릿 잘 받았어’ 하는 말이 적힌 종이를 봐. 지난날이 조금 바뀌어도 지금은 그대로인 듯해. 그래도 추억이 하나 늘어난 거니 괜찮은가.

 

 

 

 

 

   밤, 좋아해. 낮도 좋아해.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좋은 거구나. 아니 사실 밤을 조금 더 좋아해. 어두운 것보다 조용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별은 낮보다 밤에 더 잘 보이잖아.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지금 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 별빛이구나(언젠가도 한 말). 어쩐지 밤에는 낮보다 신비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서운 일도 일어나지만.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지만 늘 반대도 생각해. 빛과 어둠은 바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겠지. 살아가는 일도 그렇구나. 기쁜 일 반, 괴로운 일 반.

 

 

 

 

 

   시간은 흘러간다

      사람도 흘러간다

      마음도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기

 

 

 

 

 

   어느새 ㅇ이라고 하고 싶은데 아직 여섯이나 남았어. 무엇을 쓸지 정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대로 쓰니 이야기가 뒤죽박죽이야. 황경신 책을 읽고 느낌을 써 본 적은 겨우 한번이야. 그것은 느낌이 아니었군. 마음에 드는 제목과 내가 쓰고 싶은 제목으로 짧게 썼지. 얼마전에도 한번 그렇게 해 보았는데 좋은 게 생각나지 않아서 유치한 것만 썼어. 그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어. 어떤 글을 보면 나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막상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지’ 하는 거야. 황경신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부러워. 멋진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 쓰는 사람은 다 부러워.

 

 

 

 

 

   지난날도 다가올 날도 아닌 바로 지금

 

 

 

 

 

   천마디 마음 없는 말보다

      한마디 마음 담긴 말이 듣고 싶어

      아니, 아니,

      네가 하는 말은 뭐든 좋아

      내가 다 들을 테니 말해봐

 

 

 

 

 

   코코아, 커피 뭐가 좋아. 쌀쌀할 때는 따듯한 게 좋지. 나는 더울 때도 따듯한 걸로 마셔. 물은 차가운 거. 이건 언제나 그렇구나. 날이 차고 건조할 때는 따듯한 물 많이 마시면 좋대.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알아도 그렇게 안 하거든. 사람 체질에 따라 물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겠지. 어쩌다가 이렇게 흐른 거지. 코코아든 커피든 반가운(좋은) 사람과 함께 하길.

 

 

 

 

 

   텅 빈 내 마음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따듯한 시,

      따듯한 노래,

      따듯한 마음,

 

      따듯한……

 

 

 

 

 

   피아노는 기다렸다. 뚜껑을 열고 자신을 쳐줄 사람을. 한때 피아노 둘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피아노가 하는 일은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뿐. 피아노는 차라리 누군가 자신을 부수어 추운 밤을 따스하게 보내길 바랐다. 피아노한테는 그런 기회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피아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렀다. 피아노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잊어갈 무렵 여자아이가 찾아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

 

 

해철이는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가끔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참았다.

 

해철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살았다. 어느 날 해철이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다. “해철아,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엄마가 나중에 해철이 데리러 올게.”  “엄마, 어디가, 언제 올 건데?”  “미안하다, 해철아.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해철이 걱정은 말고 잘 살아.” 하늘이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 엄마!” 해철이 울음소리에도 해철이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엄마를 따라 나가려는 해철이를 할머니가 잡았다. 다음날부터 해철이 해바라기가 시작되었다. 정류장에 버스는 자주 오지 않았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가끔 버스가 서면, 해철이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세 해가 지나도록 해철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해철이는 엄마를 믿고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해철이가 정류장에 가자 버스가 왔다. 누가 내리는지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 버스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그 자리에 해철이 엄마가 서 있었다.

 

 

(본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바꿨습니다. 이런 글에 이름을 써서 미안하군요.)

 

 

 

희선

 

 

 

 

☆―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사랑과 평화를 집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 밖을 바라보면서, 바람 불고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그리워한다.  (17쪽)

 

 

이제 아셨군요. 내가 왜 볼펜이 되고 싶어하는지. 나는 내 삶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멋진 사람을 만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겠다는 욕심 같은 건 지나가는 개한테나 던져주면 그만이죠. 누군가한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좀 더 사랑받고 싶다거나, 좀 더 사랑하고 싶다거나 하면서, 자만과 자학을 오가는 정상이 아닌 정신 상태로 밤마다 쓸데없는 감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좋고, 세상을 구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하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내가 아닌 누군가 되지 않고도 죽을 수 있어요.  (38~39쪽)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며,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랑한 것은 저마다 만들어 낸 허상.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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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12-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한 글이군요. 이 글을 읽으니 지나간 몇 가지 것들이 저도 추억이 됩니다. (자꾸만 옛날을 추억하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뿐일까요) 페이퍼 잡지 같은 것 말이죠. 예전에 누군가가 `페이퍼`라는 잡지가 좋다고 해서 저도 몇 번 사본 적 있어요. 예전에는 잡지 한 권만 사서 들고와도 뭔가 마음이 들뜨고 그랬는데, 이제는 별로 그런 감흥이 없어요. 학교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 잡지가 나오는 날을 미리 물어봤다가 나왔다고 하면 연락받고 가서 사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뿐더러, 그런 잡지도 거의 사라지고 없군요. 핫뮤직이나 키노나 서브나 같은 잡지들 말입니다. 이제 집으로 잡지를 가져다주는 좋은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데, 왜 그런 감흥은 사라져버렸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시간도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가고, 결국 마음도 흘러가니, 말씀하신대로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요...


희선 2014-12-12 01: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책이 나오는 날을 물어보고, 그날 사서 왔을 때 감흥은 없어도, 책을 산 다음 그게 오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오면 책이 왔구나 하는 기쁨을 느끼고... 아쉽게도 그러고 나면 기쁨이 줄어드는군요 책을 보는 기쁨보다 책을 사는 기쁨이 더 크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저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도 페이퍼는 책방에 가서 사왔어요(한달에 한번 나와서 그런 건지도) 집에서 좀 먼 곳인데, 그게 나오는 날쯤 가죠 그날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어서 다음에 다시 가야 했어요 그걸 사서 올 때는 기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차례대로 안 봐도 괜찮았군요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그땐 그랬지(노래가 생각나는군요)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아쉬워요 시간이 더 흐르면 ‘그렇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지나가면 늘 아쉽기 때문에 그때 잘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군요 그리고 지나가지 않으면 아쉬운지 아쉽지 않은지 모르는 것도 있어요 지금 아는 건 뭐지, 싶기도 하네요

흘러가고 바뀌어가는 것도 있지만 그대로인 것도 있겠죠 뭔가 하나쯤......

며칠은 덜 추웠는데, 다시 추워지고 다음주에는 더 추워진다고 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올해 이사카 고타로 책 자주 나오는군요. 새로 나오는 것도 있고 예전에 나온 게 다시 나오기도 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보다 적지만. 전에는 차가 말을 했는데 이번에는 고양이가 말을 합니다. 책을 보는 우리는 우연히 톰을 만난 ‘나’처럼 톰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지만 이야기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나’와 사람들. ‘나’는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낚시를 하게 됐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는데 무슨 낚시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것 말고 다른 취미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바깥을 돌아다니게 된 거겠지요. ‘나’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는데 배가 뒤집힙니다. 그때 바람이 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니 잿빛 고양이가 ‘나’ 가슴 위에서 말을 했어요. 톰이 알고 말을 한 건 아니고 그냥 했더니 ‘나’가 톰 말을 알아들은 거예요. 그때는 서로 놀랐습니다. 배가 뒤집혔을 때 ‘나’는 어딘가 다른 세상에 간 것인지도. 톰이 사는 곳은 우리가 사는 곳하고 달랐습니다. 원을 그리면 반은 철국이고 반은 톰이 사는 나라였어요(나라 이름은 모르는군요). 반원 안에서 왕이 있는 마을이 톰이 사는 곳입니다. 나라가 반원보다 작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작은 나라를 철국이 지배하게 된 이야기를 톰이 ‘나’한테 들려줍니다.

 

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딘가 조금 이상합니다. 저는 그런가 했을 뿐이군요. 아니 그 나라에서는 왜 나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까 하는 생각은 했군요. ‘나’는 톰이 해준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철국하고는 오래전에 싸우다 지고, 다시 여덟해 동안 싸움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게 끝나고 철국 병사가 그 나라에 와서 왕인 칸토를 죽이고 마을 사람 몇을 잡아갔습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쿠파 병사가 자신들을 도와주러 오기를 바랐습니다. 쿠파 병사는 뭐냐구요. 십년 전까지 그 나라에서는 해마다 몇 사람을 뽑아서 삼나무가 쿠파가 되었을 때 무찔렀습니다. 삼나무가 생물이 된다니 조금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믿었습니다. 쿠파 병사에 뽑히는 걸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쿠파 병사가 되면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쿠파를 무찌를 때 사람들은 쿠파 속에 든 물을 뒤집어써서 투명해지거든요. 이 이야기는 그 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겁니다. 십년 전에 왕 칸토는 쿠파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는 쿠파 병사를 뽑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투명해진 쿠파 병사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철국 병사가 왔을 때 아무도 타지 않은 말이 한마리 있었습니다.

 

앞에 나온 알쏭달쏭한 일은 나중에 다 풀립니다. 톰이 ‘나’한테 철국 병사를 쫓아내달라고 했을 때는 어떻게 혼자 그것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그럴만 해서 한 말이더군요. 어떤 이야기든 끝까지 보면 앞에 나온 수수께끼는 풀리는군요(아니 끝까지 알 수 없는 것도 가끔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한번 생각해볼까요. 예전에는 반공만화라는 게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북한군은 늑대였습니다(아주 어릴 때 본 건데도 기억하다니). 어린이는 그것을 보면 북한 사람은 늑대인가보다 생각하겠지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거짓 정보군요. 톰이 사는 그 나라도 누군가 정보를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지요. 다른 것을 사람들이 모르게 하려고 왕은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까닭으로 나라를 높은 벽으로 둘러쌌습니다.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 나라 사람이 밖에 나가는 것도 막은 겁니다. 적도 진짜 적이 아니고 만들어낸 겁니다(쿠파). 철국은 있지만. 앞에서는 누군가라 하고 뒤에서는 왕이라 했군요. 아주 작아도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면 좋은 건지도 모르죠. 그것 또한 힘이군요. 사람은 힘 맛을 알게 되면 그것을 놓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지요.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착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도 힘을 가진 사람 진짜 마음은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카 고타로는 비슷한 말을 자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짜라 믿고 있는 게 거짓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라고 하네요. 어느 한쪽만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렇구나 하기보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죠. 어렵다고 해서 그냥 있기보다 뭐라도 해 보기. 쥐도 비슷했습니다. 쥐는 늘 고양이한테 쫓기는 신세였는데 바깥에서 온 쥐가 고양이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어요. 고양이는 쥐가 말을 하는 걸 듣고 놀랍니다. 말을 나누면 고양이는 쥐를 잡기 어렵겠지요. 사람도 동 · 식물이 말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괴롭히죠. 우리가 말을 못 알아들을 뿐이고 동 · 식물도 괴로움을 느끼겠지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같은 말을 하니 더 잘 통할 텐데 그게 어렵기도 하군요. 그것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럴 때는 아무리 말해도 싸움밖에는 안 될지도. 사람은 왜 잘 모를까요.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도 맞는다는 것을.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입니다(한번도 그러지 않은 것처럼 말했군요). 마음을 닫지 않아야 할 텐데.

 

쥐와 고양이는 우리나라 사람과 다른 나라 사람으로 바꾸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쥐는 힘없는 쪽이군요. 고양이가 말해서 나쓰메 소세키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보기만 했던가요. 실제 고양이와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모르는 척할지도 모르죠. 그래도 사람은 그러면 안 되겠지요. 만나고 말을 하게 되어서 힘들어하면 모르는 척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어요. 요괴를 만난 나츠메예요. 힘든 사람을 보면 모르는 척하지 않고 말이라도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못해서 이런 말을 했네요. 말 들어주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 책을 봐서 그런지 꿈에 고양이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아니고 햄스터였는데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먹이를 줘야 할 텐데 생각하고 그것을 찾으러 밖에 나갔더니 고양이도 따라서 밖에 나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고양이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전에도 이런 일 있었으니 괜찮겠지 한 듯합니다. 먹이는 안에서 찾아야지 왜 밖에서 찾았을까요. 다음날에는 쥐가 나왔습니다. 이 책 하루에 다 못 봤습니다. 하루 만에 보는 책 별로 없네요. 쥐는 한두 마리가 아니고 떼로 나왔습니다. 그곳은 학교 교실이었습니다. 쥐떼가 나와서 ‘발을 들어야 해’ 하고 생각했는데,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아닌 꿈이군요.

 

여기 나온 고양이를 톰이라고 한 건 이사카 고타로가 만화 <톰과 제리>를 좋아해서일까요. 쥐 가운데는 이름이 제리인 쥐가 있었을지.

 

 

 

희선

 

 

 

 

☆―

 

“(……) 지금까지는 커다란 돌을 앞에 두고 그것을 피해다니고 있었을 뿐입니다. 두려운 마음에 겁을 먹고 눈을 돌린 채 그 옆으로 돌아서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밀어 봐야 한다’고. 밀어보면 돌은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땅에 박힌 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밀어는 봐야 한다고요.”  (170쪽)

 


서로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고양이와 쥐 관계는 평행선일 것이다. 그러나 아주 조금이라도 상대한테 다가서고자 마음먹는다면 두 선은 언젠가 어딘가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남는다.  (529~5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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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오랫동안 혼자 사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건 외로움일까.

 

너 : 그런 말이 많지.

 

나 : 쓸쓸하지 않다면 오래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까.

 

너 : 그건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

 

나 : 사람은 하고 싶고 바라는 게 있어야 살아가는 게 즐겁겠지.

 

너 : 그렇지 않을까.

 

나 : 무엇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거 하나라도 있다면 혼자여도 살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너 : 혼자라 해도 진짜 혼자는 아닐지도 몰라.

 

 

 

 

 

조용하고 쓸쓸한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김동영

  달  2013년 11월 19일

 

 

 

 

 

 

 

 

 

 

 

 

의학이 아주 발전한 세상은 어떨까. 지금도 사람은 오래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수술을 해야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수술을 받을까.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래 사는 것도 가진 사람이나 하지 않을까. 있으니까 오래 살아도 걱정 없을 거다. 없는 사람은 오래 살면 더 비참해질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라니. 여기 나온 ‘나’도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교수를 하다가 연구소를 다녔다. 나이가 여든일곱이 되어 정년을 맞았다.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하지 않았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다른 계획없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든일곱에 정년을 맞다니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세상은 의학이 발달해서 사랑니에 있는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그 수술을 한 나이에 겉모습이 멈춘다. 나이를 더 먹어도 늙지 않는다. 그것은 겉만 그렇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암에 걸려도 죽지 않았다. 가끔 의학에 도움을 받으면 젊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 수 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노인 일자리가 가장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진데. 그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쩐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거의 그것을 괜히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사람 이야기가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수술을 하기 전에 제대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나’는 여든일곱을 맞고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어떤 연구소냐 하면 수학 공식 연구 아니 검토라고 해야 하나. 일을 그만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사는 곳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나’는 그곳에 가는 걸 잠시 늦추고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글로 적기로 했다. 누군가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정리였다. ‘나’가 글을 쓰는 곳은 카페 ‘노웨어’다. ‘나’는 그곳에서 주인 J와 고등학생 여자아이를 만난다. J와 음악 이야기를 하다 친해지고 여자아이하고도 비슷했다. 여자아이한테는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악, 책. 나이를 먹으면 지난 일을 떠올리고 살아간다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이럴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겉모습은 오십대고 진짜 나이는 여든일곱이라는 거다. 겉모습 때문에 여자아이는 ‘나’를 아저씨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나’가 말해주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해주지 않는 이야기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옛날 일을 생각했다. 첫번째 부인, 두번째 부인 그리고 딸과 아들. 지금도 식구가 참 멀어진 느낌인데 이 이야기에서는 더 멀다. 딸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아들은 그것을 자연에 거스르는 일이다 생각했다. 나라라는 것도 없어졌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때가 지금과 같은 2014년이다. 연도를 좀더 뒤로 했다면 나았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우리 세계하고는 다른 세계라 생각하면 괜찮겠다. 세계가 여러개 있으면 과학, 의학이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이상하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쓸쓸한 느낌이 든다. 이 소설도 그렇다. ‘나’가 쓸쓸해했다. ‘나’와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까. 이 점은 조금 이상하다. ‘나’와 친한 사람은 다 오래 사는 것을 싫어했다는 말이 되니까. ‘나’가 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이 하나 둘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그렇구나 할 텐데. ‘나’는 이제와서 왜 자신이 줄기세포 이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둘레에 사람이 없다 해도 그렇게 희망이 없을까. 오래 살면 사는 게 지칠지도 모르겠다. 함께 추억을 나눌 사람도 없다면. 사실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나’가 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잘하지 못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제대로 해 본 게 없다. ‘나’는 겉모습과 나이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자연스럽게 나이 들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지금도 나이하고는 다르게 젊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것은 성형수술로 그렇게 만든 거겠지. 사람은 나이 드는 것도 두려워한다. 어쩌면 죽는 것보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더 두려워하는지도. 책속에 나온 것 같은 시대가 올까. 아주 아니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성형수술보다 안전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을 거스르면 거기에 따르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젊은 모습으로 오래 살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좋아할까. 앞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구나. 오래 살아도 할 게 없으면 그 시간이 지루할 것이다. 친구가 있어서 가끔이라도 만나면 모를까. 나이 먹고도 지루하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른 것은 잘 안 할 것 같다. 지금처럼 책이나 보면서 살겠지. 알고 싶은 게 언제나 있으면 좋겠다. 가끔 뭔가 안다고 좋을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옛날을 기억하고 살기보다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게 좋겠다. 지나간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잠깐 그리워하는 건 괜찮지만 거기에 매이면 안 좋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때도 없다(슬프구나).

 

이 책을 쓴 작가를 아주 몰랐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조금 알고 있어선지 작가 자신의 일도 썼다는 걸 알았다(작가는 나를 잘 모른다). 그것을 느낀 사람은 나만이 아니겠다. 다른 작가도 자기 일을 소설에 쓸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런 거 몰라도 상관없겠다. 글을 보는 거지 작가를 보는 건 아니니까.

 

 

 

 

☆―

 

“죽을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거의 모든 친구들은 죽었거나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식구들도 어딘가에 있긴 하지만 이젠 만나지 못하니까.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었지.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나만 빼고 모두 숨어버린 것 같구나.”  (64쪽)

 

 

“사람이 늙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겉모습은 바뀌지 않더라도 몸안에서는 나이가 들어간단다. 당연히 기억력도. 그리고 결국 죽어.”

 

“죽어요?”

 

“그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단다. 그리고 녹슬어가는 기계처럼 노쇠해가고……. 오래 살긴 하지만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구나. 이상하네요. 저는 그냥 그대로 멈춰 있는 줄 알았는데.”  (102쪽)

 

 

 

 

 

 

 

잠깐 시간 내줘

 

  말하자면 좋은 사람

  정이현   백두리 그림

  마음산책  2014년 04월 25일

 

 

 

 

 

 

 

 

 

 

 

*밑에 쓴 제목은 여기 실린 소설 제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건 소설과 별로 상관없지만, ‘비밀의 화원’ ‘시티투어버스’는 소설을 본 느낌에 가깝습니다.

 

 

 

 

견디다

 

 

사는 건

견디는 일

언젠가 좋은 날도 오겠지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어때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야

 

 

 

 

 

비밀의 화원

 

 

여자가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뭐지’하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 그때 찾아낸 곳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곳에서는 자신을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 하지 않아. 아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 일 잘하고 쉴 때는 여기저기 다니는 이십대 아가씨가 말이야. 거기에 잠깐 빠지는 것은 좋지만 그게 바로 나야, 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그렇지. 집에서 식구들한테 자신이 지금 어떤지 솔직하게 말하고, 예전에 자신은 무엇을 좋아했는지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자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건 아니잖아.

 

 

 

 

 

또다시 성탄절

 

 

멈추지 않는 시간은 또다시 그날을 데리고 온다.

다시 찾아와서 좋지만 그날이 언제나 같은 건 아니다.

어느 한 날을 정하고 해마다 추억을 만들면 어떨까.

자신이 태어난 날도 좋지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성탄절이 더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그날 추억만 떠올리게 될지도.

추억은 많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나라도 마음에 깊이 새기면 좋은 거겠지.

 

 

 

 

 

시티투어버스

 

 

새해 첫날에는 시티투어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것을 모르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자기 혼자라면 쓸쓸하겠지. 누군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조금 나을지도. 그렇게 모르는 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서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와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다. 때로는 현실이 더 영화나 소설 같다고 하기도 하는구나. 두 사람이 꼭 남자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 남자 둘은 좀 재미없을까. 그때는 나이 많은 아저씨와 고등학생 남자아이면 괜찮을지도. 두 사람은 잠시 그 도시를 함께 돌아보다 이야기를 나눈다. 아저씨는 아들을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아닌가. 집에서는 자기 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는 스스럼없이 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누구나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큰눈

 

 

일백년 만에 내린 큰눈은 사람들 발을 묶어두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짧은 환상,

산골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보고 싶을 때는 밤하늘을 봐

 

 

 

 

 

그 여름 끝

 

 

올여름은 다른 해보다 그렇게 덥지 않았다. 입추가 지나자 벌써 가을이 온 것 같았다. 아침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때는 여름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일 없는 여름이지만 간다고 하니 조금 아쉬웠다. 가을 겨울 봄이 지나면 다시 여름이 오겠지만.

 

그 여름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생 때였던가.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다시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름이 끝나갈 때마다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가깝지 않으니까. 가끔 어떤 말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니 신기하다. 추억이 없어도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거겠지. 이 세상에 그 사람이 없다 해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좋은 거겠지.

 

 

 

 

 

잘 가 하는 말 대신

 

 

우리가 지금 헤어진다고 해도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거야

조금 흔한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잘 가”하는 말 대신 “잘 부탁해” 했어

이 말 좋지 않아

 

“앞으로 잘 부탁해”

 

 

 

희선

 

 

 

 

☆―

 

‘자신을 완벽하게 고백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다.’  (198쪽)

 

 

 

 

 

  

반달가슴곰/가문비나무  산양/모데미풀   수달/산개나리   하늘다람쥐/솔나리   새홀리기/참배암차즈기

사향노루/설악눈주목   담비/노랑무늬붓꽃   꼬리치레도로뇽/금강초롱꽃   금강모치/구상나무   열목어/주목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고유 동식물

 

2014년도 크리스마스 씰 그림은 우리 고유의 자연문화의 인식을 다시 생각함과 함께, 환경오염, 기후변화로 점점 본래 모습을 잃어가는 자연을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마음을 갖게 이끌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자생하는 동식물을 소재로 살려 썼습니다. 백두대간을 총 10개 구간으로 구분하고 해당 구간에 서식하고 있는 20종의 고유 동물을 골라 동식물 저마다의 특징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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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레임 이모탈 시리즈 4
앨리슨 노엘 지음, 김은경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죽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아갈까. 행복은 사람마다 달라서 사람 수만큼 있다고 한다. 지금은 행복을 하나로만 생각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나한테는 어느 것 하나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행복하고 멀까.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아니다 말하기 어렵다. 나는 ‘행복’이라는 건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이 말을 많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때 자신이 갖고 싶은 걸 다 갖고 있어서라고 한다. 자신이 바라는 게 다 있는데 나이를 먹고 병에 걸려 죽으면 억울할 것이다. 그래서 죽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고 할거다. 그런 거 찾은 사람이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사람이 뱀파이어나 죽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게 널리 퍼져서 사람들이 다시 다른 이야기로 만들지 않을까 하고. 진짜는 어떤지 나도 잘 모른다.

 

지난번에는 해독제를 치료하는 치료제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해독제라고 했다.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했다(우리말로 옮긴 사람이 바뀌었다). 에버가 데이먼을 살리려고 먹인 해독제에는 다른 독이 있었다. 그것을 또 해독해야 에버와 데이먼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뭐가 그렇게 급할까 했는데 이번에도 에버는 해독제를 얻으려고 무척 애썼다. 로만이 에버 말을 잘 듣게 하려고 건 마법은 에버가 로만을 자꾸 생각하게 만들고 그런 모습을 본 헤이븐은 에버와 멀어졌다. 헤이븐은 자신이 죽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을 기쁘게 여겼다. 에버가 헤이븐한테 로만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게 하니 에버가 자신을 시샘한다고 보았다. 데이먼은 에버한테 하지 못하게 하는 게 있고, 에버는 헤이븐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있구나 했다. 에버와 헤이븐이 비슷한데 에버는 자신이 그런지 몰랐다. 본래 그런 거긴 하다. 남은 잘 보여도 자신은 잘 보이지 않는. 에버는 마법 이야기를 데이먼한테 숨겼다. 에버가 진짜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 사람은 데이먼인데 엉뚱하게 주드한테 모든 걸 말하고 도와달라고 했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는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 나는 대체 왜 이런 걸 보기로 한 거야 했다. 다음날 뒤를 보니 에버가 데이먼한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건 마법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에버가 건 마법이 에버가 데이먼한테 말하는 걸 막았다). 그렇다 해도 에버는 잘못했다. 데이먼이 쓰지 마라 한 마법을 썼으니까.

 

해독제는 로만과 함께 사라졌다는 건 무슨 뜻일까. 에버는 에바 아줌마 때문에 로만을 싫어하는 마음에서 벗어났다. 왜 싫어하는 마음이냐 하면, 그런 것은 더 나쁜 것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에버가 로만을 싫어하면 할수록 마음속 어둠은 로만을 바랐다. 우리가 안 좋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안 좋아지지 않는가. 그것과도 비슷한 일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 어린 시절을 보면 부모한테 학대받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 로만도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했다. 그런 때 드리나가 로만한테 마음을 써주어서 로만은 드리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로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가지지 못한 것을 더 바라는 마음에 가까웠다(집착). 에버는 로만 어린시절을 알고 그것을 불쌍하게 여기고 로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것까지는 좋은데 바로 로만을 만나러 간다. 에버가 로만 마음을 움직였지만 주드가 나타나서 잘못 생각하고 일을 망쳤다. 주드는 자신이 에버를 사백년 동안 좋아했지만 데이먼이 나타나서 이뤄지지 않은 걸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만들고 싶어했다. 로만은 죽고 해독제 병은 깨어졌다. 그곳에 헤이븐이 와서 일은 더 복잡하게 되었다. 헤이븐은 에버와 데이먼 주드한테 나쁜 일을 하겠다고 했다. 사랑과 우정 앞에서 사람은 거의 사랑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듯하다. 로만이 죽지 않았다면 헤이븐이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았겠다.

 

누구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아무리 그 사람은 나쁘다 말해도 그 말을 곧이 듣지 않을 거다. 에버도 헤이븐한테 로만은 안 된다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는 로만을 죽게 했다. 실제 죽인 건 주드라 해도 에버가 그렇게 만든 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드리나, 로만은 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죽었다. 둘 마음이 집착이라 해도 그 마음을 나쁘다 할 수 있을까. 이제는 헤이븐이 그 자리에 들어가겠다. 헤이븐하고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으면 한다. 아니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안 좋게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죽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약점을 공격하면 죽는다. 주드는 에버한테 그 말을 들었다. 주드는 보통사람이다, 영 힘이 좀 센.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떤 것은 괜찮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마음에 들지 않게 흐르기도 한다. 에버는 이런 경험을 해서 마음이 자라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지 않는 사람과 그 사람이 오랫동안 찾아다닌 사람을 만나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맞겠지만.

 

소설을 쓴 사람은 서양 사람인데 동양 사상도 들어있다. 그것은 ‘업’이다. 남은 이야기를 다 보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있겠지. 조금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음식을 안 먹고 엘릭서를 마시는가 했다. 이 엘릭서는 한번 마시면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엘릭서를 먹으면 먹을수록 초능력이 세진다. 예전에 엘릭서가 현자의 돌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맞는가보다.

 

 

 

희선

 

 

 

 

☆―

 

“너에 대한 내 마음은 형편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야. 난 너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아. 너한테 질리지도 않아. 널 비난하지도 않고. 난 그냥 널 사랑할 뿐이야. 진심으로.”

 

(……)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어, 영원히. 알겠어? 난 아무데도 안 가고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뭔가 필요하다거나 곤경에 놓일 때, 혹은 감당 못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널 도울 테니까.”  (113쪽)

 

 

“누구나 저마다 삶의 여정이 있고 충족시켜야 할 운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내가 평온한 거였어. 그리고 지금은 내 운명을 잘 알고 있지.”

 

에바 아줌마를 바라보니 아줌마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덧붙였다.

 

“내 삶의 과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내 재능을 쓰는 거고, 두려움 없이 살고 늘 어떻게든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지난날 다하지 못한, 쌍둥이 키우는 일을 해내는 거야.”  (248쪽)

 

-쌍둥이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다. 마지막 말처럼 쌍둥이는 데이먼 집을 떠나 에바 아줌마와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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