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 참 잘 간다. 시간은 사람 사정 봐주지 않고 저 혼자 잘도 간다. 얼마전에 ‘희망이 외롭다’는 시를 보았는데, 시간도 외로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게 답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큰일이 일어난 곳에도 삶이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일이 되면 이런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야겠지. 마음의 시간은 멈춘다 해도, 하루하루 날이 가면 슬픔이나 아픔은 조금씩 낫는다. 그렇다고 그게 깨끗하게 없어지느냐 하면 아니다. 사람은 아프고 슬퍼도 웃는다. 사람이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사람한테 그런 힘(슬픔에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는)이 없었다면, 지금 인류는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엄청나게 커다란 말을 하다니. 2014년 10월 27일 밤에 컴퓨터를 켰더니 그 소식이 있었다. 세상을 떠난 게 겨우 몇 시간 전이라니 믿기 어려웠다. 라디오 방송에서 쓰러지고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좋아지기를 바랐는데.
누군지도 제대로 못 쓰다니. 마왕, 신해철 뭐라고 하면 좋을지. 고스트스테이션, 고스트네이션 잘 들었으니 마왕이라고 할까보다(마음속으로는 마왕이라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신해철이라고만 한 듯. 뒤에 오빠도 붙였던가. 오빠라는 말은 하기 어색하다. 형이라는 말이 있구나. 이 말이 좀더 편한 느낌이지만 해본 적은 없다). 책 제목은 조금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책 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샀다. 이 책 살 때 노랫말 모음집 준다고 해서 그것을 받으려고 주문과 취소를 되풀이했는데도 못 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운이 없구나 했다. 다 생각나지 않고 몇회인지 잘 모르지만, 1988년 12월 24일이라는 것은 기억한다. 맨 마지막 16번인 무한궤도도. 16번이 대상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정말 그런 생각을 했는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했다고 생각한다. 꽤 오래전부터 알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앞에서 고스트스테이션, 고스트네이션 말했는데, ‘하나 둘 셋 우리는 하이틴’도 들었다(마왕이 그만두고 얼마 뒤에 윤종신이 했다. 그때는 잘 안 들었다). 다음이 밤의 디스크쇼, 그다음이 음악도시다. 밤의 디스크쇼에 친구 생일 축하해 달라는 엽서 보냈는데 그게 나왔다. 그렇게 나온 건 내가 엽서를 예쁘게 꾸미거나 글을 잘 써서는 아니고 마왕이 그 방송 진행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라디오 방송 처음에는 열심히 들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듣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 꼭 그만두었다. 밤의 디스크쇼뿐 아니라 음악도시도. 고스트스테이션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라디오 주파수 돌리다 알게 된 건지. 그때 그거 듣고, 이 사람이 이랬단 말이야 했다. 밤의 디스크쇼나 음악도시 할 때는 달랐던 것 같은데. 바뀐 건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방송하게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 끝날지도 모르니 고스트스테이션 잘 들으려고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이것은 MBC에서 할 때 한 생각인가. MBC에서 하다가 그만뒀을 때 아쉬웠다. 2008년에 SBS에서 했다는 건 몰랐다. 아니 알았던가, 그때 못 들은 듯하다. 라디오로 들을 수 없어서 그랬을지도. 2012년 8월에 우연히 MBC에서 하는 거 들었다. 꽤 반가웠는데 며칠밖에 듣지 않았다. 새벽에 라디오 안 들은 지 오래돼서. 새벽에는 듣지 않아도 여전히 라디오 듣는다. 라디오 이야기만 하다니. 라디오 방송으로 많이 만나서겠지. 지난해 구월에 배철수 아저씨가 쉬어서 마왕이 음악캠프를 진행했다. 잠시지만 오랜만에 라디오 방송하는 거 들어서 좋았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해도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이젠 할 수 없겠다. 지난해 10월 28일에 음악캠프 끝날 때 마왕이 음악캠프에서 한 말 들려줬다. 참 좋은 말이었는데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다니. 라디오 방송은 진행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일대일로 만나는 거다 했던가.
처음에 말하려고 했는데 못했다. 이 책 보기 전에 꿈에 마왕이 나왔다. 꿈에 나온 것만 기억하고 어떤 내용인지 모른다. 그전에도 꿈에 나온 적 있을 텐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노래 들은 건 생각난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어도 기분이 이상한데, 마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믿기 어렵고 시간이 좀 흐르니 슬펐다. 마왕은 나를 몰라서 내가 예전처럼 마음 별로 안 써도 섭섭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게 미안했다. 지난해에는 음악캠프에 나온 거 들어서 소식 조금 알았다.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온 듯한데 그런 건 거의 못 봤다. 올해 오월에 MBC에서 한 <휴먼다큐 사랑>도. 이거 알았으면 봤을 텐데. 이제와서 하는 생각은 들지만. 지난해 10월 27일 뒤부터 라디오에서 노래 들으면 ‘진짜 세상에 없구나’ 생각했는데 이건 지금도 그렇다. 마왕이 한 음악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만 아쉽다. 이 책 보니 목소리 들리는 듯했다. 고스트스테이션, 고스트네이션에서 한 말 같기도. 사람이 죽어도 산 사람 마음속에 살아있다고 한 말을 실제 느꼈다. 이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겠다. 저마다 다른 추억을 가졌겠지.
누군가는 마왕을 알아서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오래전에 들은 말 하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한다는. 그 말대로 하려고 한 적도 있지만, 늘 그러기는 어렵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책을 보니 그런 말은 없어서. 좋아하는 거 해도 어려움은 있다. 어쩌면 그런 뜻으로 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저런 말 본 적 없다.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한 말을 기자 같은 사람이 앞뒤 자르고 썼다는 말을 했는데,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여기에는 지어낸 말도 있다고 나온다). 그 말 들었을 때 무슨 그런 사람이 있나 했을지도. 글로 그 말을 보니 ‘그런 일 괴로웠겠다’ 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힘들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말도 있지만, 모든 게 참은 아닐 거다. 나는 그런 데 거의 관심없기는 하다. 어떤 말은 다 그대로 믿기도 한 것 같다(이건 소문을 말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좀 다를지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마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영향 많이 받았겠지.
마왕은 음악에서 소리(사운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데, 그러고 보니 이 말 여러 사람이 했다. 음악 하는 사람은 다 그런지도. 듣는 사람은 노랫말, 멜로디일까. 멜로디가 먼전지 노랫말이 먼전지. 소리 잘 몰라도 그게 좋다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마왕도 사랑 노래 만들었지만, 그게 아닌 것도 많다. 삶, 죽음, 마왕의 철학. 예전에는 철학과여서 그런 노랫말을 쓰는가보다 하기도. 그런데 학교 마치지는 못했구나. 성당에 다닐 때 이런저런 것을 물어봤다는데 그거 재미있다. 그런 생각을 해서 철학과에 갔나 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보기를 들면 성경 같은 거(이건 다 읽지 못했다. 예전에는 몇 권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하나도 없다). 무엇에든 의문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의문을 가지기도. 내가 생각하는 건 별로인 것 같고, 나는 아직도 내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다른 사람처럼 생각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나는 나대로 생각해도 괜찮겠지. 단 내가 옳다고 우기지 않기, 그것은 잊지 않아야겠다.
무한궤도 신해철 넥스트 노댄스 비트겐슈타인 크롬(이것은 음반은 아니고 그냥 이름이다). CD가 다 있다면 좋겠지만 조금밖에 없다. CD 들을 수 있게 됐을 때 하나씩 사두는 건데 왜 안 샀을까. 지금까지 공연 손으로 꼽을 만큼밖에 안 봤는데, 그 안에 넥스트도 들어간다. 친구도 넥스트를 좋아해서 함께 갔다. 그때 친구가 가자고 한 것 같다. 그 친구는 언제부터 넥스트를 좋아했을까. 무한궤도 때부터 알았을까. 아쉽게도 그건 물어본 적 없다. 멀리서 한번이라도 공연 봐서 다행이다. 라디오에서 가끔 노래 나오면 좋겠다. 이건 내가 바라지 않아도 그렇게 되겠지. 마왕이 ‘있을 때 잘해’ 자주 말했다는데 나는 잊었나보다. 책을 보다보니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가끔 뭐 한다더라 하는 소식 듣고 살기를 바랐는데. ‘있을 때 잘하기’는 마왕에 한한 건 아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한테는 그래야 한다. 나는 그러고 있는지, 그래야 할 텐데.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_민물장어의 꿈에서
엄청난 일은 없지만 마왕 신해철이 있어서 웃고, 음악과 말을 듣고 힘을 받기도 했다. 받기만 하다니. 잘 알려진 사람과 보통 사람 사이에서는 주고받는 게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음악 듣고 CD 사는 게 답일지도.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 덜 슬플까. 그건 아니겠지. 우연히 라디오에서 음악을 들을 때면 마음속이 따끔따끔 할지도. 어쩐지 마왕은 ‘웃고 살아’ 할 것 같다.
“마왕, 편안하게 쉬세요. 어쩌면 그곳에서도 늦은 밤에 방송하면서 놀지도 모르겠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