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안 보는 책 가운데는 먹을거리와 관계있는 것도 들어간다. 한때 그런 책이 자주 보이기도 했다. 거기 담긴 건 먹을거리보다 그것에 얽힌 추억이다. 나는 그런 게 없다. 없는 건 이것만은 아니구나. 그래서 피하는 게 좀 있다. 사람은 대리 만족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한번이라도 해 보거나 생각해야 그런 것도 좋아하지. 아니다 이건 내 마음이 좁아서다.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 그대로 보면 좋은데, 나는 그런 적 없는데 하니까(부러워하는 거다). 그렇다고 늘 안 보는 건 아니다. 어쩌다 우연히 잘 모르고 볼 때도 있다. 그때는 이걸 왜 보기로 한 거지 하기도. 화과자는 먹을거리고 비쌀 것 같지만 과자라는 말이 들어가니 괜찮고, 맏물 이야기는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니까 괜찮다.
무엇에든 이야기가 있다

화과자의 안 和菓子のアン (2012)
사카키 쓰카사 김난주 옮김
블루엘리펀트 2014년 08월 12일
지금까지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일본은 먹을거리로 이야기를 잘 쓴다. 먹을거리와 장인이 이어진다고 해야겠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장인이지만, 먹을거리를 만드는 사람도 장인에 가깝다. 대를 이어서 그것을 하기도 하니까. 지금은 그게 줄어들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든다. 무엇인가 생각하고 쓴다니 부럽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 이야기가 되는 것도 괜찮겠지. 표구사, 시계사도 이제 그리 많지 않겠다. 이 책을 보다보니 그런 게 생각났다. 표구사, 시계사는 먹을거리와 관계없지만. 이런 것과 비슷한 이야기 또 있다. 책방 이야기라고 할까. 책방이기는 해도 사람과 책 이야기구나(《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미카미 엔). 《화과자의 안》은 일상 수수께끼에 가깝다. 화과자와 사람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읽어보면 재미있다.
우리나라에도 전통과자가 있는데 그것은 평소에 먹기 어렵고 비싸다. 우리 한과는 무엇을 마실 때 먹으면 좋을까 하니 수정과랑 식혜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사람도 차를 즐겨 마시기도 했지만, 그게 서민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것보다 아는 게 별로 없다. 차 마실 때 과자도 먹었을 것 같은데. 일본은 차와 과자를 먹는 게 널리 퍼졌다. 이 말을 하기 전에 홍차와 양과자 이야기를 할까 했는데, 그것도 잘 모른다. 커피를 마실 때도 과자를 먹기도 할 테지만, 어쩐지 커피는 느긋하게 마시지 않을 것 같다. 영국만 그런 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홍차는 차 마시는 시간에 천천히 과자와 먹을 듯하다. 홍차는 맛있게 마시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차도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쉽게 차를 우리는 사람도 있다. 찻잎만 넣고 물만 붓는. 일본은 일반 가정에서 차와 과자를 먹기도 하고 격식을 차린 다도라는 것도 있다. 다도는 여러가지와 관계있구나. 오래전에는 차 마시는 자리에서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이 가진 다기를 보여주고, 사람들과 족자를 보기도 했다. 차를 마시면서 화과자도 먹었다. (여기저기에서 본 것을 이렇게 말하다니.)
앞에 말을 보고 다도 모임이 나오는가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건 안 나온다. 백화점 지하 화과자 가게 미쓰야에서 일하는 사람과 손님 이야기다. 제목 ‘화과자의 안’은 화과자 안에 든 것이라는 뜻도 있고 이름(애칭)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화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메모토 교토 이름에 ‘안’이 없어서, 화과자 가게 이름이 ‘안’인가 했는데 가게 이름은 미쓰야였다. 교코라는 이름 안에 ‘안’이 있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더 모르겠다. 교코라는 이름은 살구를 뜻하는 ‘안즈杏’에 ‘코子’자를 써서 교코杏子라고 읽는다(찾아보니 안즈杏子 이 말도 살구, 살구나무였다). 화과자에 들어가는 소를 나타내는 일본말 ‘안코(앙코)’짱이라 하려다가 안짱이 되었다. 안은 빨강머리 앤이기도 하다. 일본말로 앤은 안アン이라 읽는다. 이런 거 몰라도 읽다보면 알 텐데. 교코는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일을 찾아보려다 백화점 지하 화과자 가게에서 일하기로 한다. 교코는 자신이 키도 작고 살이 쪄서 못생겼다 하지만 점장 쓰바키 하루카와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교코를 귀엽다고 한다. 쓰바키는 교코를 봤을 때 붙임성 있어 보인다고 했다.
화과자 가게 미쓰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넷으로, 늘 넷이 일하는 건 아니다. 손님이 적은 시간에는 둘, 손님이 많은 시간에는 셋 이런 식으로 일한다. 점장 쓰바키는 일 잘하는데 도박을 좋아하고 속에는 아저씨가 들어있다고 한다. 이 말은 미쓰야 사원으로 앞으로 화과자 장인이 될 다치바나 소타로가 했다. 다치바나는 교코를 봤을 때 좀 무뚝뚝했는데, 그것은 일부러 그런 거였다. 교코는 자기 겉모습 때문에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자신이 통통해서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다치바나도 그런 남자겠지 했는데 좀 달랐다. 다치바나 안에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그렇다고 동성애자는 아니다. 일본에서는 여자아이 같은 남자를 ‘오토멘(乙男)’이라고 한다. 여자아리를 나타내는 오토메(乙女)를 그렇게 바꿨다고 해야겠다. 다치바나는 교코 얼굴에서 볼이 찹쌀떡 같아서 좋다고 했다. 안짱이라는 것도 다치바나가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하는 다른 한 사람 사쿠라이는 예전에는 불량했는데 지금은 얌전한 대학생 모습이다. 어쩐지 재미있는 사람이 모인 듯하다.
점장 쓰바키는 관찰력이 뛰어나서 손님이 사는 화과자를 보고 손님이 놓인 형편까지 다 알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가게에서 자세하게 말 안 해도 자신이 어떤지 알면 또 그곳에 가고 싶을 것 같다. 다치바나는 화과자 장인이 될 거여서 그런지 화과자를 잘 알았다. 교코는 미쓰야에서 일하면서 화과자를 알고 공부한다. 점장 쓰바키가 본 대로 교코는 손님을 잘 대한다. 그것은 좋은 점이다. 화과자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가보다. 그게 재미있다. 어떤 이야기인지 하나쯤 말해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화과자를 옛날식 그대로 만들지 않고 지금에 맞게 만든다. 달마다 나오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그 달에 맞는 주제로 만든다. 그 나라 고유의 것을 오래 지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우리도 우리 것을 오래 지키고 물려주면 좋겠다.
☆―
앞을 보고 걸어간다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산 사람은 줄곧 울고만 있을 수 없다.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땅만 보고 살아온 스기야마 씨에게 쓰바키 점장은 손을 내밀었다.
소중한 사람은 당신 가슴속에 있으니까, 그 사람을 슬프게 하면 안 되죠.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121쪽)
“양과자와 화과자 차이점이 생각났어. 지금 얘기해줄게. 아주 단순해. 이 나라 역사야.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써서 이 나라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서 이 나라 사람들 관혼상제를 색칠하는 것. 그게 화과자가 하는 일이야. 저번에 말해주려고 했는데 깜박했네.” (249쪽)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

맏물 이야기 初ものがたり
미야베 미유키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2015년 02월 19일
지금까지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기분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 맛있는 것을 먹고 ‘아, 행복해’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구. 그것은 먹는 것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군. 많이 먹는 것하고는 달라. 무엇인가를 즐기는 사람은 사는 게 좀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사람에 따라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다르겠지. 내가 아주 안 먹는 것도 먹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것 때문에 즐거운 적이 없을 뿐이야. 먹을거리에 정성을 쏟는 사람도 있잖아. 그것은 자신이 먹을 것을 할 때보다 다른 사람한테 해줄 때 그럴까. 자신이 먹을거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 있어. 얼마전에는 화과자 이야기를 보았는데, 또 먹을거리라니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이 소설에서 먹을거리가 앞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얼마 뒤에는 빵집 이야기 만날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책을 만나다니 좀 신기하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내가 정성들여서 하는 먹을거리는 그저 그렇게 생각해도 과자, 빵은 괜찮게 생각해(반대여야 할까). 그렇다 해도 비싼 걸 먹는 건 아니군.
맏물은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 맨 처음에 나는 것으로, 이걸 먹으면 수명이 75일 늘어나서 좋은 것으로 여긴대.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은 처음 알았어. 무엇이든 제철에 난 게 좋다고 하잖아.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 때문일지도. 시간이 지나면 제철에 난 거라도 맏물은 아닐 테지만. 몇해 전에 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는 에코인의 모시치 대장이 나왔어. 모시치는 치안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인 요리키나 도신 밑에서 범인 찾기와 잡는 일을 맡는 직책 오캇피키야. 지금 생각하니 그때는 나오는 사람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하는 것을 더 봤어. 모시치라는 이름이 자꾸 나와서 이 사람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했어. 지금이라고 책을 두루두루 잘 보는 건 아닌데, 조금 마음 써서 보려고 해(이 말 얼마전에도 한 것 같군). 어느 날 후카가와 도미오카 다리 기슭에 이상한 노점이 나타났다고 해. 새해가 된 때였나. 그곳은 새벽 두시까지 문을 연다더군. 새벽까지 문을 연다고 하니 <심야식당>이 떠올랐어. 나중에 볼 빵집도 새벽 동안 문 여는 곳이야. 에도시대는 밤이 되면 거리는 어두울 테니 많은 사람이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겠지. 새벽 두시까지만 장사하는 건 그 때문일거야. 가게에서 파는 건 유부초밥인데 국물도 있어. 이곳 주인 어쩐지 ‘심야식당’ 주인과 비슷한 느낌이야.
모시치는 유부초밥 가게 소문을 듣고 한번 찾아가 보고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찾아가. 간장을 지고 팔러 다니던 오세이가 죽임 당한 일을 풀 때 그곳에서 먹은 순뭇국에 수제비를 넣은 게 도움이 됐어. 모시치는 유부초밥 가게 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하기도 해. 예전에는 무사였는데 지금은 먹을거리를 팔게 된 걸까. 노점이나 매춘부한테서 돈을 뜯는 뱃집 가지야의 가쓰조와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이런 말이 나오면 이 책을 보는 사람도 알고 싶잖아. 책을 끝까지 보면 ‘끝난 거야’ 하는 말이 절로 나와. 아홉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일은 어떻게든 풀리지만, 유부초밥 가게 주인하고 영감 스님 미치도 일은 더 알 수 없어. 유부초밥 가게 주인이 그 가게를 하게 된 까닭은 나오는군.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였어. 아이일까 아니면 형제일까. 버린 아이를 찾고 싶다고 했으니 아이일지도 모르겠군. 왜 형제일까 했느냐구. 에도시대 때는 무사 집안이나 상인 집안은 쌍둥이를 꺼렸대. 쌍둥이가 나면 재산 나누기가 힘들다고. 이런 이야기도 있고 첫째, 둘째 이야기도 나와. 첫째는 첫째대로 집안을 이어야 하는 부담, 둘째는 둘째대로 집안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하더군.
어떤 사람은 쌍둥이에서 하나를 버렸는데 시간이 흘러서 딸이 죽었어. 버린 딸을 다시 찾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딸을 데려다 키우는 사람한테 큰돈을 쓰려고 했어. 아이를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버린 거니 잘못이 있는 건데. 돈으로 잘못을 씻을 수 있을까. 그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딸이 가난한 집에서 사는 게 불쌍했대. 돈이 없다고 해서 안 좋은 건 아닌데, 행복을 돈이 있고 없고로 생각했나봐. 쌍둥이여서 일곱살 때 집안에서 쫓겨나고 다른 집 사람이 됐는데, 후계자가 죽었다고 쫓아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인 일도 있어. 불러들이는 건 괜찮은데 지금 가진 가정을 버리라는 거야. 그런 억지를 쓰다니. 가정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니 재산을 노리는 사람이라 했어. 그 사람은 집에 돌아올 마음이 없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안 좋은 일을 한 사람도 있었어. 그다음에는 그 사람이 집안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죽었어.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벌을 받는다 하는 말이 떠오르는군.
아무리 좋아해도 그 사람이 예전과 달라지면 마음이 식기도 하겠지. 사람은 사람 욕심을 내도 화를 당하는 듯해. 돈 때문에 어린 자식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더군. 모시치는 그런 것을 아주 싫어했어. 현실에서는 아무리 괴로워도 참지. 참지 못하고 상대를 죽이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미야베 미유키 에도시대 소설에서는 언제나 마음을 잘 다스려라 하는 것 같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뿐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도.
*더하는 말
예전에 에도시대 소설(일본소설이라고 해야겠군)을 보면서, 다리 이름과 다리라는 말이 있는데 왜 또 다리를 쓸까 했어. 본래도 그렇게 쓰였을까 했지. 강이나 산도 그래. 산은 많이 못 봤지만. 도미오카바시에는 다리라는 말도 있어. 이것은 도미오카(富岡) 다리(橋)야. 우리말로 옮길 때 도미오카 다리가 아닌, 도미오카바시 다리라고 하기로 약속한 걸까(나는 이것을 보면서 다리 다리라고 생각해) 후지산은 후지산인데. 이건 일본말로도 후지야마가 아닌 후지산이라 하더군. 일본 지역 이름에 강(川)이나 다리(橋)가 들어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산(山)도 들어갈지도.
희선
☆―
“가난뱅이는 일하고 또 일하고,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더욱이 너는 몸집이 크니 제대로 된 인연은 없을 게다. 스스로 벌어서 잘 살아야 한다고, 저는 줄곧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30쪽)
“오늘 밤에는 어디를 가도, 도깨비들은 바늘방석이지요. 도깨비는 밖으로, 도깨비는 밖으로, 하면서 콩으로 팔매질을 당하고 도망쳐 나와야 하니까요. 그러면 무척 가엾다면서, 주인장이 도깨비들에게 술을 대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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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도깨비한테도 갈 곳이 필요하다. (390~3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