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는 자신이 사람과 다르다는 걸 느끼다

치즈 스위트 홈 10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3년 04월 23일
언젠가 동물을 기른다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건 귀여워도 실제 기르면 이것저것 마음 써야 해서 힘들지도. 동물과 함께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아예 기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좀 안 좋을까. 가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동물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보기도 한다. 그때는 함께 살다보니 좋아하게 되는 거다. 동물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도 달라지기도 한다. 동물과 아이는 마음을 닫은 사람이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게 하는지도. 누군가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기 때문일까. 동물뿐 아니라 아이도 이것저것 챙겨줘야 한다. 마음을 쓰면 그것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비슷한 점이 있구나. 제멋대로인 아이도 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동물은 사람한테 무언가 하지 않아도 괜찮기는 하다. 고양이보다 개가 사람 마음을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는 가끔만 놀아줘도 괜찮을 것 같지만 개는 마음을 많이 써야 할 듯하다. 이것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사람이 동물 마음을 다 알 수 없겠지만, 마음을 쓰면 동물도 그것을 알 거다.
앞에서 동물을 기른다면 고양이가 좋겠다고 했는데 마음뿐이다. 그것은 내가 쓸쓸할까봐서일지도. 그냥 앞으로도 책만 봐야겠다. 책만 봐도 괜찮다. 따스함이나 무게는 느낄 수 없지만. 어쩌면 동물은 언젠가 죽기 때문일지도. 만화속에 나오는 치(고양이)는 여전히 새끼고 죽지 않는다. 죽음을 가르치는 만화도 있지만. 책임보다 먼저 동물이 죽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겠다(나도). 동물을 한번 길러본 사람은 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 같은 아픔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고, 다른 동물로 아픈 마음을 낫게 하기도 한다. 사랑으로 다친 마음을 다음 사랑으로 낫게 하는 것과 같구나. 먼저 아플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잘 안 될 것을 생각해도. 이런 말을 하다보니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가 싶기도 하다. 그럴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지금 마음을 따를 때가 더 많다. 그러고 나중에 아쉬워하기도. 몰랐다면 더 나았을지도 한다. 이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 일어났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귀여운 치를 만나고 이런 말이라니.
앞에 것 9권을 보고 10권을 넘겨보고 아빠가 치를 찾는다는 벽보 보는 게 뒤인지 알았다. 앞부분을 제대로 안 보고 뒤를 봐서 그렇다. 이거 보기 전에도 한번 넘겨봤다. 무슨 이야기일까 하면서. 그렇게 봐도 잘 몰랐다. 치나 다른 고양이 보고 귀엽구나 했다. 처음부터 천천히 보고서야 어떤 내용인지 알았다. 갑자기 사람도 대충 보면 잘 모르고 차근차근 보면 조금이라도 알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코치가 치와 집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코치도 치와 요헤이네 집에서 함께 살까 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코치는 길고양이여서 사람 집에서 사는 게 답답할지도. 그래도 치와 친구다. 치는 코치가 가는 것을 보고 여기에서 살면 좋을 텐데 하기도. 코치는 자기 잠자리로 돌아가고는 거기가 편하다 느끼고 치는 집이 편하다 느꼈다. 바깥에서 살다 사람과 사는 고양이도 본 적 있는데, 그 고양이는 마음대로 밖에 나다니기는 했다. 치도 그러기는 하는데 돌아다니는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은 듯하다. 치는 다른 고양이보다 어리게 보이기도 한다. 코치나 치 형제인 새끼 고양이와 말투가 좀 다르다. 그게 귀엽기는 하다.
엄마나 마마나 같은 말인데 코치는 마가가 뭔가 한다. 치는 엄마는 알아도 마마는 모르다니. 우리나라에는 마마가 아닌 엄마라고 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 일본에는 엄마보다 마마라고 하는 아이가 더 많은 듯하다. 치가 생각하는 마마는 좀 이상하다. 삼색털 고양이가 치 마마가 있다고 해서 치와 코치가 보러가지만 못 만났다. 치와 닮은 새끼 고양이 둘을 만나고 함께 논다. 그렇게 놀다 집으로 간 치는 요헤이한테 다른 고양이와 꼬리잡기를 하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요헤이한테도 같이 놀자고 하지만 요헤리한테는 꼬리가 없었다. 엄마 아빠도. 밥을 먹으려고 식탁 앞에 앉은 엄마 아빠 요헤이를 보고 치는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꼬리, 손, 말이. 밖에서 치는 검정고양이를 만나고 그런 말을 한다. 검정고양이는 사람과 고양이는 다른 종이라 말한다. 손이 아니고 앞발이라는 말도. 고양이는 사람과 살면 자신도 사람으로 느낀다는데 치는 자신과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다니. 그런 생각을 하고 치가 조금 우울해했는데, 검정고양이와 같이 있어서선지 치 기분이 좀 나아졌다. 까마귀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코치는 그거 알고 있었다.
치를 찾는다는 벽보를 보는 건 아빠가 휴대전화기로 치 사진을 찍고, 바깥에서 이런저런 사진을 찍을 때다. 아빠는 엄마와 요헤이한테 말을 하려다 요헤이와 치가 함께 노는 모습을 보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엄마가 치를 찾는다는 벽보 사진을 보고 어떻게 할지 아빠한테 묻는다. 요헤이와 치가 형제 같다면서 둘을 떨어뜨릴 수 있느냐고. 엄마는 연락 안 하는 게 낫겠다 생각하는 거겠지. 연락해도 치를 데려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고양이는 언제까지나 어미와 함께 사는 건 아니니까. 치 어미와 다른 새끼가 지금은 함께 살아도 언젠가 두 마리도 누군한테 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먼저 하다니. 다음에 연락하고 치가 요헤이 식구와 함께 살아도 괜찮다는 말 들으면 좋겠다. 치 소식을 몰랐던 주인은 치가 잘 산다는 것을 알면 마음 놓을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기보다 다음 권을 보는 게 낫겠다.

치는 세라

치즈 스위트 홈 11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4년 04월 23일
드디어 지난해 나온 11권을 보았다. 10권 본 지 얼마 안 돼서 무슨 말로 시작하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권씩 보면서 치가 조금 자랐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많이 자란 건 아닌 듯하다. 11권에 나온 치는 다른 때보다 더 귀여워보인다. 뭐든 어릴 때는 귀엽다. 이건 아이도 다르지 않다. 아니 아주 가끔 귀엽지 않은 아이도 나타난다. 아이라고 이것저것 알고 싶어하고 순수한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무엇에든 쉽게 물들기 때문에 아이는 순수한 건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아이를 본 적 없다. 책이나 만화에서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아이 같지 않기도). 어린이는 힘이 없으니 어른이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부모도 있다.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보다 힘없는 아이나 동물을 괴롭히기도 한다. 심해지면 죽이기까지 한다. 날 때부터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인 사람 있을까. 그런 사람 있을 것 같기도 해서다. 거의 어릴 때 부모한테 맞고 자라면 안 좋아진다. 어릴 때 겪은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어린이 이야기하다 이런 말로 흐르다니. 아이도 동물도 어릴 때 마음을 많이 쓰면 좋겠지.
동물도 그렇고 아이도 자라면 어쩐지 아쉽다. 그건 왜일까. 자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일지도. 그런 것도 있지만 부모를 떠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를 찾지만, 좀 자라면 자기 혼자 다 자란 듯이 군다. 나도 그랬겠지. 나이를 먹고도 부모한테 잘하지 못하고 잘 살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면 아이를 바라는 사람 마음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어릴 때는 괜찮아도 자라면 멀어지니까.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닐 텐데. 동물은 자라도 그 집에서 살고 아이도 나이를 먹으면 어릴 때와는 다르게 부모한테 잘하겠지. 사람이 동물이나 아이한테 무언가를 바라는 건 아닐 거다. 마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기쁠 테지. 무언가 바랄 때 괴로운 거다. 바라지 않고 주는 게 참사랑이구나. 사람은 그런 것을 저도 모르게 배우고 자기 아이나 동물한테 주는 건지도. 아이를 바라는 사람 마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 부모한테 조금이라도 기쁨을 주었겠지. 지금도 그런 아이가 많겠다. 동물도.
지난번에 치는 자신과 요헤이네 식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요헤이네 집에 다른 아이가 찾아와서 요헤이와 둘이 놀았다. 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자기하고 왜 놀지 않을까 한다. 그것보다 둘이서 뭐하는 건가 했다. 요헤이와 엄마가 외가에 가서 밤에 돌아오지 않았다. 치가 그 말을 코치한테 하니 요헤이와 엄마가 다른 집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코치 형제도 다른 사람이 데리고 가고는 그 뒤로 만나지 못했다고. 동물은 다른 집으로 가도 사람은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데. 코치도 사람이 어떤지 잘 모른다. 새끼고양이여서 그런 거구나. 코치가 치한테 기대하지 마라 하지만, 치는 요헤이와 엄마가 돌아왔으리라 생각하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갈 때 치는 어미고양이를 만난다. 치를 보고 ‘세라’라고 했다. 치 이름이 본래 세라였구나. 이 이름은 그 집 사람이 지은 걸까. 어미고양이가 지은 걸까. 요헤이와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둘을 본 치는 기뻐했다. 사람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올 때와 하룻밤 자고 올 때는 고양이도 다르게 느낄까.
다음날 요헤이와 엄마 아빠는 홋카이도에서 온 생선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마당에서 먹는다. 치도 함께. 거기에 코치가 찾아오고, 얼마 뒤 치 어미고양이도 나타난다. 치 어미고양이는 치가 들어가는 집을 봐두었다 찾아온 거였다. 고양이가 새끼를 잃어버리면 찾으려 하고 만나면 기뻐하기도 할까. 치는 어미고양이가 ‘세라지’하니 요헤이 뒤에 숨었다. 그때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는 일 때문에 프랑스에 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치를 찾는다는 벽보가 나오고 아빠 일이 나오다니. 외국에 가도 동물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치와 함께 살기 위해 지금 집으로 이사했는데, 치와 요헤이는 헤어질까. 요헤이도 밖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벽보를 보았다. 요헤이는 거기에 쓰인 글자를 읽지 못했다. 나중에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고 치를 찾는다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을 알기 전에 치가 요헤이가 만든 종이 장식을 찢어서 요헤이는 치한테 화냈다. 고양이가 뭘 알겠나 싶은데. 치는 뭐든 노는 걸로 아는데(아기도 그럴 테지). 치는 요헤이가 화내서 밖으로 나가서 풀을 뜯었다. 검정고양이가 그 모습을 보았다. 치가 검정고양이한테 요헤이와 있었던 일을 말하니 검정고양이가 풀을 하나 뜯어서 날렸다. 치는 그것을 잡고는 즐거워했다. 단순한 놀이를 좋아하다니. 치가 검정고양이를 따라 공원에 가니 고양이가 여럿 있었다. 거기에서 삼색털고양이가 치한테 진정하고 들어 한다. 삼색털고양이가 치한테 한 말은 치가 지금 사는 집은 진짜 집이 아니고, 진짜 엄마(마마)에 형제가 있다는 거였다.
고양이인데 어쩐지 사람 같구나. 앞에서 코치가 치한테 치도 다른 데서 데리고 왔다는 말을 했을 때 치는 아니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치는 요헤이와 만난 일을 기억해내고 자신은 어디에서 온 걸까 한다. 치와 닮은 새끼고양이 둘을 만나고 어미고양이도 만난다. 어미고양이는 치한테 자신이 ‘마마야’ 한다. 다른 집에서 사는 아이 앞에 진짜 엄마가 나타나는 것 같다. 이 만화는 사람 이야기도 하지만, 고양이 처지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말할 수 있어도 고양이는 말 못한다. 말 못해도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는구나. 그런 것도 사람이 쓴 거지만. 이런 이야기 나오는 건 끝날 때가 다가왔다는 건가. 요헤이네 식구와 치가 사는 이야기였으니까. 치가 요헤이와 함께 살기를 바랐는데 이제 어떻게 될지. 좋은 쪽으로 흐르기를 바란다.
희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