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오래 살기 위해

 

  구의 증명

  최진영

  은행나무  2015년 03월 30일

 

 

 

 

 

 

 

 

 

 

 

 

 

 

소설을 보면 가끔 그게 진짜 현실일까 싶기도 하다. 별일 없이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힘든 사람이 있고 힘들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지. 《구의 증명》은 어떻게 보면 슬픈 사랑 이야기다. 슬프고 지독하다고 해야겠다. 그런 건 쉽게 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 일을 보고 내가 생각한 건 병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담은 죽은 구를 먹고 오래오래 살리라 생각하지만. 인류 마지막 사람이고 싶다고도 한다. 죽은 사람을 먹는 건 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겠지. 구는 부모한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 구 부모가 많이 나오지 않지만. 짧은 말로도 상상할 수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구 부모는 구한테 큰 빚을 물려주었다. 왜 그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구 부모는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는 일을 되풀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부모 빚을 갚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해야 하는. 구는 돈도 빚도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런 구가 죽었다.

 

구와 담은 어릴 때 만나고 늘 함께 하고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잠시 헤어진 적이 두번 있지만 구와 담은 서로를 생각했다. 구한테는 부모가 있지만 부모한테는 빚이 많았다. 담도 형편이 좋지 않았다. 담은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이모와 살았다. 이모는 담을 위해 돈을 벌었다. 이모는 그걸로 사랑을 나타낸다고 여겼는데, 담은 그것보다 다른 걸 바랐다. 담한테 담을 생각하는 이모가 있었지만, 구한테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구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일해서 돈을 벌었다. 그런 거 싫지 않았을까. 집을 나가 소식 끊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구가 군대 갔다 전역하고 왔을 때는 부모가 온데간데없이 빚만 남았다. 구가 군대 가기 전에 구와 담은 잠시 헤어졌다. 잠시가 아니고 좀 오래였을까. 둘이 멀어진 건 함께 죽음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를 걱정했지만 서로를 보고 그 일을 떠올리게 할까봐 만나지 못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도 비슷할 것 같다. 서로를 보고 아이를 떠올리는. 함께 아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텐데, 그 일 말처럼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담한테 이모가 있었지만 이모는 병으로 죽는다. 담이 혼자 살 수 있는 나이여서 다행이었을까. 구는 담이 혼자 이모를 보낸 걸 마음 아파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자라서도 함께 하면 좋을까. 구와 담은 서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가 부모 빚 때문에 힘들 걸 생각하고 담한테 자신을 떠나라고 했다. 담은 구를 떠나 잘살아도 못살아도 구를 생각하리라는 걸 알았다. 둘은 헤어지지 않았지만 사는 건 쉽지 않았다. 돈 받으려는 사람 때문에. 그 사람들을 피해 살아도 얼마 뒤에 둘을 찾아냈다. 구를 끌고 가서 엄청 때렸다. 구는 달아나다 차에 치였다. 구는 그렇게 죽었다. 구는 사는 동안 즐거운 때 있었을까. 담을 만나고 담과 함께 할 때는 즐거웠겠지.

 

밝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건 알았다. 이걸 보고 난 어떤 생각을 할까 하기도. 상대를 얼마나 좋아해야 그 사람을 먹을 수 있을까. 돈을 받으려는 사람은 시체까지 이용한다는데 정말 그럴까. 담은 구를 땅에 묻거나 태울 수 없었다. 구를 따라 죽으려고 한 마음을 바꾼 건 다행인가. 담은 구를 먹으면 구가 자신 안에서 함께 살리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그런 담을 구가 바라본다. 보이지 않아도 구가 곁에 있다는 걸 담이 느끼면 좋을 텐데. 담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죽은 구도 안됐지만 아직 살아있는 담도 안됐다. 담 바람처럼 오래오래 살아야 할 텐데. 죽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여전히 좋아하는 그 모습 부럽기도 하다.

 


 

 

☆―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 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아주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20쪽)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야. 그 마음을 까먹으면 안 돼.

 

걱정하는 마음?

 

응. 그게 있으면 세상에 흉한 짓 안 하고 산다.  (95쪽)

 

 

 

 

 

 

 

덧없어도 살아가기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창비  2014년 10월 31일

 

 

 

 

 

 

 

 

 

 

 

 

 

사는 건 덧없으니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맞는 말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덧없고 쉽게 사라질 수 있기에 힘껏 사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것에는 저마다 삶이 있다. 목숨 있는 것은 언젠가 스러진다. 동·식물은 그것을 알고 살까.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으로 살까. 동·식물은 아주 가까운 동·식물이 죽으면 슬퍼할까. 사람과는 다르겠지만 그들만의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 방법은 없다. 사람은 사람 처지에서 동·식물을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을 뺀 동·식물은 사람을 어떻게 볼까. 어쩐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대로 살 듯하다. 지금보다 다음 세대를 남기기 위해 애쓰겠지. 사람한테도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 있을 거다. 사람은 본능만 따라서 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생각하고 사는 게 사람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느껴야 하는 온갖 감정. 때론 그게 사람을 힘들게 하고 모두 놓아버리고 싶게 한다. 다시 생각하니 그것 때문에 살기도 한다. 감정이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구나.

 

걷다가 가끔 생각한다. 그건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거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커다란 차 옆을 지날 때다. 저 차에 깔리면 죽겠구나, 하고. 차에 깔렸는데 죽지 않고 목숨이 붙어 있으면 어떨까. 살아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산 것 같지 않겠다.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 건 아닌데. 소라와 나나 아빠는 일하는 곳에서 커다란 톱니바퀴에 말려들어 죽었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이기에 커다란 톱니바퀴가 있었을까. 예전에는 일하는 곳이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낫겠지만 여전히 위험한 곳 있을 거다. 아니 지금은 사람보다 기계가 더 일을 할까. 그것 때문에 사람은 일자리를 잃고. 사람만 그렇게 쉽게 죽는 건 아니다. 목숨 있는 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슬퍼한다. 슬픔에 빠졌다 시간이 흐르면 아픈 마음이 조금씩 낫는다. 소라와 나나 아빠가 죽고 엄마 애자는 살 힘을 잃었다. 엄마라고 해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살아야지 하지 않을지도. 반지하 옆방에서 산 나기 엄마는 나기가 있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기 엄마는 엄마 노릇을 못하는 애자를 보고 소라와 나나 도식락도 싸주었다. 물론 나기네 집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도시락이 더 중요해 보여서. 친엄마는 아니라 해도 거의 엄마가 아니었나 싶다.

 

두 사람이 같은 환경에서 자란다 해도 둘은 다르게 자란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소라와 나나도 좀 다르다. 소라는 애자를 보고 엄마가 되기 싫어하고, 나나는 무서워도 엄마가 되려 한다. 어쩌면 나나 배 속에 아기가 생겨서 그런 마음을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곁에서 바라보는 소라는 그게 싫어도 받아들인다. 소라는 애자처럼 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자식이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소라 나나 나기 보통 사람과 달라 보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사람 우리 둘레에 아주 없을까. 어쩐지 있을 것 같다. 보통 사람 이야기도 소설이 되면 달라 보인다. 나기 이야기는 거의 안 했구나. 소라와 나나만 있었다면 쓸쓸했을 듯하다. 나기가 있어서 둘이 지금처럼 자란 건 아닐까 싶다. 식구는 아니지만 식구 같다. 이렇게 산 사람이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 없겠지.

 


애쓰지 마.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 일생이란 그뿐, 이라고 애자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227쪽)


 

소설 제목은 마치 뜻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사는 게 덧없다 해도 살아가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 많은 사람이 그러겠지.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살아가는 데 뜻이 있겠지. 그게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살면서 기쁨도 느기고 슬픔도 느끼고. 나나 말처럼 하찮고 덧없기에 사람이 사랑스러운 거다. 이런 건 죽지 않는 신이 생각하기도 하던데. 지금은 좋게 말했지만 언젠가 절망에 빠져 지금 한 생각을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다니. 어떤 일이든 자신한테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일들 버텨내야겠지. 가까운 사람이 죽은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에 묻히면 안 된다.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게 그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될 거다. 사람은 모두 그렇게 살고 죽는다.

 

살자, 살다보면 살아서 다행이구나 할 날도 올 거다. 그걸 느끼는 게 짧다 해도.

 

 

 

 

 

 

 

거의 어두운 현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문학과지성사  2015년 03월 03일

 

 

 

 

 

 

 

 

 

 

 

 

 

 

소설을 좋아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재미있다고 해서 웃기는 건 아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지 기대하게 하거나 감동을 주는 게 있으면 된다. 한국소설, 거기에서 단편소설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본 한국 단편이 다 그랬다는 건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만난 것도 있을 거다. 그런 것도 있었을 테지만 거의 어두웠다는 느낌이 든다. 한동안 잘 안 봐서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싫어서 멀리한 건 아닐까. 그것보다 무슨 이야기하는지 몰라서 멀리하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건 아니다. 다들 살기 어렵다거나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 차이가 크다는 것은 안다. 나는 못가진 쪽이다(이런 걸 말하다니). 다른 건 없지만 시간은 있다고 해야겠다. 지금까지 바쁘다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가끔 바쁘다고 하는 사람 부럽기도 하다. 누군가는 나한테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할까. 아니 그건 아닐 듯하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니까.

 

앞에서 잠시 쓸데없는 말을 했다. 한국 단편 말하다 이상한 곳으로 흘렀다. 소설을 보면서 진짜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하고 생각한 적 있다. 나와는 참 먼 이야기처럼 보여서. 언젠가부터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야기에 환상이 있다 해도 현실이 없는 건 아니겠지. 책을 보다가 그런 소설을 써 보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잠깐 해 봤는데, 그건 어려울 듯하다. 구병모가 쓰는 것 같은 소설은 못 쓸 테니까. 나는 좀 유치해서. 여기에는 단편 여덟편이 실렸다. <여기 말고 거기, 그래 어쩌면 거기>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걸까. 제목은 그런 식으로 보이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15층에서 떨어져서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하이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높은 건물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되려고 맨손으로 건물을 오른다. 그러다 사고가 나고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게 된다. 하이는 어찌어찌 아르바이트를 하고 살다 신기한 경험을 하고 다시 높은 건물을 오른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하이는 사라진다. 하이는 어디로 간 걸까. 이 이야기에서는 하이보다 시간 강사를 하는 ‘나’가 더 중요할까. ‘나’는 하이를 부러워하는 듯했다.

 

여기 실린 소설에는 맨손으로 건물을 오르는 하이보다 많이 배워도 잘 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더 많이 나온다. 하이처럼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고 가 버린 사람도 있다. <관통>에 나오는 미온은 길에서 본 그림 속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간다. 거기에는 돌봐야 하는 아기도 없고 정신질환을 앓는 시누이도 없다. 친정 식구한테 안 좋은 말을 듣고 손 벌리지 않아도 된다. 그림 저쪽에서 미온은 다른 일은 잊고 자신이 바라던 일을 하러 간다. 그게 부러워 보이지 않는 건 왤까. 아이를 잊었기 때문일지도. 아무리 바라는 게 있다 해도 놓지 않아야 하는 건 있을 테니까. 미온이 그동안 힘들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창>은 오지라퍼라는 사람이 자신이 한 일이 왜 잘못되었느냐 말하는 이야기다. 그 말을 들으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쩐지 ‘나는 이런 일도 했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사람은 옆동 여자가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그 모습을 봤을 때는 그 집에 가서 이런 저런 말을 한다. 그런 일을 인터넷 게시판에 쓰고 어떻게 도와야 할까 하지만 좋은 답은 듣지 못한다. 그 글을 지운 다음날 그 아이가 죽는다. 옆동 여자는 정말 자기 아이를 때렸을까. 알쏭달쏭하다. 만약 내가 그런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보고 하나로 말하기 어렵다(그런 거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여러 소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일용직, 계약직인 사람이 나온다는 거다. <파르마코스>와 <식우>는 좀 다르구나. 그러고 보니 두 소설에서는 반대되는 일이 일어난다. 한곳은 비가 오지 않고, 한곳은 비가 오래 내리고 그 비는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한다. 비가 안 오는 것보다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비 오는 게 더 무섭다. 사람들이 G시를 떠나는 모습은 체르노빌을 떠오르게 했다. G시 사람과 O시 사람 처지가 바뀌고. <이물>은 좀 무섭기도 하다. 알 수 없는 털 뭉치가 집 안에 웅크리고 있다니. 그건 바깥에서 들어온 걸까. 안에 고이고 샇인 게 형태를 갖게 된 건지도. 그렇다고 양선이나 방난이 나쁜 건 아닌데. 양선처럼 마음을 많이 쓰는 복지사가 있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방난은 세상이 얼굴을 뜯어고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덩굴이 되고 팔과 다리가 잘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은 슬프고 섬뜩하다. <어디까지를 묻다>는 아나운서가 되려 했지만 카드회사 고객센터에서 전화받는 일을 하는 사람 이야기다.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대학에 갔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비정규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 일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겠지. 이런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좋은 답은 없다. 그래도 서로를 끌어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

 

어디까지 가야 그 길이 내가 가려던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사람은 알게 되는 거죠?

 

어디까지 갔을 때 사람은 자신의 심연에서 가장 단순하고 온전한 것 하나를 발견하고 비로소 되돌아올 여지를 찾을 수 있거나, 아니면 되돌아올 길이 없어 그대로 다리 아래로 몸을 던져버리게 되는 걸까요?  (<어디까지를 묻다>에서, 270쪽)

 


그것은 루초 폰타나의 ‘공간개념’ 연작이었다. (……) 붉게 칠한 캔버스 위에 깨끗이 그은 세로 곡선 세 개는 원체가 그 자국 외에는 보여줄 만한 기법상의 요소가 많지 않기에, 공간과 그것을 부수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을 포함하여 폰타나의 고민이나 철학을 담아내지 못하고 그의 커팅 자국만을 충실히 재현한 것일 뿐이었기에.  (<관통>에서, 78쪽)

 

 

 

 

 

공간 개념, 루초 폰타나, 1961

 

 

 

No.906, 루초 폰타나 공간 개념, 대기, 1968, 캔버스에 아크릴

 

 

 

 

 

 

 

사람을 도우려면 작은 일부터

 

  재인, 재욱, 재훈

  정세랑

  은행나무  2014년 12월 24일

 

 

 

 

 

 

 

 

 

 

 

 

 

영화에서는 세상에 큰일이 일어나거나 알 수 없는 것이 지구에 쳐들어오면 힘있는 한사람이 많은 사람을 구한다. 그런 거 많이 못 봐서 슈퍼맨만 생각난다. 슈퍼맨은 많은 사람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사람만 구했던가. 아주 오래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슈퍼맨은 다른 사람도 많이 구했겠지.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오면 왜 사람과 싸우게 될까.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알지 못해서 외계인을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주 어딘가에는 생명체가 있을까. 그런 게 언젠가 지구에 찾아온다면 지구 사람과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살았을 때는 그런 일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다. 앞으로 지구가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지만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세상도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하니 순간순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알아도 지키기 어렵다.

 

만약 자신한테 어디에 쓰일지 알 수 없는 힘이 생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에서는 그 힘을 쓸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 앞으로도 그 힘이 누군가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까. 책 제목 《재인, 재욱, 재훈》 세사람은 남매다. 둘째 재욱이 일하러 다른 나라에 가기 전에 셋이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바닷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셋은 바지락 칼국수를 사 먹었다. 바지락이 형광색이어서 먹어도 괜찮을까 했는데, 재훈이 맛을 보고 맛이 보통이다 해서 먹는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바지락 칼국수가 이상하다는 것을, 얼마 뒤 세사람한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재인은 보통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을 수 없고 재욱은 가끔 눈앞이 빨개지고 재훈은 엘리베이터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세사람이 갖게 된 힘은 살아가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재인은 개인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고 재욱은 사막에 플랜트를 지었다. 플랜트는 원유에서 나온 1차 가공유를 다시 2차 가공유로 만드는 시설이다. 그런 일이 있는가보다 해야겠다. 연구소에서 하는 일도 뭔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구나. 재훈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엄마가 미국 교환학생 신청을 해서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재인은 강도가 높은 자기 손톱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없을까 한다. 재욱은 자기 눈앞이 빨개지는 건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는 신호라는 걸 알고 사고를 피했다. 재훈이 간 미국 조지아 염소 농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지만 다른 곳에 있다. 세사람이 가진 힘을 써서 누군가를 구한다. 누군가를 구한 일은 자신을 구한 일이기도 했다. 셋은 서로 그 일을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겠지. 식구라 해도 모두 말하는 건 아니니까. 셋이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아주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그 정도 거리가 딱 좋을 듯하다. 아주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사이.

 

남들과는 다른 힘이 생기면 그것을 써야 할까. 그걸 써서 남한테 도움이 된다면 써야겠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실제 초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그런 힘이 있다고 하면 안 좋은 일에 쓰려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재인과 재욱과 재훈한테 일어난 일 우리는 경험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꿈이나 상상력이 없다고 할지도.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 힘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별 도움이 안 되면 쓰지 않는 게 낫다. 그렇다고 보통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없을까. 엄청난 일은 못한다 해도 아주 작은 도움은 줄 수 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별거 아니다 여겨도 도움 받는 사람은 그것을 크게 생각할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누굴 돕지는 않겠지. 세사람이 초능력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을 구하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말하는 것 같다. 서로 돕고 사는 따스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 자신이 더 잘살려고 싸우는 것보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사는 게 좋겠지.

 

 

 

희선

 

 

 

 

☆―

 

“사람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세계의 극히 한부분인 것 같아. 히어로까지는 아니라도 구조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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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는 오월을 밝히는

하얗고 푸른 빛이 있다네

 

 

 

 

 

 

 

오랜만에 만난 나츠메

 

  

   *책 배경으로 쓴 그림은 예전에도 썼다. <나츠메 우인장> 5기 가을에 한다고 한다.

 

 

나츠메 우인장 20

미도리카와 유키

白泉社  2016년 04월 05일

 

 

 

오랜만에 나츠메를 만났다. 아직 지난번에 만나고 한해가 다 되지 않았지만, 거의 한해 만에 만난 것 같다. 지난 19권이 나온 건 지난해 오월이고 이번 것은 올해 사월에 나왔다. 한해 만에 본 것 같은 느낌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지난해에는 책이 나온 오월에 보고, 지금도 오월이다. 19권에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그걸 다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만화속 시간이 조금씩 흐르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한화나 길면 두화로 끝난다. 이어지는 이야기였다면 조금 생각났을까. 나중에 예전에 쓴 걸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걸 보면 조금 생각나겠지. 지난번에 본 것보다 지금까지 본 것에서 이것저것 떠오를듯 말듯하다. 20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올해 일월부터였던가. 왜 안 나올까 했다. <라라> 2015년 7, 9, 11월호와 2016년 1월호에 연재한 것인데 일월에 나오기를 기다렸다니. 그러고 보니 이것은 이번에야 봤다. 전에는 이런 건 안 보고, 다음권이 언제쯤 나온다는 것만 봤다. 잠깐 <라라>라는 만화잡지를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책으로 보는 게 낫겠지.

 

시간이 흘러도 나는 <나츠메 우인장>이 어떤 건지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도 이 말 했구나. 여기에는 요괴가 나오지만 무서운 건 아니다. 요괴도 사람처럼 착한 요괴가 있고 자신만 생각하는 요괴도 있다. 요괴가 나오지만 모든 사람이 요괴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적다. 나츠메는 요괴를 볼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어렸을 때 힘들었다. 지금 사는 곳에 오고는 야옹 선생을 비롯해 친구도 사귀었다. 나츠메처럼 요괴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요괴가 있고 나츠메가 요괴를 볼 수 있다는 걸 아는 친구도 있다. 첫번째 이야기에는 나츠메 비밀을 아는 타키와 타누마가 나온다. 나츠메는 요괴를 볼 수 있어서 요괴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기도 한다. 나츠메는 야옹 선생과 어딘가에 가다가 항아리를 뒤집어 쓴 요괴를 만난다. 요괴가 본래 그 모습인가 했는데, 요괴는 나츠메한테 항아리를 벗겨달라고 한다. 나츠메가 항아리를 벗겨주자 보답하겠다고 하고는 나츠메를 어린이로 만들었다. 그 요괴 이름은 쓰키히구이(つきひぐい 月日食い)다. 처음에 히라가나로만 쓰인 걸 봤을 때는 몰랐는데 한자를 잘 생각하니 이름이 ‘세월을 먹다’는 뜻이었다. 어떤 일 때문에 어린 모습이 되면 지금까지 일을 다 기억하고,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나츠메는 기억이 다 없어졌다. 야옹 선생은 기억도 없는 나츠메를 어떻게 해야 하나 했다. 그때 타키와 타누마가 나타나서 나츠메를 타누마 집에 맡기고 야옹 선생은 요괴(쓰키히구이)를 찾으러 갔다. 어린 나츠메는 지금 나츠메와 달리 불안하게 보였다. 나츠메는 야옹 선생이나 타키와 타누마가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니고 진짜 친구라면 좋겠다. 말했다.

 

나츠메 어린 시절 이야기가 가끔 나왔다. 그때 나츠메는 사람과 잘 사귀지 못했다. 친척은 나츠메가 아무것도 없는 곳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면 관심을 끌려는 거다 여겼다. 자신한테만 뭔가 보이면 그것을 제대로 말하기 어렵겠다. 말해도 믿지 않겠지. 나츠메는 잠깐 어린이가 되었지만 다행하게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게 있다면 그걸 찾으려는 사람도 있겠지. 츠키히구이를 찾으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린 모습이 되는 건 괜찮다 해도 기억이 없어지는 건 안 좋을 것 같다. 시간을 쌓고 살아가는 게 사람이겠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자기 일을 하는 요괴도 있다. 나츠메와 학교 아이들은 2박 3일 동안 함께 공부하러 산에 갔다. 그곳에는 가면이 세개 있는 사당이 있는데 이름은 ‘가면 네개 무덤(四っ面塚)’이다. 다른 사람은 가면을 세개밖에 못 보았는데, 나츠메는 네개를 보았다. 그날밤 비가 내리고 다음날 나츠메는 공부하러 가면서 작은 배안에서 강물속에 얼굴을 넣은 사람을 보고, 공부를 가르치려고 온 선생님 얼굴에 가면이 있는 걸 본다. 가면이 친구 얼굴로 옮기자 나츠메는 가면한테 거기에서 떨어지라고 한다. 가면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가면은 나쁜 요괴가 아니었다. 오래전에 산신을 지키던 요괴가 넷이었는데, 넷에서 셋은 힘이 다해 가면만 남겨두었다. 하나는 아직도 그곳에서 산신을 지켰다. 나츠메는 작은 배 안에서 강물속을 보는 건 산신으로 비에 떠내려온 무언가를 찾는 건가보다 생각했다. 가면은 그걸 돕는 거고. 산신은 오래전에 좋아한 사람이 준 비녀를 찾으려는 거였다.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나츠메는 하나 남은 가면요괴를 도와주었다. 홀로 그곳에 남아서 산신을 지키다니. 나츠메는 그게 좋아 보인 거겠지.

 

중급 요괴한테 이끌려서 먼 곳에 간 나츠메는 그곳에서 허수아비 무리를 본다. 그건 요괴였다. 그날 나츠메는 허수아비가 낫을 들고 어떤 집에 들어가는 꿈을 꾼다. 그 집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찾아간다. 거기에서 오랜만에 나토리를 만난다. 나토리는 그 집 사람이 집안이 이상하다고 일을 부탁해서 온 거였다. 나츠메가 들은 허수아비 말이 무슨 뜻인지 알만 한 사람을 찾아간다. 요리시마라는 사람은 마토바 집안만큼 힘이 있는데 지금은 요괴 물리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요리시마는 잠깐 스쳐가는 사람일까. 허수아비는 힘을 가진 사람이 만들면 요괴가 되기도 한다. 추수가 끝나고 할 일을 마친 허수아비는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면 그 집 사람과 열흘 동안 싸운다. 실제 싸우는 건 아니고 사람 꿈속에서 겁을 주는가보다. 사람이 무서워서 집을 나가면 허수아비가 이기는 거고, 열흘 동안 사람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사람이 이기는 거다. 사람이 일부러 요괴가 되게 허수아비를 만드는 건 아닐 텐데. 나츠메는 할머니 레이코가 심심풀이로 요괴와 싸우고 많은 요괴를 우인장으로 묶어둔 건 아닐까 한다. 레이코는 왜 그렇게 했을까. 예전에는 친구로 생각한 건 아닐까 했는데, 레이코는 요괴와 싸우고 이기면 종이에 이름을 쓰게 하고 그 뒤로 부르지 않았다. 나쁜 마음으로 한 건 아닐 테지만, 레이코가 왜 그랬는지 언젠가 알 수 있을까. 나츠메를 닮은 남자가 누군지는 언제 나올지.

 

많은 것을 하고 여러가지를 바라는 사람보다 지루해 보이지만 단순한 요괴 삶이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지만 난 요괴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나츠메가 만나는 요괴를 보고 아는 것뿐이다. 내 삶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구나. 나츠메는 토코 아주머니를 위해 꽃밭을 만들려고 하는데, 꽃밭 둘레에 쌓은 돌을 누가 가져갔다. 그건 사람이 아닌 요괴 짓이었다. 밤에 나츠메는 나무 뒤에 숨어서 기다리다 요괴를 붙잡았다. 요괴는 나츠메한테 돌을 나눠달라고 하고 힘을 빌려달라 한다. 다섯 요괴는 나무 상자 안 사당에 신 시다히메가 찾아올 날이 다가와서 사당을 고치고 깨끗하게 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것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었다. 나츠메는 그 일을 도와준다. 꽃밭도 만들고. 나츠메가 가진 힘으로 ‘짠’ 하고 깨끗해지려나 했는데, 깃털로 먼지를 털고 문은 돌을 간 흰가루를 물에 개서 칠했다. 그렇게 한 것만으로도 요괴들은 기뻐했다. 시다히메도 기뻐하길 바랐다. 나츠메가 잠든 밤 신 시다히메가 찾아왔다. 그곳은 상자 속 사당 안이었다. 야옹 선생과 요괴들도 있었다. 뜰에 있는 나무에 꽃이 피었다. 나츠메가 요괴 때문에 안 좋은 일을 겪기도 하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걸 본다. 상자 속 사당도 그렇겠지.

 

 

  

  

 

 

 

이번 이야기는 다 잔잔하다. <나츠메 우인장>에는 잔잔하지 않은 게 없기는 하다. 남과 다른 것 때문에 괴로운 일도 있지만, 괴로운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나츠메도 그걸 알겠지. 요괴가 보이니 도울 수밖에 없다. 짧게 만나서 아쉬워하지만. 요괴는 사람 마음과 다르게 멋대로 왔다가 멋대로 간다. 그것 때문에 나츠메가 마음 아파한 적도 있지만, 이젠 그 일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익숙해졌다기보다 나츠메 곁에 남아 있는 게 있어서겠지. 야옹 선생과 친구.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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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힘 - 파국의 시대, 한 사회학자가 안내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기술
오사와 마사치 지음, 김효진 옮김 / 오월의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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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한다. 나도 사람이 생각하기에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주 생각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지 않은가보다. 사는 게 바빠서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쁘지 않은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 차라리 좋은 생각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 텐데. 예전에는 책을 보아도 쓰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는 아주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무엇을 보았는지 잊어버렸다. 잘 모르는 건 더 빨리 잊었다. 책을 읽고 그것을 쓰지 않아도 생각했다면 좀 나았을 텐데, 바로 다른 책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책을 보고 그게 아주 좋아서 오랫동안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책을 내가 만나지 못한 건지. 좋아하는 건 여러번 되풀이해서 보는 사람도 있다. 쓰지 않아도 여러번 보면 잘 잊지 않고 무언가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 거 부럽다. 부러운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여러 책을 이어서 말하는 거다. 책은 한권 한권 다를지라도 이어져 있기도 하다. 그걸 잘 잇거나 합쳐서 생각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으면 쓴다. 지금도 좋은 생각을 쓰지 못하지만 쓰고 얼마 안 됐을 때는 더 못 썼다. 소설을 많이 읽고 줄거리를 정리하고 느낌은 짧게 적었다. 그렇게 쓰다보니 줄거리 쓰는 건 익숙해져서 더 길게 썼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책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여서 줄거리를 쓴 거다.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책을 그렇게 보면 안 되겠구나 했다. 내가 줄거리를 말하지 않아도 그 책을 보면 다 알고 자신이 책을 보고 어떤 이야긴지 아는 게 훨씬 좋다.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전에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보다 책 내용을 어떻게 쓰지 했다. 그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보다 그 책을 보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책 읽기도 ‘마주이야기’라고 한다. 내가 그걸 잘 못한다. 본래 다른 사람이 하는 말 듣는 걸 더 좋아해서. 이 책 제목은 《책의 힘》인데 본래 제목은 ‘사고술思考術’이다. 쉽게 ‘생각하기’ 라고 해도 괜찮겠다.

 

사람은 가만히 두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극이라고 할까 어떤 충격이 있어야 생각한단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 제목을 왜 《책의 힘》이라 했는지 조금 알겠다. 사람이 생각하게 하는 게 책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때는 달리 책을 안 봐도 여러가지 생각한다.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나는 더 나중에 사람을 생각했다. 왜 사람은 나고 사는 걸까 하는. 누군가는 그런 생각하기보다 살아가라 하지만. 사람이 왜 사는지에 답은 없기는 하다. 죽을 때도 알기 어렵겠지. 사람은 나고 살고 죽는다. 이럴 때 사는 거 덧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덧없다 해서 그 삶을 하찮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나고 살고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누구나 평생에 걸쳐서 답을 얻기 위해 생각하는 게 있을까. 오사와 마사치는 그런 게 있는가보다. 사회학자기 때문일 것 같다. 일반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거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니겠지. 책을 읽고 그때그때 생각할 때가 많다. 오랫동안 책을 보고 생각해서 답을 얻어야겠다 하는 건 없다.

 

철학자나 작가는 자신이 알고 싶은 문제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책을 보고 생각하고 쓰는 거겠지. 어떤 소설가도 자신이 어떤지 알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을 쓰면서 생각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런 경험 나도 있다. 책을 본 다음에 쓰다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책을 읽고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고 써야 그 생각이 열매를 맺겠지. 평생 알고 싶은 주제는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어떤지 알고 싶다 생각한다. 사람의 어떤 것이 알고 싶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세상에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는 건지. 작가는 거의 ‘구원’을 생각하고 글을 쓴다. 나는 그렇게 못해도, 얼마 되지 않는 사람한테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고 써야 하는데, 아직 모자라서 나를 위해서 쓴다. 자신을 먼저 알면 다른 것도 조금 보이지 않을까.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는 사람도 있고 자기 안에서 찾는 사람도 있겠지. 그렇다고 한가지만 하는 건 아닐 거다.

 

읽고 생각하고 쓰기 앞으로도 즐겁게 해야겠다.

 

 

 

희선

 

 

 

 

☆―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닫힌 세계 안에서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거나 감동하거나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선 세계로 모으고 정리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감지했을 때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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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지의 세계

  황인찬

  민음사  2015년 09월 18일

 

 

 

 

 

 

 

 

 

 

 

 

 

 

새가 시라는 은유는 몰라요 시가 개라는 은유도 몰라요 누군가 시를 쓴다면 그건 그냥 시예요

(<멍하면 멍>에서, 14쪽)

 

 

한발짝 다가섰다 여겼는데 어느새 당신은 두발짝, 아니 서너발짝 앞서갔네요. 제가 당신 걸음을 쫓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은 어렵다 해도 언젠가 좀더 가까워질 날도 있겠지요. 당신이 서두르지 않고 제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걷다 지친 저는 가끔 멈춰설지라도, 당신은 그런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지요. 저를 기다릴 수 없는 당신을 제가 놓치지 않아야겠네요.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조금 자신 없습니다. 당신을 따라가는 게 싫지 않지만 가끔은 어려워요. 좀더 쉬운 말로 하면 좋을 텐데 싶습니다. 미안해요. 제가 잘 못 알아듣는 건데. 어저면 당신은 어려운 말을 했다고 여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도 된다고 할 것 같네요. 정말 그렇다면 좋겠어요.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신을 따라가려는 것인지, 당신이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는 것인지. 얼핏 보면 다른 말 같지만 같은 말입니다.

 

 

 

물산

 

 

 

이곳은 내가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이고 개나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다

“슬픈 개는 꼬리를 왼쪽으로 흔든다 행복한 개는 오른쪽으로 흔든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개 꼬리를 유심히 보게 된다

공원에서, 학교에서, 주택가에서

홀로 걷는 개들과 목줄을 매고 걷는 개들

언제부턴가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줄 알고, 무엇이 슬픈지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 찾아왔다

얼결에 밥을 주고,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는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개는 자주 오른쪽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가끔 왼쪽으로 흔들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나갔다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꼬리와 온종일 걸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밤,

잠든 개를 보았는데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었다

그걸 보고 나도 퍽 슬펐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개 꼬리를 일부러 보지 않게 되었다 개가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면 슬퍼지니까

어느 날 밤비가 조금씩 내릴 때, 나는 작은 개집에 웅크리고 들어가

내내 잠들어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 오른쪽으로 흔들어도,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았다  (80~81쪽)

 

 

 

어렵다 해도 저 나름대로 보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쪽에 달라 기분이 다를까요. 사람은 그것을 나타내기 어려운데. 꼬리는 없어서 안 되니 손을 흔들까요. 슬플 때는 왼손, 즐거울 때는 오른손. 그건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겠네요. 잘 모르는 사람은 ‘저 사람은 왜 손 흔드는 거야’ 할 거예요. 슬퍼도 즐거워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게 더 낫겠습니다. 왜냐구요, 시간이 흐르면 슬픔도 즐거움도 지나가니까요. 어쩌면 개도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는 뜻으로 꼬리를 흔드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버릇이겠지요. 그래도 우연히 개를 만나면 꼬리를 어느 쪽으로 흔드는지 마음 써서 볼 것 같아요.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어느 날의 수업 시간, 내가 좋아하던 아이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곧 죽을 거야. 나는 네가 참 밉다.”

 

머지않아 그 애는 전학을 갔고 그 애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생각했다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그 애가 없는 저녁 교실을 혼자 서성이다 본 것은 저 너머 작은 산이었다

 

작은 산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세계의 끝이 아니고, 누군가의 죽음도 아닌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나는 한 가지 일만 자꾸 생각하고 있었다  (93쪽)

 

 

 

이 시를 봤을 때 황순원 소설 <소나기>가 떠올랐어요. 슬픔은 시간이 흐른 뒤에 더 커지기도 합니다. ‘나’는 자신이 좋은 일을 하면 그 애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 애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좋은 일을 해야겠다 한 건지도. 그 애는 왜 그런 말을 한 걸까요. 마음과 다르게 심술궂게 말하는 때가 있겠지요, 그런 거겠지요.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요. 혹시 이건 다른 일을 나타내는 걸까요, 은유 말이에요. 그렇게 읽어내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다른 뜻은 뭔지 모르겠어요. 그런 것도 아는 때가 올지. 왜 다른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느냐면,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 보여서예요. 이게 포스트모던인가요. 이런 것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저는 걸음이 느립니다. 앞으로도 당신 뒤를 따르는 게 힘들겠지요. 당신과 함께 걷지 못할 때가 더 많을 거예요. 그래도 저는 당신을 따라가는 게 즐거워요. 그 즐거움 잊지 않도록 애쓸게요. 그러니 당신,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동백만 한번에 떨어지지 않네

어쩌면 바람에 못이겨 떨어진 것일지도

꽃은 미련을 남기지 않고 진다

아니 다음을 위해 지는 거겠지

사람도 그렇게 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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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휘두르며 26

히구치 아사

講談社  2015년 12월 22일

 

 

 

이번 거 보고 25권 볼 때 기분이 아주 안 좋아서 그것을 썼던 게 생각났다. 그때부터는 아니지만 올해는 내내 별로다. 뜰뜨지 않아서 낫고 크게 기대하지 않아서 낫겠지만. 난 무슨 기대를 한 걸까. 그때 몇달 동안 어깨가 아프다고 했는데 올해 일월인지 이월인지 어깨 이제 괜찮네 했다. 그 생각을 하고 며칠 뒤에 다시 나빠졌다. 그것도 좀 오래가나 했는데 지난해만큼은 아니었다. 지금 아주 편하다 말하기 어렵지만 처음만큼 나쁘지 않다. 본래대로 돌아온 건지도. 근육이 뭉쳐서 편하지 않은. 이건 자주 그런다. 운동을 별로 안 해서 그런 거겠지. 가끔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텐데. 겨우 하루나 이틀 운동한다고 괜찮아지지 않겠지. 평소에 운동하지 않는다. 걸어다니는 것 말고는. 걷기라도 자주 하면 여러가지 좋을 텐데. 우울한 마음도 좀 나아지겠지. 덜 우울하려면 걷기라도 해야겠다. 야구는 아홉 사람은 있어야 하지만 걷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난 뭐든 혼자 하는 걸 더 좋아하는구나.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투수와 포수를 비롯해 모두 중요하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함쳐야 하는 운동은 다 그렇다. 흐름이랄까 분위기랄까 그것도 좋아야 한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경기 잘하는 사람은 아주 대단한 거다. 정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니까. 정신은 운동에서만 중요한 건 아니다. 정신력으로 버텨라 하는 말 별로지만, 뭐든 마음을 굳게 먹으면 조금이라도 제대로 하겠지. 난 자주 ‘못하겠다’ 한다. 그러고도 꾸역꾸역 하지만. 마음 약하게 먹어도 끈기가 아주 없는 건 아닐지도. 끈기라도 있어서 다행인가. 시간이 흘러서 앞에서 어땠는지 많이 잊어버렸다(이 말 안 할 때가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쓴 걸 잠깐 봤다면 좋았을 텐데 안 봤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좀 낯설기도 했다. 처음에 여러 권 볼 때는 야구 재미있다 했는데. 여전히 잘 모르는 게 있어서 아쉽다.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안다. 이건 누구나 다 알겠다.

 

앞에 거 모두 잊어버린 건 아니다. 타지마가 하나이를 많이 생각하게 된 것(같은 편끼리도 경쟁하는 것). 전에는 하나이가 타지마를 보고 경쟁심을 가지고 잘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지난 번에는 반대였다. 하나이가 가진 좋은 점은 키가 큰 거다. 타지마도 키 커야 할 텐데.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 크겠지. 5회말까지 니시우라는 센다와 잘 싸웠다. 투수 미하시가 혼자 공 던지기 연습을 해서 경기 때 자세가 흐트러지고 공을 마음대로 던지지 못했다. 미하시 공은 느려도 던져야 할 곳에 잘 던졌는데. 미하시도 자신이 왜 그렇게 됐을까 당황했다. 25권은 6회초 센다가 1점을 얻는 데까지 나왔다. 26권은 6회초 조금 지난 다음부터 시작했다. 아베(포수)가 여러가지 생각해서 미하시한테 공을 던지게 했는데 센다가 그걸 치고 점수도 냈다. 6회초가 이번 책에 반이나 나온다. 반이나 나온다는 건 센다가 점수를 많이 낸다는 거다. 아웃 시키기가 이렇게 어려울 때도 있다니. 미하시는 보크를 하기도 한다. 이런 일 한번도 없었는데, 미하시는 공을 던지려다가 잘못 쥐었다 하고는 멈췄다. 주자가 있을 때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그것 때문에 센다는 1점 얻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기까지 미하시와 아베 사이는 좋아졌다. 처음에도 나빴던 건 아니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공을 던지고 받지 않았다. 아베가 다친 뒤에 미하시는 자신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아베한테 그런 말을 했다. 둘이 아주 친하게 말하지 않지만 전보다는 서로 믿고 경기한다. 센다가 점수를 많이 내자 아베는 미하시 기분이 가라앉지 않게 마음 썼다. 타지마도 미하시한테 혼자가 아니다 말했다. 6회초에서 센다는 8점이나 낸다. 6회말 니시우라 공격 때는 센다 투수가 바뀌었다. 아베는 미하시한테 그 투수가 던지는 공을 잘 보라고 했다. 하루나보다 대단하다고. 센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빠르지 않지만 회전수가 많아서 치기 어려운가보다. 미하시도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걸 말하려는 거였을까. 7회말 때 타지마는 그 공 쳐 보고 싶다고 자기보다 앞에 아이들한테 루에 나가라고 했다. 전에는 그런 말 했을 때 그것을 이루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센다가 콜드게임으로 이겼다. 센다는 야구 잘하는구나.

 

니시우라가 여름대회 때는 한해 전에 현에서 일등한 학교와 경기하고 이겼다. 토세이보다 센다가 더 잘할까. 그때는 운도 따라서 니시우라가 이겼겠지. 여름대회에서 비죠다이사야마한테 졌을 때는 아이들이 울었는데, 이번에는 밝았다. 가을대회는 여름대회보다 큰 게 아닐지도. 감독도 아쉬워할 시간은 없다고 하고, 다음 대회(네개 시대회)를 생각하자고 했다. 하나이는 니시우라가 센다보다 정신력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가을대회에서 졌다고 해도 다 끝난 게 아니구나 아이들 정신력은 어떻게 키울까. 미하시도 괜찮아지겠지. 운동경기 꼭 이기는 게 좋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고 배우는 것도 있을 거다. 니시우라 야구부 아이들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고 자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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