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네 소식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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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つか、ふたりは二匹 (講談社文庫) (文庫)
西澤 保彦 / 講談社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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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둘은 두 마리

니시자와 야스히코

 

 

 

 

 

이 책을 어떻게 알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작가가 쓴 책을 찾아보다 이런 것도 있구나 한 것 같다. 제목을 보니 꼭 동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소개를 조금 읽어보고 재미있겠다 했다. 그때 내가 잘못 읽었다는 걸 알았다.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 바뀌고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간노 도모키는 잠이 들면 정신(영혼)을 고양이한테 옮길 수 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그때 엄마가 새아빠와 결혼했다. 새아빠는 누나 구미코를 데리고 왔다. 도모키는 초등학생이고 누나 구미코는 대학생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와 동생이다. 식구가 되고 두해가 넘고 세해가 되어가는데 아주 친하게 보이지 않는다. 남동생과 누나여서 그럴지도.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도모키는 구미코가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면 다음날 구미코를 위해 된장국을 끓인다. 도모키는 초등학생인데 집안 일 잘한다. 음식도 잘 만든다. 텔레비전은 요리 방송과 뉴스를 즐겨 본다. 엄마와 살아서 그런 일을 하던 버릇이 있던 것이겠지. 구미코도 아빠와 살았으니 집안 일 잘해야 할 것 같은데. 구미코와 아빠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모습을 보고 그랬을 거다 생각한 거다. 여자아이가 아빠하고만 산다고 해서 집안 일을 잘한다고 말할 수 없겠지.

 

초등학교 4학년 때 도모키는 자신이 고양이 몸에 정신을 옮길 수 있다는 걸 알고 꿈이 아닐까 했다. 여러 번 해보고 꿈이 아니다는 걸 알았다. 도모키가 정신을 옮길 수 있는 고양이는 한마리뿐이다. 언젠가 구미코와 함께 주차장에서 만난 검정 고양이다. 잠 잘 때 자신도 모르게 옮기게 되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모키가 늦잠을 자도 되는 일요일 아침에만 고양이 몸에 정신을 옮긴다. 고양이 이름은 제니다. 이건 도모키가 지은 이름으로 제니는 폴 갤리코가 쓴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그 소설은 피터라는 아이가 어느 날 고양이가 돼서 수고양이 제니를 만나는 이야기다. 여기에도 피터가 나온다. 피터는 커다란 개로 종류는 세인트버나드다. 도모키가 고양이 이름을 제니라 한 것은 피터 때문이다. 도모키가 고양이 몸에 들어와서 헤매고 있을 때 커다란 개 피터가 나타났다. 피터는 도모키한테 자신이 사는 집에 가서 낮잠을 자는 게 좋겠다고 하고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가서 피터는 스스로 목줄을 채웠다. 피터는 스스로 목줄을 풀고 채우는 똑똑한 개다. 도모키는 제니가 되면 늘 피터를 찾아가서 피터 몸에 기대고 편하게 쉬었다. 실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할 테지만, 개와 고양이가 사이 좋게 지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어떤 고양이는 자신을 개로 생각하기도 한다는 말 본 적 있구나.

 

제니와 피터가 함께 모험을 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런 게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도모키가 다니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셋이 수상한 남자 차에 치일 뻔한 일이 일어난다. 셋에서 둘은 차를 피했지만, 하나는 차를 피하다 넘어지고 머리를 땅에 부딪쳤다. 그 아이를 병원에 옮겼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다른 두 아이는 차를 운전한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말하는데, 그 사람은 한해 전에 도모키보다 한 학년 위 여자아이를 억지로 끌고가려 한 남자 모습과 같았다. 모두 같은 사람이 또 사건을 일으켰다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나 더 비슷하다고 할까 같은 점이 있다. 한해 전에 남자한테 끌려갈 뻔한 여자아이와 이번에 다친 여자아이는 도모키 누나 구미코가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로 가르치는 아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 구미코는 한해 전에 그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이번에도 그랬다. 이 일은 도모키만 눈치챘다. 다른 사람도 알아챘다면 정말 같은 범인이다 생각할 듯하다. 도모키는 범인 남자를 본 두 여자아이를 걱정했다. 그런 걱정 때문에 도모키는 제니 몸을 빌려 두 여자아이를 살펴본다.

 

집안 일 잘하는 남자아이라고 해서 다른 것도 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도모키는 세상 사람이 어떤지 다른 사람이 어떤지 잘 몰랐다. 아이는 그런 걸 배우고 자라는 거겠지. 도모키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른 사람을 알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동물을 괴롭히는 사람을 알기도 한다. 그걸 알게 해주는 게 피터다. 피터는 개인데 사람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피터가 하는 말을 보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나도 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 말을 따르게 하려고 정치가가 되려 한다는 말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런 사람 때문이다 한다.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정치가나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만, 힘을 가지면 사람 마음은 바뀌기도 한다. 그 힘에 취한다고 할까.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도 그 일을 이루면,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지 잊고 그저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정치가가 아니고 선생님이 되어 학생을 지배하기도 한단다. 이 말도 맞는 것 같다. 《악의 교전》(기시 유스케)에는 딱 맞는 사람이 나온다. 거기에서는 잘 안 되자 사람을 죽이지만. 거기 나온 사람은 사이코패스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까. 학교를 자신의 왕국이라 말하는 사람도 어디선가 봤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자기보다 힘없는 동물을 괴롭히고 죽인다.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으면 사람을 죽인다. 그때는 힘없는 여자아이를. 한해 전에 남자가 여자아이를 끌고 갔다면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피터가 사람을 잘 알아서 도모키처럼 사람 혼이 들어간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는 가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쓴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그것과 비슷하다. 한 아이는 아빠가 자기한테 마음을 써주기를 바라고, 한 아이는 가까운 곳에 사는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자신한테 마음 써주기를 바랐다. 그것 때문에 한 아이가 죽고 제니도 죽는다. 다른 두 아이에서 한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제니가 된 도모키와 피터 때문에 죽지 않았다. 나머지 한 아이는 한해 전에 여자아이를 끌고가려한 남자한테 끌려간다. 도모키는 그 아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생각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아서 구하려고 한다. 고양이 모습으로. 고양이가 아닌 사람 모습이었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곳에 피터가 나타나서 경찰한테 맡기라고 하는데 도모키는 그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제니가 죽고 도모키는 두 아이가 다른 한 아이를 이용한 것처럼 자신은 제니 몸을 이용했다 생각한다. 고양이는 가끔 자기 의식이 없어지는 걸 알았을까, 알았겠지. 깨어나보면 자기도 모르는 곳에 있을 테니. 고양이와 도모키가 이야기하는 게 나와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나오지 않은 걸 생각하다니. 도모키는 제니가 죽고 동물이든 사람이든 언젠가 죽는다는 걸 깨닫는다. 난 어릴 때 그런 건 알지 못했다. 내가 죽음이라는 걸 제대로 안 게 언젠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도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건 알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죽음이 아니더라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건 우주 법칙이구나. 사람은 그걸 알아도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도모키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런 걸 알게 되다니. 이건 빠른 건지 늦은 건지. 누구나 그런 때를 맞이할까. 아마 그렇겠지. 실제 겪기도 하고 책이나 다른 걸 보고 알기도 하겠지. 난 만화영화나 책으로 알았을까. 어릴 때는 책을 거의 안 봤으니 만화영화로 알았겠다. 어릴 때는 내가 그런 걸 보고 울었는지 울지 않았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좀더 자라서는 슬퍼했는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을 한권 보는 것도 죽음을 경험하는 거다 하는데. 끝까지 보기가 아쉬운 책을 만난 적이 있을까.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 나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걸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 작가는 고양이와 개 이야기라고 했다. 제니와 피터, 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는 하다. 좀더 함께 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둘이 만난 건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인데, 여기에서 조금만 봐서 이런 생각을 하는가보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둘은 언젠가 헤어져야 했겠지. 둘 가운데서 하나가 먼저 죽었을 테니까. 먼저 이런 걸 생각하면 슬프다. 고양이와 개를 기르는 사람도 그런 생각하겠지. 처음에는 생각 못해도 그런 일을 한번 겪으면 다시 동물을 기르고 싶지 않을 거다. 언젠가 헤어지는 일이 마음 아파서. 사랑이 끝나면 다른 사랑이 찾아오듯 시간이 흐르면 아픈 마음을 다른 동물이 낫게 해줄지도 모른다.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기는 하다. 고양이와 개도 하나고 사람도 하나니까. 잊지 않고 마음속에 살게 하면 괜찮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겠다.

 

제니와 피터가 개와 고양이로 만났지만, 그 모습이 아니어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이 다른 모습으로 만나도 잘 지내면 좋겠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아니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면 좋겠다.

 

 

 

희선

 

 

 

 

 

그림, 구니키 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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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색 도라지꽃을 보니 ‘하얀 꽃은 하얀 감자, 자주 꽃은 자주 감자’ 하는 시가 생각났다. 도라지꽃을 보면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신 삼천에 도라지/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로 반실만 되누나’ 하는 민요를 떠올려야 할 것 같지만. 혹시나 하고 인터넷에서 노랫말을 찾아보니 내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달랐다. 감자는 하얀 것밖에 못 봤다. 고구마는 여러 색을 봤는데. 감자는 꽃 색에 따라 달라도 도라지는 꽃 색에 상관없이 다 희다.

 

 

 

감자꽃

 

권태응

 

 

 

자주 꽃 핀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동시다. 일제강점기 때 쓴 동시라고 한다. 그런 건 몰랐다.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 지금은 다른 뜻을 생각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빈 집

 

 

 

여름 오고

능소화는 피었는데

반겨줄 이 하나 없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만이

잠시 멈추어설 뿐

 

당신은 언제 돌아오세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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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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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책을 보고 느낌을 쓰는 건 갈수록 힘들다. 느낀 점만 쓰는 건 아니기는 하지만. 정석주는 사진작가다. 지금은 사진작가로 사진을 찍기보다 붉은 소파를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것만 찍었다(붉은 소파에 앉은 사람). 그게 열다섯해다. 열다섯해 하면 생각나는 건 뭘까, 살인 공소시효다. 정석주 딸은 열다섯해 전에 누군가한테 붉은 소파 위에서 죽임 당했다. 그건 303 연쇄살인사건으로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정석주 스스로 범인을 찾으려고 붉은 소파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 사진을 찍었다. 정석주는 범인이 거기에 앉으면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정석주 제자 이재혁이 찾아오고 정석주는 시체 사진을 찍게 된다. 죽은 여자는 어떤 아파트 303호에서 살던 사람이고, 얼마 뒤에 정석주 딸이 죽임 당한 빌라와 같은 곳에서 죽은 여자와 불륜관계였던 남자가 죽임 당한다. 정석주는 사진을 찍다가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그것도 있지만 사진기를 잘 아는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을 보고, 그게 범인을 잡는 일로 이어진다.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정석주는 딸 은혜와 닮은 형사 김나영을 만난다.

 

정석주가 시체 사진만 찍은 건 아니다. 엄마가 사라지고 열여덟해 만에 영구시체로 나타난 번역가 김명희 프로필 사진도 찍으려 한다. 사진작가는 사람을 찍을 때 그 사람을 알아야 더 잘 찍을 수 있을까. 정석주는 김명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제대로 찍으려 했다. 붉은 소파에 앉은 사람한테도 정석주는 말을 걸었는데. 김명희도 붉은 소파에 앉힌다. 자기 목에 상처를 내는 김명희를 보고 정석주는 예전에 자신이 사귄 모델을 떠올렸다. 그때 정석주는 모델이 보내는 구해달라는 신호를 못 들은 척하고 달아났다. 이제는 달아나지 않은 건가. 붉은 소파에 앉으면 자기 이야기를 더 잘할까. 붉은 소파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말할 기회가 온 걸 거다. 정석주는 그걸 말하게 하는 자리를 만든 거겠지.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괴로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다 괴로워한다. 그런 사람이 더 많다면 좀더 나은 세상이 될 텐데 싶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르는 게 낫겠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살면 그 일에 갇혀 살지도. 공소시효가 지나면 죗값을 치르지 못하겠다. 마음의 상처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한다. 상처받는 것도 괴롭지만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도 괴로울 거다. 늘 속죄하는 마음으로 산다 해도 힘들겠지.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싶다. 용서 받을 수 없으면, 스스로 용서할 수밖에 없을지도. 둘레 사람이 그런 말해도 자신은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말할 기회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기회가 없는 사람도 있다. 사라진 사람이 언젠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기다린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죽었을까. 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자기 상처를 낫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걸 안고 죽을 수밖에. 죽을 때는 미련이 없는 게 낫겠지. 아무리 잘 살려 해도 그렇게 하는 거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정석주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낸다고 말하면 이상할까. 멀리 있지 않았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있기라도 해야 피해자 식구는 범인을 원망할 텐데, 그런 사람이 없다니. 정석주가 알게 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그 일이 더 중요할지도. 그건 정석주 자신을 아는 거다. 사이코패스라는 누군가와 똑같은 자신이다. 사람은 자신을 얼마나 알까. 자기 자신을 다 알기는 어렵겠지. 안다 해도 거기에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정석주도 힘들어했다. 자신을 사진작가로 만든 건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누군가한테서 도움을 받는다 해도 재능이 없으면 잘되기 힘들다. 정석주는 재능이 있었던 거다. 재능만 있으면 안 되고 그걸 좋아해야 한다. 정석주는 자신이 사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담은 사진을 누군가 보고 감동하면 기뻐했다. 이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칭찬받으면 기쁜 거. 그런 걸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을까. 정석주는 이제라도 자신과 닮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게 했다. 누구한테나 지난날은 있다. 지난날이 있고 오늘이 있는 거지. 역사와 다르지 않구나.

 

이걸 보기 전에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건 그 사람을 놓아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도 든다. 가까운 사람이 그 사람을 생각하고 나아지게 해야 할 텐데, 하는. 이건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것과 다르지 않겠다. 남을 괴롭히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괴롭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과 앞에서 말한 건 좀 다를까. 사람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될지도. 아무리 마음을 써도 바뀌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긍정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나도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피하고 싶다. 그런 사람 피하기만 하면 안 될지도. 그게 나쁘다는 걸 말하면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까. 그건 끈기가 있고 그 사람을 믿어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조금 달라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같은 말이구나. 5장 태초에를 보다보니 앞에서 본 것은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앞에도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정리했다. 앞에 이야기가 있어서 뒤에 이야기도 나온 거다.

 

좀더 좋은 생각을 쓰고 싶었는데, 이런 말은 안 하는 게 나았겠다. 정석주는 앞에 드러나는 사람이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한사람이 더 있다. 그 두사람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일은 내가 생각한 게 맞았다. 그건 일부러 알게 한 걸지도. 잘못, 죄를 지은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다음을 말한다. 작가는 죄를 지은 사람도 구원받기를 바라는 걸지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건 참 힘든 일이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다를지도.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말도 있다. 살다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것을 그냥 두기보다 제대로 마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상처도 그렇구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다는 아니지만, 무언가에 매여 사는 것도 안 좋다. 안 좋은 걸 알아도 그렇게 사는 사람 많겠지. 이런 책을 보고 조금씩 풀어가면 좋겠다. 나도 그래야 할 텐데.

 

 

 

*더하는 말

 

이것을 올리면서 내가 제목을 왜 저렇게 지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바꾸기도 그래서 그냥 썼는데 생각났다. 한 사람 때문에 그런 거였다. 정석주가 구원하려고 한 사람. 그게 지난날과 상관있어서. 살인 공소시효는 열다섯해였다가 2007년에 스물다섯해(25년)로 바뀌었다. 2013년에도 법이 바뀌고 달라지고, 지금은 공소시효가 없어졌다. 우리나라도 살인 공소시효가 없어졌구나. 누군가를 죽이고 죗값을 치른다고 해도 그걸로 끝난 건 아니다.

 

 

 

희선

 

 

 

 

☆―

 

“범인 검거는 단순히 피해자와 그 유족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도 살인자를 구원하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살인자는 잡힐 때까지 자신이 지은 죄 안에서 허우적 거립니다. 누군가 그 사람이 저지른 죄를 눈치챌 때까지는 속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135쪽)

 

 

“(……) 제가 아는 인간다움이란, 과거에서 오는 것입니다. 지금껏 자신이 축적해 온 것들, 그것들을 똑바로 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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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두 개의 초록

  마종기

  문학과지성사  2015년 05월 26일

 

 

 

 

 

 

 

 

 

 

 

 

 

 

루시드 폴과 나눈 편지를 보고 마종기 시집을 보아야겠다 했는데, 그건 못 보고 몇해 뒤에 나온 것을 먼저 보았다. 이건 2010년에 나온 《하늘의 맨살》 다음에 나왔다. 내가 보려고 한 건 2006년에 나온 《우리는 서로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다. 그때 그 시집에 관심을 가진 건 루시드 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몇해 전에 ebs 라디오 방송에 마종기가 나왔다. 시집이 나왔을 때였는지 루시드 폴과 나눈 편지를 묶은 책이 나왔을 때였는지 잘 모르고,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잊어버렸는데 라디오 방송에 나온 것은 생각난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시인 목소리를 방송에서 듣는 건 신기한 일이다. 시인만 그런 건 아니구나. ebs 라디오 방송에서는 가끔 들을 수 있다(다른 데서도 들을 수 있겠다). 그걸 알아도 챙겨서 듣지 않는다. 내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좋아하는 거겠지. 이 시집 나온 것도 우연히 알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마종기 시 제대로 본 적 거의 없는데, 이 시집에는 어떤 시가 담겨있을까 생각했다.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시집에 담긴 시를 천천히 깊이 보고 싶었는데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보았다. 이런 말을 또 하다니. 자세하게 말하기 어려운데 시에서 느껴지는 건 쓸쓸함이다.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 친구 부인 이야기. 오래 사귄 친구나 둘레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슬프고 쓸쓸하겠지. 친구 부인 영안실에 가서는 자신의 장례식에서는 밝은 노래가 나오기를 바랐다.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린다. 마종기는 어머니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았구나. 나는 모르는데. 어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사람은 나이를 아무리 먹고 자식이 있다 해도 부모를 그리는 것일지도. 정확한 건 잘 모르지만 마종기는 자유롭게 살려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정치와 상관있는 일을 해서 여러가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마종기는 미국에서 의사로 지내면서 시를 썼다. 사는 것과 시를 쓰는 일은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닐 거다.

 

 

 

함께 붙잡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란 것을 아는 이, 남의 깊은 속까지 다 믿고 있는 이가 희망의 신호다. 당당히 걸어서 사람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내가 처음 품었던 희망과 지금의 희망은 달라졌다. 희망은 구름같이 변하는 것인가. 벌판같이 나른한 것인가. 희망이 등을 다독이고 속삭였다. 희망은 땅도 아니고 사람이다. 산천초목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른 섞임이다.

 

내가 세상과 작별할 때에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은 아마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희망들 때문에 나는 누구라도 용서할 힘이 생겼다. 내 손을 보라, 허영이 치유되는 침묵의 소리. 손해보고 상처받았다고 괴로워하던 남루한 내 생을 안아주면서 가벼워지라고 희망은 오늘도 내게 말해준다.  (<희망에 대하여>에서, 22~23쪽)

 

 

 

희망은 바라는 것이고 빛이다. 바라는 것을 말할 때보다 ‘빛’으로 생각할 때가 더 많지 않나 싶다. 희망은 아주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보다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걸 더 그린다. 그렇게 헤매다 가까이 있는 것을 알아보면 좋을 텐데. 어딘가로 떠났나 돌아오는 일도 아주 헛된 건 아니겠지. 그게 사람 삶이 아닌가 싶다. 다른 곳에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찾을 수도 있겠지. 그것도 찾으려 해야 찾을 수 있겠다. 뒤에서는 빛이 아닌 바라는 것이 되었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잘 보아야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면 좋겠지.

 

 

 

3

 

그래 맞아, 시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어.

한동안 그 초심을 잊고 살아왔구나.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서였어.

맞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현자가 된다고 했어.

눈으로 생각도 하고 심장으로 보기도 한다고,

날렵한 세상을 천천히 한눈팔고 걸으면서

탈 없이 욕심 없는 모습으로 산다고 했어.

 

우리는 자주 착각 속에서 살지.

많이 알고 있어서 똑똑한 줄 알지.

사실 알아야 할 것은 하나뿐이야.

우리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안 보이는 것은 없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날 편하게 날개를 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고 사는 이가 많아.  (<날개>에서, 45~46쪽)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겠지. 이 말은 누가 가장 먼저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말 들은 적 없다 해도 살다보면 깨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더 믿을지도. 사람은 모두 천사라고 하는 걸까. 천사한테 날개가 달렸다고 상상하니까. 그것도 있지만 자유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날개를 펴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마종기는 고비 사막에서 만난 젊은 여자한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어본다. 한국사람처럼 보여서 그랬는데 몽골사람이었다.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몽골 여자를 보고 마종기는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고려 여인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고비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고 그것을 꿈이라 한다. 사람이 사는 것을 사막을 건너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꿈이 있어야겠지. 진짜 사막에서 보는 신기루는 어떨까.

 

나이를 먹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도 마종기는 좋게 받아들인다. 나는 가끔 바깥에서 들리는 이런저런 소리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잘 안 들리면 나을까. 그때가 찾아오면 조금 우울할 것 같다. 그런 때는 누구한테나 찾아오겠다. 지금 나중을 생각하면 안 좋을 것 같지만, 천천히 그때를 맞으면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그때 나로 살면 되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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