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

 

 

 

 

범부채

 

 

 

닭의 장풀

 

 

 

해당화

 

 

 

 

 

큰나무수국

 

 

 

 

 

 

 

별로 할 말이 별로 어서 책과 함께 올리려고 했는데 많아서 따로 올린다

올해는 이런저런 꽃 이름을 알게 되는구나(본래 알던 것도 있고)

인터넷을 찾아보면 내가 담은 것보다 훨씬 예쁘게 담은 꽃 많다

그게 있어서 꽃 이름을 알기도 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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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구름도 조각낸 전깃줄

전깃줄 없는 넓은 하늘이 보고 싶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수께끼

 

  일곱 가지 이야기   ななつのこ (1992)

  가노 도모코   박정임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2016년 04월 01일

 

 

 

 

 

 

 

 

 

 

 

 

 

책 제목이 《일곱 가지 이야기》고 책 속에 나오는 책 제목도 ‘일곱 가지 이야기’다. 여기에는 열네 가지 이야기가 담긴 것인가. 책 속에 나오는 ‘일곱 가지 이야기’와 이리에 고마코가 겪는 일이 아주 상관없지 않다. 고마코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 읽은 이야기 하나를 떠올린다. 핏자국을 수박 주스라고 생각한 것을 듣는 <수박 주스의 눈물>에서는 ‘수박 귀신’을. 전시장에서 본 그림이 바뀌었다고 여긴 <모야이의 쥐>에서는 ‘금색 쥐’를 앨범을 보다 사진 한장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고 얼마 뒤 그 사진을 우편으로 받는 <사진 한장>에서는 ‘파란 하늘’을. 미군이 사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철망 앞 철쭉 사이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할머니를 보는 <버스 정류장>에서는 ‘하늘색 나비’를. 백화점 옥상에 있던 비닐로 만든 커다란 장난감 공룡이 태풍이 분 다음날 어린이집에 간 <1만 2천년 뒤 직녀성>에서는 ‘대숲이 불탔다, 대숲이 불탔다, 대숲이……’를. 무슨 꽃이든 하얀 색으로 칠하는 마유키를 만나는 <하얀 민들레>에서는 ‘내일 피는 꽃’을. 마지막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같은 제목 ‘일곱 가지 이야기’를 생각한다.

 

고마코가 읽은 책 ‘일곱 가지 이야기’에는 초등학생 남자아이 하야테가 나온다. 하야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요양원에서 지내는 아야메한테 묻는다. 아야메라는 이름은 하야테가 지은 거로 처음 만났을 때 붓꽃 그림이 있는 옷을 입어서였다. 일본말로 붓꽃은 아야메다. 난 어렸을 때 이상한 일 별로 겪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다 해도 별로 관심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야테가 겪는 일과 고마코가 겪는 일은 같지 않지만 이어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고마코는 ‘일곱 가지 이야기’를 쓴 작가 사에키 아야노한테 편지를 쓴다. 하야테한테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사람이 아야메인 것처럼 고마코한테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사람은 사에키 아야노다.

 

작가는 여러 사람이 되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혼자 쓰는 거지만 글을 쓰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겠다. 이건 이야기 속 이야기까지 써야 한다니. 난 생각은 해도 복잡해서 못 쓰겠다 할지도. 아니 생각도 못하겠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 이야기하다 쓰기를 말하다니. 고마코가 읽은 ‘일곱 가지 이야기’는 어린이가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거다. 고마코가 겪는 일도 그것과 동떨어진 건 아니기도 하다. 고마코가 겪는 일은 다른 사람 형편이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에 잘 맞아 떨어지는 건 <하얀 민들레>라고 해야겠다. 어른은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게 그림을 색칠하면 이상하게 본다. 그림은 상상으로 그리기도 하는 건데, 왜 정해진 색을 칠해야 할까. 어른(선생님)은 못 봤다 해도 아이는 봤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나도 아직 본 적 없지만 하얀 민들레는 진짜 있다. 일본에도 드물게 하얀 민들레가 피는 곳이 있는가 보다. 노란색보다 예쁠 것 같다. 우리나라에 하얀 민들레 많았다는 말 어디선가 들었는데 내가 사는 곳에는 없다. 아이가 하는 행동에는 까닭이 있다(이건 아이만 그런 건 아니겠다). 여기 나온 선생님은 아이를 가르친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는 걸지도. 선생님뿐 아니라 어른은 아이한테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지 않으면 좋겠다.

 

하야테가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파란 하늘’이 좋다. 아픈 할머니가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하늘을 그리는 아이가 나온다. 할머니도 아이들한테 좋은 말을 한다. 하늘색이 파랗기만 한 건 아니다고. 일상을 다르게 보면 수수께끼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난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달이 자신을 자꾸만 따라온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이건 수수께끼와는 다를까. 중간 넘었을 때 하나 생각한 게 있는데 맞았다. 고마코와 편지를 나눈 작가 일이다. 거기에는 조금 슬픈 이야기가 있었다. 슬프면서도 따듯하다고 해야겠다. 이 책에 담긴 감정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앞에서 일상을 다르게 보면 수수께끼가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자세하게 보고 덧붙여야겠다. 이건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찾을 방법일까.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일도 있을지도 모를 텐데. 풀지 않고 덮어두는 게 나은 것도 있다고 말할 때도 가끔 있다. 어느 게 옳은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그때 다르겠지. 덮어두는 이야기를 보면 뭔가 껄끄러움이 남는다. 난 밝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보다. 그렇다 해도 모르고 지나는 일도 있을 거다. 그게 중요하지 않고 풀어야겠다 생각하지 않아서겠지. 여기에서도 확인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사건이 아닌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수께끼니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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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걸린 오선에

어떤 음표를 그려 넣을까

더위를 식혀줄 가락이면 좋겠지

너한테도 들리기를

 

 

 

 

 

 

 

 

 

“비둘기 씨들 더운데 거기서 뭐 해요.”

 

“뭐 하긴, 햇볕 쬐고 사람 세상도 구경해.”

 

“재미있어요.”

 

“나름대로.”

 

 

 

 

 

 

 

삶을 그리다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홍익출판사  2016년 04월 07일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옛날에 그림을 그린 몇몇 사람은 살아있을 때 그림이 잘 팔리지 않거나 무척 가난해서 일찍 죽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려면 돈이 많이 들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다. 오래전에 그림 그린 사람 이름은 조금 알아도 지금 사람은 잘 모른다. 그림 그리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텐데. 그것도 관심을 가져야 알지도 모르겠다. 미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런 걸 잘 알겠지. 보통 사람이 고전음악을 잘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림은 그것을 그린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더 알려지는 걸까.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어쩐지 그럴 때가 더 많은 듯하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이지 늘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림 그린 사람이 살아있을 때 많은 사람이 좋아한 그림도 있을 거다. 모지스 할머니 그림도 그렇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할머니’라고 하다니. 어린이책 그림과 뜰을 가꾸고 산 타샤 튜더도 할머니라고 한 것 같다. 이건 미국 사람이 붙인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처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닌데.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여기저기에 낙서한 적이 있는지 생각나지 않는데 그림 그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방학숙제에 그림 그리기가 있었는데 그거 하기 힘들었다. 내가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 갖지 않은 건 그림책 같은 걸 거의 안 봐서일지도. 많이 봐야 그리고 싶을 테니까. 어렸을 때부터는 아니지만, 글은 많이 보다보니 쓰고 싶기도 했다. 그림은 보는 것만 해도 괜찮고 좋아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 없지 않겠지만, 미국 사람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일흔다섯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흔다섯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모지스는 1860년에 태어났다. 십남매에서 셋째로 집은 가난했다. 어렸을 때는 다른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결혼을 하고는 농장일과 집안일을 하고 밤에는 수를 놓았다. 모지스는 어렸을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수를 놓은 거다. 칠십대에 관절염 때문에 수를 놓기 힘들었다. 그때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수 놓기보다는 나았나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 꿈 같은 일을 하면 자신도 그런 꿈을 꾼다. 일흔다섯에 그림을 그린 모지스를 보고 꿈을 갖는 사람도 있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고 한다. 잘되지 않아도 좋아하는 걸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면 좋지 않을까. 이 글을 쓴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그림과 그림 그린 사람 그리고 자기 삶을 함께 풀어쓰기. 그림을 말하는 책 많이 못 봤지만, 난 쉽게 쓴 글이 좋다. 그림을 보는 방법은 정해진 건 아닐 거다. 난 그림을 봐도 마음에 들면 ‘좋다’고밖에 말 못하겠지만. 그림도 보고 보고 또 보면 무엇인가 말해줄지도. 그런 경험은 없다. 그림을 오래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림에는 시간을 담아둔다. 그것도 짧은 순간이다. 모지스가 그림에 담은 건 기억이다. 기억은 삶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집안일(빨래를 끝내고 빨랫줄에 넌), 잔치가 벌어졌을 때를 그리기도 했다. 그림에 자연이 담겨있어서 보면 편안하다. 마을 사람이나 아이들 모습도 보인다. 모지스 그림은 구석구석 보아야 한다. 글도 일상이 담긴 글이 공감이 잘되듯 그림도 다르지 않겠지. 그림도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게 좋다. 아니 무엇을 그리고 쓰든 진정성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그걸 느낀다.

 

추억은 그렇게 별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그게 추억이 된다. 모지스는 그런 추억을 되새기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시절을 떠올릴 수는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난 별거 없다. 거의 혼자 지내서. 그러면 자연을 만나면 괜찮을까. 모지스 그림은 엽서나 우표로 만들고 성탄절 카드로도 만들었다. 눈 내린 풍경은 성탄절 카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지스는 일흔다섯에서 백하나까지 그림 1600여점을 남겼다. 늦게 시작했는데도 그렇게 하다니 대단하다. 그림 그리는 걸 즐겨서 그랬겠지. 좋아하는 건 즐겁게 해야 한다. 하다가 막힐 때도 있겠지만, 그때를 넘기면 나아지겠지.

 

오래 사는 요즘 사람, 나이를 먹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까. 이제와서 하면 뭐 하나 하는 생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 잘 못해도 좋아한다면 해 보는 게 좋겠다. 나도 그래야 할 텐데.

 

 

 

희선

 

 

 

 

 

언덕 위 느보 산 Mt.Nebo on the Hill │ 1940

 

 

 

 

마을 잔치 Country Fair │ 1950 │ 캔버스에 유채│ 89×114cm │ 개인소장

 

 

 

 

봄날 Spring Time │ 1953 │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 46×60cm │ 모지스할머니재단

 

 

 

 

무지개 The rainbow │ 1961 │  나무에 유채 │ 41×61cm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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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 전에 시 한편 쓰고 싶다

  나태주

  리오북스  2016년 03월 29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행복>, 나태주, 2001  (291쪽)

 

 

 

가끔 어떻게 하면 글을 쓸까 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지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시나 소설이 쓰고 싶기도 합니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하면 쓸까 해요. 그럴 때 글쓰기 책이 도움이 될지. 그런 책이 보이면 읽고 싶기도 합니다. 저걸 보면 뭔가 쓸 수 있을까 하는 거지요.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봤다고 해야겠네요. 이런 책이 나온 걸 봤을 때는 보고 싶다 했는데, 그렇다고 실망한 건 아닙니다. 시 쓰기는 스스로 알아내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알아내기보다 써 봐야 하는 거네요. 나태주 시는 거의 모릅니다. 시인 이름은 아는데 시는 잘 알려진 <풀꽃>밖에 모릅니다. 왜 지금까지 나태주 시집은 한권도 만나지 못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책 속에 나온 시는 처음 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지나면서 보았나 봅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쳤다는 것도 알아요. 아는 건 그 정도뿐입니다.

 

제가 앞에서 시나 소설이 쓰고 싶다 했잖아요. 아쉽게도 그런 생각을 늘 하는 건 아니예요. 쓰고 싶은 사람은 자나깨나 그것만 생각한다고 하던데, 저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에 빠지고 시간이 흐르면 덜합니다. 그건 책 읽고 쓰기를 해서일 듯합니다. 시와 소설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아니어서 열병이 오래 가지 않는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 ‘쓸 게 없어’예요. 가끔 무언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것을 차근차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군요. 떠오르는 걸 놓치지 않고 잡아서 글로 나타내야 하는데 그걸 할 때는 아주 가끔이니.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시라고 하는 말은 글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글감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지요. 행복(파랑새)도 마찬가지네요. 행복이라는 게 요즘들어 많이 말한 건 아니군요.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생각한 적은 거의 없어요(이 말 몇번째 하는 건지). 불행이라는 것도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하고 싶은 걸 하자 할 수 있는 걸 하자일지도.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걸 시로 쓰면 좋겠지요. 저도 잘 못하는 거네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2002

 

 

 

풀꽃, 은 아이들한테 한 말이 시가 되었답니다. 저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도 말은 잘 안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으면 기분이 안 좋기도 했습니다. 좋은 말보다 안 좋은 말할 때가 많아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의 안 좋은 말도 하더군요. 다른 사람과 어울렸다기보다 그 자리에 있어서 그런 말을 들은 거네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제가 없는 곳에서는 제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만나면 남의 뒷이야기 하는 건 아니겠지요. 좋은 이야기도 하겠지요. 그런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말만 있는 건 아니예요. 자연도 말을 합니다. 아니 자신이 자연한테 말을 걸어야지요. 귀 기울여 듣기도 해야겠네요. 그러면 다른 사람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마음 알기도 어려운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아나 싶지만, 알려고 애쓰면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알 수 있겠지요. 시(글) 쓰기는 마음 공부 같기도 하네요.

 

시인이나 글쓰는 사람은 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시나 글을 쓰는 걸까요. 그런 사람이 많지만 김용택은 조금 달랐네요. 나태주는 만 열다섯에 시에 빠졌답니다. 그걸 보고 저는 그 나이에 뭐 했나 생각해보니, 늦은 밤에 라디오 듣고 좋아하는 노래는 외웠더군요. 시하고는 좀 다르지만 아주 다른 건 아닙니다(제가 그때 좋아한 노래는 세상이나 삶을 말하는 거였어요. 가끔 사랑 노래도 좋아했네요).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 마음을 글로 써 본 적도 없군요. 아주 없는 건 아닌가. 저는 늘 조금 좋아하다 말았습니다. 시와 소설 쓰기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니. 푹 빠진 적이 없어서 글쓰기도 어중간한 걸까요. 시는 삶의 발견, 세상의 발견이라 하는데 글도 마찬가지네요. 엄청난 것을 안 것은 아니지만, 작은 거라도 새롭게 보면 재미있지요. 흔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네요. 날마다 같은 날보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라 하면 설레겠습니다. 저도 그날이 그날이다 여기고 삽니다. 가끔 걷다가 나무와 꽃을 만나면 기분이 괜찮습니다. 나무나 꽃은 자기 할 일을 말없이 하잖아요.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배우는군요.

 

어린이는 정말 놀라운 말을 할까요. 가까운 곳에 어린이는 없으니, 제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놀라운 말을 할 때가 있었을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는 말을 해서. 무엇이든 알고 싶어하고 순수하게 보면 어린이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린이는 순수하기에 잔인하기도 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어린이한테 목숨이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주어야겠지요. 시가 아픈 마음에 붙이는 반창고가 될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저는 그런 경험 안 해 본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지만 잊어버린 건지도. 저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시를 보기보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났습니다. 마음 아프고 지친 사람은 마음을 쉬게 하려고 시를 찾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사람 마음을 생각하고 시를 쓰면 좋겠지요. 사람한테 도움을 주고 사람을 살리는 시가 좋겠습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시>, 나태주, 1989

 

 

 

시는 타고나야 쓸 수 있고 소설은 애쓰면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시심은 누구한테나 있습니다(시도 재능이 있어야 쓰는 건 아닐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고 싶네요). 많은 사람이 보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쓴 시를 한 사람이라도 좋아하면 괜찮은 거죠.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겠습니다. 저도 제가 쓴 거 유치해도 좋아합니다. 이렇게 책을 봤으니 시 한편이라도 써야 하는데, 바로 쓰려니 떠오르지 않네요. 시를 더 만나고 시가 찾아오면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겠습니다. 말만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중학생한테 시를 만나게 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국어시간에도 시를 배우지만 그건 재미없지요. 시가 마음을 조용하게 해주기도 하겠지요. 이 말하니 조용하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이건 시를 쓰려고 할 때예요. 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써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편지

 

 

 

깊은 밤 그대가 생각나

편지를 썼습니다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빨간 우체통에 넣었죠

 

낮에는 비 오고

바람도 세게 불었어요

 

그대에게 가기 전에

젖지 않을지

날아가지 않을지

괜한 걱정을 했어요

 

그대여

제 편지 잘 받으셨어요

 

 

 

희선

 

 

 

 

☆―

 

시는 노래와 같은 글입니다. 그림과 같은 글입니다. 노래와 그림을 한 번만 듣고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듣고 보는 것처럼, 시도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느끼고 또 느껴야 합니다. 이럴 때 시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이 될 것입니다.  (44쪽)

 

 

‘시는 우리 둘레에 셀 수 없이 많다. 그것을 찾는 것이 시 쓰기다. 그러려면 밝은 귀와 눈이 있어야 한다. 아직도 시인들은 그것을 다 찾지 못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그 사람이 주인이 된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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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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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식구가 죄를 짓고 그것도 사람을 죽였다면 어떨까. 그런 건 아예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남들 앞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갈까 하겠다. 그때 생각해야 하는 건 죽임 당한 사람과 그 사람을 잃은 식구일지도 모를 텐데, 어쩐지 죄를 지은 식구 때문에 자신이 받을 손가락질을 더 걱정할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겠지. 다른 사람은 그다음일 거다. 난 그런 생각이 드는데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를까. 이 책을 쓴 마이클 길모어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형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고 죽임 당한 게 자기 자신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형인 게리 길모어는 왜 그렇게 됐을까. 범죄소설을 보면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렸을 때 어땠는지 말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거의 부모한테 맞고 자란다. 학교에도 제대로 가지 않고 술 담배 여자 마약에 빠지고 도둑질을 하고 소년원에 들락거린다. 나이를 먹으면 감옥에 갇힌다. 게리 길모어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신이나 형제가 왜 이상하게 됐을까를 알아보려면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그런 것도 정말 영향을 미칠까. 마이클 길모어는 어머니 조상이 모르몬 교였다는 말을 한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영국에서 모르몬 교에 빠진 사람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모르몬 교가 어떤지 난 잘 모른다. 다른 종교도 아는 게 별로 없다. 모르몬 교리에서 어떤 건 괜찮지만 어떤 건 안 좋았다. 교리를 잘못 해석하면 안 되는데, 모르몬 교가 미국에 정착하기까지 사람이 많이 죽었나보다. 왕국을 지으려 했다는 말을 보니 이스라엘이 생각났다. 외할아버지는 마이클 길모어 어머니와 어머니 오빠를 심하게 대했다. 어머니는 늘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집을 떠나고 만난 사람은 어머니보다 나이가 두배나 많은 프랭크 길모어였다. 어머니 눈에는 아버지가 멋지게 보였나보다. 나중에 아버지가 여기저기에서 다른 이름을 쓰고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아이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이라면 그런 걸 알면 바로 헤어질 텐데,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벌써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이 책을 보고 이때라도 다르게 했다면 끝이 나쁘지 않았을 텐데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리 길모어는 사람을 죽이고 유타 주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사형이 없어졌는데 게리 때문에 되살아났다. 게리 자신은 사형 받기를 바랐다. 마이클 길모어는 그것을 모르몬 교에서 하는 피의 속죄의식과 상관있다 여겼다. 앞부분을 말하다 이렇게 뛰어버리다니. 마이클 어머니 아버지는 십년 정도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무언가에서 달아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일은 어머니와 게일렌(셋째형)만 알았다. 아버지는 예전에 무슨 짓을 한 걸까. 많은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데, 마이클 아버지는 술을 끊은 다음에 그랬다. 술을 끊은 건 건강이 안 좋아서였다. 아버지가 그동안 사기 치는 일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아버지가 나오고 어머니는 이제 떠돌아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버지 일은 잘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뿐 아니라 프랭크와 게리를 많이 때렸다. 게리가 잘못하면 프랭크까지 맞았다. 마이클이 태어난 다음에 게일렌은 찬밥신세가 되었다. 다 같은 자식인데 손바닥 뒤집듯 바뀌다니. 마이클만은 세 형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나이를 먹고 조금 달라진 거겠지. 아버지는 자기 부모한테서 사랑받지 못했다. 그게 아버지 삶을 안 좋게 했을지도.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다들 슬퍼했다.

 

아버지가 죽고 게리와 게일렌이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리는 소년원에서 나쁜 짓을 배우고, 감옥에서도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게일렌은 집을 나가고 몸이 아주 안 좋아졌다. 네 형제에서 가장 먼저 죽는다. 게리는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러지 못했다. 감옥에서 오래 지내서 바깥에 적응하지 못한 건 아닐까 싶다. 게리가 자유를 얻는 방법은 죽는 거였다. 사형을 받으려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걸까. 식구나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면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약을 먹은 탓도 있겠지. 미국은 약을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술은 어린이도 마신다. 부모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그건 자식한테 영향을 미치겠지. 자기 자식만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 안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안 좋은 집안 환경에서 자란다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게리는 소년원에 갔다 오고 감옥에 자주 들어갔다 나온 것 때문에 더 나빠진 건 아닐까 싶다. 그곳에서 살아남으려고 남을 괴롭혔을 거다. 남한테 상처를 입히는 건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어서기도 하단다. 게리나 게일한테는 그런 충동이 있었다. 아니 많은 사람은 그런 충동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삭이겠지. 첫째 프랭크는 그런 것 같다.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그걸 알려 하지 않기도 한다. 마이클은 게리가 사람을 죽여서 알고 싶어한 거겠지. 맏형 프랭크가 가장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프랭크가 집에서 떠나려 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죽고 프랭크는 모습을 감추었다. 프랭크는 동생 마이클이 잘 살아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동생한테 폐끼치지 않으려 했다. 한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며칠 보면 기분이 이상한데, 한 가정 역사를 보는 것도 다르지 않다. 바뀌지 않는 일을 바라보는 건 어쩐지 슬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겠지. 죽음을 맞기 전에 그동안 쌓인 응어리를 푸는 부모 형제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 같다. 다들 때를 놓칠 거다. 프랭크와 마이클 둘은 형제로 살아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게리와 게이렌한테는 어떤 꿈이 있었을까. 젊은 어머니는 잘 살고 싶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겠지. 프랭크와 게리 그리고 게일렌은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맞은 게 상처가 됐을 거다. 사람 삶은 한번뿐이다. 남을 아프게 하고 미워하기보다 좋게 지내는 게 좋겠지. 그러려면 남보다 먼저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한테 사랑받은 자식은 자존감이 높고 자신을 좋아하겠지. 자란 다음에는 자신이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릴 때 겪은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남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희선

 

 

 

 

☆―

 

“나는 게리가 한 짓이 무척 싫었어.” 프랭크가 말했다. “그 애가 저지른 짓은 매우 끔찍하니까. 하지만 게리가 당한 일들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만일 게리가 2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지 않았더라면, 게리가 한 사람 머리 뒤통수에 총을 쐈을까? 그것도 그 사람 임신한 아내와 어린 자식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야. 또 다른 사람한테는 어땠을 거 같아? 게리는 주유소에서 그를 쐈지. 그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았대. 그러니까 그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을 죽지도 못하고,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 쳤다는 얘기야. 그렇게 괴롭게 천천히 죽어간 거야. 그 짐승 같은 감옥사회에서 받은 교육이 게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난 확신해. 그 짐승 같은 사회가 게리가 그런 비극을 저지르게 만든 거야.”  (5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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