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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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무서워지고 사람들은 참을성을 잃고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이건 왜 그럴까. 세상이 빨리빨리 흐르고 지구환경도 안 좋아져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는지 말하는 걸 보면, 거의 어린시절이 그리 좋지 않았다. 부모가 아닌 사람 때문일 때도 가끔 있지만, 부모 때문에 힘들게 지낸다. 그 사람이 가장 처음 죽이는 사람은 부모다. 이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하고도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때 생각할 수 있는 건 부모 어느 한쪽에 질투를 느끼는 게 아니고 부모를 넘으려는 마음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아주 커 보여서 반항하지 못하지만, 자라면 부모가 별로 크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때리고 괴롭히는 부모라도 아이는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이에 한한 게 아닐지. 아이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부모는 나이를 먹고 힘이 없어진다. 나도 문제가 아주 없지 않았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일을 겪고 산다. 그런 가정을 평범하다 여긴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힘이 빠진 부모를 안쓰럽게 여길 거다. 이런 생각으로 흐르다니.

 

앞에서 환경문제를 잠깐 말했지만, 내가 자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먹는 것도 상관있지 않을까. 살기에는 편한 게 많지만 그것 때문에 잃은 것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 원시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있었고, 자기 부모나 형제를 죽인 사람도 있을 거다. 그때는 그 일이 여기저기에 알려지지 않았겠지. 지금은 정보가 아주 쉽게 빠르게 여기저기로 흘러간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정보에는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게 섞여 있다. 멀리에서 그걸 보는 사람은 그걸 그대로 믿기도 한다. 이 책은 정보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만약 과학이 지금보다 발달해서 갓난아이가 자라서 살인자가 된다는 걸 알 수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은 갓난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모른다. 나중에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게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그런 시대를 생각하고 아이를 끝까지 지키려는 엄마 이야기 괜찮을 것 같다. 좀 다르지만 <터미네이터가>가 생각나네.

 

모든 사람이 갓난아이는 착하다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는 자라는 환경 때문에 되기도 하지만 태어나기도 한다. 내가 그런 걸 많이 알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난 책이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 부모한테 문제가 없다 해도 그런 아이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유전자는 오래전 것도 이어지니까. 많이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나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해야겠구나). 그런 것까지 말하는 책을 본 적은 없지만. 이것도 이런저런 책을 보고 생각하게 된 거겠지. 여기에 나온 유진도 그런 경우일 것 같다. 확실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건 자아를 갖게 되는 때겠지. 지금도 갓난아이뿐 아니라 어린이는 순수하고 착하다 생각하는 사람 많을 거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생각하는 게 있을 텐데. 그런 아이 가운데도 다른 아이와 좀 달라 보이는 아이가 있을 거다. 유진이 그랬다. 조용하지만 마음속에 무서운 것을 숨긴 아이처럼 보였다. 엄마 배 속에 유진이 생기고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생각한 것 때문은 아닐까. 작은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케빈에 대하여》에 나온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릴 때 사이코패스에서 최고 레벨 프레데터(이 말 처음 알았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앞에서는 갓난아이가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했는데. 갓난아이든 조금 자란 아이든 엄마가 받는 충격은 클 거다. 유진 엄마는 어떤 일을 보았다. 그 일을 못 보거나 보았다 해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좀더 커 보였을 텐데, 유진 엄마는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엄마는 유진이 다른 사람한테 해를 입히는 걸 막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해를 입는 걸 막고 싶었던 걸까. 사람은 누구나 좀 이상한 면이 있다. 엄마와 이모 사이도 그랬는데, 그건 생각하지도 않고 유진 엄마는 이모가 하자는대로 했다. 남편과 큰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은 이모밖에 없다고 여겼던 것일지도. 사람을 약으로 어떻게 하는 건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은 약도 먹고 상담도 받아야 한다지만, 충동을 막으려고 약을 먹게 하다니. 약을 안 먹었을 때 느낌을 알면, 약을 안 먹는 일이 자주 있을지도 모를 텐데. 유진이 그랬다. 유진은 약을 먹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어떤 충동이 일어나는 거겠지. 유진은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고 일을 저지르지만 그 일에 충격을 받고 잠시 잊어버린다. 잊어버린 일은 다시 떠올려야 한다. 피 냄새에 잠에서 깬 유진은 자신이 한 일을 조금씩 떠올린다.

 

이걸 읽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유진이 되어서 써야 하니까. 책을 읽는 사람은 유진이 생각하는 걸 죽 따라가야 한다. 유진이 했다는 걸 알아도 그게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람한테 어떤 성향이 있든 그건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거나. 유진은 수영을 하고 싶어했는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엄마 말을 따라도 크면 달라질 수 있는데 그건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사람은 못하게 하면 더 하려고 한다. 엄마가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유진한테 검사 결과를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이겨내려 해야 했다. 그런 건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울까.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다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닐 거다. 알아듣게 설명하면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둠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걸 드러내면 안 된다 여기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운다. 유진은 그런 기회를 빼앗겼다. 다른 방법을 썼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건 사람이 약하기 때문이겠지. 자신이 이기지 못한다 해도 힘든 일에서 눈을 돌리기보다 마주보고 눈싸움이라도 하면 좋겠다.

 

 

 

희선

 

 

 

 

☆―

 

잊기는 최고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내 머리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패이기도 하다. 어젯밤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해결책으로 잊기로 했고, 나 자신에게 속아 바보짓을 하며 하루를 보낸 셈이었다.

 

모든 걸 알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내가 살인을 저지르리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하구언 길의 위험한 놀이를 그만두라고 스스로 경고했겠지. 그런데도 자꾸 했던 건, 상상의 경계를 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사회 자아가 견고하다고 믿었다. 즐거운 한때와 삶을 맞바꿀 만큼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에 대한 과대평가, 나를 제어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어젯밤 운명의 손에 내 목을 내주게 만든 것이었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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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니 비행기 구름이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구름을 만들었다. 위쪽에 있는 것은 먼저 만들어진 비행기 구름일지도... 높고 파란 하늘도 좋고 구름이 예쁘게 깔린 하늘도 좋다.

 

 

 

 

 

 

데가미바치 20

아사다 히로유키

集英社  2016년 01월 04일

 

 

 

이 만화를 본 지 몇해가 됐는지 확실하게 모르겠다. 만화잡지에 연재한 건 2005년이고 첫번째 책이 나온 건 2007년이다. 그때는 이런 만화가 있는지 몰랐다. 내가 이걸 본 건 2010년 4월로 그때 9권까지 나왔다. 앞에 아홉권은 빨리 나온 것 같기도 한데, 그 뒤에는 천천히 나왔다. 한해에 한권이나 두권 나오기도 했다. 2010년에서 2016년까지 보다니, 햇수로는 일곱해다. 돌아보면 짧지 않은 시간이구나. 그만 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끝이 나는 만화 보는 건 두번째다. 만화를 그렇게 많이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안에서 두 가지나 끝이 나다니.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편하기도 하다. 마지막 권이 나왔을 때 바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봤다. 아쉬운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랬으리라고 믿고 싶다. 내 마음을 내가 잘 모르는 건가. ‘마음’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꽤 중요한 말이다. 사람이 쓰는 편지를 마음이라 여기고, 갑충은 사람 마음을 먹이로 삼는다. 그 갑충을 해치우는 데도 마음이 쓰인다.

 

지금까지 보면서 감동받기도 했는데 그게 다 생각나지는 않는다. 데가미바치 고슈는 편지인 라그를 배달하고, 라그는 그런 고슈를 보고 자신도 데가미바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다. 몇해 뒤 라그는 데가미바치가 된다. 데가미바치가 된 라그는 니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을 만난다. 멀리 사는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는 따듯한 이야기로 보였는데, 앰버그라운드의 비밀이 드러난다. 빛이 없는 앰버그라운드를 밝히는 건 수도 아카츠키에 뜬 인공태양이다. 인공태양을 밝히는 건 사람 마음이고 그 안에는 갑충이 있었다. 깨어나면 갑충이 되는 건가. 인공태양에 마음을 보내는 장치에서 하나인 여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고, 여제가 죽으면 인공태양은 꺼진다. 단지 어두워지기만 하면 괜찮지만 인공태양 안에 잠든 아주 커다란 갑충 스피리터스가 깨어난다. 인공태양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기보다 스피리터스를 잠재울 뿐인 요람 같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잃고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앰버그라운드에 사는 모든 사람 목숨이 위험했다. 라그는 많은 사람이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한 건 많은 사람이 희생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괜찮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다.

 

라그와 치코는 수도 아카츠키에 갔다. 스피리터스를 무찌르려고. 갑충이 사람 마음을 먹이로 삼지만, 갑충은 마음탄에 쓰러지기도 한다. 스피리터스도 엄청나게 많은 마음으로 스피리터스의 약한 부분을 쏘면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거다. 치코는 많은 사람 마음을 이용하려 했고, 라그는 많은 사람이 쓴 편지로 하려고 했다. 편지는 마음과 같으니까. 전에 라그가 편지를 모아달라고 했는데 그건 어디에 있나 했다. 늦지 않게 라그가 있는 곳에 왔다. 많은 편지는 빛이 되었다. 마음탄과는 조금 달랐다. 많은 사람 마음이 담긴 편지가 희망의 빛이 된 건 아닐까. 그것으로 스피리터스를 쏘았다. 하나 더 있다. 라그 엄마는 라그한테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 다섯을 찾으라고 했다. 넷만 찾았는데 나머지 하나는 실베트였다.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한테는 아주 오래전 앰버그라운드 기억이 있었다. 라그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라그가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는 거였다. 라그는 보통 사람처럼 태어나지 않고 많은 사람 마음이 모여서 형태가 만들어졌다. 열두해를 사람으로 살았는데. 라그도 보통 사람처럼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욕심일까. 라그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부분은 환상 같아서 뭐가 뭔지 알기 어려웠는데 이상하게 슬펐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은 슬프지 않은가. 그래도 라그 혼자가 아니고 니치가 함께여서 다행이다.

 

하치노스 관장인 로이드는 아버지가 왜 어머니와 자신을 인공정령 실험체로 썼는지 알게 된다. 예전에 그 이야기 봤을 때는 로이드 아버지를 나쁘다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죽을 병에 걸리고 다음에 로이드도 같은 병에 걸렸다. 어머니는 살리지 못했지만, 로이드는 아버지 장기를 조금씩 이식해서 살았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 일어날 수 없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다는 건 알았다. 어떤 일은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로이드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죽기 전에 그걸 알아서 다행이 아닌가 싶다. 로이드는 어렸을 때 자신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 일을 한 건 라그다. 라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이런 말로 흐르다니. 모습은 볼 수 없다 해도 세상을 따스하게 비추는 빛을 보고 라그를 떠올리는 사람 많을 것 같다. 라그는 늘 세상에 편지를 보낸다. 빛이라는 편지를.

 

종이에 글을 써서 보내는 것만이 편지는 아니다. 그게 가장 좋기는 하지만. 누구나 받는 편지가 있다는 거 아는가. 그건 자연이 우리한테 보내는 편지다. 그걸 즐거운 마음으로 받으면 좋겠다. 가까운 사람한테 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면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 가까이 있어서 더 말하기 힘들기도 하겠지. 멀리 사는 사람한테도 편지로 소식을 전하면 그걸 받는 사람이 반가워하겠다. 편지는 받는 사람과 쓰는 사람 마음을 이어준다. 처음 하는 말은 아닌데, 내가 이걸 본 건 편지 때문이다. 이것을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편지를 쓴다. 앞으로도 쓰겠지. 내 편지를 받는 사람이 무거움을 덜 느끼게 써야 할 텐데 싶다.

 

 

 

 

 

 

 

 

편지

 

 

 

시간 많고

바쁘지 않은

내가 써야지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내가 써야지

 

받으면 기쁘고

보내면 더 기쁜

내가 써야지

 

사나흘 뒤

웃음 지을 네 얼굴 떠올리고

나도 웃음 짓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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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 더 좋을 텐데, 그냥 책을 읽고 그것을 쓰는구나.

 

 

 

 

 

공부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자

 

  공부할 권리

  정여울

  민음사  2016년 03월 10일

 

 

 

 

 

 

 

 

 

 

 

 

 

공부라고 하면 학교 다닐 때 하는 것을 많이 떠올리겠다. 난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별 생각 안 한 것 같다. 책을 다 보고 나니 공부할 권리보다 공부할 자유가 더 낫겠다 싶다. 정여울이 말하는 공부는 누가 하라고 하거나 꼭 해야 하는 건 아니고,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그렇지만 옛날에는 못하게 했을지도. 요즘은 공부하라고 한다, 평생 공부. 조선시대 선비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고 했겠다. 학교나 부모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일할 수 없고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훨씬 많다. 비정규직이라도 구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공부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늘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책을 읽고 어떤 힘을 얻은 경험은 많지 않지만 정여울은 문학과 철학 역사, 심리학과 신화학을 공부하고 힘을 얻었다. 그것을 공부할 때 신났다고 했다. 그 말 보고 난 뭘 할 때 신날까 했는데, 신이 나서 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는 즐겁지만, 어떻게 쓰지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책 읽는 것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다니. 난 인문학 책은 별로 못 읽었다. 거기에도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주 관심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회사에서 요즘은 인문학을 하라고 한다. 이것도 그저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걸 아는 사람을 바라기도 하니까. 인문학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건 지식만 얻으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알기도 하겠지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실천하는 건 쉽지 않지만, 큰 일보다 작은 일이라도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일이든 작은 것부터니까. “한 사람의 힘이 정치권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부수는 독재자들이 지닌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한 사람의 꾸밈없는 양심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한 사람의 힘입니다.” (180쪽) 한 사람이 양심을 지키면, 두 사람 세 사람…… 갈수록 늘어나지 않을까. 한 사람 힘은 작지만 크다.

 

이런 말하는 건 좀 창피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어렸을 때는 자신없다는 말을 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자신과 자존감, 다를까. 아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건지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할 말에 난 마음을 잘 다친다. 그걸 하나하나 말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가기를 바랄 뿐이다. 정여울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해서 다친 자신의 마음을 낫게 했다고 한다. 살면서 마음 다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공부와 책읽기는 다를까. 누군가는 책읽기는 공부가 아니고 일상이어야 한다던데.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 말을 한 걸지도. 뭔가 알려면 책을 보아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공부를 한 사람은 그것을 책으로 썼다. 나한테는 책읽기가 공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책을 읽고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고 싶다. 만나는 책을 좀더 넓혀야 할 텐데. 어떤 책을 보든 생각을 하고 이렇게 쓰면 좀 괜찮겠지. 한쪽이 아닌 여러 쪽에서 봐야 한다. 그걸로 자신을 가질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볼 때는 그럴 수 있을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은 자기 단의 다른 자신이라 한다. 무의식인가. 예전에 만난 《헤세로 가는 길》에서도 카를 구스타프 융이나 무의식을 말했다.

 

지금 세상은 물질은 넘쳐나지만 정신은 더 가난해졌다. 우리나라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지금에 이르렀다. 여전히 경제를 살려야 한다 말하지만, 한쪽에서는 마음을 쉬게 하려 한다. ‘피로사회’라는 말이 생각나는구나. 그 책은 읽지 않았지만. 공부가 사는 데 도움은 안 될지도 모른다. 이건 책읽긴가. 공부를 하면(책을 읽으면) 세상을 바로 보려 하고 넓게 보려 한다. 자신의 세계도 넓어지겠지. 무언가에 휩쓸리기 쉬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공부하고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를 돕고 남도 돕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

 

존엄의 근거를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면 자존감은 쉽게 바깥 형편에 따라 비틀거리고 상처입을 수밖에 없지요. 먼저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한테 묻고,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니 나는 가진 것이 충분하니 반드시 남을 도와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행복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347쪽)

 

 

나만의 속도, 나만의 깊이를 찾아 떠나는 마음 여행, 누구도 나를 앞지를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있다. 천천히 걷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82쪽)

 

 

 

 

 

    

 

                     

 

                      

 

 

 

 

 

조선시대에도 산문을 썼다

 

  문장의 품격

  안대회

  휴머니스트  2016년 05월 23일

 

 

 

 

 

 

 

 

 

 

 

 

 

조선시대에 글을 쓴 건 남자고 양반이다. 언젠가 조선시대에 아이를 기른 일기를 할아버지가 썼다는 말을 들었다. 손자를 잘 키우려고 했지만 말을 잘 안 들었다고 한 것 같다. 지금은 엄마가 아이를 기를 때 일을 잊지 않으려고 일기를 쓴다. 모두가 쓰는 건 아니겠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쓰겠지. 조선시대에 할아버지가 손자 기르는 일기를 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여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이것도 모두 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허난설헌은 결혼하기 전에는 글공부를 하고 시를 썼다. 결혼하고도 썼지만, 죽을 때 자신이 쓴 걸 모두 태우라고 했다. 그래도 조금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겠지. 그때 글을 쓴 여성이 허난설헌 말고 더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서도 여성 화가가 신사임당만 나와서 아쉬웠는데. 이 책을 볼 때도 글을 쓴 여성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편지는 많이 썼을지도 모를 텐데. 남은 게 거의 없어서 우리가 모르는 건지도.

 

지금까지 난 조선시대 사람이 어떤 글을 썼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내가 조선시대 사람이 쓴 글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소설에 나오는 건 봤다. 정약용과 황상 이야기가 담긴 책에서는 시를 보았다. 그것밖에 없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사람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난 한글로만 글을 써서 한자로 산문이나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세종이 일찍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한글로 글 쓰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거의 한자로 글을 썼겠지. 중국하고는 좀 다른 식으로 썼겠지만 한자로도 산문이나 소설 쓸 수 있겠다(한문소설이 있다는 건 안다). 양반은 어렸을 때부터 글 공부를 한다. 과거를 보려고 하는 공부기는 해도 여러 책을 보다보면 좋아하는 게 생기고, 뭔가 쓰고 싶을 거다. 사람은 책을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지니까. 시를 많이 썼겠지만 산문도 썼겠지.

 

여기에서는 일곱 사람 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곱 사람은 허균, 이용후,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이다. 이용휴와 이옥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전업작가였다는 거. 조선시대에도 전업자가가 있었을까. 그런 말이 있어서 썼지만, 조선시대에 전업작가로 사는 건 지금보다 힘들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지금은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용휴와 이옥이 놓인 현실이 책을 읽고 글만 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과거를 보고 벼슬을 했지만 그렇게 잘되지는 않았다. 허균은 사회 부조리에 통곡하고 신분차별에 화를 냈다. 글에도 그런 마음을 담았다. 일곱 사람은 그 시대에서 삐져나온 못 같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약용은 정조가 죽은 다음에 유배를 떠났지만. 정약용은 유배 간 곳에서 사람을 가르치고 글도 많이 썼다. 유배가 아주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벼슬자리를 물러났다면 덜 억울했겠지만.

 

오래전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괜찮은 건 시대를 앞선 거겠지. 그건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다. 일곱 사람은 그런 식으로 글을 쓴 듯하다. 참신하고 독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려 했다. <춘향가>는 신분을 넘은 사랑이라 하는데(다른 해석도 있겠지만), 자유연애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신분이 다른 사람이 만났지만 여자가 죽고 남자도 일찍 죽어서 안타까운 이야기 <심생의 사랑>을 보니, 신분이 다른 사람이 만나는 것뿐 아니라 자유연애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 같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자유연애를 하거나 바란 사람 있지 않았을까. 이옥이 쓴 산문 몇 편은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이 어떻다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못하겠다. 글과 그 사람이 어긋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글과 그 사람이 똑같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글과 사람을 따로따로 보기도 한다. 산문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자기 안을 잘 들여다보거나 바깥을 보고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기도 하니까. 어떤 글이든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쓴대로 살지 못해도 그게 무의식에 남아서 때때로 자신을 일깨울거다.

 

 

 

희선

 

 

 

 

☆―

 

종일토록 망련된 말을 하지 말고

종신토록 망령된 생각을 하지 말자!

남들은 대장부라고 안 해도

나는 그를 대장부라고 하리라!

 

마음에 조바심과 망령됨을 갖지 말자!

오래 지나면 꽃이 피리라.

입에 비루하고 속된 것을 올리지 말자!

오래 지나면 향기가 피어나리라.

 

<서쪽 문설주에 쓰다>, 이덕무 (44쪽)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은 저절로 한가롭다.”  (147쪽  이덕무)

 

 

큰 사귐은 꼭 얼굴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깊은 우정은 꼭 가깝게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면지(黃勉之)는 오중(吳中) 포의일 뿐이고, 이헌길(李獻吉)은 문장의 대가에다 지위까지 높아서 그때 세상 귀인으로 거드름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천 리 멀리 편지를 보내 결국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하니 예로부터 드문 성대한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163쪽  이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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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Elegy of Whiteness

  한강   차미혜 사진

  난다  2016년 05월 25일

 

 

 

 

 

 

 

 

 

 

 

 

 

 

하얀 개

 

 

 

집을 나가 왼쪽으로 꺾어서 잠깐 걸으면 오른쪽에 대중목욕탕이 있고 그 옆에는 집이 몇 채 있다. 대중목욕탕을 지나고 첫번째 집을 지나가면서 대문 밑으로 얼굴 내민 하얀 개를 보곤 했다. 개를 싫어하지 않지만 짖으면 무섭다. 그 하얀 개는 짖지 않았다. 그저 대문 밑으로 바깥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바깥이 보고 싶었던 건지도. 오랫동안 하얀 개를 보았는데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길을 지날 때만 잠깐 만난 개가 보이지 않아도 쓸쓸한데 오랫동안 함께 살던 개가 세상을 떠나면 더 슬프겠다.

 

 

 

 

 

하얀 밤

 

 

 

해가 지면 땅에는 어스름이 내리고 세상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어느 저녁, 해가 졌는데도 창 밖이 캄캄하지 않고 밝았다. 아니 하얬다. 이게 말로만 듣던 하얀 밤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하얀색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주 짧았던 건 아니지만, 조금 뒤 본래 밤으로 돌아왔다. 하얀 밤이었던 날,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건 아닐까 했다. 날마다 찾아오는 밤과 아침이지만, 가끔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가끔이겠지.

 

 

 

 

 

하얀 달

 

 

 

어릴 때 어두운 밤을 무서워했던가. 밤이 오는 걸 아쉬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밤이 오면 자야 했으니까. 어렸을 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밤에 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달빛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밤에 보름달이 뜨면 그 빛만으로도 밤길이 무섭지 않았다. 보름달이 떠서 밤길을 걸은 건 아니고, 밤길을 걷다 다른 날과 다르게 밝아서 ‘오늘은 보름달이 떴나보다’ 했다. 난 그 밤에 어딜 간 거지. 먼 곳에 간 게  아니고 잠깐 밖에 나갔다 온 걸지도.

 

밝은 낮과 다르지만 보름달이 뜬 밤에는 모든 게 잘 보였다. 해는 사물에 빛을 쏘아 흩어지게 하지만, 달은 사물을 빛으로 감싼다. 달이 빛나는 건 해가 있기 때문이구나.

 

 

 

 

 

하얀 비둘기

 

 

 

자주 본 건 아니지만,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하얀 비둘기를 많이 날렸다. 하얀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한다지. 그 하얀 비둘기는 어디에 있던 걸까. 평소에 보는 비둘기는 거의 잿빛이다. 그런 비둘기는 공원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누군가는 아주 많은 비둘기를 하늘 쥐라고 했다. 살이 많이 찐 건 닭둘기라고 하던가. 하얀 비둘기는 잿빛 비둘기보다 드물어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지, 따로 하얀 비둘기만 모아서 기르고 행사를 치렀는지도.

 

마술사는 하얀 비둘기로 마술을 부린다.

 

오래전에는 비둘기를 이용해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전서구. 하루키는 1980년대에 전서구를 보았다니. 그게 그때도 있었나보다.

 

 

 

 

 

하얀 나비

 

 

 

사람이 죽으면 하얀 나비가 된다고 한다. 죽은 사람 혼이 살짝 하얀 나비 몸을 빌려서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오는 걸지도.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하얀 나비를 죽은 사람 혼이라고 하는 걸 보니. 아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엄마 무덤에 날아온 하얀 나비를 엄마로 믿었다. 엄마 품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 아이는 하얀 나비를 보고 ‘엄마, 엄마’ 외치다 비탈에서 미끄러지고 정신을 잃었다. 아이는 꿈속에서 하얀 나비가 엄마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흰 눈 사이로

 

 

 

남자는 오랫동안 여자를 찾아다녔다. 여자와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편안했다. 남자는 그런 날이 오래오래 이어지리라 여겼다. 여자를 만난 겨울이 가고 많은 것이 깨어나는 봄이 왔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봄이면 다시 살아나는데, 그것과 반대로 여자는 시들어갔다. 얼마 뒤 그 날이 찾아왔다. 남자가 밖에 나갔다 돌아오니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여자가 자주 앉던 흔들의자 밑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남자는 물웅덩이가 공기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물웅덩이가 모두 사라진 날 남자는 여자를 찾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여자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남자는 그만두지 않았다.

 

겨울, 큰눈이 내려 길도 없는 산 속으로 남자는 들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는 산 속 깊은 곳에 여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산 속으로 걸으면서 찍은 발자국은 곧 흰 눈에 덮였다. 남자는 여자를 만났을까.

 

 

 

희선

 

 

 

 

☆―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를 갖고 있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짖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진눈깨비>,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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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페 디엠

  호라티우스   김남우 옮김

  민음사  2016년 05월 19일

 

 

 

 

 

 

 

 

 

 

 

 

 

오래전부터 사람은 글을 썼습니다. 언제부턴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림을 그렸군요. 문자도 사람이 발명한 거네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살 때는 기록을 해야겠다 생각하지 않았겠지요(그때 그림을 그린 걸까요). 한곳에 머물고 농사를 짓고 살게 된 것을 농업혁명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책 많이 못 보았는데 조금 본 게 도움이 되는군요. 잘 알지 못해도 새로 아는 건 기억해두면 나중에 아는 척할 수 있겠습니다. 요새 소설만 죽 만났는데, 다른 쪽 책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잠시 다른 말로 샜습니다. 전 기원전 사람이 쓴 글은 거의 못 봤습니다. 그때 글이 지금까지 제대로 남았는지 그것도 모르겠네요. 다는 아니더라도 남아서 지금 사람이 볼 수 있는 거겠지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생각나는군요. 이런저런 전쟁 때문에 책이 타버린 일도 떠오르는군요. 타버린 것도 있지만 일부러 태운 것도 많겠지요. 살아남은 건 운이 좋아서였을까요,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이 움직인 걸까요. 이것도 조금 쓸데없는 말이네요.

 

이 책 제목 많이 들어본 말이지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한 말입니다. 영화도 보고 책도 보았는데 자세한 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말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은 잊지 않았어요. 이 말했을 때 호라티우스 이야기도 했는지. 키팅 선생님은 시 이야기도 하잖아요. 그 말을 듣고 몇몇 아이가 밤에 모여 시를 읽지요. 그때 읽은 것도 오래전 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 영화 나온 지 오래됐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 비슷하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때랑 지금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보면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더군요. 예전보다 지금 더 안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심하게 괴롭히는 아이도 있잖아요. ‘오늘을 즐겨라’ 하는 말은 학생한테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군요. 지금을 사는 사람 모두한테 해야 하지요. 많은 사람이 나중에 잘살려고 지금을 힘들게 살기도 하잖아요. 그렇다고 흥청망청 살라는 말은 아니예요. 알지요.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고 힘껏 살라는 거겠지요. 오늘은 오늘밖에 없습니다. 이거 알아도 늘 잘 지내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시간이 잠깐이라도 있다면 괜찮겠지요.

 

 

 

힘겨운 일에도 평상심을 굳게

지키고, 감당치못할 즐거움은

좋다만 하지 말고 마음을 다스려

절제하라. 필멸의 델리우스!

 

<Ⅱ3 힘겨운 일에도 평삼심을>에서, 87쪽

 

 

 

포스투무스, 포스투무스, 달아나듯

세월은 흘러 지나가고, 신께 빌어도

닥쳐 올 주름과 노년, 막을 수 없는

죽음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Ⅱ14 포스투무스, 포스투무스>에서, 110쪽

 

 

 

옛날 사람이 먹고 살려고 한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호라티우스는 가난해서 시를 썼다고 하네요. 시가 돈이 되었다는 말일까요. 옮긴이는 가난을 돈이 없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마음(정신)을 나타내는 걸지도. 이런 시는 서정시일까요. 호라티우스는 시에는 역사와 신화에 나오는 사람이 나옵니다. 제가 그걸 잘 알면 좋겠지만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 시는 더 상상해서 읽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만 잇는 건 아니예요. 호라티우스 자신의 이야기나 친구 이야기도 조금 있습니다.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는 말도 합니다. 그때는 사람이 더 빨리 죽었군요. 오래 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닐 테지만. ‘오늘을 즐겨라’ 하는 말은 그래서 나온 거겠네요. 호라티우스는 검소하게 사는 걸 좋아한 것 같습니다. 가진 게 없다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시 쓰는 일을 해서 괜찮았겠지요.

 

지금 세상은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런 세상을 따라잡기 힘드네요. 아니 꼭 따라잡지 않아도 괜찮군요. 한가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훨씬 좋을 듯합니다. 알아도 그렇게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잠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생각하는 것도 좋고, 잠시 멈춰서서 스쳐지나는 사람을 보거나 나무 위에 잠시 앉았다 가는 바람을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파란하늘을 떠다니는 흰구름을 보는 것도 좋겠지요. 시를 만나는 게 그런 것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없다

 

 

 

오늘은 저축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언젠가’ ‘다음에’가 아닌

지금 하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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