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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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이어도 그리 두껍지 않은데, 이 책 《원도》는 여러 날에 걸쳐서 만났다. 읽으면서 원도가 힘들었을까, 하면서도 다 공감하지는 못한 것 같다. 어쩐지 원도한테 미안하구나. 두껍지 않은 책을 여러 날 본 건 책을 보는 게 힘들어서였는데, 그저 내가 게을러서였을지도. 며칠 동안 잠을 잘 못 자기도 했고, 책 볼 때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다. 난 잘 몰라도 내 무의식은 좀 힘들었을까. 나도 모르는 나를 생각하다니.


 모든 걸 잃은 원도는 아프고 혼자였다. 여관에 갔더니, 주인이 이상한 짓은 하지 마라는 말을 한다. 그 여관에서 누군가 죽은 적이 있었던가 보다. 원도가 죽을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주인은 원도한테 죽지 말고 살라고 하면서 여관에서 쫓아낸다. 그런 때는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여관에서 죽을 것 같아서 쫓아내고 살라고 하다니. 원도가 아주 부자였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돈은 다른 사람 거기도 했다. 원도는 은행에서 일하고 돈을 빼돌렸다. 그런 거 하면서 죄책감은 하나도 느끼지 않았다. 여기에 담긴 이야기는 원도가 그렇게 된 까닭일지도.


 원도가 하는 말 듣기 쉽지는 않다. 책읽기 말이다. 나도 원도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원도는 자신이 안 좋아진 건 어릴 때 죽은 아버지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나 아이를 돌본 어머니와 산 아버지 탓이다 하는 것 같았다. 장민석도 있다. 차례가 잘못됐다는 말이 나오고. 나중에야 그게 무슨 뜻인지 말한다. 새 아버지로 여긴 아버지가 친 아버지고 먼저 죽은 아버지가 새 아버지였다는 것. 원도 마음에 구멍이 뚫린 건 아버지가 물을 먹고 죽은 모습을 봐설지도. 그때 아버지는 원도한테도 물을 주었다. 물을 마시고 아버지는 죽고 원도는 죽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기 물에 약을 탄 건지, 따로 약을 먹은 건지.


 어머니는 원도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지만, 바깥에서는 노인과 아이를 돌보았다. 어머니도 죽은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이상해졌던 걸까.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어머니와 산 아버지는 원도보다 장민석한테 잘해줬다. 한동안 장민석이 원도네 집에 살았다.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된 건지. 원도는 장민석과 자신이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엔 장민석처럼 되려고 장민석을 따라했다. 시간이 흐르고는 장민석과 반대로 행동했다. 그 마음도 잘 모르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보다 다른 아이한테 잘해주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생각하는 건 이 정도구나. 아이는 어릴 때 부모한테 인정받고 싶어하지 않나. 원도는 그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원도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반대쪽에 있다고 여겼다. 그런 마음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구나. 나도 자주 느끼는 거여서. 내가 원도와 달라도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하다니.


 사람이 살면서 좋은 일만 겪지는 않는다. 원도한테 늘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군대에서는 좀 힘들었으려나. 선임이 원도를 괴롭혔다. 원도는 죽은 아버지를 자꾸 생각했다. 이 소설은 원도가 중얼중얼 끊임없이 말하는 혼잣말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한테 하는 말이었다면 더 잘 들으려고 했을까. 사람은 자기 아픔을 가장 크게 느끼기는 한다. 내가 원도가 하는 말에 다 공감하지 못한 건 그래서겠지. 장민석이 함께 산다 해도 그런가 보다 하지 했구나. 어머니가 원도보다 장민석한테 잘해줄 때도. 그건 내 일이 아니어서 그랬던가 보다. 또 원도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병들고 쓸쓸한 원도가 앞으로 살 날은 길지 않을 거다. 병원에 갈 돈도 없으니. 그래도 원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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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면 그치리라 여긴 비는

오랫동안 내렸다


세상은 어둡고 축축했다


아주 잠시 비가 그칠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먹빛이었다


사람들은 지쳐갔다


비가 와도 걷던 사람은

바깥에 잘 나오지 않게 되고,

걷는 사람보다

차를 탄 사람이 더 많았다


세상은 잿빛으로 가득했다

다시 빛이 돌아올까


어느 날 아침 오랜 비가 그치고,

햇볕이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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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자란 게 많아

떠나는구나


친구가 되지 못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가까이 있지 않아도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친구가 되기도 할 텐데


인연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것도

욕심일지도

떠나는 사람은 떠나게 둬야지


잘 가,

언제나 잘 지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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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5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ch 2025-02-14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관계가 쉽지 않죠. 억지로 해서는 안될것같아요. 뭐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같아요. 조금은 씁쓸한 기분도 들지만요.

희선 2025-02-15 04:42   좋아요 0 | URL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마음이 안 좋아지기도 하네요 시간이 더 가야 그런가 보다 할 듯합니다 놓으면 편할 텐데...


희선
 
밤과 꿈의 뉘앙스 민음의 시 268
박은정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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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만난 시집에서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권도 안 본 건 아닌데, 많이 못 만난 듯합니다. 시인이 쓰는 시는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민음사에서 나오는 이 시집은 좀 어려운 느낌이 듭니다. 이 시집 《밤과 꿈의 뉘앙스》는 ‘민음의 시 268’입니다. 예전엔 이런 양장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이 어디에서 나오든 상관없을 텐데, 민음사에 내는 이런 시집 어렵다고 말했네요. 박은정 시인 첫번째 시집은 문학동네에서 나왔을 겁니다. 그 시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첫번째는 못 보고 두번째를 먼저 만났네요.


 처음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한번 보고 두번째에는 느낌이 조금 달랐어요. 모르는 건 백번 보면 안다고 하던데, 시도 그럴까요. 그럴지도. 백번은 어려워도 열번 정도라도 봤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겨우 두번 보고 이런 걸 쓰다니. 여기 담긴 시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쓸쓸하거나 슬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시집 보고도 했군요. 시가 다 쓸쓸하거나 슬프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그런 시가 더 많은 듯합니다. 시에는 사람이 잘 안 보고 스쳐지나는 걸 담아설지도 모르겠네요. 잊지 않기를 바라는 일도.




검은 눈이 도시를 뒤덮자

아이들은 학교를 버리고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겁먹은 개들이 사납게 짖고

야윈 고양이들이 뒷걸음질 쳤다

대기를 떠도는 불운한 공기와 타락의 징조가

이 도시의 유일한 생명체였다

하천을 따라 달리던 아이들이

죽은 물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눈사람의 입에 쑤셔 넣자

입 가진 모든 것들은 침묵해야 한다는

신념이 눈사람의 입에 꽃피었다

저녁이면 기어이 찾아드는 아이들과

그들의 혓바닥이 파고드는 불빛 아래

감자와 묽은 스프를 차려 놓고

울먹이며 기도하는 사람들

몇 년째 겨울은 검고 탁했으므로

봄이 오지 않는 그들의 도시에

기도도 없이 전도사들이 하나둘 죽어 가자

술집은 사라지고 청탑의 종이 녹슬었다

각자 자신의 문을 굳게 잠근 채

어둠 속에서 검게 내리는

눈을 헤아려 보는 밤

도대체 이 무심한 장면은

어디서부터 발병한 것인지

구원은 요란한 고해성사처럼

마지막 남은 술병을 비우고

벌거벗은 관 속으로 들어간다

붉게 부어오른 혀를 말고

세상의 장례를 시작한다


-<검은 눈>, 70쪽~71쪽




 앞에 옮긴 시 <검은 눈>은 쓸쓸함이나 슬픔은 보이지 않는군요. 조금 쓸쓸한가. 어두운 느낌도 듭니다. 제목이 ‘검은 눈‘이어서 바로 그렇게 생각했군요. 이 시집에는 검은 색이 여러 번 나와요. 그게 어두운 것만 나타낼지. 검은 눈에 덮인 세상을 생각하니 세상이 죽은 듯하네요. 디스토피아 같은. 시인은 다른 생각으로 쓴 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장례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검정은 장례식 색깔이네요.




아직 갈 길이 먼 철새들이

긴 밤 지치지 않도록


아직 닿지 않은 마음이

저를 미워하지 않도록  (<목련>에서, 104쪽~105쪽)




담벼락에 숨어 앉아

머리카락을 뽑으며 놀았다


이것은 내가 처음 배운 위로


버찌나무 아래 누워

자신의 기이한 미래를

예감처럼 보는 아이들


오후에는 지하상가 계단에 앉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들었다


한줌의 흙을 입에 넣고 부르는 노래는

무덤처럼 따뜻할까


저녁의 한가운데

모르는 대문 앞에 머물다

저녁보다 먼저 저문 마음을 두고 왔다


몇 년 만에 눈이 내렸다

장갑을 버리고 귀를 막으면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 괜찮았다


언 담벼락을 돌아가는 개가 있다


몸이 찬 사람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개가 얼어 죽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다


-<오후와 저녁>, 130쪽~131쪽




 시는 쉽지 않네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언가 나타내는 게 있을 텐데, 바로 알지 못하는군요. 알아내는 것도 없고, 제가 생각하는 게 틀릴지도 모르겠네요. 시를 좀 더 자주 많이 만나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군요. 앞에 옮긴 시 <오후와 저녁>은 조금 쓸쓸한 느낌이 들지요. 이건 마지막 연 때문일 것 같네요. 시를 봐도 잘 모르지만 앞으로도 가끔 만나야겠어요. 마음 편하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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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12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렵네요. 그리고 너무 암울해요. 시인이 민감하게 보는 세상의 모습일까요? 시인들의 감수성은 저같은 사람과는 많이 다른거 같아요.

희선 2025-02-14 04:34   좋아요 0 | URL
검은 눈은 꽤 어두워 보이죠 잘 모르지만 그 시가 눈에 띄었네요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그런 시는 얼마 없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2-13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펼치면 시가 어려워서 반복해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오독하면 오독한 대로 읽는 것도 나빠지 않다고 봅니다. 오독하기 좋은 장르가 시, 예요.
최소한 낱말 공부, 표현 공부, 분위기 공부는 된다고 봐요.ㅋㅋ^^

희선 2025-02-14 04:36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어야 할지도 모를 텐데, 시집도 다른 책과 다르지 않게 봅니다 그렇게 읽다가도 마음에 드는 게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 번 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시를 읽는 답은 없겠지요 시인도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걸 다른 사람이 볼지도...


희선
 




밝은 날만 이어지길 바라도

뜻대로 되지 않아요


흐리고 비가 오는 날도 있네요


식물만 비를 반길까요

지구에 사는 생물체는

건조한 날이 이어지면

비가 오길 바랍니다


흐리고 비가 와도

우울해하지 마세요


하루나 이틀

길면 사나흘이 지나면

해가 나타날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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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12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제 차가 내리는 비에 세차가 쫙 되서 좋았어요. ㅎㅎ

희선 2025-02-14 04:28   좋아요 0 | URL
세차한 뒤 눈이 오면 지저분해지겠지요 비가 와서 차를 씻어주었네요 비 오고 어제는 날씨 좋았어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2-13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가 내리면 세상 먼지가 씻겨지는 것 같아 처음엔 반깁니다. 길어지면 싫지만요..

희선 2025-02-14 04:29   좋아요 0 | URL
한동안 비가 안 오네, 하면 다음날이나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오기도 해요 그럴 때 신기하기도 합니다 비가 적당히 올 때 오면 좋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