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일기란 걸 쓴 건 학교에서 내 준 방학숙제일 거다. 그때 바로 바로 쓰지는 못하고 밀려서 썼겠지. 뭐라고 썼는지 생각은 안 난다. 검사 받는 일기는 쓰기 싫었다. 잘 쓰지도 못했지만. 숙제는 대충 쓰지 않았을까.
검사 받지 않는데도 일기를 쓴 건 방학숙제 덕분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한 것도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중학생 때는 일기 숙제 없었는데도 그냥 썼다. 어쩌면 그때는 누구나 뭐든 쓸지도. 좀 더 일찍 글쓰기를 즐겼다면 좋았겠지만, 학교 다닐 때는 책을 거의 안 보고 몰랐다. 이 말 여러 번 썼구나.
몇해 동안 받은 일기장에 일기 쓰기는 했는데, 종이에 딱 맞는 펜이 없어서 쓰다 말다 했다. 일기 잘 안 쓴 걸 펜 핑계를 대다니. 펜과 종이가 잘 맞아야 쓸 맛도 나지 않나(잘 안 맞아도 쓰기는 한다. 그건 다른 데 써 둔 걸 옮겨 써서). 일기여도. 아니 일기는 그래야지. 예전에 글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한해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 쓴 적 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때도 있었구나. 글 같지도 않은 걸 열심히 썼구나. 내가 쓴 일기는 재미없다. 그저 쓰고 싶은 것만 쓰고, 그날 있었던 일은 거의 없었다. 기억하고 싶은 건 썼던가. 잘 모르겠다.
일기는 자신이 쓰고 싶은 거 써도 되겠지. 기록이 되지도 않는 걸 썼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그날 기록을 쓰기도 했는데, 그게 자료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일기는 못 쓰겠다. 이제는 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쓰기 어렵다.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건 안 쓴다. 이런 나 좀 이상한 것 같다. 내 일기 볼 사람도 없는데. 말하고 싶지 않고 쓰고 싶지 않은 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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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5년에도 몇해 동안 받아서 쓰던 일기장에 일기 써야겠다고 하다가, 괜찮아 보이는 일기장을 알게 됐다. 처음에 사려던 건 이게 아니다. 그건 이것보다 더 작다. 크기는 일기장을 산 다음에 알았다. 사진으로 보기엔 좋지만, 좀 작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취소하고 이거 ‘오늘 기분 365days’를 샀다. 이체를 끝낸 뒤여서 돈을 돌려받은 다음에 샀다. 잘 살펴봐야 했는데.
일기장은 새해가 오면 다 팔리는구나. 처음에 사려던 거 일찍 샀다면 작아도 썼을 거다. 내가 인터넷 책방에서 일기장 사려고 했을 때는 다 팔린 뒤였다. 다행하게도 인터넷 책방은 아니지만, 아직 남은 곳이 있었다. ‘오늘 기분 365days’도 작지만 쓸 만하다. 일기 쓸 칸은 겨우 일곱줄이다. 맨 위에도 쓰면 여덟줄이다. 이것보다 조금 더 크면 좋을 텐데. 쓸 말 그렇게 많지 않으니 괜찮을지도.
날마다 일기장을 펴고 쓰려고 이 일기장 샀다. 새해가 오고 며칠 지나고였지만. 밀린 것도 대충 썼다. 그걸 써야 한 해 동안 쓸 거 아닌가. 지나간 날 생각나는 건 별로 없어서 그날 일보다 아무 말이나 썼다. 그날 써도 아무거나 쓴다. 일기 자꾸 쓰다 보면 괜찮은 것도 쓸까. 그런 일은 거의 없을지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을 채우는 재미로 써야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