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일기 4 노견일기 4
정우열 지음 / 동그람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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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노견일기’에서 풋코를 만났을 때 풋코는 열다섯살이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풋코는 한살 더 먹었습니다. 이번 《노견일기 4》에서 풋코는 열여섯살이에요. 사람이 한살 먹는 것과 개가 한살 먹는 건 좀 다르겠지요. 열다섯살일 때도 풋코가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열여섯살인 지금은 그런 생각 더 듭니다. 정우열은 누군가 찾아왔다 돌아갈 때 다음에는 풋코 만날 수 없다고 해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해야지. 그런 말 들으면 아쉽겠습니다. 아직 풋코 괜찮을지. 제가 이렇게 네번째까지 만나게 될지 몰랐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도 풋코 이야기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찾아보니 다섯번째 나왔군요.

 

 얼마전에 제가 차 조수석에 탄 개 봤다고 했는데, 풋코는 정우열과 함께 조수석에 탔습니다.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대리운전기사가 개를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대리운전기사가 풋코를 보고 얌전하다고 하자 정우열은 풋코가 열두해나 미친 개였다고 해요.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얌전하답니다. 풋코는 차에 타면 창 열고 바람 쐬는 걸 좋아했는데, 대리운전기사는 그것도 괜찮다고 했어요. 정우열이 풋코를 차 조수석에 태우고 가면 사람마다 반응이 달랐어요. 아이는 강아지다 하면서 좋아하고 풋코를 보고 웃는 어른도 있었습니다. 정우열은 풋코한테 누군가를 웃게 해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말해요. 풋코를 보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도 있는 거겠습니다.

 

 풋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풋코가 나이를 먹고 짖지 않아 다행이네요. 아이스크림 가게 부부는 풋코를 보면 반겨주고 아이스크림도 줬어요. 그게 갈수록 많아졌어요. 개한테 아이스크림 줘도 될지. 초콜릿은 안 된다고 하잖아요. 정우열이 누군가를 만나 팥빙수를 먹는데 어떤 사람이 정우열한테 다가와서는 말했어요.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이었어요. 아이스크림하고 팥빙수를 같이 팔았다면 정우열이 거기 갔을 텐데. 정우열은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이 화난 거 아닐까 조금 걱정했어요. 가게를 하면 단골이 다른 데 가면 좀 안 좋기도 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겠지요.

 

 요즘은 운동화만 빨아주는 곳도 있더군요. 저는 그런 데 맡길 운동화는 없지만. 정우열이 그 가게 손님이었는지 그저 지나다 알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운동화 빨아주는 곳에서도 풋코를 반갑게 맞아줬어요. 풋코가 오면 물을 줬어요. 다른 일 없어도 들르라고 한 걸 보면 정우열은 손님이었을지도. 어느 날은 가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운동화 맡긴 손님이 불만을 말해서. 운동화 빤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한정판이네 하더군요. 풋코는 그 가게 부부를 만나지 못해서 아쉬웠을지. 자주 보다 못 보고 자신한테 별로 관심 갖지 않으면 아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풋코야, 그날 어땠어. 이렇게 물어봐도 대답은 못 듣겠네요.

 

 개나 고양이와 살면 사람 말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런저런 말 할 것 같네요. 바로 앞에 본 《소년과 개》(하세 세이슈)에서는 사람들이 개 다몬한테 말을 했습니다. 정우열도 풋코한테 말 많이 했어요. 한 아이는 풋코를 귀여워하다 엄마가 가자고 해도 안 갔어요. 아이가 풋코를 자꾸 쓰다듬자 언니가 아이를 안고 갔어요. 그 모습 좀 웃겼습니다. 정우열은 그 모습을 귀엽게 여겼습니다. 풋코가 나이가 많아선지 정우열은 풋코와 헤어질 일도 생각해요. 이 말은 전에도 했군요. 정우열은 먼저 떠난 소리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기르던 개가 죽은 걸 생각하고, 세상을 떠난 개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정우열이 소리와 헤어졌다 해도 풋코와 헤어지는 걸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습니다. 소리와 풋코는 다르군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슬프고 개와 헤어지는 것도 마음 아프겠습니다.

 

 제가 부럽게 여기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이사하는 거예요. 정우열이 이사했어요. 풋코도 같이 갔지요. 이사하기 전에 정우열은 동네에서 만난 개 여름이랑 까미한테 인사했어요. 그 두 개는 순한 편이었어요. 예전에는 줄로 묶어두지 않았지만 지금은 줄에 묶여 있을 때가 더 많은가 봅니다. 여름이는 정우열과 함께 잠시 있기도 했어요. 무서운 개도 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개도 있어요. 그런 개는 사람이 무서워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저도 큰 개 무섭게 여기면서 이런 말을 했네요. 제주도에 사람이 많아져서 개는 사는 게 편하지 않겠습니다. 풋코는 이사한 곳이 집인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풋코는 예전 집으로 가기를 기다렸어요. 시간이 더 가면 풋코도 거기가 집인지 알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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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4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외삼촌의 강아지가 18살까지 살다 갔는데
인간의 언어만 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

서로 주고 받는 말에 상처 받았던 외삼촌 가족이 강아지로 인해 화목해지는 모습을 보니
강아지는 동물 그 이상인것 같습니다. ^^

희선 2021-11-06 23:31   좋아요 0 | URL
열여덟살까지 살았다니 오래 산 거겠지요 사람하고 하는 말이 달라도 마음으로 느끼면 되겠지요

외삼촌 식구들이 강아지가 함께 살게 되고는 달라졌군요 서로 말하지 않다가 동물이 함께 살게 되고는 말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 보기도 했네요 식구가 같은 걸 이야기 하면 다른 이야기도 하고 사이가 좋아지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21-11-04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 다롱이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막상 다롱이가 죽자 거의 한 달 반을 이 녀석이 어디로 갔을까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녀석이 생각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많이 덤덤해졌어요.
우스운 건 몸이 조금 건강해졌다는 거죠.
족저근막염으로 1년을 고생했는데 그게 서서히 낫기 시작한 거 있죠?
죽어가는 개를 돌보는 것도 기 딸리는 일이었구나 싶더군요.
내일은 가족 여행까지 갑니다. 다롱이 있으면 감히 꿈도 못 꿀 일인데.
다롱이가 없으니까 말 수가 줄긴 했는데 개를 또 키우자고 하면 지금은 노입니다.
진짜 편하더군요.ㅎㅎ

희선 2021-11-06 23:35   좋아요 1 | URL
있다가 없으면 생각이 나겠지요 꼭 어딘가에 가서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것 같고... 개는 스스로 어딘가에 갈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 것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슬펐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조금 나아져서 다행입니다

stella.K 님 몸이 나아져서 다행이네요 아픈 사람만큼은 아니겠지만, 아픈 개도 돌보는 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끝까지 지켜보셔서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식구들과 어딘가에 가시는군요 잘 다녀오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롱이는 저세상에서 잘 지낼 거예요


희선

서니데이 2021-11-05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 년이 지나면 한 살 더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문장이 되면 다른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희선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희선 2021-11-06 23:37   좋아요 0 | URL
이 책속에서 풋코는 열여섯살인데 어쩌면 이것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지난 일이기도 하니... 그래도 아직 살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니데이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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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은 《소년과 개》인데, 개는 처음에 나오고 소년은 나중에 나온다. 소년과 개 하면 생각나는 거 없나. 난 《플랜더스의 개》(위더)가 떠오른다. 파트라슈. 주인이 죽은지 모르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하치도 있다. 어떤 개는 사람이 남극에 데리고 가서 썰매를 끌게 하고는 개만 남겨두고 사람은 그곳을 떠났다. 개 사슬이라도 풀어주고 가지. 거기 남은 개에서 두 마리만 살아 남았다. 개는 사람한테 온 마음을 다하는데 사람은 그런 개 마음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늑대개와 함께 산 이야기 본 적도 있다. 길을 걷다가 커다란 개가 보이면 무섭기도 하다. 개가 사람을 보고 으르렁대는 건 사람이 그렇게 만든 건지도.

 

 며칠전에는 차 조수석에 탄 흰 개를 보았다. 그 개는 꽤 컸다. 머리가 차창 크기과 거의 비슷했으니. 내가 그 개를 본 건 차창이 내려와서였다. 개한테 바람 쐬라고 차창 열었을까. 난 그걸 보고 개가 창으로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 잠깐 했다. 개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 개는 사람과 자주 차를 타고 어딘가에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개와 산책하려고 어딘가에 간 걸지도. 이 책에 개가 나와서 이런저런 개 이야기를 잠깐 했다. 이런 거 말고 개와 있었던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예전에 거의 시골에 살아서 개를 자주 보기도 했는데. 그때는 개를 아주 무서워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사람이 버린 개가 더 많을지도. 그런 개가 무리지어 다니면 무서울 것 같다. 개를 기르다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 나오는 개 이름은 다몬이다. 다몬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뒤 다섯해 동안 이와테 현에서 구마모토까지 간다. 일본 동쪽끝에서 남서쪽끝으로 갔다고 해야 할까. 다몬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잘 알았다. 이렇게 똑똑한 개가 있다니. 다몬을 잠시 동안 만난 사람은 모두 다몬을 좋아했다. 자신을 지켜주는 개로 여긴 사람도 있었다. 귀금속품을 훔치다 폭력조직한테 쫓기게 된 미겔은 다몬을 자기 나라 스페인에 데려갈 생각도 했다. 그건 미겔이 어릴 때 만난 개 쇼군 때문이었다. 미겔은 쇼군이 있어서 죽지 않았다. 어릴 때 개와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개를 좋아하겠다. 그래도 미겔은 다몬이 어딘가에 가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다몬을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다몬 목에 걸린 목걸이에 이름이 있어서 처음 만난 사람은 다몬이라 했는데, 나중에 만난 사람은 다몬한테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래도 다몬은 똑똑해서 사람 말을 잘 알아들었다. 이런 개 정말 있을까. 개가 똑똑하다는 건 알지만, 다몬은 사람 말을 아주 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다몬은 사람이 말하는 걸 잘 들어줬다. 다몬 한자는 多聞인데 한자 뜻만 보면 ‘많이 듣는다’다. 한국말로 읽으면 다문이지만. 다몬은 다몬천에서 따온 건가 보다. 다몬은 도둑을 만나고 어느 부부를 만나고 매춘부 그리고 노인을 만나기도 한다. 부부는 다몬한테 서로 다른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게 마음이 안 맞다니. 아니 내가 보기에 아내가 남편한테 말을 안 해서인 것 같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불만은 없었을 테니. 자신이 바라는 걸 상대가 다 들어주지 않을지 몰라도 말은 하는 게 좋을 텐데. 그랬다면 좀 나았을 텐데. 이런 말했지만 나도 말 안 할 것 같다. 아내는 다몬을 만나고 개를 길러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몬은 다섯해 동안이나 걸었다. 힘이 들면 잠시 동안 사람과 살면서 앞으로 갈 힘을 기른 것 같다. 한번은 노인이 죽는 걸 옆에서 지키기도 했다. 노인은 다몬이 곁에 있어서 덜 쓸쓸했겠지. 다행하게도 다몬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그게 바로 히카루다. 제목에 나온 남자아이는 마지막에 나오다니. 생각할수록 다몬 대단하다. 어떻게 다몬은 히카루가 있는 곳을 알았을까. 히카루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말을 하지 않게 됐는데, 다몬을 만나고는 조금씩 나아졌다. 집에서 그림만 그리던 히카루가 다몬과 집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멋지면서 슬프기도 하다. 아니 슬프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다몬이 사람한테 준 마음은 아주아주 컸다. 히카루와 만나기 전에 만난 사람도 그렇게 느꼈을 거다.

 

 

 

*더하는 말

 

 마침 며칠 전에 <한국의 명견>이라는 기념우표가 나왔다. 진도개, 삽살개는 알지만 경주개 동경이는 처음 알았다. 경주개 동경이가 가장 오래된 개라 하는데 몰랐다. 진도개, 삽살개, 동경이는 다 천연기념물이라 한다. 진도개는 진도에서만 기를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다른 개도 마찬가지 아닐지. 개든 고양이든 함께 살게 되면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일반우표 10원 50원 100원짜리도 나왔다. 앞으로는 만들지 않을 것 같기도 했는데. 이 좋은 소식을 몰랐다니. 저건 다음에 우체국에 가서 사와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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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31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랫만에 보는 토종 한국 우표!
저 우표 수집 쟁이 인데(대를 이어서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ㅋㅋ)
수집을 멈춘지 N년째 입니다!
매년 기념 우표를 비롯해 연말에 발행 되는 우표는 반드시 손 안에 넣었는데....



희선 2021-11-02 00:14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우표를 모았지만 지금은 멈추었군요 그것도 대를 이어서 했다니... 저는 정말 편지를 쓰려고 우표를 사는 건데, 다 쓰지 못하고 새로운 우표가 나와서... 십일월이 오니 다시 편지를 더 써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할 텐데...


희선

프레이야 2021-10-31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진짜 우표 본 지가 언제인지요 ㅎㅎ
명견우표도 이쁘고 나비우표도 이쁘고요.
진짜 동물 키우다 슬그머니 갖다 버리는 사람들 ㅠ 생명을 거두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니 인연 맺고 건사하며 살기 참 쉽지 않죠. 오래전에 울집 개 생각나요. 다음에 들려드릴게요 ^^

희선 2021-11-02 00:18   좋아요 1 | URL
우표가 나와도 어디서나 살 수 없기도 하네요 예전보다 덜 나와서... 사는 사람이 줄어서 그런 거겠습니다 그래도 십원 오십원 백원짜리가 다시 나와서 좋네요 우체국에 많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살 수 있겠지요

처음에는 좋아서 동물과 함께 살았을 텐데, 그게 귀찮아져서 슬그머니 버리기도 하다니... 슬그머니, 이 말 어쩐지 슬프게 들립니다 동물이 사람한테 주는 게 많기도 한데... 프레이야 님은 개와 살았던 적 있군요 좋은 기억이 있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1-10-31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속의 개는 역시 파트라슈 ㅋ 저도 어렸을때는 우표수집이 취미였는데 이젠 다 없어졌어요 다 어디로 간건지 ㅜㅜ 반려견도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은 더 좋을지도~!!

희선 2021-11-02 00:20   좋아요 1 | URL
많은 사람이 파트라슈를 알겠지요 제가 어렸을 때 만화영화 봤을 때는 슬픈지 몰랐어요 나중에 다시 보고 그게 슬프다는 걸 알았습니다 마지막은 슬펐지만 그래도 네로와 파트라슈가 만나서 다행입니다


희선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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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왜소 소설》을 만났는데, 이번에 만난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은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추리소설가와 출판사 편집자가 나오는 게. 이 소설을 먼저 쓰고 ‘왜소 소설’을 나중에 썼다. 지난번에 책 보면서 어이없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까 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독서기계 살인사건>은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 같기도 했다. 평론가나 작가한테 책을 읽고 글을 쓰게 하거나 소설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알려주는 기계가 팔릴까. 팔릴 수도 있고 팔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 같은 기계를 써서 글이 같은 일도 일어났다.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책은 스스로 보는 게 더 좋은데. 그 책을 잘 소화하지 못한다 해도.

 

 책 읽고 평론이나 감상을 쓰는 기계나 소설 쓰는 기계가 나오면 사람은 무얼 해야 할까. 소설이 잘 팔리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하는가 보다. 그런 얘기는 만화가가 나온 이야기에서 잠깐 봤는데. 만화와 소설은 팔리는 게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주 잘 팔리는 건 어느 정도일까. <세금 대책 살인사건>에서 작가는 다음에 자신이 내야 할 세금을 알고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려고 쓴 돈은 세금에서 빠질까. 이런 거 잘 모르는구나. 어쨌든 자신이 쓴 돈을 소설을 쓰려고 쓴 것처럼 하려고 해서 소설이 무척 억지스러워졌다. 그런 소설을 쓸 바에는 안 쓰는 게 낫겠다. 그런 소설 읽는 사람 있을까.

 

 맨 앞에 나온 <세금 대책 살인사건>과 비슷한 건 <장편소설 살인사건>이다. 여기에서는 편집자가 작가한테 원고지 장수를 늘리게 한다. 본래 그리 길지 않았는데, 짧으면 잘 팔리지 않는다면서 억지로 늘리게 했다. 그렇게 늘린 소설은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소설은 더 많이 늘리고 무게까지 나가게 해서 책이 우스운 모습이 됐다. 실제 그런 일 있을까. 짧은 걸 늘려쓰는 일 말이다. 가끔 소설 보다 보면 안 써도 되는 거 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건 늘리려고 한 건 아니고 정보를 주려는 거였겠지. 정보가 없으면 이야기가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난 말이 적어서 문제다). <범인 맞히기 소설 살인사건(문제편 · 해결편)>은 인기 작가한테 원고를 받으려는 이야기로 마지막에는 진짜 살인이 일어난다. 여기 실린 소설은 거의 다 액자 형식이다. 이걸 이제야 말했구나.

 

 소설 속에서 추리소설을 모방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예고소설 살인사건>에서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소설이 그랬다. 그 소설이 화제가 되고 팔렸다. 그 뒤에 범인이 작가한테 전화해서는 자신이 죽이는 사람을 소설로 쓰라 한다. 범인이 전화했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할 거 아닌가. 작가는 신고하지 않고 소설을 썼다. 실제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고령사회 살인사건>은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치매에 걸린 소설가가 소설을 쓰고 치매에 걸린 편집자가 원고를 받는다. 앞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줄고 나이 많은 사람만 책을 보면 그런 일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마카제관 살인사건(최종회 · 마지막 다섯 장)>은 끝내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건 작가가 갑자기 죽어서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겠다.

 

 여기 담긴 소설은 가볍게 봐야 할까, 뭔가 다른 걸 생각해야 할까. 추리소설가나 출판계 책 읽는 사람을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다. 출판사는 그런 거 안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렇게 책이 나왔구나. 이 이야기는 진짜와 가짜 사이에 있을지도. 원고 늘리는 이야기 보니, 나도 이런 거 늘리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무슨 말을 더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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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29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찍어내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출판계를 비꼰다는게 신기하네요 ^^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안읽었는데 한번 읽어봐야 겠어요

희선 2021-10-29 23:57   좋아요 1 | URL
개정판이 나오는 가운데 새로 나오는 책도 있어요 이것도 그런 거네요 얼마전에는 소설가가 되고 서른다섯해 기념으로 쓴 소설 《백조와 박쥐》가 나왔어요


희선

stella.K 2021-10-29 1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치매에 걸린 소설가가 소설을 쓰고 치매에 걸린 편집자가 원고를 받는다.
좀 웃프네요. 치매 걸린 독자가 읽으면 또 어떻게 되는 걸까요?ㅋㅋ
아, 이거 웃으면 안 되는데...ㅠ

희선 2021-10-30 00:00   좋아요 2 | URL
작가 편집자 독자까지 치매에 걸리면 슬프겠네요 책을 보고 앞뒤가 안 맞아도 잘 모를지도...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아주 없어지지는 않겠지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으니...


희선

scott 2021-11-02 15: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 히가시노 게이고 이천년 이전에 쓴 작품 중 가장 현실을 냉소적으로 풍자한 작품입니다
게이고가 워낙 다작을 해서 게이고 소설 가이드 북을 팬들이 펴낸 적이 있는데 초기작들이 게이고의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겪은 일들이라고 하더군요
버블 경제 시대와 단카이 세대들은 그래서 게이고의 엄청난 팬층이라고 !

저는 예전엔 문고본 기다리기 힘들어서 하드커버 나오자 마자 읽었는데 몇년 전 부터는 문고본 나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에는 가끔 영풍에서 1년에 한번 일본어 서적 폭탄 세일을 해서 천원에 한가득 구매 한적 도 있었는데 ....

희선 2021-11-03 00:44   좋아요 1 | URL
전에 작가가 되고 서른해 됐을 때 여든 권 넘었다고 한 것 같기도 하네요 지금은 그것보다 더 늘었겠습니다 얼마전에 나온 책은 작가가 서른다섯해 기념으로 썼군요 그게 2021년인지... 그런 건 빨리 나오기도 하니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팬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가이드 북을 만들기도 하다니, 히가시노 게이고 좋아했겠습니다

영풍에서 일본어 책을 싸게 팔기도 했다니, 그런 거 알아도 갈 수는 없겠지만 좋은 걸 하기도 했네요 어떤 건 문고가 빨리 나오기도 하지만, 긴 건 거의 세해 걸리더군요(그것보다 더 걸릴 때도 있겠습니다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있겠군요) 가가 형사 시리즈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국에는 늦게 나왔지만...


희선
 
Dr.STONE 22 (ジャンプコミックス)
이나가키 리이치로 / 集英社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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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STONE 22

이나가키 리이치로 글   Boichi 그림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어릴 때 난 만화는 보면 안 좋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림만 있어선지 학교 선생님이 안 좋다고 말해선지. 학교에서 그런 말 들었겠다. 학교 다닐 때는 만화뿐 아니라 다른 책도 안 봤다. 이제는 만화책 보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만화는 길어서 끝까지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 아닌가. <원피스>는 오래됐지만 책을 처음부터 보지는 않았다. <닥터 스톤>은 다른 것보다 오래되지 않았구나. 이 책은 한 해에 다섯권이나 나온다. 이걸 몰랐을 때는 원피스가 가장 많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원피스는 한해에 네권 나온다. 닥터 스톤은 거의 두달에 한권 나오고 한권만 나오는 데 석달 걸린다. 만화가 시작하고 얼마 안 됐는데도 벌써 22권이다. 내가 모르는 만화에는 닥터 스톤처럼 두달에 한권 나오는 거 있겠지.

 

 삼천칠백년 전 지구는 이상한 빛에 덮여 사람은 모두 돌이 되었다. 삼천칠백년 뒤 일본에서 돌에서 깨어난 센쿠, 미국에서는 제노가 가장 먼저 깨어났다. 센쿠는 일본에서 동료와 인류를 구하려고 배를 타고 미국에 간다. 센쿠는 그저 과학을 좋아하지만 제노는 과학으로 독재자가 되려 했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야기를 해야지 그게 아니었구나. 제노는 센쿠를 죽이려 했고 센쿠는 제노를 잡으려 했다. 제노가 센쿠 쪽에 잡혔다. 그 뒤를 군인이었던 스탠리와 다른 사람이 쫓았다. 센쿠는 앞으로 일을 생각하고 광석이 많은 브라질 아라샤로 가서 요새를 만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싸울 준비라 해도 사람을 돌로 만드는 장치를 써서 스탠리와 군인뿐 아니라 센쿠 쪽 사람도 모두 돌로 만드는 거였다. 스이카가 돌이 된 센쿠 쪽 사람을 구하는 일을 맡게 되고 프랑소와와 요새를 떠났다. 하지만 스이카와 프랑소와는 스탠리 쪽 사람이 거미에 물린 걸 보고 치료해주고 잡힌다.

 

 코하쿠 츠카사 효가는 먼저 통신기를 부수려 했다. 셋이 함께 싸우게 되다니. 스탠리와 군인은 총이 있었다. 셋이 싸움을 잘 해도 총에는 지겠지. 츠카사가 격투가인 사람을 쓰러뜨렸지만 총에 맞았다. 다음은 효가가 총에 맞았다. 남은 건 코하쿠뿐이었다. 츠카사와 효가는 코하쿠가 해내리라는 걸 알고 맡겼다. 코하쿠는 스탠리 쪽 통신기를 부쉈다. 부수고 코하쿠도 총에 맞았다. 총에 맞아도 죽지 않아야 할 텐데. 괜찮겠지. 코하쿠 츠카사 효가는 통신기를 부수면 스탠리가 그걸 고치려고 멈출지 알았는데, 스탠리는 그러지 않았다. 잘 싸우는 세 사람을 쓰러뜨려서겠다. 생각대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면 안 되겠지. 끝까지 애써 볼 수밖에.

 

 카세키는 사람을 돌로 만드는 장치에 넣을 다이아몬드 전지를 잘 깎지 못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했는데, 미국에 있는 시계 기술자 조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보냈다. 통신기를 쓰기는 해도 두쪽 다 다른 쪽 건 들을 수 있나 보다. 브로디는 뭔가 냄새를 맡았다. 브로디는 시계 기술자 조엘한테 가서 사람을 돌로 만드는 장치를 빼앗았다. 이제 어떻게 될까 했다. 스탠리와 군인은 요새에 오고 그걸 막으려고 한 타이주는 총에 맞고 쓰러졌다. 겐은 스탠리 쪽에 잡힌 사람이 긴로 마츠카제 스이카 프랑소와라는 걸 알고 세 사람 코하쿠와 츠카사 효가가 아무것도 안 했을 리 없다 여겼다. 겐은 세 사람이 통신기를 부쉈으리라 생각했다. 눈치 빠르구나. 지금까지는 암호로 연락했는데, 그때는 일본말로 했다. 브로디는 센쿠 동료가 그걸 듣지 못하게 하라고 했는데 모두 그걸 들었다.

 

 사람은 이것저것 앞을 내다보고 준비를 해둔다. 통신기를 듣지 못해도 통신기가 아주 없지 않았다. 조엘이 가진 시계가 통신기와 같았다. 다른 데서 말하는 소리만 들을 수 있지만. 센쿠는 미국에 있는 동료한테 지구 사람 모두를 돌로 만들라 했다. 브로디가 빼앗아간 사람을 돌로 만드는 장치를 되찾으려고 싸웠는데 모두 총에 맞고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조엘이 사람을 돌로 만드는 장치를 넣은 곳에 손을 넣었다. 그거 뚜껑은 닫혔다. 돌이 되는 범위와 시간을 말해야 하지만 그건 달에서 오는 전파를 이용했다. 달에서는 여전히 지구 사람을 돌로 만들려는 전파(말)가 왔다. 조엘이 찬 시계에서 그 소리가 나와서 곧 지구에 있는 사람은 모두 돌이 될 거다. 삼천칠백년 전에는 갑자기 당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구나. 센쿠뿐 아니라 동료는 믿었다.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스탠리가 요새에 가까이 오고 제노를 구했다. 제노가 잡혀 있었다 해도 자유로웠지만. 센쿠는 돌에서 깨우는 게 저절로 떨어지는 장치를 만들었다. 거기에 사람을 돌에서 깨우는 액체가 든 병을 놓으려 했는데 총에 맞는다. 센쿠가 총에 맞다니. 우쿄는 그걸 알고 프랑소와 밧줄을 화살을 쏘아서 풀어주었다. 프랑소와는 스이카를 풀어주었다. 스이카는 곧바로 센쿠가 있는 곳에 가서 돌이 된 사람을 깨우는 액체를 나중에 저절로 떨어지는 장치에 놓았다. 그건 소리로 병을 깨뜨리는 건가 보다. 스탠리는 그 병을 깨뜨릴지 말지 생각했다. 그걸 깨면 인류는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었다. 스탠리는 자신은 돌이 된 채여도 제노는 깨어나리라는 걸 알고 그걸 그대로 두었다. 스탠리가 그 병 깨뜨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제노가 바라는 세상이 되지 않는다 해도 제노가 깨어나는 게 낫겠지. 시간이 흘러서 제노 마음이 바뀌면 좋을 텐데. 그러면 스탠리도 같은 편이 될 거 아닌가.

 

 미국에 있던 사람뿐 아니라 일본에 있는 이시가미 마을 사람과 보물섬에 있던 사람은 모두 돌이 되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다니. 그래도 한사람이 돌에서 깨어났다. 그건 누굴까. 스이카다. 모두 돌이 되고 혼자만 깨어나면 쓸쓸할 텐데, 스이카는 돌이 된 사람이 말을 하는 상상을 했다. 센쿠는 사람을 돌에서 깨우는 액체 만드는 방법을 종이에 써두었다. 스이카가 글자 읽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전에 일본에서 배웠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해도 사람을 돌에서 깨우는 액체 만들기 쉽지 않겠다. 그래도 스이카는 혼자 해냈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일곱해였다. 이번에도 센쿠는 돌이 되고 초를 세고 있었구나. 어렸던 스이카가 꽤 자랐다. 츠카사 동생 미라이보다 어렸는데 이제 친구처럼 보이겠다. 책에서는 일곱해 빨리 지나갔지만, 스이카 외롭고 힘들었겠다. 센쿠와 모두를 다시 만나려고 힘냈겠다. 스이카 대단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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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문학동네 시인선 146
김희준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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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을 보기 전에 조금 우울한 일이 있었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해야겠지만. 엄마 휴대전화기에 온 게 문자피싱이라는 걸 좀 늦게 깨달았다. 그걸 봤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 그 생각은 바로 못했다. 엄마 전화기가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폴더폰과 스마트폰 중간이라 해야 할까. 세상에는 왜 남의 돈을 쉽게 가지려는 사람이 있는지. 자기 부모가 그런 일을 당해도 괜찮다 생각할까. 그런 사기 치는 사람은 부모 생각하지 않을지도. 아무 일 없었지만 조금 우울해서 잤다. 잠을 잘 못 자도 잠이 오지만 기분이 안 좋아도 잠이 온다.

 

 요새 자꾸 안 좋은 꿈을 꾼다. 잘 때 안 좋은 꿈 꾸지 않기를 바라고 자기도 했는데. 꿈에서 노래를 들었다. 그게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 엄마 휴대전화기에서였다. 그건 내가 듣던 거였는데, 그게 꿈과 섞였던 거였다. 그 꿈은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꿈속에서는 기분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낮에 꾼 개꿈. 다른 꿈도 꾸었을 텐데 잊지 않은 건 그것뿐이었다. 더 자기 그래서 일어나서 이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을 보았다. 어떤 책을 볼까 하다가 시집 보기로 했다. 시집 사두고 몇달 지났으니. 시가 어떨지 몰라서 쉽게 펼치지 못했다. 시를 보기는 하지만 늘 잘 못 본다. 이 말 또 했다.

 

 김희준 시인은 처음 알았는데 벌써 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여름에 내가 그걸 알게 된 게 정확하게 언젠지 모르겠다. 2020년 8월이나 9월초쯤일 거다. 새벽이었다. 그날 김희준 시인뿐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 죽음도 알았다. 그 사람은 음악한 사람이었다. 그때 내 기분이 아주아주 안 좋았다. 그럴 때 그런 걸 알게 되다니.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다. 그게 아니었다면 더 살 사람도 있었겠지. 이런 생각은 쓸데없을지도. 죽음은 누구의 죽음이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다. 그게 아니었다면, 하는 ‘만약에’를 끝없이 생각할 거다. 갑작스러운 죽음일 때는 더하겠지. 산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고.

 

 

 

 며칠 째 태양이 발광을 멈췄다 TV에선 인공태양을 만들자 혹은 전구를 달고 태어날 수 있게 유전자조합을 하자 토론이 진행되었다 공약으로 하나같이 태양을 걸었으니 표백된 정오는 서늘했다 쓸모가 없어진 태양은 뒷골목에서 얼마의 값으로 팔렸다 한편에선 고래가 집단 자살을 했다 단속반이 동네를 헤집자 불법으로 키우던 인어를 하수구에 버렸다 비린내 나는 죽음이었다 해돋이를 편집한 영상이 세계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발광이었다 인류에게 새로운 진화와 종교가 생겨났다 그것은 ‘검은 태양의 아이’로 명명했다 이들은 캄캄한 피부였지만 성기가 야광이었다 집단 난교를 즐기는 이 무리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는 온몸이 빛났다 빛을 두른 자는 모이거나 포옹하거나 특별한 특징을 가졌다 수만 명의 세대는 손을 잡고 원을 돌았다 중력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는 동그라미, 분리되지 못한 내일이 눈을 깜박이자 원은 한꺼번에 사라졌다

 

 다음 날 지구에 존재하는 나머지 생물이 중얼거였다

 

 아침.

 

-<새벽에 관한 몽상>, 18쪽

 

 

 

 어쩐지 앞에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시를 옮긴 것 같다. 김희준 시인은 시쓰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겠지. 재능있고 앞으로 쓸 시도 많았을 텐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구나. 그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시인 어머니는 무척 마음 아팠겠다. 앞에 옮긴 시 <새벽에 관한 몽상>은 SF 같지 않나. 김희준은 어릴 때 엄마와 함께 별을 보았다고 한다. 별 동화 환상 꿈. 여기 담긴 시는 바로 알기 어렵다. 내가 알아들은 건 별로 없다.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태양은 완연하게 여름의 것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선 계절을 팔았다

설탕 친 옥수수와 사슴이 남긴 산딸기

오디를 바람 개수대로 담았다

간혹 꾸덕하게 말린 구름을 팔기도 했다

속이 덜 찬 그늘이 늙은 호박 곁에 제 몸을 누이면

나만 두고 가버린 당신이 생각났다

 

찐 옥수수 한 봉지 손에 들었다

입 안으로 고이는 단 바람이 평상에 먼저 가 앉았다

늦여름이 혀로 눌어붙고

해바라기와 숨바꼭질을 하던 나는

당신 등에 기대 달콤한 낮잠을 꾸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보지 않고도 키가 자란다

기다리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빈 종이에 스며든 그날 체온이 기척 없이 접힌다

일도 높은 당신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108쪽~109쪽

 

 

 

 시를 보다 <연필>이나 <우체통>도 마음에 들기는 했는데. 뒤에 실린 발문을 보니 두 시는 시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단다. 내가 시를 잘은 모르지만, 그걸 보면서 뭔가를 느꼈나 보다. 내가 ‘연필’과 ‘우체통’으로 글을 쓰면 쉬운 이야기가 될 텐데. 그런 거 쓴 적 있구나. 시 제목에 ‘소행성09A87E’라는 게 들어가는데, 난 그걸 봤을 때 윈도우 업데이트가 떠올랐다. 숫자와 알파벳이 비슷해 보인다. 장옥관 시인은 김희준이 그곳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있어서 좋겠구나. 누군가는 그 소행성을 떠올리고 김희준이 그곳에 있다고 여기겠다. ‘올리브 동산’도 있다. 거기는 김희준이 만나자고 한 곳이다. 언젠가 그 올리브 동산에서 김희준을 만날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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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3 1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쓴 손글씨에 적혀진 한 편의 시 처럼 읽었습니다

이렇게 좋은시를 남긴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니 너무나도 슬프네요 ㅜ.ㅜ

주말 희선님이 올려주신 시들 천천히 읽으며,,,

주말 햇살 가득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ㅅ^

희선 2021-10-24 00:30   좋아요 1 | URL
지난해 여름이었다고 합니다 시집 한권이라도 남아서 다행일지, 시인을 아는 사람은 더 슬프겠습니다 오래 살고 시를 더 많이 썼다면 좋았을 텐데... 시를 다 알기 어렵지만 느낌이 좋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