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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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은 젊은작가상이 열한번째 되는 해였습니다. 열해째에는 열번째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걸 처음부터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난 열번째까지는 해를 넘기지 않고 봤는데, 이번에는 해를 넘겼습니다. 어쩌면 여기에 먼저 본 소설이 두편이나 있어설지도 모르겠네요. 두 편 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소설 보다’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에는 그것도 별로 못 봤네요. 가을이나 겨울 건 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는데. 지난해도 그렇고 여전히 책을 빨리 못 봅니다. 아니 책을 오래 못 봅니다. 이 책도 며칠에 걸쳐 봤습니다. 책을 조금 오래 본 날은 겨우 하루고, 세시간 조금 넘었습니다. 지난해에 책 하루에 다섯시간 봐야지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 뒤로 그만큼 본 날은 며칠 안 됩니다. 앞으로는 하루에 서너 시간 책 보고 싶은데 지킬 수 있을지.

 

 젊은작가상이나 소설 보다로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강화길도 젊은작가상으로 알았던가, 했는데 아니군요. 예전에 악스트에서 먼저 알고 그 소설이 젊은작가상 받았습니다. 강화길은 작가가 되고 올해(2021)로 아홉해째가 됐네요. 젊은작가상은 작가가 되고 열해째까지인 사람한테 준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 나온 걸 들으니, 젊은작가상 대상 받으니 다음에는 김승옥문학상이 마음 쓰인다고 하더군요. 김승옥문학상은 작가가 되고 열해이상된 작가한테 줘요. 작가보다 소설이 먼저일지. 소설가가 상을 생각하고 소설 쓰지는 않겠지만, 상 받으면 기쁠 듯합니다. 자신이 한 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구나 생각할지도. 아니 상 받지 않아도 소설가는 소설 쓰기를 바랍니다. 글쓰는 사람은 글로 상 받는 것보다 언제나 글쓰기를 더 바랄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 실린 소설에서 먼저 본 걸 생각했더니 재미있는 걸 알았습니다. 그건 두 소설이 처음과 맨 끝에 실렸다는 거예요. 강화길 소설 <음복 飮福>과 장희원 소설 <우리(畜舍)의 환대>. 두 소설에 같은 점 하나 있네요. 제목에 한자를 함께 쓴 겁니다. 예전에 장희원 소설은 한자를 봤는데, 강화길 소설은 이번에 ‘음복(飮福)’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그 말 소설 안에도 나오는데, 보고도 그냥 지나쳤나 봅니다. 음복은 제사를 지낸 뒤 모두가 함께 그 음식을 먹으면 복이 온다는 말입니다. 어렸을 때 친척 집에서 제사 지낸 적 있는데, 그런 건 하나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저한테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제사 지내고 음식 먹은 기억은 없습니다. 차례 지내고 아침은 먹었군요. 강화길 소설에서는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세나가 남편 정우 할아버지 제사에 가서 지금까지 몰랐던 걸 알게 돼요. 정우는 할머니, 고모 그리고 어머니 사이를 하나도 몰랐습니다. 제사에도 마음 안 써도 됐어요. 이 부분은 저와 다릅니다. 저는 딸이어서 제사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었어요. 이건 이것대로 차별 아닐지. 그렇다 해도 안 가도 돼서 다행이었습니다. 난 안 가도 되는구나 하고. 저는 집안 여자가 모든 걸 세세히 알아야 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것도 어느 집이나 같은 건 아닐 듯합니다. 그래도 여성이 더 눈치 잘 보는 건 맞는 듯해요. 어머니는 왜 정우가 아무것도 모르기를 바랐는지. 그 마음 잘 모르겠네요. 정우가 여러 가지 일을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서였을까요.

 

 이제는 집에서 제사 지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더 많을 듯합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음복’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어지겠습니다. 어머니는 딸한테 네가 나를 이해해야지, 하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한테 그런 말 안 하는 것 같은데. 장희원 소설에서 우리는 동물을 넣는 우리, 축사예요. 영재 부모는 호주에서 공부하는 영재를 만나러 호주에 가서, 집주인인 흑인 노인과 갓 스물이 된 민영이 영재와 산다는 걸 알고 조금 놀랍니다. 아니 그런 걱정은 호주에 가기 전부터 했을지도. 감자 샐러드에는 뭐가 들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못 먹는 걸 넣은 건 아니겠지요. 어머니 아버지는 영재가 호주에서 다른 식구를 찾은 것 같았을까요.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영재가 동성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영재는 한국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살 때보다 지금 모습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서로 연락 끊고 살지는 않겠지요. 부모는 아직 영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합니다.

 

 좀 알기 어려웠던 건 <다른 세계에서도>(이현석)예요. 낙태죄가 법에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알겠는데 다른 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게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듯해요. 지수 마음인가. 그동안 임신중절이 법으로는 안 되는 거였더군요. 법으로 안 된다 해도 그걸 한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 법을 만든 사람도 그런다는 거 알았을 것 같은데. 2021년부터는 낙태죄가 없어졌나 봅니다.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산부인과의사뿐 아니라 임신중지를 결정한 사람은 죄책감을 덜 느낄까요. 임신중지가 안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꼭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있겠지요. 그것보다 다른 걸 먼저 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이런 문제 별로 생각 안 해 봤습니다. 낙태죄가 없어진 건 다행입니다.

 

 김초엽 이름은 들어봤지만, 소설은 여기 실린 단편 <인지 공간>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인지 공간은 상상하기 어렵더군요. 외장하드 같은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여기 나오는 곳에는 인류가 그리 많지 않은가 봅니다. 이 소설을 보고 많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한사람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가 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걸 기억하면 좋을지. 한사람 한사람도 중요하지요. 최은영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장류진 소설 <연수>에서는 나이 많은 여성을 ‘나’보다 작다고 말하더군요.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희원은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강사가 언제나 자기 앞에 있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가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희원이 누군가의 빛이 될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겠네요. ‘연수’에서 주연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도움은 받아도 그 사람처럼 살지는 않겠다 생각해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는 말과 비슷하네요. 그래도 한순간은 서로 좋은 사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건 좋게 보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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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8-24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도 책이네요. 8월에나왔으니, 올해도 나왔거나, 아니면 곧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된 책들도 좋은 것 같아요. 그 중에서 좋아하는 내용을 잘 만나면 더 좋고요. 희선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희선 2021-08-25 00:10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본래 4월에 나오는데 지난해에 조금 문제가 있어서 개정판이 8월에 나왔습니다 2021년 것도 4월에 나왔어요 그것도 샀지만 아직 못 봤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보면 좋을 텐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희선

서니데이 2021-08-25 00:11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나중에 한번 더 찾아봐야겠어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희선 2021-08-25 00:3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좋은 밤 보내세요 곧 잘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카드캡터 체리 마스킹 테이프 1 카드캡터 체리 마스킹 테이프 1
CLAMP 그림 / 아르누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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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으로 마스킹 테이프라는 걸 샀다. 지금 생각하니 이 테이프 한번도 안 써 본 건 아니다. 종이로 된 테이프 써 본 적 있는데 그것도 마스킹 테이프였던 것 같다. 그건 등기로 보낼 책을 싸는 데 썼다. 마스킹 테이프는 인테리어에 쓰는 것인가 보다. 요새는 이런저런 그림이 담긴 것도 있는데 그건 벽에 붙이기보다 일기장에 붙일까. 일기장 꾸미는 데 쓴 보기도 나왔다. 난 일기장에 그림을 그리거나 스티커를 붙인 적 없다. 그냥 글자만 썼다. 일기장 자체가 예쁘지도 않고 줄이 그어진 거나 아무것도 없는 걸 썼으니. 2021년에는 아주 가끔 일기를 쓴다. 그건 일기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일기 써도 거의 비슷한 말만 쓴다. 시간이 흘러도 그게 바뀌지 않다니. 일기 잘 좀 써 봐. 나한테 말하다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만 왜 일기에는 더 못 쓰는지 모르겠다.

 

 카드캡터 체리(사쿠라)라는 이름으로 나온 마스킹 테이프다. 우연히 백장짜리 엽서가 나왔다는 걸 알고 마스킹 테이프를 봤는데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샀다. 어디에 붙이면 좋을지. 이거 봤을 때 편지봉투에 붙이면 괜찮겠다 생각했다. 난 편지봉투도 별로 꾸미지 않는다. 주소가 있는 데는 아무것도 없는 게 낫기는 하겠다. 가끔 편지 흰 봉투에 넣어서 보내기도 하니 거기에 붙이면 괜찮겠다. 앞보다 뒤에. 편지봉투는 풀로 붙이지만 그 위에 붙이면 조금 예쁘게 보일까.

 

 마스킹 테이프 사고 받았는데 아직도 안 뜯었다. 뜯어봐야 어떤지 알 텐데. 게으른 나. 뜯어서 써야 할 텐데, 쓰겠지, 쓸 거다. 마스킹 테이프로 여러 가지 하는 사람도 있던데, 난 다른 건 못하겠다. 처음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한번 써 보고 괜찮으면 나중에 다른 것도 사 볼까 한다. 안 살 것 같은 느낌. 벌써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이걸 샀더니 바로 품절이 됐다. 하나 남았던 거 내가 샀나 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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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8-23 0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딩딸이 다이어리 꾸미는데 쓰더라구요. 요즘엔 예쁘고 별스런 것들 많나 봐요. 희선님도 해보세요^^

희선 2021-08-24 01:41   좋아요 0 | URL
따님이 다이어리 꾸미기도 하는군요 요즘은 예쁜 스티커 같은 게 많은가 봐요 그런 거 다이어리에 붙이기도 한답니다 이것도 그림이 있어서 일기장이나 여러 곳에 붙이면 좋을 듯합니다


희선

서니데이 2021-08-23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드캡쳐 체리는 지난번에는 엽서를 소개해주셨고, 이번엔 마스킹테이프도 있었네요.
실제로 보면 예쁠 것 같은데... 품절이네요.
마스킹테이프는 디자인이 예쁜 상품이 많은데,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희선님, 좋은밤 되세요.^^

희선 2021-08-24 01:45   좋아요 1 | URL
처음에는 세가지가 나왔던데, 이거 하나만 있어서 샀더니 이것도 바로 품절됐어요 마스킹 테이프 종류가 많더군요 이런 만화 그림으로 만든 것도 있는 듯합니다 만화는 여러 가지로 만들기도 하네요

어느새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서니데이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카드캡터 체리 클리어카드 엽서북 100 (케이스)
CLAMP 그림 / 아르누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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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연히 알게 된 <카드캡터 체리(사쿠라)> 백장 짜리 엽서다. 좀 얇지만 쓰기에는 괜찮을 듯하다. 가로로 써야 할지 세로로 써야 할지. 뒤쪽에는 가로로 그림이 옅게 있다. 그런 게 있으면 가로로 써야 할 것 같지 않나, 세로로 쓸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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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8-21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쁘네요 추억입니다…

희선 2021-08-23 01:08   좋아요 2 | URL
엽서 하나하나 다 못 봤지만 괜찮더군요 쓰면서 어떤 게 있는지 볼까 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1-08-21 0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클램프? 만화 많이 봤었는데~!!

희선 2021-08-23 01:10   좋아요 2 | URL
클램프 맞아요 예전에는 클램프가 여러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는데, 이걸 책으로 보고 클램프가 여성 네 사람이라는 거 알았습니다


희선
 
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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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카 유키노 씨 당신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눈 감았겠지요. 《무죄의 죄》를 본 저는 마음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조금 희망을 가졌는데 그렇게 가다니. 어쩌면 그게 편할지도 모르죠. 사는 건 더 힘드니까요. 지금은 ‘네가 있어야 해’ 말해도 시간이 가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죠. 그런 일은 누구나 겪기도 합니다. 아니 누구나는 아닌가. 저는 유키노 씨가 어릴 때부터 힘들게 살았나 했어요. 다나카 유키노 씨 당신은 사귀던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 것에 화가 나고 남자친구 집에 불을 질러 남자친구 아내와 쌍둥이 딸을 죽였다는 걸로 사형수가 됐지요. 그 뒤에 열일곱살 어머니와 의붓아버지한테 학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걸 봤을 때는 그런가 했는데, 다음에 나온 이야기는 아주 다르더군요.

 

 유키노 씨 당신 어머님은 유키노 씨를 지우려다 산부인과 의사가 한사람이라도 아이를 사랑하면 괜찮다는 말을 듣고 당신을 낳기로 했어요. 당신 어머님은 유키노 씨 당신을 자신이 꼭 지키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당신이 여덟살 때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돌고, 누군가 유키노 씨 어머님을 찾아왔지요. 누군가는 바로 유키노 씨 외할머니였군요. 유키노 씨 어머님은 당신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네요. 외할머니가 나타나기 전까지 유키노 씨는 행복하게 살았는데. 아버님은 어머님이 죽은 뒤 술을 마시고 딱 한번 유키노 씨를 때리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키노 씨는 슬픈 말을 들었군요. 유키노 씨 아버님은 유키노 씨가 아닌 어머님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요. 유키노 씨는 그 말을 듣고 무척 충격받고 외할머니가 유키노 씨를 의지하자 그 말을 순순히 따랐습니다. 어릴 때는 그럴 수 있다 해도 나이를 먹으면 달라질 것 같기도 한데, 유키노 씨는 그러지 않았군요.

 

 세상 사람은 유키노 씨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매스컴에서 하는 말만 듣고 유키노 씨를 살인자로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일을 당하면 억울해서 듣는 사람이 없다 해도 난 아니다 말하려 했을 거예요. 유키노 씨는 죽고 싶었지만, 언젠가 누군가 유키노 씨한테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마라 한 말을 따르려고 사형을 받아들였군요. 왜 저는 자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중학생 때 친하게 지낸 오조네 리코는 당신을 이용했지요. 처음에는 그럴 마음이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쁜 친구한테 영향을 받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키노 씨는 오조네 리코가 친구라는 것만으로 자신이 죄를 뒤집어썼군요. 그건 친구를 위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때 잘 말했다면 아주 안 좋은 일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텐데. 소년법이 있다고 열세살까지 아무 벌도 받지 않는 건 아니예요. 지나간 말해도 소용없군요. 리코는 책을 즐겨 본 듯한데, 책을 봐도 사람이 아주 괜찮은 건 아니군요. 그건 저를 봐도 알 수 있기는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유키노 씨는 아무한테도 마음을 열지 않으려 했는데, 이노우에 게이스케 말은 믿었군요.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사람에는 자신이 바라는 걸 이루려고 거짓말도 합니다. 이노우에 게이스케는 여자한테 거짓말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어요. 실제 이노우에는 유키노 씨를 함부로 대했습니다. 왜 유키노 씨는 그걸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어디선가 이런 말 보기는 했어요. 남이 있어야 자신이 있다는 걸 느낀다고. 사람은 남과 이어지려 하기는 해요. 그게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유키노 씨는 부질없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 봤겠지요. 이노우에 게이스케하고 헤어지고 시간이 가고 유키노 씨는 괜찮아졌는데. 그만 잊지 왜 찾아갔어요. 찾아가도 좋아하지 않고 다시 당신한테 돌아올 리 없는데. 그거 모르지 않았을 것 같네요.

 

 오래는 아니어도 잠시라도 유키노 씨가 좋았던 때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좋은 때는 오래 가지 않아요. 그건 그저 순간일 뿐이에요. 유키노 씨가 바란 건 한사람일 텐데. 저도 그래요. 단 한사람만 있으면 되는데. 한사람을 얻기는 무척 어려워요.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야지 어떡하나 해요. 유키노 씨한테는 있더군요. 왜 그게 부러운지. 아니 한사람이 아니군요. 유키노 씨가 살기를 바란 사람. 유키노 씨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뉘우치라 한 친구도 있었지만. 변호사가 된 단게 쇼. 변호사가 돼서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 했습니다. 오조네 리코는 좀 싫었습니다. 유키노 씨 사형이 확정됐을 때 드디어 유키노 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각했어요. 잘못은 자신이 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다 끝나버린 일이고 되돌릴 수 없군요. 유키노 씨 저세상에서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선 쓸쓸하지 않기를 바라요. 언젠가 저도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 저는 사는 게 더 힘들어도 아직은 살까 합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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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9 0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얘기인가봐요. 그렇다고 범죄혐의를 뒤집어 쓰는건 좀..... 하지만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겠죠. 예전엔 일본 소설들 많이 봤는데 요즘은 왠지 좀 뜸해지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

희선 2021-08-20 01:19   좋아요 0 | URL
책을 다 읽고도 꼭 누가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 건강이 아주 좋지는 않았습니다 늘 아픈 건 아니고 가끔 정신을 잃어요 그건 엄마한테 유전된 건데... 어쩌면 몸이 안 좋아서 그런 생각을 더 했나 싶네요 하지만 사람 마음이 늘 그대론가요 바뀌지요 배신 당하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생각하고 말았네요 여러 가지 다 안 좋게 흘러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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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보기 전에 황인찬 시인이 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려고 했는데 못 들었어. 그거 듣는다고 여기 담긴 시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다시듣기라도 들어봤다면 좋았을까. 시집 보는 데 광고가 나왔어. 그건 황인찬 시인이 나오는 방송과는 다른 걸 말하는 거였어. 오디오 천국이라고 여러 가지 방송이 나오는 거야. 요새는 잘 안 듣지만, 황인찬과 김새벽이 ‘시로 만난 세계’던가에서 시를 읽는 건데, 그건 어쩌다 한번 들었어. 그게 언제쯤 나올까 하고 기다린 적도 있는데. 지금 그 팟캐스는 끝났지만 오디오 천국에는 가끔 나오는 것 같아. 시인이 다 시를 잘 읽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황인찬 시인은 시 잘 읽더라고. 목소리가 좋다고 할까. 이런 말 신용목 시인 시집 보고도 했군. 그때는 신용목 시인이 시 잘 읽는다고 했지. 황인찬 시인이 시 읽는 거 듣고 싶으면 라디오 방송 잘 챙겨들으면 될 텐데 요새 게을러져서 한동안 못 들었어. 그 라디오 방송도. 내가 못 듣는 사이 바뀌면 아쉬울 텐데. 지금은 라디오 방송 시간 놓쳐도 나중에 들을 수 있지만, 내가 그런 걸 찾아들을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 (이제 황인찬 시인 라디오 방송에 나오지 않아. 그래도 시로 만난 세계는 나와. 전과 조금 다른.)

 

 앞에서 황인찬 시인이 오디오 천국 ‘시로 만난 세계’ 광고 하는 거 들었다고 하다가 다른 말을 했군. 그 방송 말할 때 황인찬은 자기 시를 읽어.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 이 방에는 사랑이 흘러가고 관념만 남아서 / 그저 기뻐하기만 있으면 좋겠다 //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시에 담겨 영영 이 시로부터 탈주하지 못한다면 좋겠다 (<그것은 가벼운 절망이다 지루함의 하느님이다>에서, 147쪽)’고 하는 부분이야. 글을 보는 것과 듣는 건 조금 다르기는 하지. 이 부분 읽는 것도 괜찮아. 예전에 그걸 듣고 저런 시가 《사랑 위한 되풀이》에 담겼구나 했어. 그리고 이 시집 볼 때 그걸 들었어. 신기한 일이지. 본래 내가 들으려는 건 못 들었지만, 대신 다른 걸 들었으니 말이야. 그거 처음 들은 건 아니었는데 이 시집 볼 때 들어서 반가웠어. 이 말 하니 라디오 들으면서 시집 본 것 같네. 아주 안 들은 건 아니지만, 주파수를 옮기고 들은 거였어. 그것만 듣고 라디오는 껐어. 다음 방송은 책 보면서 듣기에 안 좋아서.

 

 

 

 나는 꿈속에서 부자가 되었다

 높은 집에서 창 아래를 내려다본다

 

 친구가 아래를 지나가며 내게 묻는다

 

 “이거 너희 집이야?”

 

 나는 대답한다

 

 “응, 근데 꿈일 수도 있어”

 

 친구는 말한다

 

 “그럼 일단 깨지 말고 있어봐”

 

 그후로 너무 긴 시간이 지났다 아마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도무지 깰 방법이 없다

 

-<구곡>, 17쪽

 

 

 

 ‘구곡’은 꿈일까. 시인은 그 꿈에서 아직도 깨지 못했을까. 지금 보니 이 시에는 넓다는 말은 없군. 부자가 되어 높은 집에 살게 되다니.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황인찬은 넓은 집에 살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 같아. 그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 때문에 이 시에서 멈췄을지도. 난 꿈을 꾸면 지금 집이 아닌 예전에 살던 집에 살아. 별로 좋지도 않은데. 지금 집도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더 가난했던 시절 꿈을 꿔. 왜 그런지 모르겠어. 본래 꿈은 그런 걸까. 지금 생각하니 한번인가 넓은 집에 사는 꿈 꾸기도 했어. 그 꿈에서 깨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언제나 꿈은 깨는 거지.

 

 

 

 어떻게 말을 꺼내지, 어떻게 말하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지

 

 너는 책상에 앉아 있고

 나는 창 너머에 서 있고

 

 백년째 복도를 헤매던 사람도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아이들은 일동 차렷하고 인사를 하네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가면 모두 놀라버릴 텐데

 이상한 것도 놀라운 것도 이제는 버거운데

 

 어떻게 말해야 하지, 어떻게 말하면

 경이롭지 않을 수 있지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시면 수업이 시작되시고

 나는 창 너머에서 수업을 지켜봅니다

 

 수업은 좋습니다 한국 교육은 백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선량하고 아이들은 무구합니다

 

 너는 판서된 것을 따라 적고

 나는 창 너머에서 그것을 따라 읽고

 

 어떻게 말을 건넬까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그 말을 할 수 있지

 

 자꾸 고민하면서

 백년째 말을 걸지 못하는 내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시면 아이들이 복도로 밀려나오고

 

 복도에 서 있는 내 앞에 네가 서 있다

 

 손을 내밀고 있었다

 무얼 하느냐고, 빨리 들어오라고

 

-<불가능한 경이>, 46쪽~48쪽

 

 

 

 꿈을 꿨어. 죽은 사람이 나오는.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어. 이 시집 보기 전에 별일이 다 있었군. 꿈에 죽은 사람이 나왔다 해도 무섭지는 않았어. 그런 꿈을 꾸고 시집을 보니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오지 뭐야. 내 꿈은 좀 흐릿하지만, 시는 선명하군. 시여서 그럴까. 생각하는 것과 그걸 글로 쓰는 건 다르지. 자신이 생각한 걸 하려면 글로 써 보는 것도 좋아. 그렇게 해도 난 못할 때가 더 많지만. 어쩌면 나만 그럴지도. 여기 나온 사람은 아이일까. 아주 오래전에 죽은. 거길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교실 밖에 서 있었나 봐. 한 아이가 그 아이를 알아봤군. 그때 아이는 얼마나 기뻤을까. 살아 있어도 남한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도 생각나는군. (앞에 시를 다시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오랫동안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여기 담긴 시를 보면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황인찬 시집은 세번째인데, 난 두번째 시집인 (《희지의 세계》)와 이번 세번째를 만났어. 세권에서 두권이면 많은 거지. 또 말하는데 라디오 방송에서 목소리를 들어서 황인찬 시인을 조금 가깝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어. 여기에는 알듯 말듯한 시가 담겼어. 시집 보고 이 말 안 할 때 없군. 황인찬 시를 보니, 똑같이 쓰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식으로 시든 글이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내가 쓰는 건 쉽지. 쉽다 해도 괜찮은 이야기면 좋을 텐데. 가끔 쓸데없는 일 쓰기도 해. 그런 건 일기장에나 써야 하는데. 일기도 공감 가는 게 있기도 하군. 앞으로는 좀 더 생각하고 글 써야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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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17 09: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황인찬 시인님은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직접 읽기는 처음인데 좋네요^^

희선 2021-08-19 01:13   좋아요 2 | URL
시 잘 모르지만 읽어보니 괜찮기도 하더군요 예전에 《희지의 세계》 나왔을 때는 책이 없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08-17 09: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를 좋아하시는 희선님 ~♡
소개해주시는 시와 자작시 모두 멋져요~!

희선 2021-08-19 01:16   좋아요 2 | URL
늘 잘 쓰지는 못해도 자꾸 쓰다보면 괜찮은 것도 쓸 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레이스 님 고맙습니다 좋은 말을 보면 기쁘면서도 부끄럽기도 하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8-17 09: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구곡 시 좋아요.이 생이 꿈인가 싶을때가 있어요. 희선님은 이미 생각하고 쓰는 삶을 산다네요^^

희선 2021-08-19 01:17   좋아요 2 | URL
시에서는 여전히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 같기도... 꿈처럼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좋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 텐데... 행복한책읽기 님 고맙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