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여백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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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이 이 책 《죄의 여백》을 본 걸 보니 나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보게 됐다. 어떤 때는 내가 생각한 게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 건 별거 아닐 때가 더 많다. 그런 일은 누구나 여러 번 겪어봤을 거다. 책을 보고 서평은 아니더라도 멋지게 감상을 쓴다면 좋을 텐데, 그건 여전히 어렵다. 이 책 제목 ‘죄의 여백’은 뭘까 싶기도 하다. 죄가 있지만 묻지 못하는 걸까. 그런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 자신은 가만히 있고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게 하는 것. 남한테 뭔가를 하게 했더니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것. 나도 잘 모르겠다. 맨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안도 가나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 안도 사토시는 대학에서 강의를 해서 휴대전화기를 꺼두었다. 그런 일은 나무라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일할 때는 전화 안 받아야지. 학생도 공부시간에는 휴대전화기 쓰면 안 되지 않나. 집에 큰일이 생겼다면 어쩌나 싶기도 하구나.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는 모습 다른 소설에서도 봤다. 그 전화는 둘 다 아이가 아버지한테 건 전화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딸인 가나가 건 게 아니다. 가나한테 일어난 일을 알리려는 전화였다. 가나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아니 가나는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이 책 ‘죄의 여백’에서는 여러 사람이 말을 한다. 이런 건 미나토 가나에가 자주 쓰는 거구나. 미나토 가나에만 그렇게 쓰는 건 아니지만. 여기 나오는 사람은 몰라도 책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을 조금 알 수 있기도 하다. 다른 사람보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한 기바 사키는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은 다 가면을 쓰기도 하지만, 기바 사키는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다. 이건 다른 사람 마음이 어떤지 잘 알아서 그런 걸까. 그와 반대에 선 사람은 심리학자인 오자와 사나에다. 사나에는 다른 사람 마음을 알기가 어려워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여러 가지를 알아보니 뇌에 문제는 없었다. 실제 사나에 같은 사람 있을 거다. 사나에는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모르기에 조심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알아서 배려하기보다 조종하려고 하다니. 조심해도 실수하지만, 잘 몰라서 조심하는 게 나을지도. 이건 좀 상관없는 얘긴가.

 

 세 친구 가나 사키 마호가 친하게 지내다 사키와 마호가 가나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걸 보니, 세 사람은 균형이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는 세 사람이 균형이 맞다고 했던가. 아니다 세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과 한사람이 될 때 많다. 내가 어릴 때 갑자기 두 친구가 말 안 하던 게 생각나기도 했다. 다행하게도 두 친구는 날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나 마음 조금은 알겠다. 가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친구 둘이 생겨서 좋아했는데, 그 두 사람이 어느 날부터 자신을 차갑게 대하면 얼마나 마음 아플까. 그런 건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집단 괴롭힘 당하는 아이가 부모한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다르지 않을 거다. 창피하니까. 가나도 사키나 마호가 억지스러운 일을 시켰을 때 그만두고 싶었을 거다. 그래도 그러지 못한 건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가나가 두 사람에서 벗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제 그러기는 어렵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쓴 걸 보고 가나가 사키와 마호한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가나 아버지도 가나가 쓴 일기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괴롭힘 때문인 건 맞지만, 가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그런 걸 알아도 가나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가나를 괴롭힌 사키와 마호가 반성한다 해도. 사키는 자신이 한 일을 숨기려 했다. 앞으로 연예인이 될 생각이어서. 그거 보니 연예인 학교 폭력 문제로 시끄러웠던 게 생각났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장난이었다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걸 당하는 사람은 정말 싫다. 이런 말 하면 장난도 못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가 중요하기는 하다. 혼자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안 좋게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은 마호가 심하게 했구나. 사키가 자신을 버릴까봐 두려워했다. 나도 혼자 있기 싫어했던 것 같다. 그나마 내가 알았던 아이에는 남을 괴롭힌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다. 그런 아이가 있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거나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고 했을지, 내가 따돌림 당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었을지. 난 함께 괴롭히거나 따돌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안 했을 것 같다. 부끄럽구나. 아무것도 안 한다고 잘못이 없지는 않다.

 

 친구가 있으면 좋지만, 그 친구가 자신을 싫어하면 그만 사귀는 게 낫겠다. 학생 때는 그게 좀 어렵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도 난 잘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힘을 기르면 나이를 먹고 혼자여도 견딜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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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30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때는 혼자 다니는게 싫던데 나이 드니까 혼자 다니는게 편하더라구요 😅 뭔가 미스터리 추리 소설 같은 느낌이 드네요~!!

희선 2021-12-31 02:07   좋아요 1 | URL
학교 다닐 때는 왜 혼자 다니면 안 좋게 본다고 여길지... 저도 그때 다르지 않았네요 지금은 혼자 다니네요 같이 다닐 사람도 없지만, 혼자 다니는 게 편하죠 미스터리예요


희선

서니데이 2021-12-30 2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처음보는 작가라서 소개를 읽고 왔어요. 일본 소설에서는 가끔 등장하는 소재지만, 작가마다 쓰는 방식은 다르니까, 나중에 조금 더 찾아봐야겠어요. 영화로도 나온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요.
희선님, 어제보다 조금 더 날씨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희선 2021-12-31 02:10   좋아요 1 | URL
아시자와 요 소설 몇권 나왔는데, 다 김은모 님이 한국말로 옮겼더군요 저는 이것만 보고 다른 건 못 봤어요 호러도 있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책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며칠 전보다 많이 추워요 눈도 왔어요 다른 때는 눈이 왔으면 했는데 31일에는 안 오는 게 더 좋은데... 서니데이 님 2021년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즐겁게 맞이하세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12-31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 제목도 저거인거죠?? 죄의 여백이라니. 표지도 제목도 강렬합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건 쉽지 않은 듯해요. 근데 아무리 힘이 생겨도 새파랑님 말처럼 나이 먹을수록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 같습니다. 희선님 혼자만 있지 말기요~~~^^

희선 2021-12-31 02:14   좋아요 0 | URL
제목 같아요 가끔 처벌하기 어려운 죄가 있기도 한데, 그런 걸 나타낸 듯합니다 생각하는 힘 기르기 어릴 때는 더 어렵겠습니다 그때는 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르면 따돌리기도 하니...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일어나기는 하는군요 한국 학교도 시험이나 입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걱정입니다 바뀌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만 하는군요


희선
 
드립백 알라딘 블렌드 하프카프 - 10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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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새 2021년 알라딘 마지막 커피예요. 이번 거 알라딘 블렌드 하프카프를 마셔볼까 말까 하다가 마셔 보기로 하고 샀습니다. 그림이 겨울 분위기 나죠. 지난번에는 가을이었군요. 하늘은 보라색이지만 밤이겠지요. 구름에 보름달이랑 별도 보이는군요. 보름달이 뜨면 달빛이 환해서 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런 걸 생각하다니. 별자리 잘 모릅니다. 여기 있는 별자리 겨울에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세요.

 

 

  

 

 

 

 곧 마지막 날이어서 그전에 마시고 써야 할 텐데 했습니다. 어제는 저녁에 다른 걸 하다가 마시지 못했습니다. 며칠 동안 본 책을 어떻게 쓸까 하다가 겨우 썼습니다. 미루지 않고 바로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며칠 전에는 하기 싫어서. 잘 쓰지도 못하고 대충 썼습니다. 그거 하다가 커피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오늘이 가면 하루밖에 남지 않는데 어떡하지 하다가 그냥 마시지 말고 쓸까 했어요. 마시고 쓰나 안 마시고 쓰나 비슷할 테니. 카페인이 반만 들었다는 걸 보고 마셨습니다.

 

 구운 아몬드의 고소함은 냄샐까요. 드립백을 꺼내니 고소한 냄새가 나던데, 메이플 시럽 같은 단맛이라 했는데 저는 조금 쓴 느낌도 듭니다. 단맛은 나중에 느껴지는 건지. 산미는 없군요. 이런 커피도 괜찮네요. 산미가 있는 알라딘 커피 마시다 산미가 없는 걸 마시면 좀 이상하기도 했어요. 이건 산미 없어도 괜찮군요. 식으니 조금 산미가 나네요.

 

 십이월뿐 아니라 2021년이 가는군요. 새해가 오면 아직 음력으로는 새해가 아니다 생각할 듯합니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했는데 2021년에는 별로 안 한 것 같기도 하네요. 다음에는 어떨지. 다른 일 없어도 달력 장수가 늘어나는 건 좋습니다. 새날 새주 새달 새해 이런 게 있어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모두 마지막 날까지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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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30 0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21년도 이제 오늘하고 내일이면 안녕이네요 ㅠㅠ 희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희선 2021-12-30 01:31   좋아요 3 | URL
한해 그렇게 짧지 않은데, 지나고 나면 짧게 느껴집니다 하루하루를 잘 못 살아서 그럴지도... 미니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han22598 2021-12-30 03: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산미가 있는 커피도 좋아하고, 산미가 없는 것도 좋아해요 ㅎㅎ
별자리는 잘 몰라서, 인터넷 이것저것 별자리 지도를 찾아서...저기 세개의 별자리 찾아봤는데, 모르겠네요....아마도 그냥 그린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희선님, 한해도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잘 지내보아요 ^^
해피 뉴이어!!

희선 2021-12-31 01:54   좋아요 0 | URL
별자리 찾아보셨군요 그냥 그려넣은 건가 보네요 겨울에 보이는 별자리일까 했는데... 저도 산미 있는 것도 괜찮고 없는 것도 괜찮아요 처음에만 좀 다르구나 해요 더 마시면 괜찮습니다 커피맛 잘 모르지만 이런 커피 가끔 마시면 괜찮더군요

han22598 님 고맙습니다 오늘이 가면 새해네요 마지막 날이니 잘 지내야 할 텐데...han22598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1-12-30 07: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커피 표지가 너무 멋지네요. 희선님 22년 즐거운 한해 보내세요~!!

희선 2021-12-31 01:56   좋아요 0 | URL
다른 때도 예쁜데 이번에도 멋지죠 새파랑 님 한해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건 새해에 말하는 게 더 좋을지...


희선

페넬로페 2021-12-30 09: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피 표지는 전혀 보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그러네요.
진한 커피 싫어 이 커피도 연하게 내려마시니 좋았어요~~
희선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희선 2021-12-31 02:02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 님 연한 커피 좋아하시는군요 연하게 마시기에 좋은 커피네요 카페인이 적어서 커피 마시고 잠 못 자는 사람한테 괜찮겠습니다 그래도 늦은 시간에는 안 좋겠네요

페넬로페 님 고맙습니다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니... 빨리 쓰려고 했는데 또 늦었어요 페넬로페 님 2021년 마지막 날 편안하게 보내시고 새해 반갑게 맞이하세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12-31 0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커피 표지 넘 예뻐요. 저 보라색 젤 좋아해요. 게다가 별자리까지. <새날 새주 새달 새해 이런 게 있어서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말에 공감 꾸욱!! 희선님 2021년 수고 많았고 새해에도 자주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요.^^

희선 2021-12-31 02:05   좋아요 1 | URL
알라딘 커피는 그림이 다 예뻐요 거기에서 더 예쁘게 보이는 게 있기도 하네요 예전에 밤하늘이 있기도 했는데, 그것도 밤하늘이 보라색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어느 곳에선 밤하늘이 보라색으로 보일지도 오로라가 보이면 그럴지... 행복한책읽기 님 고맙습니다


희선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문학동네 시인선 152
장수양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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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본 만화영화에 이런 말이 나왔어.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이건 눈이 녹으면 뭐가 되느냐는 물음에 한 대답이야. 봄이 온다고 했는지, 봄이 된다고 했는지.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 어떻게 말했는지 찾아보고 말해야 했는데, 귀찮은 난 안 찾아봤어. 그래도 예전에는 ‘눈이 녹으면 물이 되지’ 했을 텐데, 그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도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생각하게 됐어. 봄이 온다고 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이 시집 제목 보니 그때 들은 말이 떠오르더라고.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이 말에는 봄이라는 말도 들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내 멋대로 상상하기도 했어.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극장에서는 그래.  (<연말상영>에서, 20쪽)

 

 

 

 이 시집 제목은 <연말상영>이라는 시 맨 앞에 나오는 말이야. 극장에서 그렇다니. 그런가 봐. 연말에 하는 영화여서 그럴까. 연말에는 바깥은 추워도 극장 안은 따듯할 것 같은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잘 몰라서지. 시를. 그래도 이 시집 제목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는 어쩐지 따듯해. 그렇지. 억지로 동의를 구하는 것 같군.

 

 내가 시집을 보면 늘 하는 말이 있지. 시 잘 모르겠다고. 이번에는 더하네. 몇달 전에 시집 《희망이 사랑을 한다》(김복희)를 보면서도 자꾸 어렵다 생각하면서 봤는데. 이번에는 더 어려웠어.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어. 여기 담긴 시는 길기도 하고, 알 듯한 말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어.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걸 텐데, 내가 그걸 알아듣지 못했어. 시에 쓴 말을 다른 걸로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 처음에는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더군. 두번째에는 조금 나았지만. 본래 그렇지. 처음은 낯설어도 두번째는 조금 익숙한. 그렇다 해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모르겠다’했어. 여기에는 해설도 없어. 그걸 본다고 시집에 담긴 시를 아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어렸을 적 플루트를 배웠다. 난 플루트를 만져 본 적이 두어 번 있었다. 몹시 아름다운 악기였는데 난 그게 필요 없었다. 집에 돈이 떨어지자 언니도 플루트가 필요 없어졌다.

 플루트는 어떤 일에도 슬퍼하지 않았기에 그 악기를 보는 일이 우리에겐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순리대로 플루트는 창고에 박혔다. 사라지고 있다.

 

-<플루트>, 18쪽

 

 

 

 앞에 옮긴 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같다’고 말하다니. 시 <플루트>는 여기 있는 말 그대로겠지. 플루트는 예쁜 악기야. 본래는 나무로 만들어서 지금도 목관악기라 하지 않던가. 소리도 참 좋지. 다른 악기보다 플루트 배우는 건 돈 많이 안 들 것 같은데, 전문가가 되려면 많이 들지도. 이건 어떤 악기든 그렇겠어. 플루트는 슬퍼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난 플루트도 슬퍼했을 것 같아. 아무도 자신을 불지 않고 창고에 넣고 잊어버렸잖아. 지금 그 플루트는 어떻게 됐을지. 시 마지막에 쓰인 말처럼 사라졌을지도.

 

 여기 담긴 시에는 이름이 나오기도 해. 그건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 다른 건지. 사만 이고 싱 아니스타 아니불빛 미 김상 미치 치리 모자키스 티라 오브. 내가 쓴 게 다가 아니질도 모르겠어. 이번에도 자신없는 말을 했군. 시를 보면서 사람 이름처럼 쓴 걸 적기는 했는데 놓친 게 있을지도. 사람 이름 같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 시 <미>는 미가 누군가한테 주사 같은 걸 맞는데, 그건 진짜 일어나는 일인지, 꿈인지. 김상이 나오는 시를 볼 때는 이상이 생각나고 ‘미’는 이상 소설에 나온 사람 같은 느낌도 들었어. 그런 걸 썼다면 뭔가 말이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런 말은 없어. 이상은 진짜 이름이 김해경으로 일본사람이 이 씨라 여기고 이상이라 했다지.

 

 

 

 티라와 오브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만났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그들이 있던 세계는 멈췄고 풀 한 포기도 죽거나 새로 태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발붙인 지상에는 그 세계에서 날아온 민들레씨 하나 발견 되지 않았다

 

 티라는 발레리나였고 오브는 발레리노였다 그들은 언젠가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다시금 세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무대를 가진 건물은 무너졌고 무너졌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들의 기대도 함께 무너졌다

 

 티라와 오브는 그들이 입을 맞추는 동안 세계가 멈추기를 바랐다 그것은 절실하지 않고 실낱같은 기대에 비해서도 실없었으나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소원이었다 그 세계는 원래부터 그런 소원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 없다 그것만은 증명할 수 있다

 발음해보라

 

 “티라”

 대답이 없다

 

 “오브”

 대답이 없다

 

 “티라, 그리고 오브”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역시, 그 세계는 멈춘 것이다 더이상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영원히 입맞춤을 했다

 

-<티라와 오브, 그리고 티라와 오브의 아름다운 세계>, 174쪽~175쪽

 

 

 

 티라와 오브가 사는 세계는 멈추었어. 그게 좋을지 안 좋을지. 사람이 아주 좋으면 그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잖아. 시간이 가고 살다보면 좋은 일뿐 아니라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그런 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있을지도. 이 시에 나온 티라와 오브는 사람일까.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라 했지만. 둘은 전장 한가운데서 만났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전쟁이 일어난 곳일지 사는 게 전쟁이다는 걸 나타낸 걸지. 엉뚱한 생각인가. 그럴지도. 시를 마음대로 보면 안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난 그저 조금이라도 뭔가 잡아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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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8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앤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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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마종기 시인 알아. 나도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언젠가 산 시집은 여전히 만나지 않고 그 뒤에 나온 시집과 루시드폴과 나눈 편지글만 만났어. 루시드폴과 나눈 전자편지를 보고 예전에 산 시집 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못 봤어. 그때도 말했을 텐데 마종기 시인 아버지는 동화작가인 마해송이야. 잠깐 내가 동화를 본 적 있어서 이름은 알았어. 마해송 작가는 국어시간에 들었던가. 나도 잘 모르겠어.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도 떠오르는군. 그리고 이원수 선생. 어쩐지 옛날 작가는 선생이라 해야 할 것 같군. 선생님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요새는 누구한테나 선생이라 하던가. 지금은 동화를 잘 안 보는군.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건 여전히 어린이 같기도 해. 멋진 소설 같은 이야기는 떠올리지 못한다는 말이야.

 

 예전에도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마종기 시인 어머니도 대단한 분이었더군.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했대. 동화작가와 현대무용가 부모를 둔 마종기 시인은 어릴 때부터 음악이나 미술을 아주 가까이 했대.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그런 걸 즐기라고 말씀 하셨대. 예술은 어릴 때부터 만나면 나이를 먹어서도 좋겠지. 난 지금도 모르고 어릴 때는 더 몰랐어. 그저 책이나 볼 뿐이야. 책으로만 봐도 괜찮다 여기기도 하는군. 마종기 시인은 그것보다는 실제 듣고 그림을 보는 게 훨씬 좋다고 했어. 그건 맞는 말인 것 같아. 오래전 사람은 거의 연주회에 가서 음악을 들었잖아. 그래도 녹음기술을 발명해서 누구나 편하게 음악을 듣게 됐지. 축음기는 에디슨이 발명했던가. 갑자기 이런 게 생각나다니. 에디슨은 과학자라기보다 발명가에 가깝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해. 예전에는 귀족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축음기 인쇄술이 나오고는 많은 사람이 음악이나 문학을 즐기게 됐지. 난 그런 건 좋다고 생각해.

 

 여러 번 말했는데 난 친구 별로 없어.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해. 이 책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을 보니 마종기 시인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의사로 살았다 해도 친구가 많더라고. 한사람을 사귀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기도 했어. 난 그런 적 없어. 친구의 친구와 친해지는 일.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는 건지. 나도 모르겠어. 나만 그런 거 잘 못한 거겠지. 난 친구의 친구와 친해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하는군. 지금도 그래. 그러니 안 되지. 앞에서 말한 루시드폴도 출판사 사람이 이어준 거더군. 지금도 서로 연락하고 지낼까. 마종기 시인이 한국에 왔을 때 제주도에 가서 루시드폴 만났을지. 별걸 다 알고 싶어하는군. 마종기 시인 친구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더라고. 그 친구가 살았을 때 마종기 시인이 한국에 오면 여러 가지 마음 써줬던데,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슬펐겠어. 그건 슬프다는 말로 나타낼 수 없으려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뜻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게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우화의 강1>, 110쪽~111쪽

 

 

 

 

 이 시 어떤 책에서 봤는지 모르겠어. 예전에 보고 괜찮게 생각했는데. 여러 사람 시가 담긴 시집이었을지도. 여기에는 마종기 시인 시도 여러 편 실렸어. 내 기억에 있는 시를 만나서 반가웠어. 마종기 시인은 <즐거운 편지>라는 시를 쓴 황동규 시인하고 친구기도 하다니. 친한지 어떤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황동규 시인 아버지는 황순원이라지. 이거 알았을 때도 놀랐던 것 같아.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친구가 없거든 차라리 혼자서 길을 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 헛된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과 친구가 되지 마라. 오히려 네가 힘들게 살게 된다.‘  (205쪽)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만 알았는데, 이 책을 보고 앞에 말도 알게 됐어. 이 말은 친구와 상관있는 말이었군. 내가 《법구경》을 볼 일이 없으니 알기 어려운 말이기는 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안 좋은 사람도 있어. 사람을 다 알기는 어렵지. 마종기 시인은 안 좋은 사람을 만나고 힘들어하다가 ‘법구경’에 나오는 말을 보고 친구를 가려 사귀게 됐대. 친구가 있다 해도 다른 나라에서 익숙하지 않은 말로 일하는 건 쉽지 않겠지. 그럴 때 마종기 시인한테 시 쓰기와 음악과 그림이 힘이 되어주었대. 시인은 외로운 거다는 생각도 늘 한다더군. 마종기 시인이 의사면서도 시와 예술에 관심을 놓지 않은 건 다행이야. 그래서 지금도 시인이잖아. 미국은 의대에 다니는 사람도 문학이나 인문학을 배운다더군. 의사는 아픈 사람을 보는 거잖아. 의사는 병이 아닌 사람을 봐야지. 시나 문학은 의사 마음을 잡아주기도 할 것 같아.

 

 예술은 누구한테나 도움이 될 거야. 돈도 안 되고 그런 거 없어도 사는 데 문제 없겠지만, 그래도 아주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난 그렇게 믿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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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22 03: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마종기 시인 처음 들어보는데 완전 인싸(?)에 엄친아네요. 문학을 좋아하는 의사라니 매력 넘치고 좋은 사람 같아요. 친구가 많은게 꼭 좋지만은 않더라구요. 그냥 친한 친구 100명 보다는 진정한 친구 1명이 더 진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희선 2021-12-23 01:03   좋아요 3 | URL
지금 보면 마종기 시인을 엄친아라 말할 수도 있군요 그때 미국에 간 게 시대 때문이었나 봅니다 공군 군의관일 때 1965년 재경 문인 105인 한·일회담 반대 선언 명단에 이름이 들어가서 잡혀 가고 심문과 고문을 당했답니다 그 뒤로 한국에서는 의사가 되기 어렵겠다 여기고 미국으로 갔는데, 미국으로 가고 석달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더군요

한사람이라도 좋은 친구가 있으면 가장 좋지요


희선

그레이스 2021-12-22 08: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동화작가 마해송은 알아요
아들이었군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좋은데요?!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시!

희선 2021-12-23 00:57   좋아요 2 | URL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기 쉽지 않겠습니다 친하다 여긴 사람한테 안 좋은 일을 겪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좋은 친구도 많은 듯합니다 미국에 있어도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있겠지요


희선

프레이야 2021-12-22 09: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희선 님과 저와의 사이에도 물길이 트였지요.
그 물길이 늘 맑게 빛나며 가벼이 출렁이길^^

희선 2021-12-23 01:01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 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쁩니다 물길이 맑게 빛나고 가볍게 출렁이는 것도 상상하니 멋지네요 그러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1-12-22 10: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시인은 부모의 예술성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네요.
시의 말도 좋은데~~
저는 법구경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많이 좋아해요^^

희선 2021-12-23 01:04   좋아요 2 | URL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가까이 하라고 하셨다는군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쓰고 등단도 일찍 한 듯합니다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요

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만 알았는데, 그 앞에 좋은 말이 있었네요 그 말 기억하고 싶기도 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12-22 14: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많으냐 적으냐, 빨리 사귀나 조심스러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단 한명의 친구라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한거죠. 그런 의미에서 희선님은 친구에게 최선을 다한 마음을 주실듯해요. ^^

희선 2021-12-23 01:09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 님 고맙습니다 친구 한사람 한사람한테 마음을 쓰면 좋겠네요 그러려고 하는데 잘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담주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서... 잘 하는 것도 없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바람돌이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scott 2021-12-23 0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루시드 폴과 마종기 시인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 군요! ㅎㅎ

예술은 누구 한테나 도움이 된다는 말에 동감 합니다! ^^

희선 2021-12-23 01:11   좋아요 4 | URL
루시드 폴은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마종기 시인은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시를 썼네요 루시드 폴은 마종기 시인 시를 즐겨 봤다고 합니다

예술을 잘 알면 좋겠지만 잘 몰라도 좋아하면 되겠지요


희선
 
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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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이 일어난다 해도 살아 있다면 사람은 살아야 한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재난은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거다. 왜 그런 눈이 내리는지 나오지 않는다. 뭔가 화학약품 때문일지 사람이 지구를 망쳐서 그런 건지. 이상기후로 눈이 끝없이 오는 건가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이야기 보기는 했다. 여기에 오는 눈은 차갑지 않다. 이 눈이 피부에 닿으면 가렵고 아프다. 습기를 빨아들인다. 이런 말 봤을 때 그런 눈이 자꾸 내리면 나무나 식물이 사라지고 물도 사라져서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았다. 녹지 않는 눈이 더 내리면 인류는 사라질지도. 그 뒤 세상은 어떻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겠구나. 소설을 보다가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 자체가 스노볼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온난화로 재난 소설은 끊임없이 나오는 것 같다. 바이러스를 피해 달아나는 이야기, 추운 곳을 벗어나려는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병 때문에 기억을 잊는 이야기. 이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를 보니 최진영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와 최정화 소설 《흰 도시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소설에서 녹지 않는 눈은 온 세계에 왔다. 다른 나라도 비슷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백영시라는 곳에 눈을 버리기로 한다. 거기에도 사람이 사는데 말이다. ‘흰 도시 이야기’에서도 어떤 병이 먼저 생긴 한 도시를 막았는데, 백영은 흰 그림자인가. 그래도 백영시 사람은 살려고 눈을 태우는 곳에서 일한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보호장비도 없어서 사람이 많이 죽은 것 같다. 모루 엄마는 눈을 태우는 곳에서 일하다 병으로 죽는다. 센터는 좀 나은 것 같기는 하지만 일하다가 사고가 나도 구조하러 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여서 사람이 하나나 둘이 사라져도 마음 쓰지 않게 된 걸까.

 

 사고가 나도 경찰은 힘을 내지 않았다. 녹지 않는 눈이 내리고 일곱해째가 되는 해에 모루 이모는 사라졌다. 모루 이모가 몰던 트럭만 사고가 난 듯 남고 사람은 없었다. 차 안에는 스노볼이 있었다. 모루는 이모를 찾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모루 이모가 죽었을 거다 말했다. 모루가 일하는 센터에 이월이 온다. 이월은 그곳에서 일하려고 왔다. 아니 모루를 만날 수 있다 여기고 온 거다. 모루와 이월은 같은 중학교에 다녔지만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마음을 썼다. 녹지 않는 눈이 처음 내린 날 이월은 모루를 도와줬다. 그 뒤 둘이 친구가 되지는 않았다. 졸업식 날 모루는 이월한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런 둘이 몇해가 지나고 다시 만났다. 이월은 모루 이모인 유진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다.

 

 이월 새엄마는 이월 마음을 조금 알아줬다. 아빠보다 새엄마가 그러다니. 그런 일이 아주 없지 않기는 하겠지. 모루는 아빠가 없구나. 이월 새엄마는 백영중학교 이사장이었는데 녹지 않는 눈 때문에 학교가 잘 안 되고 차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는다. 어쩌면 그때 죽으려고 했던 걸지도. 이월 새엄마는 집에만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엄마는 이월한테 자신을 녹지 않는 눈속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월은 새엄마 바람을 들어주고 싶어서 언젠가 길에서 주운 트럭운전사 전화번호로 전화했다. 그 번호는 모루 이모 유진 휴대전화기 번호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루 이모는 여전히 집에 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이월이 모루를 떠올리고 찾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루와 이월을 다른 일로 만나게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모루와 이월 그리고 이모 셋이 만났다면 더 좋았을 거 아닌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면 소설이니까 그렇지 했을지도. 그러면서도 소설이기에 그런 걸 바라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일이 꼬여서 만날 사람이 쉽게 만나지 못하기도 하겠지. 그런 일은 알기 어렵기도 하다. 소설은 그걸 보면 되니 알 수 있지만. 모루와 이월은 함께 이모를 찾기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잘됐다 생각해야겠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니 말이다. 녹지 않는 눈이 언제까지 내릴지 모르고 차에 넣을 기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름은 있겠다. 눈을 옮기는 건 차니까. 녹지 않는 눈을 연료 같은 걸로 쓸 수는 없으려나. 별 생각을 다했다. 모루는 이월을 단짝친구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월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 거 좀 부럽다. 앞으로도 모우와 이월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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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19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재난 소설이군요~!! 이책 도서관에서 보고 빌릴려다가 말았는데 읽어봐야겠어요. 어저의 함박눈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군요 ^^

희선 2021-12-20 00:38   좋아요 1 | URL
함박눈 봐서 좋으셨겠네요 눈이 오지만 녹지 않아서 걱정스러워 보이는 눈이에요 여기 사람은 앞으로도 살아갈지, 어떻게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안 좋은 세상이어도 살기를 바라네요


희선

scott 2021-12-19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녹지 않는 눈이 내린다면 지구가 그야말로 빙하기 시기로 넘어가 모든 생명체가 죽게 되는 환경 대 재난 ㅜ.ㅜ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현재 점염병 확산과 기후 이변으로 푸른 빛이 아닐 것 같습니다

희선 2021-12-20 00:42   좋아요 0 | URL
이런 눈이 내려도 사람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그 시간이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두워 보이지만 여기 나온 모루와 이월을 보고 희망을 갖기도 하네요 이상한 일입니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 아주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