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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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이란 언제나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아니던가..


'윌은 이 시절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모든 일이 그토록 어리석기만 했던 시절, 매일 전쟁을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전쟁은 먼 나라 얘기였던 시절, 그리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사랑을 믿지 않아 사랑을 원치 않는 남자 윌, 그런 그의 말이 마음을 찌르듯 아픈 여자 클레어.그들의 사랑이 전쟁과 전쟁을 겪고난 아픔이 베어있어 하나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언제나 평행선의 그 위치에 있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 '피아노 교사' 는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들면서 언젠가는 영화로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 이소설을 읽으면서 <화양연화> 란 영화가 생각이 나는지, 사랑을 하면서 비껴가기만 했던 주인공들의 눈빛이 이 소설을 읽는내내 오버랩되는것은 어쩌면 무대가 홍콩이라서일까.

영국에서 살다 종전직후 남편을 따라 홍콩에 와서 살게 된 클레어,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최상류층 빅터 첸의 딸인 로켓의 피아노를 가르치게 되었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가방안에 들어온 토끼인형으로 인하여 작은 것들을 훔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안에 또 다른 자신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도벽을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했는데 그집의 운전수였던 윌이 그녀의 행동을 알고 있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빠져들면서 잘못된 작은것을 훔치던 것을 중단하고는 그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그에겐 잊지 못할 트루디라는 최상류층 여자가 있었지만 전쟁중에 잃고 말았다.

40년대 전쟁시 이야기와 50년대 이야기가 함께 펼쳐지며 최상류층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견디어내는지, 전쟁뿐만이 아니라 사랑이 교묘하게 얽혀있어 더 재밌는 이야기가 된 듯 하다. 한인2세 작가라 그런가 아님 그녀가 바라본 역사속 진실일까 일본군들의 잔인함이 그대로 들어나 있어 공감을 많이 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어 더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던 작품이다. 처음 시작이 피아노 교사의 도벽으로 시작을 하여 그런류의 소설인가 생각하다보면 소설은 어느새 스펙타클하게 발전을 하고 있다. 전쟁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하여 최상류층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어 왔으며 전쟁후 남겨진 이들에게 남은 숙제처럼 존재했던 문제까지 풀리면서 전쟁과 사랑도 일단락이 되지만 다시금 예전의 피아노 교사가 아닌 평범한 클레어 자신으로 돌아온 현실.

첫 소설이라는데 매끄러운 문체와 2차 대전을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전쟁을 잘 묘사해 놓았다. 캐나다 소년 네드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남겨졌던 문장 ' 행복을 빕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전쟁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 만 느껴졌던 소년 네드, 결국 부모님 곁으로 가지 못하고 그가 찾으려던 자유는 핏빛 총성으로 수용소 사람들에게 아픔으로 남겨 놓았지만 그 속에서도 삶은 이어져 트루디의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희망으로 자라고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노력했던 '크라운 컬렉션' 도 일본군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잘 지켜내지만 전쟁도 아픔도 사랑도 그리고 클레어 그녀가 보물처럼 여기며 훔쳐 모았던 가방속의 물건들도 언젠가는 전당포의 고물처럼 잊혀지고 멀어진다는 것을 한편의 영화처럼 잘 묘사해 놓았다.

'어느 누가 지구 한쪽에 처박힌 이 작은 땅덩어리를 쟁취하려고 싸우겠어? 그냥 민심을 교란하려는 사람들의 짓거리일 뿐이라고.' 그녀는 또다시 샴페인을 주문했다.' 나와는 무관하다고 느꼈던 전쟁이 모두를 얼마나 변화시켜 놓았던가. 트루디 그녀 자신조차 변화지 않을것만 같았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에 일본군의 아이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그녀가 만약에 전쟁중에 그런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살았었더라면 윌과 클레어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윌과 트루디 둘의 사랑은 맺어졌을까 생각이 되었지만 우연히 피아노 교사의 가방에 들어온 '토끼 인형' 처럼 선택하지 않아도 선택되어질 수 있고 '이제는 더이상 우리가 살던 곳 같지 않네, 그렇지? 너무 황량한걸.' 그 시대의 홍콩을 잘 그려냈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 놓고 전쟁속에 묻혀야 했던 트루디처럼 작가의 첫 데뷔작은 강한 인상을 남겨 놓으며 다음 작품을 고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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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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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아무리 오랫동안 숨어 있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빛난다...


그날 그 해변에서 그들은 만나지 말아야 했을까? 나이지리아 소녀 리틀 비와 영국에서 사는 편집장 새라부부 그들은 나이지리아 해변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 한번의 강인한 만남으로 인하여 그들의 인생이 바뀔줄 누가 예상을 했을까? 유전 개발로 인하여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남은 물론 가족을 모두 잃게 되고 마을사람들의 살해현장을 목격하였기에 '그사람들'의 목표물이 되어 쫓김을 당하던 소녀 리틀 비, 자신의 이름을 감추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고 언니와 도망치던 그들이 나이지리아 해변으로 새로운 삶의 희망을 만들기 위하여 휴가를 온 새라와 앤드루를 만난다.그후로 그들의 삶은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평행선을 걷듯 나란히 걷고 있는 듯 하다. 

영국으로 건너와 난민 수용소에 있던 리틀 비는 그 해변에서 주운 앤드루 운전면허증을 보고 그의 주소로 찾아가려 하지만 앤드루는 갑자기 나타난 소녀 리틀 비 때문에 자살을 하고 만다.배트맨 아들과 남겨지게 된 새라,갑자기 닥친 현실에 어리둥절한데 뜻하지 않던 나이지리아 소녀까지 나타나 그녀의 삶은 실타래처럼 엉켜버린것 같았지만 리클 비로 인하여 새로운 삶을 계획하게 된다. 앤드루, 그가 갑자기 왜 자살을 택했을까? 앤드루가 아닌 로렌스를 사랑했던 그녀, 리틀 비의 출현으로 인해 감추어졌던 '불편한 진실' 에 대하여 다가가며 앤드루가 그해변의 일 뒤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은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는 그가 다하지 못했던 일을 리틀 비와 하려 계획한다.

'나를 멈추어 세운 것은 햇빛이었다. 내가 수용소에서 너무나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환한 태양이 나를 반으로 꺾어버릴까봐 두려웠다. 밖을 향한 그 첫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약한 소녀처럼 여겨지던 <진실>을 알고 있는 리틀 비, 그녀의 목숨을 건 탈출이 새라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가 난민 수용소에서 나오며 만났던 '햇빛'은 그녀에게 희망이었다. 자신이 살던 땅에서 석유가 나오며 자신들이 살던 고향과 목숨을 자본가들에게 빼앗기고 어디에도 자신이 설 땅을 찾지 못하던 그녀에게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듯했지만 우연한 인연인 '새라'가 그녀의 햇빛이었다. 

'이벳을 남겨두고 떠났던 일, 그것이 내가 고향을 떠난 후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이었다. 하지만 난민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죽음이 발생한 장소에 단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 법이다.'  벌처럼 작은 소녀 리틀 비, 그녀로 인하여 이 소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1파운드짜리 동전보다도 못한 자유,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그녀가 가는 곳 어디라도 쫓아오는 '그사람들' 때문에 난민인 리틀 비의 하루는 조마조마하다.자신이 태어난 곳에서도 영국의 그어디에서도 자신이 설 땅은 없다. 그것이 그녀의 삶이다. 그런 그녀속에 잠자고 있던 <불편한 진실>이 새라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려 한다. 아니 작가는 그 '불편한 진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남 레의 <보트>를 읽으며 가슴 뭉클했던 난민에 대한 것들이 이 소설로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들은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을 바꿀수 있나 의아해 하지만, 막상 그 일은 무서울 정도로 간단한 일이다.'  리틀 비가 그녀의 목숨을 걸고 영국으로 건너오지 않았다면 '진실' 은 들어날 수 있었을지. 그녀의 목숨과 바꾼 <진실>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오일전쟁' 의 피해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었지만 부딫히는 현실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했던 그녀였기에 지지자인 새라를 만날 수 있었고 새라 역시 누구나 회피하려는 <진실>에 당당해지려 맞섰기에 이 소설은 더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은 꼭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 오른다는 것을 말해주듯 두 여자의 우연한 만남이 필연이 된 <리틀 비> ,생존을 위한 그녀들의 행보에 희망의 '햇빛' 이 비추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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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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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도 이른 아침에만 존재할 뿐이다. 새벽은 세상이 아름답다고 속이는 환영에 불과했다..


프랑스 장르문학의 신기원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란 극찬아래 마르세유의 자랑인 작가, 토탈 케옵스는 '대혼란'을 뜻하는 말로 이 소설의 배경인 마르세유의 뒷골목에서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20년만에 마르세유에 돌아온 '우고'. 그는 친구인 '마누' 의 죽음이 묻혀진것을 자신의 손으로 결판을 내기 위하여 그를 죽인 사람을 수소문 한다.뒷골목 소식통인 바티스티에게서 마누를 죽인 범인은 '주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의 일상을 관찰하던 우노는 암흑가의 대부로 알려진 주카의 심장에 총알을 박지만 그 순간 자신도 경찰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우고의 죽음을 지켜보던 친구이며 경찰인 파비오 몬탈레는 셋이서 어린시절을 보낸 추억을 되살리며 그들의 죽음을 캐내려 한다.

자신이 경찰이면서 경찰에 대한 회의처럼 경찰이기 보다는 낚시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파비오, 그와 마누 우고는 어린시절 친구였지만 마누와 우고 사이에 결코 끼어 들 수 없었던 파비오, 마누와 연인이었던 롤마져 사랑했지만 사랑을 들어내지 못했던 그가 마르세유의 뒷골목을 누비며 마누와 우고의 죽음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밟아 나간다. 우고,그는 왜 무기도 소지하지 않았는데 경찰의 손에 의해 죽어야만 했을까? 그에게 마누의 죽음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던 파비오는 서서히 암흑의 소굴에 근접해 들어간다.

마누의 죽음보다는 우고의 죽음에 대하여 나오기 시작하는 소설은 그들 셋의 어린시절을 추억하면서 묘하게 엉켜들어간다. 간결한 문체로 똑똑 끊어지듯 쓰여져서인지 군더더기 없이 사건과 마르세유의 뒷골목과 더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는것 같다. 양파의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계속되는 암흑과 부딪히듯 속을 파고 들어갈수록 알 수 없는 암흑가의 파벌싸움과 얽혀들면서 피를 부르는 죽음은 계속 되어지고 그를 좋아하고 따르던 레일라마져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더 깊이 빠져들어가는 진창같은 뒷골목. 그의 수사를 도와주는 기자인 바베트와 그와 함께 하는 형사 페롤과 창녀 마리 루,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마르세유이 뒷골목에서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헤어나지 못하는 '대혼란'과 마주하듯 겁잡을 수 없이 커지는 사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지중해 항구도시 마르세유의 뒷골목이 피와 죽음이 난무하고 많은 인종이 모여있어 민족적 갈등까지 야기된다.작가는 마르세유를 간결한 문체로 표현하여 더 마르세유적이게 만들었다. 피와 죽음 어둠이 있지만 그럴때마다 파비오는 음악을 듣는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느와르인지 마르세유의 한적한 카페인지 모를정도로 소설은 느와르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책과 요리에도 또한 해박한 지식을 들어내는 파비오, 결국 그가 죽음과 어둠 음악과 책 그리고 항구냄새가 강한 지중해 요리로 믹스해 놓은 소설은 마르세유를 잘 나타내기도 하면서 '퍼즐 조각들이 내 앞에 흩어져 있었다. 그 조각들을 모아 그림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라며 '영혼이 살아 있는 곳엔 다른 것도 멀리 있지 않다고' 라고 하는 파비오. '세상만사 그런 거지.하루의 삶도 코미디,인생도 코미디.' 라며 대혼란의 첫단추를 멋지게 끼워 맞추었다. 

마르세유의 명암을 본 듯한 소설이다. 아름다운 항구도시에 반해 뒷골목의 어둠, 힘을 가진 강한자들인 범법자들, 그들에 비해 경찰이면서 늘 힘이 없이 그려지는 파비오, 그 또한 사람과 사람의 명암을 나타내는 듯 하다. 죽음이 난무하지만 반면에 음악과 유흥이 있다. 그 모든것들은 우리 삶에 일부분이면 일상일 수 있다. 마르세유에 극한해서인지 소설은 더 스릴이 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늘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듯한 파비오, 사표를 던져 버렸던 그가 롤과의 사랑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또 어떤 활약을 할지 다음편이 기대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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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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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란 오직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병이라는 사실뿐이라고 생각한다. 광기는 처녀생식으로 번식하고,
스스로 자극받으며, 애정을  멀리하고, 특히 기억을 하지 못하는 병이다.

주제 사라마구마르케스의 뒤를 잇는 작가라 극찬한 레스트레포의 광기는 표지의 그림만으로도 자극적이다. 사라마구와 마르케스의 작품들은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다. 사라마구의 작품은 읽기에도 힘들뿐더러 글자를 모아 놓은듯 하여 눈도 피로하다. 그런 관계로 집중을 하지 않으면 맥을 놓치기 쉽다. 그런 두 작가를 잇는 작가라 하니 속이 약간은 들여다 보이는 듯 한데 옮긴이의 말을 잠깐 읽어보니 결코 쉽게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두통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 작품을 읽지 못한다면 후회가 남을 듯 하여 꾹 참고 읽고 나갔다. 하지만 앞의 모든 생각들은 기우였다. 읽다보니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녀가 현재 남편인 아구스티나가 나흘간 출장을 간 사이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광기와 막닿게 된 아길라르,그는 문학교수였지만 본 부인과 두아들과 헤어지고 지금의 아구스티나와 만나며 그녀의 광기를 치료해주기 위해 사료배달일을 한다. 하지만 그녀의 광기를 이해 못했던 그는 이모인 소피가 집에 오게 되면서 그녀의 지난 과거를 듣게 된다.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차례대로 글이 쓰여졌다면 밋밋한 그야말로 맛이 없는 얘기가 되었을지 모르는데 제목인 ’광기’ 처럼 이야기는 뒤죽박죽 되듯 현재와 과거 이야기들이 번갈아 이어진다. 현재의 광기를 나타내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그녀가 왜 미치게 되었는지 가족사와 사회사가 등장하게 된다. 폭력적이면서 마초인 아버지, 그의 곁에서 위선적이며 남편의 폭력에 맞서 무기력하게 삶을 살아가는 엄마, 그리고 그런 부모의 잘 이용하며 사는 오빠 호아코, 그리고 겉모습 만으로도 너무 매력적인 부잣집 딸 아구스티나, 그녀가 사랑하고 제일 맘을 여는 남동생 비치, 하지만 그 남동생은 항상 아버지에게 여자같이 말을 한다는 이유로 매를 맞는다. 그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앞날을 예견하듯 동생을 챙겨주는 역활을 하는 아구스티나. 그런 가족사에 끼어 들어 천방지축처럼 살아가며 동생의 남편과 불륜을 나누는 이모 소피. 어느날 아버지와 소피 이모만 남겨지고 가족이 모두 여행을 가고 그들은 집에서 밀월의 시간을 보내며 소피 이모의 누드사진을 찍는다. 모두 태운듯 하던 사진은 몇 장 아버지의 서재에 남겨지게 되었는데 그 사진들을 발견한 아구스티나는 몰래 자신의 방에 숨겨 놓는다. 그 사진은 가족을 흩어놓는 매개체가 되듯 그 사진으로 인해 가족은 이모아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되었지만 엄마는 그 사진의 진범을 아들 호아코에게 떠 넘기며 일을 둘의 불륜을 눈감듯 무마시킨다. 그 일로 인하여 비치와 소피 이모가 집을 나가게 되고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불운한 삶을 아구스티나의 삶처럼 흉내를 내려던 미다스의 아이를 임신한 아구스티나는 유산을 하고는 길에서 유리구슬 목걸이를 팔며 생활을 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심장발작을 일으켜 끝내 아버지는 죽고 만다.

모든 과거는 아주 큰 케이크 같아서,누구나 자기 접시에 담긴 케이크 조각만 볼 뿐이야. 케이크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케이크를 만든 사람뿐이지... 아버지도 엄마도 소피 이모도 그리고 오빠 호아코도 자신들의 현실만 보았지 그녀가 이겨내야 했던 과거를 보지 못했다. 자신이 혼자 이겨내기엔 벅찼던 가족의 잔인한 과거사에서 그녀가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작가는 누구나 미칠 수 있고 그 ’광기’ 는 전이 될 수 있다고 말하듯 아내인 아구스티나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던 아길라르는 어느 날 자신도 아구스티나를 닮아 가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만약에 아내인 아구스티나의 손을 놓고 그녀의 아픈 과거사를 치유하려 들지 않았다면 만약에 소피 이모가 아구스티나의 아픔을 남몰라 하고 등을 졌다면 그녀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진실이 표면으로 떠오르려고 하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식이라고 할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 대가를 비싸게 치루고 있는 거죠...폭력적인 아버지와 위선적인 어머니, 먹이를 낚아 채려는 듯한 독선적인 오빠 호아코와 그들의 가족과는 방관자처럼 여겨지는 소피 이모와 그 모든것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여린듯한 남동생 비치, 불행한 가족사에 사회 환경 또한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듯이 너무도 잔인하다. 모두가 그녀를 미치게 했듯이 그녀의 ’광기’ 를 잔잔히 잠재우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모두가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광기, ’아버지가 늦은 시각까지 나를 기다렸다는 사실.’ 때문에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삐뚫어 나가는 아구스티나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라는 말처럼 무관심과 방관속에 그녀의 불행한 과거를 덮어두기만 하였기에 광기는 겁잡을 수 없이 커진듯 하다. 누군가 나서서 미리 그녀이 마음을 열고 위선적이었던 엄마부터 자신의 탈을 벗고 현실과 마주쳤다면 가족의 유산을 독신한 오빠가 좀더 동생들을 아버지로 부터 감쌌더라면 그녀의 광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십육년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그녀를 대했던 아길라르 덕에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 아구스티나, 그녀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켜 있던 실타래는 뒤늦게 자신의 지난 삶을 뉘우치고 그녀 곁으로 돌아온 소피 이모와 아길라르 덕에 잘 풀렸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 법이니, 어떻게 사람이 미치지 않고 배기겠나? ’ 늘 진실과 마주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아구스티나 그녀처럼 미치지 말란 법은 없는것 같다.’난 인생은 모두 꿈이고 꿈은 꿈일 뿐이라는 구절을 자주 곱씹어보곤 해.’ 허망된 꿈을 쫓아 뛰어 가던 미다스,그가 아무것도 없는 엄마의 자궁으로 숨어 들어가 자신이 숨은 골방에서 낙원을 찾듯 앞만 보고 뛰어가는 우리 슬픈 현실을 들여다 보라고 말해주는 광기, 다 읽은 후에 다시 보는 책표지의 여인은 어느새 내 안에 자리해 일상으로 돌아와 따듯한 시선을 간직한 아구스티나처럼 새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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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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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당연시 여기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
 
<엄마>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먹먹한데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하는 소설은 칠순이 된 노모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몇 년 전에는 손바닥에 콩알만한 물혹이 생겨 몇번을 수술하고도 아버지와 시골일을 다 하시며 밥이며 빨래까지 남의 손을 빌지 않고 모두 하셨다. 아프다는 말씀 한마디 하시지 않고.. 그해 나도 손목에 물혹이 생겨 똑같은 수술을 받아 보았지만 난 손을 쓰지 못했다. 손목이기도 했지만 신경을 누르고 있던 것을 제거했기에 붕대를 말고 얼마간 지내야 했다. 얼마나 답답한지 그때 더욱 엄마가 위대해 보였다. 난 응석만 부리고 있는것 같아 다음에 시골을 방문했을때 엄마의 손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언가 고장난듯한 엄마의 손,그런 손으로 아무말씀 안하시고 우리의 먹거리까지 챙겨주시는 엄마, 나도 내 딸들에게 그럴 수 있을까.
 
'너도 너 닮은 딸을 낳아봐라..' 엄마가 하시던 말씀을 내 딸들에게 하고 말았다. 요즘 한창 사춘기인 두 딸들이 자기 의견이 너무 강하고 중3인 딸과는 한해를 어찌 싸우며 보냈는지 모르게 보냈다. 다행히 고입이 잘되어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정말 한해를 모두 전쟁처럼 싸우기만 하며 보낸듯 하다. 싸우다 지치면 딸에게 '너도 너 닮은 딸 나아봐..' 하면 딸은 '엄마 그런 욕이 어딨어..' 하며 눈을 흘겼다. 나도 그 시절에 엄마에게 그렇게 대했을까. 내 지난날을 뒤돌아 보면 막내이지만 엄마에게 내 딸아이처럼 대들며 크지 않은것 같다. 시골생활이라 늘 집을 지키고 엄마의 일손을 덜어드리기 위하여 청소며 개울에 나가 빨래며 곧잘 하여 칭찬을 받고 공부도 엄마가 말씀 하시전에 했기에 큰소리를 듣지 않으며 큰 듯 하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또 다른 바람이 있었을까..
 
두 딸을 두었기에 요즘은 더욱 엄마와 가까이 속마음까지 털어 놓으며 긴 대화를 전화를 통해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여자만의 대화를 하지 않은것 같은데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고 있음일까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다보면 길어진다. 속마음까지 다 들추고나면 시골에서 자식을 위해 사느라 엄마를 제대로 한번 돌보지 않은 엄마가 측은하기도 한데 그 모습은 곧 내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살만큼 살았다면서 모든것 용서하면서 너무 악을 쓰지 말고 살라는 엄마의 말씀, 좋은게 좋은거고 그래야 너도 복 받는다. 하시는 말씀이 가슴을 저며들게 한다. 큰아이가 외고시험을 보는 날 아버지의 생신이었는데 아이의 시험이 잘못될까봐 식구들에게 깜박 잊고 미역을 사지 않았다면서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는 말씀을 외고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드리자 말씀 하시는데 난 멍했다. 그날 아침엔 난 딸에게 미역국을 먹였기 때문이다.
 
시골에 다녀오거나 문득 문득 <혹시 엄마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라는 전화가 온다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아직 큰 일을 당하지 않았기에 늘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날이 내게는 오지 않을것만 같은데 이 소설을 읽다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골에는 엄마의 친구분이 치매에 걸려 날마다 동네를 돌며 밭작물이며 열매를 다 따가시는 분이 계시다. 식구들은 할머니를 찾아 동네를 뒤지기도 하는데 엄마는 늘 그분이 우리집 밭작물인 콩이며 고추며 포도나무의 포도며 대추등을 따 가시니 치매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하시는데 난 속으로 우리 엄마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엄마와 아버지가 치매가 아니라서.. 혹시나 그렇게 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런 일이 발생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끔찍하다. 하지만 늘 미지수를 두고는 있다. 연세가 연세이니..
 
소설 속 엄마도 머리가 아프지만 자식과 남편에게는 자신이 아픈것을 감추고 살아왔다. 아니 모두의 기억속에서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잊혀진 존재로 살아왔다.화자인 <너>의 이야기가 곧 나의 가슴에 와 닿으며 내 이야기가 된다. 동물도 잘 되지 않는 집에 들어와 강아지 키우고 새끼를 몇 번을 내고 밭작물이며 꽃이며 엄마의 손이 가는 곳은 풍성하다. 남편이 아내를 잊고 지내듯이 자식들 또한 그런 엄마의 존재를 잊어가도 엄마는 그림자처럼 자식들을 걱정하면서 자신의 삶이 아닌 가족의 삶으로 일관한다. 그런 엄마의 존재를 엄마로 받아 들인 사람들이 있을까.화자가 <당신>이 되고 부터 진정한 엄마의 숨겨진 이야기가 나오면서 목울대가 콱 막힌다. 엄마도 여자이고 가족의 구성원 이었는데 남편마져 대화를 단절하듯 그에게 미역국 한번 끓여주지 않고 늘 앞서서 걸어갔다. 그렇게 식구들 뒤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온 엄마, 그녀가 사라졌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큰아들의 기억에서도 큰딸의 기억에서도 작은 딸의 기억에서도 남편의 기억에서도 오롯이 다시 살아나는 <엄마>라는 여자의 존재, 그랬다 엄마의 부재는 엄마의 존재를 다시 부활시켰지만 엄마는 그 어디에도 없다. 파란 슬리퍼를 신고 발등에 상처가 깊이 폐인 사슴같은 눈망울을 한 엄마는 그들의 지난 기억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어디에도 없다. 이제는 모든 일에 답이 나오는데 엄마가 없다.찾을 수가 없다.
 
제일 가까운듯 한 엄마와 딸의 사이에도 엄마는 어떻게 존재하였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기억에 없다. 딸의 책을 자신이 직접 읽고 싶어 글을 배우려 했던 엄마, 그런 딸을 자랑하시며 딸에게 내색을 안했지만 딸의 소설을 모두 알고 있던 엄마,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을까.. 모든 자식 걱정에 당신은 늘 같은 모습으로 사셨던 소설속의 엄마가 내 엄마이기도 하고 내 모습이 되기도 하여 더 가슴이 미어지게 했던 소설이다.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 아니 그런 엄마가 존재함을 일깨워 주어 고맙다. 아직 내겐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이 더 고맙다. 할 말도 많고 해드릴 시간도 많이 남았음이 감사하다. 아직 난 고해성사를 하지 않아도 됨이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
 
더 늦기전에... 더 늦기전에 무언가 할 일이 남아 있음을 말해주려 소설속 엄마가 말씀을 하신듯 하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니 모든 일에 답이 생기네. 오빠, 엄마가 원하는 거 그거 다 해줄 수 있었어. 별일도 아니었어. 내가 왜 그런 일로 엄마 속을 끓였나 몰라.비행기도 안 탈 거야.'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그 문짝까지도.' 엄마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고 나면 나도 그럴까.. 그때되면 엄마의 소중함을?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빈집의 마루에서 울고 있는 당신의 끅끅거리는 소리가 더 높아진다.' '감은 금방 열린다. 칠십년도 금방 가버리더라.' '나 죽고 없으면 감 따 먹으며 내 생각하라는 뜻이여.' 어디에나 엄마는 존재했다. 내가 알지 못하든 알 든.. 하지만 그 존재를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은 우리들이다. 그런 현실이 될까봐 <엄마를 부탁해>는 일침을 가하는것 같아 책을 그냥 덮을 수가 없었다. 내 가슴을 팍팍 긇어대듯 작가의 글들이 정말 더 늦기전에 뒤를 돌아보게 해 주어 감사하다. 소설속처럼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엄마께 전화라도 해 봐야 겠다. 춥지는 않은지 그리고 가슴에 오래도록 묻어 두었던 말들도 이제는 꺼내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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