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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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일까? 아니 나부터 나와 다름을 인정해주며 살아 가고 있을까?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보다는 나와 똑같아지기를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사회인듯 하다. 그런 반면에 요즘은 '동호회' 가 인터넷을 활성으로 인해 무척 다양해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악회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겹치기로 몇 곳의 산악회를 드는가 하면 애견인들이나 애묘인들은 또한 그 나름으로 뭉치기도 하고 취향이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어쩌면 세분화 되어 단위가 커지고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되었다.

 

네가 떠나고 난 후 빨다 버린 사탕이 된 나는 인턴은 진작 끝났고,인턴이 끝나니까 이제 직장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고,그래서 나는 씹다버린 껌처럼 바닥에 들러붙어서 그저 빚 갚을 일만 남았는데 돈도 없고,그러니 이제 문서제단기에서 들어간 영수증처럼 잘게 썰려 벌져지는 일만 남았는데 너는 이미 내 곁에 없는 거였다.

 

소설에서는'애묘'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애견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나 또한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소통이 잘 되어 할 이야기가 많지만 애견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한마디도 안통한다. 그들은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이 없다.동물은 동물이다. 동물에게 하는 사랑을 부모나 그외 사람들에게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마이너스인 부분도 있지만 삶에 반려동물로 인한 플러스 부분도 많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음과 양이 있게 마련이 것이 '취향'인듯 하다. 애묘인들, 아니 애묘가였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달랑 문자 한마디로 헤어지자고 하고는 행방불명이 되듯 행방이 묘연해졌다. 나의 어디가 맘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애묘인 '쿠치'를 잃어버리고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오드아이였던 쿠치, 쿠치는 어디에 있길래 그녀와 그의 사이를 갈라 놓은 것인가.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고양이 애호가가 아닌 애호 무리가 지나치게 늘어난 것은 특수한 경우에요.이런 식으로 대거 몰려 다니게 된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일이거든요.저희는 그것을 특별함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정말 '쿠치'라고 생각되는 그녀의 애묘를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쿠치를 잡을 수 있었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묘카페동호회에 나가지만 망신아닌 망신을 당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애묘가가 아닌 '안티 버틀러'였던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반대파나 마찬가지인 '안티'가 있었던 것,그와 통하는 바가 있다. 그렇게 한은 김B를 만나 '안티 버틀러' 가 되어 행동에 나서게 되는게 그게 정말 대단하다. 모인사람들이 고양이에 의해 피해를 입거나 더 나아가 대선까지 연관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취향'이 한나라의 우두머리를 뽑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음까지 나아갔다. 취향이 무섭게 작용을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무섭게 흘러간다.아니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자신들의 '취향'만을 인정하는 세계,나와 다른 취향을 공격적으로 공격을 한다.물론 현실에서는 이렇지 않겠지만 소설에서는 '공격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소수의 인원이 모이지만 그 힘은 섬짓하다. 그런 이야기가 맛깔나면서 '천명관'의 <고래>를 읽는 느낌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들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고래>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뭘까?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이야기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취향은?' 하며 반문해 보게 되었다.내 취향은 타인에게 강요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의 글은 어쩌면 소설속 '남궁 아버지'의 글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진밥이 아닌 고두밥이 아니어도 분명 고두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그런 글을 만난 기분이다.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할 것만 같은 저자의 소설을 오래 기억하게 될 듯 하다.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받아 들이고 인정하는 일이 평생에 걸쳐서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그 힘든 일을 고두밥과 같은 독특한 글로 풀어내고 있다.꼭꼭 씹어 삼키라고,그런 글을 만난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

 

거기 실린 글들은 진밥이다. 씹고 삼키기 좋다는 뜻이지.사람들은 그런 글을 좋아한다.읽고 섬기기 좋기 때문이지. 아버지의 글은 고두밥이다. 씹기도 삼키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남들과 다른 것,알기 힘든 것,그런 것은 튀어나온 돌부리와도 같다. 시선을 두다가도 비켜가거나 피하고 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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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려움 없이 - 삶의 폭풍우를 통과하는 지혜
틱낫한, 진우기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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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두려움이 없는 날이 있을까?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노년'에 대한 두려움및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및 걱정 불안이 더 하고 있다.그렇다고 그것이 금방 내일 닥칠 일은 아니지만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그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비슷한 연령의 친구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슷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한다.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이르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정말 끝이 없는듯 하다. 얼마전에도 총동창회체육대회 때문에 모처럼 시골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가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아이들이 나이를 말하며 앞으로 몇 년을 더 고생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노년은 누가 보장해주나 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

 

어느 나이나 두려움이 없는 아니는 없는 것 같다. 어머니의 탯줄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두려움' 에 놓이게 된다는 것. 스스로 호흡을 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두려움'을 극복한느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게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 받아 들이는 것' 이다. 실패하는 순간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면 더욱 힘들지만 바닥을 인정하고 짚는 순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솟는다고 했다. 인정하면 스스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지만 인정하지 못하고 바둥거리면 자신만 더욱 힘들게 된다.두려움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모두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그렇다고 '두려워 두려워' 하기 보다는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두려움은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못 넘을 산은 없듯이 두려움 또한 극복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닻을 내리면 미래를 휠씬 더 잘 계획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순간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산다 해서 미래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미래에 대한 근심걱정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과거는 고칠 수 없지만 미래는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이라는 현실에 충실한다면 보다 나은 미래를 맞을 수 있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 에 닻을 내리고 이 순간에 충실하다면 두려움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를 인정하기 보다는 과거에 얽매어 있다면 오늘이라는 현실 또한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고 두려움은 더 할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지난 과거에 연연하기 보다는 '내려놓고' 현재에 충실한다면 '내일'은 분명 희망적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놓아버리기 다섯 가지 기억하기 방법으로 '다섯 가지 기억하기'를 들었다.

1.나는 늙어가는 본성을 타고 났다.늙음을 피할 수 없다.

2.나는 병마에 시달리는 본성을 타고 났다.병마를 피할 수 없다.

3.나는 죽어가는 본성을 타고 났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4.내게 귀중한 모든 것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변화하는 본성을 타고 났다. 그들과의 헤어짐을 피할 수 없다.

5.나는 내 몸과 말,마음으로 행한 행위의 결과를 물려받는다.나의 행위는 나의 연속이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면 '두려움'이 덜하지만 받아 들이지 않고 '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만 힘들어진다.'병'에 대한 것도 받아 들이면 이겨낼 힘이 생기지만 '나만 왜?' 하면서 인정하지 못하면 자신만 더 힘들어진다.나이가 들어가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한 곳을 고치면 또 한 곳이 아프고 나 또한 병원신세를 계속해서 지고 있는데 이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나니 마음이 가벼운데 주위 사람들은 힘들게 이야기를 한다. 나이가 들면 아픈 것은 당연하고 기계도 오래쓰면 닳아서 고장이 나게 마련인데 하물며 사람인데 아픈곳 하나없이 살 수는 없다. 인정하면 살아갈 방법이 생기는 법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힘든 내일이 기달릴 뿐이다.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또한 대한하다.요즘은 '죽음'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 있고 행복한 죽음을 맞기 위하여,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거나 간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이려는 다양함을 본다. 무엇이든 인정하고 나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더한듯 하다.

 

기적은 물 위나 불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이 땅을 밟고 걷는 것이다.

 

여러 번 사고나 큰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지금 살아 가고 있는 이 순간, 이 삶에 더 감사하게 되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감사하기'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에 감사하면 무엇이든 다 행복으로 다가오게 된다. 현실을 받아 들이지 않고 욕망이라는 것에 부풀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더 힘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현재를 인정하고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감사하게 받아 들이면 '기적은 이 땅을 밟고 걷는 것'처럼 자신에게로 온다는 것. 현대인들은 별거 아닌데서 '두려움' 쌓여 산다. 늘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밧데리가 조금 남으면 밧데리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아니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지 못할까봐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 또한 외출 할 때는 여유분의 밧데리나 충전기를 가지고 나간다. 옆지기와 1박2일 서천여행을 가서는 동백정에서 나는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고 옆지기는 방을 잡으려 내려갔는데 내 핸펀의 밧데리가 얼마 남지 않아 꺼 놓았는데 그 두시간정도의 시간은 둘에게는 연락이 되지 않아 '두려움'에 대한 시간 이었다.나 또한 갑자기 생각해보니 주머니 속에 돈 한 푼 없고 핸드폰 밧데리도 다 되었고 그는 곁에 없고 둘이 만나지 못한다면 날은 저무는데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다. 그러다 다 내려놓았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우리 둘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고 나 또한 내려가도 입구에서 기다리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두시간의 두려움은 그가 일몰과 함께 다시 동백정에 오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왜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아름다움을 덜 보았는지.대부분 우리가 하는 두려움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명상이나 산책,우리가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들도 나와 있다.걷는것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이라 생각하고 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는 것 같다.모두가 우리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이 두 눈은 내가 아니다.나는 이 두 눈에 매이지 않는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몸에 매이지 않는다.

나는 끝이 없는 생명이다.

이 몸이 소멸하는 것은 나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몸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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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 2 밤과 낮 사이 2
빌 프론지니 외 지음, 이지연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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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무척 좋아하는데 읽어본지 오래되었다.올해는 좀더 장르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새해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을 언제 세웠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장르소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그러다 만난 [장르소설단편집] 은 정말 재밌고 푹 빠져들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읽을 수 있었다. 2권이 '살인사건' 위주로 담겨 있따고 해서 2권을 먼저 집어 들었다. 살인사건이 주제가 되는 이야기는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살인사건에는 대부분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고 인간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2권에는 12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완벽한 신사- 브렛 배틀스,약삭빠른 갈색 여우-로버트 S. 레빈슨,돼지 파티- 더그 알린, 장밋빛 인생-도미니크 메나르, 녹 - N.J. 에이어스, 애국적 행위- 크르스틴 캐스린 러시,...장르소설을 좋아하는데 아는 작가 이름이 없는 듯 하다. 내가 너무 편식하며 읽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책에 실린 작가들은 다양한 상을 받은 작가들이며 작품들 또한 생각보다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한번 손에 잡고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단편이지만 빠져 들어 읽었다.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작가들도 장편보다 단편을 더 좋아하기도 하는데 장편에서 느낄 수 없는 단편만이 주는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한그릇에 담긴 여러 요리를 맛보는 기분.

 

<완벽한 신사> 어떤 사람이 과연 완벽한 신사일까? 술도 팔고 그 안에서 춤을 추거나 그외 일을 하는 여자들을 남자들이 맘에 들어하면 돈을 내고 그녀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어느 날 그곳에 '완벽한 신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엘리'라는 여자를 맘에 들어하고 그녀를 돈을 주고 며칠 함께 했다.그러다 일이 발생했다.그남자는 엘리의 남자친구가 테러리스트라며 죽게 만든 것,그걸 엘리가 알게 되고 그남자는 엘리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런 과정을 지켜 보던 나는 어떻게 했을까? 술집 주인은 웨이드 노리스 엘리를 산 남자는 퍼듀다. 그런데 퍼듀가 미국으로 간다더니 실종되었다.어떤 반전이 있었을까?

 

<약삭빠른 갈색 여우> '약삭빠른 갈색 여우가 게으른 개를 뛰어넘네. 약삭빠른 개가 게으른 여우를 뛰어넘네. 게으른 갈색 개가......' 작가 거스 에버솔은 글쓰기 슬럼프에 빠졌다. 몇 개월 전부터 글쓰기 진척이 없는데 그에게 교도소 글쓰기 교실이 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 오고 그는 마지못해 일을 승낙하고 그곳에 갔다가 수감자들이 쓴 글을 자신의 글처럼 제목을 고쳐 발표를 한다거나 내용을 자기것화 하려고 한다. 그러다 교도소내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자신이 갈취한 글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에버솔은 그만두고 싶었는데 시기를 딱 맞추어 그만해달라는 연락이 온다. 그리고 그는 하루도 자신이 갈취한 글 때문에 맘을 놓치 못하게 되고 그러다 그를 찾아 온 교도소 수감자를 만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는 그야말로 '약삭빠른 갈색여우였던 것,그렇다면 자신의 생명은? 사람의 진실이란.

 

<돼지 파티> 정말 제목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온다. 못 생긴 여자를 데리고 오는 파티라는데 정말 못생긴 여자들이 모이는 파티일까. 못 생기지 않는 티비 속 인형과 같은 외모를 가진 '새러 실버' 그녀는 바텐더를 하는 맬로이보고 자신과 함께 '돼지 파티'에 가달라고 청한다. 왜 나와? 그리고 그녀의 외모는 돼지 파티하고는 정반대인데 왜 돼지 파티일까? 그녀에겐 자신을 알아줄 '특종' 이 필요했고 그에 맞게 이용할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돼지 파티에 투입한 다른 미성년자도 맬로이도 모두 그녀의 '욕망' 의 희생물이 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더 많은 이들의 그 일로 하여 희생이 되지만 새러 실버는 그야말로 '신데렐라'처럼 급부상하고 만다. 인간의 외면을 볼 것인가 내면을 볼 것인가.

 

이 책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마도 <장미빛 인생>이 아닐까? 공원에서 17세 정도의 여자가 교살되었다. 핑크색 비옷을 입고 교살을 당한 여자,과연 누가 이 살인을 목격했을까? 소설을 쓰는 르장드르는 아르노가 쓰고 있는 소설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가서 취재를 하라고 한다.탐정이라 속이고 '살인사건' 을 취재하다보면 글의 진척이 있을거라는데 이런 현장에 참여해 보지 않은 아르노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다가 공원 근처에 있는 예전에 호텔로 쓰던 건물인 공동주택에 들어가 탐문해 보기로 하는데 일이층을 거쳐 삼층에 오르자 할아버지 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을 맞이한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니까 그가 저지른 일,살인에 대하여 그는 듣게 되는데 그 살인이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어 그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노인분을 숨겨 주고 싶다.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하고 싶지 않다.하지만 노인은 자신의 죄값을 당당히 받으려고,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녀에 대하여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살인이고 살인자지만 무언가 감싸주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은 무엇인지.에디뜨 삐아쁘의 비극적인 삶과 겹쳐지듯 소녀의 비극적인 삶이 겹쳐져 더욱 슬픔을 주는 이야기.

 

<녹>,'튼튼한 철골 대들보라도 녹이 스는 법이라고.우리는 모두 이승의 떠돌이 인생일 따름이다.' 라는 마지막 문구가 정말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야기다. '에린 플래너리' 그녀의 외모를 보면 모두가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여자다. 그녀가 상사와 함께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면서 유부남인 상사와 왜 에린이 함께여햐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고 자신이 그녀에게 '총고'를 해주려고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되지만 상사와 함께 어울리지 말라는 말을 결코 하질 못한다. 왜 그녀가 급작스럽게 죽고 만다.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에게 뒷통수를 맞아 죽은 것인지. 그리고 점점 밝혀지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가 펼쳐 질 수록 자신이 '범인' 임을 시인한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아니면 술 때문에 그녀가 실수를 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일까? 어쩌면 간단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자신은 정말 그녀를 원했고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순간에 그녀는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정말 단단한 철골이라 생각했던 경찰이라는 '살인자'라고 볼 수 없는 인물이 '살인자'라는 녹을 쓰게 되는 경우다.

 

많은 이야기들이 읽으면 한 편 한 편 빠져 들어 읽게 된다. 단편이라고 하지만 한 편으로 완벽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르소설' 장르소설 단편집은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느낌이 참 좋다. 장편을 읽는 것보다 많은 작품을,다양한 이야기를 접한다는 것에서 더 선호하는데 2권을 먼저 읽어서인지 1권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살인'에 이르는 길은 정말 다양하다. 간단한 오해에서 빚어지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에서 빚어지기도 하고 정말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장르소설'이 아닌가 한다. 순간 별거 아니라고 벚어버리면 될 일들도 순간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여 '살인' 에 이르기도 하는 정말 반전을 가져오는 이야기를 읽으면 삶의 '양과 음' 을 볼 수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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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이름 푸른숲 새싹 도서관 10
호세 안토니오 타시에스 글.그림, 성초림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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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신의 이름보다 닉네임으로 더 많이 살고 있는 세상같다. 나부터 그렇다. 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보니 내 이름보다는 '닉네임'이 더 내이름 같은 현실이다.거기에 아이들을 낳고 부터는 내 이름을 대신하는 아이들이름, 00엄마로 통하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내 이름이 사라진듯 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난 누구보다 먼저 '실명'을 사용했다.내가 나 스스로 내 이름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고 옆지기에게도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고 그렇게 하다보니 이름을 불러도 익숙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00엄마로 불렸으니 그것이 편한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 이름이 더 편하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세대라 그런지 더욱 그런 현상도 있다.거기에 외괴어처럼 알아 들을 수 없는 '줄임말'은 정말 한참 생각해야 알아 들을수 있는 경우도 있고 핸펀에도 자신의 임의로 이름을 올려 놓으니 실명보다 닉네임이 더 편한 세상이다. 이 책은 내가 아닌 '사과' 로 얼굴이 대신 표현이 된다. 나만 '사과'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모두 '사과'를 얼굴로 가지고 있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이름으로 부리기 보다는 '공부벌레'나 그외 별명으로 많이 부르고 그런 내가 친구를 겨우 사귀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끼어 들어 친구를 잃고 말았다. 학교라는 곳이 아이들의 정체성을 흐려 놓은 것처럼 아이들은 규격화 되어 모두가 다 '사과'다. 국화빵을 찍어내듯 모두를 같은 틀에 맞추어 놓아서일까.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툴고 함께 어울리는 것도 서툴다.

 

 

그런 아이들이 '학교폭력'에서는 자신들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작가는 쉬쉬하며 숨기고 싶어하고 숨기려 하는 '학교폭력'을 밖으로 드러내야 하는 의미로 아이들의 얼굴을 드러냈다고 표현하고 있다. 감추수록 문제는 더 커지고 아이들만 병들어 간다. 분명히 수면위로 떠 오르게 해야 아이들이 상처도 덜 입는데 학교측은 또 그런 입장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몇 장 되지 않는 그림인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모두가 똑같은 사과의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방과후 시간부터 배로 변하고 있다. 집으로 향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확실한 '초록색 배'로 변했다. 마스크맨도 아니고 빨간 사과가 초록의 배로 변했다.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수능과 대입'에만 맞추어져 있어 개인의 적성과 개성은 무시되고 있어 아이들이 흔들린다. 나도 아이들을 고3 그 힘든 시간을 보내보아야 몸으로 느껴 보았기 때문에 아는데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적성으로 대학을 선택하기 보다는 '시험성적'에 맞추어 가다보니 다시 리턴하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측과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대학교를 잘 보내면 밖으로 보여지는 능력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기에 개개인의 숨은 능력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울집 딸들도 그런 문제에 부딪혀 고민을 하길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택하라고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아닌 길로 가다가 다시 되돌아 온다면 언젠가는 후회할 것 같아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해보고 후회를 해도 빨리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물론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으니 부모탓은 아직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늘 기계처럼 움직이고 짜여진 틀에 맞추어 살다보면 십대에서 이십대로 가는 그 시간에 한참 흔들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나를 찾으려 할 때는 늦은 경우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 있다.자신의 본 모습으로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나'로 나와 대화를 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런 현실이 참 슬프다. 서로 각자의 모습이 있는데 왜 똑같이 '사과'로 살아야 할까? 어떻게 보면 또 그런 사회를 어른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의 현실이 아이들이 자라는 현실이 참 각박하고 씁쓸하다. 좀더 밝은 모습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림만 몇 번 다시 보았다. 많은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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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건너는 아이들
코번 애디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인도의 아동 성노예 120만 명이란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는 점,거기에 이 소설은 뭄바이 매음굴을 잠입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더욱 사실적이고 생생하며 긴박하게 그려졌다.한번 손에서 잡으면 놓을 수가 없어 잡자마자 아무것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겁잡을 수 없이 이야기에 빠져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손에서 놓을 수가 있었다.어떻게 이럴수가.나 또한 두 딸을 키우고 있어서 늘 딸들 걱정이다.그것도 객지에 나가 있으니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녀석들 걱정인데 엄마의 그런 맘도 몰라주고 저희들을 감시하고 잔소리 한다고 생각을 한다. 다 컸는데 어린애처럼 감시하듯 한다고,그럴까.

 

워싱턴의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 토마스는 한낮에 공원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납취되는 것을 목격하지만 그들을 간발의 차이로 눈앞에서 놓치고 만다. 애비라는 엄마의 찢어질듯한 절규를 듣고 어쩔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 또한 태어나 몇 개월 안된 딸을 잃고 아내까지 냉랭하게 그에게서 등을 만 상태라 모든 것이 불안정하기만 하다.거기에 그의 책임하에 있던 소송이 지게 되고 누군가는 총대를 매고 물러나야 했는데 그것을 토마스가 한 것이다. 그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인도의 코르만델 해안에서는 쓰나미가 닥쳐 평화롭던 가정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자매인 아할리아와 시타만 남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눈 앞에서 행복하게 웃던 아버지의 죽음과 엄마의 죽음 그리고 가정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그들이 믿고 찾아가던 곳이 아닌 매음굴로 가게 되면서 자매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창녀로 변하게 된다.

 

토마스의 아내는 인도인이며 딸의 죽음과 그와의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인도로 떠나게 되었다. 아직 이혼이라는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그런 부부의 사이에 다른 여자가 끼어 들게 되고 그들의 사이는 더욱 겁잡을 수 없이 멀어지게 된다. 회사에서도 밀려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토마스는 인도에서 비영리단체에서 일해보기 위하여,공원에서 소녀의 납치를 목격하면서 '인신매매' 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하게 되고 아내의 일을 달가워하지 않던 그가 돈이 아닌 '인권'을 위하여 '인간존중'을 위하여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아할리아 자매의 인신매매 일에 그가 개입하게 된다. 아할리아는 매음굴에서 창녀로 희망이 없는 삶으로 전락하게 되지만 동생인 시타에게만은 그녀가 든든한 벽이 되어 주고 싶어한다. 그러다 토마스와 그들의 단체가 매음굴 소탕에 들어간 날 공교롭게도 시타는 다른 일로 팔려가듯 그곳을 떠나 아할리아와 떨어지게 되고 국제인신매매와 연관이 되게 되지만 아할리아는 구출되어 보호시설에서 희망적인 삶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늘 그녀는 동생 시타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동생을 위해 파란 연꽃씨를 심어 꽃 피기 만을 기다린다.

 

안 돼요. 한탄하지 말아요.근심거리 많아 우울한 인생일지라도.

시간은 멈추거나 기다려 주지 않아요.

너무도 길고,너무도 낯설고, 너무도 씁쓸한 오늘이라도

곧 잊힐 어제가 될 거예요.

 

토마스와 그의 아내 프리야와 아할리아 자매는 '인신매매'라는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큰 여울을 무사히 건너 큰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면 정말 더 가슴이 아팠을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분명 이보다 더 비극적인 일도 많으리라. 부모를 쓰나미로 잃어 의지가지할 동생 시타밖에 없는 아할리아,그녀는 무사히 매음굴을 벗어났지만 동생의 행방이 묘연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토마스라는 이가 나타나 그녀의 수호신이 되어 시타를 찾는데 노력해 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토마스 또한 시타를 찾는 일로 인해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되고 인생의 방향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된다. 인도 뭄바이의 매음굴에서 프랑스 파리의 뒷골몰까지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까지 이어지는 시타의 뒤를 좇아 가다가 '국제인신매매'와 부딪히게 된다.

 

'골피타에서 사랑은 섹스,섹스는 곧 강간이었다.'

어린 미성년자인 소녀들이 어른들의 성노리개가 되어 짐슴처럼 우리에 갖히듯 방에 갇혀 그녀들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수요자들에 의해 강간을 당하고 점점 빠져 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자포자기에 도망치지 못하도록 덫을 놓듯 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아이들을 이용하는 사람들, 정말 딸을 가진 부모라면 읽고 싶지 않다.아니 아들을 가진 부모가 읽어야 할 책처럼 남자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인듯 하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세상 무서워서 딸들 내놓기가 무섭다,정말.아할리아 자매는 부모가 쓰나미로 모두 죽었으니 그녀들에게 관심을 가져 줄 사람들이 없었다.토마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녀들은 그 소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관심과 노력으로 시타 또한 다시 아할리아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노력을 보고 프리야의 부모도 프리야 본인도 그동안 맺혔던 매듭을 풀고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인간은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에서 악은 널리 퍼진다.'

토마스가 공원에서 소녀가 납치되는 것을 보고도 느낀 것이 없었다면 아할리아의 이야기를 듣고도 그냥 안될 거라며 포기 했다면 시타는 어떻게 되었을까? 토마스 뿐만이 아니라 그를 도와 많은 이들이 시타를 구출하기 위하여 모두가 함께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그녀가 무사히 아할리아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밝은 태양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그녀는 '태양을 건넌 아이'가 되었다. 인도 뭄바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프랑수 미국까지 국제적 규모로 움직이는 인신매매 앞에 어린 소녀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니 벗어나려 노력해도 번번히 다시 붙들려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선한 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악은 더욱 깊숙하고 은밀하게 뻣어나갔을 터인데 그 뿌리를 확 뽑아내듯 타진하게 된다. 마음 아픈 희생이 따르긴 했지만.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인도 전통이야. 여인이 남자에게 팔찌를 채워 주는 거지,그 남자가 자기의 남자형제라는 의미로. 남자는 그 여인을 지켜 줘야 할 의미가 있어...라키 팔찌란...

 

토마스가 아할리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로는 '라키 팔찌' 에 얽힌 프리야가 들려준 이야기가 한 몫을 한다. 소설은 인도의 전설도 함께 엮어 나가서 좀더 신비로운 느낌도 주면서 진한 감동도 준다. 부부가 아이를 잃고 서로의 아픔을 토로하지 못하고 담아 둔 것이 화근이 되어 그들의 사이가 멀어지는 계기가 된다. 어려움과 아픔을 서로 털어 놓고 이야기를 했다면 서로의 아픔을 어루 만져 줄 수 있었을텐데 그들은 자신의 아픔만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아할리아 자매의 일로 인해 서서히 오해가 풀리고 다시금 서로 보듬어 주게 되면서 그들 또한 원만한 부부관계를 되찾게 된다. 인신매매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무엇인지 부부간에는 또한 어떤 사이로 나아가야 하는지 좀더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그런가 하면 '인신매매'란 현실은 우리 사회 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근절되어야 하는 큰 문제임에 분명하다. 인신매매와 성매매로 인해 와해 되는 가정이 얼마나 많을까? 인신매매나 성매매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감동까지 전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해 주는 책이라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듯하다.아할리아와 시타 같은 자매의 일이 더 많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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