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와일드우드 와일드우드 연대기 2
콜린 멜로이 지음, 이은정 옮김, 카슨 엘리스 그림 / 황소자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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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우드]를 재밌게 읽었는데 그것이 시간이 조금 지나서일까 내용이 가물가물이다.그런 상태에서 '와일드우드' 내용을 살짝 읽고 읽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읽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처음엔 방황했지만 내용이 새록새록 나는 것이다.하루종일 붙잡고 앉아 재밌게 읽었다.요즘 판타지를 뜻 하지 않게 몇 권 읽게 되었는데 재밌다.처음엔 판타지가 낯선 장르였는데 어느새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에 길들여지면서 판타지도 익숙한 장그가 되었나보다. 지난번에 읽은 <일곱 번째 아들>도 판타지였는데 영국 판타지였고 <반지의 제왕>과 약간 비슷한 감도 있어 재밋게 읽었는데 이 책 또한 전편을 재밋게 읽어 부담감없이 읽을 수 있었다.

 

프루는 공터를 지금길로 가로질러 서쪽으로 걷다가 문득 자신이 불안하게 지낸 최근 몇 주일 사이 이곳에 얼마나 자주 왔는지 깨달았다.낭떠러지 위에서서 윌라메트 강과 강 건너의 '지날 수 없는 숲'을 내려다보았다.

 

도시와 밀접한 곳에 있는 숲,그러나 그곳은 '지날 수 없는 숲'이라 하여 그곳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곳이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다.인간은 숲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파헤치거나 인간의 욕심으로 숲을 허물어뜨리고 만다.내가 사는 곳 또한 예전에는 산이었지만 지금은 주민의 쉼터로 이용되는 아주 작은 동산만 남겨지고 모든 부분은 헐리어 아파트가 조성되면서 그야말로 도시가 되고 말았다. 이곳이 산이고 숲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이 않다. 어떤 면에서 '와일드우드'는 작가가 자연인 정글과 같은 숲을 더 지켜내고 싶은 마음에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다.어른들은 이기심에 숲을 자원화 하여 파헤치려 하는가 하면 아직 어린 소년과 소녀들은 자연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소설 속에서도 소년소녀는 숲을 지키고 동물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욕심이 가득한 어른들은 숲에 어떻게 해서든지 들어가 개발하려고 한다.그런 숲에 오래전 신비주의자들이 '마법'을 걸어놔서 숲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숲의 피가 흐르는 '커티스' 엘시 레이첼이 아닌 반은 마법의 피가 흐르는 '프루'와 같은 소녀라면 또 숲에 들어갈 수가 있는데 아이들은 자신안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면서 숲을 지켜나가려고 파괴자들과 싸우게 된다.

 

"그래 내가 아는대로만 말해주면 이렇단다. 수 세기 전 여기 이 숲과 바깥세상이 더 이상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신비주의자들은 우드를 띠처럼 두른 나무들에게 주문을 걸었단다. 바깥세상 사람들이 우드로 들어오려고 하면 숲의 미로에 갇혀 길을 잃도록 말이다. 한 평의 땅이 두 배가 되고, 그 땅이 다시 두 배가 되어 무한하게 커지고, 이쪽으로 돌아가면 방금 전에 있던 자리와 비슷한 곳이 나오지. 게다가 시간은 정지해서 태양이 지고 달이 뜨는 식으로 흘러가더라도 절대 다음날로 바뀌지는 않는단다."

 

프루와 커티스는 우연한 기회에 '지날 수 없는 숲'에 갔다가 커피스는 자신이 있는 현실보다 숲의 생활에 흠뻑 빠져 들어 그곳에서 '산적'외 되고 프루는 사우스우드 와일드우드를 드나들면서 그곳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이 책에는 커티스가 갑자기 사라지고 커티스 부모는 아들을 찾아 2주일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서 엘시와 레이첼을 근처 산업폐길물이 가득한 곳에 있는 고아원에 딸들을 맡기게 된다. 하지만 딸들은 그곳이 정말 싫다. 으시시한 고아원,전혀 외부는 고아원같지 않은 곳이고 그곳 원장 부부는 이상하다. 도대체 이곳이 고아원인지 아님 다른 용도로 쓰이는 곳인지 모를 곳에서 엘시자매의 이야기와 프루와 커티스의 와일드우드 지하세계의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엘시 자매는 고아원이라고 하는 곳이 사실은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이란 것을 알게 되고 그곳 원장의 꿈은 '지날 수 없는 숲'을 향해 있다.그곳에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내어 개발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그런차에 엘시 자매가 숲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 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숲으로 향했던 '입양부적격자' 아이들과 '캐롤' 이라는 눈 먼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숲의 변방에서 살아가게 되었을까?

 

"내 그럴 줄 알았다! 너희 둘을 보자마자,아니 느꼈다고 해야겠구나.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감이 왔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수정처럼 빤해.너희 둘의 몸에, 아니 너희 집안에 숲의 마법이 흐르는 거야. 틀림없이! 그런데 어떻게...... "

 

한편 프루와 커티스는 산적들이 '요괴인 여우'에게 당하여 사라지고 그들이 뒤를 추적하다 롱 랩으로 떨어져 내리게 되면서 지하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와일드우드 지하세계엔 무엇이 있을까? 지하세계가 존재할까? '언더 와일드우드'를 프루와 커티스가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두더지'들의 지하세계를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늘 용기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프루와 커티스는 소인국에 간 걸리버처럼 두더지들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나무'가 프루에게 말했던 '인물'을 만나게 되지만 그녀의 뒤를 늘 쫒고 있는 달라라는 여우가 목숨을 노리고 있고 늘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프루는 나무와 풀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들의 도움도 받게 된다. 요괴에게 당하여 위험한 순간에 '황금갈쿠리'를 낀 곰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고 엘시 자매는 숲의 변방에서 나오는 방법을 알게 됨으로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고아들을 모두 이끌고 나오게 되지만 고아원에서 한바탕 하게 된다. 눈 먼 할아버지 때문에 자신들 몸 안에 '숲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된 엘시 자매는 혹시 오빠에게도 똑같은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숲에 관심을 가지게된다.

 

이 책은 남편이 글을 쓰고 아내가 책에 그림을 그렸다.그래서일까 더 신비롭게 와 닿는것 같다. 숲에 관심이 많은 부부가 만들어 낸 작품이라 그런가 읽으면서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아이들이 읽는다면 무한의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할 듯 하다. 숲에는 나무 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있고 또한 인간도 숲에 자주 들어간다. 그리고 우리가 잡초라 여기는 풀도 많고 온갖 생명이 존재하는 곳이다. 지상의 세계 뿐만이 아니라 지하세계 또한 얼키고 얼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고 말해주듯 지하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놓았다.그런가하면 동물들도 사람처럼 말을 하고 한정된 인간은 나무와 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동물들과 말을 하고 동물도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한다. 모두가 언어가 통하는 곳이 '숲'이다. 그런 숲이 인간에 의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허파'를 잃어 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듯 숲을 '지날 수 없는 숲' 아니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숲'으로 한정해 놓았다. 그 마법에 갇힌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음편이 기대된다. 기계인간이 다시 살아날지 프루가 숲의 여왕이 될지 다음이야기는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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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시간 여행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재형 옮김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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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행복 여행'을 읽고 꾸뻬 씨에게 빠져 들었는데 이번에 <시간 여행> 이 나왔다.현대인들은 '시간 없다,시간 없다.' 라는 말이 입에 달려 있듯 한다.나 또한 무슨 일만 있으면 '시간 없는데..' 하고 뒤돌아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시간은 내가 만드는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바쁘다 바뻐' 하며 살고 있는듯 하다. 얼마전 친구가 자신은 시간이 없어 '여행'이나 '산행'을 못하고 있다고 해서 '시간은 자신이 만드는거야. 여유를 한번 친구가 만들어봐.현재의 시간은 한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아' 라고 했더니 다른 친구들도 모두 공감을 했다고 댓글을 달아 주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에 대하여 왜? 라는 물음을 가지고 꾸뻬 시가 여행을 한다.

 

행복 여행에서도 중국으로 가서 노승을 만나고 친구인 시간에 쫒기면 살던 에두아르는 꾸뻬 씨와 노승을 만남으로 인해 더이상 시간에 쫒기며 살기 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이제 남을 돕고 베풀며 산다.그런 에두아르가 다른 곳도 아닌 알레스카에 가 있단다. 그가 만나보고 싶은 노승은 중국에서 사라져서 꾸뻬 시는 '시간'에 대한 의문을 갖고 이번에는 북극으로 여행을 떠난다. 북극 뿐만이 아니라 히말라야 중국으로 다시 가서 행복 여행에서 등장한 '양리'를 만난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처한 '현재'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현실에서 떠나지 못하고 종종 거리다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하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나보면 현재 자신의 위치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떠나지를 못한다.

 

'열심히 살다 보면 시간은 짧게, 기억은 길게 느껴진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그 차이는 무얼까? 그런가하면 여자들은 빨리 흘러가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듯 '노화'를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에 생기는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떨까? 남자들 또한 흰머리가 생기면 염색을 하기도 하고 그냥 세월을 받아 들이고 사는 사람도 있다. 무슨 차이일까? 꾸뻬 씨의 여자친구인 클라라 또한 노화방지크림을 바른다.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것 같은데.그런가하면 자신의 머리에도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이다. 자신 뿐만이 아니라 타인들이 생각하는 '시간'이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것을 말하는 것이고 달리는 기차를 어떻게 멈추어야 할까? 달리는 기차를 멈추기는 할 수 있을까?

 

"문제는 도망치듯 흘러가는 시간에서 벗어나려는 자신의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꾸뻬 씨가 찾아간 곳은 다른 곳보다 시간이 늦게 흘러가는 곳,시간의 흐름을 시계를 보지 않는다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곳이다.현지인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북극에서는 백야라는 것도 있고 현지인이 아니라면 밤과 같은 낮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인지 잘 느끼지 못한.히말라야 또한 그런 곳이다. 그런 곳에서 시간은 '느리게' 가지만 현대인들이 모여사는 도시에서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현대인들과 함께. 그렇다고 도시인들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북극이나 히말라야에 산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곳은 그곳에 맞추어 자신들만의 생활을 즐기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덜 가지면 덜 가진만큼의 행복을 누린다. 잘나가던 에두아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부의 삶은 한 사람의 삶과 조금 비슷하다는 것이다. " 처음 시작하는 남녀는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아. 처음에는 모든 게 참신하고 새로워 보이지.그러다가 성장하여 모든 걸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어른이 되는 거야. 그러고 나서는 중년이 되고,다시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지. 남녀가 죽는 건, 둘 중 한 사람이 죽거나, 아니면 헤어지기 때문이야. 지금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연인이란 태어나고 늙고 죽는 하나의 생물체와도 같아."

 

꾸뻬 씨 또한 '시간'아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클라라와 결혼을 해야 하나 생각,물음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려면 청사진처럼 미래에 대한 그림을 먼저 그려본다.현재를 받아 들이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덜할텐데 현재를 받아 들이고 인정하지 않는데서 불안감은 더하다. 나의 현재 나이를 받아 들이고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생기는 것을 받아 들이면 현재가 편안해 지지만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데서 힘겹고 어려움이 온다. 누구나 미래의 생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현재를 즐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지나가는 건 시간이 아니에요......, 우리가 지나가는 거지." 시간은 늘 정해져 있고 고정된 틀 속에서 움직이고 사라지는 것은 '우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현재를 영원처럼 생각하고 현재를 즐겨라.' 라는 것이다.오늘이라는 현재 또한 과거라는 것.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내가 좌우명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는 말이다. '현재를 영원처럼 생각하며 초연해져라.' 라는 뼈대 있는 말을 가슴에 담는다. 너무 각박하게 생각을 하면 될 일도 안될 때가 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초연해질 필요가 있다. 자로 잰듯 현재도 미래도 그렇게 팍팍하게 살려고 한다면 두려움과 불안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도 지나가게 놔 두고 나 자신도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내려 놓기'를 하고 살 필요가 있다. 꾸뻬 씨처럼 '결혼'을 두고 망설이기 보다는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자로 재기 보다는 결혼을 먼저 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인데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꾸뻬 씨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행복도 시간도 조급해 하고 좇아 다니면 더 달아나는 것 같다. '현재를 즐겨라,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라는 말처럼 현재를 즐기며 살 일이다.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 하기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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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소년 1
이정명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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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살인,살인사건 현장에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문장으로 이루어진 암호들이 남겨졌다. 그리고 현장에서 신원미상의 남성이 용의자로 붙잡혔는데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 이라 그가 진짜 범인인지 알 수가 없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중에서도 '수학'에 유독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영화 [모차르트와 고래]에도 보면 주인공들은 '자폐'인데 아스퍼거증후군과 모차르트 증후군인가 수학과 음악에 남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자폐아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사랑을 하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자폐가 아닌 그저 이웃이고 보통의 남녀로 받아들여지길 원하지만 사회에서는 그들에게 '선'을 그어 놓고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에서 소년 길모는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아버지가 의사였기에 주목 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사는 곳이 다른 곳이 아닌 '북한'이라는 고립된 사회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적 관계와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고 행동이나 관심 분야, 활동 분야가 한정되며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질환이에요. 심문이 뭔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올해 정권이 바뀌고 '남북회담' 이 다시 물꼬를 트나 했는데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북관계가 점점 도마위에 오르는 시점에서 '탈북문제' 그것도 '탈북청소년'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주목을 하고 있다가 이 책을 만나서 얼른 읽게 되었다.1권을 읽다보니 2권도 빨리 기회를 만들어 '길모'와 '영애'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그 결말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북한이라는 고립된 사회라고 해도 '수학천재'는 그들나름 쓰임의 특별한 가치가 있었나보다. 하지만 역시나 고립된 사회주의 사회라는 틀에 갇혀 그들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해 수용소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죽음으로 길모는 영애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의 아버지와 인연으로 만나게 되지만 영애의 아버지도 죽음으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영애는 탈북이라는 길을 선택하여 무산으로 향한다. 그녀에게 그녀 아버지의 노트를 전해 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진실'만 알고 거짓은 모르는 길모는 그녀를 찾아 떠난다. 그러다 꽃제비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속에서 날치를 만나게 되어 날치와 함께 도망쳐 탈북하게 된다.

 

나는 나의 생일을 좋아한다. 나는 소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2와 29는 소수다. 2+29=31도 소수다. 소수는 외로움을 타는 숫자다.소수달의 소수날에 태어난 나도 외로움을 탄다. 내가 또 좋아하는 숫자는 4이다.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좋아하고 4년 만에 열리는 수학 올림피아드도 좋아한다. 4년마다 뽑는 미국 대통령도 좋아하고 4년 동안 다니는 대학과 4인용 식탁도 좋아한다. 또 1루,2루,3루를 돌아 네 번째 베이스인 홈플레이트를 밟아야 1점이 되는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팀의 4번 타자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시간은 11시11분이다. 11:11은 완벽한 좌우대칭이고 그 합은 4이기 때문이다.

 

작가 이정명은 '뿌리 깊은 나무'로 먼저 만났다. 한글창제를 수학공식처럼 추리기법을 이용해 재밌게 풀어내서 빠져 들며 읽었는데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과 김홍도를 통하여 그 시대의 '풍속도'와 '춘화' 를 배경으로 그가 여자가 아닐까 라는 작가의 생각은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저자의 작품들을 모두 구매하여 소장하게 되었고 <악마의 추억>에서 <별을 스치는 바람>을 구매해 놓고 읽지 않아 아쉬운 차에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자는 늘 수학,미술,역사등을 재밌게 풀어내서 읽는 재미를 주니 더 빠져 들어 읽게 된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길모로 인해 수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수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 수 있도록 계속된 징검다리처럼 놓인 '수학 오디세이'를 건너다보면 금방 한 권을 손에서 놓게 된다. 거짓을 모르는 길모는 다른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의 타고난 능력인 '수학 천재'로 인해 어려운 고비에서 그래도 삶의 돌파구를 마련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난 영애와는 또 다시 헤어지는 곡절을 겪게 된다.

 

"죽음의 값은 0이고  삶의 값은 1이에요. 그다음엔 10이 있고 11이 있어요. 그 다음엔 100,110,111, 1000......."

 

자신이 해야 될 일이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맡은 임무를 완수하려는 정말 여섯살의 정신연령을 가진 길모가 '살인사건'의 용의자일까? 어떻게 하여 그가 '살인'이라는 벼랑끝에 내몰렸을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만 나갔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텐데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의 능력은 전혀 다른 곳에 이용이 되고 그는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니 타인의 밑에서 고용된 일꾼처럼 길들여지는데 그런 그가 왜 '살인'이라는 그 끝까지 내몰렸을까.1권 끝에서는 궁금증만 남기며 영애와 길모가 서로 갈라지게 되니 2권은 필수로 읽어봐야 한다. 그의 우여곡절 삶에 수학의 아름다움은 여기저기 수 놓인다.

 

거짓말......나는 세상이 진실로 가득하다고 믿는다. 거짓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과 가능한 일이 있을 뿐이다. 수학은 자명한 일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자명하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도 한다.

 

거짓말을 모르는 아스퍼거 증후군인 수학 천재 길모가 살인 현장에 수수께끼의 문장이 쓰여 있다는 이유로 그는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는 늘 '진실'만을 말해 왔고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 왔다.아무것도 없는 북한에서의 삶,그 속에서 거짓을 말할 수도 가질 수도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 그를 구해주고 도강을 하게 도와 주었던 것도 피붙이 하나 없는 이국에서 목숨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해준 것도 수학적 두뇌였다. 그가 살인자라면 그를 그렇게 내 몬 국가가 사회가 현실이 '살인자'가 아닐까. 길모를 보면 너무도 슬프고 불쌍하고 안쓰럽다. 무언가 해주고 싶은 인물이며 그가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고 싶어진다. 그이 머리속에 가득한 수학의 아름다움처럼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거짓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소년과 현실은 너무 극과 극으로 대치를 한다. 삶은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는데 어느 구석에도 '희극'이 없다.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 남은 것만 해도 희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결코 수학적이지 않은 사회국가에서 탈출하여 배부르게 먹고 등따시게 살아가던 날치와 길모,살이 보기 좋게 오른 날치가 쭉쭉 빠져 다시 탈출 전의 몸으로 돌아간 것처럼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뿌리가 흔들리면 다시금 뿌리를 내리고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아무리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가 있어도 그것은 현실에서는 너무 멀리 있는 별과 같다는 것을,그래서일까 비극적인 현실이 천재 수학 소년의 순수와 아름다움을 더 빛나게 해준다. 2권이 정말 궁금하다.

 

아저씨는 감격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수가 바꾸지 못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수학은 교화소의 운영체제를 바꿀 뿐 아니라,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한 나라를 건설하기도,그 나라를 망하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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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아들 1 - 마녀의 복수 일곱 번째 아들 1
조셉 딜레이니 지음, 김옥수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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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한테는 할 일이 있어. 넌 그 일을 해야만 돼. 단지 그 일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해야 돼. 내가 네 아빠하고 결혼한 이유는 네 아빠가 일곱째 아들이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여섯 아들을 낳은 건 너를 낳기 위해서였고, 너는 일곱째 아들이 낳은 일곱 번째로 낳은 아들이야. 그래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어. 너를 가르칠 스승님은 여전히 강하지만 전성기는 오래전에 지났어.스승님이 활약하는 시대도 결국 끝날 때가 오겠지."

 

일곱 번째 아들이 낳은 일곱 번째 아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7'이란 숫자는 행운을 뜻 하여서일까,행운이 두번 겹치는 일곱째 아들이 낳은 일곱 번째 아들인 '톰'은 선택받은 인물이다. 농장을 하는 집에서는 형이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톰의 엄마는 그를 남다르게 여긴다. 엄마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엄마의 감추어진 과거 또는 능력은 무엇인지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도 기대되기도 한다.

 

우리는 일곱째 아들이 일곱 번째로 낳은 아들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능력이 있지. 하지만 이런 능력은 저주가 될 수도 있어.우리가 겁을 내는 순간 두려움을 먹고 사는 존재가 나타나거든. 그래서 우리를 최악으로 몰아가지. 해결 방법은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멈추ㅗ 우리 눈에 보이는 존재에게 집중하는 거다. 그러면 깨끗하게 사라져.

 

조셉 딜레이니,그의 작품은 처음이다.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미디어를 가르치던 교사였던 그가 교사 생활 틈틈이 작품을 썼고 <일곱 번째 아들> 시리즈로 인기를 얻으며 판타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영국하면 <해리포터>를 쓴 롤링이 있고 이 소설 역시나 <해리포터>와 마찬가지로 판타지이고 영국작가라 기대된다.작가는 랭커셔 주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나 자신의 경험담을 재밌게 이야기에 끌여 들였다.유령을 보는 일곱째 아들 토머스,마녀의 심장을 가진 앨리스,카운티 최고의 유령 사냥꾼 존,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시작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이 무긍무진함을 이야기 한다.

 

톰의 어머니는 그를 낳기 전부터 그가 유령사냥꾼의 도제가 될 것을 안다. 어느날 유령 사냥꾼은 톰의 집에 찾아와 그를 자신의 도제로 데려가도 좋은지 부모의 의견을 듣는다. 어머니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를 유령 사냥꾼에게 보내며 톰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유령사냥꾼을 따라가 한달이라는 기간동안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며 도제로 사라갈 것인지 서험을 받게 되면서 마을에서 먹을 것이 부족한 아이들을 만나 먹을 것도 나누어 주고 앨리스라는 소녀도 만나게 된다. 마녀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 톰을 자신의 편이 되게 조정을 하는 앨리스,그녀는 톰의 편일까 마녀들의 편일까.

 

"그 일을 통해서 교훈을 배우도록. 우리에게는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서두는 건 절대 금물이야.우리는 머리를 써야 해.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에 필요한 일을 정확히 처리하는 거다.평상시에는 일 년 동안 훈련을 쌓기 전까지 도제 혼자서 그런 작업을 처리하도록 하지 않아."

 

유령사냥꾼과 함게 하며 점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톰,유령사냥꾼이 집을 비운사이 앨리스의 꾐에 빠져 악질 마녀인 '멀킨 대모'를 땅속에 가두어 두었는데 톰의 불찰로 그녀를 지상의 세계로 나오게 하고 톰은 그녀와 싸우게도 된다. 아직 자신의 능력을 모르는 톰은 본능에 의해 멀킨 대모를 죽게 하기도 하고 마녀가 데려간 아기도 찾아 주고 나쁜 마녀를 붙잡는데 한몫을 하게 되는데 '앨리스' 그녀의 거취가 문제다. 자신이 유령사냥꾼에 걸맞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집에 돌아왔다가 자신이 갈 길임을 알게 되고 다시 유령사냥꾼에게 돌아 갔다가 마녀를 붙잡아 가두게 되고 앨리스를 데리고 그녀를 이모네 아니면 가두어야 하는지 결정하게 되는 과정에서 죽었던 멀킨 대모가 다시 살아나 다시금 훼방을 놓지만 톰과 앨리스는 힘을 합해 멀킨을 물리친다. 마녀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운 앨리스,그녀는 나쁜 마녀일까 좋은 마녀일까? 아직 자신이 선택한 유령사냥꾼이라는 일에 자신감을 갖지 않은 톰과 앨리스와 앞으로 관계는 어떻게 이어질지.

 

<일곱 번재 아들>이 이야기가 끝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지며 더 많은 일들이 펼쳐진다니 이어서 빨리 읽고 싶어진다. 한때 우리는 <해피포터>와 <반지의 제왕>이라는 판타지에 빠져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이을 소설과 영화가 될지. 아직 어린 톰이 앞으로 유령사냥꾼으로 맞서 싸우게 될 마녀나 그외 유령들의 이야기라면 정말 다양하면서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올 듯 하다. 판타지 속에서 만나는 보가트는 이미 친숙하다. 그런가하면 아직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라 해도 겁을 먹지 않고 유령이나 마녀와 맞서 싸운다. 자신 안에 있는 자신감과 싸우듯 두려움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아이들,그것이 판타지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한참 그 나이의 아이들은 사춘기로 방황할 시기인데 그들은 방황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능력으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력과 싸운다. 용감하게 말이다.남에게 미루거나 어른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가면서 성장을 한다는 것이다. 실수를 한다고 좌절하지 않고 그 속에서 배워 나간다.

 

판타지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재밌게 읽게 되었는지. 이 소설도 다음편까지 모두 챙겨 읽어 나가면 재밌을 듯 하다. 톰과 앨리스의 미래도 궁금하고 톰이 앞으로 유령사냥꾼으로 어떻게 펼쳐 나갈지도 궁금하지만 톰의 어머니라는 인물이 궁금하다. 그녀가 하는 일을 보면 오래전에 '마녀' 들이 하던 일을 한다. 마녀들은 식물에 능통했고 산파일을 도맡아 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그리 문제되는 일이 아니었지만 집 주변에 허브나 식물을 키워 이용하는 여자들을 마녀라 칭하여 그녀들의 삶은 그리 평범하지 않았다.멀리까지 나거서 산파일을 보아주기도 하고 아들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톰의 어머니,유령사냥꾼과도 잘 통하는 것을 보면 어머니도 뭔가 숨기고 있는 과거가 있다. 그런가하면 일선에서 물러날 아버지를 대신하는 농장일을 하는 형과의 관계 또한 앞으로 풀어갈 숙제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하여 어둠과 같은 톰이 집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형과 그런 형 곁에서 내조를 잘 하는 형수와의 일들도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유령사냥꾼'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지만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 하는 것은 원치 않는 사람들,그 속에 톰이 있다.톰이 과연 앞으로 유령사냥꾼으로 책임을 다하며 잘해낼지.<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세계로 재밌게 이끌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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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니체 땐 시리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김부용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니체,정말 많이 들어 본 철학자의 이름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늘 읽어야지 하면서도 늘 쳐다보고 그냥 지나쳐만 가는 책으로 알고 있는 니체. '우울할 땐 니체' 이 책은 읽은지 좀 되었다.하지만 리뷰를 쓰는게 또 막연해서 미루고 미루다보니 그나마 잘 알지 못하고 깊이도 없는 분야라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더 깜깜해지고 말았다. 내가 책을 읽은 것은 읽은 것인가.

 

"허무주의: 이것은 목적이 결여되어 있고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결여되어 있다. 허무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인가?"

 

[발타자르 토마스] 이 책의 저자는 독일계 프랑스인으로서 철학 교수 자격을 가지고 있고 철학을 연구하는 삶에 앞서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은 바 있단다. 그는 철학 강의와 글쓰기,사진 음악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철학' 하면 괜히 어렵고 힘들고 한숨부터 나오는 분야다. 철학자들의 이름을 많이 들어 보았지만 '철학'이라는 단어의 어감부터 괜히 빡빡하고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진다. 이 책 전에 읽은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에서 저자는 말머리에 철학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는 물음에 '소크라테스' 를 말하지만 그에 이어 나오는 말이 없다고 한 그런 느낌의 글을 읽었다. 나와 같은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로 받아 들였다.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플라톤... 철학자들의 이름을 알긴 알지만 정말 철학에 대해서는 어렵다고 늘 뒤로 미루었고 니체는 더더욱 미루었던 책이었는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만났다. 어렵다 읽어도 말이다.

 

"만일 사람들이 저마다 인생에 대해 상대적인 '왜?' 를 갖는다면 사람들은 거의 모든 '어떻게' 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니체의 허무주의,그가 왜 허무주의에 빠지고 그런 생을 살았는지 궁금해서 책 뒤에 나온 '니체의 생애' 를 먼저 읽어 보았다. 아버지와 두 조부가 개신교 목사였으니 그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며 어머니보다 먼저 '신'을 만나지 않았을까? 그런 그가 성장하면서 신을 부정 하듯 믿음에 대한 흔들림을 겪으며 '허무주의'와 마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주변에서도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집안 대대로 믿음을 이어가던 친구들이 사춘기 시절 어느날 갑자기 신앙을 버리듯 믿음에서 벗어나는 친구들을 몇 명 보았다. 자신이 모태부터 가졌던 '신앙' '신'에 대하여 성장 후에 진지한 물음을 가져보는 친구들이 있다. 주변상황과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의 와해를 겪으며 빠졌을 허무주의에서 벗어나는 법을 일상에서 찾아본다.

 

허무주의는 정말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병이라는 것이 시작이다. 누구나 일상에서 허무주의에 빠져들 수 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이 잘 성사 되었다면 덜 하겠지만 잘 되지 않았을 때 허무주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상이 덧없이 느껴지기도 하며 행복은 나의 것이 아니라 불행이 친구처럼 느껴질 때 더욱 허무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며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지' 다. 저자가 허무주의를 재구성한 순서로는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의 순서이다. 좀더 쉽게 유머 있게 적용했더라면 재밌게 읽으며 일상에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먼 미래를 밝게 내다보는 길을 좀더 확연하게 보았을 터인데 제목처럼 우울하게 느낀 것은 너무 니체의 철학에 빗대어서일까.

 

삶을 좀더 부정적으로 보다는 '긍정적'을 내다보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니체의 허무주의를 들어 이야기 해 나갔지만 긍정적 도움보다는 니체를 잘 모르고 그의 철학에 대하여 기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읽어나가려고 하니 괜히 머리에 쥐가 날 것처럼 '긍정적'인 독서보다는 '부정적'인 독서가 되고 말았다.그야말로 독이 되고 말았다.좀더 니체를 내가 알고 있었다면 재밌게 읽었을 책을 미안하기도 하고 다음에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 할 책으로,더불어 니체에 대하여 좀더 읽어 보고 아니면 다른 책을 읽어 본 후에 다시 읽어 본다면 좀더 '긍정적'으로 읽어내지 않을까 한다.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책은 재밌게 읽었는데 왜 이 책은 딱딱하게 느꼈을까? 아마도 내 선입견이 편견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모르면 모르는대로 받아 들이고 읽었다면 좀더 담았을텐데 선입견이 너무 큰 장벽을 만들어 준 책이 되고 말았다.다음에 한번 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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