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언 프로이드 - 오래된 붓으로 그려낸 새로운 초상의 시대 다빈치 art 21
조디 그레이그 지음, 권영진 옮김 / 다빈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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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이 되다>를 읽은 독자로써 지나칠 수 없었던 작품.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루시언 프로이드를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통찰력있고 재능이 출중한 두 작가 ( 마틴 게이퍼드와 이 책을 쓴 조디 그레이그) 에 의해 낱낱이 조명이 되다보니, 루시언 프로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겠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서야 난 마틴 게이퍼드가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거나...<내가 그림이 되다> 정도의 책을 쓴 사람이라면 통찰력이 없을리 없으니, 그에게 루시언 프로이드가 안 보였을리 만무하고, 그가 무언가를 봤음에도 쓰지 않기로 결정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과 그 책을 비교해 본 결과 마틴 게이퍼드가 쓰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게 나름 웃기고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그건 루시언 프로이드의 주장대로 그를 그림으로만 봐달라고 하는 것에 대한 마틴의 무언의 동의였지 않을까 싶더라. 두 남자가 사생활이 아닌 자신이 창조해낸 결과물만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기로 결정을 했다고 말이다. 그것에 대해 내가 뭐라할 이유는 없다.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각기 분야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두 사람이다보니, 다른 말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건조한 면이 있긴 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오해의 여지도 잘못 해석할 이유도 없다. 둘 사이에 염화시중의 미소가 흘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림이 되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루시언 프로이드의 그림을  그대로 빼다박은 글을 써낸 것이므로. 해서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서 알게 된 사실 한가지는, 그리고 마틴 게이퍼드가 그의 책 속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한가지는...


바로 루시언 프로이드가 소시오패스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토록 자신의 사생활이 언급되는 것에 신경을 곧두세운 이유는 그가 지극히 비밀스러운 사람이였기 때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사생활이 그만큼 난잡했기 때문이다. 성관계를 맺은 여인만 대략 500명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자식만 열 네명, 그외 알려지지 않은 자식들만 삼십명이 넘을지 모른다고 하니 대충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나이차가 얼마나 되든, 그들의 족보가 어떻게 되건( 전 아내의 딸과 관계하기도 함.) 상관하지 않으셨다니, 그를 현대판 카사노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내가 그림이 되다>에서 카사노바를 소시오패스라고 진단하시길래 얼마나 통찰력 있으신가라고  감탄했더니만,  알고보니 그도 같은 과라서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아니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까나?--그가 평생 아버지로써의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뭐, 그런 것조차 없었다고 하니 내가 왜 루시언 프로이드를 소시오패스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실 것이다. 그런걸 보면 예술가를 아버지로 둔다는 것이 생각만큼 근사한 일은 아닌가 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냉정하거나 무자비하거나 무관심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타인이라면 친절할 수도 매력을 발휘할 수도 있도 사람이기에, 루시언은 타인으로 만난 이 작가에게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타인과 친구라는 경계 선상에서 만났으니 상처를 입을 일이 없어서 작가로썬 좋았겠다 싶다. 좋은 점만 보고 들었어도 되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에서 루시언의 일생을 돌아본 것이 장점, 왜냐면 얼마든지 삼류 막장극으로 빠져들 여지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루시언의 사생활이 얼마나 난잡하고 야만적이었던지 간에 우리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그림들 때문이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영리한 전개였지 싶다. 루시언 프로이드를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말하건데, 이 이상의 책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루시언에게 질릴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루시언을 좋아하고픈 사람들은 그의 그림들만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그가 화가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림속에 다 담아 두었으니 말이다. 추측컨대 그는 평생 인격자나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고자 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는 다만 탁월한 화가가 되고자 했고 그 야망을 이루었다. 타협하지 않은 지성과 진정성을 잃지 않는 뚝심, 그리고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그의 업적에 경도된 사람들이 눈을 가리기로 결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때론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영생을 사는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예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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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 동물의 왕국에서 벌어진 가슴 뭉클한 43가지 이야기!
제니퍼 S. 홀랜드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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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책속의 사진때문이었다. 각 사연들 속에 나오는 사진들을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내 호기심에 불을 당겼던 것이다. 동물들의 이야기라면 종을 불문하고 좋아하는 나로써는, 사진까지 첨부된 이런 미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종이 다른 동물들이 자신의 본능을 무시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니.그레이트 데인이 새끼 사슴을, 테리어가 새끼오리를, 암닭이 강아지를, 어미개가 새끼 고양이를, 점박이 양이 달마티안 개를, 돌고래가 바다 사자를, 소년이 마못을, 올빼미가 야옹이를...끝도 없이 나오는 이종들의 향연. 과연 그것이 가능해 라고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서도,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니 놀랄노자 아니겠는가. 해서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보게 된 책인데, 책을 얼마 읽지 않아서 다른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건 바로 우리 인간은 우리도 동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이종 동물들끼리 사랑하고 돌보고 아끼고라는 단어를 곰곰히 따져본다면, 우리야말로 그런 경우의 최고봉 아니겠는가. 우리 인간이야말로 다양한 동물들을 키우니까, 단지 먹기 위해서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로써 말이다.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다른 동물들도 그럴 수 있는게 아닐까, 인간이 돼지를 먹지만 어떤때는 애완용으로 키우듯이 말이다. 우리의 동물 사랑이 무한대라면,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다고 추측한다는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들이 우리와 너무도 다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쩜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애정이라는 감정을 가지는 동물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쩜 우리의 무지나 오만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사랑하고자 하는 감정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건 똑같을텐데 말이다. 그들이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거나, 지능이 낮다거나, 우리와 다른 뇌의 구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다른 종을 사랑하는 것이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우리에게 있는 감정이 그들에겐 없을 것이라고 지례 짐작하는 것일까?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인간들이 그들에게도 인간을 사랑하는 감정이 있다고들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데 말이다. 개나 고양이에게 우리 인간은 다른 종 아니던가? 그러니까, 어찌보면 이 책속에 나온 많은 동물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만큼 특별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동물들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다만 특별하다면 다른 종과 교감을 하고 공감을 나눌만큼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일테지만서도, 그런건 인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니 넓게 본다면 다른게 없다고 하겠다.


그런 것에 생각이 미치다보니, 이종들의 사랑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저자의 글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책들 속에서 나오는 동물 모두에게 찬탄을 금치 못하던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되진 않아서 말이다. 그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사진이다. 동물들의 사진들...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다. 저자의 글에 실망을 하다가도 사진만 보면 그런 기분이 싹 가신다. 그러면서 애초에 내가 왜 이 책을 보고 싶어했던가 이해가 된다. 난 그저 동물들이 애정을 나누는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귀엽고 신기하고 동화속에 나올만한 비주얼들로,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흐른다. 기분이 나쁠때 휙휙 넘겨보면 우울한 기분이 가실 것도 같다. 광고계에서 3B가 있다고들 하지. 아기, 미인, 그리고 동물...정말로 이해가 간다.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에는 눈길이 저절로 머문다. 하니 우울하시고 기분이 안 좋은 분들이라면 한번 보시길. 이종 동물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아끼고 등을 기대고 코를 맞대는 모습들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솔깃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해지는 광경들에서 눈을 떼기란 지극히 어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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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비타민 -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내가 바뀌는
도마스 아키나리 지음, 전선영 옮김 / 부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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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내가 바뀌는 < 철학 비타민> 라는 표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젠 어떤 것을 읽어도 세상이 다르게 보이거나 내가 바뀌는 경험을 하기는 힘든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목차때문이었다. 철학은 무슨~~이라면서 아무 생각없이 목차를 흩어봤는데, 그것들이 내 흥미를 끌어냈지 뭔가.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 사람은 제각각이다.(소피스트) /철학 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괴짜의 등장(소크라테스) /이토록 낭만적인 철학(플라톤)/스승을 걷어차다.( 아리스토텔레스)/ 한결같이 신을 믿다.( 아우구스티누스)/ 그가 있었기에 냉난방이 있다?( 베이컨) /우리 마음은 새하얀 종이( 로크, 버클리, 흄) /세계를 180도 뒤집은 꼬장꼬장한 철학자(칸트) /괴로워 하는 '나'를 위한 철학( 키르케고르 )/ 삶은 고뇌다. ( 쇼펜하우어) /만약 똑같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니체)/ 웃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제임스) /죽음에서 눈을 돌리지 마라! (하이데거) /인간의 끝없는 자유 ( 샤르트르) /쾌락에도 질의 차이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마르크스) /인간은 죽었다.(푸코) /무의식을 둘러싼 싸움( 프로이트와 융)...목차만 읽는데 철학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궁금하게까지 만든다는 점에서 일단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정도의 목차를 끌어낼만한 기지라면 어쩌면 따분하지도 어렵지도 않게 철학사를 흩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겼던 것이다. 거기에 이런 목차 안에 저자가 어떤 내용으로 각 학파들을 요약해 놓을지가 저의기 궁금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간절한 표정으로 철학을 가르치시던 윤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그가 해내지 못한 철학의 정수를 이 책 한 권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겼던 것이다. 어떤 탁월한 발상의 전환으로 핵심만 골라 잡아 쉽게 내게 이야기해준다면, 철학 그까지껏 어렵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해서 결론은, 기대가 충족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는 것이다. 기대가 충족되었다고 한 부분은 흥미를 자아내는 목차하에 칸칸히 들어간 서양 철학자들의 설명들이 예상대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충족되지 않았다고 한 부분은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철학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았다는 포만감이 든다거나, 철학이 너무 재밌어서 더 연구해보고 싶다거나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예기치 못한 성과를 들라면, 철학사를 한번 휙하니 흩어보는 과정을 통해 그간 내가 얼마나 성장을 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만큼 머리가 빨리 돌아가거나 기억력이 좋진 않지만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만큼은 그 시절보다 깊어졌음이 확실해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윤리 선생님이 어떻게 해서든 이해시키려 애를 쓰시던 말들이 이젠 들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아, 가여운 윤리 선생님. 어떻게 보면 그분은 불가능한 것이 도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마도 그 분이 가장 공감할만한 영웅은 시지프스가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철학 문제를 잘 푼 것은 단순 암기력이 좋아서였을뿐, 철학을 제대로 이해해서는 아니었구나 라는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 삶을 살아보지 못했던 시절의 이해력이다 보니, 과연 무엇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열심히 달달 외고, 맞는 짝을 맞추는 혜안만 길렀던 것일뿐...해서 이제와 철학사를 되집어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서양 철학의 올스타라는 분들의 인생 역정 말이다.


그들과 나를 같은 인간 선상에서 두고 보니,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기꺼이 마신 과정은 놀랍기만 했다. 악법도 법이라는 그의 소신은 얼마나 섬뜩할만큼 존경스러운 것인지...그것이야말로 법을 이루는 근간이겠지만서도, 정법마저도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피해가려하는 소신배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자신을 어이없게 죽음으로 내모는 악법마저 주저없이 따르겠다고 하던 그의 마지막을 현재에 대입하니 초연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어찌보면 무지렁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얼마나 불행했으면 더이상 살고 싶지 않으셨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서도,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사람의 이성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자체가 참으로 소름이 끼쳤다. 니체는 또 어떤가? 그렇게 불행한 삶도 다시 주어진다면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내 보이겠다는 그의 삶의 대한 애정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루소의 어린 시절을 들어보니, 그가 왜 그렇게 삐뚤어졌는지도 이해가 간다. 그가 생각따로 행동따로 사는 이중적인 사람이 된 것은 어린 시절의 불행때문일 수도 있고, 그가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들었던 일화들을 현재에 대비해 다시 재해석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장 의미가 깊었다. 그들이 그렇게 유명해진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과 그들 인생 자체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간단하게나마 철학에 대해 쉽게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적당한 책이 아닐까 한다. 쉽게 읽힌다. 각 철학파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알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여러 철학 거장들의 사상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어 시야를 넓히는데 좋다. 어쩌면 당신 맘에 드는 철학자를 혹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들 일견 맞는 말만 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마도 이제와서는 누구의 말이 옳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의견을 자신이 인생을 해석하는 지침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가 이 책을 보고난 최종 결론이 아니겠는가 한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도, 내가 바뀌지도 않았으나,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인가 정도는 알아낼 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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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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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든 책마다 하나같이 재미가 없어, 집중력도 인내심도 바닥이고, 독해력도 예전만 못 하네. 나이가 들어서 그런걸까? 라면서 목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을 단숨에 날려준 책이 되겠다. 게걸스럽게 읽었다. 단 하루밤만에...그러니까 문제는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왜 늘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나는 왜 이럴까를 되뇌면서 좌절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서 이런 상황에 읽게 되서 특히나 고마웠던, 더불어 이렇게 잘 쓴 책이 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했던 작품이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라면 어디서 누군가가 거품을 물어도 진작에 물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여간 간만에 좋은 책을 건져서 무척이나 기분 좋았던--여기서 말하는 간만이라는 건, 최소한 일주일 최대한 이주일 되는 기간이 되겠슴다.--<무게>의 본격 리뷰에 들어가기로 하겠다. 


188센티에 230킬로 그램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아서는 오랜만에 자신의 집으로 옛 제자 샬롯이 전화를 걸어오자 설레기 시작한다. 십대 시절부터 강박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 어언 40년, 그래도 한때는 대학 교수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긴 했으나 이젠 그 모든 것을 청산하고 집에서만 살아온지 거반 20년으로,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생활한지 10년째라는 것이다. 뚱뚱한 자신의 몸매에 놀라고 부끄럽고 당황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못해 다른 삶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단념하고 살았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 것이다. 58세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심한 그는 샬롯이 왜 전화를 했는지와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 것인가를 저울질 하면서 고민한다. 만나자는 그녀의 요청에 펄쩍 뛰게 당황한 아서는 고민끝에 자신이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며, 그럼에도 현재의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면 연락을 하라고 편지를 보낸다. 한참 뒤에 보내온 그녀의 편지속엔 십대 소년의 사진 한 장이 달랑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과 함께...아서는 도대체 18년전을 마지막으로 자신을 만난 샬럿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진을 보내 왔으며, 결혼했다는 말도 흘린 적이 없던 그녀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궁금증을 못 이긴 그는 샬럿을 만날 생각에 20년간 치우지 않는 집을 치우기로 결심하고,  욜란다란 헬퍼를 집으로 부른다. 한편 기다리던 샬롯의 전화를 받게 된 아서는 술에 취한듯 발음을 흐리는 그녀의 억양에 한층 그녀가 걱정이 되는데... 과연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이 잔잔한 소동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리고 샬롯은 왜 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고작 반학기 동한 스승이었던 아서에게 전화를 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도대체 그 세월동안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강박적으로 먹어댄 탓에 집에 은둔하게 된 외톨이 아서, 그의 오래 전 제자 샬롯, 그녀의 재능 넘치는 아들 켈, 그리고 고작 스무살에 불과하지만 아서보다 현실적인 마인드를 지닌 욜란다. 이렇게 네 명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던 소설이다. 


일단 이 책의 장점을 들라면 높은 가독성에 있다. 그냥 술술 읽힌다. 막힘없이...이 책의 저자가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단언컨데 학생들을 가르칠만한 능력이다. 이런 선생님에게 배우는 제자들은 얼마나 행운아들인지...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선생님 자신이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잘 쓴다. 유려하고, 거침없고, 흥미진진하고, 화자에 따라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데도 주저함이 없으며, 실제로 화자가 쓴 것인양 내면의 이야기가 설득력있다. 어떻게 병적으로 비만인 전직 교수와 십대 소년의 이야기를 이렇게 공감가도록 풀어놓던지 말이다,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작가가 남자인가 싶을 정도로 남성의 심리를 그럴듯하게 풀어놓는데, 가공할만한 대입능력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딱 맞아서가 아니라, 글을 워낙 잘 쓰다보니 그럴것도 같다면서 설득이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녀가 설명하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팥인줄 믿어주겠다. 대체 이 작가는 어디서 튀어 나온 것인지, 감탄하고 말았다니까.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이처럼 산뜻한 이야기로 탈바꿈시켜 놓다니...존경스러운 필력이다. 사실 이 책은 소재가--230킬로그램이 주는 무게?-- 너무 무거워 보이는 지라 선뜻 읽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읽어보니 왜 그랬는가 싶다. 책은 경쾌하고, 감동적이고, 도와주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연민이 모략모략 솟아나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선입견이란건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그런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이야말로 짜릿한 것이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무척 재밌게 읽었다. 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은둔자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을 과연 작가가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책이었는데, 거기에 감동까지 있다. 읽는 내내 주인공들에게 공감을 하거나 연민을 보내거나 함께 고민하거나 하지 않은 채 이 책을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다.  얼핏 생각에 230 킬로 그램이나 나가는 주인공이 그 자체로 혐오스럽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게 된다. 왜냐면 그는 그럴만한 대접을 받아도 좋은 사람이니까... 착한 소설, 재밌는 소설, 읽고 나면 행복한 소설이었다. 뭐랄까. 이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인간인 것처럼 생각되더라. 아마도 주인공들의 선한 성품에 동화가 되서 그런 모양이다. 이런 사람들의 행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빌어주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달까. 굳이 꼭 단점을 꼽으라면 잔인한 십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과, 병적으로 비만인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것이겠지만서도,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사랑하는 독자로써는 그 단점마저도 다행스러웠다. 왜냐면 삶의 무게에 이미 충분히 눌려있는 주인공들이 더 이상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읽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이 결국엔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랐음으로...


보라. 책속 등장인물들의 행복을 바랄 정도이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얼마나 잘 쓴 작품인지 짐작이 되실테지. 하니 특별한 책을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이 책을 보니 앤 타일러의 <우연한 여행자>가 떠오르던데, 이 작가의 앞 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아마도 앤 타일러 못지 않는, 좋은 작품들을 내주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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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고뭉치였습니다 - 부모와 교사를 위한 하버드 교수의 자전적 멘토링
캐서린 엘리슨 외 지음, 윤영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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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왜 집어 들게 되었는지는 명확하다. ''부모와 교사를 위한 하버드 교수의 자전적 멘토링' 이라는 표제에 궁금증이 일었고--아마도 하버드에--ADHD 판정을 받은 문제아가 어떻게 하버드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라는 문구에도 솔깃했다. 나 역시도 학벌에 연연하는 속물이라 그런지 그런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버드에만 방점이 찍힌건 아니고, 어떻게 저자가 역전에 성공했을까 그게 궁금했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의 성적으로 대학교가 결정이 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고등학교 중퇴자가 어떻게 하버드에? 그게 가능한가 싶어서 말이다. 하여간 학교 성적이 하도 낮아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저자가 하버드 교수가 되었다는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의 서구 결정판 같은 이야기, 읽기도 전에 내용이 대충 그려지면서, 뭔가 건질게 있을 거라고 난 지레 짐작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를 할 정도면 명철할 것이고, 그런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니 얼마나 풍부한 사례들로 가득하겠는가 라는...돌아온 탕아가 자신의 개과 천선 과정을 직접 설명한답니다, 여러분! 다들 앞으로 물려 나와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 책 자체가 말이다.


결론만 말하면 나 혼자 너무 앞서 나간 모양이었다. 알고보니 제목이 저자가 단순히 ' 사고뭉치' 라는건 굉장히 언어를 순화시킨 것이더라. 그는 한마디로 불량배였다. 아주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도때도 없이 드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ADHD를 앓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나 밉살맞게 행동을 하던지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애가 타고 속이 타고 그러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훤하게 들려왔다. 그냥 단순히 장난을 치는게 아니라 애가 정말로 타인에게 해가 될만한 행동을 한다. 그것도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해보도 싶다는 이유로. 지나가는 차에 창문에 돌을 던지지 않나, 동생들을 위협하고 못살게 구는건 애교 수준이고, 평생 폭력을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은 없다고 자랑하지만, 폭력 못지 않게 주위에 해를 끼치고 다녀서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저자는 폭력과 그냥 못되게 구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것 같던데, 사실 당하는 입장에선 그다지 차이가 없다. 싫은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해서 버스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규칙은 지키지 않으며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다발로 하고 다닌 덕분에 학교에서 왕따 신세가 된 저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솔직히 억울한 것은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 아닐까 싶어 가소롭더라. 더 웃긴 것은 그가 자신의 밉살맞은 행동 덕분에 몸집이 더 큰 학생의 폭력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을 아주 아주 괴롭게 묘사한 대목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한 행동은 수긍할만한 행동이고, 자신이 남에게 얻어 맞은 것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던데, 당장 반발심이 들었다. 적어도 저자라면 균형감각이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왜 자신이 남에게 끼친 해는 별게 아니고, 자신이 당한 것만 대단한 일이라는 것인지...거기서부터 이 책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아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던지 간에, 그의 왜곡된 시선을 통해 보여진 것이니 올바른 것일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서 말이다. 그가 학교 폭력을  그렇게 소리높여 고발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행동 역시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되는거 아니었을까. 그는 학교에서 자신이 맞는 것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억울해 하던데, 아마 내가 거기에 있었다해도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고소해했을지도 모른다. 잰 맞아도 싸, 누군가 내 대신 때려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면서...아마도 이런 사고방식들이 학교 폭력을 심화시키는 과정이 되겠지만서도, 그걸 알면서도 저자의 행동은 참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ADHD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그걸 넘어서 저자에게 소시오패스나 아스퍼거스 증후군이 살짝 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였다. 본인은 그걸 모르는 것 같던데, 나중에 진단을 해보면 그런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데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 그저 장난이었다고 생각하던데, 그건 정말로 정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니 말이다.


그렇게 한때 밉살맞은, 범죄자의 미래가 예약되어 있었던--빈말이 아니고 진짜로. 그는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범죄에 가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교도소에서 인생을 끝내지 않는 것은 그저 다만 그가 너무나도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걸린 적이 없었기에--그가 19살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부터 그래도 제 궤도에 올라 지금은 대학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다행이긴 하다. 이 사람 머리가 좋아서 만약 범죄의 길에 빠져 들었다면 상상을 초월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를 잘만 보살피면, 그리고 믿어주면, 악순화의 고리가 아닌 선순환의 고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이 책을 통해 강변하고 있었다. 문제는 선순환이라고. 언제나 아이를 그쪽으로 밀어 주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이다. 왜냐면,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아이의 마음 속에도 실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저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러고 있는 것일뿐이라고 말이다.


ADHD가 이렇게 파괴적이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남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충동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우리 사회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니 말이다. 저자 말에 의하면 지금 어엿한 교수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도 사실 그 충동은 어렸을 적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금은 그 충동이 벌어질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일뿐. 그러니까, 어른이 되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충동을 조절하는 짠밥이 는 것이라고나 할까.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충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게 아닌 일. ADHD 가졌다는 것이 참 현대 사회에선 적응하기가 힘들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그럴지니 그걸 바라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타들어 가는 것은 뻔한 일...그런 부모들에게 어쩜 이 책은 그래도 어두운 밤에 빛나는 등불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적어도 희망을 주니 말이다. 거기에 부모에게 아이를 놓치 말라고, 그게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는 버팀목이라고 설명하는데 이해가 갔다. ADHD가진 아이들을 키우면서 좌절하고 어리둥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하는 부모님들이 보심 좋을 듯 싶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행동 하나 하나로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뭐, 미래까지는 아니라도 고통의 크기는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는가. 내진 서로를 바라보는 이해의 눈길이 깊어질수도...하니 사고뭉치를 넘어서 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신 분들은 한번은 보셔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보기엔 좀 역겨울지도...하여간 이런 아이들을 키워 내는 부모님들 기타 선생님들은 대단하시다니까. 나는 인내심이나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 일은 못하겠다 싶다. 하니 ADHD가 있는 아동을 키우시는 부모님들은 기억하시길....늘 배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를 놓치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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