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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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체크 말체프스키Jacek Malczewski  /죽음 Death 1902


얼마전 폴란드 전에 갔을때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중 하나가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죽음>이었다.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갔었는데 머리속에서 그림이 해석되자마자 좀 충격적이라고 해야 하나, 감명이 깊었다고 해야 하나, 다가가서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화가가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내가 저 그림에서 본 인상은 죽음의 사자가 고된 삶을 살아온 인간에게 " 고생하고 살아온 그대, 이제 쉴 지니라," 라고 축복을 내려 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해골과 낫과 망투로 상징되는 죽음의 사자를 한없이 자애로워 보이는 통통한 젊은 여성으로 그려 놓은 것도 주목할만했지만, 죽음의 선고를 받아들이는 할아버지의 저 표정이라니...마치 신의 축복을 받는 듯 감사해하는 표정이 아닌가. 삶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이고, 죽음이 오히려 그 저주에서 풀려나는 축복이라는 뉘앙스의 이 그림을 보면서 도대체 화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속에서 화가는 뚜렷하게,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지니, 왜냐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에...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서 충격적이고 흥미로웠다. 아니 ,사실 우리들 마음속에 한자락씩은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감히 누구도 나서서 그런 말을 입밖엔 꺼내 놓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신선하고 통쾌했다. 이렇다보니, 이런 금기같은 말을 당연한 것이라는 듯 단정적으로 그려낸 화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한 것도 이해가 가실 것이다. 놀라운 인생관 아닌가.화가가 만약 아직 살아계시다면,  당장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왠지 그는 시간과 장소가 달라진다고 해도 변하지 않은 진실의 한자락을 알고 있는 듯해서...그리고 이건 다른 말인데, 흔히들 사진이 원판만 못하다고 하는데 이 그림을 보니 확실히 알 것 같다. 원본속의 생생함이나 풍성함이 사진속에서는 흔적없이 사라진 것을 보니 말이다. 원본이 전해주는 감동을 이 사진만으로는 읽어낼 수 없다. 아마도 그래서 다들 비싼 돈을 내고 꾸역꾸역 전시회를 가는 것이겠지만서도...

<사는게 뭐라고>라는 책 리뷰를 쓰면서 뜬금없이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그림을 들고 나온데는 두 작가가 어느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의 저자 사노 요코, 치매를 20년 가까이 앓아온 90대의 노모를 잃은 뒤, 드디어 홀가분하게 사시는가 했더니만 그 2년 뒤에 그녀 역시 암으로 사망하셨다고 한다. 죽기 전까지 그녀가 성실하게(?) 끄적여온 몇 편의 수필을 모아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죽음>이라는 그림을 봤으면 엄청 좋아했겠다 했다. 아마도 많은 위로를 받았겠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사노 요코, 그녀는 의사가 암으로 기껏해야 1년 남짓 살 수 있다고 하자, 당장 나가서 재규어를 산다. 그 차가 2주만에 너덜너덜해졌지만, 어떠리, 마냥 태연하다. 신기하게도 평생 앓아오던 우울증이 단박에 낫더라며 신나한다. 이럴때 보면 어쩌면 삶 자체가 그녀에겐 우울증의 근원이었던 것도 같고...그녀의 지인들이 암이라서 어쩌냐,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고 울상짓자,  그녀는 오히려 잘됐다고. 어차피 인간 한번 죽는데, 암보다 더 고약한 것에 걸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대답한다. 거기에 70에 죽고 싶었는데 소망이 이뤄진걸 보니 착하게 살아왔던 모양이라며 자신은 더 이루고 싶은 것고, 더 책임져야 할 것도 없으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조용히 수긍한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내진 관습적으로 삶은 어떤 순간에서도 붙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그렇게 인생 막바지에 선 저자의 시크한 매력이 돋보이던 책이다.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자의 솔직함이랄까, 내슝을 떨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좋아하는 한국 비디오도 비디오 가게 점원이 이상하게 볼까봐 대놓고 가서 빌리지 못할만큼 소심한 양반이 글속에서는 그런 자신을 비웃다가 변호하다가, 그럼에도 본인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어쩌랴, 이게 나인걸...하는 할머니의 무대포 정신에, 만약 그녀가 현대에 살았더라면 훨씬 더 재밌게 잘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살았던 시절은 아이에게도 여성에게도 그닥 좋은 시절이 아니었어서 말이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을 읽으면서 그녀가 암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어놔서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었는데, 그녀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이런 책을 읽게 되서 다행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 굉장히 서운하고 안 됐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홀가분하게, 자신이 멋진 삶 까지는 아니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삶은 아니었다고 자부하면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바라건데, 나 역시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했을때 그러할 수 있기를. 그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그런데 오해는 마셔야 할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이런 죽음은 노년의 죽음입니다요. 삶을 그리 오래도록 인내하고 살았으니, 그들에게 은혜같은 휴식을 주어도 된다고, 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젊은 이들은 착각하지 마시길...당신들에겐 인내하고 살아야 할 시간이 아직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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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세 말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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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하는 동생내외를 돕는답시고 종종 둘째 조카를 보러 간다. 28개월에 들어서는 둘째 조카는 요즘 말 배우기가 한창이다. 처음 옹알이를 시작하고 엄마 아빠 맘마를 했을때부터 언제쯤 이 녀석이 유창하게 말을 하려나, 제대로 잘 하기는 하려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싶게 잘 따라와 주고 있다.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아이가 하루 하루 배워가는 것들을 보면 기적이 따로 없다. 걷지도 못하는 것들이 뛰어 다니고,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 되지 않던 외계어만 남발하던 녀석들이 이젠 어눌한 발음이긴 하지만 제대로 소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조카가 좋아하는 놀이는 숨바꼭질인데 나만 보면 눈을 반짝이면서 숨으러 가자 하는데 그 조그만 녀석의 말을 안 들어주기가 불가능하다. 저번에는 옷장속에 둘이 숨어 있었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잘 숨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할머니( 조카를 낮에 돌봐주시는 분)보고 우리 찾으라고 말하고 온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조카는 옷장을 나서면서 나에게 고모는 여기 가만 있어 !하면서 당부를 하고 갔는데, 그녀를  놀려 주려는 생각에 나는 당장 옷장속에서 나와서 옷장과 벽 사이의 빈 틈으로 숨어버렸다. 할머니에게 찾아 보라고 한 뒤 종종 거리며 옷장으로 온 조카는 내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리저리 찾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조카가 우는 소리에 놀라서 달려온 할머니는 " 내가 고모한테 여기 가만 있으라고 했는데 , 없어졌어! " 라는 조카의 말에 조카를 달래며 못 찾겠다 꾀꼬리 하면 나올 거라고 위로를 해줬다. 조카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쳤고, 내가 바로 옆에서 나오자 무척 신기해하며 - 방금 놀란 것이나 울었던 것은 다 잊어 버리고--우리 또 숨으자! 를 외쳤다.  내가 방금 나왔던 그 장소에 숨고 싶어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조카가 당황하고  옷장과 벽 틈에 숨어 있던 사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조런 꼬마가 당황한 순간에서도 내가 고모한테 여기 숨어 있으라고 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단순한 문장도 아니고 꽤나 복잡해 보이는 말인데도 그걸 남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내뱉는걸 보면서 감탄하고 말았다. 조금 큰 아이가 저런 말을 한다면 아무런 신기함을 없겠지만서도, 말을 배우는 아가들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내겐 놀라움이고 신기함 그자체다. 누가 저런 말을 가르쳐 주었는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말들을 활용해서 자신의 말로 내뱉는걸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삼십년 넘게 영어를 배우면서도 문장으로 말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고, 칠년째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난리를 치면서도 간신히 한 살 아기가 할 수 있는 정도의 단순한 문장만 구사할 줄 아는 내가 보기엔 아기가 말을 배우는 속도와 활용 능력은 천재급이다. 우리가 왜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어쩜 인간에게는 물고기가 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비슷한 천부적인 능력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게 그냥 놔두기만 해도 말을 배우는 것 같은 인간 아가들에게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잘 배우게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녀석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던 책이 바로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이다.


일단 이 책의 저자 김수연님이 우리나라 최고의 아기발달 전문가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다.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아기를 잘 키우기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해봤을 엄마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지 않을까 한다. 엄마도 아닌 고모인 내가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니 유명하신 분 맞다. 몇 년 전 <60분 부모>라는 프로를 통해 아기 때문에 고민인 부모들을 많이 상담해 주셨는데, 안 보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일단 보고 나면 왜 그녀가 최고의 전문가라는 것인지 이해가 간다. 친절하시고, 이해심이 깊으신데다가, 아가들의 마음을 읽어주시는데 그렇게 명쾌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란 것을 말이다. 말을 못하는 아가들을 대신해서 조목조목 우리들은 지금 심정이 이래요, 우리 발달 상태는 이래요 등등을 그래서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이에요 등을 설명해 주시는데, 그녀 덕분에 얼마나 많은 엄마 아빠들이 가슴을 쓸어 내리고 마음에 안정을 얻었던지 말이다. 아기들과 상관없는 나 마저도 그녀가 고마울 정도였다. 그렇게 아기 마음을 들여다 봐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설명해주는데 최고의 전문가요 권위자인 김연수님이 이번에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아가들에게 말을 어떻게 걸어여 하는가, 아가들은 말을 어떻게 배우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이 트인다고 하는데,  그것이 왜 중요한 것이고, 아가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기 연령별로 조목조목 가르쳐 주시고 있었다. 아가들을 처음 키우시는 부모님들에게는 특히나 유용한 책이 아닐까 한다. 연령 발달별로 아가들이 어떻게 크는지도 감을 못 잡고 , 말을 못하는 아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는 더군다나 더 깜깜이실테니 말이다.


어떤 부모들은 사랑과 본능으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대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듯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모들이 어떤 가르침이 없었음에도 그럭저럭 우리들을 멀쩡한 인간으로 키워낸 것을 보면 말이다. 어쩌면 이런 책을 안 읽어도 아이들은 언젠가는 말을 배우고, 언젠가는 걸어다니며, 언젠가는 어른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때론 황송하게도 시간이 그 모든걸 대신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부모들은 배움이 필요하고, 어떤 부모들에겐 특별한 가르침이 필요하기도 하며, 어떤 부모들에겐 단순하고 명쾌한 설명만으로도 어려운 육아가 쉬운 육아로 바뀔 수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생기는 것이 없겠지만서도, 또 그런만큼 이런 저런 미신에 가까운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가들에게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줘도 말이 트이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책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인듯 생각하는 것도 그 일례라 할 것이다, 말이란 일방통행이여서는 안 되기에,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이며, 그것은 어른들과의 소통을 통해 배워가야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던데, 부모님들은 새겨 들으시길 바란다. 잘못된 정보를 맹신하다간 부모가 힘든 것은 물론이요, 아기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해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말을 내뱉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소통을 한다는 것이지...아기가 내 말을 이해하고 반응하게 만들려면 우리가 아기의 말을 이해하고 반응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소통은 단지 언어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한마디도 못하는 아프리카에 떨어지면 어떻게 생활할까? 몸짓으로 소통하려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말을 못하는 아기와 우리가 처음 주고 받는 대화여야 한다고. 아가들이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면 당신이 한마디로 하지 못하는 러시아에 홀로 떨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시길. 그럼 아가들의 답답함이 훨씬 더 잘 이해될 것이다. 그런 이해가 아가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과 너그러움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무엇보다 모르겠으면 답을 찾아 공부하시길...아가들이 우리들에게 맞출 수 없으니 우리가 아가들에게 맞춰줘야 하는건 당연한거 아니겠는가. 하니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고민이신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읽기 어렵지도 않고, 중요한 정보만 핵심적으로 골라 놓은데다, 마지막 부록에서는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말이 늦되는건 아닐지 걱정이신 분들을 위해 단계별 언어 이해력 평가서도 붙여 놓았다. 아가들을 데리고 놀이삼아 한번 해보는 것도 재밌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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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부모와 다른 아이들 - 전2권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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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이자 동성애자인 저자는 자신이 살아 온 경험을 통해 이 책의 소재를 얻는다. 그의 부모 역시 그가 게이라는 정체성을 오래도록 받아 들이기 힘들어 했고, 그것이 젊은 시절의 앤드루에겐 상처와 고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과 다른 아이를 가진 부모는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일까? 내진 어떻게 처신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10년간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 내어놓게 된 것이 이 책이다. 나와 다른 아이들, 예를 들자면 청각 장애인, 다운 증후군, 정신 분열증, 범죄자, 천재, 트랜스잰더등등, 이 태어났을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진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경험이 우리를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 것이고, 달라 져야 하는 것일까에 대해 저자는 심도 있는 고찰과 통찰력 있는 설명, 그리고 사려깊은 조언으로 이 책을 완벽한 보고서로 만들고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완벽한 책을 내어놓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나로써는 굉장히 놀란 작품이 되겠다.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다. 10년간의 작업이라는 것이 무색하지 않게 모든 것을 두루두루 통찰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들을 편견없이 들어주며, 거기에 그들이 미쳐 하지 못한 이야기나 설명을 통찰력 있는 본인만의 시선으로 통역해 주는데 읽으면서 정말로 이 저자, 대단하다 싶더라. 한 인간의 시야가 이렇게 넓을 수도 있다니 하면서 감탄했다. 나와 다른 아이들이라는 주제에 관한 완벽한 보고서,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것때문에 혹시나 편견 있는 시각으로 책을 쓰진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그런 경험이 다른 이들에 대한 열린 시선이나 따뜻한 애정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열심히 반성하고 배웠다. 1편보다 2편이 훨씬 더 낫기에 혹시나 1편에서 실망하신 분이라도 2편은 꼭 보시길 바라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책 한 권 쯤을 읽어두면 좋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보다 열린 세상,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이해가 될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부모가 아니라면 이런 주제에 관해 관심을 갖기나 호감을 느끼기는 무척 어렵겠지. 그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다만 혹시나 감상적인 이야기만 나열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 그건 아니라고, 과거에도 앞으로도 이 책보다 완벽하게 모두를 조망한 책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시간의 압박과 이 모든 주제를 아우를 수 있는 넓은 시야, 거기에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재능 없이는 이런 책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 앤드루 솔로몬" 이라는 작가만이 써 낼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작품이라고 보심 된다. 그의 고집과 열정에 박수를...이 책이 그가 바란대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열린 창이 되기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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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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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에 관해 이보다 더 처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만나기란 과거에도 미래에도 쉽지 않을 것이다. 캐롤라인 냅,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린 최고의 수작. 그녀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최고란 말을 함부로 붙일 수 없었겠지만서도,  캐롤라인 냅이 2003년 44이란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이 책에 그런 수식어가 가능하다는 것이 몹내 안타깝다. 통렬한 내면의 고백을 섬뜩하리만치 거침없는 솔직한 입담으로, 마치 아무 일도 아닌양 조곤조곤 털어놓는 그녀의 탁월함을 아는 독자라면 아마 누구라도 내 말에 수긍할 것이다. 명망높은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아이비그 출신의 유명 저널리스트였던 아름다운 그녀가 어쩌다 강박적인 거식증과 알콜중독에 빠져서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되었는지,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는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말하지만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마지막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분명 글은 머리가 읽는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가슴이다. 뇌가 아니라 마음에 와서 박히는 그런 글이라는 의미다. 얼핏 성공해 보이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저자가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자신의 치부를 공개하게 된 계기는 친구의 6살배기 딸을 다치게 할뻔한 일을 겪으면서라고 한다. 고도 적응형 중독자로 자신이 알콜중독자라는 것이 밖으로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훈장처럼 생각하던 그녀는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이 달라져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자신을 해치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른 이를 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해서 중독에서 저절로 벗어나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저자는 알콜중독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이 실연만큼이나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제가 " 드링킹, 사랑이야기, 그 전쟁같은 사랑의 기록 " 인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알콜중독자들이 왜 그렇게 술을 끊기 어려워 하는지 단박에 이해가 가더라. 누가 이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인 사랑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하겠는가 말이다. 그것이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중독이 없는 세상이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허무라면 그 세상에 머무르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제정신인 채로 살아보기 위해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는 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마지못해 돌아오기까지의 지난하고 험난한 여정, 난 성공했다라는 성공담이 아니라 그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하는 한 패잔병의 생존기라고 보심 될 듯하다. 자서전으로 보기에도,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는 에세이로 보기에도, 아님 그냥 수작인 작품으로도 어딜 내놔도 버릴 것이 없는 대단한 작품이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화끈하고 통렬한 문장이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당신이 알콜중독이 아닐지라도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왜냐면 이 책이 근본적으로는 인생을 다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사는 것임에도 제대로 산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그런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 치명적인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번이라도 저항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그녀의 이야기가 마냥 남의 이야기로 들려오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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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09-0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네요

이네사 2015-09-08 07:07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셔요. 정말 잘 쓴 책이랍니다.
 
장미와 주목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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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랐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사랑에 대해서도 이다지도 정통한 분이실 줄은...추리 소설이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장르라는 것을 몰랐을리 없다고 해도, 사랑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해왔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정말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거 맞나요?라고 묻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사랑에 대해 남녀의 관점과 해석이 달라서 생긴 오해와 비극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던 책, 내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한다.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가 모순없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사랑에 관해 이렇게 설득력있는 드라마는 오랜만에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라니...놀랄 노자다. 추리 소설 작가의 통찰력을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 로맨스 소설 같아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정말로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다.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 낭만적이고, 통찰력 있으며 정직한...사랑에 관해 뭔가 아시는 아가사의 통찰력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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