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부제에 쓰인 Bestiary 라는 말은 ‘동물우화집’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즉 이 책은 멸종위기종( Endangered Creatures)에 대한 동물우화집이라는 뜻으로 이 부제가 책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줍니다.

이 책은 옥스퍼드 대학에 적을 둔 영국의 문학가 또는 에세이스트인 Katherine Rundell 의 작품입니다.

우선 동물학자나 생태학자가 아닌 에세이스트가 동물에 관한 글을 써서 놀라웠고, ‘우화’라는 형식을 채용해 각 동물당 글이 3-4쪽을 넘지 않습니다. 짭지만 매우 함축적인 글이란 인상을 받았고, 단순히 멸종위기종 동물에 대한 분류학적 설명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서양지식인들의 해당 동물에 대한 언급을 인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즉 소설이나 시의 구절도 많이 인용되어 짧지만 매우 훌륭한 글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쥐에 대한 글에서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드라큘라(Dracula,1897)’이 인용되는 식입니다.

문과와 이과의 경계가 분명한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생물학과 진화론, 분자생물학 등을 리드하는 나라이고, 과학과 더불어 철학 문학을 같이 공부하는게 색다르게 취급되지 않아서 가능한 저작이 아닌가 솔직히 생각합니다.

아무튼 근래 읽은 과학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3종의 동물을 다루었는데도 본문은 192쪽 밖에 되지 않으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이후에 나온 저자후기( Author’s note)는 최근 심해진 기후변화( Climate Change)에 대한 저지의 우려를 담았습니다.

생물의 멸종(extinction)이 인간세(Anthropocene)에 들어서는 대부분 돈을 위해 남획되거나 공해등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일어나다 보니, 그리고 산업혁명이후 시작된 기후변화가 그 임계점에 다다른 상황을 저자가 독자들에게 경고를 보낸 것으로 이해합니다.

확인해보니 아직 이책은 한국어판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또한가지 언급할 것은 이 책이 영국에서 먼저 출판(2022)되고 2년후에 미국에서 출판된 점입니다. 보통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판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렇게 시차가 있는 건 좀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영국판은 제목이 다르더군요.

The Golden Mole, Katherine Rundell (Faber &Faber,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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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사회학과에서 연구하시는 이철승 교수의 세번째 저작입니다.

우연치 않게 이교수의 전작을 모두 읽게 되었는데, 이분의 저술의 특징은 데이터에 기반해 지금 현재의 한국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는데 있습니다. 단순히 서구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생산된 이론이 미국사회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한국사회에는 왜 이론이 설명이 되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이런 명쾌함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은 기업이라는 소셜케이지를 분석단위로 해서 현재 한국사회의 조직이 직면한 세가지 구조적 변화, 즉 인공지능의 도입, 저출생/ 고령화 그리고 이민의 물결이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기업에 내재화한 연공제와 내부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습니다.

저자는 이미 전작에서 연공제와 386세대( 지금은 586/686이라고 해야 할)의 장기적 조직상층지재에 따른 불평등과 이런 연공제, 가부장제, 여성배제를 전제로 한 집단주의 체제가 벼농사경작체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2019)

이철승, 쌀 재난 국가 (문학과지성사,2021)


이 책은 두 전작이 나온이후에 불어닥친 기술의 발전( 인공지능, SNS의 부정적 효과)그리고 급격한 사회변화( 역사상 최저의 저출생, 베이비부머 은퇴와 고령화 그리고 노동력 부족에 따른 이민/ 이주노동자의 증가)가 연공제를 기반으로 한 기업조직과 한국의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분석입니다.

먼저, 인공지능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업의 노동력 수요는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경우와 인공지능에 투자하기엔 노동력이 너무 싼 경우가 일반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노동의 경쟁력을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직무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들의 경우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통해 기업특유의 노하우와 기술을 더 내부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인공지능이 기존 화이트컬러 노동자를 대체시키리라는 일반적 전망과 달리 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극히 일부 직종에 제한될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저출생/ 고령화는 동전의 앞뒤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현재 베이비부머의 딸들인 청년 여성들은 연공제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배제를 당연시하는 기업/ 사회문화 속에서 사실상 ‘출산파업’상태입니다.

베이비부머세대(1970년대 생들까지)까지만 해도 배운 여성들이라도 결혼과 아이와 가정을 위해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 딸들은 자신의 엄마들의 이런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결혼보다 우선시합니다. 능력이 있으니 커리어 추구가 당연하고 따라서 오히려 결혼과 출산은 선택일 뿐입니다. 거기다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어 비정규직 여성들의 경우 직업과 미래의 불안정으로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한국전쟁이후 산업화시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의 대량은퇴를 앞두고 있어 한국의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갖는 부모들의 경우도 경제적 형편때문에 자녀의 수가 한두명으로 적고 모두 대기업이나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고급인력이 되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고 경쟁하기 때문에 그리고 모두 서울로 몰려들기 때문에 지방의 제조업체나 몸을 쓰는 건설현장 그리고 농촌에는 한국 젊은이들을 찿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들 지방 제조업체, 농촌과 어촌이 필요로 하는 이주노동자의 공급을 유발합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젊은이들이 기피하는 3D업종이나 임금이 낮은 업종에는 이들 이주노동자들이 없이는 산업자체가 돌아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이 업종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의 노동자들은 현재까지 경쟁관계에 있지 않지만 향후 이주노동자들의 숙련도가 올라가고, 한국의 노동자들과 경쟁관계가 되는 시점이 되면 갈등이 폭발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이주해서 수십여년을 일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세금을 낸 이주노동자를 시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반론에 심정적/ 논리적으로 동의를 하지만, 과연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이방인이라고 느낀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인종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란을 거치고 난후 탄핵전국에서 극우 진영에서 밑도 끝도없이 중국혐오발언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방인배제의 신호로 보이는데, 특히 윤석열 정부가 망가뜨려 놓은 경제상황과 고물가가 이런 혐오를 부추긴 원인으로 보입니다.


인문계 학과에 진학하면 ‘문송합니다’라고 자조하고 사과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과 중고등학교를 시험지옥으로 만든 기성세대 입장에서 이 책은 한국사회의 아픈지점을 가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세라지만 이를 위해 사람들이 일일이 뼈를 갈아넣어 데이터를 입력해야 한다는 현실도 범용 인공지능의 효율성과 더불어 알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대에 뛰떨어진 ’출산지원정책‘같은 정책보다( 여성을 출산도구로 생각하는) 현재 제로섬게임처럼 되어 있는 남성위주의 기업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한국역사상 가장 공부도 많이하고 가장 주체적인 여성들과 살고 있는데 정책담당자들은 가부장적인 산업화시대를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이미 남녀 모두 출산휴가를 쓸수 있는데 이를 못쓰게 하는 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가 개인에 대한 직무평가와 평판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건 한국기업의 인사시스템이 아직도 후진적이라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기업이 사원들 뼈를 갈아넣어 유지되야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타이완의 반도체업체가 야근과 토요일 출근한다고 경쟁력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한국도 그래야 한다는 한 경제신문의 기사는 차라리 코미디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보다 임금을 올려주고 시간외수당 빠지지 않고 챙겨주는 편이 동기부여에 훨씬 좋다고 봅니다.

오랜시간 일을 하는 건 오히려 ’생산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이면 시간을 적게 들이는 쪽이 더 생산성이 높은 겁니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일한만큼의 대우를 받는 것이 조직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와 정치와 사회는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는 서로 분리가 되지 않는 시스템입니다.

정책당국자들이 사회의 일원이 노동자들도 기업만큼 같이 대우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이런 배려없이 계속 희생하고 일만하라고 한다면 사회문제와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여성들의 출산파업 계속되어 한국이 소멸될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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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처럼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로 대표되는 신군부(新軍部)정권이 국민동원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정치 자원(Resource)로서 활용했는지를 연구한 저서입니다.

책은 신군부가 철폐한 야간통행금지 폐지에 따른 사회적 효과 및 노동시간에 대한 영향, 그리고 KBS에서 실시한 ‘국민생활시간조사’와 이에 따른 텔레비전 편성시간 조정, 국가에서 강요한 국기하강식 의례를 다룹니다.

그리고 신군부 정권의 가장 큰 정치적 이벤트인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해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서머타임을 실시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등 ‘남에게 보이기 위한’정책을 임의적으로 집행했습니다.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이나 전두환의 신군부 독재정권이나 모두 공통적으로 ‘통치’의 대상인 국민의 시간을 통치자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균열이 생긴 건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노동자와 민주화세력이 신군부 정권에 도전해 노동절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목소리를 높여 단순히 ‘근로’의 의미만 강조하던 독재정권의 노동자 배제를 바꿨습니다.
국가의 기억정치의 수단인 국경일 지정에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된 시기가 1980년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까지 양력 기준의 국가지정 기념일과 음력기준의 명절로 두가지 시간체제가 경합했습니다. 전통적인 음력기준 명절이 국가기준의 양력 시간체제와 맞지 않아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으나 독재정치체제의 통치자들은 이런 국민의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구한말이래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서양력인 양력이 도입된 이후 이전부터 국민들의 생활시간을 규정하던 음력과 이에 따른 세시풍속과 명절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이런 두가지 시간체계는 1980년대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국가가 기념하고 의례를 거행해야 할 시간( 정치적으로 필요한 시간) 과 국민의 생활시간의 불일치는 오랜 이력을 가지고 있고 1980년대 이후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흐릿하게나마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과 관련하여 시기는 다르지만 시간정치의 흐름을 일제강점기 중심으로 정리한 연구서가 있어 소개합니다.

이창익,시간의 연대기: 잊힌 시간형태의 기록 (테오리아,2025)

이책이 1980년대 텔레비전이 시간정치에 매우 중요한 매체였음을 밝혔던 것처럼 위의 ‘시간의 연대기’에서는 시기에 따라 ‘시포’, ‘싸이렌’, 그리고 ‘라디오’가 시간을 알리고 국가의례를 알리고 행동을 규제하는 시간정치의 수단이었음을 밝힙니다.

시간을 통해 국민 ( 그리고 신민)을 통제하려 했던 기본적 속성은 시기에 따라 수단만 다를 뿐 동일했던 겁니다.

‘시간’이 통치자의 통치수단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임에도 설마 권력이 그렇게 미시적인 부분까지 통제하려 했을까 하는 점에서 무척 놀랍습니다.

미시정치 생체정치(bio-politics)의 기제로서 작용하는 시간정치의 일면을 잘 볼수 있었던 저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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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최재서에 대한 평전입니다.

서강대 명예교수이신 김욱동선생의 연구서로 제가 읽은 선생의 첫책입니다.

2024년 출간되었고 본문 7장에 본문만 622쪽에 달합니다.

최재서의 어린시절부터 대학시절( 경제제대 법문학부 영문학 전공) 과 대학원 시절 그리고 스승인 일본의 시인 사토 기요시(佐藤清)와의 관계가 책의 전반부에 서술됩니다.

해방전까지 최재서가 문학비평가로 문예사조로서영국의 낭만주의(romanticism) 와 신고전주의를 소개하고 서구 특히 영국의 문예이론을 적용해 1930년대 당시 발표된 근대 시와 소설을 실천적으로 비평한 경우를 다릅니다.

김욱동선생께서는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 당시 시로는 정지용, 소설로는 이태준 그리고 평론으로는 최재서를 뽑을만큼 평론분야에서 최재서를 높이 평가하셨기 때문에 그의 주요 활동인 평론에 대한 서술이 이 책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경우 일제말에 친일로 전향을 한 경우가 많았는데 최재서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친일로 기울다가 1939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 1920년대 이후 추구하던 문학을 포기하고 일제가 설정하고 강요한 노선에 따라 황도문학 (皇道文學)을 충실히 따르며 관변 잡지인 <인문평론> 편집을 주제하고 조선인 청년의 전쟁출병을 위한 강연과 간담회를 주최하는 등 적극적 친일에 가담합니다.

비록 제국대학 법학 전공출신들이 좀더 친일을 할 가능성이 컸다고 하나 최재서의 경우를 보면 매우 노골적으로 친일을 한것으로 평가되고, 이런 이유로 그가 해방이후 연세대/ 동국대/ 한양대에서 교편을 잡고 오로지 영문학 연구에만 매달리지 않았나 하는게 저자의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친일전력에 대해 본인 스스로 입을 닫았던 겁니다.

이책의 제목이 < 천재와 반역> 인 것도 그래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식민지의 한 수재가 지식인으로 살면서 결국에는 일제에 협력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재서가 해방이후 영문학 연구를 하면서 집필한 영문학사와 셰익스피어 연구에 대한 별도의 장에 소개했습니다. 1950년대 그 척박했던 시기 영국문학을 역사적 관점에서 소개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사실은 경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가로서의 최재서는 분량도 많지 않은 것이 그가 한국전쟁당시 호구지책으로 번역한 작품이 많고, 번역에 오류도 발견되어 번역가로서 선두적이기는 하지만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은 최재서라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문학평론가에 대한 평전인 만큼 그가 나온 경성제2고보,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일제강점 당시 일본에서 해외문학, 즉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노문학 등을 전공하고 문인과 교수로 활동하던 ‘ 해외문학파’와 최재서의 관계 그리고 1930년대 문학계를 양분했던 사회주의문학계열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과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계열에 대한 대립관계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해외문학파’와 별개로 조선에 모더니즘을 표방하던 문필가 그룹도 존재했는데 시인 이상(李箱)과 소설가 박태원입니다.

최재서는 발표당시 이상과 박태원의 작품에 대한 평론도 남겼고, 최재서 자신도 영국의 낭만주의와 함께 T.S Elliot 으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 신고전주의는 당시를 풍미하던 모더니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평가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제1차세계대전이후 서구 지식계는 그들이 말하던 문명사회인 유럽에서 일어난 대량 살육으로( 수천만의 남성의 전사로 이 전쟁에 참전한 1890년대생들은 이후 lost generation 으로 불립니다) 충격을 받았고, 서구의 이성을 의심하고 해체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영국에서는 줄거리보다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모더니즘 소설이 나오게 되고 동시대 조선에서 이런 심리적 무기력을 가장 잘표현한 인물이 시인 이상과 소설가 박태원이라는 겁니다.

끝으로 책을 일다보니 발견한 최재서 관련 연구서 한권을 소개합니다. 작고하신 평론가 故 김윤식 선생의 최재서 연구서로 최재서가 일제에 협력한후 발행한 < 국민문학> 관련 연구입니다.

김윤식, 최재서의 <국민문학>과 사토 기요시 교수 (역락,2009)

끝으로 저자 김욱동교수님은 이전부터 이름을 들어보던 분으로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소개되었을 때 자주 소개되던 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영문학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 일본문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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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 정치학, 우생학 - 강제 불임에서 나치의 대학살까지
김호연 지음 / 단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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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지형이 포퓰리즘(populism)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ness)에 휘둘리면서 극우진영에서 차별( discrimination)이 당연시되고 능력주의(meritocracy)를 신성시하며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하는 흐름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2020년 한양대에서 연구하시는 김호연 교수께서 강의록을 기반으로 출간하신 이 책은 차별의 생물학적 근거를 다루는 우생학(Eugenics)를 다루는 책입니다.

한국에서도 비백인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인종주의가 분명히 존재하고 상당히 심각할 정도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고, 이미 국제결혼으로 인종문제를 고려해야 하는데도 전문가들이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아직도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하고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특히 서구에서는 보수진영에서 차별과 불평등의 생물학적 근거로 사용된 우생학을 살펴보는 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생학은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 인구정책, 장애인 정책, 출산관련 보건 정책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주로 영국, 미국, 독일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우생학의 시작은 영국입니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원(Charles Darwin)에서 기원한 생물의 진화를 다윈 자신이 인간의 경우에 이미 적용을 했었고,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튼 ( Francis Galton)이 최초로 우생학의 이론을 세웁니다.

19세기 산업화와 제국주의 팽창의 시기에 각종 사회문제의 출발이 인구의 질적향상에 있다고 본 우생학은 부르조아 엘리트 계급의 출산율이 낮은 반면 하층 노동자 계급의 출산율이 높은 사실은 사회전체의 노동생산성 저하를 가지고 온다고 봤습니다.

영국에서 우생학의 이런 기본적 주장은 주장으로서 끝나고 실제 법으로 입법화되지는 않았지만 19세기 남북전쟁이후 산업화를 진행하던 미국에서는 실제 이런 질이 좋지 않은 장애인, 알콜중독자, 정신병자 등에 대한 결혼을 금지하거나 앵글로색슨 백인종이 아닌 다른 인종의 이민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우생학은 기본적으로 백인종이 다른 인종에 비해 우월하고 표준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고, 미국에서는 미국이 특히 백인 WASP (White. Anglo Saxon Protestant)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 다른 백인들, 예를 들어 유태인이나 동유럽출신 백인들의 이민도 꺼렸고 심지어 중국의 경우 이민금지법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종주의는 이처럼 백인을 최상위에 놓고 다른 인종들은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인데 그 근거가 상당히 자의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19세기 이래 21세기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사례는 미국보다 우생학의 영향정도가 더 극단적입니다. 독일은 인종위생(Racial hygiene)이라는 이름으로 독일민족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이미 19세기말부터 존재했는데, 독일사회가 영국이나 미국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독일인구의 생산성 증대에 노력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월한 독일인과 다른 인종간의 잡혼은 안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독일제국시기와 바이마르 시기를 거쳐 히틀러의 나치 집권기를 거치며 독일의 ‘아리안 민족 순수성’은 독일내의 장애인, 알콜중독자 등 사회부적격자의 불임수술과 안락사유도를 통한 학살로 이어졌고, 이후 유태인 대량학살(The Holocaust)로 이어졌습니다.

독일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은 현재까지 우생학과 인종주의가 촉발한 역사상 최악의 대량학살의 사례로 거론됩니다.

이 책은 뒤에 흥미로운 자료를 싣고 있는데 바로 영어권에서 연구된 우생학 관련 서지자료입니다. 진화론에서 출발해 최적자생존을 당연시하던 생각은 적격자와 부적격자를 나누는 차별을 당연한 자연법칙으로 여겼고, 특히 이런 생각은 자본가와 보수적 부르조아 계급의 재산증식과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해 왔습니다.

이런 생각은 서구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 자본가 계급에서는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봅니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건 최근의 이스라엘-가자전쟁과 현재 벌어지는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인해 유태인들이 반유대주의( anti-semitism)와 그로인한 독일의 유태인 대량학살(The Holocaust)를 자신들만의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

미국의 시오니스트 유태인 백만장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총리는 사실상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작년 미국 대학가를 달구었던 반 이스라엘 시위대는 사실상 이스라엘이 가자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청소( ethnic cleansing)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독일이 유태인을 인정청소했던 것처럼 유태인들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청소 한 겁니다.

이런평가는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의 유태인학자들의 비판입니다. 이런 학살극을 보고 충격받은 유태인 대학생들이 콜럼비아를 비롯한 여러대학에서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인것도 같은 맥락에서 입니다.

가자지구 병원에 폭탄을 떨어뜨린 이스라엘이 이번엔 이란으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아 병원이 폭격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범죄라고 노발대발하는데 본인들이 가자에서 병원을 폭격한 일은 거론하지 않습니다.

이번 이스라엘-이란전쟁을 보면 서구와 결탁한 이스라엘이 중동의 강국 이란과 끝장을 보려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서구가 중동에 심어놓은 위성국가같은 존재인데 그 지역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과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을 짓밟고 민주주의와 서구식 시스템을 이식하려는 것을 보면 서구의 제국주의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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